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석이(石耳) 이야기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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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石耳) 이야기

권두인 지음

박소동 번역

 

석이(石耳)는 나물 중에서도 맛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석이는 반드시 높은 산 깊은 골짜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천길 깎아지른 벼랑에 자란다. 석이를 따는 자는 가는 노끈을 합쳐서 밧줄을 만들어 암벽 위에다 붙들어 맨 뒤 마치 그네줄처럼 밑으로 늘어뜨리는데 두 줄 사이에 사다리처럼 가로로 끈을 매어 그곳을 발로 딛고 내려가 암벽을 따라 돌아가면서 석이를 딴다.

그 모습이 마치 개미나 이가 붙어 있는 듯한데 재빠르기가 마치 원숭이 같으니 이는 목숨을 내맡긴 자가 아니면 해낼 수가 없는 일이다. 석이를 다 따고 나면 다시 밧줄을 타고 기어올라가는데 위태롭기 그지없다. 만일 밧줄이 바위에 닳아져서 끊어지거나 잘못하여 실족을 할 경우 천 길 만 길 골짜기 밑으로 떨어져 몸은 가루가 될 판이다. 사실 그렇게 죽는 사람이 종종 있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석이를 따다가 팔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고 관가에 바치면 부역(賦役)을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니 아, 슬픈 일이다.

내가 영춘(永春)의 지방관으로 와보니 영춘은 심산협곡에 있는 고을이라 백성들에게 세금을 받을 때 이 석이를 가장 우대하여 받아서 음식상을 사치롭게 하는데 사용하거나 다른 고관들의 요구에 응하는 자본으로 삼고 있었다.

아, 이 물건이 비록 그다지 희귀하지는 않은 듯 하지만 이 물건을 따는 것이 그토록 위험스럽고 어려운 줄이야 그 누가 알겠는가. 이 일로 인하여 류(類)를 미루어 본다면 백성들을 괴롭히는 부역이 이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기록하여 스스로 거울삼고 또 세상의 목민관들을 깨우치고자 하는 바이다.

권두인(權斗寅 1643∼1719)

 

조선 숙종 때의 학자. 호는 하당(荷塘) . 설창(雪窓), 자는 춘경(春卿), 본관은 안동, 권벌(權벌)의 후손. 홍준형(洪浚亨)의 문인으로, 연이은 부모와 조부상(喪)을 만나 35세에 비로소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심하였다. 학행(學行)으로 효릉 참봉(孝陵參奉)이 되었다. 이후 장원서 별제와 사어를 역임하고 공조좌랑이 되어 사직하고 물러나 학문에 전념하며 만년을 보냈다. 안동의 동백서원(東栢書院)에 제향하였다. 이 글의 원 제목은 "석이설(石耳說)"로 {荷塘先生集} 卷三 雜著에 실려있다.

 

심화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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