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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不條理)의 철학(哲學) / 카뮈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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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不條理)의 철학(哲學) / 카뮈

신들은 시지프에게 끊임없이 산꼭대기에까지 바위덩어리를 굴려 올리게 하는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돌덩이는 그 자신의 무게로 해서 그 꼭대기에서 다시 굴러 떨어지곤 하였다. 그들이 무익하고도 희망 없는 일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일리가 있었다.

 

호머의 말에 의하면, 시지프는 인간 중에 가장 현명하고 또한 가장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른 설화에 의하면, 그는 강도의 직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모순(矛盾)이 없다고 본다. 그에게 지옥의 무익한 노동자가 되게 한 동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첫째로 그는 신들을 경시했다고 비난을 받는다. 그는 신들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다. 아조프의 딸 에진은 주피터에게 납치당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 실종에 놀라서 시지프에게 이를 호소하였다. 이 납치 사건을 알고 있던 그는 코린트 성에 물을 대준다는 조건으로 아조프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겠노라고 제의했다. 하늘의 노여움보다도 그는 물의 은총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지옥에서 벌을 받게 되었다. 호머는 시지프가 사신을 쇠사슬에 얽어맸다는 것도 또한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플루톤(지옥왕인 죽음의 신)은 황량하면서도 적요로운 자기 왕국의 모습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전쟁의 신을 급파하여 사신(死神)을 그의 정복자의 손에서 해방시켰다.

 

또한 시지프가 죽음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기 아내의 애정을 무모하게 시험해 보려 했다고도 한다. 그는 아내에게 자기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광장 한복판에 던질 것을 명령하였다. 시지프는 지옥에 떨어졌다. 인간적인 사랑과는 너무나도 어긋나는 아내의 이 복종에 화가 난 그는 아내를 벌하기 위해서 지상으로 되돌아갈 허락을 플루톤에게서 얻어냈다. 그러나 다시금 이 세상의 얼굴을 보고, 물과 태양, 뜨거운 돌과 바다의 맛을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지옥의 그늘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소환, 분노, 경고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또 다시 여러 해 동안, 그는 하구의 연안, 찬란한 바다 그리고 대지의 미소 앞에서 살았다. 신들의 체포가 필요하게 되었다. 메르쿠리우스(주피터의 아들인 신들의 사자)가 이 담대한 자의 목덜미를 잡고 그의 기쁨을 빼앗고는, 바위가 이미 준비되어 있는 지옥으로 강제로 끌고 갔던 것이다.

 

시지프가 부조리의 영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이해하였다. 그는 그의 고통으로서만이 아니라 정열로서도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와 삶을 향한 정열은 온갖 존재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일에 전념해야 되는 이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이 지상의 정열을 위하여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대가이다. 지옥에 있는 시지프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전해진 것이 없다. 신화란 상상력이 그 신화에게 생명감을 주도록 만들어져 있다. 신화에서는 단지 거대한 바위를 들어올리기 위하여 수백 번 되풀이하여 언덕으로 돌을 굴려 올리는 긴장된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경련이 인 얼굴, 바위에 비벼 대는 뺨, 진흙으로 뒤덮인 바위 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 그 바위 덩어리를 고정시키려고 버틴 다리, 다시 돌을 받아 안은 팔, 흙투성이가 된 아주 인간적인 믿음직스런 두 손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 측량되는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적을 달성된다. 이때 시지프는 순식간에 이 돌이 하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꼭대기로 다시 끌어 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벌판으로 다시 내려간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돌아오는 동안이고 멈춰 있는 동안이다. 바로 바위 곁에 있는 기진 맥진한 얼굴은 이미 바위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거운 그러나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그 끝을 알지 못하는 고뇌를 향하여 다시 내려가는 것을 본다.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그의 불행과도 같이 틀림없이 되돌아오는 이 시간, 이 시간은 의식(意識)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로 차츰차츰 빠져 들어가는 순간마다, 그는 자기의 운명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바위보다 강하다.

