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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선전(白鶴扇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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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선전(白鶴扇傳)

(전략)

유 원수의 승패를 몰라서 근심하던 중에, 갑자기 패전한 비보(悲報)가 황성에 전해지고, 황제에게도 보고가 올라갔더라. 황제가 크게 놀라시고 전황 보고서를 보신즉, 삼만 장병이 함몰하고 유 원수는 적진으로 잡혀갔다는 뜻밖의 일이었으며, 황제가 어쩔 줄을 모르실 적에 승상 최국양이 아뢰되,

 

“이제 유백로가 패전하여 삼만 군병이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유백로 또한 도적에게 굴복 투항하였다 하오니, 빨리 그 불충의 일문(一門)을 적몰하시고, 그 아비를 잡아다가 국법의 엄정함을 밝히소서.”

하고 자기의 계획대로 될 것을 속으로 몹시 기뻐하면서 가혹한 참소를 하니, 이에 황제가 마지못하여 즉시 무사를 보내서 유 상서 부부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라고 명하시니라. 아들의 소식을 주야로 근심하던 유 상서 부부는 천만 뜻밖에 아들이 패전하고 도적에게 잡혀간 비보를 듣고 자결하려 하던 중 불시에 무사들이 달려들어서 상서 부부와 상하 노복을 전부 잡아가고, 집안의 재산을 전부 몰수하여 갔으므로 자결의 때가 늦었음을 한탄하며 옥으로 잡혀가더라. 천지가 망망하여 여러 번 기절하고 정신이 깨면 눈물이 비 오듯 하여 옷을 적시고 말을 하지 못하였으나, 무사의 재촉이 풍우같이 몰아쳐서 옥중에 가두어 버리더라.

이런 소란 통에 노인은 은하 낭자의 편지를 갖고, 유 상서 집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그 근처를 배회하면서 수소문하다가, 백성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탄식하는 소리가,

“이런 슬프고 가련한 일이 어디 있을까. 유 상서 내외분이 나라에 무슨 죄를 졌다고 잡아다 옥에 가두고 그 집을 적몰시키는가? 유 원수가 싸움에 진 것은 유 원수의 죄가 아니라 승상 최국양이 앙심을 품고 일부러 군량을 보급해 주지 않아서 삼만 장병을 굶겨 죽게 하였기 때문이라. 이 얼마나 천인공노할 나라에 대한 반역이랴. 참으로 원통한 일이로다.”

노인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옥으로 달려가서, 옥졸들에게 뇌물을 주고 옥중에서 유 상서 부부를 찾아간즉, 상서 부부가 거적자리에서 울고 있었는데, 옛날의 충복이던 노인도 그 부부 앞으로 가서 말하기 전에 통곡부터 하더라.

“너는 어떤 사람인데 이런 데까지 와서 우리를 보고 슬퍼하느냐?”

유 상서가 늙은 상사람의 기이한 행동을 보고 의아하여 물으니,

“대감께서 어찌 소복(小僕)을 못 알아보십니까? 저는 그 전에 대감댁의 창두 충복이옵니다. 남경의 유 원수님 소식이 참혹하므로 대감께 아뢰려 왔삽더니, 대감께서 이처럼 죄 없이 옥중에 고생하심을 보고 망극하와 옥졸에게 뇌물을 주고 뵈옵고자 들어왔습니다.”

“아, 그런가. 네 충심은 감격하나 옥중에 들어옴은 위험한 일이니 빨리 돌아가서 화를 입지 말아라.”

유 상서는 옛날 노복이 자기 때문에 또 억울하게 죄에 연루될까 두려워하고 일렀으나, 노복은 다시 눈물을 흘리고,

“제 급히 상경하여 대감께 뵈러 온 일은 다름 아니오라 유 원수님 처실(妻室) 되시는 조 소저의 글월을 올리기 위하여 왔습니다.”

 

유 상서는 놀라서 반문하기를,

“조 소저는 어떤 낭자인데, 나에게 서신을 보냈느냐. 좌우간 그 서신이나 보여라.”

