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트 76 / 셰익스피어(Shakespeare)
by 송화은율소네트 76 / 셰익스피어(Shakespeare) / 이상섭 역
왜 나의 시는 참신한 치장도 없고
도무지 변화 무쌍할 줄 모르는가 ?
왜 유행따라 새로 고안된 방법과
기발한 표현에 유의할 줄을 모르는가 ?
왜 나는 한가지로 꼭 같은 것을 끄적이며
나의 시상(詩想)에게 눈에 익은 낡은 옷만 입혀
거의 말 마디마다 내 이름을 말하며
그 출생과 출생지를 빤히 보이는가 ?
오오, 기억하세요. 사랑하는 이여,
언제나 나는 당신 얘기만 써요.
당신과 사랑이 변함없는 게 내 주제랍니다.
그러므로 나의 최선은 옛말을 새로 옷 입혀
이미 썼던 것을 다시 쓰는 것입니다.
마치 태양이 매일 새롭고도 옛스럽듯이
내 사랑은 했던 얘기 그냥 하는 거랍니다.
요점 정리
작자 : 셰익스피어(Shakespeare) / 이상섭 역
갈래 : 정형시. 번역시는 자유시
율격 : 외형률. 번역시는 내재율
성격 : 고백적
표현 : 독창적이고 참신한 비유를 사용함
제재 : 시의 의장(意匠)
주제 : 변하지 않는 사랑
구성 :
1단락 : 1-8행
2단락 : 9-13행
3단락 : 14-15행(주제행은 14행)
내용 연구
소네트(sonnet) : 서양 시가의 한 형식으로서 10음절 14행으로 이루어진 정형시. 13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어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가 성행했음.
시상(詩想) : 시를 짓기 위한 착상이나 구상.
이해와 감상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결코 범용(凡庸)하다고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시를 빚어 내 놓았다. 그것은 시인이라면 너무 친숙한, 너무 친숙하기에 오히려 지나치기가 십상인 시의 의장(意匠 : 시각을 통하여 미감(美感)을 일으키는 것. 물품의 형상, 모양, 색채 또는 이들을 결합한 것으로서, 의장권의 대상이 된다.)을 비유로 끌어들여 변함 없는 사랑을 고백하게 하는 방법이다. 앞에서 예를 들었지만 비유가 놀랍도록 참신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시인 한용운이 이 작품에 직접 접했던가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그의 시 "예술가"에서도 위 시에 가까운 시상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꾸미거나 유행에 따를 줄 모르는 자신의 시를 비유로 끌어들여 변함 없는 사랑을 고백하고 노래하는 참신한 시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시를 유행에 따라 변해 가지 못하는 참신한 치장에 비유한 것은 독창적이면서도 놀라운 것이다. 이 시의 끝에 여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새롭고도 예스러운 태양'에 비유한 점도 생동하는, 깊이 있는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심화 자료
소네트(sonnet)
일정한 압운(押韻) 체계를 지닌 14행으로 된 서정시로 대표적인 시인들이 5세기에 걸쳐 즐겨 썼다는 점에서 서양문학의 여러 시형 중에서 높이 살만하다. 소네트는 프로방스 음유시인들의 연애시에 영향을 받은 시칠리아 궁정시인파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시칠리아에서 토스카나 지방으로 전파되어 이곳에서 14세기에 페트라르카의 시를 통해서 가장 세련되게 표현되었다. 317편의 소네트로 된 그의 연작시 〈시집 Canzoniere〉은 그의 이상화된 연인 라우라에게 보내는 시로 이 시의 창작을 계기로 '이탈리아(페트라르카)풍 소네트'가 정착되고 완성되었다. 이탈리아풍 소네트는 소네트 형식중 가장 널리 사용될 뿐 아니라 영국(셰익스피어)풍 소네트와 더불어 2대 소네트 형식으로 꼽힌다.
이탈리아풍 소네트의 특색은 주제를 2가지 분위기로 다루는 점이다. 첫번째 8행연구(八行聯句 octave)는 문제를 진술하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또는 정서적인 긴장을 표현한다. 뒤에 나오는 6행연구(六行聯句 sestet)는 문제를 풀거나 질문에 답을 제시하거나 긴장을 해소시킨다. 8행연구는 'abbaabba'의 압운이며, 6행연구의 압운은 여러 가지로 'cdecde·cdccdc·cdedce' 등이 될 수 있다. 유럽 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페트라르카풍 소네트로서 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에 정착되었고 폴란드에도 소개되어 다른 슬라브 문학으로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경우 이 소네트 형식은 그 나라 말의 주된 운율에 맞추어 바뀌었는데 프랑스의 알렉산더격(12음절 약강격 시행) 시와 영어의 약강 5보격이 그 예이다.
이탈리아풍 소네트가 다른 이탈리아 시형과 함께 영국에 소개된 것은 16세기에 토머스 와이어트 경과 서리의 백작 헨리 하워드를 통해서였다. 이 새로운 시형들이 엘리자베스 시대의 서정시를 꽃피웠으므로 엘리자베스 시대는 영국에서 소네트가 가장 인기를 누리던 때였다. 이탈리아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압운이 빈약한 영어에 이탈리아 시 형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독특한 영국풍 소네트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영국풍 소네트는 각기 개별적인 압운체계를 지닌 3개의 4행연과 압운 2행연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영국풍 소네트의 압운 도식은 'abab cdcd efef gg'이다. 압운의 수가 보다 많으므로 이 형식이 이탈리아풍 소네트보다 덜 엄격하다고 하지만 마지막 2행연구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꼭 쉽지만은 않다. 2행연구를 통해 앞부분의 4행연들에서 보여준 효과를 그리스 경구(警句)에서 만큼이나 호소력 있게 요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조차 이 작업에 실패하는 때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전형적인 소네트는 페트라르카 형식으로 된 연작 연애시였다. 이 연작시의 각 소네트는 일부는 상투적인 내용과 일부는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독립된 시들이지만, 연작이라는 형식을 통해 무엇인가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는 듯한 흥미로움을 더해주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작 소네트 가운데 유명한 것은 필립 시드니 경의 시 〈아스트로펠과 스텔라 Astrophel and Stella〉(1591), 새뮤얼 대니얼의 〈델리아 Delia〉(1592), 마이클 드레이턴의 〈생각의 거울 Idea's Mirrour〉(1594), 에드먼드 스펜서의 〈아모레티 Amoretti〉(1591) 등이다. 〈아모레티〉는 스펜서풍 소네트라고 알려진 일반적인 변형 소네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시형은 영국풍의 4행연구와 2행연구 양식을 따르면서도 연속운(連續韻)을 쓰는 점에서 이탈리아풍 소네트를 닮은 형식으로 'abab bcbc cdcd ee'의 압운을 갖는다. 연작 소네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은 아마도 한 청년과 '흑부인'(dark lady)에게 바쳐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일 것이다. 이 연작 소네트에서는 사랑이야기보다도 그 배경을 이루는 시간·예술, 성장·몰락, 명성·재산 등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하다.
