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 / 발레리
by 송화은율띠 / 발레리
뺨 색깔의 하늘이 마침내
눈길의 애무에 맡겨지고
시간이 금빛으로 소멸하기까지
장미빛 색조 속에 노닐 때
이러한 그림이 유혹하는
쾌락의 벙어리 앞에서
띠 풀린 그림자가 춤추다가
저녁 어스름에 묻히려 한다.
떠도는 이 띠는
공기의 숨결 속에서
이 세계와 내 침묵의
그지없는 유대를 끊을락말락한다…….
부재인가 현존이런가…… 난 정말 혼자이다.
그리고 어두워라, 오 그윽한 수의여.
요점 정리
작자 : 발레리(Paul Valerly)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상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상징적. 주지적. 관념적. 철학적
어조 : 경건하면서도 영탄적 목소리
심상 : 상징적. 시각적
제재 : 띠(노을)
주제 : 대상과 자아의 일치, 노을과 시적 자아의 유대
구성 :
1연 석양의 황홀한 광경(해가 지기 직전의 붉게 물든 석양의 모습을 "뺨 색깔의 하늘'로 해가 진 후의 모습을 '장미빛 색조'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발레리가 갖는 표현의 명징성에 해당한다. 특히 '눈길의 애무'와 같은 구절은 은근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2연 노을이 소멸되는 순간의 자아 인식( 노을이 소멸되는 순간의 자아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황홀한 분위기에서 할 말을 잊은 시적 자아에게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어둠이 찾아든다. 시적 자아는 쾌락의 벙어리가 되고 노을은 사라져 어둠이 깃들며 이에 아쉬움이 스며든다.)
3연 대상과 자아의 일치(노을이 사라졌지만, 노늘의 잔상 속에 있는 자아는 대상과 의식 속에서 일치된다. 즉, 현상적으로는 노을과 단절되었으나, 의식 속에는 유대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4연 자아 인식과 평온한 안식(완전한 밤 속에서 자아가 혼자임을 인식하게 되는데 그 밤을 '그윽한 수의'로 표현하여 그 밤이 평온한 안식임을 암시하고 있다.)
출전 : <다양성>(1922)
내용 연구
색조 : 빛깔의 진하고 흐림, 또는 밝고 어두운 정도나 상태
유대(紐帶) : 무엇을 결합시키는 기능이나 조건
수의(壽衣) : 죽은 이의 몸에 입히는 옷
뺨 색깔의 하늘이 마침내 / 눈길의 애무에 맡겨지고 : 붉은 색으로 물든 저녁 노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관능적이고 감각적 언어를 사용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장밋빛 색조 : 붉게 물든 모습
쾌락의 벙어리 앞에서 : 석양의 광경을 보고 황홀하여 말을 잊는 무아의 경지(無我之境)를 표현하고 있다.
띠 : 아름다운 장미빛 노을의 황홀한 모습으로, 이에 매혹된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빛과 그림자 사이에 하늘하늘 나부끼는 그림자의 춤과 같은 것이다. 그는 이 띠를 자신의 정신을 세계에 매어 주는 유대라 생각한다.
쾌락의 벙어리 : 석양의 광경을 보고 황홀하여 말을 잊음을 뜻한다.
띠 풀린 그림자 : 노을을 상징
저녁 어스름에 묻히려 한다. : 띠 모양의 장미빛 구름이 서서히 저녁 어스름 속에 꺼져 가는 모습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하고 있다.
부재인가 현존이런가…… 난 정말 혼자이다. : 관계의 띠를 거두면 그의 몸은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게 되고, 세계의 광경에 그를 묶으면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계와 자아가 하나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어두워라, 오 그윽한 수의여. : 그 띠(지는 해에 물든 구름)도 어두워짐에 따라, 자취를 잃어 가고, 그 속에서 포근히 잠들 그윽한 수의(壽衣)의 이미지로 바뀐다.
그윽한 수의 : 밤의 어두운 모습
이해와 감상
발레리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인 말라르메에게 사사(師事)하여 격조 높고 상징적이며 우아한 시를 썼으나 어느 날 한밤에 겪었던 괴로운 사색의 결과, 감동과 예술적 영감의 애매함을 거부하고 엄밀하고 명석한 정신적 '훈련'에 전념할 것을 결의했다.
