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지전(鼠同知傳)
by 송화은율서동지전(鼠同知傳)
이러구러 일월은 물같이 흐르고 광음은 재빨라 붙잡을 수 없어 봄 여름 다 지내고 가을에 거둔 양식이 이삼 두에 지나지 못하매 초겨울에 이미 다 먹어 버리고 엄동이 또다시 돌아오니 종세(終歲) 불과 일순에 신정(新正)은 십여 일이 남은지라. 다람쥐의 대소가는 모두 한 끼의 죽이 어렵고 부엌에는 한 줌의 나무가 없었는지라. 손을 비비며 위태히 앉았다가 계집 다람쥐더러 일러 가로되,
“내 본시 세상 물정 어두운 선비 되어 위로 조상의 가업이 없고 아래로 친척의 생업이 없어 섬섬약질(纖纖弱質)이 여기저기 여러 곳에서 빚을 져 구구한 잔명을 보존하나 마음은 항상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일삼더니 정초는 멀지 않고 섣달 그믐이 격일한데 조상 신령 한 그릇 떡국을 흠향(歆饗)할 길 없는지라. 스스로 탄식하니 어찌하리오.”
계집 다람쥐 가로되,
“낭군의 말을 들으니 일의 형세가 그러함이 당연하나, 대장부 세상에 나매 예의 염치를 알지 못하면 이는 무용필부(無用匹夫)라. 낭군이 또 팔괘동에 뜻을 두나 당초에도 염치를 불구함이 장부의 도리 아니어늘 다시 가서 두 번 말함은 차마 남자 소위 아니라. 사생이 명이 있거늘 어찌 구차히 살기를 도모하여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하리오. 내 비록 여자나 낭군을 위하여 차마 권하리니 낭군은 만 번 생각하소서.”
다람쥐 묵묵히 말이 없더니 양구에 왈,
“내 어찌 염치를 모르리오마는 궁하면 못할 일이 없음이라. 염치를 돌아볼진대 처자를 보전치 못할지라. 이러므로 나아가 동정을 보고자 함이요. 사세를 보아 주선하리니 그대는 나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소생이 접때 영감의 은혜를 입어 소생의 수다 잔약한 명이 봄 여름을 무고히 지낸지라.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요 나를 살린 사람은 대인이오니 소생의 부처 매양 서로 대하여 화산의 풀을 맺으며 수호의 구슬을 머금어 대인의 은혜 갚기를 원하는 바일러니, 자연 생계로 말미암아 장구지계(長久之計)는 없고 고식지계(姑息之計) 뿐이라. 초가을에 약간 거둔 양미 이삼 두(斗)를 초봄에 없이하고 산간에 흐르는 열매나 거두고자 하나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어 천산에 나는 새가 끊어지고 만경에 인적이 멸한지라. 처처에 쌓인 눈에 돌아다니기 어려운 중 이 같은 종세(終歲)를 당하여 앞집은 술 빚고 뒷집은 떡을 쳐서 송구영신에 조상 신령을 향화(香火)코자 함이어늘 소생의 집에 이르러서는 집이 가난하고 몸이 잔약하여 정초 제석(除夕)에 선조 향화를 받들 길이 없는지라, 엎드려 바라나니 기왕에 구활하신 바는 잊지 않을 것이어니와 다시 큰 덕을 내리오사 박주일배(薄酒一杯)라도 차례를 받들어 불효를 면케 하올진대 분골쇄신하더라도 소생이 사생간(死生間)에 보은하오리니 원컨대 대인은 재삼 생각하심을 바라나이다.”
서대주 입 속으로 웅얼거리어 깊이 생각한 지 오랜 뒤에 왈,
“그대는 내 말을 들으라. 본디 우리 서씨 누천 세에 가까운 일가와 원근제족이 경향 각처에 흩어져 있어 부유한 자도 있으며 빈곤한 자도 있으매 구년 신정과 경사에 서로 축하하고 상사에 서로 조문하며 빈곤한 벗과 친척에 소요되는 재산이 매년 매월에 만여금이 지나가고 집안에 거느리는 식구들과 상하 노복이며 조상 신령의 사시 향화를 의논할진대 용도를 다 말로 하지 못할러라. 이러하므로 그대의 청하는 바를 들어주지 못하니 불여불문이요, 불여불청이라. 모름지기 나의 부족이라 혐의치 말고 일 후 다시 상종함을 헤아리라.”
다람쥐는 본디 성품이 표독하고 마음이 불순한지라 서대주의 허락지 않음을 보고 독한 얼굴 생김새에 노기를 돌돌하여 몸을 떨치고 일어나 가로되,
이 때 다람쥐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집에 돌아오니 계집 다람쥐 나와 맞아 가로되,
“낭군이 이번 갔다가 노기를 띠어 돌아오니 알지 못할세라. 노중에 호협 방탕자를 만나 혹 봉변이라도 당하셨나이까.”
다람쥐 가로되,
“그런 일은 없으나 그대 말을 듣지 않고 다만 신정날 아침에 밥을 짓지 못함을 면할까 하고 가서 서대주 보고 슬픈 소리와 애련한 말로 생각하기를 바라노라 한즉 서대주 답이 가난하고 어려운 친척들을 구제하기에 급하여 남을 도울 처지가 아니라 하고 빈 말로 불안한 말만 하는 중 언어 불순하고 여간 재물이 있어 집이 부유하다 자시하고 대접이 경박하니, 설사 본대 저축함이 없을진대 혹시 그럴 수도 있으므로 괴이할 것 없으나 대대로 전하는 기물이 많을 뿐 아니라 요사이 천자께서 내리신 밤나무가 사만여 주(株)라 나를 생각하여 도와 주려는 마음이 있대도 수백 석 줄 것 아니요, 많으면 일이 석이요 적으면 일이 두 줄 것이어늘 내가 이같이 무료히 돌아옴을 괘념치 아니하리니 어찌 통분치 않으리오. 살아도 죽은 것 같고 죽고자 해도 땅이 없음이라. 내 마땅히 산군(山君)에게 송사하여 이놈을 잡아다가 재물을 허비토록 엄중한 형벌로써 몸을 괴롭게 하여 나의 분을 풀리라.”
<중략>
계집 다람쥐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꾸짖어 가로되,
“낭군의 말이 그르도다. 천하 만물이 세상에 나매 신의를 으뜸으로 삼나니, 서대주는 본래 우리와 더불어 항렬이 남과 다름이 없고, 하물며 내외를 상통함도 없으되 다만 일면 교분을 생각하고 다소간 양미를 쾌히 허급하여 청하는 바를 좇았으니, 서대주가 낭군 대접함이 옛날 주공이 일반(一飯)의 삼토포(三吐哺)하고 일목(一沐)에 삼악발(三握髮)보다 더하거나 늘 한 번도 치하함이 없다가 무슨 면목으로 또 구활함을 청하매 허락치 아니하였다고 오히려 노하는 것이 신의가 없는 일이어늘, 하물며 포악한 마음을 발하여 은혜 갚을 생각은 아니하고 오히려 관청에 송사를 이르고자 하니, 이는 이른바 적반하장(賊反荷杖)이요 은반위구(恩反爲仇)라. 낭군이 만일 송사코자 할진대 서대주의 벌장(罰狀)을 무엇으로 말하고자 하느뇨. 옛말에 일렀으되 지은(知恩)이면 보은(報恩)이요 지지(知之)면 불태(不怠)라 하니, 원컨대 낭군은 옛 성인의 책을 널리 보았을 테니 소학을 익히 알리라. 다시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 은혜를 갚기를 힘쓰고 거칠은 말을 하는 마음을 버릴지라. 서대주는 본디 관후장자(寬厚長者)라 반드시 후일에 낭군을 위하여 사례를 할 날이 있으리니 비록 천한 여자의 말이나 깊이 살피어서 후회하여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도록 하옵소서.”
다람쥐 듣기를 마치고 크게 노하여 가로되,
“이 같은 천한 계집이 호위인사(好爲人師)로 나를 가르치고자 하느냐. 계집은 마땅히 장부가 욕을 입음을 분히 여김이 옳거늘 오히려 서대주를 관후장자라 일컫고 날더러 포악하다 꾸짖으니 이 내 형세 곤궁함을 보고 배반할 마음을 두어 서대주를 얻고자 함이라. 예로부터 부창부수(夫唱婦隨)는 남녀의 정이고 여필종부(女必從夫)는 부부의 의이어늘 부귀를 따라 딴 마음을 둘진대, 갈려면 빨리 가고 머뭇거리지 말라.”
계집 다람쥐 발딱 화를 내어 눈을 부릅뜨며 귀를 발룩이고 꾸짖어 가로되,
“그대로 더불어 남녀 간의 연분을 맺어 아들 두고 딸을 낳으며 남취여가(男娶女嫁)하여 고초를 달게 알고 그대를 좇는 바는 부귀를 뜬구름같이 알고 빈천을 낙으로 알아 상강(湘江)의 이비(二妃)를 본받아 여상(呂尙)이 마씨(馬氏)를 꾸짖는 바이어늘, 더러운 말로써 나를 욕하니 이는 한때의 끼니를 아끼려고 처자를 내치고자 함이라. 고인이 일렀으되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요, 빈천지교(貧賤之交)는 불가망(不可忘)이라 하였나니, 오늘날 가난하고 못살 때의 쓰고 단 것을 함께 한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이같이 욕보이니, 두 귀를 씻고자 하나 영천수(潁川水)가 멀어 한이로다. 오늘 수양산을 찾아가서 백이 숙제(伯夷叔齊) 채미(採薇)타가 굶어 죽은 일을 좇으리니 그대는 홀로 자위하라.”
말을 마치며 짐을 꾸려서 훌쩍 문 밖으로 나가더니 자취가 보이지 않는지라. 다람쥐 더욱 분노하여 가로되,
“소장지변(蕭墻之變)은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도시 서대주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라. 내 당당히 서대주를 설욕하고 말리라.”
