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녕자(丕寧子)
by 송화은율비녕자(丕寧子)
선덕 여왕 원년에 백제가 감물, 동잠 두성을 치므로, 비녕자가 말을 채찍으로 치고 창을 빗겨 들고 돌진하여 두 사람을 찔러 죽이고 죽다. 그 아들 거진이 이것을 바라보고 달려들고자 하므로 종 합절이 가로되, "대인이 나를 하여금 낭을(그대를) 모시고 집에 돌아가 부인을 위로하라 하시니, 이제 그대 아비 명을 저버리고 어머님 사랑을 버림이 마땅하나이까?"하며, 말 고삐를 잡고 놓지 아니하니, 거진이 가로되, "아비 죽는 양을 보고 구차히 살아 있음이 어찌 효이리요."하고 칼로 합절의 칼을 치고 달려들어 싸워 죽다. 합절이 가로되, "주인이 죽으니 죽지 아니하고 무슨 일을 하리요." 하고 또한 싸워 죽다.
요점 정리
작자 : 설순, 세종조 부제학
연대 : 세종14(1432)년 간행, 성종12(1481)년에 국문으로 번역됨.
형식 : 전기식으로 인물과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시 형식으로 이를 찬미함. 3권 1책
내용 : 세종이 설 순에게 명하여 중국과 우리 나라의 삼강 즉 충, 효, 열에 뛰어난 110 인의 행실을 한문으로 기록하고, 한쪽에는 그림을 그려 그 본보기를 보였고, 아울러 시로써 찬미해 놓은 것.
판본
① 성종 때 간행된 것은 목판본
② 영조 5(1729)년까지 여러 번 중간됨
③ 정조 21(1797)년에는 삼강행실도와 합하여 오륜행실도가 이루어짐.
주제 : 비녕자의 충성과 그 아들 거진 및 종합절의 충성스러운 사적을 적은 글.
문체 : 역어체
의의 :' ㅸ' 'ㆆ '자가 나타나는 등 국어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됨.
내용 연구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보고, 구차히 삶이 어찌 효이겠는가
이해와 감상
삼강(三綱)중, 충을 주제로 한 것으로, 신라 시대의 무인 비녕자와 그 아들 거진, 종 합절의 충성과 거룩한 순절을 적은 글로, 화랑 오계중 임전 무퇴 정신을 잘 보여 준 것으로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무인 비녕자의 충, 그 아들 거진의 효, 종 합절의 의리가 하나로 뭉친 숭고한 충절과 순사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장엄함이 있다. 이 삼위일체의 거룩한 성충은 정과 의가 메말라 버린 현대인에게도 생활의 귀감이 되어 마땅하리라고 보면서도 국가우선주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다.
심화 자료
비녕자(丕寧子 [?~647])
?∼647(진덕여왕 1). 신라 중고기의 용사. 출신지 및 족성(族姓)은 모른다. 삼국시대 말기 신라와 백제의 항쟁이 한창이던 중, 647년(진덕여왕 1)에 백제의 대군이 무산(茂山)·감물(甘勿)·동잠(桐岑) 등 3성을 공격해오자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은 1만의 군사로 이를 막았다.
그러나 백제군은 매우 강하여 전세는 신라에 불리해지고 신라군의 사기는 떨어졌다. 그러자 김유신은 비령자에게 이때야말로 그 용맹을 드러낼 때라 하며 군사들의 사기를 드높일 임무를 주었다.
비령자는 주저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군사들 가운데 그러한 중대한 임무를 자신에게 맡겨주는 것은 장군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이라 감격하여 이에 보답하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적진에 돌진하여 적과 싸우다 죽었다.
이를 본 그의 아들 거진(擧眞)은 종 합절(合節)에게 남긴 아버지의 유언도 듣지 않고 적진으로 돌진하여 싸우다 죽었으며 합절도 그의 뒤를 따랐다. 이들 3인의 용맹과 죽음은 신라군의 사기를 크게 북돋우었으며 결국 신라군은 백제군 3,000여급을 베고, 백제장수 의진(義眞)은 혼자 달아났다.
이로써 신라군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김유신은 이들 3인의 시체를 거두어 자신의 옷으로 덮어주며 통곡하였고, 왕도 이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고 예로써 반지산(反知山)에 장사지내주고 그 가족에게는 후한 상을 주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東國通鑑.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조선 세종 때 엮어진 도덕서(道德書)로 목판본. 3권 1책. 1431년(세종 13)에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 설순(乾循) 등이 왕명에 따라 조선과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 등 3강(三綱)의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를 각각 35명씩 모두 105명을 뽑아 그 행적을 그림과 글로 칭송한 책이다. 각 사실에 그림을 붙이고 한문으로 설명한 다음 7언절구(七言絶句) 2수의 영가(詠歌)에 4언일구(四言一句)의 찬(贊)을 붙였고, 그림 위에는 한문과 같은 뜻의 한글을 달았다. 그 후 이 책은 1481년(성종 12)에 한글로 번역되어 간행되었고, 이어 1511년(중종 6)과 1516년, 1554년(명종 9), 1606년(선조 39), 1729년(영조 5)에 각각 중간되어 도덕서로 활용되었다.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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