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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 세르반테스 / 해설 및 줄거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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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키호테(Don Quixote:1605-1615) /  세르반테스 / 해설 및 줄거리

  해설
  "돈 키호테"는 근대 소설의 시조라 불리우는 세르반테스의 작품으로 스페인
고전 문학을 대표하는 희극으로 원제는 "기상 천외의 기사 돈 키호테 델 라
만차"이다.


  "돈 키호테"는 스페인에 있어서는 국보와 같이 취급되고 있으며 성서 이외에
이만큼 널리 읽히는 책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전편은 1605년 후편은
1615년에 나왔다.


  처음 전편이 나오자 작자도 놀랄 만큼 대호평을 얻어 얼마 안 되어 9판을
거듭하였으며 후편 "돈 키호테"라는 가짜 책까지 나오게 되었다. 작자는 계속해서
후편을 내놓으려고 신중을 기하고 있었으나 이 때문에 자극을 받아 계획보다
빨리 집필하게 되어 그 출판이 그의 생전에 가능할 수 있었다.


  "돈 키호테"는 원작이 출판된지 불과 7년도 못 되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한 각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세계로 보급되었으며 20세기의
초기의 계산으로 700종의 번역이 나왔다. 그 중에는 전집 여섯 권 중 주석만 두
권이 되는 것도 있으며 현재는 각종 형태의 의역까지 합하면 2천 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고래로 문학에 묘사된 인물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 주인공만큼 우습고
익살스러운 인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투르게네프는 100여년 전의 러시아 농민이 무지한 점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의
농민 이상이지만 그들 사이에서조차 '돈 키호테'라는 이름은 우스꽝스럽고
공상적인 인물로서 통용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유명한 햄릿과 돈 키호테라는 강연에서 두 주인공의 성격을 비교하였는데
"인생이 그 위에 타고 빙빙 도는 축의 두 모습"이라면서 근본적으로 상이한
인간의 두 유형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하였다(영국편 "햄릿" 참조)그리고 그가
햄릿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햄릿보다는 돈 키호테에 대한 동정을
명백히 하고 있다.


  투르게네프가 말하는 유머는 말 속에는 이미 그의 결함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돈 키호테의 순량함은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하이네는 소년 시절 "돈 키호테"를 읽으며 주인공의 고난에 대해 동정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서 이 작품이 그의 후년의 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바이런의 장시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 중에도 돈 키호테에 대하여 그를 단지
어리석은 인물로만 보는 일반의 견해에 대한 항의가 쓰여 있다.


  루나찰스키는 왜 "돈 키호테"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시종인 산초 판사가 돈 키호테에 대하여 그다지도 충실한지
또한 각 시대의 독자가 단지 웃음거리로만 여기면서도 되풀이 읽는 것을 무엇
때문인가를 물으면서 돈 키호테의 언행 일치와 자기가 믿는 진리를 위하여
고통을 겪으면서도 회의하지 않는 끝없는 순량함을 높게 평가했다. 범속한
현실의 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순진함과 이상주의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희극이면서도 순량함이 사람의 마음을 울려서
읽을수록 단순히 웃어 버릴 수만은 없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의 진의를 이해하게 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며 그 때까지는
단지 흔히 보는 하나의 우스운 이야기로서 취급되어 왔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서문에 쓰여진 것과 같이 그 당시 스페인의 사회가
너무나 황당 무계한 기사도 소설에 열중해 있으므로 이 유행에 대한 풍자의
의미로서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스페인은 군국의 기풍이 성행하여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봉건적인
기사도적 정신이 뿌리 깊이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특히 청년들도 공상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기사도 소설을 탐독하고 있었다. 일부 지식인들은 이것을
개탄하고 정부가 어떠한 방지책을 강구하여 줄 것을 청원한 일까지 있었다.
1556년에 카루로 5세의 명령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스페인 영토 내에서는
일체의 기사도 소설의 수입을 엄금한 일이 있었으나 스페인 본국에 있어서는
카루로 5세 자신이 그 애독자의 한 사람이었던 까닭에 도저히 금지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1605년 "돈 키호테" 전편이 나와 그 신랄한 풍자가 효과를 거두어 근
100년 간이나 스페인 반도를 휩쓸고 있던 기사도 소설은 다시 등장하지 않았고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중판되는 것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한다.


  이 시대는 상업 자본주의의 발흥에 따르는 경제 구조의 조직의 변혁에 따라
중세 봉건 시대에 사회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귀족 계급 중에서도 소지주
귀족 즉 기사 계급이 붕괴와 몰락의 운명에 빠져 있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이 새로운 사회 현실에 적응해 가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그러한 능력도
없으면서 단지 옛날의 꿈을 그리워하고 과거가 되어 버린 사회 사상과 도덕의
기반을 회복하여 보려고 공상하는 자들은 적지 않게 있었던 것이다.


