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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보내며(送友人) / 이백(李白)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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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보내며(送友人) / 이백(李白)

 

푸른 산은 북쪽으로 가로 달리고,

흰 강물은 동쪽으로 성에 닿았네.

이 곳에서 이제 한번 이별하면,

외로운 쑥대, 만 리를 떠돌리라.

뜬구름은 떠나는 그대의 마음,

지는 해는 보내는 옛 벗의 마음.

손을 흔들며 그대 떠나가나니,

쓸쓸하여라, 머뭇거리는 말 울음소리.

 

 

靑山橫北郭 청산횡북곽

白水堯東城 백수요동성

此地一爲別 차지일위별

孤蓬萬里征 고봉만리정

浮雲遊子意 부운유자의

落日故人情 낙일고인정

揮手自玆去 휘수자자거

蕭蕭班馬嗚 소소반마오


요점 정리

작자 : 이백(李白)

갈래 : 한시(漢詩). 번역시는 자유시

율격 : 외형률. 번역시는 내재율

심상 : 회화적

표현 : 상징적

어조 : 임을 보내는 마음을 가진 이의 쓸쓸한 목소리

구성 : 기승전결 4단 구성

제재 : 벗을 보냄

주제 : 떠나는 벗에 대한 그리움

내용 연구

쑥대 : 황량하고 메마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외로움이나 죽음 또는 황무지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일반화됨..

푸른 산이 북쪽으로 뻗어 있고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는 정경 : 서로의 이별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뜬구름 : 떠나가는 벗의 마음에 가차시켜 나타내고 있다.

머뭇거리는 말 울음 소리 : 떠나가는 벗의 마음에 비유

이해와 감상

'벗을 보내며'에서 먼저 눈여겨볼 것은 '푸른 산'과 '흰 강물'의 대비이다. 동쪽과 북쪽으로 딴 길을 가는 산과 강은 두 사람의 이별을 절묘하게 상징하고 있다. 실제로 산이 북쪽으로 뻗어 있고, 강물이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그 곳의 지리적인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곳이 어느 곳이 어느 곳이며, 산은 무슨 산이고 강은 무슨 강이며, 또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은 이 작품의 감상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산과 강이 각기 딴 길을 감이 이별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에는 '쑥대', '뜬구름', '지는 해', '말 울음소리' 등 여러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즉, 이 시는 사물을 설명하지 않고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설명하는 이상의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그려 내고 있다. 이를 가리켜 '그림 속에 정이 담겨 있다['경중정(景中情)]'고 하며, 한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어 왔다. 특히 시각적 변화가 전(轉)에서 나타나고 있다.

심화 자료

정(情)과 경(景)

'정'은 정서를 가리키는 말이고, '경'은 경물(景物), 즉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사물을 말한다. 중국의 한시는 정과 경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매우 중요시해 왔다.

사물이 있어 그것을 보고 사람이 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본다면, 사물과 그에 대한 정과의 사이에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물이 있으되 사람이 그 사물의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갖지 않는다면, 그 사물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경과 정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 시는 사람의 생각을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이므로 그 이미지 가운데는 이미 그 시인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더라도 정과 경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우리가 '불국사'라는 시에서 보았듯이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만 제시하게 되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도 정경론과 관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설명은 대상의 어떤 한 측면을 구체화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각은 그 한 곳으로 집중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 설명 없이 제시된 이미지는 그것이 새로운 상징이 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뜻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시의 다의성이 효과를 발휘하게 되므로 더 깊은 뜻을 지니게 되기도 한다.

다음 자료는 퍼온 자료이고, 지원되지 않은 한자도 있음.

情景論(정경론)

진정한 詩法에 진입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최후의 '玄關'이 있다. 그 玄關 앞에 서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도 그 문을 여는 법은 일러 줄 수가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열고 들어가야 한다.

 

妙合無垠, 가장자리가 없다

 

산은 첩첩 물은 감돌고

나무들 섞여 있고 구름은 합해지네.

눈길이 갔다가 돌아오면은

마음도 따라서 움직인다네.

봄날 해는 느릿느릿

가을 바람 스산해라.

정을 줌은 건네듯이

흥이 읾은 답하는듯.

山沓水迎

樹雜雲合

目旣往還

心亦吐納

春日遲遲

秋風颯颯

情往似贈

興來如答

 

劉?의 《文心雕龍》 〈物色〉의 한 절이다. 山疊疊 水重重, 강산은 고운데 제각금의 나무들을 구름이 감싸 안는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물인가. 저 나무는 무슨 나무며, 어디까지가 구름인가. 그저 눈 앞의 경물이건만 눈길이 한번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어느새 마음에는 느낌이 자리 잡는다. 사실 하루의 물리적 시간이야 봄 가을이 다를 바 없고, 부는 바람 또한 차이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봄날의 해는 느릿느릿 좀체 흐르지를 않고, 가을 바람은 공연히 뼈에 저미듯 스산한 마음을 일으킨다. 마음에 일어나는 정을 건네주듯 사물에 보내면, 사물은 답이라도 하듯 흥을 불러 일으킨다. 눈앞의 경물은 이렇듯 시인의 눈에 들어오면서 어느 순간 情으로 착색된다. 숲과 구름이 한데 합쳐지듯 景과 情은 하나로 결합되어 분리할 수 없게 된다.

 

일찍이 明의 謝榛은 《四溟詩話》에서 "景은 시의 매개이고, 情은 시의 胚芽이니 합하여 시가 된다. 몇 마디 말로 만 가지 형상을 부려서 元氣가 渾成하니 그 넓음이 가이 없다"고 한 바 있다. 무심히 景과 마주하여 마음 속에 情이 일어나매 景은 情의 매개가 된다. 가슴에 자욱한 情을 품고 景을 바라보면 무심한 경물도 내 마음의 빛깔로 물드니, 情은 景에 의미를 불어 넣는 胚芽가 된다. 情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 景만 가지고 시가 되는 법도 없다. 그래서 淸의 王夫之는 〈夕堂永日緖論〉에서, "情과 景은 이름은 둘이나 실제로는 나눌 수 없다. 詩에 뛰어난 자는 합함이 묘하여 가장자리가 없다. 빼어난 시는 情 가운데 景이 있고, 景 가운데 情이 있다" 하여 '妙合無垠'의 설을 주창하였다. 선녀의 옷은 꿰맨 자취를 찾을 수 없어 天衣無縫이다. 정과 경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어디까지가 경이고 어디부터가 정인지 그 가장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정을 말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경을 묘사하고 있고, 경을 그려 보이는가 싶어 보면 다시금 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明나라 都穆은 《南濠詩話》에서 "시를 지음에는 반드시 情이 景과 만나고, 景은 情과 합해져야만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고 하고,

 

방초는 사람마냥 다시금 쉬 늙고

지는 꽃 강물 따라 동으로 흘러간다.

