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맹(芳盟)
by 송화은율방맹(芳盟)
최 소년은 상인의 말을 이상히 여겨 나귀에서 내려 그 집 사랑방으로 들어가니, 방이 정결하고 서화(書畵)가 벽에 가득했다. 좌정하자 그 지전(紙廛) 상인이 절을 하고 다가와 말을 꺼냈다.
"소인에게 여식이 하나 있습지요. 나이 갓 16세로 밉상은 아닙고, 멍청치 않아 문식(文識)도 약간 난 편인데, 젊은 문사(文士)의 부실(副室)이 됨이 제 평생의 소원이랍니다. 그래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습지요. 간밤 여식 꿈에 정초지(正草紙) 한 장이 홀연 날아오르더니 황룡(黃龍)이 되어 가지고 구름 속으로 힘차게 솟구쳐 가드랍지요. 꿈을 깬 뒤에 기이하게 여기고 꿈 속에서 용이 되어 날랐던 정초지를 찾아 열 번이나 싸서 모셔 두고, 제딴엔 이번 과거에 이 정초지로 응시하는 사람이 반드시 장원 급제를 차지하리라 생각하고 제 자신이 사람을 택하여 주고 그의 소실이 되겠노라면서, 소인 집이 마침 대로 옆에 있는데, 여식이 식전부터 행랑 한 칸을 정히 치우고 창문에 발을 가리고 진종일 지나다니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침 서방님 행차를 보고는 소인을 급히 찾아 행차를 모셔 오라고 조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당돌히 들어오시게 한 겁니다."
이윽고 큰 상이 나오는데 음식이 대단히 사치스러웠고, 그 딸을 나와 뵙게 했는데 꽃 같은 용모에 달 같은 자태가 실로 경성지색(傾城之色)이었다. 미목이 시원하고 행동거지가 아담하여 여염집 상것들의 동류가 아니었다. <중략>
최 소년은 전날 단단히 맺은 언약을 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라 생각이 덜 주밀해서 감히 부친에게 그 사정을 고하지 못하고 또 분망함 때문에 시하의 사람으로 달리 주선할 도리도 미처 없어 망설이며 한숨만 들이쉬는 즈음에, 갑자기 대문 밖에서 곡성이 들려왔다. 보니 한 사람이 가슴을 두드려 방성대곡하며 대문 안으로 뛰어오는 것을 하인배들이 기어이 몰아 내치자 울며불며 하는 말이
"철천지한이 있기로 선달님께 아뢰야겠소."
하며 한사코 들어가겠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그의 부친 최 정승이 듣고 해괴히 여겨 그 사람에게 울음을 그치고 가까이 오라 하여 묻기를,
"네가 무슨 원통한 일이 있기에 하필 이 집 경사스러운 날에 와서 이런 야료(惹鬧)를 부리느냐?"
그 사람이 눈물을 씻고 절을 하더니 울음을 삼키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인은 지전 상인 이 아무올시다."
하고 이어서 자기 딸이 용꿈 꾼 일, 최 소년과 언약한 일을 자세히 아뢰고,
"소인의 여식이 과거 날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오직 방(榜)이 나기를 기다려 자주 서방님의 등과(登科) 여부만 묻는 고로, 소인이 연방 탐문하여 댁의 서방님이 장원 급제하셨음이 틀림없는 줄 알았습죠. 여식에게 희소식을 전했더니, 여식은 천지에 그런 기쁠 데가 없이 오직 교자를 갖춰 데려간다는 기별이 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날이 저물어도 아무 소식이 없자 안절부절 얼빠진 것같이 실성한 것같이 아무 말이 없이 긴 한숨만 내쉬는군요. 소인이 그 정상을 차마 보다 못하여 말하기를
'창방하는 날이야 으레 바쁘고 번거롭기 마련이란다. 하객이 밀려들어 응대하기만도 호번한데 한만한 일에 생각이 미치겠니? 저 서방님이 잠시 망각하는 것도 괴이할 일이 아니고, 혹시 잊지 않았대도 분부하다 보면 미처 일을 주선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 역시 예사 아니겠니. 내가 그 댁에 가서 축하드리고 동정을 살피고 와도 늦지 않다.'