  돈 키호테도 이러한 유의 인물이라는 해석이 성립된다. 작자 세르반테스도
본래는 이 몰락해 가는 소지주 귀족의 가문이었으며 그 계급의 몰락이 필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다소의 미련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작자가 풍자하고 희화시킨 것이 붕괴해 가는 기사도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 소설은 전편 53장 후편 74장으로 된 대작인데 기사 이야기의 황당 무계
함을 야유하기 위하여 주인공의 모험을 항상 실패로 돌아가게 함으로서 줄거리가
산만한 편이다. 그러나 그 내용에는 '라 만차' 주의 지방색과 민중의 생활의
풍부한 모습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으로 정확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근대 사실주의의 시조라는 플로베르도
  "나는 글씨를 깨우치지 못했을 때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던 책 "돈 키호테"에서
인생의 근원을 찾아냈다"고 말하면서 스페인의 도로를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에 찬탄하였다.

  작가 약전
  세르반테스는 1547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근처의 알카라 테 레니레스에서
났다. 그의 출생일은 확실치 않으나 그의 이름이 Miguel인 것으로 보아 미카엘
축일인 9월 29일일 것이라고 한다. 그의 집은 본래 가난한 귀족의 가문이었으며
아버지는 청각을 잃은 외과 의사였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상세히 전해진 것이 없고 단지 그의 저서 특히 "돈
키호테" 등에 대하여 추측되는 것이 많다. 그가 마드리드 대학이나 사라만카
대학에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당시 그의 환경으로 보아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으리라는 것으로 전기 작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1568년(21세)에 로마
교황의 사절 아쿠부이바가 귀국할 때에 시종직으로 아라비아에 동행하였으나
본래 그의 야심이 다른 데 있었으므로 1570년 고로나 장군의 보병 연대의 한
병졸로서 자원 입대하였다.


  그 때 마침 스페인과 로마 베니스와의 사이에 체결된 신성 연합은
오스트리아의 돈 후안을 총사령관으로 하고 기독교도의 공동의 적인 터키 군과
싸우게 되어 그도 십자군으로 출정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해군이 터키 해군을
전멸시키고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게 된 유명한 렌판트 해전이 시작되었을
때에 그는 고열로 누워 있었으나 적함이 보인다는 소식을 듣자 주위 사람들의
만류도 듣지 않고 일어나 격전 끝에 3개의 손가락에 총상을 입었다. 그는 이
중상으로 7개월 간 병원 생활을 하였으나 왼손은 영구히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
노년에는 그 불구의 왼손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자랑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연합군에 귀대하였을 때에는 그의 아우 로데라도 그 곳에 와 있었다.
3년 간 각 처를 전전한 후 1575년 9월 휴전을 이용하여 휴가를 얻어 나폴리에서
본국으로 향하였는데 그의 아우도 동행하였다. 그 때 세르반테스는 연합군
총사령관으로부터 스페인 국왕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갔었다. 그 안에는
레판트 해전의 용사인 그의 공훈을 칭찬하고 그를 중대장에게 임명할 것을 청한
뜻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추천장이 도리어 그에게 불행을 초래하게
되었다.


  본국을 향하여 항해하는 도중 불행히도 9월 26일 적함을 만나 격전 끝에
포로가 되어 알제리로 납치되었는데 이 곳에서 5년 간의 포로 생활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포로들이 분배되어 그는 어떤 선장의 소유가 되고 아우는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 형제는 헤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 포로는 상당한
보상금을 지불하면 석방되는 관습이 있었으므로 본국에서 보내온 돈으로 우선
아우를 석방하게 하였으나 세르반테스만은 그가 휴대한 국왕의 추천장 등으로
미루어 고귀한 신분으로 믿고 쉽게 석방해 주지 않았다.


  때때로 포로들이 도망하려고 반란을 기도하여 실패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자진하여 그 무서운 죄를 한 몸에 도맡았다. 그는 드디어 알제리 총독의 손으로
한층 더 엄중히 금고 당하게 되었다. 이 총독은 잔인한 사람이어서 코나 귀를
잘리운 포로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는 이 곳에서도 도망을 꾀하였다. 그러나
잔인한 총독도 그의 대담하고 솔직한 기품을 아깝게 여기고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


