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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石榴) / 발레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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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石榴) / 발레리

 

넘치는 알맹이들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

자신의 발견물로 터질 듯한

최고의 이마들을 보는 것 같구나!

 

너희가 견뎌 온 나날의 해가,

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으로 다져진 너희로 하여금

루비 간막이를 찢게 하였을 때,

 

껍질의 건조한 금빛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과즙의 빨간 보석들을 터뜨릴 때,

 

이 빛나는 파열은

내가 지녔던 영혼더러

자신의 은밀한 건축물을 꿈꾸게 한다.


요점 정리

작자 : 발레리(Valery)

갈래 : 서정시, 자유시

성격 : 상징적, 주지적, 관념적, 철학적, 예찬적

율격 : 내재율

특징 : 면밀한 관찰의 결과를 관념적인 세계로 연결하여 보여줌. 인간 예지의 성숙 과정이 상징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잘 나타나 있음.

어조 : 경건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

심상 : 상징적 심상, 시각적 심상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시간의 추이에 따라 시상을 전개한 추보식 구성

1연 : 석류의 성숙 - 무르익은 석류

2연 : 인내의 세월 - 성숙의 세월

3연 : 자기 발견과 인식 - 석류의 파열

4연 : 신의 섭리에 대한 유사성(類似性)

제재 : 석류

주제 : 석류를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 신의 섭리와 자아 인식

출전 : <매혹> (1992)

내용 연구

석류(石榴) : 맛이 달고 신 석류나무의 열매

파열(破裂) : 터져서 갈라지거나 깨뜨리어 가름

넘치는 알맹이들에 못 이겨 /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 : 석류 열매가 껍질을 깨뜨리고 벌어지는 순간을 노래한 것으로, 내적으로 성숙한 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드러나 있다.

자신의 발견물로 터질 듯한 / 최고의 이마들을 보는 것 같구나! : 내적 성숙으로 자신의 본질(최고의 이마들)을 드러냄을 영탄적으로 표현하였다.

너희가 견뎌 온 나날의 해가 - 루비 간막이를 찢게 하였을 때, : 그 내적 성숙과 파멸에는 오랜 인내의 시간과 함께 자기 극복의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시련에서 성숙에 이르기까지의 변모 과정에는 신의 섭리가 작용하였음을 다음 연에서 밝히고 있다.

껍질의 건조한 금빛이 - 과즙의 빨간 보석들을 터뜨릴 때, : 석류의 단단한 껍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깨어지게 되고 본질을 드러내놓게 된다. 견고한 껍질이 많은 시간의 흐름(인고의 과정)과 때의 적기(신의 섭리)를 맞아 자신의 본질(빨간 보석을 품은 석류)을 드러냄을 의미하고 있다.

이 빛나는 파열은 - 자신의 은밀한 건축물을 꿈꾸게 한다. : '빛나는 파열'이라는 표현에 이 시의 주제가 압축되어 있다.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고 자신의 본질을 구현하는 일에는 그만한 고통과 시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파열은 자아의 성숙을 가져다 주므로 '빛나는 파열'인 것이다.

이해와 감상

석류 열매가 성숙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자아의 인식과 섭리를 읽어 낸, 지성과 감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심상의 제시가 돋보인다.

이 작품은 면밀하게 관찰하여 쓴 시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관찰된 사물과 그 사물을 바라보는 자아의 유사성을 노래한 관념시이기도 하다. 제 1연에서는 이미 성숙의 단계에 들어선,반쯤 벌어진 석류 알갱이들을 보면서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넘치는 알맹이들'은 속이 꽉 들어찬 석류 알맹이들을 말하는데 내적인 성숙을 암시하고 있다. '못 이겨'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시적 자아의 깨달음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성숙의 결과 필연적으로 새로운 변신을 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사물과 자연의 이치를 말한다.

'최고의 이마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성숙의 결과, 혹은 새로운 단계는 매우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제 2연에서는 그러한 성숙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준다. '루비 간막이'는 석류의 속이 꽉 들어차면 자연적으로 벌어지는 석류 알맹이 사이의 막을 말한다. 그 막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석류는 '오만으로 다져진 너희'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힘으로, 오랜 나날들을 견뎌 온다. 제 3연으로 오면 견뎌 온 그 세월의 힘으로, 즉 자연의 섭리 에 따라 석류의 껍질이 파열되고 그 안에 드러나는 소중한 석류 알맹이들이 보석만큼 아름답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1연의 '단단한 석류들', 2연의 '루비'나 3연의 '금빛', 빨가 보석'에서 보듯 시적 화자에게 석류는 단단한 돌, 보석으로 비춰진다. 보석은 그 속성상 고밀도이고 함축적이어서 그 안에 매우 긴 세월과 가공, 연마의 노력을 담고 있다.