芳草伴人還易老

落花隨水亦東流

 

는 情이 景과 만나 하나가 된 예이고,

 

빗속에 누렇게 잎 시든 나무

등불 아래 하얗게 머리 센 사람.

雨中黃葉樹

燈下白頭人

 

은 景이 情과 합하여 하나가 된 예라 하였다. 시든 풀은 歎老를 부추기고, 덧없이 져 강물 위로 떠가는 꽃은 세월의 無常을 일깨운다. 경물과 마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인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경물과 마주하여 情이 촉발된 것이다. 추적추적 가을 비는 하염 없는데, 마당엔 누렇게 시든 잎을 매달고 나무가 서 있다. 내일 아침이면 가지의 잎은 모두 떨어지고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화려하던 인생의 잎새들도 이제는 시들어 떨어지고 그 아래로 밤새 등불만 가물거릴 뿐이다. 삶의 얼룩을 지우지 못한채 또 근심 깊은 가을 밤은 깊어간다. 본시 이는 경물일 뿐인데, 시인의 정이 뭉클 묻어나 가슴을 저민다.

 

情과 景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미묘한 줄다리기는 시 감상의 즐거움이다. 시인은 가장자리를 굳이 감추려 하지만 읽는 이는 뭉뚱그려 풀어놓은 경물 안에 감춰진 시인의 情意를 자꾸 들추어 낸다. 한데 합쳐졌던 情과 景은 독자의 의경 속에서 어느 순간 분리되면서 새로운 미감을 불러 일으킨다. 情과 景이 만나 이루는 조합에는 여러 경우가 있다. 景을 보고 情을 일으키는 '情隨景生, 觸景生情'의 방식과, 情을 머금어 景에 투사하는 이른바 '移情入景, 景從情出'의 방식, 둘 사이의 선후를 구분할 수 없는 '情景交融, 物我爲一'의 경우와, 景만을 묘사하면서도 글 속에 절로 情意를 드러내는 '只須述景, 情意自出'의 방식, 또 情만을 말하여 景을 보이지 않았으나 곡진함을 다한 '卽情見景, 情意逼眞'의 방식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모식에 따라 해당 작품을 감상해 나가기로 한다.

 

情隨景生, 觸景生情

 

楊載는 《詩法家數》에서 "景을 묘사함은 景 가운데 뜻을 머금고, 일 가운데 景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밀하고 淸淡해야지, 진부하거나 교묘함을 꺼린다. 뜻을 묘사함은 뜻 가운데 景을 담고, 의론함을 밝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費經虞는 《雅論》에서 "시는 情을 일으킴을 귀히 여기나, 편편마다 情을 마구 늘어 놓으면 마침내 放誕하게 된다. 시는 景이 핍진함을 귀히 여기나, 작품마다 景만을 펼쳐 놓으면 문득 조잡하고 천박해 진다"고 했다.

 

산에는 꽃 피고 언덕엔 수양버들

이별의 정 안타까워 홀로 한숨 내쉰다.

지팡이 굳이 짚고 문 나서 봐도

그대는 오지 않고 봄날 저문다.

 

岸有垂楊山有花

離懷??獨長嗟

强扶藜杖出門望

之子不來春日斜

 

宋希甲의 〈春日待人〉이다. 봄이 왔다. 언덕 수양버들엔 파르라니 물이 오르고, 산에는 붉게 꽃이 피었다. 봄이 왔구나. 경물을 바라보던 시인은 물오른 버들가지와 붉게 핀 꽃을 보곤 먼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사물에 정이 접촉하는 순간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움이 먼저였을까, 꽃을 보는 설레임이 먼저였을까? 꼬집어 말할 수 없다. 봄을 앓아 누웠던 몸을 추스려 대문께로 나선다. 누구를 기다리는가. 딱이 누구랄 것도 없는 막막한 기다림이다. 그 심정 아랑곳 않고 봄날의 하루 해는 뉘엿 기울고 있다. 그리움처럼 그림자가 길어진다.

 

위 시를 지은 宋希甲은 일찍이 權?의 명성을 사모하여 강화까지 찾아가 10년을 기약하고 시공부를 시작했었다. 뒤에 스승이 전염병에 걸려 수십일을 사경을 헤매일 때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시중을 들었다. 땔나무와 집안 일도 그가 도맡아 했다. 충직한 그를 권필도 각별히 아꼈다. 권필이 한번은 제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천하를 봄이 넓지 못하면 시가 또한 국한되는 바가 된다. 나는 이미 할 수 없어 한스럽지만, 너의 근골로는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다. 다만 압록강 북쪽은 관문의 방비가 매우 엄하니 반드시 모름지기 어두운 길에 숨어 엎드려 있다가 물 있는 곳을 만나거든 수영을 하여 몰래 건넌 뒤라야 도달할 수 있다. 너는 모름지기 중국 말을 배우고 또 수영을 익히도록 해라." 行萬里路의 江山之助가 있어야만 비로소 시가 얽매임 없이 통쾌해진다. 시를 제대로 짓기 위해서라면 불법월경도 마다할 것 없다고 스승은 제자를 부추기고, 순진한 제자는 좋은 시를 쓸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에 허구헌 날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익히다가, 마침내 바다의 짠 기운에 기혈이 삭아 早夭하고 말았다. 宋時烈의 〈與南雲卿〉이란 편지에 보이는 사연이다. 그깟 시가 무어라고 불법월경도 마다 않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애를 썼더란 말인가. 시키는 스승이나 하란다고 하는 제자나 딱한 노릇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토록 도탑던 師弟의 정과 시를 향한 맹목적인 열의로 끈끈하던 그제가 그리운 오늘이다.

 

강가 비탈 가파라 높고 낮은데

행인이 가고나자 물새가 우네.

세간의 근심 슬픔 언제 다하리

필마로 다시 오매 마음 심란타.

