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사 (萬言詞)
by 송화은율만언사 (萬言詞)
어와 벗님네야 이 내 말씀 들어보소
인생 천지간에 그 아니 느껴온가
평생을 다 살아도 다만지 백년이라
하물며 백년이 반듯기 어려우니
백구지과극이요 창해지일속이라
역려 건곤에 지나가는 손이로다
빌어온 인생이 꿈의 몸 가지고서
남아의 하올 일을 역력히 다 하여도
풀 끝에 이슬이라 오히려 덧없거든
어와 내 일이야 광음을 헤어보니
반생이 채 못되어 六六에 둘이 없네
이왕 일 생각하고 즉금 일 헤아리니
번복도 측량없다 승침도 하도할사
남대되 그러한가 내 홀로 이러한가
아무리 내 일이라 내 역시 내 몰라라
장우단탄 절로 나니 도중상감 뿐이로다
부모생아 하오실 제 제 죽은 나를 나으시니
부귀공명 하려던지 절도고생 하려던지
천명이 기압던지 선방으로 서험한지
일주야 죽은 아해 홀연히 살아나네
평생길흉 점복할 제 수부강녕 가졌으니
귀양 갈 적 있었으며 이별순들 있었으랴
빛난 채의 몸이러니 노래자를 효측하여
부모앞에 어린 체로 시름 없이 자라더니
어와 기박하다 나의 명도 기박하다
십일세에 자모상에 호곡애통 혼절하니
그때나 죽었더면 이때 고생 아니 보리
한번 세상 두번 살아 인간행락 하려던지
종천지통 슬픈 눈물 매봉가절 몇 번인고
십년양육 외가은공 호의호식 그렸으랴
잊은 일도 많다마는 봉공무하 함이로다
어진 자당 들어오셔 임사지덕 가지시니
맹모의 삼천지교 일마다 법이로다
증모의 투저함은 날 믿어 아니시리
설리에 읍죽함은 지성이 감천이요
백이의 부마함은 효자의 할 바로다
입신하여 양명함은 문호의 광채로다
행세의 으뜸 일이 글 밖에 또 있난가
동사고문 사서삼경 당음장편 송명사를
세세히 숙독하고 자자이 외웠으니
읽기도 하려니와 짓긴들 아니하랴
삼월춘풍 화류시와 구추황국 단풍절에
소인묵객 벗이되어 음풍영월 일삼을 제
당시의 조격이요 송명시의 재치로다
문여필이 한가지라 어느 것이 다를손가
짓기도 하려니와 쓰긴들 아니하랴
번화감제 부벽서와 사치공자 병풍서를
왕우군의 보체런가 조맹부의 축체런가
여러가지 잘하기로 일시재동 일컫더니
오매구지 요조숙녀 전전반측 생각하니
동방화촉 늦어간다 이십년에 유실이라
유폐정정 법을 받아 삼종지의 알았으니
내조에 어진 처는 성가할 징조로다
유인유덕 우리 백부 구세동거 효측하여
일가지내 한데 있어 감고우락 같이 하니
의식분별 뉘 아던가 세간구처 내 몰래라
입신양명 길을 찾아 권문귀댁 어디어디
장군문하 막빈인가 승상부중 기실인가
천금준마 환소첩은 소년 놀이 더욱 좋다
자극맥상 번화성은 나도 잠간 하오리다
이전 마음 전혀 잊고 호심광홍 절로 난다
백마왕손 귀한 벗과 유협경박 다 따른다
무릉장대 천진교도 명승지라 알려지다
삼청운대 광통굔들 놀이처가 아니런가
화조월석 빈 날 없이 주사청루 거닐 적에
만준향료 진취하고 절대가인 침닉하여
취대라군 고운 태도 청가묘무 회롱할 제
풍류호사 괴 뉘신고 주중선군 부러하랴
만사무심 잊었더니 일조홀연 양심 나네
소년놀이 그만하자 부모근심 깊으시다
맥상번화 자랑마라 구리화도 늦어간다
옛마음 다시 나서 하던 공부 고쳐하여
밤을 새워 낮을 이어 일시불철 하난고야
부모봉양 하려던지 내 몸 위한 일이런지
수삼년을 각고하니 무식지인 면하거다
어와 바랐으랴 꿈결에나 바랐으랴
어악원에 들어가서 금문옥계 문을 열어
디미니 천하온 몸이 천문근처 바랐으리
금의를 몸에 감고 옥식을 베고 있어
부귀에 싸였으며 번화에 잠겼세라
일진 겸대 삼사처는 궁임뿐이 아니로다
복과재생이라 소심봉공 잘못하여
삭관퇴거 하온 후에 칠일옥중 지내오니
곱던 의복 무색하고 좋은 음식 맛이 없네
망극천은 가이 없어 희극환비 눈물 난다
어와 과분하다 천은도 과분하다
궁임겸대 망극천은 생각사록 과분하다
번화부귀 고쳐하고 금의 옥식 다시하여
장안 도상 넓은 길로 비마경구 다닐 적에
소비친척 강위친은 예로부터 일렀나니
여기 가도 손을 잡고 저기 가도 반겨하니
입신도 되다하고 양명도 하다하리
만사여의 하였으니 막비천은 모를소냐
충칙진명 알았으니 쇄신보국 하려던지
졸부귀가 불상이라 곤마복중 되겠고야
극성즉필패하고 흥진즉비래니라
다 오르면 나려오고 가들하면 넘치나니
호사가 다마하고 조물이 시기한지
인간작죄 많이 하여 화전중화 되었는지
청천백일 맑은 날에 뇌성벽력 급히치니
삼혼칠백 날아나서 천지인사 아올소냐
여불승의 약한 몸에 이십오근 칼을 쓰고
수쇄족쇄 하온 후에 사옥 중에 드단말가
나의 죄를 헤아리니 여산여해 하겠고야
아깝다 내 일이야 애닯다 내 일이야
평생일심 원하기를 충효겸전 하잤더니
한 번 일을 그릇하고 불충불효 다 되겠다
회서자이 막급이라 뉘우친들 무상하리
등잔불 치는 나비 저 죽을 줄 알았으면
어디서 식록지신이 죄 짓자 하랴마는
대액이 당전하니 눈조차 어둡고나
마른 섶을 등에 지고 열화에 듐이로다
재가 된들 뉘 탓이리 살 가망 없다마는
일명을 꾸이오셔 해도에 보내시니
어와 성은이야 가지록 망극하다
강두에 배를 대어 부모친척 이별할 제
슬픈 눈물 한숨소리 막막수운 머무는 듯
손잡고 이른 말씀 좋이 가라 당부하니
가슴이 막히거든 대답이 나올소냐
여취여광하여 눈물도 하직이라
강상에 배 떠나니 이별 시가 이 때로다
산천이 근심하니 부자 이별 함이로다
요도일성에 흐르는 배 살 같으니
일대장강이 어느덧 가로 서라
풍편에 우는 소리 긴 강을 건너 오네
행인도 낙루하니 내 가슴 미어진다
호부일성 엎더지니 애고 소리 뿐이로다
규천고지 아모련들 아니 갈길 되올소냐
범 같은 관차들은 수이 가자 재촉하니
할 일 없어 말게올라 앞 길을 바라보니
청산은 몇 겹이며 녹수는 몇 구빈고
넘도록 뫼이거늘 건너도록 물이로다
석양은 재를 넘고 공산이 적막한데
녹음은 우거지고 두견이 제혈하니
슬프다 저 새소리 불여귀는 무삼일고
네 일을 이름이냐 내 일을 이름이냐
가뜩이 헛튼 근심 눈물에 젖었어라
만수에 연쇄하니 내 근심 먹음은 듯
천림에 노결하니 내 눈물 뿌리는 듯
뜨던 말 재게 하니 앞 참은 어디메고
높은 재 반겨 올리 고향을 바라보니
창망한 구름 속에 백구비거 뿐이로다
경기땅 다 지나고 충청도 다다르니
계룡산 높은 뫼를 눈결에 지나쳤다
열읍의 관문 받고 골골이 점고하여
은진을 넘어 드니 여산은 전라도라
익살 지나 전주 들어 성시산림 들어보니
반갑다 남문 길이 장안도 의연하다
백각전 벌어지니 종각도 지내는 듯
한벽당 소쇄한데 조일이 높았세라
금구 태인 정읍 지나 정성 역마 갈아 타고
