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 해설
by 송화은율명심보감
〈최상진 경희대 국문과 교수〉
지구촌이 과학적 공동사회로 진입하는 21세기의 길목에서 `명심보감(明心寶鑑)'과 같은 과거의 책을 들먹거리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자.신문지상에 일련의 패륜적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아버지가 가난을 빌미로 어린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고,자식이 부모를 죽이고,부모가 자식을 팔아먹고,남편이 부인을 학대하고,부인이 남편을 살해하고,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적 쾌락에 빠져들고,부정부패가 판을 치고,학원에 폭력이 난무하고,이혼 등으로 인한 결손가정의 폭증으로 철모르는 아이들이 무작정 거리에 내버려지고 있다.차마 너무 잔인하고 몸서리쳐져 픽션으로도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우리 현실 앞에서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다.우리나라가 도덕적으로 벼랑 끝에 서 있다.
바로 이 시점에 전통 도의교육의 교재였던 `명심보감'을 왜 값지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있다.`명심보감' 속에는 앞서의 사회문제를 미리 막기 위한 생활철학적 경구들이 수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명심보감'은 문자 그대로 `마음을 맑게 하는 귀한 책'이다.이 책은 유가․도가 철학자들의 명문장을 여러 경전에서 뽑아 편집한 것이다.이 책을 편집한 사람과 그 간행 시기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으나 상당히 오래 전부터 널리 애용되었던 유․초등교육의 교재였다.`명심보감'은 전 21편으로 되어 있다.악을 멀리하고 선을 권하는 계선편(繼善篇),하늘을 두려워하고 하늘의 뜻에 따르라는 천명편(天命篇) 순명편(順命篇),부모님을 잘 섬기라는 효행편(孝行篇),바로 행동하고 마음을 바로 세우라는 정기편(正己篇),몸가짐을 가지런히 하라는 안분편(安分篇) 존심편(存心篇) 계성편(戒性篇) 성심편(省心篇),자식을 잘 가르치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훈자편(訓子篇) 근학편(勤學篇) 입교편(立敎篇),나라에 충성하고 국가와 가정에 충실하라는 치정편(治政篇) 치가편(治家篇),남과의 관계를 신의로써 대하라는 안의편(安義篇) 준례편(遵禮篇) 언어편(言語篇) 교우편(交友篇),여성들에 대한 바른 몸가짐을 일깨워주는 부행편(婦行篇)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명심보감'의 내용을 보면 생활 속에서 터득한 도덕과 윤리정신이 곳곳에 스며 있다.
송나라 서긍(徐兢)이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보면 최초의 우리나라 초등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당에 대한 언급이 있다.서당의 역사는 지금부터 천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예부터 서당의 기본교재는 `명심보감'`동몽선습'`천자문'이었고 배움의 진척에 따라 `통감'`사서' 등과 같은 교재로 발전하였다.
머리를 곱게 따내린 일곱 여덟살된 선머슴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마을 어귀에 들어서고 있다.고개너머 옆마을 서당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이다.한 아이가 논일을 하던 아버지를 발견하곤 아기봇짐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도우러 논으로 들어간다.아이가 풀어놓은 봇짐 속에는 `명심보감' 한 권과 `천자문' 한 권,습자용 화선지 두루말이가 들어있다.옛날 우리 아기학동들의 모습이다.이렇게 `명심보감'은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중요 교재였고 이것을 반복해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유아교육 프로그램이었다.우리나라의 현대 유아교육은 대개 너댓살 때부터 시작된다.가정에서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단계에서 집 밖을 벗어나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익히게 된다.이때부터 학교식 교육이 시작된다.현재 우리의 유아교육은 전적으로 사설 유치원에 의존하고 있으며,미술 음악 속셈 수영 태권도 등 각종 사설학원에서 특기 중심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간혹 예절교육 교통교육 등 별도의 도덕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나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마련된 도덕교육 프로그램은 없다.과거의 유아교육은 지금과 같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명심보감'을 통해 도의교육만큼은 분명히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명심보감'은 천년의 세월을 면면히 이어오면서 이 땅의 아이들을 길러낸 책 중의 책이다.고려조 조선조를 거쳐 개화기시대에 이르기까지,혹은 현재도 깊은 시골 마을의 아이들은 `명심보감'을 가지고 선비정신을 키워오고 있다.
고전이란 무엇인가.천년의 세월을 지키고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서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고전이 아니겠는가.위대한 작가나 철학자들에 의해 쓰인 책만이 고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명심보감'이 비록 중국 철학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편집돼 있기는 하나 우리의 정서가 곳곳에 담겨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명심보감'은 아이들이 최초로 배우는 초학서이므로 비교적 쉬운 한자와 한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자와 한문장을 쉽게 익히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뿐만 아니라 비교적 읽기 쉬운 글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글로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풍부한 사색력을 키우게 해준다.또한 쉬운 어휘와 문장만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 진정 좋은 문장이라는 것도 터득할 수 있다.
`명심보감'은 전철에서 단돈 천원의 조잡한 덤핑판으로 팔려야 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전통식 양장에 고급 종이로 출판돼 우리의 집집마다 보급되어야 하는 그런 책이다.청소년들에게 부모를 공경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공공질서를 지키고 올바른 생활태도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기 위해 반드시 읽혀야 할 필독서다.청소년들에게 권하기 전에 우선 아직도 이 책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어른들이 먼저 읽자.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밤을 새워 읽은 뒤 다음날 아침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학교로,직장으로 나가자.그리고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악한 일을 해서 죄를 하늘에 지으면 빌 곳이 없다는 말을 전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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