 

危?臨江高復低

行人過盡水禽啼

世間憂樂何時了

匹馬重來意自迷

 

李站의 〈過江川舊莊〉이란 작품이다. 가파르다 싶으면 문득 낮아지는 산 비탈, 낯선 침입자가 다 지난 뒤에야 물새는 비로소 다시 운다. 이 모양을 보다가 시인은 갑자기 世間의 憂樂을 떠올렸다. 근심과 즐거움이라 했지만 樂은 그저 갖다 붙인 말일 뿐이다. 세상살이 지고 가는 근심이란 가파른가 싶으면 평탄해지는 비탈길과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 옆으로 시간의 강물은 쉴새 없이 흘러간다. 예기치 않게 찾아드는 근심 걱정 앞에 조바심 하기는 예고 없이 지나가는 행인을 보고 움츠리는 물새와 방불치 아니한가. 1.2구의 경은 사실 무심히 시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일 뿐이었는데, 시인은 여기에 3.4구의 정을 삼투함으로써 절묘한 의경을 창출하였다. 다시 제목을 환기하면 옛 놀던 자취는 그대로인데 있어야 할 사람은 없고 나 홀로 쓸쓸하다. 景이 먼저고 情은 나중이다.

 

새벽녘 배 위에 일어나서는

푸른 등불 마주 보며 앉아 있자니,

닭 울음에 개 짖어 마을 가깝고

은하수 비취니 물이 맑구나.

늙음과 질병만이 이몸 따르고

손 꼽아도 친구는 몇이 안되네.

세상 일로 마음은 심란만 한데

동녘에 붉은 해가 솟아 오른다.

 

舟中晨起坐

相對是靑燈

鷄犬知村近

星河驗水澄

隨身唯老病

屈指少親朋

世事又幹我

東方紅日昇

 

洪貴達의 〈廣津舟中早起〉란 작품이다. 떠도는 것이 인생살이라지만 그는 무슨 일로 배 위에서 밤을 지새웠을까. 축축하고 서늘한 서리 새벽에 일어나니 밤은 아직도 깊었다. 조금이라도 따뜻해질까 싶어 등불과 마주 앉는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가물거리는 등불을 보다가 시인은 허망한 느낌이 일었다. 2구의 '相對'란 말에 그 뼈저린 허전함을 담았다.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 소리, 덩달아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인가가 멀지 않음을 알겠다. 강물엔 은하수가 그대로 떠 있다. 참 맑은 물이다. 마을을 가까이 두고도 그는 배를 그리로 댈 생각 없이 새벽 맑은 강에 어린 별빛과 푸르스름한 등불만을 바라보며 오두마니 앉아 있다. 許筠은 《國朝詩刪》에서 처음 네 구를 두고 '秋景甚巧' 즉 가을 경치 묘사가 기가 막히다는 評語를 남겼다.

 

가을 새벽의 해맑은 景은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는 시인의 情을 일으켰다. 돌아보면 이룬 것 없는 평생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늙고 병든 고단한 몸뚱이 뿐이다. 손꼽아 헤일만한 벗도 없다. 가뜩이나 힘겨운데 세상 일은 더하여 마음을 심란케 한다. 이때 동편 저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실망하지 말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위로하는 것 같다. 분명치 않게 몽롱하던 것들이 새벽 첫 빛에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첫 4구를 景으로 시상을 연 뒤, 다음 세 구로 情을 받쳤다. 그리고는 끝구에서 다시 景을 끌어와 의경을 반전하였으니, 앞 뒤의 경으로 정을 감싸안았다.

 

간 밤 비 맞고서 꽃을 피우곤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누나.

슬프다 한해 봄날의 일이

비 바람 가운데서 오고 가노매.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宋翰弼의 〈偶吟〉이다. 1구와 2구는 다섯 글자가 정연한 대구를 이루었다. 꽃을 피운 것은 '昨夜雨'이고, 꽃을 떨군 것은 '今朝風'이다. 간밤 비 맞고 핀 꽃이 아침 바람에 진흙탕 속에 잎을 떨구었으니, 겨우내 눈을 아끼고 망울을 부퍼 마침내 꽃피운 보람은 당초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시인은 이를 '可憐'이란 한 마디로 압축했고, 한 해 봄 일이 비바람 가운데 오간다 하여, 우리네 인생 살이도 풍파 속에 덧없음을 보였다. 아름다운 자태를 선뵐 겨를도 없이, 가꾼 보람 허망하게 떨어진 꽃잎들이 세상에 어디 한 둘이겠는가? 바람은 언제나 딴데서 불어오고 그 不公을 탓하기엔 꽃잎의 힘은 너무 가녀리다. 떨어진 꽃잎에 情이 촉발되어 '一春事'가 '一生事'로 확장되었다.

 

낙엽이 답쌓인 鳴沙 길에서

찬 물은 어지런 산 달려가누나.

나그넨 날 저묾이 근심 겨운데

찬 물은 어지런 산 달려가누나.

 

落葉鳴沙逕

寒流走亂山

獨行愁日暮

僧磬白雲間

 

白光勳의 〈過寶林寺〉이다. 가을의 찬 시내는 비죽 솟은 산들이 어지럽다고 쏜살 같이 내달려 달아난다. 낙엽이 쌓인 모래 사장은 모래의 사각이는 소리에 낙엽 밟는 소리를 곁들였다. 落木歸根, 모든 것은 제 자리를 찾아 떠나가는데, 허허로운 가을 산길에 강물은 또 무엇이 바빠 저리 서두는가. 갈데 없이 달려가는 시내를 바라보다 문득 나그네의 마음도 부산해진다. 하루 해가 저무니 길 가는 나그네는 짙어오는 땅거미가 근심에 겹다. 오늘은 어디서 묵어갈 것인가. 返本還元, 잎이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듯 피곤한 몸을 길게 누일 안식의 자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때다. 두서 없는 근심 속에 댕그렁 댕그렁 흰 구름 사이로 은은한 풍경소리를 들은 것은. 무얼 걱정하느냐고, 여기 절이 있다고, 와서 쉬어 가라고.

 

移情入景, 景從情出

 

沈雄은 《古今詞話》에서 "情은 景 때문에 그윽해지니 情이 두드러지면 의경이 노출되고, 景은 情으로 인해 아름다운데 景만 있게 되면 엉기어 막히고 만다"고 하였고, 王昌齡은 《詩格》에서 "시가 뜻만 말해 버린다면 맑지 않아 맛이 없고, 景만 말해도 또한 맛이 없다. 일이란 모름지기 景과 意가 서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좋다."고 하였다.

