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항해(航海) / 예이츠(W.B.Yeats)
by 송화은율비잔티움의 항해(航海) / 예이츠(W.B.Yeats)
1
저 곳은 늙은이들이 살 나라가 못 된다, 서로 껴안고 있는
젊은이들, 나무 속의 새들
―저 죽어 가는 세대들―은 노래 부르며,
연어―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
물고기, 짐승, 혹은 조류(鳥類)는 온 여름 내내 찬미한다.
온갖 배고 태어나고 죽는 것들을.
관능의 음악에 흘리어, 모두가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
2
늙은이는 다만 하나의 하찮은 물건,
막대기에 걸린 다 헐어진 옷, 만일
영혼이 손뼉치며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죽어야 할 옷의 조각조각을 위해 더욱더 소리 높이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또한 거기엔 영혼의 장려한 기념비를 공부하는
노래 학교만이 있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항해해 왔다.
3
오 마치 벽의 황금빛 모자이크 속에 있는 것처럼
신의 성스런 불 속에 서 있는 성인들이여,
성화(聖火)로부터 나오라, 감돌며 내려오라,
그래서 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라.
나의 심장을 태워 없애라. 욕망으로 병들고
죽어 가는 동물에 얽매이어
심장은 스스로가 뭔지 알지 못하니, 그리고 나를
영원한 예술품 속에 넣어 다오.
4
일단 자연을 벗어나면 나는 결코
어떠한 자연적인 것에 닮은 육체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리,
오직 희랍 금세공이
졸음 오는 황제를 잠 깨워 놓기 위해,
혹은 비잔티움의 귀족과 귀부인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노래해 주도록 황금가지 위에 앉혀 놓은
금박 혹은 황금 에나멜로 만든
그런 형상(形象)이 되리라.
요점 정리
작자 : 예이츠(W.B.Yeats) 아일랜드 시인. 극작가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이미지즘
표현 : 상징적
제재 : 불변의 진리와 젊음
주제 :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추구
구성 :
1연 : 늙지 않는 지성 세계의 찬미
2연 : 지성 세계에 온 자신
3연 : 영원 속에 살고자 하는 정신
4연 : 자연이나 권세와는 다른 세계에의 동경
출전 : 탑
내용 연구
온갖 배고 태어나고 죽는 것들 : 출생하여 성장하다가 결국에는 죽는 것들, 즉 유한(有限)한 것들.
오 마치 벽의 - 서 있는 성인들이여 : 이태리의 성당과 성벽에 부조(浮彫)된 순교자의 행렬에서 비잔티움의 세계를 연상하고 있는 시구로, 이 시의 창작에 결정적 영향을 준 이미지이다.
이해와 감상
예이츠(W.B.Yeats)는 자신이 직접 쓴 이 시의 주(註)에, "비잔티움 황제의 궁전에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한 그루의 나무가 있으며, 노래하는 인공의 새가 있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직접 체험하지 못한 상상의 세계를 재료로 하여 지적(知的)이고 추상적인 예술의 세계로 형상화하고 있다. 실제로 예이츠는 비잔티움을 방문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태리의 곳곳에 남아 있는 비잔티움의 모자이크 양식과 벽면에 부조(浮彫)된 순교자 행렬을 통하여 비잔티움의 세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3연의 표현은, 이태리 라벤나(Ravenna)에 있는 산 아폴리내르 누우보(San Appolinaire Nuovo)의 북쪽 벽에 모자이크되어 있는 순교자 행렬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이처럼 그는 실제의 자연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어느 하나로 지정할 수 없는 주지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인공의 새와 같이 영원히 불변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 시를 쓸 때, 그의 나이는 60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육체보다는 정신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떻든 이 시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광이 계속되고 있음을 예찬하고, 이러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 시는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은 예이츠의 후기 시 세계를 보여 주는 대표작의 하나로 꼽힌다.
