국어문학창고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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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  송동준 (독문학자)                


내용

기원전 425년에 아테네의 비극 경연 대회에서 최초로 공연된 이 작품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숙명적 신탁 때문에 깊은 숲 속에 버려지지만 결국 그 운명의 실현을 보게 되는 오이디푸스 왕 신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관객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던 소재이지만, 소포클레스는 그것을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분석극의 형태로 무대에 올림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긴장감을 갖게 했다.

  분석극이기 때문에 작품의 시작은 살인 사건이 이미 발생한 다음부터이며, 왕이 자신이 범인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여섯 단계로 나뉘어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개된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등장 인물 : 오이디푸스(테베의 왕), 이오카스테(왕비), 크레온(이오카스테의 남동생), 테이레시아스(눈먼 예언자), 제우스 신의 사제, 전령, 목자, 합창단(테베의 장로들 로 구성됨)

    장     소 : 테베의 왕궁 앞
    시     간 : 고대 그리스의 초창기

도시 국가 테베에 지독한 전염병이 유행해, 도시 전체가 악취나는 죽음의 도시가 된다. 사제와 국민들은 이 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이디푸스 왕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다. 그들은, 오이디푸스 왕이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 나라를 불행에서 구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신들을 도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국민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왕은 그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이미 자신의 처남 크레온을 아폴로 신의 거처인 델피로 파견해 신탁을 받아 오라고 명한 바 있다.

  때마침 델피에서 월계관을 받아쓰고 귀환한 크레온은 신탁을 받아 왔다며,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왕에게, 제발 그 범인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 말라고 간청한다. 이상히 여긴 왕은, 혹시 테이레시아스가 그 범인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누가 범인인지 어서 말하라고 다그친다. 마침내 에티레시아스는, 선왕 살인자는 오이디푸스 왕 자신이라고 말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진상을 밝히려고 나선다. 선왕은 외아들을 산 속에 버렸고, 어떤 강도들에게 살해된 것으로 되어 있어, 왕 자신이 죽였다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왕 자신은 코린토스(코린트) 왕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선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언젠가 테베로 오다가 길에서 마차를 타고 가던 어떤 노인과 그의 마부를 말다툼 끝에 지팡이로 때려죽인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단독 범행이었지, 강도들과 함께 한 짓은 아니었다. 그 때 코린토스의 한 사신(使臣)이 나타나, 오이디푸스 왕은 코린토스 출신이 아니라 입양아라고 증언한다.

  한편, 오이디푸스의 왕비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선왕이 살해된 시점과 오이디푸스가 노인과 마부를 살해한 시점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이디푸스 왕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혼자 조용히 왕궁으로 돌아가 목매어 자살한다.
  그 다음 목자 한 명이 출현해, 자신이 오이디푸스 왕자를 산에 버리라는 명령을 어기고 코린토스의 한 목자(지금 증언한 사신)에게 넘긴 그 신하였음을 증언하고, 또한 선왕이 어떤 노상 강도에게 맞아 죽을 때도 수행하고 있다가 목숨을 건진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건대, 자신이 선왕 라이오스 살해자임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자신의 두 눈을 수없이 칼로 찔러 장님이 되어, 자기 발로 걸어서 테베를 떠난다.

  이 작품은 인간 오이디푸스왕을 다소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함으로써, 그의 불행은 신이 예정한 불가항력적 운명일 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인간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보인다. 더 나아가 그의 불행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신의 존재와 지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자신의 무지에서 비롯한다. 이 점은 작품 줄거리의 구조를 살펴볼 때도 확인된다.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범인임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하나씩 둘씩 나타나지만, 그는 그 때마다 열리는 무죄 가능성들에 집착하면서, 최후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로써 그의 범인 수사는, 허위로 신의 진실을 가리기 위한 절망적인 싸움이 된다. 그러다가 결국 진실이 밝혀져, 그는 장님이 되어 유랑의 길을 떠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파멸의 순간 그는 진실의 인식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 신체적으로는 장님이 되었지만, 정상인이었을 때 못 보던 진실을 보게 되고,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인식의 순간, 병든 도시도 다시 건강해진다. 또한, 그가 테베의 왕이었을 때는 불투명한 출신 때문에 사실상 국민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가, 이 인식의 순간부터 그는 인간의 품위를 지킨 왕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호감을 산다.

  이런 신적 질서 인식의 주제는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합창에서도 나타난다. 합창은 인간이 늘 신에 대해 외경심을 갖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 작품의 분석극의 형태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건을 인과적인 시간적 진행으로 보여 주지 않고, 이미 종결된 사건의 진상을 인물들 간의 질문과 대답이라는 탐문 형식을 통해 차츰 규명해 가는 분석극 형식은, 이 작품의 비극적 내용과 아주 긴밀하게 일치되어 있어서, 관객은 과거에 발생한 사건이 차츰 해명되고 카타르시스(관객의 마음에 정화 작용을 일으키는 것)에 도달하기까지 한 순간도 극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 점을 두고 쉴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일종의 비극적인 해부에만 비교될 수 있다.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고, 다만 하나하나 펼쳐질 뿐이다. 이미 발생했기에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은, 그 본래 성격상 매우 두렵게 느껴진다. 어떤 일이 과거에 발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떤 일이 미래에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분석극의 이런 새로운 긴밀한 구조는 이 작품으로 하여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비극의 목표이자 과제인 카타르시스, 즉 연민과 공포를 통한 인간 영혼의 정화에 도달하는 데 성공케 한다.

                               핵 심                                            

  오이디푸스 왕의 불행이 신의 숙명에 기인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그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가르친다. 인간으로서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살인을 하고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남에게서 찾으려 할 때, 그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신의 진실과 지혜를 인식하지 못하고 혼미 상태에 빠지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신적 진실 앞에서 겸허히 행동하는 순간, 곧바로 참 자유를 누리게 된다.

                             저 자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소포클레스(Sophocles)는 기원전 497년에 아테네 근처의 콜로네스에서 출생하고 기원전 406년에 사망했다.

  유복한 시민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고, 28세 때에 처음으로 국가 비극 경연 대회에서 선배 아이스퀼로스를 이긴 후, 약 20차례에 걸쳐 그 대회에 일등을 해, 아테네 사람들로부터 영웅처럼 숭앙받았다.

  그가 창작했다고 전해지는 123편의 작품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7편의 비극(『아이아스』,『필록테테스』,『오이디푸스 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안티고네』,『트라키니어의 여인들』,『엘렉트라』)과 한 편의 사티로스 극뿐이다. 그는 최초로 비극 3부작 드라마의 각 편을 엄격한 형식에서 독립시켜 단막극의 고유 형식이 되게 함으로써, 그리스 비극을 괄목할 만하게 발전시켰다.

  그의 작풍들은 선배 아이스퀼로스나 후배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저주받은 한 종족이나 가문 전체의 운명보다는 인간 개인의 운명이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인간의 비극은 불가항력적인 숙명뿐만 아니라 인간 개인 죄에도 기인하기 때문이다.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트에 의해 제창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어린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이성(異性)의 부모에게 애착을 가지며, 동성의 부모에게 적의(敵意)를 가지거나 벌받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경향]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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