그후 계속적인 발전 가운데 소네트는 애정이라는 주제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존 던이 종교적 소네트를 썼을 때(1610경), 밀턴이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주제들이나 또는 〈내 빛이 어떻게 소모되는가를 생각할 때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에서처럼 자신의 실명(失明)이라는 개인적인 주제에 대해 소네트를 썼을 때, 그 범위는 시의 거의 모든 주제를 담을 만큼 넓어졌다. 소네트가 '연인들에 대한 경쾌한 상상'에서 인간·시간·죽음·영원에 대한 고찰에 이르기까지의 주제들을 모두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그 짧은 형식 덕분이다. 심지어 자유와 자발성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시대에도 시인들은 여전히 이탈리아풍 소네트와 영국풍 소네트 형식에서 자극을 받았다. 워즈워스의 〈아름답고 고요하며 상쾌한 저녁 It Is a Beauteous Evening;Calm and Free〉·〈세상이 우리에게는 너무 중요해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와 키츠의 〈내가 존재하기를 그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 When I Have Fears That I May Cease To Be〉·〈빛나는 별이여, 내가 너처럼 한결같았으면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등의 소네트들은 영시 중에서 매우 우수하고 잘 알려진 것들이다. 19세기 후기에 연애 소네트 연작은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포르투갈인의 소네트 Sonnets from the Portuguese〉(1850)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인생의 집 The House of Life〉(1876)을 통해 부활되었다. 소네트 형식으로 된 가장 뛰어난 20세기의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오르페우스에 대한 소네트 Sonnette an Orpheus〉(1922)이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Shakespeare는 Shakspere라고도 씀. 필명은 Bard of Avon, Swan of Avon. 1564. 4. 26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에서 세례받음~1616. 4. 23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
영국의 시인·극작가.
영국이 낳은 국민시인이며 현재까지 가장 뛰어난 극작가로 손꼽힌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에 씌어진 그의 희곡은 작은 레퍼토리 극단에서 공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토록 자주 작품이 공연되는 작가는 없다. 동료 극작가 벤 존슨은 셰익스피어를 일컬어 "한 시대가 아닌 만세를 위한" 작가라고 말했다. 뛰어난 시적 상상력, 인간성의 안팎을 넓고 깊게 꿰뚫어보는 통찰력, 놀랄 만큼 풍부한 언어의 구사, 매우 다양한 무대형상화 솜씨 등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
생애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출생·결혼·사망·유언 등 기본적 사실을 확인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가활동에 직접·간접으로 언급한 여러 문헌자료가 있어 일부 호사가들이 주장해온 의문은 고려할 여지가 없는 것들이다.
잉글랜드 중부 소읍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의 교구기록에는 그가 1564년 4월 26일 세례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날짜를 기준으로 당시 관습을 참조하여 2, 3일 앞선 4월 23일을 생일로 본다. 또한 그의 사망일이 공교롭게도 4월 23일이다. 아버지 존은 이 고을 유지로서 상공업에 종사했으며 1568년에는 읍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어머니인 메리 아든은 인근 마을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이며 약간의 농토까지 상속했다고 하므로 존에게는 신분상승을 이룩한 결혼이기도 했다. 그러나 1577년경부터 가세가 기울어 그의 교육은 그래머 스쿨로 끝나고 대학 진학의 기회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스트랫퍼드의 그래머 스쿨은 훌륭한 교육을 제공했고 그 내용은 주로 라틴어 문학과 고전문헌 연구였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대학진학의 기회는 갖지 못했지만 셰익스피어의 학식과 교양이 크게 뒤떨어진다고 볼 수 없으며 그가 시인·극작가로서 성공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8세에 결혼했다. 장소와 날짜는 분명하지 않으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스트랫퍼드 거주의 앤 해서웨이 사이의 결혼을 공고하는 1582년 11월 28일자 보증인 연서의 문서가 남아 있어 그가 8세 위인 앤과 결혼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기록으로는 딸 수재나의 출생(1583), 쌍둥이 남매 햄릿과 주디스의 세례(1585) 등이 문서로 남아 있다. 결혼 후 런던의 연극계 기록에 이름이 나타날 때까지 8년간 그의 행적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인근에 사는 귀족 토머스 루시의 정원에서 사슴을 훔치려다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든가, 시골학교의 선생이었다든가, 런던에 나가 처음에는 극장에서 손님이 타고온 말을 돌보는 막심부름꾼을 했다든가, 어느 귀족의 부하가 되어 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에서 졸병노릇을 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 사실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1592년 비로소 런던 문학계에 그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 나타난다. 극작가 로버트 그린이 죽음의 병석에서 쓴 소책자 가운데 명백히 그를 두고 비방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있다. 그린이 죽은 후 이 책이 출판되자 서문을 쓴 사람이 사과하는 내용을 담아놓은 것을 보면 오히려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인·극작가로서 각별한 주목을 받았고, 유력한 문학적 후원자이며 그가 2권의 시집을 출판하며 헌정한 바 있는 사우샘프턴 백작과 이미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연극계 경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594년경부터 극단 ' 체임벌린스 멘' (제임스 1세 즉위 이후로는 '킹스멘'으로 개칭)의 주요단원이 되었으며 그 관계는 은퇴할 때까지 꾸준히 계속되었다. 당대 영국 연극을 대표하던 이 극단은 으뜸가는 배우 리처드 버비지, 최고의 글로브 극장, 가장 뛰어난 극작가 셰익스피어 등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는 20년 이상을 전속작가일 뿐만 아니라 극단의 공동경영자로 있으면서, 또 틈틈이 배우까지 하면서 40편에 이르는 희곡과 시집을 펴냈다. 그의 사생활을 말해주는 기록은 극히 드물다. 