 

간밤 남산서 술 마시다가

술 취해 그대 시에 화답 못했네.

깨고 보니 손에는 꽃이 있구나

나비만이 나마냥 근심 겹구나.

 

昨日南山飮

君詩醉未酬

覺來花在手

?蝶伴人愁

 

다시 白光勳의 시 〈寄梁天維〉 한 수를 더 보기로 하자. 술을 깨고 보니 간밤 늦도록 술 마신 생각, 옆에는 벗의 시가 덩그라니 놓여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술을 못이겨 드러누운 나를 두고 벗은 그만 살그머니 돌아갔구나. 벗의 시에 酬唱치도 못하고 취해 누운 미안한 마음으로 시상을 먼저 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손에는 꽃가지가 쥐어 있다. 어찌된 걸까. 벗이 내 손에 쥐어주고 간 것일까. 꺾인 꽃가지의 향기를 탐해 나비는 내 손 주위를 어정거려 보지만 뿌리를 떠난 꽃은 벌써 시들하다. 섭섭한 친구, 그렇게 가버리기는. 나비가 시든 꽃잎에 묻어 가는 봄을 서운해 하듯, 지난 밤의 흐믓함이 못내 아쉽다. 덜 깬 술을 도리질 하며 벗이 남긴 시에 차운하여 돌아간 벗에게 부친다. 미안하고 그리운 마음을 담아본다. 먼저 情을 드러낸 뒤, 시든 꽃 주위를 서성이는 나비에게 그 정을 투사하여 物我가 하나되게 착색하였다.

 

명예 이익 다퉈보니 어떠하던가

늙어 山林 깃드니 뜻 성글지 않도다.

거친 뜰 참새 짖고 사람은 없어

대창 빗긴 해에 누워 책을 보노라.

 

爭名爭利意何如

投老山林計未疎

雀?荒?人斷絶

竹窓斜日臥看書

 

李民宬의 〈齋居卽事〉이다. 名利를 다투는 싸움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늙은 몸을 산림에 투탁하니 이 흡족치 아니한가. 1.2구를 정으로 먼저 열었다. 종일 가도 사람의 기척이 없고 보니 참새는 섬돌까지 와서 짹짹대며 한바탕 운동회를 열었다. 竹窓에 해가 빗기니 또 하루 해가 간다. 날이 가건 달이 가건 주인은 누워 책을 본다. 기약을 두지 않은 讀書이니 그저 '看書'라 했다. 볼려고 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눈앞에 펼쳐 있으니까 본다는 뜻이다. 속세의 아웅다웅하던 삶이란 인적 끊긴 마당에서 찧고 까부는 참새 떼와 무에 다른가. 名利를 향한 마음도 竹窓에 빗겨드는 斜陽인양 시들하다.

 

팔백 곡 후추를 쌓아 두다니

어리석음 천년 두고 비웃는도다.

어이하여 벽옥으로 됫박을 삼아

종일토록 명주 구슬 되고 또 되나.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如何碧玉斗

竟日量明珠

 

崔瀣의 〈雨荷〉이다. 당나라 때 元載는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받아 축재하였다. 죽은 뒤 창고를 뒤져 보니 후추가 팔백 곡에 鐘乳가 오백 량이나 나왔으므로 나라에서 이를 몰수하였다. 얼마나 살겠다고 후추를 팔백 곡이나 쌓아 두었더란 말인가? 하기야 이즈음 나라 꼴이 멀리 당나라 때를 탓할 겨를도 없지만 말이다.

 

처음 1.2구에서 元載의 고사를 엉뚱하게 들이민 것은 3.4구를 이끌기 위해서이다. 그 원재를 능가하는 탐욕이 지금 시인의 마당에 있는 것이다. 벽옥으로 만든 됫박으로 하루 종일 明珠를 채웠다간 들이붓고 채웠다간 들이붓기를 계속하는 탐욕. '碧玉斗'는 다름 아닌 푸른 연잎이다. 무수한 빗방울이 맑은 구슬로 되어 넓고 푸른 연잎 가운데로 덱데구르 굴러 떨어진다. 한참을 모아 묵직해지면 그제야 흡족하다는 듯이 기우뚱 연못 위로 말구슬을 쏟아 붓는다. 구슬을 되는 됫박은 하나 둘이 아니다. 수면 위로 나온 연잎마다 서로 뒤질세라 됫박질이 한창이다. 종일 비는 내리고 이제 연못은 그렇게 주워 담은 구슬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天公의 탐욕은 비가 그치기 전에는 좀체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원재가 무색한 아름다운 탐욕이 아닌가.

 

明珠 四萬斛을 연잎에 다 받아서

 

담는 듯 되는 듯 어디로 보내는다

헌사한 물방울란 어위 계워 하는다

 

 

위는 鄭澈의 시조다. 그는 분명히 崔瀣의 위 시를 보았을 것이다.

 

찬 날씨에 해묵은 주막에 드니

나그네 밤 마음 외로웁구나.

불 꺼도 영창엔 눈빛이 밝고

베겟머리 화로에선 차가 끓는다.

마굿간 말 소리에 밤 깊음 알고

이런 저런 일들은 鄕奴게 듣네.

달 지고 첫닭이 소리쳐 운 뒤

다시금 유유히 길에 오른다.

 

天寒宿古店

歸客夜心孤

滅燭窓明雪

燃茶枕近爐

深更知?馬

細事聞鄕奴

月落鷄鳴後

悠悠又上途

 

申光洙의 〈宿彌勒堂〉이란 작품이다. 北風寒雪과 함께 한 하루 노정을 마치고 저물녘 꽁꽁 언 몸으로 옛 주막을 찾아 들었다. 이윽고 밤이 오고, 허기를 채운 뒤 여관 방에 앉았자니 을씨년스런 마음 가눌 길 없다. 외롭다는 느낌이 절절하게 밀려든다. 잠을 청하려 등불을 끈다. 그러나 외로움은 꺼진 등불과 함께 사위어지지 않고, 창밖에 달빛 받아 환한 눈 빛으로 도로 환해진다. 웃목 화로의 주전자에선 그리움처럼 모락모락 김이 솟고. 발갛게 불씨를 간직한 방안의 화로, 하얗게 비치는 창밖의 눈 빛, 자리에 누워서도 그는 좀체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겠다는 듯, 마구간의 말도 연신 발을 구른다. 녀석은 지금 추운 것이다. 배고프니 여물을 더 달라고 투정을 부리는게다. 그는 아예 잠 잘 일을 접어두고 鄕奴를 불러다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세상 일이야 언제나 그렇지. 두런두런 거리는 중에 새벽달이 지고 이웃 닭은 아침을 운다. 안장을 조여매고 다시 길을 떠난다. 여명은 아직도 트지 않았다. 처음 1.2구의 情이 독한 고독의 그림자를 이어지는 景 속에 배어들게 하여, 동화 같은 겨울밤을 애잔하게 물들였다.