저녁 무렵의 황홀한 정경을 그려 내고 있는 이 작품은 시적인 대상과 자아의 일치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 석양의 아름다움과 그 뒤에 오는 어둠의 그림자를 강렬한 이미지와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연과 자아를 연결시키는 정서의 공감대를 발견하고자 한다. 형식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공기의 숨결 속에서' 자연과 시적 자아가 하나의 '띠'로 묶여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엄숙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경건하면서도 철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이는 발레리 특유의 사색의 결과이며 투철한 지성이 생생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형식의 단조로움과 절제된 언어가 의식의 명징(明徵)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발레리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심화 자료
발레리(Paul Valery)
정식 이름은 Ambroise-Paul-Toussaint-Jules Valery. 1871. 10. 30 프랑스 세트~1945. 7. 20 파리. 프랑스의 시인·수필가·비평가.
그의 가장 훌륭한 시는 〈젊은 파르크 La Jeune Parque〉(1917)로 여겨지며, 이 작품에 뒤이어 〈구시첩(舊詩帖) 1890~1900 Album de vers anciens 1890~1900〉(1920)과 〈해변의 묘지 Le Cimetiere marin〉가 들어 있는 시집 〈매혹 Charmes ou poemes〉(1922)이 발표되었다. 그후 그는 수많은 논설과 가끔 문학을 주제로 한 글도 썼으며, 과학적 발견과 정치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발레리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 항구의 세관관리였다. 그는 몽펠리에에서 법률을 공부하는 한편 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내성적인 편이어서 친구가 별로 없었는데, 이 시기에 사귄 몇 명 되지 않는 친구로는 후에 철학교수가 된 귀스타브 푸르망, 작가인 피에르 루이, 앙드레 지드 등이 있다. 그가 초기에 우상으로 삼은 작가는 에드거 앨런 포와 J.-K. 위스망스, 스테판 말라르메였다. 그는 1891년에 말라르메를 소개받았고, 말라르메를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모임에 꾸준히 참가했다.
발레리는 1888~91년에 걸쳐 많은 시를 썼고, 그 중 몇 편은 상징파를 표방하는 잡지에 발표해 호평을 받았지만, 예술적 좌절감과 짝사랑에서 오는 절망감 때문에 1892년에는 감정에 몰두하기를 거부하고 '지성의 우상'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는 갖고 있던 책을 거의 다 처분해버렸고, 1894년부터 죽을 때까지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 동안 과학적 방법론과 의식 및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묵상에 잠겼으며, 자신의 단상(斷想)과 잠언들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나중에 유명한 〈노트 Cahiers〉로 출판되었다. 발레리가 새로 발견한 이상형은 만능 인간의 표본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법에 관한 서설 Introduction a la methode de Leonard de Vinci〉, 1895)와 그가 〈테스트 씨와의 저녁시간 La Soiree avec Monsieur Teste〉(1896)에서 스스로 창조한 '테스트 씨'(테스트란 프랑스어로 '머리'를 뜻함)였다. 테스트 씨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라는 2가지 가치밖에 모르는 비육신적인 지성인이다.
1897~1900년에 프랑스 육군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1900~22년(1900년 말라르메의 딸과 절친한 친구와 결혼했음)에는 프랑스 신문협회 이사인 에두아르 르베의 개인비서로 일했다. 그의 주요임무는 신문에 실린 주요사건 기사와 파리 증권거래소 소식을 르베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는 것이었는데, 이 덕분에 그는 시사문제에 정통한 시사 해설가가 되었다.
1912년 앙드레 지드가 그의 초기 작품들을 손질해 출판할 것을 채근하자 발레리는 고별시를 1편 쓰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작품이 〈젊은 파르크〉이다. 이 시는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파르카'들, 즉 인생의 3단계를 상징하는 운명의 세 여신 가운데 가장 젊은 여신이 의식에 눈뜨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발레리는 이 작품이 제기하는 기법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했기 때문에, 이 길고 상징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다. 1917년에 출판된 이 작품으로 그는 즉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프랑스 시인이라는 평판은 〈구시첩 1890~1900〉·〈매혹〉으로 확고해졌다. 〈매혹〉에는 그가 묻혀 있는 세트의 묘지를 배경으로 죽음에 대한 그의 유명한 명상을 펼친 시 〈해변의 묘지〉가 들어 있다.