다만 1596년에 아버지 존이 가문(家紋) 사용의 허가를 관계당국에서 얻었는데 신분상승을 말해주는 이 일은 틀림없이 셰익스피어의 도움으로 가능했을 것이며 다음해 고향의 대저택 뉴플레이스를 구입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이런 일들은 그가 세속적으로도 성공한 일면을 나타내주며, 견실한 생활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도 현존하는 약간의 재산 취득에 관계된 서류 대부분이 고향 스트랫퍼드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런던 극계 은퇴 후의 고향생활을 항상 염두에 두었고 자녀를 위해서도 그곳을 본거지로 삼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서류들은 쌍둥이 아들 햄릿의 죽음(1596), 아버지 존의 죽음(1601), 총애하던 딸 수재나의 결혼(1607) 등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죽기 훨씬 전에 그는 고향에 돌아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남아 있는 유서는 비교적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중 아내와의 소원한 관계를 추측하게 하는 대목도 있으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사후 7년 뒤인 1623년 극단동료인 존 헤밍과 헨리 코델이 편집을 담당해서 희곡 전집이 발간되었다. 전지(全紙) 2절 판의 대형본인 당당한 규모는 생전의 명성과 인기를 말해준다. 책머리에 실린 동판화 초상은 그가 묻힌 스트랫퍼드 교회 안의 흉상과 더불어 많은 그의 초상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작품세계
지적 배경
그가 살았던 시기는 중세의 사상과 사회조직의 영향이 남아 있었던 때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상에 군림하는 신의 대리자요 그 아래서 귀족과 서민은 응분의 사회신분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기존 질서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무신론은 아직도 대다수 사람들의 신앙 및 생활방식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미 하나로 뭉쳐 있지 않았다. 로마 교회의 권위는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에 의해 위협받았고 영국국교회에 의해서도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국왕의 특권에 대한 의회의 제동, 자본주의의 대두, 헨리 8세 때의 수도원 토지 몰수와 재분배, 교육의 보급, 신대륙 발견에 따른 새로운 부의 유입 등으로 사회적·경제적 질서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신·구 사상의 교차는 이 시대의 특징이다. 공적 설교가 사람들에게 순종을 당부하는가 하면 한편으로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새롭고 현실적인 정치철학을 옹호했다. 당시 영국인은 이것을 이탈리아식 마키아벨리적 악덕이라고 두려워했으나 이로 인해 행동의 당위성이 아닌 현실적 행동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작품 〈햄릿 Hamlet〉에는 인간, 신조, 부패한 국가, 뒤죽박죽이 된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탐구와 논의가 나오는데 이것은 이러한 시대적 불안과 회의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1603~06년에 씌어진 그의 작품들은 어김없이 제임스 왕조의 새로운 불신풍조를 반영하고 있다. 의회와 대립하여 하원과는 빈번히 싸웠지만 그의 무기력은 '새로운 인간'의 힘이 커진 데 따른 정부의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문학관습과 연극 전통
로마 시대 극작가 풀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의 라틴 희극은 각급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 번안한 것이 학생극으로 상연되기도 했다. 같은 로마 시대 작가 세네카가 쓴 수사적·선정적 내용의 비극도 번역되어 극 구성방법과 수사적 문체가 모방되었다. 한편 중세의 연극 전통 역시 강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런 토착 연극은 주로 프랑스식 소극(farce), 교회 설교조의 도덕극(morality play), 광대와 배우의 재치연기를 이용한 막간극(interlude) 등을 동화·흡수한 것이다. 그의 직접적인 선배 극작가는 대부분 '대학 재사'(university wits)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이 쓴 극은 그 구성이 옥스퍼드대학교·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배웠던 그대로 짜여 있기 보다는 토착적·대중적 이야기 형식을 이용해 발전시킨 것이었다.
언어의 변화
이 시기는 영어가 발달하면서 많은 변화를 보인 때였다.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가 옛말을 되살리는 데 앞장섰으며 교사, 시인, 세련된 궁정인, 해외여행자 등이 프랑스·이탈리아 문학과 로마 고전에서 많은 것을 도입했다. 또한 인쇄본 책의 보급에 힘입어 문법과 어휘면에서 표준화가 진행되었다. 셰익스피어는 해외 여행을 다녀온 흔적이 없지만, 초기작품을 살펴보면 극작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어왔는가를 알 수 있다. 〈실수연발 The Comedy of Errors〉은 플라우투스의 충실한 번안극이다.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Titus Andronicus〉 는 언어의 수사적 표현과 사건을 로마의 시인 오비드와 비극작가 세네카에게서 빌려왔으며 〈헨리 6세 Henry Ⅵ〉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여읜 아들이 슬퍼하는 장면을 중세 도덕극에서 차용했다. 또한 〈리처드 3세 Richard Ⅲ〉·〈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은 극의 정서와 인물의 성격묘사를 선배 말로에게서, 〈말괄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는 성격묘사와 연극양식을 이탈리아 서민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도입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강점은 이러한 영향을 다방면으로 적극 받아들이되 그것을 잘 소화하여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는 데 있었다. 그 점에서 그는 천재였다.
극장조건
그가 관여했던 극단이 운영한 글로브 극장은 당시의 시중극장이 다 그렇듯 청교도를 제외한 모든 계층의 시민이 오후의 구경거리를 위해 찾아왔던 매우 대중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의 극단은 궁정에 들어가 왕과 귀족 앞에서 공연하는 일도 있었고, 여름이면 지방순회를 하거나 때로는 대학, 사법연수원, 큰 저택 등에서도 공연했다. 연극에 대한 인기가 커서 새 작품에 대한 요청이 많아 끊임없이 레퍼토리를 개발해야 했으므로 극작가는 바쁜 직업이었다. 한 예로 1613년초 그가 소속한 극단은 14편의 극을 번갈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일반극장뿐만 아니라 더욱 세련된 관객을 위한 실내공연장이 있어 별도로 운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극장은 시중 일반극장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면 지붕이 뚫린 반옥외극장의 형태를 취하고 무대는 개방형이어서 앞면의 막이 없으며 장치·조명 등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기자에게는 각자 맡은 부분의 대사밖에 주지 않았으며 여성 역은 모두 변성기 이전의 소년 배우가 했다. 이런 여러 가지 무대조건은 그의 극형식이나 내용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실천적 극작가로서 소속극단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기 때문에 그는 무대조건과 배우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작품을 쓴 사람이기도 했다.