 

만일, 이 신화가 비극적이라면, 그것은 그 영웅이 의식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성공한다는 희망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를 지탱한다면 그의 고통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는 자기 생의 매일매일을 같은 일에 종사하며 그리고 그 운명은 부조리하다. 그러나 그 운명은 의식을 갖게 되는 드문 순간에 있어서만 비극적일 뿐이다. 신들의 프롤레타리인 무력하고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에 대해서이다. 그의 고뇌를 이루게 했을 명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성취시킨다. 멸시로써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없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시지프의 하산이 어떤 날에는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또한 기쁨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 말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는 또한 기쁨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 말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는 또한 바위를 향해 되돌아오는 시지프를 상상해 본다. 그런데 고통은 시초에 있었다. 대지의 영상들이 기억에 너무나 생생할 때, 행복의 부름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질 때, 슬픔은 인간의 마음 속에 싹트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위의 승리이며 바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엄청난 비탄은 감당하기에 너무 무겁다. 이것은 우리들의 겟세마네의 밤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진리는 인식됨으로써 소멸된다. 이와 같이 외디프스도 처음에는 그것을 모르면서 운명에 복종한다. 그가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의 비극은 시작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눈멀고 절망에 빠진 그는 자기를 세상에 연결시키는 유일한 끈은 한 젊은 처녀의 싱싱한 팔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터무니 없는 말이 울려온다. "그처럼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내 고령과 내 영혼의 위대성은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은 좋다고 판단하게 한다." 이렇게 소포클레스의 외디프스는 도스토에프스키의 키리로프처럼 부조리의 승리의 방식을 제시한다. 고대의 예지가 현대의 영웅주의와 합치된다.

 

행복의 어떤 개요를 쓰려는 시도 없이는 부조리는 발견되지 않는다. "뭐라고! 그렇게 좁은 길을 통해 ………?" 그러나 세계는 단 하나밖에 없다.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대지의 두 아들이다. 이들은 떼어놓을 수 없다. 행복은 부조리의 발견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부조리의 감정은 또한 행복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좋다고 나는 판단한다."고 외디프스는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신성하다. 이 말은 모든 것은 탕진되지도 않았고 탕진된 일도 없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말은 모든 것은 탕진되지도 않았고 탕진된 일도 없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말은 불만과 무용한 고통에 대한 감식안을 가지고 이 세계로 들어온 신을 여기에서 추방한다. 이 말은 인간의 문제, 인간 사이에서 해결되어야만 하는 인간의 문제를 운명으로부터 이끌어 낸다.

 

시지프의 말없는 온갖 기쁨은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의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주시할 때, 모든 우상을 침묵케 한다. 갑자기 침묵에 이른 우주 안에서 무수한 감탄의 작은 소리들이 대지로부터 솟아오른다. 무의식적이고 비밀스런 부름, 모든 얼굴들의 초대는 승리의 필연적인 이면이요 대가이다. 그림자 없는 햇빛이란 없으며 따라서 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조리의 인간은 긍정으로 대답하며, 그의 노력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개인적인 운명은 있을지라도 초월적 운명이란 결코 없다. 혹 있다면 다만 숙명적이고 경멸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운명이 있을 뿐이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인간은 자기의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이 자기의 삶을 향해 돌아서는 그 미묘한 순간에 시지프는 자기의 바위로 되돌아가면서 연결 없는 이 행위의 연속,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기억의 눈길 밑에서 통일되고 또한 멀지 않아 죽음에 의해 봉인될 그의 운명이 되는 이 행위의 연속을 바라본다. 인간적인 것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근원이 있음을 확신하는 그는, 보기를 원하고 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장님인 그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간다.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진다.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남겨둔다! 우리는 언제나 그의 무거운 짐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고 바위를 들어올리는 고귀한 성실을 가르쳐 준다. 그도 또한 모든 것은 좋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 주인이 없게 되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도 아니고 소용없는 것도 아닌 듯이 보인다. 이 바위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이 산의 광물의 빛 하나하나가 유독 그에게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족한 것이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카뮈/시지프의 신화Albert Camus ; Le mythe de sisyphe에서)

요점 정리

지은이 : 카뮈

갈래 : 중수필

성격 : 논리적, 철학적, 관념적, 비유적

주제 : 부조리 철학에 대한 정의

내용 연구

 

'시지프스 신화'는 인간의 삶이 비록 끝없는 좌절의 연속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이상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데서 그 가치와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삶의 가치란 완벽하게 성취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한 성취가 아니다. 성취를 위한 노력, 성실한 자세, 좌절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내다보는 희망의 태도 등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해와 감상

 

1942년 '이방인'의 발표 직후에 출간된 '시지프의 신화'는 카뮈의 근본사상인 '부조리의 철학'이 체계 있게 정리된 철학적 명저이다. '현대 작가의 반항'의 저자인 알베레스는 그 책에서 카뮈의 작품을 '알제리기(期)' '철학기' '윤리기'로 나누고 있는데, '시지프의 신화'는 이른바 '철학기'를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전개하고 있는 사상은 '알제리기'에 속하는 '결혼'이나 '이방인'의 근저에 깔린 사상을 논리적으로 집약, 전개한 것이면서도 '윤리기'에 속하는 '페스트'와 그 밖의 작품을 꿰뚫고 있는 사상으로서 그의 대저 '반항적 인간'까지도 '시지프의 신화'의 사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다.