그래도 여식은,
'만약 언약이 심중에 새겨 있다면 아무리 분주한들 잊어먹나요. 그리고 만약 애정이 있다면, 비록 총망 중이라도 교자를 보내 데려가기야 불과 분부 한 번이면 될 일인데, 어찌 그럴 겨를도 없나요? 그 서방님 심중에 이미 소녀가 없기 때문에 여태 소식이 없는 거예요. 임이 이미 나를 잊고 데려갈 의향이 없는 것을 우리가 먼저 탐문하면 그 역시 수치 아니에요. 설사 우리가 탐문하므로 인해서 마지못해 데려간다 하더라도 그 역시 인생에 무슨 재미를 느끼겠어요. 부부가 백년토록 함께 사는 건 서로 믿음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요. 방맹(芳盟)이 식기도 전에 이처럼 변심했는데, 후일에 무엇을 기대하겠어요. 내 뜻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다시 더 말할 것이 없어요.'
하더니 방에 들어가서 자결해 죽었습니다. 소인이 슬픔이 가슴에 북받치고 원한이 하늘에 사무쳐 감히 이렇게 달려와 아뢰옵니다."
최 정승이 듣고 놀랍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여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그 아들을 불러 꾸중하기를,
"이 어떤 대사인데 네가 저와 더불어 언약을 하고서 이렇듯 배신했으니 세상에 너같이 풍류도 없고 신의도 없는 사내가 있겠느냐? 박정하기 짝이 없고, 적원(積怨)이 이를 데 없구나. 내 일찍이 너에 대해 기대한 바 컸거늘 이번 일로 보건대 족히 볼 것이 없구나. 무슨 일을 주변하겠으며, 무슨 벼슬을 감당하겠느냐?"
요점 정리
지은이 : 미상
갈래 : 야담
성격 : 설화적, 교훈적
제재 :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
주제 : 주체적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
구성 :
발단 |
젊은 문사의 부실이 되는 것이 소원인 지전 상인의 딸이 꿈에 정초지가 날아 올라 황룡이 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는 꿈을 꾼다. 그 후에 지나가는 최 소년을 불러들여 그의 부실이 되기를 청해 방맹을 맺는다. |
전개 |
최 소년은 지전 상인의 딸이 꾼 꿈에서와 같이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였지만 부친에게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시하의 사람으로 달리 주선할 도리도 없이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
절정 |
지전 상인의 딸은 최 소년이 장원급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최 소년이 교자를 갖추어 데려가기를 기다렸으나, 최 소년에게 아무 소식이 없자 방맹을 잊고 변심으로 실망하여 자결을 하고 만다. |
결말 |
지선 상인이 최 소년의 아버지를 만나 사실을 고하고 그 억울함을 이야기하자 최 정승이 그 아들의 신의 없음과 주밀하지 못한 것을 꾸짖는다. |
특징 : 실존했던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의 흥미를 더하고, 교양이 있고 주체적인 자아를 추구하는 여인상을 그림.
지전 상인 딸의 삶의 태도
문학적 교양을 갖춤 |
최 소년의 장원 급제를 돕고 언약을 함. |
최 소년의 배신으로 인해 자결함. |
인간다운 삶에 대한 소망 주체적 삶의 태도 |
꿈 |
꿈의 좌절 - 비극적 결말 |
줄거리 :
젊은 문사의 부실이 되는 것이 소원인 지전 상인의 딸이 꿈에 정초지가 날아 올라 황룡이 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는 꿈을 꾼다. 그 후에 지나가는 최 소년을 불러들여 그의 부실이 되기를 청해 방맹을 맺는다. 최 소년은 지전 상인의 딸이 꾼 꿈에서와 같이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였지만 부친에게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시하의 사람으로 달리 주선할 도리도 없이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지전 상인의 딸은 최 소년이 장원급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최 소년이 교자를 갖추어 데려가기를 기다렸으나, 최 소년에게 아무 소식이 없자 방맹(아름답게 맺은 약속)을 잊고 변심으로 실망하여 자결을 하고 만다. 지선 상인이 최 소년의 아버지를 만나 사실을 고하고 그 억울함을 이야기하자 최 정승이 그 아들의 신의 없음과 사려 깊지 못한 것을 꾸짖는다.