노복이 품에 깊이 간직하였던 조은하 낭자의 봉서를 꺼내더라. 두 팔이 결박된 유 상서는 노복에게 편지를 펴서 들라고 하고 여자 글씨의 사연을 읽더라.

‘박명 죄첩 조은하는 돈수백배(頓首百拜)하옵고, 감히 한 장의 글월을 좌하에 올리옵나이다. 이 어린 죄첩이 어려서 외가에 갔삽다가 우연히 길에서 낭군을 만나 백학선을 주기로, 어린 마음에 귀히 여겨서 받았삽더니, 어찌 그것이 신물인 줄 알았겠습니까. 나이가 장성하여서 그 ㉠ 부채의 맹약서를 보옵고 굳이 절을 지켜 왔삽더니, 저 악덕을 일삼는 최국양의 암해로 자사가 잡고자 하므로 부모와 망명 도주하다가, 부모는 천리 객지에서 억울하게 구몰하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외롭고 약한 여자로서 망극하고 살아갈 가망이 없어서 부모의 뒤를 따라 죽고자 하였습니다마는 그러나 저마저 죽사오면 부모의 후사가 멸할 것을 깨달아 참고 지내옵던 바, 낭군의 소식을 알 길이 없사와 부득이 남자로 변복하고 유리표박(遊離漂泊)하옵다가, 천만 의외에 망극하온 소식을 듣잡고 정신이 아득하와 낙망 중에 있습니다. 이제 나아가 시부모님 전에 면목을 뵈옵고 낭군의 처소에서 함께 죽고자 하오나 존의를 알지 못 하와 감히 글월로 고하옵나니 한번 만나 뵈옵도록 허락하시와 구천타일(九天他日)에 여한이 없게 하소서. 쓰기를 임하와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정신이 산란하와 대강 기록하나이다.’

유 상서 부부가 편지 사연을 본 뒤에 은하 낭자의 가련한 정상에 여러 번 탄식하고 기절할 것 같더라.

“대감 마님 양위께서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귀체를 보중하소서. 명천이 굽어 살피심이 있사오니 후일에 다시 좋은 시절이 있을 것입니다.”

“고맙다. 수고하였느니라. 너는 빨리 되돌아가서 조 소저에게 전하되, 나는 명이 기구하여 한낱 자식을 두었다가 생전에 다시 보지 못하고, 부자가 남북에 갈려서 죽기에 이르렀는데, 이제 이처럼 위무해 주니, 그 뜻은 고마우나 이곳이 외인을 통하지 아니하는 옥중이니 어찌하랴. 또한 내가 기주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에 어떤 소년이 백학선을 갖고 있어 수개월 동안 옥에 가두고 우리 집 백학선을 훔치지 않았느냐고 심문한 적이 있거니와 이제 생각하니 참괴하여 마지않거니와, 나의 명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니 어찌 서로 만날 수가 있으랴. 소저는 나를 만나볼 생각을 말고 길이 귀체를 보중하시라고 전갈하여라.” (하략)- 작자 미상, ‘백학선전’ -

돈수백배 : 머리가 땅에 닿도록 백 번 절함. 또는 그 절.

유리표박 : 고향을 떠나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냄.

 

요점 정리

갈래 : 고전 소설

성격 : 영웅적[천상 세계에서 죄를 지은 선관 선녀가 인간 세상으로 쫓겨와서 갖은 고초와 역경 끝에 행복을 찾고 영화를 누리다가 삶을 마치는 과정을 그림], 낭만적, 전기적

구조 : 병립적이고 적강 구조

 

탄생

만남

시련

극복

 

유백로

 

 

혼사 장애 담적 요소가 강함

여성영웅 소설적 요소가 강함

천상의 선동인데 득죄하여 인간 세계에 태어남

13살

문 상서의 청혼 거부

가달로부터 구출

 

둘이 우연히 만나 유백로가 조은하에게 백학선을 징표로 건네줌

전장에 나가 가달에 패해 사로 잡힘

조은하는 자원 출전하여 가달을 무찌르고 유백로를 구출함

조은하

옥황상제의 시녀인데 오작교를 놓은 죄로 인간 세계에 내려옴

10살

최국양의 청혼 거부

영웅적 행적

 

 