나주 지나 영암 들어 월출산을 돌아드니
만이천봉이 반공에 솟았는 듯
일국지명산이라 경치도 좋다마는
내 마음 아득하니 어느 겨를 살펴오리
천관산을 가리키고 달마산을 지나가니
불분주야 몇 날만에 해변으로 오단말가
바다를 바라보니 파도도 흉용하다
가이 없은 바다이요 한 없은 파도로다
태극조판 하온 후에 천지광대 하다거늘
하늘 아래 없사옴이 땅이런가 알았더니
즉금으로 볼 양이면 천하이 다 물이로다
바람도 쉬어 가고 구름도 멈쳐 가네
나는 새도 못 넘을 데 제를 어이 가잔말고
때마침 서북풍이 내 길을 재촉난 듯
선두에 있는 백기 동남을 가리키니
천석 싣는 대중선에 쌍돛을 높이 달고
건장한 도사공이 배머리에 높게 서서
지곡총 한 곡조를 어사와로 화답하니
마디마다 처량하다 적객심회 어떠할고
회수장안 돌아보니 부운폐일 아니 뵌다
나가는 길 어인 길로 무심 일로 가는 길고
불로초 구하려고 삼신산을 찾아가니
동남동녀 아이어든 방사 서시 따라가랴
동정호 밝은 달에 악양루 오르랴나
소상강 궂은 비에 조상군 하랴는가
전원이 장무하니 귀거래 하옵는가
노어회 살쪘으니 강동거 하옵는가
오호주 흘리저어 명철보신 하랴는가
긴 고래 잠간 만나 백일승천 하랴는가
부모처자 다 버리고 어드러로 혼자 가노
우는 눈물 소이 되어 대해수를 보태인다
어디서 일편흑운 홀연광풍 무삼일고
산악 같은 높은 물결 배머리를 둘러치네
크나큰 배 조리 젓듯 오장육부 다 나온다
천은 입어 남은 목숨 마자 진케 되겠구나
초한건곤 한 영중에 장군기신 되려니와
서풍낙일 멱라수에 굴삼려는 불원이라
차역천명 할일 없다 일생일사 어찌하니
출몰사생 삼주야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 천리 다 지내어 추자섬이 여기로다
도중으로 들어가니 적막하기 태심이라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알 이 뉘 있으리
보이나니 바다이요 들리나니 물소리라
벽해상전 갈린 후에 모래 모여 섬이 되니
추자섬 생길 제는 천작지옥이로다
해수로 성을 싸고 운산으로 문을 지어
세상이 끊쳤으니 인간은 아니로다
풍도섬이 어디메뇨 지옥이 여기로다
어디로 가잔 말고 뉘집으로 가잔말고
눈물이 가리우니 걸음마다 엎더진다
이 집에가 의지하자 가난하다 핑게하고
저 집에가 의지하자 연고 있다 칭탈하네
이집 저집 아모덴들 적객주인 뉘 좋다고
관력으로 핍박하고 세부득이 맡았으니
관차 더러 못한 말을 만만할손 내가 듣네
세간 그릇 흩던지며 역정내어 하는 말이
저 나그네 헤어보소 주인 아니 불상한가
이집 저집 잘사는 집 한두 집이 아니어든
관인네는 인정 받고 손님네는 혹언들어
구태어 내 집으로 연분있어 와 계신가
내 살이 담박한 줄 보시다야 아니 알가
앞뒤에 전답 없고 물 속으로 생애하여
앞 언덕에 고기 낚아 웃녘에 장사 가니
삼망 얻어 보리섬이 믿을 것도 아니로세
신겸처자 세 식구의 호구하기 어렵거든
양식없는 나그네는 무엇 먹고 살려는고
집이라고 서 불손가 기어들고 기어나며
방 한 간에 주인들고 나그네는 잘 데 없네
뛰자리 한 잎 주어 첨하게 거처하니
냉지에 누습하고 즘생도 하도할사
발남은 구렁배암 뼘남은 청진의라
좌우로 둘렀으니 무섭고도 증그럽다
서산에 일락하고 그믐밤 어두운데
남북촌 두세집에 솔불이 흐미하다
어디서 슬픈 소리 내 근심 더하는고
별표에 배 떠나니 노 젓는 소리로다
눈물로 밤을 새와 아침에 조반드니
덜 쓰른 보리밥에 무장떵이 한 종자라
한 술 떠서 보고 큰 덩이 내어놓고
그도 저도 아조 없어 굶을 적이 간간이라
여름날 긴긴 날에 배고파 어려웨라
의복을 돌아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남방염천 찌는 날에 빨지 못한 누비바지
땀이 배고 땀이 올라 굴둑 막은 덕석인가
덥고 검기 다 바리고 내암새를 어이하리
어와 내 일이야 가련히도 되었고나
손 잡고 반가는 집 내 아니 가옵더니
등밀어 내치는 집 구차히 빌어 있어
옥식진찬 어데 가고 맥반염장 대하오며
금의화복 어데 가고 현순백결 하였는고
이 몸이 살았는가 죽어서 귀신인가
말하니 살았으나 모양은 귀신일다
한숨 끝에 눈물 나고 눈물 끝에 한숨이라
도로혀 생각하니 어이 없어 웃음 난다
이 모양이 무슨 일고 미친 사람 되었고나
어와 보리 가을 되었는가 전산후산에
황금 빛이로다
남풍은 때때 불어 보리 물결 치는고나
지게를 벗어 놓고 전간에 굼일면서
한가히 뵈는 농부 묻노라 저 농부야
밥 위에 보리 술을 몇 그릇 먹었느냐
청풍에 취한 얼굴 깨연들 무엇하리
연년이 풍년드니 해마다 보리 베어
마당에 뚜드려서 방아에 쓸어내어
일분은 밥쌀하고 일분은 술쌀하여
밥먹어 배부르고 술먹어 취한 후에
함포고복하여 격앙가를 부르나니
농부의 저런 흥미 이런 줄 알았더면
공명을 탐치말고 농사를 힘쓸 것을
백운이 즐거온 줄 청운이 알았으면
탐화봉접이 그물에 걸렸으랴
어제는 옳던 일이 오늘이야 왼 줄 아니
뉘우쳐 하는 마음 없다야 하랴마는
범 물릴 줄 알았으면 깊은 뫼에 올라가며
떨어질 줄 알았으면 높은 나무에 올랐으랴
천동할 줄 알았으면 잠간 루에 올랐으랴
파선할 줄 알았으면 전세대동 실었으랴
실수할 줄 알았으면 내가 장기 벌였으랴
죄 지을 줄 알았으면 공명 탐차 하였으랴
산진메 수진메와 해동청 보라매가
심수총림 숙여 들어 산계야앙 차고 날제
아깝다 걸리었다 두 날개 걸리었다
먹기에 탐심나서 형극에 걸리었다
어와 민망하다 주인박대 민망하다
아니 먹은 헛 주정에 욕설조차 비경하다
혼자 말로 군말하듯 나 들으라 하는 말이
건너집 나그네는 정승의 아들이요
판서의 아우로서 나라에 득죄하고
절도에 들어와서 이전 말은 하도 말고
여기 사람 일을 배와 고기 낚기 나무 베기
자리치기 신삼기와 보리 동냥 하여다가
주인양식 보태는데 한 군데는 무슨 일로
하로 이틀 몇 날 되되 공한 밥만 먹으려노
쓰자하는 열 손가락 꼼작이도 아니하고
걷자하는 두 다리는 움작이도 아니하네
썩은 남게 박은 끌가 전당 잡은 촛대런가
종 찾으면 양반인가 빚 받으면 책주런가
동이성의 권당인가 풋낯의 친구런가
양반인가 상인인가 병인인가 반편인가
화초라고 두려 보며 괴석이라 놓고 볼까
은혜 끼친 일이 있어 특명으로 먹으려나
저 지은 죄 내 아던가 저의 서름 뉘 아던가
밤낮으로 우는 소리 한숨 지고 슬픈 소리
듣기에 즈즐하고 보기에 귀찮하다
한번 듣고 두번 듣고 통분키도 하다마는
풍속을 보아하니 해연이 막심하다
