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소년 용사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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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용사

 

지나간 유월 팔일이었습니다. 서울 계동 중앙 고등 보통 학교에 운동회가

있어서, 골목이 메워지게 구경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나도

구경을 갔습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사람이 어찌 많이 모였는지, 좌우옆 산언덕과 소나무 숲

사이에까지 빈틈없이 들어찼는데, 햇볕 좋은 마당에 씩씩한 음악 소리에 맞

추어, 여러 가지 활발하고 재미있는 운동 경기가 차례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 여러 가지 경기 중에 제일 흥미를 가지고 그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것은 여기서 안팎 이십 리나 넘는 청량리까지 뛰어갔다 오는 장거

리 경주하고, 이백 미터나 되는 이 학교 운동장을 스물다섯 바퀴 도는 오천

미터 경주하고 두 가지였습니다.

, 한 바퀴 휘도는 이백 미터 경주에도 숨이 찬데, 스물다섯 바퀴를 돌려

면 굉장히 힘드는 노릇이라 하여 생각만 하여도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수만

명 구경꾼들 뿐 아니라, 이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까지 잔뜩 기다리고 있

었습니다.

다른 경기가 거의 끝이 나고 마지막 판에 가까웠을 때에,

이번에는 오천 미터 경주.’

라고 쓴 광고판을 멘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돌았습니다.

오천 미터다. 스물다섯 바퀴 도는 경주다.”

하면서, 그 많은 구경꾼들이 입으로 받아 외이면서, 바짝바짝 다가서고 앉

았던 부인네들까지 일어서고, 모두 마음이 바짝바짝 조였습니다.

오천 미터이니까 여간한 사람은 처음부터 나오지 못할껄.”

그렇구말구요. . 한 바퀴에도 쩔쩔매는데, 스물다섯 바퀴니 여간한 사

람이야 꿈도 못 꾸지요.”

이번에 참 지고 이기는 것은 하여간에, 나서기만 하는 것도 참말 용맹한

사람이지요.”

이렇게 수군수근하던 구경꾼들은 깜짝 놀래었습니다. 보십시오 이 놀랄만

한 오천 미터 경주에 출전하는 굵직굵직한 용맹한 선수 여섯 사람이 우레같

이 울리는 박수 소리에 환영되어 출발점에 씩씩하게 나섰는데, 그 중에 한

사람 겨우 열네 살밖에 안 된 소년이 그 굵은 큰 선수들 틈에 나섰지 않았

겠습니까.

아아니, 조것도 선수인가? 저렇게 어린 것이!”

무얼, 한 바퀴쯤 돌고 떨어질 테죠.”

아아니, 저렇게 어린 것을 어째 내세웠을까? 그 굵은 사람 틈에 병아리

같은 것을…….”

참말 아무가 보아도 장난으로 웃음거리로 내세운 것이라고밖에 생각 아니

하게 엄청나게 어린 사람이었습니다.

총 소리가 나고 음악 소리가 나면서 선수들은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

이 내가 서 있는 앞으로 지나갈 때 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리와 팔이 굵직하

고 모두 스무 살도 넘어 보이는 장정이요, 더구나 아까 장거리 경주에 상을

탄 사람들인데, 그 소년은 거기다 대면 병아리만하다 하여도 좋을 만큼 어

리고 작았습니다.

, 꼬맹이 잘 뛴다. 꼬마가 제일이로구나.”

하고, 선수들이 지날 적마다 구경꾼들은 놀림가마리로 웃음엣소리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리를 들은 척도 아니하고, 어린 선수는 꼭 셋째로 더 뒤지

지도 않고 앞서지도 않고 태연히 돌고 있었습니다. 큰 선수들에 비하면 워

낙 어리니까 다리가 짧아서 남이 한 걸음 성큼 뛰는데 그는 두 번을 뛰어야

그만큼 나가지는 형편이었으므로 실상 같은 한 바퀴를 돌면 어린 선수는 두

바퀴 도는 만큼 힘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조금도 숨찬 기운도 보이지 않고 더 안타깝게 굴지도 않고

태연히 셋째 차례를 잃지 않고 뛰고 있었습니다.

네 바퀴를 돌 때에 벌써 큰 선수 한 사람은 아주 떨어져서 경기장 밖으로

나가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 어린 선수는 여전히 셋째 차례에 서

서 뛰고 있었습니다.