 

情景交融, 物我爲一

 

陸時雍은 《詩鏡總論》에서 "情을 잘 말하는 자는 삼키고 토해냄이 깊은듯 얕아 드러날듯 다시금 감추어져 문득 그 마음의 무한함을 깨닫게 하고, 景을 잘 말하는 자는 형용함을 끊어버리고 약간의 보탬만을 더하였는데도 참 모습이 또렷하고 생기가 또한 흘러 넘친다"고 했다. '欲露還藏', 즉 말할듯 침묵하는데서 情의 맛은 더 깊어지고, '絶去形容' 곧 시시콜콜히 묘사함을 거부하는데서 景의 相은 한결 살아난다. 사실 서로 녹아 들어간 情과 景의 경계를 시 속에서 구분해 내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朴誾만큼 역대 시화에서 자주 거론되는 시인도 없다. 중종조의 시인이었던 그는 18세기 들어 다시 각광을 받았다. 金昌協 뿐 아니라 正祖도 朴誾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서 절창으로 일컬어진 몇 연을 살펴 보자.

 

봄 그늘 찌푸려도 새들은 조잘대고

늙은 나무 무정한데 바람만 서글프다.

 

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

 

〈福靈寺〉의 5.6구이다. 봄 그늘은 잔뜩 찌푸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데, 새들은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조잘댄다. 혹 비가 오려니까 새들이 불안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6구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겠다. 풍상을 겪어 늙은 나무는 무표정하게 그대로 서 있는데, 그 無情이 서글프다고 슬퍼하는 것은 엉뚱하게 바람이라는 것이다. 찌푸린 봄그늘과 조잘대는 새, 무정한 늙은 나무와 유정한 바람, 대구의 짜임새에 미묘한 긴장이 있다. 정작 주눅이 들어야 할 새들은 신나 있고, 담담해야 할 바람이 슬프다는 것이다. 바람이야 슬프고 말고 할 것이 없으니, 이를 슬프게 듣는 것은 시인일 밖에. 시인의 정이 경에 녹아 들어 가장자리를 찾을 수 없다.

 

성난 폭포 제절로 허공 밖을 울리고

수심 겨운 구름 엉겨 해 주변 그늘지네.

 

怒瀑自成空外響

愁雲欲結日邊陰

 

〈遊瀝巖〉의 5.6구이다. 폭포와 구름을 성나고 수심에 겨운 것으로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인의 주관 감정이다. 분노를 머금은 폭포는 허공 밖으로 소리를 꽝꽝 울려댄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고함을 지르는 것만 같다. 구름의 근심은 밝은 태양마저도 삼킬듯 음산한 기운으로 맺혀 있다. 구름이야 모였다 흩어지면 그뿐이니 萬古의 태양은 언제나 중천에서 저리 환히 빛난다. 전체 시가 고려의 옛 터를 찾던 나그네가 흥망의 감회를 이기지 못해 내뱉은 탄식이고 보면, 폭포의 분노와 구름의 근심을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주객이 녹아 들어 情景을 분리할 수 없다.

 

베게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자니

마굿간의 마른 말도 더욱 길게 우는구나.

밤 깊어 초승달은 그림자를 만들고

고요한 산 찬 솔도 절로 소릴 내었다.

 

枕上得詩吟不輟

伏 更長鳴

夜深纖月初生影

山靜寒松自作聲

 

〈夜臥誦詩有感〉의 첫 네 구이다. 베게를 베고 누워 이전 지은 시를 펼쳐 들고 읊조려 본다. 청을 돋워 읽다 보니 소리는 점점 낭낭해지고, 그 소리에 무슨 느낌이 있었던지 마굿간에 엎드려 있던 파리하게 마른 말도 힝힝대며 화답한다. 어디 그 뿐인가. 가녀린 초승달도 그 여린 빛으로 마당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고요하던 산의 찬 솔조차도 파도소리를 내며 시를 읽는 내 목소리에 박자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교향악의 합주처럼 완벽한 하모니가 아닌가. 자! 여기서 어디까지가 情이고, 어디까지가 景인가. 무엇이 物이고, 무엇이 我인가.

 

외론 탑 고요한데 새는 우짖고 청평사 찾아든 길손이 있어

봄 산을 제멋대로 노니는도다.

흐르는 작은 시내 꽃잎이 지네.

산나물 때를 알아 우쩍 자라고

이끼는 비온 뒤라 보드랍구나.

신선의 골짝에서 거닐며 읊어

백년 인생 한 시름을 풀어보리라.

 

有客淸平寺

春山任意遊

鳥啼孤塔靜

花落小溪流

佳菜知時秀

香菌過雨柔

行吟入仙洞

消我百年憂

 

金時習의 작품이다. 첫구의 두 자를 따서 제목을 〈有客〉이라 하였으니 넓은 의미의 無題詩인 셈이다. 지금은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절이지만, 예전엔 구비구비 호젓한 산길을 걸어 들어갔다. 고려 때 선비 李資玄이 은거해 더욱 이름 높은 절이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이리 저리 봄산을 배회하는 나그네의 마음은 그런대로 한적의 여유가 있다.

 

지는 꽃과 우는 새, 푸른 봄나물, 비에 씻겨 한결 보드라운 이끼, 모든 것이 한갓져서 그 품이 더욱 넉넉한 봄산이다. 나그네의 자재로움이 이미 봄산의 풍요를 품어 안았고, 봄산 또한 따뜻하게 시인을 감싸 안는다. 외로운 탑 둘레서 우짖는 새도 쓸쓸한 시인에게 봄날의 서정이나 막막한 외로움을 부추기지 않는다. 그저 거나한 흥취를 돋워줄 뿐이다. 봄이 다 가도록 보아주는 사람도 없이 흐르는 시내 위로 떨어져 흘러가는 꽃잎을 바라보는 안타까움도 없다. 桃花流水杳然去 하니 漁舟者가 이 위에 武陵이 있는가 싶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7구의 '仙洞'이 이를 말해준다. 仙洞에 들고 보니, 속세에서 지녀온 百年憂 또한 읊조리며 숲 속을 거니는 사이에 이미 찾을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바라보이는 경물이되 情意와 어우러져 서로 자기편으로 당기고 이끌릴 뿐, 어느 것이 먼저고 나중인지 따질 겨를이 없다.