심화 자료
낭만주의와 '싱징'의 관계
예이츠가 예찬하고 있는 비잔티움이 그처럼 아름다움과 청춘으로만 가득 찬 현실 세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자인 예이츠는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먼 나라에 대한 동경의 시선으로 비잔티움을 아름답게 윤색시키고 있다. 비잔티움은 현실을 초월한 신비의 공간으로서 강렬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비잔티움(Byzantium)
나중 이름은 Constantinople, 지금의 Istanbul. 보스포루스 해협의 연안에 있는 옛 그리스의 도시. 수도가 콘스탄티노플이었던 비잔틴 제국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현재의 이스탄불로 이스탄불은 터키의 최대 도시이며 해항으로 흑해 어귀에 있는 구릉성 3각형 반도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양쪽에 걸쳐 있어서 유럽·아시아 양 대륙에 속한다. 비잔티움은 BC 8세기말경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로 건설한 곳으로서 BC 512년 페르시아 제국으로 넘어갔고, 그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기도 했다. 로마 공화정 치하에서 자유도시였다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재위기간(69~79) 동안에는 로마의 직접 지배를 받았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수도로 채택되면서 '신로마'(New Rome)로 개칭되었다. 330년에는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뒤에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치하에서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도교 도시로 포고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세계의 종교 중심지가 되었다. 6~13세기에는 페르시아인·아랍인·불가리아인·러시아인들에게 자주 포위당했다. 1203년 제4차 십자군에게 점령당해 이들에게 약탈당하고, 로마 가톨릭 지배하로 들어갔다. 1261년 다시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에게 또다시 넘어갔다. 메메드 2세 치하에서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고, 1453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뒤 1922년까지 평화로운 번영의 시기가 지속되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졌고, 콘스탄티노플은 1930년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칭되었다.
유럽 지구에 전체주민의 3/4 이상이 거주하며, 주요 상사·호텔·사무실 등이 집결되어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도시(Stamboul) 안에는 비탈이 가파르고 꼭대기가 평평한 7개의 구릉이 있는데, 이곳은 가장 중세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좁은 해협인 골든혼(Golden Horn) 건너편에 자리잡은 베욜루는 이스탄불 시의 현대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구역으로, 극장과 수많은 터키 정부청사들이 들어서 있다. 이스탄불의 기후는 아열대 및 지중해성 기후로서 연평균기온은 14℃, 연강수량은 760~900㎜이다.
터키의 제조업 공장들 가운데 약 1/3을 수용하며, 주요공업으로 섬유·시멘트·유리·가죽제품 제조업과 담배 가공업, 자동차 및 트럭 조립업, 인쇄업, 조선 및 선박수리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대규모의 터키은행과 외국 보험회사들이 시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관광업이 중요한 수입원이다.
커다란 역사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로서 과거로부터 이어져내려오는 수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보존이 잘 된 기념물들로는 예레브스탄 궁전(지하 궁전)과 콘스탄티누스 궁전(텍푸르 궁전,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1,000년경 건립)이 꼽힌다. 고대에 세워진 많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상당수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더러는 모스크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들 중 가장 큰 것은 하기아 소피아로서 1453년 모스크로 바뀌었다가 1935년에 박물관이 되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톱카피 궁전에는 문서·도기·갑옷·직물 등 터키의 중요한 수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수세기 동안 터키의 문화 중심지였다. 새로 생긴 문화시설에는 1969년 예술 센터로 개관된 아타튀르크 문화궁전이 있으며, 여러 학술단체와 연구소·박물관·도서관 등도 있다. 터키 최대·최고(最古)의 고등교육기관인 이스탄불대학교가 있으며, 그밖에 이스탄불공과대학교·마르마라대학교·보스포루스대학교·미마르시난대학교·일디즈대학교 등이 있다. 철도를 통해 동서 유럽 및 중동의 시리아·이라크와 연결된다. 이스탄불 시의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를 잇는 보스포루스 다리(길이 1,073m)는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 현수교들 중의 하나이다. 서쪽으로 27㎞ 지점에는 예실쾨이 국제공항이 있다. 이스탄불의 항구는 터키의 수출입품목의 대부분을 취급한다. 면적 254㎢, 인구 5,475,982(1985).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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