 

카뮈가 알제리에서 태어나, 그 청년기의 사상을 북아프리카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키워갔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눈부신 태양과 바다와 돌, 사막을 가로지르는 바람과 꽃더미를 감지시키는 산문시적인 에세이 '결혼'은 북아프리카의 풍토에서 카뮈가 무엇을 배웠는가를 너무나 잘 말해주고 있거니와,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적나라한 자연에의 사랑과 인간의 허위에 대한 반항이라 하겠다. 관능적인 범신론과 무신론적인 스토이즘이라 해도 좋다. 열대의 태양은 인간으로부터 일체의 문명과 도덕을 박탈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벌거숭이 자연, '인간 부재의 자연'에 직면케 한다. 거기에는 대지와 '결혼'한 인간의 관능적인 도취가 있고, 육체의 축제가 있고 감각의 환희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연은 낭만주의의 자연도 아니고, 자연주의자의 자연도 아닌, 밝은 열대의 태양에 비쳐지는 명석한 의식으로 파악된 자연이다. 그 의식은 일체의 인간적 희망을 거부하고, 기성 도덕이나 관념이나 논리에 반항한다. '결혼'에서는 삶의 환희가 타오르고, '오해'에서는 희망의 부정이 극점에까지 치닫는다. 이처럼 사랑과 반항, 생명과 의식, 에피큐리즘과 스토이즘, 타오르는 '긍정'과 거센 '부정'이 두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긴밀하게 일치된다. 이것이 카뮈의 근본 정신이다.

 

부조리란, 인생에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지만, 외견상 이 말은 니힐리즘의 배후에는 생명의 강한 긍정과 지성에의 깊은 신뢰가 도사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지프의 신화'에서 카뮈가 부조리는 도달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인생을 부조리라고 결론짓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인생에 있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문제 삼고 있다. 이 '세계는 그 자체로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부조리란 이 같은 이해를 거절하는 것,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저 명석한 이해에의 열망과의 대결인 것이다. 부조리는 세계와 인간의 쌍방에 의존한다. ' '인간은 누구나 자기 속에서 행복과 이성을 찾고 싶어한다. 이 인간의 욕구와 세계의 배리적인 침묵과의 대결에서 부조리가 비롯된다.' ('시지프의 신화'에서) 인간과 세계, 의식과 현실, 이 두 가지의 긴장된 대립을 파악하는 것, 이것이 카뮈의 부조리의 입장에서 어떻게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나올 수 있는가. 예컨대 '페스트'에서 보는 의자류의 헌신적인 행위나 레지스탕스에서 보는 정의를 위한 투쟁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부조리란 인간의 형이상학적 조건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극복되어야 할 출발점이며, 실천적인 과제이고, 그 과제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부조리란 부조리에 대한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지프의 신화'에서 보는 희망의 거부는 관념적인 도피에 대한 거부, '철학적 자살'에 대한 거부로서 절망에의 동의가 아니다. 부조리의 사상은 니힐리즘이 아니라, 바로 니힐리즘의 거부에 다름이 아니다. 부조리를 결론으로 하여 절망을 긍정하는 니힐리즘은 자살과 살인의 긍정으로 유도할 것이다. 하지만, 부조리는 '출발점'으로 하고, '방법'으로 삼는 카뮈의 입장은 생명옹호를 위한 탱으로 이끌어간다. 부조리한 인간의 불모성, 내일에 대한 거부, 가치와 합리성에 대한 거부, 양(量)의 윤리학, 이런 것들을 행실적으로 고정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관념적인 도피에 대한 안티테제일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며, '양'의 윤리는 그 자체 가장 깊은 '질(質)'의 윤리에 불과하며, 희망의 부정이야말로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심화 자료