 

집 모롱이 하얗게 피어난 배꽃

화사함 지난 해와 다름 없구나.

봄바람 묵은 병이 애처로운지

약 달이는 창가로 바람 보낸다.

 

屋角梨花樹

繁華似昔年

東風憐舊病

吹送藥窓邊

 

北窓 鄭?의 〈梨花〉란 작품이다. 봄 기운을 타고 집 모롱이에 배꽃이 활짝 피었다. 적막하던 마당이 환하니 밝다. 꽃은 지난 해와 다름 없는데 주인의 쇠락은 회복될 기미가 없다. 긴 병 끝의 꽃잔치는 마음 한 구석에 애잔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도 아직은 실망하지 말라고, 추운 겨울을 견뎌 활짝 핀 꽃처럼 어서 빨리 회복하라고, 봄바람은 약탕관 위로 살랑살랑 바람을 보낸다.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의 무상을 되새기는 정조가 애틋하고, 물아일체의 호흡이 있어 따뜻하다.

 

山窓서 하루 내내 책 안고 잠을 자니

돌솥엔 상기도 차 달인 내 남았구나.

주렴 밖 보슬보슬 빗소리 들리더니

못 가득 연잎은 둥글둥글 푸르도다.

 

山窓盡日抱書眠

石鼎猶留煮茗烟

簾外忽聽微雨響

滿塘荷葉碧田田

 

徐憲淳의 〈偶詠〉이다. 하루 종일 드러누워 책을 읽는다. 꼭 어디까지 읽어야 겠다는 期必의 마음이 없고 보니, 읽다가 심심하면 차를 달여 마시고, 곤하면 가슴 위에 책을 얹고 단잠에 빠져든다. 찻물 달이던 돌솥에는 여태도 더운 기운이 남았는지 김이 오른다. 덜 깬 잠에 멍해 있는 내 후각을 자극한다.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라고 창밖에선 사분사분 빗소리가 들린다. 흐리멍 하던 정신이 그 소리에 맑아진다. 누운 몸을 일으켜 주렴을 걷어 본다. 그 비에 씻기운 이들이들한 연잎들이 연못에 하나 가득이다. 내 마음조차 푸르러진다.

 

화면 속의 자아는 시인 자신이면서 풍경 속의 일부인듯 타자화 되어 있다. 시인의 진술을 듣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주관 情意가 객관 경물에 완전히 녹아 들어 차 내음을 맡고 빗소리를 듣는 주체가 시인인지 나인지 조차 모를 지경이다.

 

只須述景, 情意自出

 

李漁는 《閑情偶寄》에서 "情을 버려두고 景을 말하는 것은 노력을 줄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賀裳은 《皺水軒詞筌》에서 "시는 함축을 귀히 여기고 淺直에서 병이 든다. 시인은 마땅히 다만 景象을 묘사할 뿐이나 情意가 절로 드러나야 한다"고 하였다. 왜 景만으로 보여주는가? 꼬집어 무언지도 모를 감정을 언어로 설명하기란 큰 인내가 필요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물만을 묘사했는데 어찌 情意가 드러나는 법이 있는가.

 

초록의 연못에는 백조가 난다. 푸른 이내 허공 가득 옷을 적시고

깊은 숲 밤을 새운 묵은 안개가

낮바람 불어오자 비를 뿌린다.

 

滿空山翠滴人衣

艸綠池塘白鳥飛

宿霧夜棲深樹在

午風吹作雨??

 

李玲의 〈山居偶題〉란 작품이다. 산에 가득 떠있는 푸른 이내(嵐)에 옷이 다 젖었다. 꼭 짜면 파란 물이 듣을 것만 같다. 초록의 못물 위론 백조가 난다. 시인은 파랑과 초록 물감을 화면 전체에다 온통 풀어 놓았다. 안개는 밤새 어디에 숨었다가 이렇게 몰려 나온 것일까. 숲속 깊은 곳에서 밤을 지샌 묵은 안개는 날이 새고 바람이 불어가자 제 무게를 못견뎌서 빗방울로 떨어진다. 灑落하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낮은 사립 닫아걸고

참을 내간 아낙네는 돌아올 줄 모르네.

멍석에 나락 쬐는 추녀밑은 조용한데

병아리는 짝을 지어 울 틈새로 나온다.

 

枳殼花邊掩短扉

餉田邨婦到來遲

蒲茵?穀茅?靜

兩兩鷄孫出壞籬

 

梁慶遇의 〈村事〉란 작품이다. 길 가던 나그네는 목이 말라 물이라도 한잔 얻어 마실까 싶었겠다. 길가 집은 번듯한 담장도 없이 가시 많은 탱자 나무로 울타리를 둘러쳤다. 들여다 봐도 인기척이 없다. 주인 아낙은 참을 내러 들에 갔는지 낮은 사립을 비스듬히 닫아 걸었다. 처마 밑 양지녘에는 멍석을 깔고 갓 거둔 곡식을 말리려 널어 놓았다. 고요하다.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주인 없는 빈 집 터진 울타리 사이로 병아리 떼가 뿅뿅뿅 짝을 지어 나서고 있다. 오랜만에 마음 놓고 포식을 해 볼 참이다. 한폭의 정겨운 풍경화이다. 까치발을 하고 주인 없는 담장안을 들여다 보는 시인과, 천연덕스럽게 삐약대며 곡식을 향해 약진하는 병아리 떼의 행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반쯤 닫은 사립문에 울타리 촘촘한데

석양에 말 세우고 앞 길을 묻네.

푸른 안개 밖으로는 보슬비 흩뿌리고

때마침 농부는 소를 몰고 오는구나.

 

籬落依依半掩?

