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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同病相憐)의 유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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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同病相憐) // 

 같은 병의 환자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

 어려운 사람끼리 동정하고 도움. 出典吳越春秋 闔閭內篇

 

전국시대인 기원전 515, ()나라의 공자(公子) ()은 사촌동생인 오왕(吳王) ()를 시해한 뒤, 오왕 합려(闔閭)라 일컫고 자객을 천거하는 등 반란에 적극 협조한 오자서(伍子胥)를 중용했다.

 

오자서는 7년 전, 초나라의 태자소부(太子小傅)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있던 아버지와 역시 관리였던 맏형이 처형당하자 복수의 화신이 되어 오나라로 피신해 온 망명객이었다.

 

그가 반란에 적극 협조한 것도 실은 유능한 [闔閭]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초나라 공략의 길이 열릴 것이며 초나라를 공략해야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을 수 있으리라는 원려(遠廬) 때문이었다.

 

그 해 또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백비가 오나라로 피신해 오자 오자서는 그를 오왕 합려에게 천거하여 대부(大夫) 벼슬에 오르게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자서는 대부 피리(被離)에게 힐난을 받았다.

 

백비의 눈길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으니[鷹視虎步], 이는 필시 살인할 악상(惡相)이오. 그런데 귀공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인물을 천거하였소?”

 

피리의 말이 끝나자 오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 별다른 까닭은 없소이다. 하상가(河上歌)에도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이 있듯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백비를 돕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요.”

 

그로부터 9년 후 합려가 초나라를 공략, 대승함으로써 오자서와 백비는 마침내 부형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오자서는 불행히도 피리의 예언대로 월()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모함에 빠져 분사(憤死)하고 말았다.

 

유사어동우상구(同憂相救), 동주상구(同舟相救), 동기상구(同氣相救), 동악상조(同惡 相助), 동류상구(同類相救), 오월동주(吳越同舟), 유유상종(類類相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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