인하여 일장 소지(訴紙)를 지어 가지고 바로 곤륜산 동중에 이르러 백호궁(白虎宮)의 형방을 찾아 들어가서 다람쥐 억울한 마음을 올림을 고하니, 이 때 백호산군(白虎山君)이 태산오악(泰山五嶽)을 순행하다가 곤륜산으로 돌아와 각처 짐승의 선악을 문죄코자 하더니 홀연 형부 아전이 들어와 고하되,
“하도산(河圖山) 낙서동(洛書洞) 등지에 거하는 다람쥐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거늘 백호산군이 형부관에 명하여 다람쥐를 불러들이라 하는지라. 다람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며 형졸을 따라 백호궁 앞뜰에 이르니, 전후좌우에 위엄이 범상치 않은지라.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도 못하고 숨을 나직이 하여 복지대령(伏地待令)하였더니, 이윽고 전상(殿上)에서 형부 관헌이 나와 소지를 빨리 올리라 하니, 다람쥐 품 속에서 일장 소지를 내어 받들어 올리는데 백호산군이 그 소지를 받아 본즉 사연에 가로되,
“하도산 낙서동에 거하는 다람쥐는 다음의 일의 이모저모를 고하나이다. 신은 본디 낙서동에서 나서 자라 천성이 어리석고 마음이 졸직(拙直)하온 바 항상 굴문을 나오는 바 없고, 밖으로는 강 건너 친척 없으며 오척에 동자 없고 척신이 고고하여 다만 미천한 계집과 약한 자식으로 더불어 낮이면 초산에서 나무를 베며 산야에서 밭을 갈고, 밤이면 탁군에 자리를 치며 패택에 신을 삼고, 춘하에 사엽하며 추동에 독서하여 동서를 분간치 못하고, 만수 천산 깊은 곳에 꽃을 보면 봄철을 짐작하고 잎을 보면 여름을 깨닫고 낙엽으로 가을을 양도하며 서리와 눈이 내리면 겨울임을 알아 문호에 명철보신(明哲保身)으로 일삼고 청운에 공명을 기약지 아니하여 부귀를 뜻하지 아니하고 천수만목(千樹萬木)의 열매를 거두어 양식을 삼고 하루하루 재산을 계산하옵더니, 뜻밖에 지난 달 보름밤에 구궁산 팔괘동에 거하는 서대주 놈이 노복쥐 수십 명을 데리고 한밤중에 신의 집에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돌입하여 천봉 만학에 흐르는 날밤과 높은 봉우리와 험준한 골짜기에 떨어진 잣을 천신만고하여 주우며 거두어, 비바람 치고 눈 오는 추운 겨울 날에 깊은 엄동을 보전코자 저축하온 양미 수십여 석을 탈취하여 가며 오히려 신을 무수히 난타하온즉, 신의 슬픈 정세는 땅 없는 외로운 망량(端紀)이라. 막막한 세상에 호소할 곳 없는고로 극히 원통하와 한 조각 원정을 지어 가지고 엎디어 백호산군 밝은 다스림 아래에 올리옵나니 신의 참상을 살피신 후에 능력을 발하사 이 같은 서대주 놈을 성화착래(星火捉來)하여 엄형으로 중히 다스려 잔약한 신의 약탈된 양미(糧米)를 찾아 주옵소서. 혈혈단신으로 의지할 곳 없는 잔명이 한을 품고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게 하옵심을 천만 빌어 산군주 처분만 바라나이다. (무진 정월일에 고장을 올림)”
하였거늘 백호산군이 읽기를 마치고 제사(題辭)를 불러 왈,
“대개 만물의 가볍고 무거움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을 사용하는 것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바르고 그릇됨을 아는 데는 양쪽의 말을 듣는 것만 같음이 없나니, 한편의 말만 듣고 좋고 나쁨을 경솔하게 판결치 못하리라. 소진(蘇秦)의 말로써 진나라를 배반함이 어찌 옳다 하며 장의(張儀)27의 말로써 진나라를 섬김이 어찌 그르다 하리오. 소장(訴狀) 양쪽의 말을 같이 들은 연후에 종횡을 쾌히 결단하리니, 다람쥐는 우선 옥으로 내리고 서대주를 즉각 잡아와서 상대한 연후에 가히 밝게 분변하리라.”
한 번 제사하매 오소리와 너구리 두 형졸로 하여금 서대주를 빨리 잡아 대령하라 분부하니 두 짐승이 명을 듣고 나올새 오소리가 너구리더러 일러 왈,
“내가 들으니 서대주 재물이 많으므로 심히 교만하매 우리가 매양 괴악히 알아 벼르던 바였는데, 오늘 우리에게 걸렸는지라. 이놈을 잡아 우리를 괄시하던 일을 설분하고 또 소송당한 놈이 피차 예물을 바치는 전례는 위에서도 아는 바라. 수 백냥이 아니면 결단코 놓지 말자.”
하고 둘이 서로 약속을 정하고, 호호탕탕한 기분을 내며 예기(銳氣)는 맹렬하여 바로 구궁산 팔괘동에 이르러 토굴 밖에서 소리높여 부르며 가로되,
“서대주 고소를 당하여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패자(牌子)를 가지고 잡으러 왔나니 서대주는 빨리 나오고 지체 말라.”
독촉이 성화 같은지라. 비복들이 이 말을 듣고 혼백이 흩어져 버리는 듯 놀라서 급급히 들어가서 서대주께 연유를 고할새 서대주가 호흡이 급해지고 한출첨배(汗出沾背)하는지라. 모든 쥐들이 이를 보고 눈을 둥글고 두 귀 발록발록하여 황황망조(遑遑罔措)하거늘 서대주 왈,
“너희들은 놀라지 말라. 옛말에 일렀으되 칼이 비록 비수라도 죄 없는 사람은 해치지 못한다 하였으니 우리 본디 죄를 범한 바 없는지라 무엇이 두려우리오.”
인하여 자손과 노복쥐를 데리고 토굴 밖으로 나오니 오소리와 너구리가 서대주 나옴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 하는지라. 서대주 오소리를 보고 흔연히 웃어 가로되,
“오별감은 그 사이 무양하셨느뇨. 나는 층암절벽 한 곳에 토굴을 의지하고 그대는 천봉만학 경치가 빼어난 곳에 산군을 모시고 있어 유현(幽顯)의 길이 다른지라. 마음은 항상 생각이 있으나 승안접사(承顔接事)를 일차 부득하더니 오늘 관고(官故)로 말미암아 누추한 곳에 오셔서 의외로 청안(淸顔)을 대하니 패자예차는 천천히 수작하려니와 일배 박주(薄酒)를 잠깐 나누기를 바라노니 허락함이 어떠리오.”
오소리는 본디 마음이 순박한지라, 서대주의 대접이 심히 관후함을 보고 처음에 발발하던 마음이 춘산에 눈 녹듯이 스러지는지라. 서대주더러 왈,
“우리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서대주와 다람쥐로 더불어 재판코자 하여 성화 착래하라 분부 지엄하니 빨리 행함이 옳거늘 어찌 조금이나 지체하리오.”
장자(長子)쥐 왈,
“오별감 말씀이 옳은지라, 어찌 두 번 청함이 있으리요마는 성인도 권도(權道)함이 있나니 원컨대 오별감은 두 번 살피라.”
모든 쥐들이 일시에 간청하며 서대주는 오소리의 손을 잡고 장자쥐는 너구리를 붙들고 들어가기를 청하니, 너구리는 본래 음흉한 짐승이라 심중에 생각하되,
‘만일 들어가는 경우에는 죄인 다루는 데 거북할 테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기왕에 뇌물을 받으려면 톡톡히 실속을 차려야 한다.’
하며 소매를 떨치고 거짓 노왈,
“관령은 지엄하고 갈 길은 멀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어느 때에 술 마시고 완유(玩遊)하리오. 관령이 엄한 줄 알지 못하고 다만 일배 박주에 팔려 형장이 이 몸에 돌아오는 것은 생각지 못하는가. 나는 굴 밖에 있으리니 빨리 다녀오라.”
하고 말을 마치며 나와 수풀 사이에 앉아 종시 들어가지 않는지라. <중략>
백호산군이 서대주의 소지를 본 후 말이 없더니, 이윽고 제사를 부르매 그 제사에 가로되,
“예로부터 일렀으되 아랫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이 없는 것이어늘, 당돌히 위를 범하여 나의 덕화 없음을 꾸짖으니 죄는 마땅히 만 번이라도 죽일 만하다. 그러나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 하였나니, 위(魏)나라 임좌는 그 임금 측천무후의 그름을 말하였고 하나라 신하 주운은 그 임금 한제의 그름을 말하였더니, 너는 이제 나의 덕이 없음을 말하니 너는 진실로 임좌와 주운이 되고 나는 진실로 무후와 한제 되리니, 너같이 곧은 자 어찌 다람쥐의 양식을 도적하리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니 다람쥐는 엄형으로 다스려 귀양 보내고 서대주는 즉시 풀어 주어라.”
제사 이미 내리니 서대주 일어나 다시 꿇어 가로되,
“산군의 밝으신 정사를 입어 풀어 주심을 입사오니 황송 무지하온지라 다시 무엇을 고하리요마는, 신의 미천한 마음을 감히 산군께 우러러 알리옵나니, 다람쥐의 죄상을 의논하올진대 간교하온 말로써 욕심을 내고 기군망상(欺君罔上)하온 일은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으며 죽어도 죄가 남겠으나, 헤아리건대 다람쥐는 일개 작은 짐승으로 배고픔이 몸에 이르고 빈곤이 처자에 미치매, 살고자 하오나 살기를 구하지 못하고 죽고자 하나 또한 구하기 어려우매 진퇴유곡(進退維谷)하던 항우(項羽)의 군사라, 다만 죽기를 달게 여기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고로 방자히 산군께 위엄을 범하였나 보옵니다. 오히려 생각하올진대 가련한 바이어늘, 다람쥐로 하여금 중형으로 다스릴진대 이는 죽은 자를 다시 때리는 일이요, 오히려 노승발검(怒蠅拔劍)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산군은 위엄을 거두고 다람쥐로 하여금 쇠잔한 명을 살려 주시고 은택을 내리는 덕을 끼치사 일체 풀어 주시면 호천지덕(昊天之德)을 지하에 돌아간들 어찌 잊으리까. 살피고 살피심을 바라옵고 바라나이다.”