작품 창작연도
많은 학문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창작연도를 확정짓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작품의 연도순서를 정하는 데는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셰익스피어는 마지막 3, 4년을 빼놓고 매년 2편씩 꾸준히 써나간 극작가였다. 극작만을 위해 헌신한 일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작 외에도 3편의 시집이 남아 있는데 그중 이야기체 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Venus and Adonis〉·〈루크리스의 겁탈 The Rape of Lucrece〉은 각기 1592년과 1593~94년, 즉 역병 때문에 런던에서 공연이 중단된 시기에 나온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시집 〈소네트집 Sonnets〉은 출판이 1609년에 이루어졌을 뿐 총 154편의 이 14행의 연시(소네트)가 어느 시기에 씌어졌는지 분명하지 않다. 넓게 잡아 1593~1600년 사이라는 것이 대체적 추정이다
초기 시집과 소네트집
〈비너스와 아도니스〉·〈루크리스의 겁탈〉은 셰익스피어가 시인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로마 고전설화에서 소재를 얻어와 젊은 시인의 숨은 자질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였고 독자의 인기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가 1602년까지 7판, 1640년까지 16판을 거듭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 시집은 당시의 문학 취향인 수사적 언어표현과 소재가 갖는 농밀한 관능성이 싱싱한 시적 상상력의 힘을 얻어 성공했다. 〈루크리스의 겁탈〉은 전작과 대조적으로 진지함과 중후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지나친 수사적 언어사용이 주제의 심각성을 잘 지탱하지 못해 전작만큼 인기는 얻지 못했다. 〈소네트집〉은 창작연도, 수록된 14행시의 배열순서, 개작·가필 여부 등 많은 논란이 있는 작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 담긴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시인 자신의 자전적 성격을 띤 것인지 가공의 이야기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수수께끼를 던져준다. 이 때문에 희곡을 포함한 모든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작가의 사생활에 관한 실마리를 찾고자 많은 학자와 연구가들이 이 시집 연구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시인과 그의 후원자인 젊은 귀족(사우샘프턴 백작으로 추정) 및 '흑발의 여인'이라 불리는 미모의 여성, 이 세 사람 사이의 우정·사랑·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 이 시집은 실의·불안·소원·자책·좌절 등의 인간적 경험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시간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짙게 깔려 있으며 거기에 맞서 시의 영원성이 강조된다. 19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면서 이 시집은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초기극
첫 작품 성과로서 기록되는 〈헨리 6세〉 3부작은 중세 후기의 영국 왕조사 중 가장 파란많았던 요크와 랭커스터 두 가문 사이의 흔히 '장미전쟁'이라 불리는 처참한 왕위쟁탈전을 극화한 사극이다. 유일한 3부작이고 산만한 구성, 거친 표현, 극적 구심점의 결여 등 초심자의 서투름이 눈에 띄지만 신인 극작가의 참신한 출현을 알리기에는 충분하다. 이 작품과 바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담은 〈리처드 3세〉는 전작과 달리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어 계략·음모·반역·살인 등에 신들린 듯한 극악무도한 인물상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극이다. 주목할 것은 이 악인의 성격과 행동에 희극적 여운을 남긴 점인데 젊은 작가의 성장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역사극과 더불어 초기극의 큰 몫은 희극이 차지한다. 그 첫번째 〈실수연발〉은 로마극을 번안한 '사람 잘못 알기 희극'으로서, 따로 떨어져 자라나 서로를 모르는 쌍둥이 형제를 둘러싼 희극적 혼란을 다룬 작품이다. 원작에 없는 쌍둥이 하인을 배치함으로써 의외성은 더해지고 사건이 복잡해지지만 구성 자체는 단순하고 성격의 내면화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유쾌한 희극이다. 활달한 남성 페트루키오가 고집센 여자 카타리나를 뒤쫓아다니다 결혼에 성공하나 그 즉시 아내를 멋지게 길들여버린다는 본 줄거리에다 루첸티오라는 사나이가 가정교사로 변장하여 카타리나의 여동생 비안카에 접근한 끝에 경쟁자를 물리치고 결혼에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전형적 이탈리아식 희극으로서 사랑·계략·결혼으로 이어지는 그의 상당수 희극의 기원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극중극(劇中劇)의 형식을 마련해놓은 것이 이 극의 특징이다. 영국의 시골뜨기 땜장이가 길에서 만취된 채 끌려가 자기도 모르게 즉석귀족이 되어 어느 큰 저택에서 연극을 구경하게 된다. 거기서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연극이 시작된다는 극중극 형식은 이 작가가 앞으로 여러 작품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게 되는 매우 흥미있는 수법의 하나이다.
〈베로나의 두 신사〉 역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랑·우정, 그것을 짓밟는 계략·음모가 줄거리의 전개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결말은 화해와 축복으로 끝난다는 이 시기 희극의 정석을 밟고 있다. 두 청년 발렌타인과 푸로티어스,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두 여인 실비아와 줄리아, 이들 사이에는 적절한 대비가 성립된다. 발렌타인이 친구에게 갖는 '이상적' 우정의 관계는 이 극을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으로 만들고 있으나 결말부분에 가서 이루어지는 갑작스런 화해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러나 뒤에 나타나는 낭만희극의 여러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극은 주목할 만하다.