이렇게 비춰진 석류는 매우 귀중하고 순수한 인고의 열매인 것이다. 4연에서 시적 자아는 이러한 석류와 자아가 유사함을 발견하고 이 석류와 같은 건축물을 꿈꾸게 된다. 일찍이 발레리는 시의 창작을 매우 의식적인 작업으로 보았고 끊임없이 연습을 강조하였던 바 이 시의 제4연에 나오는 '은말한 건축물'은 영혼의 연마를 거쳐 탄생하는 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외적 관찰의 대상이었던 석류는 비로소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로 새로이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상2

주지적, 기교적인 성격이 강한 상징주의 시인 발레리는 이 시에서 아름다운 색채와 심상과 상징을 솜씨 있게 조화시켰다. 이 시에서 상징의 보조 관념으로 나타난 것은 석류이다. 익어 벌어지는 석류는 이 시에서 마음 속에 익어 가다가 어떤 계기를 맞아 영글어져 나오는 시상(詩想)이나 사상을 상징한다.

이 시에서 벌어져 버린 석류를 상징으로 결정(結晶)시킨 발레리의 솜씨는 '스스로의 발견에 파열된 / 고매한 이마들을 보는 듯!' 이란 시행들과 '이 눈부신 파열은 / 일찍이 내가 가졌던 어느 영혼의 / 은밀한 구조를 몽상케 한다.'란 시행들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보면 발레리 시의 매력은 미적인 것과 지적인 것의 긴밀한 제휴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이문규, 권오만 저 문학교과서)

그리고 이 시는 동양 한시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와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이 세계 속의 한 풍경을 이루는 석류를 관찰하는 단계를 보인다. 2연에서는 그 석류가 아픔을 견디면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을 포착하여 1연에 묘사된 석류에 새로운 의미를 추가한다. 3연은 발견의 순간이다. '껍질의 건조한 금빛'이 갑자기 '빨간 보석'을 터뜨리는 순간이야말로 이 시의 핵심적 장면이자, 극적인 전환의 계기이다. 4연에서는 비로소 시적 자아가 등장한다. 석류의 '빛나는 파열' 속에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석류가 파열된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보석을 만들어내듯, 인생 또한 시련 속에서 성숙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발레리의 시작(詩作) 태도를 암시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깊이 사고하여 선택된 이미지와 주제만이 지적(知的)인 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상3

성숙한 열매(내적 성숙)는 스스로의 힘을 가지며, 그 힘은 마침내 껍질(사고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생명을 터뜨린다는 자아의 인식과 동시에 신의 섭리를 노래한 작품이다. 발레리는 일찍이 시의 가치를 사과의 영양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사과를 먹을 때 맛과 향기와 색깔에 이끌려 먹지만, 먹다 보면 그 속에 스며 있는 영양분을 저절로 섭취하게 된다. 좋은 시도 그와 같아서 정서와 율조와 표현에 이끌려 읽다 보면 주제나 사상은 저절로 배어 들어 온다는 것이다. 석류 열매를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자아를 돌아보며, 더 나아가 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는 인간 예지의 성숙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는 이 작품이야말로 발레리의 말을 실감나게 한다.(출처 : 박경신외 저 문학교과서)

심화 자료

발레리와 순수시

발레리는 시적인 요소가 아닌 것이 모두 배제된 시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를 '순수시'라고 부른다. 이것은 시인이 최상의 상태에서만 도달할 수 있는 이상이다. 포와 보들레르와 말라르메의 제자인 그는 시의 목표가 타인에게 논리적 개념들을 전달하는 데 있다고 보지 않았다. 또한 발레리는 말을 사고의 전달에 적합한 의사 교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들을 암시력과 창조력에 따라 결합시켜 사용하였다. 독자의 자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의 내면에 자연보다 더 강력하게 비범한 활력과 감동을 촉발시키는 데 시인의 사명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노래이기보다는 삶에서 이끌어 낸 것이고, 항상 삶 그 자체처럼 애매한 것인 시는 여러 가지의 분위기가 압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초자연을 형상화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원초적인 것, 근원적인 것에까지 길을 트고 삶의 원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속에 숨은 우리 자신의 내면에 도달하는 일이다.