아홉 바퀴, 열 바퀴, 하도 오래 뛰니까 구경하던 사람들이 지루해질 지경

이나, 뛰는 사람들의 고생스러움은 어떻겠습니까? 열두 바퀴, 열세 바퀴째

기어코 그는 맨 앞에 선수보다 한 바퀴를 떨어지고 열일곱 바퀴, 열여덟 바

퀴 되어 허덕허덕 늘어지게 될 때는 앞에 큰 선수보다 두 바퀴나 떨어졌습

니다. 그래도 그 어린 선수는, 퇴장을 안할 뿐만 아니라 조금도 낙심하는

빛도 없이 그냥 그대로 계속하여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일은 아주 틀렸습니

. 그가 스물세 바퀴를 간신히 돌고 있을 때 다른 선수는 모두 스물다섯

바퀴를 다 돌고 결승점에 들어가 1 2 3등의 깃발을 잡았습니다.

가엾게도 그 나어린 소년 선수는 스물네 바퀴도 돌아보지 못하고 중간에서

경기장 밖으로 물러가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이었습니다. 

는 뛰기를 중지하지 아니하고 그냥 계속하여 결승점까지 뛰어갔습니다. 

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거기서도 쉬지 않고 그냥 계속하여 다만 혼자서 스

물네 바퀴를 또 돌기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에 수만 명 군중들은 일시에 일어나서 손뼉을 쳤습니다. 부인석에서

도 직원석에서도 모두 천막 밖으로 뛰어나와서 넓은 운동장에 다만 혼자 타

박타박 돌고 있는 어린 선수를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뻐근한 것을 금하지 못했습

니다. 말할 수 없는 감격이 내 전신에 가득한 까닭이었습니다. 이 때 감격

의 눈물이 고인 사람은 결코 나 하나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눈물 머금은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손뼉 소리 속에 그 넓은 운

동장을 돌아서 결승점에 닿아 가지고 스물다섯 째의 마지막 바퀴를 또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손뼉 소리는 다시 더 우레 소리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까지 떡을 팔던 사람까지 장사를 잊어버리고 나서서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너무 가엾어라!”

인제 그만 돌고 그만두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 같으면 쫓아 들어가서 업고 뛰어갔으면 좋겠다.”

이런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습니다. 기어코 그가 스물다섯 바퀴를 다돌

고 결승점으로 들어갈 때는 수만 군중이 물끓듯이 기쁨의 소리를 자르고 어

린 학생들은 소리를 높여 만세를 부르고 부인석에서는 우루루 몰려나와서

그를 떠받쳐 안았습니다.

그리고, 시상부에서까지 뛰어나와 그를 맞아들여서 예산에 없던 특별상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아아, 작은 용사! 놀라지 마십시오. 그는 이 학교 2학년에 다니는 ○○○

이라는 단 열네 살된 소년이었습니다.

나는 근래에 구경하던 중에 제일 좋은 구경한 것을 두고두고 기뻐하였습니

. 그것은 구경이라기보다도 그 어린 선수는 그 날 거기 모인 수만 명 사

람에게 크나큰 교훈을 준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천 미터 경주에 꼴찌를 하였습니다. 1 2 3등 다 작정된 후에도

두 바퀴나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신에 있어서 아무도 따르지 못할

장원을 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보다도 갑절이나 긴 다리를 가지고 세 갑절이나 큰 몸과 기운을

가진 선수들 틈에 끼어 나설 때 그의 의기가 벌써 훌륭히 이기고 있는 것이

었습니다. 단 사오 바퀴를 돌고 중간에 물러선 큰 선수가 있었건만 그는 그

런 자살해 버리는 약한 태도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아무라도 앞에 나간 사람이 상을 다 차지하고 판결이 난 줄 알면

그냥 다 돌아서 버리는 데 불구하고 남이 상을 타건 말건 자기 혼자라도 스

물다섯 바퀴를 돌고야 마는 태도는 만 냥(萬兩) 2만 냥, 아니 백만 냥 천만

, 억만 냥으로도 따지지 못할 존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운동회

서 뿐 아니라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언제든지 무슨 일에든지 이 정

신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하고 미리부터 물러서는 것은 자기를

살해해 버리는 것과 똑같은 비겁한 태도입니다.

칼이 작거든 남보다 한 걸음 더 앞서서 싸워라! 남보다 어리면 한 번만 더

뛰면 된다. 힘이 적으면 한 힘만 더 쓰면 된다.

우리들은 조선의 새로이 자라나는 새 조선 사람이니 우리들은 모두 이같은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조선 어린이란 어린이가 모두 이같은 정

신을 가지고 자란다면 어떻게 좋겠습니까? 나는 특별히 이 글을 한 사람에

게라도 더 읽히고 싶고, 한 사람에게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금치 못합

니다.

 

〈《어린이1930 6, 소파 전집(박문 서관 간)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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