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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불신시대(不信時代)’ 해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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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불신시대(不信時代)’  해설

 

작가 : 박경리(朴景利, 1927 )

(1) 소설가. 경남 충무 출생. 진주여고 졸업. 1956 <현대 문학> 계산(計算)’, ‘흑흑백백(黑黑白白)’으로 추천을 받고 등단. 1957 불신 시대로 현대 문학 신인상 수상. 1959 <현대 문학>에 연재한 최초의 장편 표류도(漂流島)’로 제3회 내성 문학상을 받았다.

 

섬세하면서도 현실적인 관심을 주축으로 한 광범위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사회 의식이 강한 여류 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제재나 기법에 있어서도 다양한 변모를 보였다,

 

작품으로는 단편에 불신 시대’, ‘전도(剪刀)’, ’벽지(僻地)‘, ’암흑 시대‘, 장편에 표류도‘, ’김 약국의 딸들‘, ’시장(市場)과 전장(戰場)‘, ’토지(土地)‘ 등이 있다. 대하 소설 토지 1969 <현대 문학>에 연재하여 발표한 이래 1994년에 완간하였다.

(2) 1926 10 28일 경상 남도 충무에서 출생했다. 1945년 진주 고등 여학교를 즐업하고 결혼했으나, 한국 전쟁중 부군이 납북된 후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1955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 흑흑백백이 추진되어 문단에 등단한 이래 전도’, ‘불신 시대’, ‘암흑 시대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957년 부정과 악에 대한 장렬한 고발 의식을 보여 준 불신 시대를 발표하여 제3 <현대 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여류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건히 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한국 전쟁 때 남편을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거나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전쟁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는 전쟁 미망인들의 삶, 또는 그들의 눈을 통해 사회 현실의 훼손된 국면들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1959년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독한 여인의 심적 방황을 그린 장편 소설 표류도를 발표하여 제3 내성 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장편 소설의 집필에 주력하였다. 이후 내 마음은 호수’, ‘은하’, ‘푸른 운하 등의 신문 연재 소설을 발표하는 한편, 1962년에는 전작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발표하였다. ‘김약국의 딸들은 이전의 전쟁 미망인을 즐겨 등장시킨 자전적 사건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점을 확보하였고, 공간적 배경도 전쟁터가 아닌 통영으로 바뀌었으며, 제재와 기법면에서 다양한 변모를 보인 전환기적 작품이다. 1964년에는 한국 전쟁이라는 민족사의 비극을 생활인으로서의 시각과 전쟁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시각을 통해 예리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담은 전작 장편 시장과 전장을 간행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에 제2회 한국 여류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어 가을에 온 여인’, ‘녹지대’, ‘타인들’, ‘환상의 시기 등을 연재하였다.

 

1969년 이후부터는 대하 장편 토지에 몰두하고 있다. 하동의 대지주 최 참판네 일가를 중심으로 한말에서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쳐 조국 광복에 이르는 민족사의 변천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광대한 스케일과 한국 근대사의 전개에 관한 작가의 독특한 시각은 우리 소설사에서 배우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72년에는 토지 1부로 제회 월탄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박경리 소설의 수준

단편 불신 시대는 박경리의 초기 작품군(作品群)을 일관해서 흐르는 불행한 여인상이 전형적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서 여인상이라 한 것은 박경리 소설의 기조저음이 전쟁으로 인해 비참해진 여인의 일생에 있다는 뜻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교통 사고로 아들까지 잃은 인텔리 여성이 전쟁 후유증인 각박한 현실과 마주 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느끼는 것은 단순한 절망도,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도, 단순한 극복의 자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념도 아니다.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절망적인 노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불신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긴다. 바로 이 점이 외부에서 주어진 전쟁이라는 불행을 한갓 불가항력적 절망으로 처리한다든가, 터무니없이 그것을 극복한 것처럼 주장하는 종류의 소설과 박경리의 소설을 구별짓게 하는 특징이다. 불신의 사회에서 주인공들이 생명에 대한 강력한 집착력과 삶에의 강렬한 희원(希願)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력에 뿌리를 둔 것임에 틀림없다.