시시포스신화(Sisypos) (영)Sisyph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교활한 코린트의 왕으로 그는 하데스에서 언덕 정상에 이르자마자 굴러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거듭 밀어올리는 벌을 받았다. 〈일리아스 Iliad〉에서는 에피레(훗날의 코린트)에 사는 인물로, 아이올로스(아이올리아족의 원조)의 아들이자 글라우코스의 아버지로 나온다. 호메로스 이후 시대에는 오디세우스의 아버지로 불렸으며, 이스트미아 경기의 창시자로도 유명했다. 그뒤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자신을 데리러 온 죽음의 신을 묶어버렸다고 한다. 이때문에 아레스가 죽음의 신을 도우러 올 때까지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죽음의 신이 풀려나자 그는 할 수 없이 지하세계로 가야 했는데, 죽기 전에 아내 메로페에게 일상적인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자기의 시체도 묻지 말라고 말했다. 지하세계에 도착한 후 그는 아내의 소홀을 징벌하기 위해 되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일단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2번째로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살았다. 그는 아우톨리코스와 프로메테우스처럼 위대한 사기꾼 또는 대도(大盜)로서 죽음의 신을 속인 죄로 영원한 벌을 받게 된 민간전승의 인물이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부조리(不條理)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조리·도리에 맞지 않는 것. 즉 필연적 근거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우연에 바탕한다는 것이다. 이 말의 현대적 용법은 A. 카뮈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방인(1942)'에서 현대의 부조리 상황, 현대적 부조리의 인간을 소설형식으로 제시했으며, '시지프스의 신화(1942)'에서는 철학적·논리적으로 해명하였다. 그것에 대한 J.P. 사르트르의 호의적 비평으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신이 없어진 뒤(F.W. 니체의 <신은 죽었다>)의 인간존재는 우연이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도 우연이다. 인간의 생(生)에는 조금도 확실한 의미나 근거나 목적이 없다. 부조리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인생의 의미와 필연성을 소박하게 전제한 사람들)과 철저히 단절된 가운데 인생을 목적 없이 살아간다고 한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11. 7 알제리 몽도비~1960. 1. 4 프랑스 상스 근처. 프랑스의 소설가·수필가·극작가. 〈이방인 L'Etranger〉(1942)·〈페스트 La Peste〉(1947)·〈전락 La Chute〉(1956) 등의 소설과 좌파적 현실 참여 활동으로 유명하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초기 생애

알자스 태생의 궁핍한 노동자인 아버지와 스페인계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카뮈가 태어나서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벌어진 마른 전투(1914. 9)에서 전사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두 아들(카뮈와 형 뤼시앵)을 데리고 알제리의 노동 계급이 모여사는 빈민굴로 이사하여 외할머니와 불구자인 외삼촌과 함께 방이 2개뿐인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정부로 일했다. 카뮈가 처음으로 발표한 수필집 〈표리 L'Envers et l'endroit〉(1937)는 어린시절의 어둡고 가난한 생활과 어머니와 외할머니 및 외삼촌을 묘사하고 있다. 2번째 수필집 〈결혼 Noces〉(1938)에는 알제리의 시골에 대한 서정적인 명상이 담겨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부(富)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2권의 수필집은 모두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약함과 물질 세계의 영속성을 대비하고 있다.

 

1918년에 카뮈는 공립국민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는 행운을 얻게 된다. 카뮈가 1923년에 알제 리세(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제르맹이었다. 34년 뒤에 카뮈는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을 제르맹에게 바쳤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스승에 대한 카뮈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이어서 카뮈의 지성이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카뮈는 스포츠, 특히 축구와 수영 및 권투에도 열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1930년에 결핵 증세가 나타나는 바람에 카뮈는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공부도 중단했다. 그후 결핵은 여러 차례 재발하여 카뮈를 괴롭혔다. 아파트 생활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여 카뮈는 15년 동안 살았던 그곳을 떠나야 했다. 카뮈는 잠시 푸줏간 주인이며 열렬한 볼테르주의자인 친가 쪽 아저씨 집에 얹혀 살다가 자립하여 살기로 결심하고, 알제대학 철학과에 등록하는 한편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알제대학 재학중에 카뮈는 평생 동안 스승으로 여기게 된 철학 교수 장 그르니에를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르니에는 카뮈가 문학과 철학 사상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축구에 대한 열정을 나누었다. 카뮈는 플로티노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에 나타나 있는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 사상의 관계를 다룬 논문으로 1936년에 고등교육수료증을 받았다. 그는 교수자격심사(이 심사를 통과했다면 그는 대학교수로서의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름)에 응하려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 알프스 지방에 있는 휴양지로 떠났고(첫 번째 유럽 방문), 이탈리아 피렌체와 피사 및 제노바를 거쳐 결국 알제리로 돌아왔다.