내용 연구
최 소년은 상인의 말을 이상히 여겨 나귀에서 내려 그 집 사랑방으로 들어가니, 방이 정결하고 서화(書畵 : 글씨와 그림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오늘날로 말하면 예술품임)가 벽에 가득했다[지전 상인 딸의 인물과 일치하는 공간적 배경]. 좌정하자 그 지전(紙廛 : 지물포로 조선 때, 종이를 팔던 육주비전의 하나) 상인이 절을 하고 다가와 말을 꺼냈다.
"소인에게 여식이 하나 있습지요. 나이 갓 16세로 밉상은 아닙고, 멍청치 않아 문식(文識)도 약간 난 편인데, 젊은 문사(文士)의 부실(副室 : 소실, 첩)이 됨이 제(여식) 평생의 소원이랍니다. 그래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습지요. 간밤 여식 꿈에 정초지(正草紙 : 과거장에서 답안을 쓰는 종이) 한 장이 홀연 날아오르더니 황룡(黃龍)이 되어 가지고 구름 속으로 힘차게 솟구쳐 가드랍지요[최 소년이 장원급제할 것임을 암시하는 예언몽]. 꿈을 깬 뒤에 기이하게 여기고 꿈 속에서 용이 되어 날랐던 정초지를 찾아 열 번이나 싸서 모셔 두고, 제딴엔 이번 과거에 이 정초지로 응시하는 사람이 반드시 장원 급제를 차지하리라 생각하고 제 자신이 사람을 택하여 주고 그의 소실이 되겠노라면서[지전 상인 딸의 주체적인 태도], 소인 집이 마침 대로 옆에 있는데, 여식이 식전부터 행랑 한 칸을 정히 치우고 창문에 발을 가리고 진종일 지나다니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침 서방님 행차를 보고는 소인을 급히 찾아 행차를 모셔 오라고 조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당돌히 들어오시게 한 겁니다."
이윽고 큰 상이 나오는데 음식이 대단히 사치스러웠고, 그 딸을 나와 뵙게 했는데 꽃 같은 용모에 달 같은 자태[화용월태(花容月態) :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맵시, a lovely face and graceful carriage.]가 실로 경성지색(傾城之色 : a woman beautiful enough to cause the downfall of a country ; a Helen of Troy. /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어지러워도 모를 만한 미인)이었다. 미목[얼굴 모습, 눈썹과 눈이 얼굴 모습을 좌우한다고 하여 이르는 말]이 시원하고 행동거지가 아담하여 여염집[일반 백성의 살림집] 상것들의 동류가 아니었다[서술자의 직접 개입 - 편집자적 논평]. <중략> - 지전 상인의 딸과 최 소년의 만남
최 소년은 전날 단단히 맺은 언약[금석지약(金石之約) : 금석처럼 굳고 변함없는 언약. 금석맹약. / 장원급제하여 지전 상인의 딸을 소실로 맞아들이겠다는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라 생각이 덜 주밀해서[사려 깊고 치밀하다 / 허술한 구석이 없고 세밀하다.] 감히 부친에게 그 사정을 고하지 못하고 또 분망함 때문에 시하[(侍下) : 부모나 조부모를 모시고 있는 처지. 또는 그런 처지의 사람]의 사람으로 달리 주선할 도리도 미처 없어 망설이며 한숨만 들이쉬는 즈음에, 갑자기 대문 밖에서 곡성이 들려왔다. 보니 한 사람이 가슴을 두드려 방성대곡[큰 소리로 목놓아 슬피 욺]하며 대문 안으로 뛰어오는 것을 하인배들이 기어이 몰아 내치자 울며불며 하는 말이
"철천지한[(徹天之恨) : 하늘에 사무치는 크나큰 원한. 철천지원]이 있기로 선달님께 아뢰야겠소."
하며 한사코 들어가겠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그의 부친 최 정승이 듣고 해괴히 여겨 그 사람에게 울음을 그치고 가까이 오라 하여 묻기를,
"네가 무슨 원통한 일이 있기에 하필 이 집 경사스러운 날에 와서 이런 야료(惹鬧)[생트집을 하고 함부로 떠들어댐. / '야기요단(惹起鬧端) : 시비의 실마리를 끌어 일으킴'의 준말.]를 부리느냐?"
그 사람이 눈물을 씻고 절을 하더니 울음을 삼키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인은 지전 상인 이 아무올시다."