〈사랑의 헛수고〉는 4명의 젊은이(왕과 신하들)가 학문의 길을 닦고자 여자를 멀리하기로 맹세하지만 그곳을 찾아온 프랑스의 공주와 시녀(역시 4명)를 보는 순간 그 맹세를 저버리고 구혼한다는 내용이다. 이 큰 줄거리 주변에 과장된 희극기질의 인물을 여러 명 배치함으로써 정통희극의 재미를 보태준다. 그러나 지나친 수사적 문체 때문에 작위적인 분위기가 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초기 작품에는 이밖에도 2편의 비극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티투스 안드로니쿠스〉는 당시 크게 유행한 '복수비극'에 속하는 작품이다. 옛 로마의 이야기를 소재로 복수비극의 원조인 세네카의 비극을 모방했다는 이 극은 살인·잔학·광란·복수 등을 주된 구성요소로 한다. 극의 잔인함에 대해 도덕적 빈축이 가해졌으나 그것이 당시 관객의 취향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의 초기극 중 기념비적 작품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숨은 자질과 잠재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로미오(16세)와 줄리엣(14세)의 순수한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지만 한 가지 강조해둘 점은 '비련'이 주제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랑에 못지않게 미움(두 집안 사이의 이유없는 해묵은 반목)이 강조되며 주인공들의 죽음(거의 우발적인 듯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담보로 해서 비로소 양가의 화해, 나아가 그 지역 전체의 평온을 되찾는다는 주제를 무시할 수 없다. 이 극에서는 젊음에 대립되는 죽음이 빛과 어둠의 대조처럼 선명한 윤곽으로 드러나 있다. 늙음(증오·대립·어둠)과 짝지어져야 할 죽음이 오히려 젊음을 언제나 단짝으로 삼는다는 것은 커다란 비극적 아이러니이다. 뒤의 4대 비극과 달리 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색은 짙은 서정성이다. 그 서정성에 힘입어 사랑이 미움보다, 정열이 현실적 계산보다 더 순수하고 값어치가 있다는 인간본성에 대한 작가의 통찰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기 희극
1596~1602년에 씌어진 6편의 희극은 여러 모로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가상'의 나라를 무대로 하고 있다. 〈한여름밤의 꿈〉은 아테네, 〈베니스의 상인〉은 벨몬트, 〈헛소동〉은 메시나, 〈뜻대로 하세요〉는 아든의 숲, 〈십이야〉는 일리리아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작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곳을 무대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 역시 상상과 가공의 베일을 덮어쓰고 있다. 사랑의 중병을 앓거나 변장한 인물, 흉칙한 계략을 꾸미는 인물, 똑똑한 어릿광대, 아름다움과 진실성을 겸비한 연인, 이런 등장인물들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래서 이 시기 희곡을 묶어 '낭만희극'이라고 부른다.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은 당시의 영국을 무대로 한 현실적 작품이란 점과 사극 〈헨리 4세〉에 나오는 유쾌한 기사 폴스탑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특수성으로 예외에 속한다. 〈한여름밤의 꿈〉은 창작시기, 작품내용으로 보아 초기극을 중기극으로 잇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극에서 작가는 각기 다른 세 그룹(아테네의 귀족, 초자연적 요정, 촌뜨기 장인들)의 인물을 아테네의 숲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통해 구성의 통일뿐 아니라 주제의 일관성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 극은 사랑의 어리석음, 방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정열, 그 정열과 사물의 질서 사이의 갈등을 다루었다. 더 일반화시켜 말하면 환각과 현실 또는 예술과 상상력 사이의 관계를 말해주는 은유, 삶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심미적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춤처럼 우아하고 서양장기판처럼 질서정연하게 엮여 있는 작품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사랑과 우정에 관한 낭만희극적 요소가 짙은 작품이다. 3쌍의 남녀가 달밤에 정원에서 결혼의 즐거움을 피력하는 장면으로 끝맺게 되지만 작가의 뛰어난 솜씨로 창조된 유대 상인 샤일록이 등장해서 희극세계가 붕괴될 듯한 위기를 맞는다. 악역을 맡은 이 특대형 인물은 무대에 나타날 때 부당하게 박해받는 인간의 대변자로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제목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을 지칭하지 않으며 인육재판에서 그가 패배하여 퇴장하는 4막에서 극은 끝나지 않는다. 〈헛소동〉은 큐피드(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사랑을 관장하는 심부름꾼)의 화살이 빗나가 사랑하는 당사자들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속임수·변장, 사람 잘못 알기 등 이 시기 희극에 공통된 수법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작품이다. 그런 뜻에서 이 극은 〈뜻대로 하세요〉·〈십이야〉 등과 공통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주된 줄거리의 효과는 잘 살리지 못한 대신 곁줄거리를 이루는 두 남녀(베네딕과 비어트리스) 사이의 불꽃튀기는 기지문답과 사랑의 결실이 〈헛소동〉의 더 큰 매력이 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뜻대로 하세요〉의 여주인공 로잘린드는 훨씬 더 매력있는 인물이다. 일찍이 아우의 계략으로 영토를 빼앗기고 쫓겨난 공작의 딸인 그녀가 궁정을 떠나 아든의 숲을 찾아가는 데서 시작되는 이 극은 각기 다른 4쌍의 사랑과 결합, 얽히고 설키는 과정, 놀이로서 연극행위, 변장과 사람 잘못 알기 등 즐거움의 요소를 두루 담고 있다. 이야기 줄거리로 볼 때 느슨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전체적 통일에는 성공한 작품이다. 여기서는 궁정(음모·술수)과 전원(평화·이상), 운명과 자연 사이의 대립을 읽을 수 있고 사랑 구하기 놀이를 통해 기존 낭만극에 대한 풍자도 찾아낼 수 있다. 재치있는 어릿광대 터치스턴과 특히 우울한 회의주의자 재이큐스의 등장은 이채롭다.
〈십이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낭만희극의 집대성이라는 평을 받는다. 오시노 공작은 올리비아를, 올리비아는 남장한 바이올라를, 바이올라는 그녀가 섬기는 오시노 공작을 사랑하는 술래잡기식 순환구조가 낭만희극적 골격을 형성하고, 거기에다 바이올라의 쌍둥이 오빠를 설정하는 등 이 작품 역시 변장, 사람 잘못 알기, 속임수와 같은 수법을 두루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낱 외면적 이야기 전개의 재미로만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의 자기기만(내면화된 속임수)과 그것을 치유해주는 사랑의 진실성을 통해 깊이와 설득력있는 끝마무리를 이루고 있다. 이 극을 한층 더 살찌워주는 것으로서 올리비아 집안의 여러 인물이 벌이는 곁줄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희극세계를 다양하게 수놓으면서 동시에 극 전체의 주제적 통일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매우 균형잡힌 희극이다. 여기서 불협화음을 내는 사람인 집사 말볼리오는 그 희극성과 비희극성의 혼합으로 해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영국 사극
영국사에서 소재를 얻어온 역사극을 별도로 묶는 관습은 이미 그의 작품전집 초판 때 시작된 것이다. 홀린셰드의 〈연대기 Chronicles〉(1587)에 주로 의거한 영국 사극은 그중 8편을 2편의 4부연작으로 나눌 수 있다. '장미전쟁'을 소재로 한 4편의 기존 초기극뿐만 아니라 그 직전의 역사 이야기를 극화한 〈리처드 2세〉, 〈헨리 4세〉 1·2부, 〈헨리 5세〉 역시 한데 묶어 4부연작으로 간주된다. 이 작품들은 필력이 왕성한 1595년 이후의 시기에 씌어진 것들이어서 그의 상위작품군에 속한다. 이밖에 〈존 왕〉·〈헨리 8세〉가 있으나 높은 평가는 받지 못한다.