최국양에 쫓겨 부모를 여의고 홀로 방황함

 

주제 : 남녀 간의 신의 있는 사랑과 충성심의 발현이 담긴 호국 정신 / 남녀간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

특징 : 병립적인 구조이고 영웅적인 소설 구조이나 남자 주인공보다 여자 주인공이 적극적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박씨전’과 같은 여성 영웅 소설의 범주로도 포함시킬 수 있으며, 두 주인공 사이의 애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 화두가 된다는 점에서 애정 소설의 성격도 두드러진 작품이다. 두 주인공이 맺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는 점에서 ‘혼사 장애담’에 해당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영웅 소설마저도 애정물로 전환했던 조선 후기의 경향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적강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유교적 충의보다 남녀 간의 애정 관념을 중시함.

전체 줄거리 : 명나라 때, 유 태종은 꿈에 ‘천상에서 죄를 지어 당신의 자식이 되고자 한다. 이 아이의 배필은 서남에 있다.’는 선녀의 말을 듣고 아들을 잉태하였는데, 그가 바로 유백로이다. 이부상서 조경노도 절에 기도를 하여 ‘천상의 시녀’가 딸로 태어나게 되니, 이름을 조은하라 하였다. 운수 선생에게 가던 열세 살의 유백로는 길가에서 열 살의 조은하를 만나, 집안대대로 보물로 전해 내려오던 백학선에 ‘요조숙녀 군자호구’라는 글귀를 써서 주고는 훗날을 기약한다. 그 뒤 병부상서 문 상서가 유백로를 사위로 맞고자 하나 유백로가 벼슬을 얻은 뒤 하자고 거절하자 앙심을 품게 되고, 최국양도 조은하를 며느리로 맞고자 하나 조은하가 유백로로 인해 거절하자 앙심을 품는다. 유백로는 과거에 급제하여 남방순무어사로 부임하여 조은하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병이 들어 벼슬을 버린다. 이 때 오랑캐 가달이 쳐들어오자, 유백로는 최국양이 간한 대로 대원수가 되어 가달을 막으려 하나, 최국양이 군량을 보내 주지 않아 패전하여 가달에게 잡히고 만다. 방황하던 조은하는 주막에서 점괘를 보고 유백로가 위험함을 알고는 임금에게 자원한다. 병법과 무술에 신통력이 있음을 본 임금은 조은하에게 원수 가달을 물리치도록 허락한다. 조은하는 결국 선녀의 도움으로 오랑캐를 물리치고 유백로를 구해 돌아온다. 이에 최국양은 처벌을 받고, 유백로와 조은하는 연왕, 연왕비가 되어 팔순까지 살고 하늘로 올라간다.

 

내용 연구

차시[이때] 남방 남촌에서 사는 상서 벼슬 최국양은 당금(當今)[요즈음]에 임금의 총애가 으뜸이요, 서자 하나 있으되 인물과 재주, 학문이 뛰어나 명사 재상의 딸 둔 자 구혼한 자가 무수하나 마침내 허치 아니하고, 조성로의 여자가 천하 경국지색[傾國之色) :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어지러워도 모를 만한 뛰어난 미인 /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의 미인]이란 말을 듣고 매파를 보내어 구혼한대, 조공이 즉시 허락한지라[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결정함]. 낭자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이날로부터 식[음식 / 먹는 것]을 전폐(全廢 : 아주 없애 버림. 전부 그만둠.)하고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명재경각[(命在頃刻) : 금방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름. 거의 죽게 됨.]이라. 부모가 대경(大驚 : 크게 놀람)하고 의아하여[조은하가 유백로와 백년해로를 기약한 것을 모르고 있음] 여아의 침소에 나아가 조용히 문 왈,

“우리 늦게야 너를 얻어 기쁜 마음이 측량[기계를 써서 물건의 깊이·높이·길이·넓이·거리 등을 잼] 없으매[너무 기쁘다는 의미], 주야로 기다리는 바는 어진 배필을 얻어 원앙이 짝지어 노는 재미를 볼까 하더니, 이제 무슨 연고[이유]로 네 식음을 전폐하고 죽기를 자초하느뇨. 그 곡절을 듣고자 하노라.”