하고 이어서 자기 딸이 용꿈 꾼 일, 최 소년과 언약한 일을 자세히 아뢰고,
"소인의 여식이 과거 날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오직 방(榜)이 나기를 기다려 자주 서방님의 등과(登科) 여부만 묻는 고로, 소인이 연방 탐문하여 댁의 서방님이 장원 급제하셨음이 틀림없는 줄 알았습죠. 여식에게 희소식[과거에 장원 급제하였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여식은 천지에 그런 기쁠 데가 없이 오직 교자를 갖춰 데려간다[지전 장인의 딸이 최 소년과 약속한 내용]는 기별이 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날이 저물어도 아무 소식이 없자 안절부절 얼빠진 것같이 실성한 것같이 아무 말이 없이 긴 한숨만 내쉬는군요. 소인이 그 정상을 차마 보다 못하여 말하기를
'창방[방목(榜目)에 적힌 과거 급제자의 이름을 부름]하는 날이야 으레 바쁘고 번거롭기 마련이란다. 하객이 밀려들어 응대하기만도 호번한데[넓고 크며 번거롭게 많다] 한만[한가하고 느긋함]한 일에 생각이 미치겠니? 저 서방님이 잠시 망각하는 것도 괴이할 일이 아니고, 혹시 잊지 않았대도 분부하다 보면 미처 일을 주선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 역시 예사 아니겠니. 내가 그 댁에 가서 축하드리고 동정을 살피고 와도 늦지 않다.'[상인의 말하기 방식은 예상되는 상황의 불가피함을 들어 상대방을 달래고 있다.]
그래도 여식은,
'만약 언약이 심중에 새겨 있다면 아무리 분주한들 잊어먹나요. 그리고 만약 애정이 있다면, 비록 총망[급하다, 바쁘다] 중이라도 교자를 보내 데려가기야 불과 분부 한 번이면 될 일인데, 어찌 그럴 겨를도 없나요? 그 서방님 심중에 이미 소녀가 없기 때문에 여태 소식이 없는 거예요. 임이 이미 나를 잊고 데려갈 의향이 없는 것을 우리가 먼저 탐문하면 그 역시 수치 아니에요. 설사 우리가 탐문하므로 인해서 마지못해 데려간다 하더라도 그 역시 인생에 무슨 재미를 느끼겠어요. 부부가 백년토록 함께 사는 건 서로 믿음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요. 방맹(芳盟 : 아름다운 약속)이 식기[어떤 일에 대한 열의나 생각 따위가 줄거나 가라앉다.]도 전에 이처럼 변심했는데[지전 상인의 딸이 죽기로 결심한 이유], 후일에 무엇을 기대하겠어요. 내 뜻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다시 더 말할 것이 없어요.'
하더니 방에 들어가서 자결해 죽었습니다[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려다 좌절한 여인]. 소인이 슬픔이 가슴에 북받치고 원한이 하늘에 사무쳐 감히 이렇게 달려와 아뢰옵니다." - 지전 상인이 딸의 죽음을 하소연함
최 정승이 듣고 놀랍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여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그 아들을 불러 꾸중하기를,
"이 어떤 대사인데 네가 저와 더불어 언약을 하고서 이렇듯 배신했으니 세상에 너같이 풍류도 없고 신의도 없는 사내가 있겠느냐? 박정하기 짝이 없고, 적원(積怨 : 오래 쌓인 원한)이 이를 데 없구나. 내 일찍이 너에 대해 기대한 바 컸거늘 이번 일로 보건대 족히 볼 것이 없구나. 무슨 일을 주변[일을 주선하거나 변통함]하겠으며, 무슨 벼슬을 감당하겠느냐?[다른 사람의 믿음을 저버리고, 일을 변통하는 능력이 모자라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배신하고, 인정이 없어 다른 사람의 원한을 얻음]" - 최 소년에 대한 최 정승의 꾸짖음
이해와 감상
'청구야담'에 '최곤륜 등제배방맹'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한문 단편으로, 문학적인 교양이 있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 했던 한 지전 상인의 딸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대화에 의해 주요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최 소년'은 숙종 때 실존했던 인물인 '최곤륜'으로, 이 이야기는 그가 과거에 합격하기 전과 과거에 합격한 직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서울의 시전 상인은 엄격한 신분적 제한을 받고 있었으나, 생활이 화려했고 의식이 새로웠다. 이런 점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선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지전 상인의 딸은 이러한 경제적 여유와 새로운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창작된 인물로 보인다. 비록 신분의 한계 때문에 문인의 소실을 자원했으나 그녀가 바란 것은 문학적 교양을 가진 사람과 함께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다운 삶이었을 것이다.