발레리의 특이한 작품들은 모두 인간의 의식 속에서 명상하고자 하는 욕망과 행동하려는 의지가 빚어내는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법에 관한 서설〉·〈노트〉에서 정신의 무한한 잠재력과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행동의 결함을 되풀이해 대비시키고 있으며, 〈젊은 파르크〉에서는 젊은 운명의 여신이 새벽녘에 바닷가에서 평온한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생활의 고통과 쾌락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변의 묘지〉에서는 한낮에 바닷가에서 존재와 비존재,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에 대해 골몰히 생각한다. 그의 수많은 편지들은 그 자신의 생활 속에서 공적 생활의 의무와 고독에 대한 욕망이 빚어내는 갈등을 되풀이해 호소하고 있다.
발레리는 1922년부터는 더이상 중요한 시를 쓰지 않았지만 주요작가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누렸다. 그는 초기의 시로 명성을 확립했고, 지금도 그의 명성은 대부분 거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시를 쓰는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지만 시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문학적 창작이란 수학이나 과학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정신작용을 반영하는 거울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논설과 서문들은 대개 청탁을 받고 단시간에 써준 것이었지만, 그의 꾸준한 명상이 맺은 결과로서 놀랄 만큼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는 작가와 글쓰기, 철학자와 언어, 화가들, 춤, 건축 및 미술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모두 참신하고 활기차게 재검토하고 있다. 그는 교육과 정치 및 문화의 가치 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고, 젊은시절에 쓴 중국과 일본의 갈등을 나타낸 〈압록강 Le Yalou〉(1895)과 독일 침략의 위험을 그린 〈독일의 정복 La Conquete allemande〉(1897) 등 2편의 논설은 놀랄 만한 통찰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서구 문명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걱정스러운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인식은 볼테르에 대한 마지막 공개 강연(1944)에서도 나타난다.
1922년 르베가 죽은 뒤, 이미 은퇴해 있던 발레리는 저명인사가 되었다. 그의 학식과 예모 및 대화를 이끌어가는 눈부신 재능은 그를 사교계에서 환영받는 인물로 만들었다. 발레리는 현대 물리학과 수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광범위한 독서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드 브로글리 공(公) 모리스, 베른하르트 리만, 마이클 패러데이, 앨버트 아인슈타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같은 과학자나 수학자들의 연구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강연했고, 수많은 국가 행사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192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7년 니스에 있는 지중해대학 센터를 관리하는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937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든 자리인 시학 담당교수가 되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는 지적 문제에 몰두하는 것을 중시했고 시적 영감이라는 것을 가차없이 공격했기 때문에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의 불만을 샀지만, 발레리의 작품에는 그가 평생 동안 감각적 쾌락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증거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여성의 나체를 스케치한 장면들(〈목욕하는 음녀 Luxurieuse au bain〉·〈잠자는 여인 La Dormeuse〉·〈뱀의 소묘 Ebauche d'un serpent〉에 나오는 이브의 모습)이 보여주는 관능, 연인들이 포옹하는 장면들(〈해변의 묘지〉·〈나르시스 단장 Fragments du Narcisse〉·〈거짓 죽음 La Fausse Morte〉)이나 그가 지중해 연안에서 어린시절을 보낼 때부터 사랑한 해와 하늘과 바다를 묘사할 때의 따뜻한 눈길 등은 발레리를 그가 창조한 무미건조한 테스트 씨와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산문과 시의 뚜렷한 특징은 관능이다. 가장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을 때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산문은 경구적이고 우아하며, 그의 시에는 자연스러운 상징과 비유가 풍부하고, 형식은 항상 고전적이다. 그의 시는 위대한 극작가 장 라신이나 상징파 시인인 폴 베를렌의 훌륭한 운문만큼 힘차고 미묘하게 운율적이며 음악적이다. R. D. D. Gibson 글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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