낭자가 주저하다가 천천히 눈물을 흘려 왈,

“소녀 같은 인생이 세상에 살아 무익한고로 죽음으로 고하고자 하옵나니, 바라건대 부모는 살피소서. 소녀는 십 세에 외가(外家)에 갔다가 오는 길에 유자를 얻어 가지고 오다가 소상 죽림(瀟湘竹 : 유명한 중국의 명승지인 대밭)에서 잠깐 쉬더니, 한 소년 선비 지나다가 유자를 구하기로 두어 개를 준즉 받아먹은 후 감사의 마음으로 백학선(白鶴扇)[중심 소재이자 사랑의 정표]을 주옵거늘, 어린 마음에 아름다이 여겨 받아 두었삽더니, 요사이 본즉 그 부채의 글이 백년의 아름다운 약속을 의미하는지라, 그때에 무심히 받은 것을 뉘우치나 이 또한 천정연분(天定緣分 : 하늘이 정해주신 인연)이 분명하옵고 또한 그 선비를 보온즉 심상한[대수롭지 않고 예사로움] 사람이 아니오라, 소녀가 이미 그 사람의 신물(信物 : 신표로 뒷날에 보고 서로 알아보기 위해서 주고받는 물건)을 받앗사오니 마땅히 그 집 사람이라, 어찌 다른 가문에 유의[뜻을 두다]하리이까[혼자 결정한 사항]. 만일 생전에 백학선을 만나지 못하오면 죽기로써 백학선을 지키올지라.”[백학선을 받았기에 다른 가문으로 시집갈 수 없다는 조 낭자의 의지 표현]

(중략)

낭자가 이어 왈,

“충신(忠信)은 불사이군(不事二君)[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이요, 열녀(烈女)는 불경이부(不更二夫)[정절을 굳게 지키어, 두 남편을 섬기지 아니함]라 하오니 소녀는 결단코 다른 가문을 섬기지 아니할 것이요, 하물며 그 사람을 잠깐 보아도 신의를 가진 군자이니 무신(無信)[신의가 없음, 소식이 없음]할 리 없을 것이요. 또한 백학선은 세상 보배라, 무단히[이유를 말함이 없이] 남을 주지 아니할까 하나이다.”

하거늘, 조공가 들으매 그 철석 같은 마음[직유법으로 강한 의지]을 억제치 못할 줄 알고 하릴없어 이 뜻을 최국양에게 전한대[부모가 자식의 의사를 고려하여 처음의 생각을 바꿈], 최국양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장차 해할 뜻을 두더라[조 낭자의 혼사 거절에 앙심을 품는 최국양].

차설[화제를 돌려 말할 때, 그 첫머리에 쓰는 말. 각설(却說). / 앞서 이야기하던 내용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다음 이야기의 첫머리에 쓰는 말], 이때 가달이 강성하여 자주 중원을 침범하거늘, 상이 최국양으로 우승상을 삼아 도적을 파하라[제거하라] 명하시니, 최승상이 황명(皇命)을 받자와 경성으로 올라갈새, 형주 자사 이관현을 보고 가만히 부탁하여 왈,

“내 아자를 조성로의 여아와 청혼하였더니, 제 무단히 퇴혼하니 그런 무신(無信)한 필부가 어디 있으리오. 조그만 일개 미미한 직책으로 감히 대신(大臣)을 희롱함이니, 내 마땅히 일문을 살해할 것이로되, 국사로 올라가매, 그대는 조성로의 일가를 잡아다가 엄형중치(嚴刑重治 ; 엄한 벌과 엄중히 다스림)하되 만일 허락하거든 용서하고, 듣지 아니하거든 대신을 속인 죄로 엄하게 다스려 즉사하게 하고, 그 딸은 음행(淫行)[음란한 짓을 함 또는 그런 행실]으로 다스려 관비(官婢)로 정속(定屬 : 죄인을 종으로 삼음)케 하라.”

하고 경사(京師 : 서울)로 가니라.