심화 자료
청구야담
조선 후기에 편찬된 편자 미상의 야담집. 그 내용과 체재가 비슷한 책들 가운데 내용이 비교적 충실한 점과, 그 전사본(轉寫本)으로 추정되는 ≪해동야서 海東野書≫의 필사연대가 1864년(고종 1)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19세기 중엽 전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본 15여 종 가운데 중요한 것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규장각 국역본 : 19책. 7언 또는 8언의 화제(話題)를 음만 한글로 바꾸어 놓았고, 문체가 번역투이며, 세주(細注)가 붙어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한문본의 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차는 한문본의 어느 것과도 같지 않다.
수록된 자료의 총수는 262편으로, 이 중 다른 본에 전연 나타나지 않는 자료는 1편뿐이다. 당초에는 전 20책이었으나 제20책이 낙질되어 현재는 19책만 전한다. 각 권에 수록된 자료의 숫자로 보아 만약 20책이 다 전한다면 총 자료 수가 275편 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
② 일본 도요문고본(東洋文庫本) : 8권 8책. 모두 266편의 자료가 수록되어 있는데, 다른 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다른 본의 수록 자료와 견주어 보면 결본일 가능성이 짙다.
③ 국립중앙도서관본 : 6권 6책. 책의 크기나 지질이 일정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원래 결책이던 것을 보책(補冊)한 것으로 보인다. 수록 자료 총 181편 중 이 책에만 있는 것은 2편이다.
④ 서울대학교 고도서본 : 5권 5책. 국립중앙도서관본보다 책 수가 적으나 수록 편수는 더 많아 217편이나 되는데, 이는 자료를 축약한 탓이다. 권수의 표시가 표지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으로 되어 있고, 속에는 ‘권지일(卷之一)’ 식으로 되어 있다.
총 217편 중 이 본에만 있는 것은 7편이다. 그 밖에 미국 버클리대학 극동도서관 소장본은 10권 10책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청구야담≫ 중에서 가장 내용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구야담≫ 소재자료 중 30여 편 이상이 1세기 이전의 문헌인 ≪학산한언 鶴山閑言≫과 중복되고 있다.
≪청구야담≫의 발췌본으로 보이는 ≪해동야서≫에는 총 48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물론 제목까지 완전히 동일하다. ≪계서야담 溪西野談≫과 ≪청구야담≫의 상호 영향관계는 명확하여 양자 사이에는 공통된 자료가 80여 편이나 될 뿐만 아니라, ≪계서야담≫의 원문이 거의 그대로 ≪청구야담≫에 재수록되어 있다.
반면 ≪청구야담≫과 ≪동야휘집 東野彙輯≫의 선후관계는 명확하지 못하다. 양자 모두 본격적인 야담집으로서의 체재를 갖추고 있고, 수록 편수도 비슷하며, 더구나 그 내용까지 상당히 중복되고 있다.
다만 ≪동야휘집≫은 자료 분류를 하고 있는 점이라든지, 한 인물에 대한 여러 삽화를 하나의 제목 아래로 통합시키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청구야담≫이 ≪동야휘집≫보다 먼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자를 검토해 보면, 전반적으로 ≪청구야담≫의 무명 인물이 ≪동야휘집≫에서는 유명 인물화함을 알 수 있다.
≪청구야담≫은 여러 야담집 중에서 내용이 풍부하고, 세태 묘사가 자세한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계서야담≫에서는 아직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사대부들의 간단한 일화는 채택하지 않은 대신, 사대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도 행동 양상과 사건 설정이 하층민의 생활을 다룬 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게 엮었다.
하층민들이 겪는 사회적 갈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세태 묘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를 통해 야담이 소설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朝鮮後期文獻說話의 硏究(曺喜雄, 螢雪出版社, 1980)
≪참고문헌≫ 韓國文獻說話全集 2(東國大學校韓國文學硏究所編, 太學社, 1981)
≪참고문헌≫ 靑丘野談硏究(朴熙秉, 國文學硏究 52, 서울大學校大學院國文學硏究會,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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