夕陽立馬問前程

?然細雨蒼烟外

時有田翁叱犢行

 

成侃의 〈途中〉이다. 싸리로 둘러친 울타리에 사립은 반쯤 열려 있다. 석양인지라 지친 나그네는 잠자리가 걱정이다. 앞 길을 물어 마땅찮으면 여기서라도 묵어가야 할 형편이다. 문간을 나그네가 서성거려도, 안쪽에선 좀체 아무런 기별이 없다. 주인은 들일을 나가고 없는 것이다. 앞 길을 묻는다고는 했지만, 정작 시인은 물어보려 해도 대꾸해 줄 사람조차 만나질 못하고 있다. 앞길을 묻는 나그네의 먼 시선에 푸른 안개 자옥한 저 들판 위로 흩뿌리는 보슬비의 모습이 잡힌다. 난감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이려! 이려!" 하는 소리와 함께 농부가 소를 몰고 오고 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들일 하던 농부도 땅거미 질 무렵 비마저 흩뿌리자 귀가를 서둘렀던 것이다. 문간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나그네, 소를 몰고 돌아오는 농부, 들판 가득 번져가는 푸른 안개,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 아름다운 광경이다.

 

동쪽 뫼에 구름 안개 아침 햇살 가리우니

숲 깊이 깃든 새는 늦도록 날지 않네.

이끼 낀 낡은 집은 빗장이 질려 있고

맑은 이슬 뜰에 가득 장미를 적시었다.

 

東峯雲霧掩朝暉

深樹棲禽晩不飛

古屋苔生門獨閉

滿庭淸露濕薔薇

 

崔慶昌의 〈駱峰人家〉이다. 자옥한 안개가 아침 햇살을 가리고 보니, 숲속 깊은 그늘 보금자리에 깃든 새들은 해가 벌써 뜬 것도 알지 못했다. 숲은 여태도 깊은 적막 속에 잠겨 있다. 적막 속에 잠긴 것은 숲만이 아니다. 푸른 이끼 오른 고옥의 문도 굳게 잠겨 있다. 울 너머 보이는 뜨락에는 함초롬 이슬을 머금고 장미가 피었다. 새들도 날지 않는 안개 낀 아침, 그와 같이 주인도 잠에서 안깬걸까? 대문에 이끼가 돋았다 했으니 혹 주인을 잃은 빈집이란 말인가. 곱고도 쓸쓸한 정물이다.

 

제사 마친 들녘에 해가 기울고

지전 태워 뒤적이자 까마귀 우네.

적막한 산골짝에 사람은 가고

팥배나무 꽃잎 위로 비가 치누나

 

祭罷原頭日已斜

紙錢飜處有啼鴉

山谿寂寞人歸去

雨打棠梨一樹花

 

權?의 〈寒食〉이다. 해 저문 들녘, 한식 제사를 마친 걸음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전을 사르니, 갈가마귀는 벌써부터 제사 음식을 탐하여 주변을 서성거린다. 이윽고 모두들 그렇게 돌아가 버리고, 무덤들만 남아 한층 적막해진 산골짝, 봄비는 무심히 피어난 팥배나무 꽃잎을 자꾸만 아프게 때린다. 떨어질 것만 같다. 인생이란 얼마나 무상한 것이냐. 한 세상 살다가 이렇게 떠나는 것이 가녀린 꽃잎이 빗줄기에 맞아 진흙 속에 떨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모든 것 덧 없다.

 

시인이 景만을 말하고 있어도 그 가운데는 이미 情이 녹아들어 있다. 시인은 눈앞에 펼쳐진 여러 대상 가운데 어느 하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초점을 맞춘다. 렌즈야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초점을 선택하는 시인의 선택에 감정이 들어 있다. 그러기에 시에서 시인이 선택한 어떤 경물도 포착과 동시에 주관의 색채로 물들게 된다.

 

卽情見景, 情意逼眞

 

詩經 이래로 전통적인 인식은 '詩言志'를 시의 본령으로 삼아왔다. 시란 무엇인가? 뜻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뜻이란 무엇인가?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이르면 다소 복잡해지지만 고대 魏晉 이전의 시들은 詠物보다는 詠懷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徐居正은 《東人詩話》에서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바이다. 이런 까닭에 그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고 하였다. 張戒가 《歲寒堂詩話》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 시인의 本意이니, 물건을 읊조리는 것은 다만 시인의 餘事일 뿐이다"라 한 것은 정곡을 뚫은 말이다. 이제 景物에 대한 묘사 없이 情意의 표출만으로 이루어진 시를 몇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자장자장 우리 아가 울지 말아라

울타리 바로 옆에 살구꽃 폈다.

꽃 지고 살구가 곱게 익으면

너랑 나랑 둘이서 같이 따먹자.

 

抱兒兒莫啼

杏花開籬側

花落應結子

吾與爾共食

 

李亮淵의 〈兒莫啼〉이다. 자장자장 자장가에 울던 아기가 방긋 웃는다. 아기의 웃음이 활짝 핀 살구꽃 같다. 저 꽃같이 예쁘게 무럭무럭 자라서 토실토실 건강하게 성장해다오. 손주를 안고 어르는 할아버지의 흐믓한 꿈이 꽃처럼 벙긋 피어 올라 살구처럼 영글어 간다. 아기는 쌔근쌔근 꿈나라 속이다. 한시에서도 이런 호흡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지 않은가. 목욕탕을 나서며 쐬는 바람처럼 시원하고 상쾌하다.

 

이 시를 읽다보니 필자가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독일시 한수가 떠오른다. 쉬토름T.W.Storm의 〈칠월〉이란 작품이다.

 

은은히 바람결에 자장가가 들린다.

덤불에 익어 얽힌 빠알간 딸기.

온 들은 축복에 가득차 있어

무엇을 생각는가 젊은 아내여.

 

행복한 풍경이다. 시인은 처음에 바람결에 흥얼흥얼 들려오는 나직한 자장가를 들었다. 자장가를 듣는 그의 시선에 문득 덤불 아래 황량한 풀더미 속에 빠알갛게 익어 얽힌 딸기가 들어온다. 자장가와 딸기는 시인의 의경 속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황량한 풀더미 속에서 싱싱한 딸기가 열매 맺듯 나의 황량하던 삶 속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든 행복이 있다. 그 행복을 시인은 '온 들에 가득한 축복'으로 미루어 버린다. 행복한 것은 자신인데, 축복은 온 들에 가득하다고 한다. 자장가는 누가 불렀던가. 이제는 자장가를 멈추고 잠든 아기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는 젊은 아내다. 젊은 아내라 했으니 그가 늙은 신랑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가시덤불 속에 열매 맺은 빠알간 딸기처럼 경이롭게 노년에 찾아든 감당키 어려운 행복을 그는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아름답다.