형주 자사가 즉시 하향현에 관문(關文)을 보내어 조성로의 일가를 성화[몹시 조르거나 귀찮게 구는 일]같이 잡아 올리라 하니, 하향 현령 전홍로가 관문(關文)을 보고 관차(官差 : 관아에서 파견하던 아전)를 보내어 조성로를 잡아오라 한 대, 관차가 조부(曺府)에 이르러 이 사연을 전하고 아중(衙中 : 지방 군아의 안)으로 감을 재촉하거늘, 공이 짐작하고 관차를 따라 관부[관아]에 이르니, 현령이 문 왈,

“그대는 이 일을 아는가?”

공이 생각하되 이 반드시 최국양의 지시인 줄 알고 전후곡절[복잡한 사정이나 이유. 까닭]을 자세히 고하니, 현령이 듣기를 다하매 가련히 여겨 왈,

“관문대로 잡혀 보내면 죽기를 면치 못하리니 내 일시 관원으로 왔다가 애매한[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함] 사람을 사지(死地)에 보냄은 도의가 아니라. 하물며 자사(刺史)도 최국양의 부촉[부탁하여 맡김]을 듣고 인정을 돌아보지 아니할 것이매, 그대는 바삐 돌아가 경보(輕寶)를 품고 밤에 도주하여 자취를 멀리 감추라.”[전홍로는 조공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도망치게 한다]

 

하고 즉시 회답하되, 연전에 조성로가 도주하여 없는 줄로 탈보(잘못의 원인이 특별한 사정이나 사고에 있음을 말하여 상관에게 책임의 면제를 청함)하고 조공을 놓아 보내니, 조공이 현령의 은덕을 못내 사례하고, 급히 집에 돌아가 황금 삼백 냥을 가지고 여아로 더불어 유생을 찾으려 하고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녀 남경으로 향하니라.[전홍로의 은덕으로 목숨을 건지고 조 낭자와 더불어 도주하는 조성로]

차설, 선시(先時)에 유 어사가 우연히 소상강(瀟湘江)을 지나다가 여랑[조낭자]을 만나 백학선을 주고 백 년의 약속을 한 후, 일편단심이 어느 때 잊지 못하여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나, 감히 이런 사연을 부모께도 고하지 못하고 무정세월(無情歲月)을 보내며[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못함] 헤아리되, 그 여자가 장성하여 혼인할 때 되었는지라. 그 여자를 찾아 평생 원을 이루고자 하나 부모 명 없이 떠나기 어렵고 또한 몸이 벼슬에 매여 추신(抽身 : 바쁘거나 어려운 처지에서 몸을 뺌) 하기 극히 어려우매, 다만 장우단탄(長우短歎 : 긴 한숨과 짧은 탄식의 뜻으로, 탄식하여 마지아니함을 이르는 말) 으로 추월춘풍[세월]을 허송하더니, 이때를 당하여 천자가 특별히 순무사를 명하여 바삐 발행하라 하시매, 즉시 하직하고 청주로 향할새, 위연(위然 : 한숨을 쉬는 모양이 서글프게) 탄식하여 왈,

 

“오늘 이 길을 당하니 정히 내 원을 마칠 때로되, 다만 그 여자의 거주를 알지 못하매 장차 어찌하리오.”

하고, 청주에 들어가 민정[백성들의 사정과 형편]을 살피며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되 마침내 종적을 알 길이 없어 쓸쓸한 심사를 이기지 못하여 침식[잠자는 일과 먹는 일]이 불감(不甘)하여 자나깨나 잊지 못하더니[오매불망 : (寤寐不忘) : 자나 깨나 잊지 못함], 이러구러 자연 병[상사병]이 되어 하염없이 침중(沈重)[병세가 위중하다]하매 말에 실려 하향현에 돌아오니, 현령 전홍로는 어사의 외숙(外叔)[외삼촌]이라. 어사의 병세[인연을 맺은 사람과 만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한 병] 예사롭지 아니함을 보고 어사더러 왈,

“네 일찍이 등과(登科)[과거에 급제하던 일]하여 청운(靑雲 :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올라 물망(物望 :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는 명망)이 극진하고 하물며 양친이 계시니 이만 즐거움이 없거늘, 이제 네 병세를 살핀 즉 반드시 사람을 자나깨나 생각하여[오매불망(寤寐不忘) : 자나 깨나 잊지 못함] 일념[한결같은 마음. 또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 맺혀 잊지 못하는 병이니, 심중에 걸린 말을 하나도 속이지 말고 자세히 이르라.”