발레리와 장인 정신

발레리가 추구하려는 것은 장인으로서의 시인이다. 이미 말라르메가 그러했듯이 그는 어원에 가까운 뜻으로 어휘를 취급하고,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으며, 예상하지 않은 곳에 어휘를 배치하기도 한다. 무의식적인 동작에 예술의 바탕을 두는 초현실주의와는 반대로, 그는 임의적인 난해함과 계획적인 시구의 생략만을 인정한다. 그에게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는 것은 말로써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과 같고, 그것은 또한 자기를 형성한다는 것을 뜻한다. 시는 시인의 천재성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 의식적으로 갈고 닦는 연습 속에서 탄생한다. 이런 연습은 그것이 어려운 것일 때에만 비로소 효력이 있으며, 그렇게 때문에 시인은 매우 많은 구체적이고 복잡한 조건들에 고의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아름다운 작품이 태어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발레리(Paul Valery)

정식 이름은 Ambroise-Paul-Toussaint-Jules Valery. 1871. 10. 30 프랑스 세트~1945. 7. 20 파리.

프랑스의 시인·수필가·비평가로 그의 가장 훌륭한 시는 〈젊은 파르크 La Jeune Parque〉(1917)로 여겨지며, 이 작품에 뒤이어 〈구시첩(舊詩帖) 1890~1900 Album de vers anciens 1890~1900〉(1920)과 〈해변의 묘지 Le Cimetiere marin〉가 들어 있는 시집 〈매혹 Charmes ou poemes〉(1922)이 발표되었다. 그후 그는 수많은 논설과 가끔 문학을 주제로 한 글도 썼으며, 과학적 발견과 정치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발레리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 항구의 세관관리였다. 그는 몽펠리에에서 법률을 공부하는 한편 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내성적인 편이어서 친구가 별로 없었는데, 이 시기에 사귄 몇 명 되지 않는 친구로는 후에 철학교수가 된 귀스타브 푸르망, 작가인 피에르 루이, 앙드레 지드 등이 있다. 그가 초기에 우상으로 삼은 작가는 에드거 앨런 포와 J.-K. 위스망스, 스테판 말라르메였다. 그는 1891년에 말라르메를 소개받았고, 말라르메를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모임에 꾸준히 참가했다.

발레리는 1888~91년에 걸쳐 많은 시를 썼고, 그 중 몇 편은 상징파를 표방하는 잡지에 발표해 호평을 받았지만, 예술적 좌절감과 짝사랑에서 오는 절망감 때문에 1892년에는 감정에 몰두하기를 거부하고 '지성의 우상'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는 갖고 있던 책을 거의 다 처분해버렸고, 1894년부터 죽을 때까지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 동안 과학적 방법론과 의식 및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묵상에 잠겼으며, 자신의 단상(斷想)과 잠언들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나중에 유명한 〈노트 Cahiers〉로 출판되었다. 발레리가 새로 발견한 이상형은 만능 인간의 표본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법에 관한 서설 Introduction a la methode de Leonard de Vinci〉, 1895)와 그가 〈테스트 씨와의 저녁시간 La Soiree avec Monsieur Teste〉(1896)에서 스스로 창조한 '테스트 씨'(테스트란 프랑스어로 '머리'를 뜻함)였다. 테스트 씨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라는 2가지 가치밖에 모르는 비육신적인 지성인이다.

 

1897~1900년에 프랑스 육군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1900~22년(1900년 말라르메의 딸과 절친한 친구와 결혼했음)에는 프랑스 신문협회 이사인 에두아르 르베의 개인비서로 일했다. 그의 주요임무는 신문에 실린 주요사건 기사와 파리 증권거래소 소식을 르베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는 것이었는데, 이 덕분에 그는 시사문제에 정통한 시사 해설가가 되었다.