인륜이 없었으니 부자의 싸움이요
남녀를 불문하니 계집의 등짐이라
방언이 괴이하니 존갠인들 아올소냐
마만지 아는 ㄷ것이 손꼽아 주인 헴에
두 다섯 흩 다섯 뭇 다섯 꼽기로다
포박과 탐욕이 예의염치 되었음에
분전승합으로 효제충신 삼아있고
한둘 공덕으로 지효로 알았으니
혼정신성은 보리 담은 대독이요
출필고반필면은 돈 모으는 벙어리라
왕화가 불급하니 견융의 행사로다
인심이 아니어든 인사를 책망하랴
내 귀향 아니러면 이런 모양 보았으랴
조고마한 실개천에 발을 빠진 소경놈도
눈 먼 줄만 한탄하고 개천 원망 안하나니
임자 아녀 짖는 개를 꾸짖어 무엇하리
아마도 할 일 없이 생애를 생각하고
고기 낚기 하자하니 물머리를 어찌하고
나무 베기 하자하니 힘 모자라 어찌하며
자리치기 신삼기는 모르거든 어찌하리
어와 할 일 없다 동냥이나 하여보자
탈 망건 갓 숙이고 홑 중치막 띠 끄르고
총만 남은 헌 짚신에 세살 부채 차면하고
남초 없는 빈 담뱃대 소일 조로 가지고서
비슥비슥 걷는 걸음 걸음마다 눈물 난다
세상인사 꿈이로다 내 일 더욱 꿈이로다
엊그제는 부귀자요 오늘 아침 빈천자라
부귀자 꿈이런가 빈천자 꿈이런가
장주호접 황홀하니 어느 것이 정 꿈인고
한단치보 꿈인가 남양초려 큰 꿈인가
화서몽 칠원몽에 남가일몽 깨고 나서
몽중흉사 이러하니 새벽 대길 하오리다
가난한 집 지내치고 넉넉한 집 몇 집인고
사립문을 드자할가 마당에 섰자하랴
철없는 어린 아해 소 같은 젊은 계집
손가락질 가라치며 귀향다리 온다하니
어와 고이하다 다리 지칭 고이하다
구름다리 징검다리 돌다리 토다리라
춘정일 십오야 상원야 밝은 달에
장안시상 열 두 다리 다리마다 바람 불어
옥호금준은 다리다리 배반이요
적성가곡은 다리다리 풍류로다
웃다리 아래다리 석은다리 헛다리
철물다리 판자다리 두다리 돌아 들어
중촌을 올라 광통다리 굽은다리 수표다리
효경다리 마전다리 아량 위 겻다리라
도로 올라 중학다리 다리 나려 향다리요
동대문 안 첫다리며 서대문 안 학다리
남대문 안 수각다리 모든 다리 밟은 다리
이 다리 저 다리 금시초문 귀향다리
수종다리 습다린가 천생이 병신인가
아마도 이 다리는 실족하여 병든 다리
두 손길 느려치면 다리에 가까오니
손과 다리 머다한들 그 사이 얼마치리
한 층을 조금 높여 손이라나 하여주렴
부끄럼이 몬저 나니 동냥말이 나오더냐
장가락 입에 물고 아니 가는 헛기침에
허리를 굽힐 제는 공손한 인사로다
내 허리 가이 없어 비부에게 절이로다
내 인사 차서 없이 종에게 존대로다
혼자말로 중중하니 주린 중 들어온가
그 집사람 눈치알고 보리 한 말 떠서주며
가져가오 불상하고 적객 동냥 예사오니
당면하여 받을 제는 마지못한 치사로다
그렁저렁 얻은 보리 들고 가기 어려우니
어느 노비 수운하리 아모려나 저 보리라
갓은 숙여 지려니와 홑 중치막 어찌할고
주변이 으뜸이라 변통을 아니하랴
넓은 소매 구기질러 품속으로 넣고 보니
긴등 거리 제법이라 하 괴이치 아니하다
아마도 꿈이로다 일마다 꿈이로다
동냥도 꿈이로다 등짐도 꿈이로다
뒤에서 당기는 듯 앞에서 미옴는 듯
아모리 굽흐려도 자빠지니 어찌하리
머지 아닌 주인집을 천신만고 겨우오니
존전의 출입인가 한출첨배 하는고야
저 주인 거동보소 코웃음 비웃으며
양반도 할일 없네 동냥도 하시었고
귀빈도 속절 없네 등짐도 지시었고
밥싼 노릇 하오시니 저녁 밥 많이 먹소
네 웃음도 듣기 싫고 많은 밥도 먹기 싫다
동냥도 한 번이지 빌긴들 매양하랴
평생에 처음이요 다시 못할 일이로다
차라리 굶을진정 이 노릇은 못하리라
무삼 일을 하잔 말고 신삼기나 하자하고
짚 한단 추려다가 신날부터 꼬아보니
조희 노도 모르거든 샛기꼬기 어이하리
다만 한 발 다 못 꼬아 손가락이 부르트니
할 리 없어 내어 놓고 긴 삼대를 베껴내어
자리 노를 배와 꼬니 천수만한 이 내 마음
부칠 데 전혀 없어 노꼬기에 부치었다
날이 가고 밤이 새니 어느 시절 되었는고
오동이 낙엽하고 금풍이 소슬하니
하목은 제비하고 추언은 일색일 제
황국 단풍이 금수장이 되었으며
만산초목이 잎잎마다 추성이라
새벽 서리 치는 날에 외기러기 슬피우니
고객이 먼저 듣고 임 생각이 새로와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 보고지고
나래 돋힌 학이 되어 날아가서 보고지고
만리장천 구름되어 떠나가서 보고지고
낙락장송 바람되어 불어가서 보고지고
오동추야 달이 되어 비취어나 보고지고
북벽사창 세우되어 뿌려서나 보고지고
추월춘풍 몇몇 해를 주야불리 하옵다가
전신만수 머다 머되 소식조차 둔절하니
철석간장 아니어든 그리움을 견딜소냐
어와 못 잊을다 임을 그려 못 잊을다
용문검 태아검에 비수검을 손에 쥐고
청산리 벽계수를 힘까지 버히어도
끊어지지 아니하고 한 데 이어 흐르나니
물 버히는 칼도 없고 정 버히는 칼도 없네
물 끊기도 어려우니 마음 끊기 어이하리
용문지적 가비업고 옥정지수 흐리오며
임 그리는 마음이야 변할 길이 있을소냐
내 이리 그리운 줄 임이 혈마 잊었으랴
풍운이 흩어져도 모도힐 때 있었으니
엄상이 차다한들 우로가 아니오라
울음 울어 떠난 임을 웃음 웃어 만나고저
이리저리 생각하니 가삼 속에 불이 난다
간장이 다 타오니 무엇으로 끄잔 말고
끄기가 어려울 손 오장의 불이로다
천상수 얻어오면 끌 법도 있건마는
알고도 못 얻으니 셔가 바타 말이 없네
차라리 쾌히 죽어 이 설움을 잊자하고
포구사변 혼자 앉아 종일토록 통곡하며
망해투사 하려함도 한 번 두 번 아니오며
적적중문 굳이 닫고 천사만상 다 바리고
불식아사 하랴함도 한 번 두 번 아니오며
일각삼추 더디 가니 이 고생을 어찌할꼬
시비에 개 짖으니 나를 놓을 관문인가
반겨서 바라보니 황어파는 장사로다
바다에 배가 오니 사문 갖은 관선인가
일어서서 바라보니 고기 낚은 어선이라
하로도 열두 시에 몇 번을 기다린가
설움 모여 병이 되니 백 가지 병 한데 난다
배고파 허기증과 몸추워 냉증이요
잠 못들어 현기나고 조갈증은 예증이라
술로 드온 병이오면 술을 먹어 고치오며
임으로 든 병이오면 임을 만나 고치나니
공명으로 든 병에는 공명하여 고치잔들
활을 맞고 놀란 새가 살바지에 앉자하랴
신농씨 꿈에 만나 병 고친 약을 물어
청심환 회심단에 강심탕을 먹었은들
천금준마 잃은 후에 외양집을 고침이랴
갖은 성냥 다 배호자 눈 어두운 모양일다
어와 이 사이에 해 벌써 저물었다
청추가 다 지나고 엄동이 되단말가
강촌에 눈 날리고 북풍이 호로하여