문학 활동

1930년대에 카뮈는 관심의 범위를 넓혔다. 그는 당시의 작가들, 특히 앙드레 지드, 몽테를랑, 앙드레 말로 등의 작품을 비롯하여 프랑스 고전문학을 두루 섭렵했으며, 서서히 알제리의 젊은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1934~35년에 그는 잠깐 알제리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그는 노동 계급의 관객들에게 훌륭한 연극을 보여줄 목적으로 '노동 극단'(Theatre du Travail:나중에는 작업반 극단[Theatre de l' Equipe]으로 이름을 바꿈)을 조직하여 손수 각본을 쓰고, 연출과 각색 및 연기까지 맡았다. 연극에 대한 그의 애정은 일생 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문학작품 가운데 희곡은 다른 작품만큼 높은 평가를 얻지 못했지만 〈오해 Le Malentendu〉(1944 초연)와 〈칼리귈라 Caligula〉(1945 초연)는 부조리 연극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그밖에 포크너의 〈한 수녀를 위한 진혼곡 Requiem for a Nun〉(1956)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Besy〉(1959)을 희곡으로 각색한 것도 연극 부문에서 기념비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2년 동안, 카뮈는 진보적 신문 〈알제 레퓌블리캥 Alger-Republicain〉에 참여하여 언론인 수업을 쌓았다. 그는 수석(논설) 위원, 편집부원, 정치부 기자 및 서평 담당자 등 다양한 일을 도맡아 해냈다. 그는 사르트르의 초기 작품 가운데 몇 편의 서평을 썼고, 카빌리아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을 분석한 일련의 중요한 논설을 썼다. 〈시론집 3 Actuelles Ⅲ〉(1958)에 요약된 형태로 전재된 이 논설들은 1954년의 알제리 전쟁으로 이어진 수많은 불공평에 대해 15년이나 앞서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카뮈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입장보다 인도주의적 입장에 서 있었고, 프랑스 정부의 불공평한 식민정책을 비난하면서도 앞으로 알제리에서 프랑스가 맡게 될 역할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해 있던 마지막 몇 년과 해방 직후에 언론인으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누렸다.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나중에는 파리에서 일간지로 발간된 〈콩바 Combat〉의 편집장으로서, 카뮈는 정의와 진리 및 모든 정치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독자적인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후 카뮈는 좌파와 우파의 구태의연한 편의주의에 차츰 환멸을 느끼고, 1947년에 〈콩바〉와 관계를 끊었다. 이무렵 카뮈는 이미 프랑스 문단을 이끄는 주요인물이 되어 있었다. 카뮈가 전쟁 전에 쓰기 시작하여 1942년에 발표한 첫번째 단편소설 〈이방인〉은 아랍인을 쏘아 죽였다는 범행 사실보다 오히려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려 들지 않고 사회의 요구에 따르기를 거부한다는 사실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한 '아웃사이더'의 초상을 통하여 20세기의 인간 소외를 탐구한 뛰어난 작품이다. 같은 해에 영향력 있는 철학 평론인 〈시지프의 신화 Le Mythe de Sisyphe〉도 발표했는데, 여기서 카뮈는 당시의 허무주의와 '부조리' 의식을 상당한 공감을 가지고 분석했다. 그는 이미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으며, 그의 첫번째 장편소설 〈페스트〉(1947)는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전염병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투쟁을 매우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전염병을 퇴치하는 데 불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우애를 역설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카뮈는 이제 초기의 주요개념인 부조리에서 또다른 주요개념인 도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반항'으로 옮아갔다. 그는 2번째로 발표한 장편 평론 〈반항적 인간 L'Homme revolte〉(1951)에서 이 반항이라는 개념과 정치적·역사적 혁명을 대비했다. 이 평론은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은 물론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친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에게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밖에 카뮈의 중요한 문학작품으로는 기법이 뛰어난 장편소설 〈전락〉(1956)과 단편집 〈유배와 왕국 L'Exil et le royaume〉(1957) 등이 있다. 〈전락〉은 그리스도교적 상징주의에 대한 열중을 보여주며, 세속의 인도주의적 도덕성이 가질 수 있는 좀더 기분 좋은 형태들을 풍자적으로 재치있게 드러내준다. 1957년에 카뮈는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겸손한 카뮈는 자신이 심사위원이었다면 분명 앙드레 말로에게 표를 던졌을 거라고 선언했다. 그후 3년이 채 안 되어서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평가

알베르 카뮈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모랄리스트이자 정치이론가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 나아가서는 전세계에서 그의 세대의 대변가이자 다음 세대의 스승으로 추앙되었다. 그의 글들은 주로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소외, 악의 문제, 그리고 죽음이라는 임박한 파국을 이야기함으로써 전후 지식인들의 소외 의식과 환멸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카뮈는 많은 동시대인의 허무주의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진실과 중용 및 정의 같은 가치에 대해서도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후기 작품에서 그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마르크스주의의 독단적 측면을 모두 거부하는 자유주의적·인도주의의 모습을 제시했다. (출처 : J. Cruickshank 글,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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