영국 사극에 일관된 그의 입장은 전통적·보수적 역사관이다. 홀린셰드 원작의 영향도 크지만 그 점은 당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이자 작가의 기본입장이었다. 그는 왕권은 신이 베풀어준 것이며, 국가의 통합과 질서의 존중은 절대적이고 반역과 불화는 악이요, 혈연의 유대는 강해야 하고, 전쟁의 비참함·잔학성은 마땅히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하느님의 가호를 얻어 순종하는 자는 보호받을 것이로되 악은 반드시 벌받을 수밖에 없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영국은 튜더 왕조(엘리자베스 시대)의 정치적 안정을 최상으로 여겨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 사극이 무미건조한 교훈극이나 계몽극이 아니라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리처드 2세〉는 귀족들의 불화와 반목을 다스리는 데 실패한 우유부단한 주인공 왕의 비참한 몰락과 그를 대신해서 들어선 유능한 볼링브룩(뒤의 헨리 4세)의 이야기를 무대화한 것이지만 초기작 〈리처드 3세〉와 비교해볼 때 극적 처리의 유연함이나 인물의 내면화에서 많은 진전을 엿볼 수 있다.
볼링브룩은 선왕에 비하여 유능한 군주이지만 왕위 찬탈자임을 부인할 도리가 없다. 낙인이 찍힌 채 통치자가 된 그에게 다시금 모반하는 귀족세력이 대두한다. 그래서 〈헨리 4세〉 1·2부 역시 역모와 내란을 다룬 극이지만 그중 특히 제1부가 뛰어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왕과 귀족들의 다툼보다 왕자 핼(뒤의 헨리 5세)이 시중의 무뢰한 폴스탑과 벌이는 난장판이 훨씬 돋보이기 때문이다. 비곗덩어리·주정뱅이·허풍선이인 늙은 기사 폴스탑은 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 중 으뜸가는 인물이다. 능청맞기 한량없는 재치와 해학도 일품이려니와 그 활력은 마치 삶의 에너지의 고도의 합성체 같고 모순은 순치(馴致)되지 않은 인간성의 발로처럼 느껴진다. 그가 고대·중세를 꾸준히 이어온 희극적 인간형의 집대성이라는 점도 지적할 만하지만, 이 극에서 폴스탑의 성격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다. 주제면에서 볼 때 그와 왕자를 둘러싼 이야기가 왕권과 모반, 용맹과 비겁, 명예와 현실주의 등 극 전체 주제의 뛰어난 패러디로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왕자 핼에게는 아버지 왕이 가졌던 왕위를 찬탈했다는 죄의식이 없다. 따라서 그를 주인공으로 한 〈헨리 5세〉에서 작가는 마음놓고 이 젊고 용맹한 군주를 '명군'으로 받들 수 있었다. 그는 왕위를 계승하는 즉시 젊을 때 방탕의 상대였던 폴스탑과 그 일당을 물리치는 현실적 결단을 보여주며 외세(프랑스)를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하는 '영웅적' 면모를 보여준다. 튜더 사관(史觀)의 충실한 신봉자인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 그려온 부정적 통치자와 달리 그는 이상적 군주였다. 이 점에서 〈헨리 5세〉만큼 '애국적'인 극도 드물다.
로마 사극
역사적 사실을 다루었지만 로마사에서 소재를 얻어온 3편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코리올라누스〉는 영국 사극과는 별도로 다루어진다. 소재뿐 아니라 창작시기가 4대비극을 쓴 때와 이어져 있어 작품 성격도 뚜렷이 구분된다. 이 장르에서 작가가 의존한 원전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Bioi paralleloi〉(1579, 영역 〈The Lives of the noble Grecians and Romans〉)으로서 당시 널리 읽힌 고전 명작이고 그 번역문체도 격조높은 것으로 유명했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와 그를 시해하는 공화주의자 브루투스의 대립은 명쾌하기 짝이 없다. 대립의 구도는 극 중간에서 시저가 사라진 뒤에도 안토니와의 대결로 이어진다. 로마 시대의 고전 조각을 방불케 하는 명쾌함이다. 그러나 이상주의(브루투스)와 현실주의(안토니, 캐시우스)의 대립이 선명도를 더해가는 만큼 브루투스의 비극성은 깊이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로마 사극이지만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뉘앙스를 많이 달리한다. 사용된 문체만 하더라도 여기서는 훨씬 더 역동적, 육감적이며 상상력에 차 있다. 두 주인공이 권력과 사랑의 주제에 관해서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온세계를 뒤덮는 듯하여 정치·군사 면에서 현실적 패배조차 그들을 왜소화시키기에 무력할 정도이다. 〈코리올라누스〉는 명성높은 장군이지만 비극의 주인공으로서는 자격이 모자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권력에 대한 의지와 그것이 빚어내는 힘의 충돌에 극의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줄리어스 시저〉식 대립구도(자유 대 압제)는 찾기 힘들고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 넘쳐흐르는 시적 풍요로움도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스스로를 정치적 패배의 구렁텅이로 몰고간 외톨이 '영웅'의 일그러진 모습뿐이다. 이 시기에 작가는 이미 비극세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4대 비극
1600~06년에 씌어진 4편의 비극이 그의 최고걸작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며 이 4편의 작품이 각기 완성된 독자적 비극세계를 간직하고 있다. 〈햄릿〉은 그의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연극으로서 불후의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이 문학사상 드물게 신화적 존재가 되어버린 드문 경우에 속한다. 20세기의 부정적인 비평가들의 입장을 따른다 하더라도 극의 발생과 유래로 보아 조잡함이 가시지 못한 그 복수비극식 플롯에서 〈햄릿〉의 심리극적 일관성을 찾는다는 것은 위험하고 무의미한 작업이다. 그대신 작가가 추구한 것으로 평가되는 점은 훨씬 더 다양하다. 주인공이 어버이왕을 몰래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숙부인 현왕을 대하는 데 있어 작가는 단순한 복수의 차원을 넘어선 보편적 드라마로 승격시켰고 복수를 축으로 하되 상황 전체를 정서적 긴장으로 가득 메웠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 부여에서도 타고난 정신의 유연성을 시대적 회의정신과 결합시켜 사색과 행동 사이에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솜씨를 과시하고 있다. 