산하 산상에 백옥경이 되었으니
십이루 오경을 일실로 통하도다
저 건너 높은 뫼에 홀로 섰는 저 소나무
오상고절은 내 이미 알았나니
광풍이 아무련들 겁할 것이 없거니와
도채 멘 저 초부야 행여나 찍으리라
동백화 피온 꽃은 눈 속에 붉었으니
설만장안에 학정홍과 의연하다
엊그제 그런 바람 간밤의 이런 눈에
높은 절 고운 빛이 고침이 없었으니
춘풍에 도리화는 도로혀 부끄럽다
어와 외박하니 설풍에 어찌하리
보선 신발 다 없으니 발이 시려 어이하리
하물며 찬 데 누워 얼어 죽기 편시로다
주인의 근력 빌어 방반간 의지하니
흙바람 발랐은들 종이 맛 아올손가
벽마다 틈이 벌어 틈마다 버레로다
구렁 지네 섞여있어 약간 버레 저허하랴
굵은 버레 죽어내고 적은 버레 던저주네
대을 얽어 문을 하고 헌 자리로 가리오니
적은 바람 가리온들 큰 바람 어찌하리
도중의 나무 모와 조석밥 겨우 짓네
간난한 손의 방에 불김이 쉬울소냐
섬거적 뜯어 펴니 선단 요히 되었거늘
개가죽 추켜 덮고 비단이불 삼았세라
적무인 빈 방안에 게발 물어 던지드시
새우잠 곱송거려 긴긴밤 새와 날제
우흐로 한기들고 아래로 냉기올라
일홈도 온돌이나 한데만도 못하고야
육신이 빙상되어 한전이 절로 날제
송신하는 솟대런가 과녁 맞은 살대런가
사풍세우 물풍진가 칠보광의 금나빈가
사랑 만나 안고 떠나 겁난 끝에 놀라 떠나
양생법을 모르거든 고치조차 무삼일고
눈물 흘려 베개 젖어 얼음조각 비석인가
새벽닭 홰홰우니 반갑다 닭의 소리
단봉문 대루원에 대개문 하던 때라
새로이 눈물지고 장탄식 하던 때에
동창이 이명하고 태양이 높았으니
게을리 일어 앉아 굽은 다리 펴올 적에
삭다리를 조기는 듯 마디마디 소리 난다
돌담뱃대 잎난초를 쇠똥불에 부쳐 물고
양지를 따라 앉아 웃에 이 주어낼 제
아니 벗은 험은 머리 두 귀 밑을 덮어 있네
내 형상 가련하다 그려내어 보내고저
이 정의 깊은 정을 만에 하나 옮기시면
오늘날 이 고생은 몽중사 되련마는
기러기 지난 후에 척서도 못 전하니
초수오산 천만첩에 내 그림을 뉘 전하리
사랑옵다 이 볕이야 얼었던 몸 녹는고나
백년골 쪼이온들 싫다야 하랴마는
어이한 쪼각구름 이따금 그늘지니
찬바람 지나칠 제 볕을 가려 아처롭다
오늘도 해가 지니 이 밤을 어찌 샐고
이 밤을 지내온 후 오는 밤을 어찌하리
잠이라 없거들랑 밤이나 짜르거나
하고 한 밤이 오고 밤마다 잠 못 들어
그리온 이 생각하고 살뜰히 애석일 제
목숨이 부지하여 밥 먹고 살았으니
인간만물 생긴 중에 낱낱이 헤어 보니
모질고 단단한 이 날 밖에 또 있는가
심산중 백악호가 모질기 날 같으며
독 깨치는 철몽둥이 단단하기 날 같으랴
가슴이 터지오니 터지거든 <굼 ㄱ>을 뚫어
고모 창자 세살 창자 완자창을 갖초 내어
이같이 답답할 제 여닫혀나 보고지고
어와 어찌하리 혈마한들 어찌하리
세상귀향 나뿐이며 인간이별 나 혼자랴
소무의 북해고생 돌아올 때 잊었으니
내홀로 이 고생을 귀불귀 혈마하랴
무삼 일로 마음 붙여 이 설움 잊자하리
자른 낫 손에 쥐고 뒷동산 올라가서
풍상이 섞여친데 만목이 소슬하고
천고절 푸른 대는 봄빛이 혼자로다
곧은 대 베어 내어 가리쳐 다듬오니
발 가옷 낚싯대라 좋은 품이 되리로다
청올치 꼬은 줄이 낚시 메어 둘러메고
이웃집 아희들아 오늘이 날이 좋다
새바람 아니 불고 물결이 고요하여
고기가 물 때로다 낚시질 함께가자
파립을 잣게 쓰고 망혜를 조여 쓰고
조대로 나가가니 내 놀이 한가롭다
원근산천이 홍일을 띄었으니
만경창파에 오로지 금빛이라
낚시를 들이치고 무심히 앉았으니
은린옥척이 절로 와 무는구나
구타야 취어하랴 자취를 취함이라
낚시대를 떨떠리니 잠든 백구 다 놀란다
백구야 나지마라 너 잡을 내 아닐다
네 본대 영물이라 내 마음 모를소냐
평생에 괴던 임을 천리에 이별하니
사랑함도 좋거니와 그리움을 못 이기니
수심이 첩첩하여 마음을 둘 데 없어
흥없은 일간죽을 실없이 던졌으니
고기도 물잖거든 하물며 너 잡으랴
그려도 모르거든 네게 있는 긴 부리로
내 가슴 쪼아 헤쳐 붉은 마음 내어 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하마 거의 알리로다
공명도 다 던지고 성은을 갚으려니
성세에 한민되어 너 좇아 예 왔노라
날보고 나지마라 네 벗이 되오리라
백구와 수작하니 낙일은 창창하다
낚대의 줄 거두어 낚은 고기 뀌어 들고
강촌으로 돌아 들어 주인집 찾아오니
문앞에 짖던 개는 날보고 꼬리친다
난감한 내 고생이 오랜 줄 가지로다
짖던 개 아니 짖고 임자도 되는고나
반일을 잊은 시름 자연히 고쳐나니
아마도 이 내 시름 잊을 길 어려워라
강천에 월락하고 은하수 기우도록
방등은 어데 가고 눈을 감고 앉았는고
참선하는 노승인가 통경하는 맹인인가
팔도강산 어느 절에 중 소경 누가 본가
누은들 잠이 오며 기다린들 임이 오랴
내 헴이 무삼 헴고 이다지 많삽더고
남경장사 남경 가니 반전장사 밋졌는가
이 헴 저 헴 아무 헴도 그만 헤면 다 헤려니
헤다가 다 못 헤니 무한한 헴이로다
갓없은 미친 설움 눌 찾아 한잔말고
남초가 벗이 되니 내 설움 위로하니
먹고 떨고 담아 부쳐 한 무릎에 사오대라
현기나고 두통하니 설움 잠간 잊히온들
오래기야 오랠손가 홀연 다시 생각하니
이 일이 무삼 일고 내 몸 어이 여기 온고
번화고향 어데 두고 적막절도 들어온고
오량각 어데 두고 두옥반간 의지한고
안팎 장원 어데 가고 죽창문 달았으며
서화도벽 어찌하고 흙바람벽 되었으며
산수병풍 어데 가고 갈 밭 한 떼 둘렀으며
각장장판 어데 가고 갈자리를 깔았으며
경주탕건 어데 가고 봉두난발 되었으며
안팎보선 어데 가고 다목발이 별거하며
녹피당혜 어데 가고 육총짚신 신었으며
조반점심 어데 가고 일중하기 어려우며
사환노비 어데 가고 고공이가 되단말고
아침이면 마당쓸기 저녁이면 불때히기
볕이 나면 쇠똥치기 비가 오면 도랑치기
들어가면 집지키기 보리멍석 새날리기
거처번화 의복사치 나도 전에 하였더니
좋은 음식 맛난 맛은 아마 거의 잊었세라
설움에 쌓였으니 날 가는 줄 모르더니
헤엄없는 아해들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한 밤 자면 제덕 오니 떡국 먹고 ㅇ노자네
아해 말을 신청하랴 여풍다이 들었더니
남녁 이웃 북녁 집에 나병소래 들리거늘
손을 꼽아 헤어보니 오늘 밤이 게석일다
타향의 봉가절이 이 뿐이 아니로다
상빈명조에 또 한 해 되는고나
송구영신이 이 한 밤뿐이로다
어와 상품 그렇던가 저녁 밥상 그렇던가