산군이 듣기를 다하매 길이 탄식하여 가로되,
“기특하도다, 네 말이여. 다람쥐가 큰 부처님의 선함을 누르고자 하니 한갖 불로 하여금 달빛을 가리고자 함이라. 서대주의 선한 말을 좇아 다람쥐를 풀어 주니 돌아가 서대주의 착한 마음을 본받으라.”
하고 인하여 방송하니, 다람쥐가 백 번 절하며 사은하고 만 번 치사한 후 물러가니라. 백호산군과 녹판관, 저판관이며 모든 하리 등이 서대주의 인후함을 못내 칭송하더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작자 미상
갈래 : 고전 소설, 풍자 소설, 우화 소설, 의인 소설
성격 : 우화적, 교훈적, 풍자적, 경세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중국 당나라 때, 중국 옹주 땅 구궁산 토굴
구성 :
발단 : 중국 옹주땅 구궁산 토굴 속에 서대주(鼠大州)라는 짐승이 살고 있었다. 당태종이 금용성을 치려할 때, 서대주는 종족을 거느리고 금용성 창고에 양식으로 쌓아둔 쌀을 없애 버리는 큰 공을 세운다. 이 일로 서대주에게는 세민황제로부터 벼슬을 제수받고 잔치를 베풀어 여러 쥐들을 초대한다. - 서대주는 금용성 창고의 양미를 없애는 공을 세운 후 벼슬을 제수 받고 잔치를 연다.
전개 : 이때 하도산에 다람쥐라는 짐승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성품이 간악하고 집안 형편이 가난한 데도 나태하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다. 다람쥐는 서대주가 잔치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다람쥐는 잔치가 끝난 뒤 서대주에게 자기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여 생률(生栗 : 날밤)과 백자(栢子 : 잣)를 얻어가지고 돌아온다. 다람쥐 부부는 그것으로 봄을 무사히 지냈으나 겨울이 돌아오니 다시 굶는 신세가 된다. 다람쥐는 다시 서대주에게 가서 구걸하나, 그는 종족의 형편을 들어 거절한다. - 잔치를 찾아온 다람쥐는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서대주의 도움을 받는다.
위기 : 이에 다람쥐는 원한을 품고 아내의 충고도 듣지 않고 곤륜산의 백호산군(白虎山君)에게 거짓으로 소송장을 올린다. 계집다람쥐는 소송을 걸어서는 안된다고 힘껏 충고하다가 도리어 남편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는 분한 나머지 집을 나가고 만다. - 서대주는 계속되는 다람쥐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고 이에 다람쥐는 원한을 품는다.
절정 : 백호산군은 서대주를 잡아오게 하여 그의 말을 들어보고 다람쥐가 허위로 고발하였음을 알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부도덕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오히려 위정자들이 정사를 게을리한 까닭이며, 다람쥐도 피해자라고 항변한다. - 계집 다람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람쥐는 서대주를 백호산군에게 거짓 고발한다.
결말 : 크게 깨달은 백호 산군은 허위고발한 다람쥐를 유배보내고 서대주는 방면하여 내보낸다. 마음이 착한 서대주는 다람쥐를 불쌍히 여겨 같이 내보내줄 것을 간청한다. 산군은 서대주의 인후한 심덕에 감동하여 다람쥐를 내보낸다. 이에 다람쥐는 자기의 배은망덕한 처사를 반성하고 서대주에게 사과한다. 서대주는 다람쥐를 불쌍히 여겨 황금을 주어 돌려보낸다. - 모든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대주는 다람쥐를 용서하고, 다람쥐도 자신의 배은망덕(背恩忘德)함을 반성한다.
제재 : 은혜를 모르는 다람쥐와 무고하게 송사 사건에 휘말린 서대주
주제 : 조선 후기 계층 갈등과 그 해결 양상, 사필귀정(事必歸正), 권선징악(勸善懲惡), 배은망덕의 처사를 비판하고 아량있는 태도를 권장함, 가부장적 권위와 당대의 정치 현실이 지닌 모순 비판[여필종부(女必從夫)와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봉건적 사고 방식과 도덕관에 대한 비판으로 전통적인 윤리관을 타파하고자 하는 지은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인물 :
다람쥐 : 가부장적 권위 의식에 젖어 있는 인물로 성품이 간악하여 가세가 가난한데도 열심히 일할 생각은 않는 나태한 인물로 올바른 충고를 하는 계집 다람쥐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봉건적 사고 방식과 권위 의식에 젖어 있는 조선 후기 몰락한 양반 계층을 대변한다.
계집 다람쥐 : 사리 분별을 할 줄을 알고 가부장적인 권위 의식에 항거하는 적극적이고 현명한 인물로 남존 여비 사상이 투철했던 당시의 윤리관에 비추어 볼 때, 근대적 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서대주(부자쥐) : 간악한 다람쥐를 용서해 주는 관용이 있는 인물로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고 종족을 위할 줄 아는 긍정적인 인물이다. 또한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뇌물도 서슴지 않고 주는 서대주는 다양한 현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부당한 결과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며,또한 빈곤한 자를 도울 줄 아는 사회적 윤리에도 충실한 삶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봉건적 인습에 구속됨이 없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스로의 권익을 추구하는 근대 지향적 인물 유형으로 조선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경제력을 지닌 계층을 대변한다.
의의 : 설화를 소재로 함
특징 : 동물을 의인화하여 표현했고, 권선징악의 주제를 형상화했으며, 여성들의 자기 주장과 권리 의식을 비유적으로 드러냄
줄거리 : 조선 후기 한글 우화 소설로 쥐를 의인화한 작품으로 서대주의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한 행동을 한 다람쥐를 백호산군이 벌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람쥐와 같은 인간들을 경계하고 징계하여 다스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내용은 게으름뱅이 다람쥐가 부자인 쥐에게 구걸하러 갔다가 거절당하자 그를 관가에 무고하였으나, 오히려 쥐의 결백이 밝혀짐으로써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게으르고 일하지 않는 사람을 징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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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구러 일월은 물같이 흐르고 광음은 재빨라 붙잡을 수 없어 봄 여름 다 지내고 가을에 거둔 양식이 이삼 두에 지나지 못하매 초겨울에 이미 다 먹어 버리고 엄동[몹시 추운 겨울]이 또다시 돌아오니 종세(終歲 : 한 해를 마침) 불과 일순에 신정(新正)은 십여 일이 남은지라. 다람쥐의 대소가는 모두 한 끼의 죽이 어렵고 부엌에는 한 줌의 나무가 없었는지라[가진 재산이 적으며 앞일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유비무환(有備無患 :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음)의 자세가 부족함]. 손을 비비며 위태히 앉았다가 계집 다람쥐더러 일러 가로되,
“내 본시 세상 물정 어두운 선비 되어 위로 조상의 가업이 없고 아래로 친척의 생업이 없어 섬섬약질(纖纖弱質 : 가냘프고 연약한 체질)이 여기저기 여러 곳에서 빚을 져 구구한 잔명을 보존하나 마음은 항상 안빈낙도(安貧樂道 : 구차한 중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김.)를 일삼더니 정초는 멀지 않고 섣달 그믐이 격일[하루씩 거름. 하루를 거름]한데 조상 신령 한 그릇 떡국을 흠향(歆饗 : 신명(神明)이 제물을 받음)할 길 없는지라[몰락했지만 양반이라는 허위 의식에 젖어 있음]. 스스로 탄식하니 어찌하리오.”
계집 다람쥐[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근대적 인물] 가로되,
“낭군의 말을 들으니 일의 형세가 그러함이 당연하나, 대장부 세상에 나매 예의 염치를 알지 못하면[계집다람쥐가 서대주를 찾아가려는 남편을 말린 이유] 이는 무용필부(無用匹夫 : 쓸모 없는 보통 남자)라. 낭군이 또 팔괘동에 뜻을 두나 당초에도 염치를 불구함이 장부의 도리 아니어늘 다시 가서 두 번 말함은 차마 남자 소위 아니라. 사생이 명이 있거늘 어찌 구차히 살기를 도모하여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하리오. 내 비록 여자나 낭군을 위하여 차마 권하리니 낭군은 만 번 생각하소서.”[계집 다람쥐의 성격은 예의 염치를 중시하고, 과감히 자신의 뜻을 밝힘]
다람쥐[몰락한 양반을 상징] 묵묵히 말이 없더니 양구[시간이 꽤 오래 됨]에 왈,
“내 어찌 염치를 모르리오마는 궁하면 못할 일이 없음이라. 염치를 돌아볼진대 처자를 보전치 못할지라. 이러므로 나아가 동정을 보고자 함이요. 사세를 보아 주선하리니 그대는 나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계집 다람쥐의 만류에도 양식을 구걸하러 가는 다람쥐]
“소생이 접때 영감의 은혜를 입어 소생의 수다 잔약한[튼튼하지 못하고 아주 약하다] 명이 봄 여름을 무고히 지낸지라.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요 나를 살린 사람은 대인[서대주]이오니 소생의 부처 매양 서로 대하여 화산의 풀을 맺으며[결초보은 (結草報恩) :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수호의 구슬을 머금어 대인의 은혜 갚기를 원하는 바일러니, 자연 생계로 말미암아 장구지계(長久之計 : 어떤 일이 오래 계속되기를 꾀하는 계획. 장구지책.)는 없고 고식지계(姑息之計 : 당장에 편한 것만 택하는 계책 / 임기응변, 하석상대, 임시변통 ) 뿐이라[서대주의 덕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을 호소함]. 초가을에 약간 거둔 양미 이삼 두(斗)를 초봄에 없이하고 산간에 흐르는 열매나 거두고자 하나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어 천산에 나는 새가 끊어지고 만경에 인적이 멸한지라[유종원의 강설에서 따온 듯]. 처처에 쌓인 눈에 돌아다니기 어려운 중 이 같은 종세(終歲 : 한 해를 마침)를 당하여 앞집은 술 빚고 뒷집은 떡을 쳐서 송구영신[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에 조상 신령을 향화(香火 : 제사, 향불)코자 함이어늘 소생의 집에 이르러서는 집이 가난하고 몸이 잔약하여 정초 제석(除夕)에 선조 향화를 받들 길이 없는지라, 엎드려 바라나니 기왕에 구활하신 바는 잊지 않을 것이어니와 다시 큰 덕을 내리오사 박주일배(薄酒一杯 : 맛 없는 술이라도 한 잔)라도 차례를 받들어 불효를 면케 하올진대 분골쇄신[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함]하더라도 소생이 사생간(死生間)에 보은하오리니 원컨대 대인은 재삼 생각하심을 바라나이다.”
