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시인의 생애
by 송화은율박두진 시인의 생애
박두진 朴斗鎭 1916- 시인. 호는 혜산(兮山) . 경기도 안성출생. 1939년 <문장>에 <향연> <묘지송> <낙엽송>, 이듬해 <의(蟻)> <들국화>가 각각 추천되었다. 그 후 <도봉> <별> <푸른 하늘 아래 > <설악부> <장미의 노래> 등 수작을 발료하였다. 이 시인을 시단에 내보내면서 선자 정지용은 “박군의 시적 채취는 무슨 삼림에서 풍기는 식물성의 것이다”라고 말하고 “시단에 하나의 신자연을 소개하여 선자는 법열 이상입니다”라고 극찬했다. 이들 작품을 통해 나타난 초기의 경행은 자연을 형이상적 차원으로 일원화 시켜 관조적이기 보다 감각적으로 파악한다.
특히 초기 시 <청록집>속에 포함된 시를 특징지은 감각적인 인식방법과 비유는 이미 있어 온 관조적이며 기교일변도의 시들에 대한 반발임을 고려에 넣을 때 분명 당시로 서는 새로움이었다. 이러한 정신과 결합된 감각적 발상은 순전히 외부에서 온 새로운 관심의 확대이며 , 이런 점에서 같은 청록파 시인은 박목월과 조지훈 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그에 있어서 자연은 목가적인 세계가 아니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윤리의식이 밑바탕이 되어 있다. 그 때문에 그의 자연은 그의 종교적 신앙과 일체화하였고, 민족적 현실에 대한 굳은 의지와 감개로 물들어 있다.
이러한 바탕은 그 후 <해> <오도> <거미와 성좌> <인간밀림> <하얀날개> 등 시집의 세계와 그리고 최근의 <사도행전> <수석열전>의 체계를 특징짓는 지배적인 양식이 되어 왔다. 그것은 청원적인 감정상태의 직필,지고한 대상에 대한 감동 및 긴장의 유지를 위한 반복의 형태, 정서표출의 감탄어 틍과 같은 서정적 자아의 음악적인 어법 및 그 산문성은 그 이전 조선 가사를 지배한 산무성과 사술시조의 사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 뒤에 나온 <해>가 그 단적인 예증이다.
그러나 <오도> <거미와 성좌>에 이르면서 현실파악의 방법은 보다 현실에 밀착된 성신의 경험으로 발전한다. 말하자면 이원적 질서에의 자각이다,이러한 二元的 질서의 사상이 굳어짐에 따라 그의 시는 현실시의 면모를 띄게 된다. 따라서 정적인 이미지인 산은바다와 같은 보다 넓은 동적인 이미지로 발전한다. 4.19 혁명을 구가하는 대부분의 시가 그 이전의 시보다 호소력을 갖는 것은 즉물적이며 그 기저에 날카로운 현실감각이 비판기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의 시의 기저가 되어 온 자연과의 교감은 <청록집> <해>가 보여준 일차원적인 순진의 세계에서 <오도>이후의 경험세계로 변모 발전하였고, 다시 순진과 경험의 종합이 근자에 시도된 <사도행전><수석열전>의 세계로서 나타났다. <사도행전>과 같이 순진의 노래가 사도의 뜨거운 신앙적인 체험과 내밀의 짝이 될 때 좌절은 초월적인 계기로 긍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수석열전>에 와서 수석 처럼 차고 궅은 의지를 다짐한다. 문총 중앙위원 . 한국문학가협회 詩 분파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56년에는 제 4회 자유문하상을 받았다. 한때 잡지 <학생계>를 주간하였고 연세대학.서울대학 문리대.국학대학.이화여대 교수를 역임,연재 연세대학 문리대 교수로 있다.시집 외에 <박두진 시선>,수필집 <시인의 고향> <생각하는 갈대> , 시론집 <시와 사랑> <한국현대시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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