예 못 보던 네모반에 수저 갖춰 장 김치에
나락밥이 돈독하고 생선 토막 풍성하다
그려도 설이로다 배부르니 설이로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어제로 알았더니
내 이별 내 고생이 격년사 되었구나
어와 섭섭하다 정초문안 섭섭하다
북당쌍친이 백발이 더 하시고
공규화조는 얼마나 늦었는고
오세에 떠난 자식 육세아 되었고나
내 아녀 임이라도 내 설움은 설다하리
천리일별에 해 벌써 바뀌도록
일자가신을 꿈에나 들었을까
운산이 막혔는 듯 하해가 가렸는 듯
의창전 한매소식 물어볼 길 전혀 없네
바닷길 일천리가 머다도 하려니와
약수 삼천리에 청조가 전신하고
은하수 구만리에 오작이 다리 놓고
북해상 기러기는 상림원에 날아나니
내 가신 어이 하여 이다지 막혔는고
꿈에나 혼자 가서 고향을 보련마는
원수의 잠이 올 제 꿈인들 아니 꾸랴
흐르나니 눈물이요 지으나니 한숨이라
눈물인들 한이 있고 한숨인들 끝이 있지
내 눈물이 모였으면 추자섬이 생겼으며
이 한숨이 쌓였으면 한라산을 덮었으니
해안에 낙조하고 어촌에 연기 날 제
사공은 어데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산상구적 소리는 소 모는 아해로다
자는 새는 투림하여 옛집으로 날아드니
금수도 집이 있어 돌아갈 줄 알았는가
사람은 무삼일로 돌아갈 줄 모르는고
뵈는 것이 다 설으고 듣는 것이 다 슬프니
귀먹고 눈 어두워 듣고 보지 말고라지
이 설음 오랠 줄을 분명히 알 양이면
할 일은 결단하여 만사를 잊으리니
나 죽은 무덤 위에 논을 갈지 밭을 갈지
일도혼백이야 있을런지 없을런지
시비분별이야 없을런지 있을런지
비가 올지 눈이 올지 바람 불어 서리 칠지
의의천의를 알기가 어려워라
촌촌간장이 구비구비 썩는구나
간밤에 부던 바람 천산에 비 뿌리니
구심동군이 춘광을 자랑는 듯
미쁠손 천지마음 봄을 절로 알게하니
나무나무 잎이 피고 가지가지 꽃이로다
방초는 처처한 데 춘풍소리 들리거늘
눈 씻고 일어 앉아 객창을 열쳐 보니
창전에 수지화는 웃는 듯 하였고나
반갑다 저 꽃이여 예 보던 꽃이로다
낙양성중에 저 봄빛 한 가지요
고향원상에 이 꽃이 피었는가
간 해 오늘날에 웃음웃어 보던 꽃은
청준의 술을 부어 꽃꺽어 헴을 놓고
장진주 노래하여 무진무진 먹자할 제
네 번화 질김으로 저 꽃을 보았더니
올해 이 날에 눈물 뿌려 보는 꽃은
아침에 나쁜 밥이 낮 못되어 시장하니
박잔에 흐린 술이 값없이 쉬울손가
내 고생 슬픔으로 저 꽃을 다시 보니
전년 꽃 올해 꽃은 꽃빛은 한가지나
전년 사람 올해 사람 인사는 다르도다
인생고락이 수유잠의 꿈이로다
이렁저렁 허튼 근심 다 후리쳐 던져 두고
의복 그려 하는 설움 목전 설움 난감하다
한 벌 의복 입은 후에 춘하추동 다 진하니
아마도 이런 옷은 내 옷밖에 또 없으리
여름에 하 더울 제 겨울을 바랐더니
겨울이 하 치우니 도로 여름 생각하네
쓰오신 망건인가 입으신 철갑인가
사시에 하동없이 춘추만 되었고저
발굼치 드러나니 그는 족히 견디어도
바지 밑 터졌으니 이 아니 민망한가
내 손수 깁자하니 기울 것 바이 없네
애궂은 실이로다 이리 얽고 저리 얽고
고기 그물 걸어맨 듯 꿩의 눈 찍어낸 듯
침재도 그지없고 수품도 사치롭다
좀전에 적던 식량 크기는 어쩐 일고
한 그릇 담은 밥은 주린 범의 가재로다
조반석죽이면 부가옹 부러하랴
아침은 죽이더니 저녁은 그도 없네
못먹어 배고프니 허리띠 탓이런가
허기져 눈 깊으니 뒤꼭도 거의로다
정신이 아득하니 운무에 쌓였는가
한 되 밥 쾌히 지어 슬카지 먹고파져
이러한들 어찌하며 저러한들 어찌하리
천고만상을 아모련들 어찌하리
의복이 족한 후에 예절을 알 것이고
기한이 작심하면 염치를 모르나니
궁무소 불위함은 옛사람의 이른 바라
사불관면은 군자의 예절이요
기불탁속은 장부의 염치로다
질풍이 분 연후에 경초를 아옵나니
궁차익견하여는 청운에 뜻이 없어
삼순구식을 먹으나 못 먹으나
십년일관을 쓰거나 못 쓰거나
염치를 모를 것가 예절을 바랄 것가
내 생애 내 벌어서 구차를 면차하니
처음에 못 하던 일 나종은 다 배혼다
자리치기 먼저 하자 틀을 꽂아 나려놓고
바늘대를 뽐내면서 바디를 드놓을 제
두 어깨 문어지고 팔과 목이 부러진다
멍석 한 잎 들었으니 돈 오분이 값이로다
약한 근력 강작하여 부지런을 내자하니
손뿌리에 피가 나서 조희 골모 얼리로다
실 같은 이 잔명을 끊음즉도 하다마는
아마도 모진 목숨 내 목숨뿐이로다
인명이 지중함을 이제와 알리로다
누구서 이르기를 세월이 약이라도
내 설움 오랠사록 화약이나 아니 될가
날이 지나 달이 가고 해가 지나 돐이로다
상년에 비던 보리 올해 고쳐 비어 먹고
지난 여름 낚던 고기 이 여름에 또 낚으니
새 보리밥 담아 놓고 가삼 맥혀 못 먹으니
뛰든 고기 회를 친들 목이 메어 들어가랴
설워함도 남에 없고 못견딤도 별로하니
내 고생 한 해 함은 남의 고생 십년이라
흉즉길함 되올는가 고진감래 언제 할고
하나님께 비나이다 설은 원정 비나이다
책력도 해 묵으면 고쳐 쓰지 아니하고
노호염도 밤이 자면 풀어져서 버리나니
세사도 묵어지고 인사도 묵었으니
천사만사 탕척하고 그만 저만 서용하사
끊쳐진 옛 인연을 고쳐 잇게 하옵소서
요점 정리
작가 : 안조환
연대 : 조선 정조
형식 : 전편(前篇) 2,916구, 속편(續篇) 594구로 된 장편가사 겸 유배가사
성격 : 사실적, 애상적, 한탄적
구성 : 만언사라는 주가사와 만언답사, 사부모, 사처, 사자, 사백부로 구성된 작품이다. 2음보 1구로 쳐서 총 3,510구의 장편가사로, 전·후편으로 나누어져 있고, 음수율은 3·4조와 4·4조가 주조를 이루며, 2·4조와 2·3조등도 보인다. 11세에 어머니 상을 당하고, 10여년간 외가에 의탁하였다가 후에 계모를 맞아 효행을 다하였던 일과 혼인하여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면서 행락에 빠지기도 하였던 일을 노래하였다. 이어서 벼슬하여 부귀가 번화하다가 '소심봉공' 잘못하여 유배형을 받게 된 일과, 유배길에 강두에서 부모친척과 이별하고 경기도, 충청도를 거쳐 다시 전라도의 여주, 익산, 전주, 정읍, 나주, 영암을 거치면서 유배지인 추자도에 이르는 노정과 그 노정에서 느낀 바를 표현하였다. 다음에는 유배지의 물과 더위로 인한 고초와 보리밥과 소금과 장으로 연명하는 굶주림 등을 묘사하였다.