 

1912년 앙드레 지드가 그의 초기 작품들을 손질해 출판할 것을 채근하자 발레리는 고별시를 1편 쓰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작품이 〈젊은 파르크〉이다. 이 시는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파르카'들, 즉 인생의 3단계를 상징하는 운명의 세 여신 가운데 가장 젊은 여신이 의식에 눈뜨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발레리는 이 작품이 제기하는 기법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했기 때문에, 이 길고 상징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다. 1917년에 출판된 이 작품으로 그는 즉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프랑스 시인이라는 평판은 〈구시첩 1890~1900〉·〈매혹〉으로 확고해졌다. 〈매혹〉에는 그가 묻혀 있는 세트의 묘지를 배경으로 죽음에 대한 그의 유명한 명상을 펼친 시 〈해변의 묘지〉가 들어 있다.

 

발레리의 특이한 작품들은 모두 인간의 의식 속에서 명상하고자 하는 욕망과 행동하려는 의지가 빚어내는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법에 관한 서설〉·〈노트〉에서 정신의 무한한 잠재력과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행동의 결함을 되풀이해 대비시키고 있으며, 〈젊은 파르크〉에서는 젊은 운명의 여신이 새벽녘에 바닷가에서 평온한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생활의 고통과 쾌락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변의 묘지〉에서는 한낮에 바닷가에서 존재와 비존재,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에 대해 골몰히 생각한다. 그의 수많은 편지들은 그 자신의 생활 속에서 공적 생활의 의무와 고독에 대한 욕망이 빚어내는 갈등을 되풀이해 호소하고 있다.

 

발레리는 1922년부터는 더이상 중요한 시를 쓰지 않았지만 주요작가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누렸다. 그는 초기의 시로 명성을 확립했고, 지금도 그의 명성은 대부분 거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시를 쓰는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지만 시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문학적 창작이란 수학이나 과학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정신작용을 반영하는 거울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논설과 서문들은 대개 청탁을 받고 단시간에 써준 것이었지만, 그의 꾸준한 명상이 맺은 결과로서 놀랄 만큼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는 작가와 글쓰기, 철학자와 언어, 화가들, 춤, 건축 및 미술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모두 참신하고 활기차게 재검토하고 있다. 그는 교육과 정치 및 문화의 가치 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고, 젊은시절에 쓴 중국과 일본의 갈등을 나타낸 〈압록강 Le Yalou〉(1895)과 독일 침략의 위험을 그린 〈독일의 정복 La Conquete allemande〉(1897) 등 2편의 논설은 놀랄 만한 통찰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서구 문명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걱정스러운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인식은 볼테르에 대한 마지막 공개 강연(1944)에서도 나타난다.

 

1922년 르베가 죽은 뒤, 이미 은퇴해 있던 발레리는 저명인사가 되었다. 그의 학식과 예모 및 대화를 이끌어가는 눈부신 재능은 그를 사교계에서 환영받는 인물로 만들었다. 발레리는 현대 물리학과 수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광범위한 독서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드 브로글리 공(公) 모리스, 베른하르트 리만, 마이클 패러데이, 앨버트 아인슈타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같은 과학자나 수학자들의 연구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강연했고, 수많은 국가 행사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192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7년 니스에 있는 지중해대학 센터를 관리하는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937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든 자리인 시학 담당교수가 되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는 지적 문제에 몰두하는 것을 중시했고 시적 영감이라는 것을 가차없이 공격했기 때문에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의 불만을 샀지만, 발레리의 작품에는 그가 평생 동안 감각적 쾌락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증거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여성의 나체를 스케치한 장면들(〈목욕하는 음녀 Luxurieuse au bain〉·〈잠자는 여인 La Dormeuse〉·〈뱀의 소묘 Ebauche d'un serpent〉에 나오는 이브의 모습)이 보여주는 관능, 연인들이 포옹하는 장면들(〈해변의 묘지〉·〈나르시스 단장 Fragments du Narcisse〉·〈거짓 죽음 La Fausse Morte〉)이나 그가 지중해 연안에서 어린시절을 보낼 때부터 사랑한 해와 하늘과 바다를 묘사할 때의 따뜻한 눈길 등은 발레리를 그가 창조한 무미건조한 테스트 씨와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산문과 시의 뚜렷한 특징은 관능이다. 가장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을 때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산문은 경구적이고 우아하며, 그의 시에는 자연스러운 상징과 비유가 풍부하고, 형식은 항상 고전적이다. 그의 시는 위대한 극작가 장 라신이나 상징파 시인인 폴 베를렌의 훌륭한 운문만큼 힘차고 미묘하게 운율적이며 음악적이다.R. D. D. Gibson 글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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