서대주 입 속으로 웅얼거리어 깊이 생각한 지 오랜 뒤에 왈,
“그대는 내 말을 들으라. 본디 우리 서씨 누천[여러 천. 썩 많은 수] 세에 가까운 일가와 원근제족이 경향 각처에 흩어져 있어 부유한 자도 있으며 빈곤한 자도 있으매 구년 신정과 경사에 서로 축하하고 상사에 서로 조문하며 빈곤한 벗과 친척에 소요되는 재산이 매년 매월에 만여금이 지나가고 집안에 거느리는 식구들과 상하 노복이며 조상 신령의 사시 향화를 의논할진대 용도를 다 말로 하지 못할러라. 이러하므로 그대의 청하는 바를 들어주지 못하니 불여불문이요, 불여불청[묻지 않음만 못하고, 청하지 않음만 못하다.]이라. 모름지기 나의 부족이라 혐의치 말고 일 후 다시 상종함을 헤아리라[후일을 기약하며 다람쥐를 위로함].”
다람쥐는 본디 성품이 표독하고 마음이 불순한지라[다람쥐의 간악함이 직접적으로 제시됨 / 특정인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서술자의 해설에서 드러남] 서대주의 허락지 않음을 보고 독한 얼굴 생김새에 노기를 돌돌하여 몸을 떨치고 일어나 가로되,
이 때 다람쥐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집에 돌아오니 계집 다람쥐 나와 맞아 가로되,
“낭군이 이번 갔다가 노기를 띠어 돌아오니 알지 못할세라. 노중에 호협 방탕자[거리의 폭력배]를 만나 혹 봉변[뜻밖에 변을 당함. 또는 그 변]이라도 당하셨나이까.”
다람쥐 가로되,
“그런 일은 없으나 그대 말을 듣지 않고 다만 신정날 아침에 밥을 짓지 못함을 면할까 하고 가서 서대주 보고 슬픈 소리와 애련한 말로 생각하기를 바라노라 한즉 서대주 답이 가난하고 어려운 친척들을 구제하기에 급하여 남을 도울 처지가 아니라 하고 빈 말로 불안한 말만 하는 중 언어 불순하고 여간 재물이 있어 집이 부유하다 자시하고[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믿고] 대접이 경박하니[경솔하고 소홀하니], 설사 본대 저축함이 없을진대 혹시 그럴 수도 있으므로 괴이할 것 없으나 대대로 전하는 기물(물건)이 많을 뿐 아니라 요사이 천자께서 내리신 밤나무가 사만여 주(株 : 그루)라 나를 생각하여 도와 주려는 마음이 있대도 수백 석 줄 것 아니요, 많으면 일이 석이요 적으면 일이 두 줄 것이어늘 내가 이같이 무료히[쓸데 없이] 돌아옴을 괘념[마음에 두고 잊지 아니함]치 아니하리니 어찌 통분치 않으리오. 살아도 죽은 것 같고 죽고자 해도 땅이 없음이라. 내 마땅히 산군(山君)에게 송사하여 이놈을 잡아다가 재물을 허비토록 엄중한 형벌로써 몸을 괴롭게 하여 나의 분을 풀리라[배은망덕한 다람쥐의 면모].” - 산군에게 송사하여 서대주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함.
<중략>
계집 다람쥐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꾸짖어 가로되,
“낭군의 말이 그르도다. 천하 만물이 세상에 나매 신의를 으뜸으로 삼나니, 서대주는 본래 우리와 더불어 항렬이 남과 다름이 없고[생김새의 유사성으로 인간의 항렬에 적용했으나 궁극적 의미는 서로 친척도 아니고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남과 같다는)], 하물며 내외를 상통함도 없으되 다만 일면 교분[친구 사이의 정]을 생각하고 다소간 양미[서대주가 주었던 쌀]를 쾌히 허급하여 청하는 바를 좇았으니, 서대주가 낭군 대접함이 옛날 주공이 일반(一飯)의 삼토포(三吐哺)하고 일목(一沐)에 삼악발(三握髮)보다 더하거나[옛날 주공이∼삼악발보다 더하거나:성왕이 백금을 노나라에 봉하자, 주공이 노나라 사람에게 교만하게 굴지 말라며 훈계하기를 “나는 문왕의 아들이요 무왕의 아우이며 성왕의 숙부인데, 또한 천하에 재상 노릇을 하면서도 천하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한 번 목욕하는 동안에 세 번 머리를 움켜쥐고 한 번 밥 먹는 동안에 세 번 내뱉으면서, 오히려 천하의 선비를 잃을까 우려했었다.”고 한 데에서 나온 구문임. - 토포악발(吐哺握發 : 민심을 수람하고 정무를 보살피기에 잠시도 편안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 중국의 주공이 식사 때나 목욕할 때 내객이 있으면 먹던 것을 뱉고, 감고 있던 머리를 거머쥐고 영접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늘 한 번도 치하[남이 한 일에 대하여 고마움이나 칭찬의 뜻을 표시함.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한다.]함이 없다가 무슨 면목으로 또 구활함을 청하매[목숨을 구걸하매] 허락치 아니하였다고 오히려 노하는 것[관청에 허위 송사하려는 이유]이 신의가 없는 일이어늘, 하물며 포악한 마음을 발하여 은혜 갚을 생각은 아니하고 오히려 관청에 송사[(訟事) 소송(訴訟)으로 백성끼리 분쟁이 있을 때, 관부에 호소하여 판결을 구하던 일]를 이르고자 하니, 이는 이른바 적반하장(賊反荷杖)[적반하장:도둑이 도리어 막대를 들고 대듦]이요 은반위구(恩反爲仇 : 은혜가 오히려 원수가 됨 = 은반위수)라. 낭군이 만일 송사코자 할진대 서대주의 벌장(罰狀 : 잘못을 적어 관에 바치는 고소장. )을 무엇으로 말하고자 하느뇨[서대주는 잘못이 없다는 말로 서대주가 낭군을 극진히 대접하였음을 강조하는 말]. 옛말에 일렀으되 지은(知恩)이면 보은(報恩)이요 지지(知之)면 불태(不怠)라 [지은(至恩)이면 보은(報恩)이요 지지(知之)면 불태(不怠)라:은혜를 알면 반드시 갚아야 하고, 그것을 안다면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하니, 원컨대 낭군은 옛 성인의 책을 널리 보았을 테니 소학[기본적인 예와 도리를 가르치는 책]을 익히 알리라. 다시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 은혜를 갚기를 힘쓰고 거칠은 말을 하는 마음을 버릴지라. 서대주는 본디 관후장자(寬厚長者 : 관후(寬厚)하고 점잖은 사람)라 반드시 후일에 낭군을 위하여 사례를 할 날이 있으리니 비록 천한 여자의 말[여필종부의 사상이 담겨 있음]이나 깊이 살피어서 후회하여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도록 하옵소서.”