도입 |
귀양가는 신세 한탄 |
과거 회상 |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윔 - 혼인 이후 향락적 풍류에 빠짐 - 마음을 잡고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살이하다가 잘못된 공무 처리로 유배 |
유배의 노정 |
추자도로 향하는 노정 |
유배 생활 |
추자도 사람들의 박해 - 구걸하는 삶 - 궁벽한 삶 속에서도 변함없는 충성심 |
결사 |
유배에서 풀려나기를 기원함 |
주제 : 귀양가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지은 죄를 눈물로 회개 / 간난신고의 유배 생활과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
특징 : 유배 생활에서 겪었던 고생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 괴로움을 탄식조로 표현하고 있으며, 유배 생활에서 동냥을 하는 대목에서는 다리타령을 길게 늘어놓는 등 하층민이나 부녀자들이 씀직한 표현과 정서가 많아 신세한탄의 사설이 사대부 가사와는 다르게 생생하고 절절하다. 고난과 궁핍의 절절한 묘사가 여성 취향에 맞아떨어져 서울의 궁녀들 사이에 널리 읽혔다 하며 '청년회심곡 (靑年悔心曲)'이라는 소설에 삽입되기도 했다. 그리고 '만언사답(귀양살이의 괴로움으로 죽으려는 사람을 이웃 사람이 위로하고 타이르는 내용)'이라는 제목의 작은 글이 첨가되어 있는 특이한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음
줄거리 : 먼저 추자도로 귀양온 신세를 한탄하고 지금까지의 생활을 회상한다. 죽은 아이로 태어나 1주일 만에 살아나서 11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서 살다가 어진 계모를 만나 지극히 효행하고, 결혼해 잠시 행락에 빠졌으나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여 벼슬도 하고 부귀롭게 살다가 죄를 입고 귀양오게 된 일을 노래했다. 부모 친척과 이별하고 경기도·충청도·전라도를 거쳐 추자도에 이르는 노정을 쓴 다음, 유배지에서 괴롭고 힘든 생활을 늘어놓았는데, 이 부분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추자도에 도착해 거처할 집을 구하려 했으나 문전박대를 당하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고 거친 음식을 먹거나 굶기도 하면서 남쪽지방의 찌는 더위에 고생한다. 동네 사람이 일하지 않고 공밥을 먹는다고 타박하자, 고약한 인심을 탓하다가 일을 하려고 하나 경험이 없는 일이라 결국 동냥을 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허름한 곳에서 지내며 겨울에는 추위에 떨고, 옷 1벌로 4계절을 지냈다는 등 궁박한 사정을 늘어놓기도 한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고 짖던 개가 지금은 꼬리를 치니 귀양살이가 오래되었음을 알고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유배에서 풀려나기를 빈다.
의의 : 김진형이 지은 장편 유배 가사인 '북천가'와 더불어 쌍벽을 이룸.
내용 연구
어와 벗님네야 이 내 말씀 들어 보소[이웃 사람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내용이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음]
인생(人生) 천지(天地)간에 그 아니 느꺼운가 [어떤 느낌이 가슴에 사무치게 일어나다]
일생을 다 살아도 다만디[다만, 오직] 백 년(百年)이라
하물며 백 년(百年)이 반 듯기[반드시, 그렇게 되기] 어려우니
백구지과극(白駒之過隙)[인생의 덧없고 짧음을 비유 /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모습을 문틈에서 봄]이요 창해지일속(滄海之一粟)[매우 작아 보잘 것없는 존재를 비유 / 넓은 바다 속에 좁쌀 한알]이라.
역녀 건곤(逆旅乾坤)[여관처럼 묵어가는 덧없는 인생 / 세상을 비유하는 일]에 지나가는 손[나그네]이로다.
비러 온 인생(人生)[잠시 허락된 인생]이 꿈의 몸 가지고서[꿈같은 몸으로]
남아(男兒)의 하올 일을 녁녁(歷歷)[또렷하게]히 다 하여도
[인생이]풀 끝에 이슬[초로, 무상한 인생을 비유하는 말]이라 오히려 덧없거든
어와, 내 일이야[내 인생의] 광음(光陰)[세월]을 헤어보니[헤아려 보니]
반생(半生)이 채 못 되어[인생의 반도 살지 못했는데] 육육(六六)에 둘이 없네[6×6-2=34]
이왕 일[지나간 일] 생각하고 즉금 일[지금 일] 헤아리니,
번복(飜覆)[이리저리 뒤쳐서 고침. 뒤집음]도 측양(測量)없다[헤아릴 수 없다].
승침(昇沈)[인생에서 잘됨과 못됨 / 인생이 이리저리 뒤집힌 일이]도 하도 할사[많기도 많았도다]
남 대되[남들도] 그러한가[다 그런건지] 내 홀로 이러한가[나 혼자만 이런건지]
아무리 내 일이나[내 인생이지만] 내 역시 내 몰라라.[내가 더욱 외면하고 싶어라,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강조함]
장우단탄(長短歎)[길고 짧은 탄식] 졀노 나니[저절로 나오니] 도중상감(島中傷感)[섬(유배지) 가운데의 슬픔 마음]뿐이로다[갈수록 상심이 늘어가네]. - 서사 - 귀양가는 신세에 대한 한탄
<중략>
등잔불 치는 나비[등잔불에 뛰어난 저 나비가 / '나비'는 화자와 동일시되는 대상] 저 죽을 줄 알았으면[스스로 죽게 될 줄을 알았다면]
어디서 식녹지신(食祿之臣)[녹봉을 받는 신하]이 죄(罪) 짓자 하랴마는[나라의 돈을 받아 사는 내가 어떻게 감히 죄를 지을 수 있었을까]
대액(大厄)[사나운 운수]이 당전(當前)[눈앞에 당도]하니 눈조차 어둡고나[눈 앞이 어두워져서 / 판단을 잘못함].
마른 섶을 등에 지고 열화(烈火)에 듦이로다.[마른 섶을 등에 지고 뜨거운 불 속에 뜨어들었다. 앞뒤 가리지 못하고 미련한 짓을 해 버렸구나. 그릇된 짓을 하여 스스로 화를 불렀던 자신의 행동을 빗댄 말]
재가 된들 뉘 탓이리[내가 잿더미가 되어도 내 죄 탓이어서 /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말]. 살 가망 없다마는[살아갈 면목이 없는데]
일명(一命)을 꾸이오셔 해도(海島)에 보내시니[이 생명을 살 수 있게 해 주시어 섬으로 유배 보내 주시니]
어와[아] 성은(聖恩)이야 가지록 망극(罔極)하다 [임금의 은혜가 한이 없어라 / 죽을 죄를 지은 자신을 살려준 임금에 대한 감사의 마음] - 공무를 잘못 처리하여 유배를 가게 된 사연
강두(江頭)에 배를 대어[강머리에 머리를 대고] 부모친척 이별할 제
슬픈 눈물 한 소리에[크고 슬프게 우는 소리가 마치] 막막수운(漠漠愁雲)[넓고 아득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구름이] 머무는 듯[머무는 것 같구나]
손잡고 이른 말씀 좋이 가라 당부하니[내 손을 잡고 일러준 말씀이 몸조심하여 안녕히 가라고 해 주시니]
가슴이 막히거든 대답(對答)이 나올소냐. [가슴이 막혀서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네]
여취여광(如醉如狂)[취한 듯 미친 듯 /이성을 잃은 상태를 비유한 말]하여 눈물로 하직이라.