 

소설에서의 거리(距離)

거리(distance)는 미학(美學)에서 먼저 구체화되었던 개념 단위로, 대상에 대한 주체의 시각을 효과 있게 조절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미학에서는 흔히 미적 거리란 말을 쓰는데, 이것이 소설에 와서는 흔히 심적 거리로 바뀌어 불려지곤 하였다. 소설에서의 거리는 작가가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일정한 예술적 효과를 얻기 위해 취하는 심적, 지적 절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거리는 누구와 누구 사이에 설정 될 수 있는 것인가? 부스(W.C. Booth)는 다음의 다섯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보았다.  서술자와 작가 사이  서술자와 작중 인물 사이  서술자와 독자들의 규범 사이  작가와 독자 사이  작가와 작중 인물 사이.

 

그런데 이 거리는 조절하기가 넘지 않다. 작가 입장에서 거리가 너무 좁으면 그 작품은 너무 사적(私的)인 것이 되고 말아 예술 작품의 자질이 그만큼 떨어지게 되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자연미가 없는 관념 소설의 유형으로 떨어지기 쉽다.

 

줄거리

진영은 6.25 때 남편을 여의고 아들 문수와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문수는 아홉 살이 되던 해에 길에서 넘어져서 뇌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무관심으로 인해서 생죽음을 당했다. 아이가 죽은 데다가 실직마저 한 진영은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천주교 신자이자 자신이 다 붓고도 포기한 계의 계주인 친척아주머니의 권유로 성당에 나간다. 그러나 연금 주머니를 돌리는 것을 보고는 그만 나와 버린다. 하루는 시주승이 시주 받은 쌀을 팔러온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진영과 그의 어머니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 그러나 절에서도 시주한 돈의 액수대로 불공을 드리는 것을 보고 실망한다. 폐결핵을 앓는 진영은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약을 타다가 먹다가 그것도 그만둔다. 병원의 약도 가짜가 많은데다가 주사액조차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안 좋아 계를 깼던 친척 아주머니는 알고 보니 다른 데다 돈을 맡겨놓고 있었고 진영이네에게 원금만 둘려주면서도 생색을 낸다. 결국 진영은 절에 가서 문수의 위패를 찾아다가 불에 태운다. 그리고 그렇지.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라고 생각한다.

 

인물

진영 - 6.25로 안해 남편을 여의고 아들문수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미망인. 고독과 그리움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불신의 적대감을 보이나 결국 삶에의 강렬한 회원을 가진 인물.

상배 - 진영의 친척 아주머니 댁에 하숙한 대학생.

 

감상의 길잡이

불신 시대라는 제목대로 주인공 진영을 둘러싼 사회 현실은 모두 그녀를 기만하고 배신한다. 특히 6.25 전쟁 직후의 배금주의는 생존 자체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한다. 끝내 아들의 위패를 불태우는데, 이 범상치 않은 행위는 쓰라린 과거를 의식 속에서 지우는, 그리하여 새로운 인간적 면모로 세상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비록 실천적 행동으로 시대 상황을 부정하고 저항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 내에서 내면적으로 대결 의지를 다진다는 점에서 한 여인의 한계와 상황 극복의 의지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