다람쥐 듣기를 마치고 크게 노하여 가로되,
“이 같은 천한 계집이 호위인사(好爲人師 :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함. 함부로 나서서 가르치려 함)로 나를 가르치고자 하느냐. 계집은 마땅히 장부가 욕을 입음을 분히 여김이 옳거늘 오히려 서대주를 관후장자라 일컫고 날더러 포악하다 꾸짖으니 이 내 형세 곤궁함을 보고 배반할 마음을 두어 서대주를 얻고자 함이라. 예로부터 부창부수(夫唱婦隨 : 남편이 부르면 아내는 이에 따르는 것이 부부 화합의 도리임)는 남녀의 정이고 여필종부(女必從夫 : 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따름)는 부부의 의이어늘 부귀를 따라 딴 마음을 둘진대, 갈려면 빨리 가고 머뭇거리지 말라.”[계집다람쥐를 모욕을 줌,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가 드러남]
계집 다람쥐 발딱 화를 내어 눈을 부릅뜨며 귀를 발룩이고 꾸짖어 가로되,
“그대로 더불어 남녀 간의 연분을 맺어[부부의 인연] 아들 두고 딸을 낳으며 남취여가(男娶女嫁 :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하여 고초를 달게 알고 그대를 좇는 바는 부귀를 뜬구름같이 알고 빈천을 낙으로 알아 상강(湘江)의 이비(二妃 : 요임금의 두 딸인 아황과 여영. 함께 순임금에게 시집가고 순임금이 죽은 뒤 상강에 빠져 죽음.)를 본받아 여상(呂尙)이 마씨(馬氏)를 꾸짖는 바이어늘, 더러운 말로써 나를 욕하니 이는 한때의 끼니를 아끼려고 처자를 내치고자 함이라. 고인이 일렀으되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요, 빈천지교(貧賤之交)는 불가망(不可忘)이라 하였나니[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이요, 빈천지교(貧賤之交)는 불가망(不可忘):구차하고 천할 때 고생을 같이한 아내는 내칠 수 없으며, 가난할 때의 사귐은 잊을 수 없음], 오늘날 가난하고 못살 때의 쓰고 단 것을 함께 한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이같이 욕보이니, 두 귀를 씻고자 하나 영천수(潁川水)가 멀어 한이로다[두 귀를∼멀어 한이로다:요임금이 기산의 아래에서 은거하던 허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허유는 이를 더러이 여기고 영천강가에서 귀를 씻었다고 함]. 오늘 수양산을 찾아가서 백이 숙제(伯夷叔齊)[백(伯)과 숙(叔)은 형제의 서열을 나타낸다. 사마천(司馬遷)에 의하면 고죽군(孤竹君:고죽은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 루룽 현[盧龍縣])의 아들이라고 한다. 고죽군은 막내아들인 숙제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싶어했다. 그가 죽은 뒤 숙제는 이것이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여 맏형인 백이에게 양보했지만 백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나라를 떠나 서백(西伯) 문왕(文王)의 명성을 듣고 주나라로 갔다. 그곳에서는 이미 문왕이 죽고 아들인 무왕(武王)이 문왕의 위패(位牌)를 수레에 싣고 은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러 가려는 참이었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불효이며 신하로서 군주를 치는 것은 불인(不仁)이다"라고 하며 말렸지만 무왕은 듣지 않고 출정해 은을 멸망시키고 주의 지배를 확립했다. 두 사람은 주의 녹(祿)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首陽山:지금의 산시 성[山西省] 융지 현[永濟縣])에 숨어살며 고사리를 캐먹고 지내다 굶어죽었다.] 채미(採薇)타가 굶어 죽은 일을 좇으리니 그대는 홀로 자위하라.”['다람쥐'와 '계집 다람쥐'는 대화의 전개 양상이 갈등의 고조]
말을 마치며 짐을 꾸려서 훌쩍 문 밖으로 나가더니 자취가 보이지 않는지라[여필종부의 봉건적, 전통적 윤리관을 타파하려는 작가의 의식이 엿보임, 여권의식]. 다람쥐 더욱 분노하여 가로되,
“소장지변(蕭墻之變)은 유아이사(由我而死)라[소장지변은 유아이사라:소장은 군신(君臣)이 모여 회견하는 곳에 쌓은 담을 말하고, 소장지변은 그곳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는 의미이다. 유아이사는‘나로 말미암아 죽다’라는 뜻이다. 문맥상으로 보면, 다람쥐가 송사를 해서 변고를 일으키면 서대주가 자신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도시 서대주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라. 내 당당히 서대주를 설욕하고 말리라.”[관에서 백성이 제출한 고소장에 쓰는 판결이나 지령]
인하여 일장 소지(訴紙 : 고소장)를 지어 가지고 바로 곤륜산 동중에 이르러 백호궁(白虎宮 : 호랑이의 궁. 호랑이가 동물의 왕으로 나오기 때문에 호랑이의 궁을 찾아감)의 형방을 찾아 들어가서 다람쥐 억울한 마음을 올림을 고하니, 이 때 백호산군(白虎山君)이 태산오악(泰山五嶽 : 태산에 있는 유명한 다섯 골짜기)을 순행하다가 곤륜산으로 돌아와 각처 짐승의 선악을 문죄코자 하더니 홀연 형부 아전이 들어와 고하되,
“하도산(河圖山) 낙서동(洛書洞) 등지에 거하는 다람쥐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거늘 백호산군이 형부관에 명하여 다람쥐를 불러들이라 하는지라. 다람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며 형졸을 따라 백호궁 앞뜰에 이르니, 전후좌우에 위엄이 범상치 않은지라.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도 못하고 숨을 나직이 하여 복지대령(伏地待令 : 땅에 엎디어 명령만 기다림)하였더니, 이윽고 전상(殿上 : 전각이나 궁전의 위)에서 형부 관헌이 나와 소지를 빨리 올리라 하니, 다람쥐 품 속에서 일장 소지를 내어 받들어 올리는데 백호산군이 그 소지를 받아 본즉 사연에 가로되,
“하도산 낙서동에 거하는 다람쥐는 다음의 일의 이모저모를 고하나이다. 신은 본디 낙서동에서 나서 자라 천성이 어리석고 마음이 졸직(拙直 : 순박하고 강직함)하온 바 항상 굴문을 나오는 바 없고, 밖으로는 강 건너 친척 없으며 오척에 동자 없고[오척에 동자 없고 : 앞에 친척이라는 말이 나오자 오척동자(일반적으로 키가 작다는 의미로 쓰임)라는 말을 풀어서 쓴 말이다. 일종의 언어 유희이다.] 척신[홀몸]이 고고[외롭고 가난하다]하여 다만 미천한 계집과 약한 자식으로 더불어 낮이면 초산에서 나무를 베며 산야에서 밭을 갈고, 밤이면 탁군에 자리를 치며 패택에 신을 삼고, 춘하에 사엽하며 추동에 독서하여 동서를 분간치 못하고, 만수 천산 깊은 곳에 꽃을 보면 봄철을 짐작하고 잎을 보면 여름을 깨닫고 낙엽으로 가을을 양도하며 서리와 눈이 내리면 겨울임을 알아 문호에 명철보신(明哲保身 : 사리에 밝고 분별력이 있어 몸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함)으로 일삼고 청운[푸른 빛깔의 구름, 높은 지위나 벼슬을 가리키는 말]에 공명을 기약지 아니하여 부귀를 뜻하지 아니하고 천수만목(千樹萬木 : 각양각색의 많은 나무들)의 열매를 거두어 양식을 삼고 하루하루 재산을 계산하옵더니, 뜻밖에 지난 달 보름밤에 구궁산 팔괘동에 거하는 서대주 놈이 노복쥐 수십 명을 데리고 한밤중에 신의 집에불문곡직(不問曲直 : 옳고 그름을 따져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하고 돌입[어떤 곳이나 상태에 기세 있게 뛰어드는 것]하여 천봉 만학에 흐르는 날밤과 높은 봉우리와 험준한 골짜기에 떨어진 잣을 천신만고하여 주우며 거두어, 비바람 치고 눈 오는 추운 겨울 날에 깊은 엄동을 보전코자 저축하온 양미 수십여 석을 탈취하여 가며 오히려 신을 무수히 난타하온즉, 신의 슬픈 정세는 땅 없는 외로운 망량(端紀 : 도깨비)이라. 막막한 세상에 호소할 곳 없는고로 극히 원통하와 한 조각 원정을 지어 가지고 엎디어 백호산군 밝은 다스림 아래에 올리옵나니 신의 참상을 살피신 후에 능력을 발하사 이 같은 서대주 놈을 성화착래(星火捉來 : 급히 잡아들임)하여 엄형으로 중히 다스려 잔약한 신의 약탈된 양미(糧米)를 찾아 주옵소서. 혈혈단신으로 의지할 곳 없는 잔명이 한을 품고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게 하옵심을 천만 빌어 산군주 처분만 바라나이다. (무진 정월일에 고장을 올림)”
하였거늘 백호산군이 읽기를 마치고 제사[題辭 : 관부(官府)에서 백성이 제출한 공소장에 쓰는 판결이나 지령]를 불러 왈,
“대개 만물의 가볍고 무거움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을 사용하는 것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바르고 그릇됨을 아는 데는 양쪽의 말을 듣는 것만 같음이 없나니, 한편의 말만 듣고 좋고 나쁨을 경솔하게 판결치 못하리라. 소진(蘇秦)[소진과 장의는 모두 전국 시대에 활약하던 달변의 정치가. 전국 시대 말에 진나라가 나머지 다섯 나라와 대치하고 있을 때 소진은 나머지 다섯 나라가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견제할 것을 주장하며 각국을 설득함. 그러나 진나라의 장의는 소진의 합종설을 뒤집어 나머지 오국의 단결을 깨뜨리고 각각 진나라와 연계하도록 일을 꾸밈.]의 말로써 진나라를 배반함이 어찌 옳다 하며 장의(張儀)의 말로써 진나라를 섬김이 어찌 그르다 하리오. 소장(訴狀) 양쪽의 말을 같이 들은 연후에 종횡을 쾌히 결단하리니, 다람쥐는 우선 옥으로 내리고 서대주를 즉각 잡아와서 상대한 연후에 가히 밝게 분변하리라.”
한 번 제사하매 오소리와 너구리 두 형졸로 하여금 서대주를 빨리 잡아 대령하라 분부하니 두 짐승이 명을 듣고 나올새 오소리가 너구리더러 일러 왈,
“내가 들으니 서대주 재물이 많으므로 심히 교만하매 우리가 매양 괴악히 알아 벼르던 바였는데, 오늘 우리에게 걸렸는지라. 이놈을 잡아 우리를 괄시하던 일을 설분[분함을 씻고.]하고 또 소송당한 놈이 피차 예물을 바치는 전례는 위에서도 아는 바라. 수 백냥이 아니면 결단코 놓지 말자.”
하고 둘이 서로 약속을 정하고, 호호탕탕한 기분을 내며 예기(銳氣 : 성질이 굳세어 굽히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감)는 맹렬하여 바로 구궁산 팔괘동에 이르러 토굴 밖에서 소리높여 부르며 가로되,
“서대주 고소를 당하여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패자(牌子 : 지위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주는 글)를 가지고 잡으러 왔나니 서대주는 빨리 나오고 지체 말라.”