하거늘, 어사 숙부의 말을 들으매 자기 병증(病症)을 짐작하는 줄 알고 속이지 못하여 자초지종[(自初至終) :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고한대, 현령이 듣고 대경 왈,

“이러한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오. 과연 연전에 형주 자사가 내게 발관(發關)하여 즉시로 조성로의 삼 모녀를 잡아 올리라 하였기로 괴히 여겨 조성로를 불러 그 연고를 물은즉, 네 말과 같이 여차여차하기로 그 정상(情狀)을 불쌍히 여겨 가만히 도망가게 하였더니, 그 후 탐지하여 들은즉, 백학선 임자를 찾으러 남경으로 갔다 하더라.”

하거늘, 어사가 이 말을 듣고 심사 더욱 산란하여 간장을 베이는 듯하는지라. 바삐 남경으로 가고자 하나 국사(國事) 중임(重任)을 폐치 못할지라[유 어사는 공적인 차원의 일과 사적인 차원의 일로 갈등을 함]. 장차 표[마음에 품은 생각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를 올려 병을 얻었다고 아뢰고 바로 남경으로 나아가 그 여랑을 찾을까 하고 계교[요리조리 생각해 낸 교묘한 꾀.]하더라.[부모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드러냄]

이해와 감상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활자본. 남녀 주인공들이 가연(佳緣)을 맺을 때 교환한 신물(信物) ‘ 백학선 ’ 을 표제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천상세계에서 죄를 지은 선관 · 선녀가 인간세상으로 쫓겨와서 갖은 고초 끝에 서로 만나고 또 오랜 역경 끝에 행복을 찾아 영화를 누리다가 삶을 마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른바 적강소설(謫降小說)이면서 영웅소설이고, 애정소설에 해당한다.

명나라 시절 남경땅에 사는 유시랑(劉侍郎)은 대대로 충과 효로써 이름 높은 가문의 후예로 늦도록 자식이 없어 안타까워 하였다.

그러던 중 부인이 일월성신에게 빌어 북두성의 지시로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백로(伯魯)라 하였다. 백로는 실상 천상세계의 선동(仙童)으로서 옥황상제께 죄를 지어 지상세계로 쫓겨온 인물이었다.

이 유백로가 장성하여 여주인공 조은하를 만나 가보(家寶)인 백학선에 시를 지어 주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헤어졌던 이들 남녀 주인공이 다시 만나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이 조은하 역시 천상세계의 선녀로서 옥황상제께 득죄하여 지상세계로 쫓겨온 인물이었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남녀 주인공들의 애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철저한 애정소설이라고 하는 것에 특색이 있다. 혼인에 있어서, 부모나 임금의 뜻보다는 주인공들의 뜻이 더 존중되고 있고, 선뜻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남녀 주인공이 각기 싸움터에 자원하여 나아가는 것도 국가나 군왕에 대하여 충성하고 부모에 대해서 효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애인을 찾기 위해서라고 하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여성의 출전을 황제가 허락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도 여성의 지위 향상 및 여권(女權)의 신장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이 소설은 비교적 진보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특징있는 작품으로서 조선조 후기의 작품이 아닌가 한다. 이것을 소설로 문제 삼을 때, 남주인공 유백로와 여주인공 조은하가 천상계에서 애정을 나눈 죄로 적강했다고 하는 사실과 지상계에서의 인생 편력 과정은 유기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은하의 경우, 적강의 죄목이 ‘ 은하수에 오작교 놓은 것 ’ 으로 되어 있는 데 대해 유백로의 경우, 그저 ‘ 상계에서 득죄 ’ 한 것으로 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그리고 도서관 ·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舊 金東旭 소장본) 등에 소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 李朝時代小說論(金起東, 精硏社, 1964), 韓國小說의 構造와 實相(成賢慶, 嶺南大學校出版部, 1981).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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