강상(江上)에 배 떠나니 이별시(離別時)가 이때로다[강물 위로 배가 떠나니 이제는 정말로 헤어지는구나].
산천(山川)이 근심하니 부자 이별(父子離別)함이로다.[산천이 근심하는 것은 부자가 이별하기 때문이다.]
요주일성(搖舟一聲)[배를 흔드는 한 마디 소리 / 노 젓는 소리에 ]에 흐르는 배 살 같으니[화살같이 빨리 가니 / 원치 않는 유배길이라 배가 빨리 간다고 느낌]
일대장강(一帶長江)[화자에게 닥칠 시련]이 어느덧 가로 셔라.[서게 되었네]
풍편(風便)에 우는 소리 긴 강을 건너오되[바람결에 울음소리가 텅빈 강을 따라 들려오고]
행인(行人)도 낙루(落淚)하니[지나가는 행인도 눈물을 흘리니] 내 가슴 미어진다.[화자의 심정] -[강두에 배를 대어 ~ 내 가슴 미어진다 : 유배지로 떠나오면서 부모, 친척과 이별했을 때의 일을 회상하며 그때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함] - 부모 친척과 이별하고 유배지로 가는 노정과 감상
<중략>
출몰사생(出沒死生)[죽을 뻔 살 뻔] 삼주야(三晝夜)[제주도에 딸린 섬]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 천리 다 지내어 추자 섬이 여기로다
도중(島中)[섬안]으로 들어가니 적막[쓸쓸하고 고요함]하기 태심(太甚)[너무 심함]이라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알 이 뉘 있으리.[고립무원(고립되어 구원 받을 데가 없음)의 처지]
보이나니 바다요 들리나니 물소리라[화자가 아주 외지고 적막한 곳으로 왔는지를 대구를 활용하여 드러냄]
벽해상전(碧海桑田)[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덧없이 변천함이 심함을 비유하는 말] 갈린 후에 모래 모여 섬이 되니
추자 섬 생길 제는 천작지옥(天作地獄)이로다[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지옥으로 화자의 추자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음].
해수(海水)로 성(城)을 싸고 운산(雲山)으로 문을 지어
세상이 끊겼으니[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곳] 인간(人間)[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은 아니로다.
풍도(풍都)[도가에서의 지옥] 섬이 어디메뇨 지옥이 여기로다[추자도에 대한 인상]
어디로 가잔 말고 뉘 집으로 가잔 말고
눈물이 가리우니 걸음마다 엎더진다.
이 집에 가 의지하자 가난하다 핑계하고
저 집에 가 의지하자 연고 있다 칭탈[무엇 때문이라고 핑계를 댐.]하네.[인심이 각박한 곳이라는 의미]
이집 저집 아무덴들 적객(謫客)[귀양살이하는 사람]주인 뉘 좋다고[화자가 귀얀온 사람이라는 것과 당시에 귀양을 민가에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관력(官力)으로 핍박[심히 억압하여 괴롭게 함]하고 세부득이 맡았으니
관차(官差)[관에서 파견하는 아전] 더러 못한 말을 만만할손 내가 듣네[환영받지 못하는 화자의 신세].
세간 그릇 흩던지며 역정 내어 하는 말이
저 나그네 헤어보소 주인 아니 불쌍한가.[힘없고 돈이 없어 귀양객을 맡게 되었다는 집주인의 한탄으로 화자의 처량한 신세가 드러남]
이집 저집 잘 사는 집 한두 집이 아니어든
관인네는 인정[벼슬아치에게 주는 선물] 받고 손님네는 혹언(酷言)[함부로 하는 말] 들어
구태여 내 집으로 연분 있어 와 계신가
내 살이 담박한 줄 보신다면 아니 알가.
앞뒤에 전답 없고 물속으로 생애(生涯)[생계]하여
앞 언덕에 고기 낚아 윗녘에 장사 가니
삼망 얻어 보리 섬이 믿을 것도 아니로세.
신겸처자(身兼妻子)[자신과 아내와 자식] 세 식구의 호구[먹고 사는 것]하기 어렵거든
양식 없는 나그네는 무엇 먹고 살려는고.[집주인의 한탄]
집이라고 서 볼쏜가 기어들고 기어나며[집이 설 수 없을 정도로 낮아서 기어 다녀야 함]
방 한 간에 주인들고 나그네는 잘 데 없네.
띠 자리 한 잎 주어 첨하(첨下)[처마 밑]에 거처하니
냉지[찬 땅]에 누습(漏濕)[축축한 기운이 스며 있음]하고 벌레도 하도 할샤[많기도 많구나]
발 남은[길이가 한 발이 넘는] 구렁배암 뼘 남은 청지네라
좌우로 둘렀으니 무섭고도 징그럽다.[화자가 거처하게 된 집의 모습과 축축하고 벌레도 많은 누추한 처머 밑에 머물게 된 신세를 표현]
<중략>
의복(衣服)을 돌아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남방염천(南方炎天)[몹시 더운 날] 찌는 날에 빨지 못한 누비바지
땀이 배고 때가 올라 굴뚝 막은 덕석[추울 때 소의 등을 덮어 주는 멍석]인가.
덥고 검기 다 바리고[더운 것, 때탄 것 다 참아도] 내암새[냄새]를 어이하리.
어와 내 일이야 가련히도 되었고나.[아 내 인생이 참 불쌍하게 되었구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탄식함]
손 잡고 반기는 집 내 아니 가옵더니[나를 환영해 주던 곳에도 잘 가지 않던 서울 생활이었는데]
등 밀어 내치는 집 구차히 빌어 있어 [지금은 나를 쫓는 집에 빌붙어 있으니]
옥식진찬(玉食珍饌)[좋은 밥과 진귀하고 맛있는 반찬] 어데 가고 맥반염장(麥飯鹽藏)[보리밥과 소금, 간장] 대(對)하오며[초라한 밥상을 대하고 있다]
금의화복(錦衣華服)[비단옷과 화려한 옷] 어데 가고 현순백결(懸 百結)[갈기갈기 찢어져 기운 옷] 하였는고
이 몸이 살았는가 죽어서 귀신인가[내가 살아 있어도 죽은 귀신 같기도 하고]
말하니 살았으나 모양은 귀신일다[말을 하니 살아 있는 것이 분명한데 모양새가 귀신같이 추하구나 / 화자의 비참한 처지를 빗댄 말].
한숨 끝에 눈물 나고 눈물 끝에 한숨이라.