독촉이 성화 같은지라. 비복들이 이 말을 듣고 혼백이 흩어져 버리는 듯 놀라서 급급히 들어가서 서대주께 연유를 고할새 서대주가 호흡이 급해지고 한출첨배(汗出沾背 : 부끄럽거나 무서워서 땀이 배어 등을 적심)하는지라. 모든 쥐들이 이를 보고 눈을 둥글고 두 귀 발록발록하여 황황망조(遑遑罔措 : 마음이 급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함)하거늘 서대주 왈,
“너희들은 놀라지 말라. 옛말에 일렀으되 칼이 비록 비수라도 죄 없는 사람은 해치지 못한다 하였으니 우리 본디 죄를 범한 바 없는지라 무엇이 두려우리오.”
인하여 자손과 노복쥐를 데리고 토굴 밖으로 나오니 오소리와 너구리가 서대주 나옴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 하는지라. 서대주 오소리를 보고 흔연히 웃어 가로되,
“오별감은 그 사이 무양하셨느뇨[잘 지냈습니까?]. 나는 층암절벽 한 곳에 토굴을 의지하고 그대는 천봉만학 경치가 빼어난 곳에 산군을 모시고 있어 유현(幽顯)의 길이 다른지라[어두움과 밝음과 같이 분명히 다름]. 마음은 항상 생각이 있으나 승안접사(承顔接事 : 웃어른을 만나 뵙는 일)를 일차 부득하더니 오늘 관고(官故)로 말미암아 누추한 곳에 오셔서 의외로 청안(淸顔)을 대하니 패자예차는 천천히 수작하려니와 일배 박주(薄酒)[한 잔의 거친 술]를 잠깐 나누기를 바라노니 허락함이 어떠리오.”
오소리는 본디 마음이 순박한지라, 서대주의 대접이 심히 관후함을 보고 처음에 발발하던 마음이 춘산에 눈 녹듯이 스러지는지라. 서대주더러 왈,
“우리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서대주와 다람쥐로 더불어 재판코자 하여 성화 착래하라 분부 지엄하니 빨리 행함이 옳거늘 어찌 조금이나 지체하리오.”
장자(長子)쥐 왈,
“오별감 말씀이 옳은지라, 어찌 두 번 청함이 있으리요마는 성인도 권도(權道 : 원칙에서 벗어나서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 행동함)함이 있나니 원컨대 오별감은 두 번 살피라.”
모든 쥐들이 일시에 간청하며 서대주는 오소리의 손을 잡고 장자쥐는 너구리를 붙들고 들어가기를 청하니, 너구리는 본래 음흉한 짐승이라 심중에 생각하되,
‘만일 들어가는 경우에는 죄인 다루는 데 거북할 테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기왕에 뇌물을 받으려면 톡톡히 실속을 차려야 한다.’
하며 소매를 떨치고 거짓 노왈,
“관령은 지엄하고 갈 길은 멀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어느 때에 술 마시고 완유(玩遊 : 놀며 희롱함)하리오. 관령이 엄한 줄 알지 못하고 다만 일배 박주에 팔려 형장이 이 몸에 돌아오는 것은 생각지 못하는가. 나는 굴 밖에 있으리니 빨리 다녀오라.”
하고 말을 마치며 나와 수풀 사이에 앉아 종시 들어가지 않는지라.
<중략>
백호산군이 서대주의 소지를 본 후 말이 없더니, 이윽고 제사를 부르매 그 제사[관에서 백성이 제출한 고소장에 쓰는 판결이나 지령]에 가로되,
“예로부터 일렀으되 아랫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이 없는 것이어늘, 당돌히 위를 범하여 나의 덕화 없음을 꾸짖으니 죄는 마땅히 만 번이라도 죽일 만하다. 그러나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 하였나니, 위(魏)나라 임좌는 그 임금 측천무후의 그름을 말하였고 하나라 신하 주운은 그 임금 한제의 그름을 말하였더니, 너는 이제 나의 덕이 없음을 말하니 너[서대주]는 진실로 임좌와 주운이 되고 나는 진실로 무후와 한제 되리니, 너같이 곧은 자 어찌 다람쥐의 양식을 도적하리오. 어불성설(語不成說 :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 반대는 만불성설)이니 다람쥐는 엄형으로 다스려 귀양 보내고 서대주는 즉시 풀어 주어라.”
제사 이미 내리니 서대주 일어나 다시 꿇어 가로되,
“산군의 밝으신 정사를 입어 풀어 주심을 입사오니 황송 무지[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름]하온지라 다시 무엇을 고하리요마는, 신의 미천한 마음을 감히 산군께 우러러 알리옵나니, 다람쥐의 죄상을 의논하올진대 간교하온 말로써 욕심을 내고 기군망상(欺君罔上 : 임금을 속임)하온 일은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으며 죽어도 죄가 남겠으나, 헤아리건대 다람쥐는 일개 작은 짐승으로 배고픔이 몸에 이르고 빈곤이 처자에 미치매, 살고자 하오나 살기를 구하지 못하고 죽고자 하나 또한 구하기 어려우매 진퇴유곡(進退維谷)하던 항우(項羽)의 군사라, 다만 죽기를 달게 여기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고로 방자히 산군께 위엄을 범하였나 보옵니다. 오히려 생각하올진대 가련한 바이어늘, 다람쥐로 하여금 중형으로 다스릴진대 이는 죽은 자를 다시 때리는 일이요, 오히려 노승발검(怒蠅拔劍 : 파리에 화내어 칼을 뺀다는 뜻이니, 곧 사소한 일에 화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산군은 위엄을 거두고 다람쥐로 하여금 쇠잔한 명을 살려 주시고 은택을 내리는 덕을 끼치사 일체 풀어 주시면 호천지덕(昊天之德 : 하늘과 같은 덕.)을 지하에 돌아간들 어찌 잊으리까. 살피고 살피심을 바라옵고 바라나이다.”
산군이 듣기를 다하매 길이 탄식하여 가로되,
“기특하도다, 네 말이여. 다람쥐가 큰 부처님의 선함을 누르고자 하니 한갖 불로 하여금 달빛을 가리고자 함이라. 서대주의 선한 말을 좇아 다람쥐를 풀어 주니 돌아가 서대주의 착한 마음을 본받으라.”
하고 인하여 방송하니, 다람쥐가 백 번 절하며 사은하고 만 번 치사한 후 물러가니라. 백호산군과 녹판관, 저판관이며 모든 하리 등이 서대주의 인후함을 못내 칭송하더라.
이해와 감상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 활자본. ‘ 서용전 ( 鼠勇傳 ) ’ · ‘ 서옹전(鼠翁傳) ’ · ‘ 다람전 ’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쥐들의 소송사건을 소재로 한 의인소설로 풍자소설의 유형을 띤 작품이다. 소재가 유사한 〈 서옥기 鼠獄記 〉 · 〈 서대주전 鼠大州傳 〉 등의 한문본과는 전혀 별개의 작품이다.
중국 옹주땅 구궁산 토굴 속에 서대주(鼠大州)라는 짐승이 살고 있었다. 당태종이 금용성을 치려할 때, 서대주는 종족을 거느리고 금용성 창고에 양식으로 쌓아둔 쌀을 없애 버리는 큰 공을 세운다. 이 일로 서대주에게는 세민황제로부터 벼슬을 제수받고 잔치를 베풀어 여러 쥐들을 초대한다.
이때 하도산에 다람쥐라는 짐승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성품이 간악하고 집안 형편이 가난한 데도 나태하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다. 다람쥐는 서대주가 잔치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다람쥐는 잔치가 끝난 뒤 서대주에게 자기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여 생률(生栗 : 날밤)과 백자(栢子 : 잣)를 얻어가지고 돌아온다. 다람쥐 부부는 그것으로 봄을 무사히 지냈으나 겨울이 돌아오니 다시 굶는 신세가 된다. 다람쥐는 다시 서대주에게 가서 구걸하나, 그는 종족의 형편을 들어 거절한다.
이에 다람쥐는 원한을 품고 아내의 충고도 듣지 않고 곤륜산의 백호산군(白虎山君)에게 거짓으로 소송장을 올린다. 계집다람쥐는 소송을 걸어서는 안된다고 힘껏 충고하다가 도리어 남편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는 분한 나머지 집을 나가고 만다.
백호산군은 서대주를 잡아오게 하여 그의 말을 들어보고 다람쥐가 허위로 고발하였음을 알게 된다. 이에 산군은 허위고발한 다람쥐를 유배보내고 서대주는 내보낸다. 마음이 착한 서대주는 다람쥐를 불쌍히 여겨 같이 내보내줄 것을 간청한다. 산군은 서대주의 인후한 심덕에 감동하여 다람쥐를 내보낸다. 이에 다람쥐는 자기의 배은망덕한 처사를 반성하고 서대주에게 사과한다. 서대주는 다람쥐를 불쌍히 여겨 황금을 주어 돌려보낸다.
〈 서동지전 〉 은 다람쥐가 서대주에게 은혜를 입고도 배은망덕하게 서대주를 백호산군에게 허위로 소송하였으나, 현명한 판관이 잘잘못을 가려 간악한 다람쥐에게 벌을 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줄거리를 통해, 인간사회에도 간악한 다람쥐와 같은 배은망덕한 인간이 있음을 경계하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필귀정과 권선징악의 교훈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또한, 작품 내면에는 봉건적인 정치 · 윤리 · 경제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간상을 추구하려는 근대지향적 주제도 내포되어 있다. 특히, 오소리와 너구리 등에 의해 표현되는 현실비판은 당대의 정치적 현실이 지닌 모순에 대한 풍자이다.