 

여덟 살에 일곱해를 병 앓았으니

돌아가 누움이 외려 편하겠구나.

흰눈이 펄펄 오는 오늘 이밤에

제 어미 떠나고도 추운줄 모르니 가슴 아프다.

 

八年七歲病

歸臥爾應安

只憐今夜雪

離母不知寒

 

李弼運의 부인 南氏가 지은 죽은 손녀를 애도하는 시다. 여덟 살 박이 손녀는 일곱 해를 병마에 시달리다 훌쩍 떠났다. 아프다고 보채며 울던 어린 손녀는 영원한 안식이 오히려 행복하겠지. 그러나 이 겨울, 꽁꽁 언 땅 속에서 그 어린 것이 추운 줄도 모르고 누워 있을 생각을 하니, 금이야 옥이야 안스럽던 할머니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진다. 任天常의 《試筆》에서는 이 시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시는 정에서 나오고, 정은 시에서 생겨난다. 境과 더불어 함께 이르매 글자마다 눈물을 흘릴만 하니, 참으로 죽음을 애도하는 시의 가작이라 하겠다. 그러나 평일에 비록 친척조차도 부인이 시에 능한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또한 규방에 모범이 될만 하다." 슬픔이 지극하면 外物을 끌어들일 여유도 없는 법이다. 대저 4구가 모두 情의 술회임에도 그 감정의 절절함이 비탄에 빠지지는 않아 '哀而不悲'의 경계를 얻었다.

 

평생의 성벽이 혜강 같아서

육십 평생 초상 위문 게을렀었네.

공을 전혀 모르는데 어찌 곡하나

어지럽던 그날에 綱常을 지켜설세.

 

平生性癖似?康

懶弔人喪六十霜

曾未識公何事哭

亂邦當日守綱常

 

吳億齡은 광해 계축년 인목대비 폐비의 논의가 있었을 때 분연히 일어나 그 부당함을 논단하였던 기개 있는 인물이었다. 뒤에 물러나서도 이따금 천정을 우러르며, "어찌 어미 없는 나라에 처하여 구차히 살겠는가?"하는 탄식을 발하였다고 《海東名臣錄》은 전한다. 당초 그의 무덤은 原州에 있었는데, 무덤을 쓴 후 두 아들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자 묘자리가 좋지 않다 하여 白川 선영으로 천장하였다. 이때는 광해의 亂政이 인조반정으로 종식되었던 때라 오억령의 천장에는 그를 사모하던 선비들이 모여 들었다. 그 자리에는 月沙 李廷龜가 있었는데, 때마침 살아 생전 망자와는 일면식도 없던 東岳 李安訥이 문상을 왔다. 상주가 이정구에게 가서 "선인께서는 東岳公과는 평소 서로 알지 못하셨는데도 조문하여 주시니 감격스럽습니다. 東岳公은 당대의 鉅手이시니 만시로 황천 길을 빛내고 싶사오나 감히 청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月沙가 東岳에게 이 뜻을 전하고 운을 불렀다. 위 시는 그 때 月沙가 부른 운에 따라 東岳이 지었다는 시이다. 평소에 아는 이의 문상조차 게으르던 그가 왜 평생 면식도 없던 이를 조문왔던가. 폭군의 서슬에 누구도 입을 다물고 있을 때, 綱常으로 제 자리를 굳게 지켰던 그 정신을 사모해서라는 것이다. 옛 선비의 늠연한 기개가 장하다. 이 시가 나오자 그때 지은 여러 만시 중에 가장 으뜸이라 하였다. 吳億齡의 이름 석자가 이 한 수로 세상에 더욱 드러났다. 위대할 손 시의 힘이여. 洪萬宗의 《詩評補遺》에는 오억령의 초상 때 지은 시로 잘못 나와 있다.

 

형님의 모습이 누구와 닮았던가

아버님 생각나면 형님을 뵈었었네.

오늘 형님 보고파도 어데가 만나볼까

의관을 정제하고 시내가로 나가보네.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朴趾源의 〈燕巖憶先兄〉이다. 형님은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아버님 뵙듯 형님을 따랐는데, 이제 형님마저 훌쩍 세상을 뜨니, 어데가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가만히 의관을 갖춰 입고 시내가로 나가본다. 시내에 비친 제 모습을 비춰 보려 함이다. 덤덤한 듯 별 말하지 않았으되, 그리움이 메아리 쳐 긴 울림을 남긴다.

 

 

이상 크게 다섯 가지 경우로 나누어 한시에서의 情과 景의 어울림을 살펴 보았다. 이들 범주 사이에 우열은 없다. 시인의 그때그때 감정 상태나 놓인 환경에 따라 선택을 달리할 뿐이다. 그래서 淸의 劉熙載는 《藝槪》에서 "시는 혹 景이 앞서고 情이 뒤따르거나, 혹 情이 먼저고 景이 나중하거나, 혹 情과 景이 나란히 이르기도 하는데, 서로 떨어진듯 서로 융합하니 각기 그 묘가 있다"고 하였다. 그 미묘한 저울질에 대해 金時習은 〈學詩〉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客은 시를 배울 수 있다 말을 하지만

시의 법은 차가운 샘물과 같은거라.

돌에 부딪치면 목메어 울다가도

연못에 가득차면 고요해 소리 없네.

굴원과 장자는 강개함 많았는데

魏晉에 이르러선 점차 번다해졌지.

尋常한 격조야 끊어 없앤다 해도

묘한 이치 말로는 전하기 어렵다오.

 

客言詩可學

詩法似寒泉

觸石多嗚咽

盈潭靜不喧

屈莊多慷慨

魏晉漸拏煩

?斷尋常格

玄關未易言

 

시는 찬 샘물이다. 시를 잘 쓰려면 물의 善變을 배워야 한다. 屈原의 시와 莊子의 산문에는 모두 慷慨의 비분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강개는 어디까지나 돌에 부딪쳐 난 여울의 소리였지, 악악대며 떠들어대는 왜가리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후대로 내려올수록 시의 법은 점차 시끄럽고 번다하게 되어 옛 사람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수다스럽게 말하고 아프다고 끙끙대는 소리가 시의 내용으로 되고 말았다. 尋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말아라. 그러나 진정한 詩法에 진입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최후의 '玄關'이 있다. 그 玄關 앞에 서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도 그 문을 여는 법은 일러 줄 수가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열고 들어가야 한다.

 

(자료 출처 : http://osj1952.com.ne.kr/study/study4-08.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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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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