거기에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대하는 인물에 따라 수시로 변신할 줄 아는 주인공의 '배우적' 능력까지 합쳐서 다른 어느 작품에서도 찾기 어려운 이 극만의 매력이 부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슴 쓰린 온갖 심뇌와 육체가 받는 오만 가지 고통"(제3독백), 즉 실존적 삶의 조건에 대한 작가의 비극적 통찰에서 우리는 이 작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오셀로〉를 흔히 질투의 극이라고 하지만, 이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용병대장인 무어인(북아프리카의 흑인) 장군 오셀로가 부하인 이아고의 간계에 넘어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한 베네치아 귀족 출신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는 큰 줄거리에는 분명히 아내가 부하 캐시오와 정을 통했다고 믿는 데서 오는 질투의 감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주인공을 가슴 깊이 움직이는 힘이 인간적·도덕적 가치(사랑·신의·순결 등)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신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또한 작품 전체에 흐르는 고양된 낭만적 정서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극적 긴장이 주인공의 거의 무방비상태라 할 영혼의 순수함과 악의 동기가 복잡하고 모호한 이아고 사이의 대립에서 빚어진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리어 왕〉처럼 인간이 선과 악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작품도 별로 없다. 주인공은 자기 왕국을 분배하면서 아무런 심사숙고 없이 악한 두 딸에게 나라를 양분해주고 선한 막내딸은 추방해버린다. 이런 우화적 시작은 이 극을 매우 단순한 내용으로 착각하도록 오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 전개될 주인공 리어의 극심한 고통과 수난, 그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새로운 인간을 위한 작가의 사려깊은 전략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극이 지니는 정신적 무게를 알게 된다. 어리석은 판단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 미쳐버린 리어 왕, 미친 인간으로 가장한 에드가, 미친 상태가 정상인 어릿광대 등의 광기만이 터득할 수 있는 삶의 숨겨진 진실, 현실(일상)의 눈을 빼앗김으로써 얻어지는 올바른 시력(비극적 비전)의 회복 등은 이 극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큰 가르침이다. 여기에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의 숙명적 존재성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깔려 있다. 거의 절망적인 극의 결말을 포함해서 이 작품의 세계는 묵시록적 공포를 일으킨다. 이 극이 20세기 후반의 현대인에게 크게 호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맥베스〉는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짧은 작품이다. 군더더기없는 탄탄한 짜임새와 전편에 일관되게 흐르는 긴장은 다른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특색이다. 용맹한 장군이자 야심가인 주인공이 아내의 사주를 받아 자기가 섬기는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다는 이야기는 정치극·역사극의 틀에도 합당한 것이다. 초점을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에 맞추어 내면화시켜 놓은 점이 매우 다르다. 이 극에서 언제나 제기되는 문제는 맥베스와 같은 극악무도한 인간을 어떻게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푸는 데 작가는 다음과 같은 배려를 해놓고 있다. 첫째, 주인공 맥베스를 인간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을 야심과 욕망을 실천에 옮기는 능력에 못지않게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치열한 상상력의 소유자로 만들어놓았다. 이 공포와 파멸의 상상력은 그를 끔찍한 살인자(가해자)이자 동시에 자신에 의한 '피해자'이게 한다. 역설적으로 그는 왕을 시해하고자 했을 때 이미 운명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둘째, 이 극이 지닌 시의 특질이다. 간결하기 이를 데 없으나 고도로 응축된 시적 표현은 일체의 수사를 거부하면서 이 끔찍스런 영혼의 내면을 비춰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어두운 희극
비극과 겹치는 시기에 쓴 3편의 희극은 그 이전의 낭만희극과 성격을 매우 달리한다. 그래서 흔히 어두운 희극(dark comedies) 또는 문제희극이라고 부른다.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는 당시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극이다. 공격하는 그리스군과 방어하는 트로이측의 유명한 장수들이 여러 명 등장하고 싸움의 경과에 관한 장면도 있으나 극의 중심은 오히려 트로이 왕자 트로일루스와 미녀 크레시다 사이의 사랑에 있다. 그러나 다루는 방식은 결합과 화해가 아니라 불화·좌절·계략·배반 쪽으로 중심을 옮겨놓고 있다. 크레시다는 트로일루스에게 사랑의 맹세를 다하다가도 사정이 바뀌어 그리스 측에 건너가자 그를 쉽게 배반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부정한 여자인가? 그리고 그리스군의 군사작전이 현실적 계산(이성)에 바탕을 둔 데 반하여 트로이측은 명예(이상)를 존중한다. 결과는 트로이의 패배로 돌아가지만 작가는 과연 어느 쪽에 동조한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이 이 극의 특징이다. 희극이라지만 전체를 지배하는 주조는 냉소적 풍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는 아내를 피해 달아나는 남편과 그를 잡으려고 온갖 노력과 계략을 펴는 아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마지막을 두 사람의 재결합으로 매듭짓고 있으나 그 과정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약간 황당무계한 줄거리와 고르지 못한 문체로 낭만성이 결여된 사랑의 희극이 되고 말았다.