또한, 다람쥐와 아내의 다툼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남존여비 사상이 투철했던 당시 윤리관으로 볼 때, 올바른 충고를 들어주지 않고 욕설을 퍼붓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항거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계집다람쥐가 남편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오는 내용도 당시의 윤리관이나 인습으로 보아서는 과감한 저항으로 판단된다. 이는 부창부수와 여필종부라는 봉건적인 사고방식과 도덕관에 대한 비판으로 전통적인 윤리관을 타파하고자 하는 작자의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참고문헌 ≫ 鼠同知傳(舊活字本 古典小說全集 3, 東國大學校 韓國學硏究所, 1976), 韓國古典小說硏究(金起東, 敎學社, 1983), 韓國 擬人小說 硏究(金光淳, 새문社, 1987), 韓國 擬人文學의 史的 系譜와 性格(金光淳, 語文論叢 16, 慶北大學校 人文大學 國語國文學科, 1982), 朝鮮後期 擬人體說話小說의 近代的 性向-장끼傳과 鼠同知傳을 中心으로-(黃在君, 近代文學의 形成過程, 文學과 知性社, 1983).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쥐〔鼠〕를 의인화한 우화 소설이다. 서대주(서동지)에게 은혜를 입은 다람쥐는 다시 서대주에게 도와 줄 것을 청했을 때에 서대주가 거절하자 이전까지 자신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잊어버린다. 그리고 배은망덕하게 서대주를 모함하여 산군백호(山君白虎)에게 허위 소송을 만들지만, 현명한 판관이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려 간악한 다람쥐를 벌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내용이다. 쥐와 다람쥐는 모두 같은 종류로서, 이들의 송사 사건을 통해 다람쥐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을 경계하고 징치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반 들쥐나 집쥐 등을 대단히 부정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반면, 다람쥐는 귀여운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다람쥐가 간악한 악인형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어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한편, 다람쥐의 무고한 송사를 나무라며 만류하다가 오히려 남편인 다람쥐에게 모욕을 당하는 계집 다람쥐는 너무도 통분한 나머지 집을 나가 버리기까지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조선 후기에 변화된 여성들의 자기 주장과 권리 의식 등을 더불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 선악형 인물이 대립된 권선징악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설이 널리 향유되었던 조선 후기 사회의 변모상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대주로 대표되는 당시의 계층은 무엇이며, 다람쥐로 대표되는 계층은 또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화 소설이 지닌 사회 비판과 풍자의 기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각을 길러야 하겠다.
심화 자료
우화소설(寓話小說)
우화의 수법을 구사한 소설로 소설 작품의 구성에서 우화(寓話)가 중심적인 기능을 할 때, 그러한 작품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즉, 우화가 소설 형태로 발전한 것이거나,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적 특성을 가진 작품들을 총괄해서 붙인 명칭인 것이다. 따라서 우화 소설에는 우화의 본질과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예컨대, 작품의 구조 원리가 극적인 아이러니로 나타난다든지, 등장 인물이 보편적인 인간 유형의 전형(典型)을 보인다든지, 주제가 교훈적이라든지, 작품 성격이 풍자적인 것 등이 그렇다. 고전 소설 가운데 ‘토끼전’, ‘장끼전’, ‘두껍전’, ‘서동지전’ 등은 우화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개 설〕
흔히는 전승우화 특히 동물우화를 모태로 하여 발전한 소설을 이르지만, 우화의 개념을 보다 넓게 잡으면 우화소설의 개념이나 범위도 확대될 수 있다. 통용되고 있는 개념으로서 협의의 우화는 동(식)물의 가면을 쓴 유형(전형)적 인물을 통하여 보편적인 인간본성과 행위원리를 예시해 주는 이야기로서, 본시 윤리적·교훈적 목적의식이 강하며, 반어(反語)를 통하여 인간성의 결함이나 부조리를 비판하려는 풍자성을 수반하고 있다.
우화소설은 이와 같은 우화의 전통으로부터 인물·사건의 전형성, 풍자성, 윤리적 목적의식을 물려받고 있으나 당대 생활의 재현을 지향하는 소설의 장르적 성격상 특정한 사회제도와 이념·풍습과 문화, 혹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삶의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윤리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화의 전통은 오래된 것이어서 일찍이 신라의 설총(薛聰)도 〈화왕계 花王戒〉라는 창작우화를 남긴 바 있으나 우화소설은 소설이 본격적으로 발흥되던 조선 후기의 소산이다. 봉건사회가 모순을 드러내고 그를 지탱하고 있던 가치관이나 윤리·이념의 획일적 권위가 현실 경험에 의하여 부정되던 이 시대에, 전형적 차원에서 현실을 재현하면서 풍자를 무기로 삼아 그릇된 인간 의식과 행태를 비판해온 우화는 소설 장르로 쉽게 전화, 이행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 및 내용〕
한글로 쓰여졌으며, 대개 우화에서 우화소설로 전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시기의 우화소설로는 〈토끼전〉·〈장끼전〉·〈서동지전 鼠同知傳〉·〈녹처사연회 鹿處士宴會〉·〈까치전〉 등이 있는데 그 중 판소리로 연창(演唱)되었던 〈토끼전〉·〈장끼전〉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토끼전〉은 전형적인 봉건군주와 관료로 행세하는 용왕과 자라의 형상을 통하여 봉건이념과 관료사회의 풍속을 조소·비판하는 한편, 미천한 하층인 토끼로 하여금 인간성의 해방을 주장하게 하여 그의 불안과 욕망을 현실의 문제로 부각시킨 작품이다.
〈장끼전〉은 장끼로 표상되는 봉건 가부장의 맹목적 권위의식과 몽매한 남자의 탐욕을 징계하는 한편, 부조리한 사회로부터 고난과 순종을 강요당하는 미천한 여인의 비극적 운명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까투리의 ‘개가(改嫁)’라는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행태가 이농 유랑민의 애환을 담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문으로 된 작품으로는 〈서대주전 鼠大州傳〉·〈와사옥안 蛙蛇獄案〉·〈서옥기 鼠獄記〉 등 옥기(獄記 : 재판기록)의 형식으로 된 작품들이 있는데, 이 중 〈서옥기〉는 작가의 독창성이 두드러지는 우화소설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창고를 털어먹은 큰 쥐의 범행에 대소 80여 종의 동식물이 연루되어 있는 옥사(獄事)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봉건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지배층의 수탈로 인하여 파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후기 농촌사회의 실상을 풍자적인 비유와 반어·역설·패러디(parody) 등 우화가 동원할 수 있는 갖가지 수법을 통하여 예리하게 묘파, 고발하고 있다.
〈서대주전〉·〈서동지전 鼠同知傳〉·〈황새결송(決松)〉·〈녹처사연회 鹿處士宴會〉·〈두텁전〉 등 향촌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는 빈농과 부농 간의 대립·갈등이 작가의 계층적 이해에 따라 상이한 시각으로 그려져 있으며, 이를 통해 부농층의 탐욕과 착취 또는 수령과 판관의 부패와 무능이 고발되고 있다.
〔특 징〕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우화소설은 우화 특유의 표현방식 즉 반어와 비유에 의한 우회적인 표현을 통하여 타락한 기성사회의 윤리·이념을 신랄하게 비판, 풍자하는 한편, 민중층의 새로운 가치와 윤리의식을 제시하며 그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을 심각한 현실적 문제로 제기할 수 있었다. 우화소설은 이 밖에도 인생과 사회의 단면을 압축과 비유를 통하여 극적으로 제시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화적 특성은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실의 구체적·역동적 실상을 총체적으로 인식, 반영하는 데 장애로 작용하며, 따라서 우화소설은 제기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그와 같은 현실의 관찰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검증해 가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화소설의 형식이 지니는 소설 장르의 한계는 명백하다.
중세 후기의 낡은 세계와 세계관에 대한 풍자, 또는 낡은 문학·소설에 대한 패러디로 기능하던 우화소설류는 근대의 여명기 즉 애국계몽기에 접어들면서 우화 고유의 교훈적 목적의식을 강화하며 다시금 등장하게 되고, 이후 경향파 이래의 근·현대소설로도 간간히 출현하게 된다.
꿈속에서 본 동물들의 정치토론회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서술된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은 우화에 토론의 형식을 가미한 애국계몽기의 우화소설로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계몽기의 우화류 작품들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현상이었으나, 앞에서 말한 한계로 인하여 기왕의 우화소설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예적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다.
이제까지 좁은 의미의 우화(beast fable) 개념에 기초한 우화소설에 대하여 주로 논급하였으나, 우화 개념을 넓게 잡아 우언(寓言) 또는 우의(寓意)로 이루어진 이야기(서구문학의 용어 allegory가 이에 해당한다) 일체를 우화라고 볼 때 우화소설의 개념은 좀더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가전(假傳)이나 가전체작품인 〈수성지 愁城誌〉·〈화사 花史〉, 나아가서는 환상적 구도 속에 역사와 현실을 접맥시키며 풍자적·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호질〉이나 몽유록계(夢遊錄系) 소설 등속으로까지 우화소설의 발달사는 넓게 추적해 갈 수 있다.
이들 작품은 현실세계의 보편적 양상에서 관련을 맺는 포괄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지향의 구도 및 환상과 자유로운 말의 진술, 당대의 지배적 담론과 충돌하는 심각한 역사철학의 문제의식, 혹은 비판적인 주제의식과 사상을 직설과 비유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표출해내고 있다. 현대의 우화소설도 이 같은 넓은 의미의 우화소설인 경우가 많다.
≪참고문헌≫ 朝鮮小說史(金台俊, 學藝社, 1939), 한국문학통사(조동일, 지식산업사, 1982), 조선후기 우화소설연구(민찬, 태학사, 1995), 동물우언의 전통과 우화소설(유증준, 월인, 1999), 寓話小說硏究(鄭學城, 國文學硏究 17, 서울大學校, 1972), 寓話小說 鼠獄記의 小說史的 價値(鄭學城, 張德順先生還甲記念 韓國古典散文硏究, 東亞文化社, 1981), 朝鮮後期寓話小說의 社會的 性格(鄭出憲, 高麗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9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사소설(訟事小說)
억울한 일을 관청에 호소하여 해결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고전소설. ‘사법(司法)관청의 법정에서 자라난 소설’이라는 뜻에서 ‘공안소설(公案小說)’이라고도 한다. ‘송사사건(訟事事件)의 발생, 해결과정 및 그 결과’가 소설의 발단·분규 및 결말에 대응되는 구조를 이루며 전개되는 소설이다.
