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명(墓地銘)
by 송화은율묘지명(墓地銘)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德水) 이택모 백규에게 시집 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마흔 세 해를 살았다. 지아비의 선산이 아곡인지라, 장차 서향의 언덕에 장사지내려 한다.
백규가 그 어진 아내를 잃고 나서 가난하여 살 길이 막막하여, 어린 것들과 계집종 하나, 솥과 그릇, 옷상자와 짐 궤짝을 이끌고 강물에 띄워 산골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더불어 함께 떠나가니, 내가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가운데서 이를 전송하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 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 때 갓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잔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으로 분을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 오리, 금 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내게 뇌물로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 지금에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은 바람에 펄럭거리고 돛대 그림자는 물 위를 꿈틀거렸다. 언덕에 이르러 나무를 돌아가더니 가리워져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 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얼굴 같고, 새벽 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구던 일을 생각하였다. 유독 어릴 적 일은 또렷하고 또 즐거운 기억이 많은데, 세월은 길어 그 사이에는 언제나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하고 가난과 곤궁을 근심하였으니, 덧없기 마치 꿈속과도 같구나. 형제로 지낸 날들은 또 어찌 이다지 짧았더란 말인가.
떠나는 이 정녕코 뒷 기약을 남기지만
오히려 보내는 사람 눈물로 옷깃 적시게 하네.
조각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올꼬
보내는 이 하릴없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요점 정리
작가 : 박지원
갈래 : 묘지명
제재 : 누님의 죽음
주제 : 누님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그리움
특징 : 통상적인 묘지명과는 달리 어린 시절의 일화를 주요 내용으로 구성하고, 작품의 끝에 시를 덧붙여 작가의 애틋한 심정을 전달함
줄거리 : 43세를 일기로 누이가 죽자 자형은 가난하여 살 길이 막막하여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산골로 들어가 살려고 상여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나 이를 통고하며 글을 쓴다. 시집 가던 날 동생의 짓궂은 장난을 자애롭게 받아준 누님을 생각해 보니 누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장례를 치르고 나니 누님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더욱 서글퍼지고 인생이 무상한 것 깉다.
내용 연구
유인(孺人 :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의 신주나 명정(銘旌)에 쓰는 존칭으로 글쓴이의 죽은 누이를 가리킴)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德水) 이택모 백규에게 시집 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마흔 세 해를 살았다. 지아비의 선산[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선롱(先壟). 선영(先塋). 선묘(先墓).]이 아곡인지라, 장차 서향의 언덕에 장사지내려 한다.
백규가 그 어진 아내를 잃고 나서 가난하여 살 길이 막막하여, 어린 것들과 계집종 하나, 솥과 그릇, 옷상자와 짐 궤짝을 이끌고 강물에 띄워 산골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더불어 함께 떠나가니[시집 간 이후 고난의 연속이었을 누이의 삶에 대한 연암의 안타까움과 안쓰러운 마음], 내가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가운데서 이를 전송하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 글을 쓰게 된 동기 - 누님의 죽음
아아! 누님이 시집 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 때 갓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잔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으로 분을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 오리, 금 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내게 뇌물로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자애로운 누님의 성품]. 지금에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어린 시절 누님에 대한 일화 소개] - 누님이 시집 가던 날의 모습(과거 회상)
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 : 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관직·성씨를 기록한 기.)은 바람에 펄럭거리고 돛대 그림자는 물 위를 꿈틀거렸다. 언덕에 이르러 나무를 돌아가더니 가리워져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누님이 살아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세계로 영원히 가 버렸다는 의미]. 그런데 강 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얼굴 같고, 새벽 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누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구던 일을 생각하였다. 유독 어릴 적 일은 또렷하고 또 즐거운 기억이 많은데, 세월은 길어 그 사이에는 언제나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하고 가난과 곤궁을 근심하였으니, 덧없기 마치 꿈속과도 같구나[인생무상 : 덧없는 인생을 이르는 말]. 형제로 지낸 날들은 또 어찌 이다지 짧았더란 말인가.[누님과의 정겹고 아름다운 순간을 현재의 상황과 대조하여 누님이 없는 현재의 쓸쓸함을 느끼게 함] - 상여를 보내고 홀로 서 있는 모습
떠나는 이[글쓴이의 누님] 정녕코 뒷 기약을 남기지만
오히려 보내는 사람[글쓴이 자신 박지원] 눈물로 옷깃 적시게 하네[연민의 눈물].
조각배[누님의 상여를 실은 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올꼬
보내는 이 하릴없이[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이해와 감상
누님의 상을 당하여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인 작가가 직접 쓴 묘지명이다. 묘지명으로서는 형식상, 내용상의 파격을 보이고 있는데, 누이가 시집 가던 날의 일화를 잔잔하게 회상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죽은 누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추모의 정을 더 곡진하게 보여 주고 있다. 자형의 곤궁한 삶에 대한 묘사를 통해 자형에 대한 감정을 은근히 드러내는가 하면, 자형을 따라 산골로 들어가는 어린 조카들에 대한 연민도 드러나 있다. 상실감 가득한 심정을 일상적인 묘지명의 상투적인 서술 방식을 피하고 인상적인 삽화와 극적 장면을 중심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고인에 대한 애정과 슬픔을 한층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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