1957 8 <현대문학>에 발표된 작품으로 제3회 현대 문학상 신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눈을 통해 감지되는 사회의 타락과 물신화되어 가는 현실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평범한 현상들을 소재로 삼아 당대의 현실이 지닌 병폐를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 진영의 남편은 9.28 서울 수복 전야에 폭사한다. 그리고 혼자서 길러 온 아들은 엉터리 의사에게 뇌수술을 받다가 죽는다. 홀어머니는 외동딸인 진영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진영 자신은 폐결핵을 앓고 있다. 진영은 온갖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회적인 조건 역시 그녀의 슬픔과 외로움을 더해 준다. 빈 병 속에 가짜 약을 넣어 파는 병원과 약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고 내세우는 당숙모는 남의 곗돈을 잘라먹고 그녀에게 원금은 갚아 주면서 큰 인심이나 쓰는 척한다. 교회나 절간 등도 그녀의 기대를 배반한다. 아들의 혼을 위로해주기 위해 성당으로 가서 미사에 참석하고, 절에 가서 제를 지내기도 했지만, 엄숙해야 할 의식에서 그녀가 보고 느낀 것은 추잡한 돈에 대한 욕심뿐이었다. 절대적 신앙이어야 할 종교까지 완전히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불신 시대라는 제목 자체가 말하듯이, 진영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모두 그녀를 기만하고 배신하는 사회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이러한 배금주의에 물든 사회 현실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그것들에 대해 항거할 수 있는 생명력이 자신의 내부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애써 확인하는 것으로 결말에 이른다. 물론 이 작품에도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여주인공의 환경과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에 모두 피해 의식과 감상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현실 앞에서 항상 슬퍼하고 외로워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진영은 어느 정도 지적인 비판력을 가지고 현실과 대결하고 있는데, 박경리의 다른 소설에서와 달리 현실과 대결하는 반항적인 인간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은 인간에의 증오감을 폭발시킴으로써 부정과 위선과 허위로 가득 찬 현실의 상황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목은 바로 당대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며, 동시에 사회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현대문학>(1957. 8.)에 발표된 소설로서 전쟁통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진영이 전후의 부조리와 허위 그리고 위선 속에서 상처받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진영이 하나 하나의 위선을 체험할 때마다의 심리적인 변화나 절망감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뚜렷한 사건을 중심으로 플롯이 구성되기보다는, 진영이 겪는 다기한 부조리들을 아들 문수의 죽음이라는 정신적 충격의 주위에 배치하여, ‘불신시대라는 제목에 알맞게 진영의 세상에 대한 불신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불신시대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진영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모두 그녀를 기만하고 배신하는 사회이다. 진영의 아들 문수를 수술한 엉터리 의사부터가 그렇고 폐결핵으로 인해서 드나든 병원의 의사며 약장사들 모두가 사기꾼들이다. 그런가 하면 진영의 아주머니라는 사람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면서 남의 곗돈을 잘라먹고 자신의 돈은 따로 다른 사람을 빌려 주는 야비함을 보여준다. 교회건 절간이건 마찬가지이다. 돈에 눈이 어두워서 사랑이니 자비니 하는 덕목은 모두 사라진지 오래다. 진영에게 이 세상은 온통 불신의 대상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작자는 이를 불신시대라 명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후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러한 불신시대적인 상황들은 단지 진영의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 불과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불신시대적인 상황이 왜 발생하였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진영이 느끼는 개인적인 걸망과 불신감만이 확대되어 나타날 뿐이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의 곁말 역시 진영이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사람을 좀 미워해야 겠다’, 나에게는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남아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절망으로부터 끌어올리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조차 너무나 무력함을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의지란 결국 인간에 대한 증오감을 가지겠다는 차원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기조가 피해자 의식이라고 명명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점 때문이다. 진영은 이러한 불신시대의 피해자이며 그녀가 이러한 불신시대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기껏해야 인간을 좀 미워하자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이 소설이 끝내 피해자 의식에 머물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 소설이 불신시대적인 상황을 빚어낸 원인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진영이라는 상처받은 개인이 불신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겪는 고통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전후상황의 한 단면을. 그리고 그러한 단면에 놓인 비극적인 한 여성의 모습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감상의 길잡이

불신시대 1957 8 󰡔현대문학󰡕 32호에 발표하여 제3회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사회 구성원들의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회악과 위선의 탈을 쓴 종교 등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리얼리즘 성격을 보이고 있는 소설이다.

 

불신시대(不信時代)’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주인공 진영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모두 그녀를 기만하고 배신하는 사회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배금주의에 물든 사회현실에 환멸을 느껴 항거할 수 있는 생명력이 주인공의 내부에 남아있음을 애써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을 맺는다.

