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 고은
by 송화은율▶ 감상의 초점
고은의 네 번쩨 시집 문의(文義)마을에 가서(1974)의 표제시다. 이 시는 시인이 50-60년대 초기시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작가가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절감하고 민중적 각성의 시인으로 변신한 중기시의 서두를 장식한 것이다.
이 시는 모친상을 당한 신동문 시인의 고향인 충북 청원군 문의마을에 가서 장례식을 주관했던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성격 : 명상적, 주지적, 관념적, 철학적
▶ 어조 : 담담하게 절제된 어조
▶ 구성 : ① 죽음과 삶의 길이 어떻게 다른가(1연)
② 죽음과 삶의 길이 하나임(2연)
▶ 제재 : 장례 의식
▶ 주제 : 죽음과 삶의 상거(相距)와 합일(合一) (죽음을 통하여 깨달은 삶의 경건성)
< 감상의 길잡이 1 >
전기적 시실이야 어떻든 문면(文面)에 드러난 바로는 ‘문의 마을’은 이 시에서 죽음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시적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첫 연에서 죽음은 길이 ‘적막’하기를 바라고,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둘째 연에 가면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또한 죽임이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첫 연과 둘째 연이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상응하는 구조인 바,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이라는 구절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이라는 구절과 대응하는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제2연 6행의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는 구절에서는 기묘하게도 죽음과 삶의 상거(相距)와 합일(合一)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죽음과 삶의 길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일 터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자가 아무리 돌을 던져 죽음을 쫓고자 하여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된다.
< 감상의 길잡이 2 >
흰눈으로 뒤덮인 시골의 한 마을을 그려 본다. 삶에 지쳐서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그 마을에 들어서는 길은 적막함을 안겨주고 있다. 나와 반겨줄 아무도 없이 추위에 떨며 다다른 마을은 조용히 잠들어 있고 개 한마리 짖지 않는다. 조용히 눈 내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 들어 바라본 저 건너편 산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 이 고요함과 적막함은 삶의 고달픔을 잊게 해 준다.
눈이 내리면 눈사람을 만들고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던 유년 시절의 설레임은 이제 사라졌으며, 눈에 뒤덮인 마을은 삶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사람에게는 고독한 사색의 시간으로만 다가선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유년 시절의 그렇게 정다웠던 마을길이 이제는 외면을 하고 추운 산맥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로 눈이 내려 죽은 듯이 고요한 마을을 덮는다. 하지만 마을에는 사람들이 계속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만 문을 걸어 잠그고 조용히 따뜻한 아랫목에 등을 덥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그네는 마을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눈의 존재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도 그렇게 쉽게 분간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문의 마을에 가서 눈을 보았고 삶을 깨닫게 되었고 죽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죽음은 낯설지도 않다. 그러기에 시인은 `죽음이 삶을 껴안은 것'을 투시하게 되었다. [해설: 조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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