〈법에는 법으로〉는 제목을 성서에서 따왔다. 그래서 당연히 인간의 행동에 대한 법적·도덕적 판단의 문제를 내포한다. 자리를 떠난 공작을 대신해 엄격한 법과 질서를 표방하고 나선 집권자 안젤로와 그에게 처형될 운명에 놓인 클로디오, 그 클로디오를 구하는 대가로서 안젤로에게 정조를 바칠 것을 강요당하는 누이 이자벨라, 그 과정을 몰래 살피다가 결국 변장을 벗고 수습에 나서는 공작 등이 등장하는데 결말은 희극답게 사필귀정으로 끝나는 듯이 보이나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은 작품이다. 이 극에는 정의와 자비, 도덕적 문란과 법의 남용, 자기 중심적 교만(위선)과 도덕성(순결) 등 대립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나 편의적인 결말 처리와 더불어 많은 모호함이 풀리지 않고 있다.
후기극
1608~12년에 씌어진 작품은 〈페리클레스〉·〈심벨린〉·〈겨울 이야기〉·〈템페스트〉·〈헨리 8세〉 등 5편이지만 끝작품(아마 다른 극작가와 합작)을 뺀 4편은 그 희비극 형식에 견주어 '로맨스'라 불리기도 한다. 공통된 특색으로서 일상을 크게 벗어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며, 극적 상황이 비극적·애상적 정서를 많이 담고 있으나, 결국은 여러 어려움을 갑자기 해소함으로써 화해(또는 참회)와 용서로 끝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색은 과거에 생겨난 상처를 사랑으로 씻어주는 젊은 세대(희망의 소생)에 대한 작가의 믿음이다.
〈페리클레스〉는 바로 앞선 작품 〈코리올라누스〉와는 달리 느슨하게 구성된 극으로 짜임새가 없으며 고대의 이야기를 다루되 플루타르코스와 같은 역사가의 눈이 아니라 그리스 후기 로맨스 문학을 연상하게 하는 허구성을 추구하고 있다.
〈심벨린〉의 주된 설화, 즉 아내의 정조에 대해 남편이 내기를 건다는 이야기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얻어온 것이다. 극의 장소를 옛 영국으로 바꾸어놓았지만 여기서도 그리스도교 이전의 로마 세계가 바닥에 깔려 있다. 플롯을 비롯하여 극의 시간·장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그 모든 것(24가지)이 마지막 장면에서 한꺼번에 풀리고 만다.
〈겨울 이야기〉 역시 이야기 진행에서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극 중간에서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경과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질투심 많은 남편이 아내를 의심한 나머지 그녀를 슬픔과 '죽음'으로 몰고간 끝에 결국 쓰라린 회개를 하게 된다. 그러나 끝장면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내의 조각상이 산 사람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연극적 구경거리마저 준비되어 있는 가운데 용서와 화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소개될 뿐 플롯 전체에 대한 관객의 정서적 몰입이 차단되어 있는 것은 이 극이 마치 옛 이야기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템페스트〉는 이 작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걸작이다. 당시 새롭게 유행한 가면가무극 요소를 다양하게 도입하고, 초자연적 현상을 무대의 구경거리로서 보여주며 소극에 가까운 희극 장면이 등장하나 기본적으로 진지한 연극이다. 외계와 차단된 외딴 섬을 무대로 마법으로 그곳을 지배하는 늙은 주인공 프로스페로를 중심으로 극은 진행되지만 주된 관심사는 먼 과거에 일어났던 섬 바깥의 이야기(정치적 모략, 배반, 권력의 찬탈)이다. 자신이 통치하던 나라를 빼앗은 그때의 악당 일행을 태운 배가 주인공의 마법에 의해 이 섬 가까이에서 난파하자 복수의 기회는 다가온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용서하는 그의 관용, 거기 얽힌 젊은 남녀의 사랑을 통한 화해, 주인공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요정(선)과 미개인(악)의 해방 등을 통해 이 극은 로맨스의 세계를 완결짓고 현실로 돌아오는 듯이 보인다. "이 하찮은 인생이란 시작과 끝남이 모두 잠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프로스페로의 토로는 다채로운 예술적 마법(시적 상상력, 창조정신)과 작별하고 막 은퇴하려는 작가의 심경으로 바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명성과 영향
셰익스피어가 문학적 명성과 무대에서 인기를 얻게 되기까지는 시대적 기복이 많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말 신고전주의 문학이론이 주종을 이루던 시기에는 드라이든이나 존슨 박사 같은 당대 최고 문인에게 찬사를 받았지만 작품의 진가가 충분히 인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극단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곧잘 개작·번안되어 인기있는 극작가였으나 올바르게 이해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가 신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초 낭만주의 문학이 대두되면서부터이다. 이미 18세기말 독일에서는 괴테·실러·슐레겔 등 최고의 문인·비평가들에게 깊이있는 평가를 받은 바 있고 영국은 그 뒤를 좇은 셈이었다. 어쨌든 그의 진가가 올바르게 인식되고 극단적인 셰익스피어 숭배(bardolatry)에까지 치달은 것이 이때부터이다. 대체로 작품의 시적 우수성이 찬양된 반면 극장쪽에서는 배우예술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 샀다. 따라서 시인·극작가로서 양면이 제대로 이해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학문·비평·연극 등 다방면의 이해가 골고루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그 성과는 전에 없이 풍성했고 학자·비평가·연극관계자(연출가·배우) 사이의 교류도 빈번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동시대적 안목으로 셰익스피어를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져 제1차 세계대전 이전과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셰익스피어 이해에는 많은 차이를 볼 수 있다. 이 점은 비평동향과 공연방식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와 같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화' 경향과 함께 그에 대한 세계화 추세도 만만치 않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그의 작품은 번역·연구·공연되며 그 숫자 또한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에서 셰익스피어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20년대 초였다. 문학편집자이자 연극인인 현철(玄哲)이 번역한 〈햄릿〉(1923)이 그 효시였으나, 그뒤 8·15해방 때까지 그의 작품 번역과 공연은 저조했다. 해방 후 번역과 공연이 점차 활발해져서 한국 최초로 극단 신협(新協)이 〈햄릿〉을 상연(1951)한 후 1964년 그의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셰익스피어 축제까지 열리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에 한국 최초로 셰익스피어 전집이 번역 출판되었는데, 하나는 1963년에 결성된 한국 셰익스피어 협회가 중심이 되어 편찬한 것(정음사 간행)이고 또 하나는 김재남(金在枏)이 개인 전역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구업적과 공연실적은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Macropaedia| 呂石基 참조집필 (출처 : 한국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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