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장수 / 본문 일부 및 해설 / 최현배
by 송화은율두부 장수 - 최현배
서울의 명물―아니 진경(珍景)의 하나는 확실히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이다.
조석(朝夕)으로, 이 골목 저 골목에는 혹은 곧은 목소리로, 혹은 타목으로, 또 남성(男聲)으로, 혹은 여성(女聲)으로 제가끔 제 가진 물건들을 사 달라고 외친다. 이 소리에 귀가 닳은 서울 사람에게는 아무 신기할 것 없겠지만,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시골 사람의 귀에는 이 행상들의 외는 소리처럼 이상야릇한 서울의 진풍경은 없을 것이다.
오늘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꼭 13년 전의 일이다. 내가 시골서 백여 리를 걸어 겨우 경부선 물금역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 기차를 타고 공부차로 서울에 와 잡은 주인집은 관훈방(寬勳坊) 청석골 정 소사(鄭召使)의 집이었다.
같이 온 동무도 있거니와 이 주인집에 묵은 학생들은 고향친척도 있고, 또 영남 학생들이기 때문에 오는 날 당장에는 그리 설다는 느낌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하룻밤을 자고 나서 그 이튿날 이른 아침에 들창 밖에서 들려 오는 각종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는 참으로 어린 시골내기의 귀를 찔러 놀라게 하였다.
“생선 비웃들 사려!”
“무우 드렁 사려!”
“맛있는 새우젓 사오!”
어느 소리가 하나 귀에 익은 게 없다. 모두 신기 그것이다.
갓 온 시골내기는 먼저 온 영남 친구더러 그 외침의 뜻을 물으며 서로 보고 웃었다. 이것은 다 지난 옛날 이야기의 한 토막이거니와 서울 거리의 도붓장수〔行商〕의 외치는 소리는 예나 이제나 별로 다름이 없이 아침마다 저녁마다 거리거리의 공기를 울려난다.
<하략>
◆ 작가 소개
최현배(崔鉉配, 1894~1970).
경남 울산 출생. 호는 외솔. 일본 교토 대학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한글학회 이사장, 연세대 교수 역임. 일생을 우리말 연구와 한글 전용 운동에 바쳤으며, 교과서 편찬 등을 통해 2세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수필은 순수한 우리말을 바탕으로 그 속에 스며 있는 민족혼을 표출하고자 하는 의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주요 수필로 <필대 감각>, <근대화와 한글> 등이 있다.
◆ 작품 해설
일상 생활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한 행상의 이야기를 차분히 그린 글이다. 행상인과 주민이 주고 받는 인정, 행상이 나타나지 않자 걱정하는 필자네 식구들의 마음씨 등이 유연한 필치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하찮은 소재라도 좋은 글솜씨를 만나면 훌륭한 글의 소재로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작품이다. 필자의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문장의 흐름에 유의해서 읽는 것도 수필 읽기의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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