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래(眠來)·무명(無名)·어상(禦霜)
by 송화은율면래(眠來)·무명(無名)·어상(禦霜)
신경준 지음
서기종 번역
1. 면래(眠來)
면래꽃은 담홍색이며, 잎은 갈래가 많고, 줄기는 매우 쓰다. 잘 삶아서 깨끗한 물에 하루나 이틀쯤 담가두면 그 맛이 아주 아름답다. 그러나 이를 많이 먹으면 잠을 졸다가 쓰러지는데, 쓰러지면 일어나기 힘들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설령 백 세를 산다고 하다라도 낮에는 활동하나 밤에는 자게 되므로 잠자는 시각이 절반을 차지하나다. 잠을 잘 때는 구규(九竅)와 사체(四體)가 모두 정지된 상태이므로 지각(知覺)과 운동을 깨달을 수 없으니, 비록 살아있는 시각이기는 하나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살아있는 세월이 백 세라고 하더라도 활동애 사는 것은 오십 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오십 세 가운데 십 세 이전에는 어린시절로 아무 일도 할 줄 모르며, 80∼90세 이후에는 늙어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각은 과연 몇 년이나 될까. 더러는 밤새도록 자고 그 이튿날까지 자는 때도 있고보면 그 활동한 시각은 실로 얼마되지 않는다.
잠이란 마치 우주에 낮과 밤, 가을과 겨울이 있는 것처럼 폐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면래같은 것을 먹여서 잠을 더 많이 자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이 때문에 면래초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동산 가운데 자라고 있기 때문에 제거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2. 무명(無名)
동산에 이름 없는 꽃들이 많다. 사물이란 스스로 이름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줄 수 밖에 없다. 이름이 없는 꽃이라면 내 스스로 이름을 지어줄 수 있겠으나 반드시 이름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물에 대해 사람들은 그 이름보다는 이름 밖에 있는 그 무엇을 더 사랑한다. 비유하건대 음식에 있어 어찌 음식의 이름을 사랑하며, 옷가지에 있어 어찌 그 옷가지의 이름을 사랑하겠는가. 맛 좋은 생선구이가 있다면 배불리 먹을 뿐이며, 가벼운 털옷이 있다면 그 옷을 입어 몸을 다습게 할 뿐이다. 무슨 고기인지, 또는 무슨 짐승의 털인지, 그 이름을 모르면 어떠하랴.
내가 본 꽃에 이미 사랑을 느꼈다면 그 꽃의 이름을 모르면 어떠하랴. 그 꽃에 대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면 아예 이름을 지을 것조차 없겠으나 그 꽃에서 사랑을 느낄 만한 것이 있어 이미 그 사랑을 내가 느꼈다면 구태어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름이란 피아(彼我)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피아만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면 길고 짧은 것, 크고 작은 것, 푸르고 누런 것, 붉고 흰 것,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 등등 이름 아닌 것이 없다. 이것, 저것도 이름이며, 무명(無名)을 무명이라고 한 것도 모두 이름일 것이다. 부질없이 이름을 지어 꾸밀 이유가 없지 않는가.
옛날 초나라에 한 어부가 있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그 어부를 사랑하여 죽은 뒤 사당을 짓고 굴대부(屈大夫)를 배향하였다. 그 어부의 이름은 과연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굴대부는 자신이 지은 가사에서 자신을 정측(正則), 또는 영균(靈均)이라 이름하여 자찬하였다. 정말 굴대부의 이름은 아름다웠으나 그 어부의 이름이 없어 다만 어부라고만 불렀다. 어부라는 이름은 천하였지만 굴대부의 이름과 함께 백세토록 전해오고 있으니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어찌 이름에만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름은 아름다워야 하지만 천해도 괜찮을 듯하며, 있어야 하지만 없어도 괜찮을 듯하다. 천해도, 없어도 괜찮을 듯하다면 반드시 이름을 아름답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또 반드시 가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혹자가 말하기를,
"꽃마다 이름이 없지 않은데 그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고 이름 없는 꽃이라고 하면 되는가."
하기에, 답하기를
"본디 이름 없는 것들도 있겠으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도 이름이 없는 것들과 마찬가지다."
하였다. 어부는 초나라 사람이므로 초나라 사람들은 그 어부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초나라 사람들이 그 어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이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랑해야 할 점만 전하고 그 이름은 전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지어진 이름도 이처럼 전해지지 않는데, 더구나 전하지 않을 이름을 기어이 가지려 하는가.
3. 어상(禦霜)
국화에게 서리를 이겨내는 높은 절개가 있기 때문에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이 꽃을 사랑한 것이다. 도잠이야말로 은일인(隱逸人)이다. 이 꽃을 가르켜, 주무숙(周茂叔)이 은일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은일의 이름을 얻게된 것이지, 국화 자신은 실로 은일하지 않다.
왕궁, 귀인 부호가로부터 여염의 천사에 이르기까지 뜨락이나 동산에 심어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고금의 시인 문사들이 가사나 서설을 지어 훌륭히 찬양했으며, 또 화가들은 아름답게 그 모습을 그렸다. 심지어 유몽(劉蒙), 범지능(范至能), 사정지(史正志), 왕관(王觀) 등은 그 종류를 빠짐없이 모아 국보(菊譜)를 만들었으니, 과연 국화를 보고 바위와 숲이 어울린 험한 빈터에 깊숙이 숨어 삶으로써 사람들이 그 이름을 모르는 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혁혁한 그 명성은 모란보다 더 높다. 그러니 참으로 꽃 중에서 은일은 어상(禦霜)이라 하겠다.
이 꽃은 담홍색으로 송이가 많으며 잎은 국화와 같은데 줄기가 약간 가늘다. 늦가을에야 비로소 피며, 서리가 내릴수록 그 빛깔이 더욱 선명하니, 아마 도잠이 이 꽃을 보았다면 그 사랑이 국화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된 연유로 지금토록 아름다운 빛깔과 높은 은일의 덕을 홀로 간직하고 세상에 그 이름을 숨기고만 있을까.
내 역시 이제야 이 꽃을 보았으니 이와 같은 종류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필시 깊숙한 산 언덕 쑥대와 넝쿨이 엉킨 사이에 절개를 가진 꽃들이 어상처럼 숨어 살고 있을 것이다. 참답게 산야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이런 꽃들을 알겠지만 설령 알고 있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꽃들은 도잠처럼 글을 지어 이름을 널리 드러내 주기를 바라랴.
신경준(申景濬) : 〔1712년(숙종38)∼1781년(정조5)〕조선 후기 실학자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菴)이다. 신숙주의 아우 말주(末舟)의 11대손으로서 문자학·성운학(聲韻學)·지리학 등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쳐 업적을 남겼다. 1745년(영조 30) 43세의 나이로 증광시을과로 급제한 후, 정언·장령·현감·종부시정·승지·북청부사·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770년에눈 문학지사(文學之士) 8인과 함께 [문헌비고]를 편찬할 때 [여지고(輿地考)]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 글은 저자의 유집인 〔여암유고(旅菴遺稿)-한국문집총간 제231집〕권 10, 雜著 四 [순원화훼잡설(淳園花卉雜說)] 에 수록되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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