 

전쟁(6.25) 직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눈을 통해 전후 사회의 혼탁한 모습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형상화하여 심리적 변화나 절망감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생활 주변에서 보이는 평범한 현상을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은 사건 중심의 플롯이 아닌 주인공의 위선적 체험을 바탕으로 당대의 현실이 지닌 불신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셈이다.

 

주인공 진영의 남편은 9.28 수복 전야에 폭사한다. 그녀는 남편을 여위고 아들 문수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런데 그 아들 문수는 아홉 살이 되던 해 길에서 넘어져 뇌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무관심으로 죽게 된다. 이 무렵 진영 자신은 폐결핵을 앓았으며, 직장마저 잃게 되었다. 청상과부인 그녀는 남편과 아들의 죽음을 통해 비극을 체험하고 타인을 모두 적으로 생각한다. 고독과 그리움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적대감 속에서 그녀는 반항의 자세를 견지한다. 사회적 조건 역시 슬픔과 외로움을 더해주어 그녀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녀는 결국 절에 가서 아들의 위패와 사진을 찾다가 불에 태운다. 그녀는 사진을 다 태우고 나서 눈물을 흘리면서 쓸쓸히 언덕을 내려온다.

 

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지,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력이.”

 

이 작품에는 박경리의 초기소설에서 보는 불행한 여인의 전형이 들어 나 있다. 이러한 여인상은 전쟁으로 비참해진 여인의 일생을 두고 칭하는 말이다. 불신시대의 원인은 전쟁이다. 그렇지만 전쟁 상황에서 파생된 인간 삶의 악조건들이 죽음에 의해 걸려지는 것이다.

 

이 작품의 실제 이야기도 작품 구성 원리상 결말 부분 직전까지 불신시대의 의미를 이끌어 간다. 문수가 죽은 것은 순전히 의사의 무관심 때문이다. 뒤에 이어지는 사건들 역시 진영으로 하여금 불신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친척 아주머니에게 돈을 떼이는 사건, 종교를 빌미 삼아 벌인 상배의 사기 행각, 신발을 들고 가야만 하는 교회, 염불보다 젯밥에 눈이 먼 중-이러한 것이 진영의 삶을 지나치게 하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진영은 이러한 불신의 시대에 살면서도 체념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불신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긴다. 전쟁이라는 불행을 한낱 불가항력적인 절망으로 처리하거나 터무니없이 국복한 것처럼 꾸미지 않는다. 불신의 사회에서 주인공 진영이가 삶에의 강렬한 희원과 생명에 대한 집착력을 드러낸 것은, 그녀가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력에 뿌리를 두고 어디까지나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영은 이성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절에서 돈 없는 사람의 위패란 구박덩어리가 될 뿐이라는 점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위패를 태워 버릴 작정을 한다. 그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불신 시대의 모든 조건을 불살라 버리자는 행위이다. 그것은 또한 그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삶을 준비하는 재생의 결심인 것이다. 이러한 진영의 의지는 결말 부분에 이르러 그렇지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라고 확인된다.

 

전후 시대 인간의 삶의 양상을 죽음의 심상과 생명의 확인이라는 문제로 인식한 작가 박경리의 작품으로는 불신 시대 외에 영주와 고양이(1957), 암흑 시대(1958) 등이 있다.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전후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 혼란기 사회의 부정(不正)에 대해 고발하고 저항하는 자세

배경 : 9. 28 수복 직후의 혼란스러운 서울 (공간적 배경은 전후 부조리와 위선에 둘러싸인 서울의 현실적 공간이며, 시간적 배경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뒤얽힌 채 인간들의 삶이 불신으로 나타나는 일상적 시간이다.)

표현

부정과 위선과 계산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암흑면을 파헤치고 고발하는 저항적 문체.

여성의 시각을 통한 시대 문제의 조명.

주인공 진영의 개인 관점으로 사건과 상황이 전개됨.

주제

혼란과 사회의 부정에 대한 분노와 고발

전후 사회의 타락한 현실 비판과 불신의 참다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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