공안이라는 용어는 원래 중국어로, 이 말의 본래 의미는 ‘관공서의 문서’라는 뜻이었다. 그것이 뒷날 ‘재판사건의 문서’라는 의미로 전용되어, 중국의 소설이나 희곡의 한 갈래 명칭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안’이란 용어는 소송사건, 재판사건이라는 뜻으로 쓰인 용례를 우리 문헌에서 찾을 수 없고, 또, 이는 재판사건에서의 해결자를 중심으로 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대립 당사자 중심으로 전개되는 송사소설 작품을 지칭하기에는 그 포괄성이 부족하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공안’이라는 어휘는 소설의 갈래 명칭으로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작품 및 연원〕
송사소설에 해당되는 작품으로는 〈황새결송〉·〈서대주전〉·〈서동지전〉·〈와사옥안〉·〈서옥기〉·〈까치전〉·〈녹처사연회〉·〈정수경전〉·〈장화홍련전〉·〈김인향전〉·〈김씨열행록〉·〈김씨남정기〉·〈다모전〉·〈신계후전〉·〈양반전〉·〈왕경룡전〉·〈몽결초한송〉·〈이운선전〉·〈은애전〉·〈유연전〉·〈박효랑전〉·〈홍열부전〉·〈정효자전〉·〈김순부전〉·〈진대방전〉·〈옥낭자전〉·〈박문수전〉·〈삼사횡입황천기〉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 송사소설의 자생적 연원으로는 고조선의 팔조금법(八條禁法)에서 유추되는 송사사건, 탈해신화의 송사모티프 및 고려시대의 각종 송사설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송사소설의 형성과 전개의 구체적 모습은 조선 전기 이후부터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회는 통치 이념과 제도로 볼 때 송사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억울한 피해자가 많이 생겨나는 현실에서 기인되는 송사에의 관심과, 송사를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에서 기인되는 관심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로는 인율비부(引律比附)·불응위(不應爲) 등의 임의적 법 적용과 소급입법, 법 적용의 신분적 차별, 고문의 제도적 허용, 사적(私的) 복수의 묵인 등을 들 수 있고, 후자로는 흠휼(欽恤)의 애민정치(愛民政治), 사대부에게 율서(律書)를 필독시키고 지방수령의 평가기준 및 임용자격으로 송사의 처리능력과 경력이수를 필수적인 요건으로 부과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바로 송사소설이 형성될 수 있었던 사회·법제적 토대를 의미한다.
송사소설의 제재적 근원으로는 실사(實事)와 설화를 들 수 있다. 설화가 소설화된 작품에는 〈정수경전〉·〈서대주전〉·〈황새결송〉·〈옥낭자전〉·〈진대방전〉 등이 있고, 실사가 소설화된 작품으로는 〈유연전〉·〈홍열부전〉·〈박효랑전〉·〈진대방전〉·〈김순부전〉·〈정효자전〉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각종 야담집과 ≪목민심서≫·≪흠흠신서 欽欽新書≫·≪임관정요 臨官政要≫·≪율례요람 律例要覽≫·≪수교정례 受敎定例≫ 등에 수록된 송사설화 및 실사를 바탕으로 작자의 허구성과 작의성에 의하여 소설화된 작품들이다.
〔내용 및 특징〕
송사소설의 주요한 내용은 송사의 발생동인과 갈등양상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것을 ① 신분갈등, ② 가족성원 갈등, ③ 향촌사회의 계층갈등, ④ 권력의 횡포와 저항의지와의 갈등, ⑤ 관습·규범의 억압과 극복의지와의 갈등 등으로 크게 유형화할 수 있다.
①에 해당되는 작품으로는 〈신계후전〉·〈양반전〉을 들 수 있고, ②의 작품으로는 〈장화홍련전〉·〈김씨열행록〉·〈김인향전〉·〈홍열부전〉 등을, ③의 작품으로는 〈황새결송〉·〈서대주전〉·〈까치전〉 등을, ④의 작품으로는 〈유연전〉·〈박효랑전〉·〈김순부전〉 등을, ⑤의 작품으로는 〈정수경전〉을 들 수 있다.
송사소설의 특징으로는 사건의 발생과 해결이 ‘과제부여’와 ‘과제해결’의 수수께끼적 구조를 지닌다는 점과 함께, 송사사건의 결말이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뚜렷이 부각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수수께끼적 구조는 단순형·중복형·액자형·병렬형·복합형 등의 다섯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서 특히 액자형·병렬형·복합형에 해당되는 각각의 작품들은 그 다원적·복합적 구성방식으로 인하여 갈등의 다양성과 함께 추리적 긴장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
송사소설의 결말은 원억형(潽抑型)·신원형(伸寃型)·화해형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원억형 결말 작품들은 억울하게 핍박받는 자의 한(恨)이 맺히는 모습을 통하여 당시 사회의 부패·타락상을 비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신원형 결말 작품들은 한의 맺힘과 풀림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등장인물의 기쁨은 물론, 독자까지도 함께 풀이의 축제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화해형 결말의 작품은 윤리적 타락의 상태를 올바로 일깨움으로써 반성을 통한 교화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송사소설의 시대적 흐름을 살펴보면, 15·6세기까지는 〈왕랑반혼전〉·〈남염부주지〉·〈설공찬전〉 등 명부심판모티프를 축으로 전개되는 소설들이 창작되었다. 이들은 현실적 의미의 송사 사건을 형상화한 송사소설 그 자체는 아니나, 인간의 사후 세계를 현세적 삶에서 지은 선악의 판결을 통해 자리매기고자 한다는 점에서 송사소설의 전단계적 형태라 할 수 있다.
17세기에 이르면 송사모티프는 현실재현적 구체성의 모습을 온전히 지니고 소설화 된다. 이 시기의 송사소설로는 〈유연전〉·〈홍열부전〉·〈김씨남정기〉·〈장화홍련전〉 등이 있는데, 이들은 실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기에 사실주의적 지향이 뚜렷하며, 신원형 결말을 통해 교화적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18·9세기의 송사소설은 당대 현실에 대해 더욱 심화된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서대주전〉·〈황새결송〉 등과 같이 원억형 결말을 통해 현실비판정신을 그려내는 소설도 있고, 〈양반전〉·〈삼사횡입황천기〉처럼 판단유보적인 개방형 결말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다원적 현실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소설도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담당층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이본이 창작되며, 기존의 문학관습을 차용해 새로운 작품이 창작되기도 한다.
근대전환기에도 송사모티프는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이 시기의 신문연재소설 및 신소설의 일부에서는 송사모티프가 삽화적 기능 또는 플롯주도적 기능을 띠고 나타난다.
근대전환기의 송사소설은 전대적 유형구조를 개작한 작품들과 추리·탐정적 구조로 나아가는 창작 작품들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에는 〈김씨열행록〉의 개작인 〈구의산〉, 〈장화홍련전〉의 개작인 〈봉선화〉, 〈신계후전〉의 개작인 〈탄금대〉 등이 있고, 후자에는 〈마굴〉·〈쌍옥적〉·〈현미경〉 등이 있다.
이들 소설은 세부정황의 진술, 장면제시적 묘사, 현실적인 사건 해결, 시간역전기법의 도입, 서술자 개입의 축소 등을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주제면에서 개화사상의 강조라는 새로운 주제를 은연중에 표현하기도 한다.
〔의 의〕
송사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로는 우리 설화의 중요한 모티프의 하나인 수수께끼 모티프를 소설로 형상화함으로써 추리적 성격을 지닌 소설작품이라는 점과, 여타의 고전소설에 비하여 리얼리티가 비교적 풍부한 소설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후자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송사소설은 평범한 인물의 일상적 활약상, 삶의 한 단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꿈의 기능 퇴조, 지상계에서의 사건진행 등의 측면에서 여타의 고전소설과는 구별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바로 송사소설이 리얼리티를 지닌 작품들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까닭을 현실적 주요 관심사의 소설화, 우연성이 절제된 구성방식, 작자의 현실 지향의식이 기존질서의 회복의지와 모순·부조리의 현실 고발의지 등 두 방향으로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송사소설은 우리 고전소설의 한 갈래로서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그 까닭은 ① 송사소설 모두가 ‘송사사건의 발생과 해결과정·판결 및 그 결과에 대한 반응’이라는 구조적 유사성을 지니며, ② 송사소설의 결말 유형, 즉 신원형·화해형 결말과 원억형 결말은 각각 교훈적이거나 비판적 주제의식을 지닌다는 점에서 이들은 효용적 유사성의 묶음이며, ③ 당대의 송사소설의 담당층은 송사소설이라는 갈래적 준거틀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와사옥안(蛙蛇獄案)〉을 통해 알 수 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려 했다.’는 사량도의 지명 전설을 제재로 삼아 이를 일련의 재판 과정을 담은 소설 〈와사옥안〉으로 형상화한 바탕에는 이와 같은 유형구조의 기존 관습 갈래가 결정적 준거틀로 작용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송사소설은 구조적·효용적 유사성 및 담당층의 갈래의식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갈래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송사소설은 리얼리티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고전소설에서 차지하는 위치 또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棠陰比事(奎章閣本·國立圖書館本), 增補朝鮮小說史(金台俊, 學藝社, 1939), 受敎定例·律例要覽(法制處, 1970), 韓國訟事小說硏究(李憲洪, 三知院, 1997), 話本小說槪論(胡士瑩, 丹靑圖書有限公司, 1983), 中國公案小說史(黃岩柏, 遼寧人民出版社, 1991), 中國公案小說藝術發展史(孟犁野, 警官敎育出版社, 1996), 朝鮮朝訟事小說硏究(李憲洪, 釜山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87), 訟事型 古典小說 硏究(김충실, 梨花女子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91), 朝鮮後期訟事小說硏究(신영주, 상명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7),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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