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을 읊다(詠笠 : 영립)
by 송화은율삿갓을 읊다(詠笠 : 영립)
浮浮我笠等虛舟 부부아립등허주
一着平生四十秋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목견경장수야독
漁翁本色伴沙鷗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취래탈괘간화수
興到携登翫月樓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속자의관개외식
滿天風雨獨無愁 만천풍우독무수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네.
속인(俗人)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요점 정리
지은이 : 김병연(김삿갓)
연대 : 조선 철종
형식 : 칠언 율시
표현 : 대구(3,4와 5,6연의 대구)
성격 : 상징적, 낭만적, 탈속적, 비판적
어조 : 삶에 대한 달관과 긍정의 목소리
압운 : 주, 추 구, 루, 수
구성 : 수-함-경-미의 4단 구성 : 삿갓의 의미/ 삿갓의 자유로운 삶/ 삿갓과 함께한 풍류적인 삶/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
특징 : 노골적인 비판과 풍자
제재 : 삿갓
주제 : 방랑 의식과 소탈한 삶의 태도에 대한 자부심
의의 : 이 작품은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에서 언제나 벗이 되어 주고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작자는 이때부터 '병연'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삿갓을 쓴 이름 없는 시인이 되었다. 즉 이 시는 표연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작자 자신의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다.
내용 연구
가뿐한 내 삿갓[시적 화자의 방랑자적 삶을 표상함, 가난, 무욕, 자유의 의미인 동시에 인생의 동반자,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이 빈 배와 같아[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 삿갓 쓰고 방랑하는 자신의 생활을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살아가겠다는 삶의 태도가 엿보인다. '빈 배'는 '뜬구름;처럼 자유로운 나그네의 심상을 가지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며 그 속에는 무욕의 의미도 담겨 있다.]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가뿐한 내 삿갓이 - 쓰게 되었네 :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과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빈 배'는 '뜬구름'처럼 자유로운 나그네의 심정을 비유하는 표현이며 또한 무욕을 의미하기도 한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목동은 - 본색을 나타냈지 : 목동과 어부의 삶을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봄(서민의 자유로운 삶)]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자유롭게 벗고 쓰는 존재로 삿갓을 의미]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네.[취하면 - 달구경하네 : 서민들의 낙천적인 면모와 풍류적 삶]
속인(俗人)들의 의관[옷과 관으로 예의바른 옷차림]은 모두 겉치장이지만[속인은 양반을 말하는 것으로 양반들의 허례허식을 비판]
하늘 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속인(俗人)들의 -걱정이 없네 : 가식에 찬 속인들의 삶과 대조적인 소탈한 삶에 대한 자부심을 표명하고 있으며,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
'삿갓을 읊다'를 읽고, 작자는 '삿갓'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리해 보자.
- 작자는 '삿갓'을 마치 '빈 배'나 '갈매기'와 같은 존재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즉 '삿갓'은 아무 가진 것 없어도 무심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자유로운 방랑자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편, '삿갓'의 이미지를 결코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것으로 그리지 않고, 자유롭게 벗고 쓰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또한 '삿갓'은 속인들의 의관(여기서 '속인'이란 사대부들을 가리킨다.)과 대조적인 것으로, 겉치레가 아닌 비바람을 막아 주는 현실적인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들을 고려할 때 '삿갓 쓴 삶'이란 허위와 가식을 벗어 버린 진솔한 삶이자, 무소유의 자유와 흥취, 생활에 뿌리 내린 현실적 삶을 지향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박목월의 시 '나그네'이다. 앞에서 배운 김삿갓의 시와 비교해서 읽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南道 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1) 다음 시구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적어 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아무런 걱정 없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기는 한 평범한 사람을 연상시킨다.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직유의 표현은 곧 '나그네'의 삶에 대한 태도가 그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모습을 보인다는 뜻이다.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 저녁놀이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산 너머로 해가 지는 시골 마을의 모습이 원경(遠景)으로 떠오른다. 멀리 보이는 그 마을에서 술 익는 냄새가 난다는 표현이 시각과 후각을 결합한 공감각적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노을의 붉은 빛과 술 내음에 취하는 나그네를 감정적으로 동화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2) 이 시와 김삿갓 시에 나타난 화자를 비교할 때 각각의 삶의 태도는 어떠한지 말해 보자.
우선 두 시에는 '나그네'의 형상이 나타나 있다. 두 시의 '나그네'는 정처 없이 유랑하는 삶에 대해 비애나, 슬픔, 고뇌, 갈등을 나타내지 않는다. 즉 안빈낙도(安貧樂道),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목월의 시에 나타난 '나그네'의 모습은 철저히 아름다운 자연에 속한 채 멀리 사라지는 낭만적이고 정적인 존재로 그려진 반면, 김삿갓 시의 '나그네'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현실적이고 동적인 존재로 구체화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해와 감상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 그리해서 '병연'은 그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병연'이란 이름을 스스로 숨기고 잊어 버렸다. 그리고 삿갓을 쓴 이름없는 시인이 되었다....그가 읊은 자신의 '삿갓'시는 표연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출처 : 양기원, '김삿갓 이야기'에서)
심화 자료
삿갓의 상징성
'삿갓'은 흔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데 쓰이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작자는 비바람을 막아주기도 하는 '삿갓'에 현실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어막의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빈 배와 같'다고 함으로써 방랑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은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김삿갓의 사상
김삿갓의 방랑 생활은 출발 동기부터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의 불만과 저항은 가문의 몰락에서 시작되었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폭넓은 경험을 함에 따라 세계관과 사회관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 조선 왕조에 대해 은근히 반대의 감정을 표시한 것은 물론 봉건 질서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였으며, 빈부의 차가 심한 사회적 불합리를 비판하고 양반 귀족들의 죄악과 불의, 거만, 허식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에 나타난 이러한 변동은 조선 말기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과 당대 사회의 변혁적 기운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의 사상의 중심적인 경향은 강한 의분과 정의감에 기초한 반항 정신과 풍자 정신이었으며 인도주의로 뒷받침되는 평민 사상이었다.(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삶의 문제 의식과 존재 탐구
삶에 대한 문제 의식과 존재에 대한 탐구는 모순된 현실에 대한 고발을 통해서 나타날 수도 있고, 낙원에 대한 동경으로서 표출될 수도 있으며, 고독한 존재에 대한 내면적 탐구의 형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 모든 길은 결국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에 대한 지향이 투영된 것이다. 김삿갓의 한시 작품에서 우리는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삶의 변방을 방랑했던 작자의 삶에 대한 문제 의식과 존재 탐구를 향한 진솔한 목소리를 읽어 볼 수 있다. (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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