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 고원
by 송화은율
작가 : 고원(1925- ) 충북 영동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영국 런던대, 퀸메리대 수료. 한국시인협회 사무간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사무국장 역임.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그의 시는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도시인의 내면을 노래하였으며, 후기로 갈수록 고도의 지성으로 감정의 영역을 통제하고 있다. 한국시의 주지적 경향을 새롭게 드러낸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으로는 이민영, 장호 등과 더불어 발간한 3인시집 『시간표 없는 정거장』(1952)이 있고, 첫번째 시집인 『이율(二律)의 항변』(시작사(詩作社), 1954)을 비롯하여 『태양의 연가(戀歌)』(이문당, 1956),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정음사, 1960), 『오늘은 멀고』(동민문화사, 1963), 『속삭이는 불의 꽃』(신흥출판사, 1964), 『물너울』(창작과비평사, 1985) 등이 있으며, 역시집인 『영미여류시인선』(1959), 『추억과 영역』(김종길과 공역) 등도 있다. 또한 김소월의 시를 영역하여 시집 『AZALEA』을 발행했고, 『한국현대시집』을 영역 간행하는 등 해외에 한국 현대시를 소개하는데 기여하였다.
< 감상의 길잡이 >
육친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비통하다.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자식의 슬픔은 더욱 애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있어서 생명의 원초적 기반이었으며 나아가 정신적 모태를 이루기 때문이다. 「물길」에서 시인은 `물'의 심상을 통해 어머니를 추모하고 어머니의 존재를 영원한 것으로 만든다.
물은 생전에 어머니가 자주 찾으시던 것이었다. 시의 화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물길로 인도함으로써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을 생전의 백팔번뇌를 씻어내는 정화(淨化)의 계기로 삼는다. 장례의식을 통해 어머니의 육신은 물과 하나가 된다. 이승을 떠나는 어머니의 자취를 `강물'이 여는 `새길' 따라 `훨훨 나가시는 걸음'으로 만든다. 어머니 육신의 자취가 강물을 따라 떠갈 때 외아들의 가슴이 출렁거렸다는 표현은 단순한 육친의 그리움을 넘어선 것이다.
아들은 이승을 떠난 어머니의 행로를 꿈꾸어 본다. 아들의 상상 속에서 죽음의 길은 물의 이동을 빌어 또다른 여행길로 열린다. 그 길은 대서양과 태평양 건너 고향의 산천을 향한다. 이국의 강물을 떠나 아들 걱정이 끊이지 않던 고향으로 향하는 회귀의 과정을 보이는 것이다.
물이 가진 순환의 흐름을 따라 어머니의 존재는 우주의 비 전체로 확산된다. 화분에 물도 주고 비도 맞고 강과 바다에도 가겠다는 의지는 어머니의 다른 모습인 물과 만나기 위해서이다. 부슬부슬 오는 비는 지상에 내리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오는 비와 동일하게 여겨질 때 `가시는' 것과 `오시는' 것은 하나로 여겨진다. 여기서 물의 우주적 순환과 결부된 삶과 죽음의 순환적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물길」은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명상이 담겨 있으면서 죽음을 삶의 정지로 보지 않고 또다른 회귀적 움직임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인식은 물의 상상력을 빌어 가능하다. 물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며 순환하는 성질을 갖기 때문에 물의 심상을 빌어 이국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는 고향의 대지로 되돌아오며 대지의 생명수로 그 존재가 확산되는 것이다. [해설: 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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