돌이켜 생각하니 어이없어 웃음 난다. [기가 막혀 웃음이 나니]
이 모양이 무슨 일고 미친 사람 되었고나.[내 모습이 마치 미친 사람과 같구나.] - 유배지에서의 궁핍한 생활
(중략)
청풍에 취한 얼굴 깨연들 무엇하리
연년[매년]이 풍년드니 해마다 보리 베어
마당에 뚜드려서 방아에 쓸어내어
일분[일부분]은 밥쌀하고 일분은 술쌀하여
밥먹어 배부르고 술먹어 취한 후에
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린다는 뜻으로, 먹을 것이 풍족하여 배불리 먹고 즐겁게 지냄을 이르는 말.]하여 격양가[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기려 불렀다는 노래]를 부르나니
농부의 저런 흥미 이런 줄 알았더면
공명을 탐치말고 농사를 힘쓸 것을
백운[농부의 삶(무욕)]이 즐거온 줄 청운[화자의 과거의 삶(공명추구)]이 알았으면
탐화봉접[(探花蜂蝶) : 꽃을 찾아다니는 벌과 나비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그리워하여 찾아가는 남자의 비유로 기생집을 드나들며 국고를 축내다 죄를 지은 자신을 가리킴]이 그물에 걸렸으랴
(하략)
이해와 감상
유배 가사의 하나로, 조선 정조 때 대전별감(大殿別監)이던 안조환(安肇煥)이 지은 가사(歌辭)로 '사고향(思故鄕)'이라고도 한다. 이본으로 필사본 3종이 전하며, 필사본에 따라 작자 안조환이 안도환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작자가 34세 때에 추자도(楸子島)로 유배된 사건을 작품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만언사〉라는 주가사(主歌詞)와 〈만언답사 亶言答詞〉·〈사부모 思父母〉·〈사처 思妻〉·〈사자 思子〉·〈사백부 思伯父〉로 구성된 작품이다. 내용은 추자도로 유배당한 신세 한탄과 함께 자신의 과거사를 회상한다. 작자가 주색에 빠져서 국고금을 축낸 죄로 34세 때 추자도(楸子島)에 귀양가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지은 죄를 눈물로 회개하는 내용을 애절하게 읊었다. 이 작품이 서울에 전하자 궁녀들이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고, 이로 인하여 이것이 임금에게 알려져 유배에서 풀려났다는 일화도 있다.
조위(曺偉)의 '만분가(萬憤歌)',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北遷歌)' 등과 아울러 유배문학(流配文學)에 속하는 가사이나, 다른 가사와는 달리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고스란히 표백(表白)하여 놓은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재평가된다. 전편(前篇) 2,916구, 속편(續篇) 594구로 된 장편가사로, 3종의 필사본이 전하는데, 모두 한글로 쓰여졌다. 김진형이 지은 장편 유배 가사인 '북천가'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으며, '만언사'의 경우 현실 세계의 질곡에 대한 발분적 정서가 정론적인 차원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유배 생활 자체에서 느끼는 고통과 분노의 차원에서는 전형적인 형태로 형상화되고 있다. 연군적 서정성이 약화된 반면 유배 생활에서 느끼는 슬픔과 분노가 보다 전형적인 형태로 형상화된 것이다.
이 작품은 유배 문학에 속하는 다른 가사들에 비해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사실적으로 밝혀 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당쟁과는 관계없이 공무상의 개인적인 비리로 유배되었기 때문에 유배 생활의 억울함을 주장하지 않았으며, 임금에 대한 그리움이나 충성심이 작품의 지배적 정서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다만 유배지에서의 궁핍한 생활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조 면에서 양반들의 점잖은 또는 의연한 태도 같은 것이 눈에 띄지 않으며, 절절한 신세 한탄에서 회한의 어조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즉, 허식과 과장으로 자기를 변호하는 성격이 강한 유배 문학의 범주에서 벗어나 평민적인 사실성을 보이는 데 근접한 작품이다.
심화 자료
안조환(安肇煥)
조선 정조 때 대전별감(大殿別監)이던 안조환(安肇煥) 혹은 안도환이라고도 함. 주색에 빠져서 국고금을 축낸 죄로 34세 때 추자도(楸子島)에 귀양가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지은 죄를 눈물로 회개하는 내용을 애절하게 읊었다. 이것이 임금에게 알려져 유배에서 풀려났다는 일화도 있다
다른 유배 문학 작품들과의 차이점
유배 가사 |
만언사 |
의연한 태도, '북천가'가 유배지에서도 대접을 받으며 기생을 데리고 풍류를 즐긴 사설을 늘어놓음. |
반성과 뉘우침의 태도 |
유배 가사
귀양지를 소재로 하거나 귀양지에서 지은 가사작품. 유배는 곧 귀양살이를 뜻하는 것으로 형벌의 일종인데 고려시대나 당파싸움이 치열하였던 조선시대에 있어서 관료생활을 하는 정치인에게는 으레 따르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귀양살이를 소재로 한 작품 또는 귀양지에서 지은 작품이 많이 나오게 되었는데, 유배가사는 이러한 가사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시가문학사상 최초의 유배시가는 고려 의종 때 정서(鄭敍)의 〈정과정곡〉을 들 수 있으나, 조선시대 가사문학에 있어서는 조위(曺偉)가 무오사화 때 전라도 순천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지은 〈만분가〉가 그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만분가〉의 내용은 서사·본사·결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사에서는 귀양지에서 가슴에 쌓인 말을 실컷 호소하고 싶어서 이 작품을 짓게 되었다는 저작 동기를 말하고 있다. 본사에서는 사화로 말미암아 지난날의 영화가 바뀌어 현재 억울하고 처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이 역시 천명이니 오직 옥황상제의 처분만 바란다고 호소하면서 자기를 초나라 굴원(屈原)에 견주어 노래하였다. 결사에서는 원한에 싸인 자기의 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만일 누구든지 제 뜻을 알아주는 이만 있다면 평생을 함께 사귀겠다는 여운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귀양살이는 대체로 정치적인 이유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유배가사는 흔히 자기의 무죄함을 고백하는 동시에 정적(政敵)에 대한 복수심을 토로하고, 그러면서도 오로지 임금에게만은 일편단심을 표출하는 이른바 충신연주적 성격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지은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과 추자도 귀양살이에서 지은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등인데, 이는 모두 임금을 ‘임’ 또는 ‘미인’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으로 위로는 조위의 〈만분가〉를 비롯하여, 비록 귀양살이는 아니나 당쟁으로 인해 낙향한 처지에서 지은 정철(鄭澈)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을 모방하였거나 그 계통을 이어받은 이른바 사미인(思美人) 따위류의 작품들이다.
유배가사는 또한 당쟁에 휘말려 죄없이 유배되는 억울한 심정을 토로함이 주된 목적이기는 하지만, 유배지로 오가는 동안의 견문이나 유배지에서의 생활양상 등 이른바 기행가사적 성격을 지니는 경우도 많다. 이진유의 〈속사미인곡〉에서도 그러한 흔적을 볼 수 있거니와, 특히 송주석(宋疇錫)의 〈북관곡〉, 이방익(李邦翊)의 〈홍리가〉, 안조환(安肇煥)의 〈만언사〉,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 등은 모두가 유배가사인 동시에 기행가사이기도 하다.
이들 기행록적인 유배가사는 각 편이 모두 특색 있는 작품들로, 〈북관곡〉은 유일하게 유배자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1675년(숙종 1) 송시열(宋時烈)이 함경도 덕원으로 귀양갈 때 동행한 그의 손자(송주석)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그 억울함을 노래한 것이고, 〈홍리가〉는 정치범인 고향사람 이택징(李澤徵)을 돌보아준 죄로 구자섬〔龜玆島〕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 무관의 작품이다.
〈만언사〉는 추자도까지의 내왕과 그곳에서의 귀양살이를 노래한 것인데, 유배자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양반출신의 정치범이 아니라 경제사범인 중인계급의 작품이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있는 양반적 허식과 과장이 전혀 없고, 위선과 위엄을 벗어버린 인간 그대로의 체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서민적이고 사실적인 작품이다.
이에 비하여 〈북천가〉는 전형적인 정치적 유배자의 작품으로, 서울에서 유배지인 함경도 명천까지 오가는 동안 곳곳마다 후한 대접을 받으며 관기(官妓)와의 애정생활까지 곁들인 유배생활답지 않은 호화로운 생활감정이 표현되어 있다. 유배가사는 결국 당쟁사화가 치열하였던 조선 봉건 전제사회의 시대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유배생활은 시조나 가사를 막론하고 그들에게 문학작품을 창작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國文學通論(張德順, 新丘文化社, 1960)
≪참고문헌≫ 韓國紀行文學硏究(崔康賢, 一志社, 1982)
≪참고문헌≫ 流配文學小攷-歌辭作品을 中心으로-(丁益燮, 无涯梁柱東博士華誕紀念論文集, 探求堂, 1963)
≪참고문헌≫ 曺偉의 萬憤歌(李相寶, 韓國歌辭文學의 硏究, 螢雪出版社,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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