  그의 집에서는 그를 자유의 몸으로 하기 위하여 누이동생의 결혼 비용까지
긁어 모은 거액의 돈을 보내왔다. 그러나 총독은 다시 그 갑절의 금액을
요구하였으며 그의 임기가 다 차서 콘스탄티노플로 떠나게 되자 세르반테스도
같이 가게 되어 벌써 승선하고 있었다. 그러자 총독은 생각을 바꾸어 그
보상금을 감해 주었으므로 그제서야 겨우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것은 1580년
9월 19일 포로가 된 지 만 5년으로 그가 33세 되던 해의 일이었다.
  그가 포로 생활 중에 쓴 작품은 상당히 많은 수에 달하였으나 거의 분실되어
버리고 그 때에는 수 편의 시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고국에는 돌아왔으나 실업 군인의 범람으로 그의 생활은 빈궁하였다. 그 때
마침 그가 전에 있던 연대가 포르투갈로 출정하므로 그 뒤를 따라 다시 2년 간
아조오아 군도로 원정을 나갔다. 그는 1583년의 가을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소설 "라 가라테아"의 원고와 한 어린 계집아이를 데리고 귀국하였다. 이
어린아이는 출정 중 리스본 태생의 어떤 귀부인과의 사이에 낳았다고 하는데
그 이상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1605년 "돈 키호테"가 나왔을 때에 그녀는
20세에 달하였으며 호적에는 세르반테스의 사생아로 되어 있었으며 1614년에
수녀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직업도 없는 패잔병 세르반테스와의 관계를 끊고 일찍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버렸는데 이 사건이 가난한 시인에게 자극을 주어 그
후부터 영리적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584년 12월에 18세나 차이가 나고
다소 지참금도 있고 신분도 있는 어떤 부인과 정식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처녀작이라고 추측되는 작품이 그 이듬해에 출판되자 원고료도 들어오게 되어
생활이 다소 편해졌으며 문단에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포기하였던
펜을 다시 들어 약 3년 간에 30여 종의 희비극을 썼으나 그 중 2종만이 200년
후의 연구가들에 의하여 발견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 후 지방 순회를 목적으로 극단에 가입하여 희극 배우로 있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 1598년에 유명한 무적 함대가 영국의 해군과 싸우게 되어
출발준비로 식량 징발의 명을 받아 식량 공급 계장으로 임관되어 밀과
올리브유의 수집에 분주하였으나 월권 행위가 있어서 1592년 투옥되었다. 2년
후에는 다시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가 되었으나 1597년에는 또 다시 투옥되었다.
공금을 예금하여 둔 은행이 파산하여 우두머리인 포르투갈 인이 행방을 감췄기
때문에 그는 옳지 못한 행위로 관리의 이름을 더럽힌 죄로 3개월 간 옥중 생활을
하였으며 이 때문에 그의 관리 생활도 끝이 났다.


  그 후 6,7년 간은 세빌리아에서 비참한 빈민굴 생활을 했으며 문단에서도
잊혀지고 있었으나 때때로 소네트를 지었다고 한다.


  그가 수감 중에 복안을 얻었던 세계 문학사상 위대한 희극 소설인 "돈
키호테"를 마드리드에서 1805년에 출판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58세였다. 이
작품은 당시 대호평을 받아 약 1년 간에 3만 부가 팔렸으므로 출판사는 거액의
이익을 얻었으나 계약 조건을 잘못 정하였기 때문에 작자의 소득은 몹시
적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어떤 변사 사건의 살인 혐의자로 갇히게 되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어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여전히 가난하였으며 문학적 성과를 새로이 쌓으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돈 키호테"가 인연이 되어 레모스 백작과 친밀하게
되어 그의 비호를 받았다고는 하나 그의 아내와 딸은 비리야부랑카 후작의
집에서 바느질 일을 하여 겨우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1611년 그는 시루바
한림원에 들어가 겨우 생활의 기초를 얻게 되었으며 이 곳에서 창작욕을 태우며
많은 작품을 내었다.


  1614년에는 아베리아네드라는 익명으로 "돈 키호테"의 후편을 죽기 전에
완성하려고 전심 노력하여 1615년 그 완결을 보았다. 그는 1616년 4월 23일
수종병으로 영면하였는데 영국의 "햄릿"의 저자 셰익스피어가 죽은 날 같은
시간에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딸이 있는 수도원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그 소재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그의 생애에 대하여 그의 소설보다도 위대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의 빈곤하고 불행한 60년의 생애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용기와 유머와
정의감과 동포에 대한 따뜻한 동정심 그리고 고상한 인품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세르반테스는 시도 지었고 극도 썼으나 특히 소설가로서 위대했던 것이다.
이론이 아닌 실제의 예술가요 천성적인 소설가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는
단편적 글에 있어서도 누구와도 견줄 구 없는 명문장가였으며 재치 있는 구상과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유머 감각과 생동감 등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이 지상에
남겼다.

  줄거리
  옛날 스페인의 라 만차라는 마을에 긴 창과 낡은 방패에 케케묵은 갑옷과 투구
피부병에 걸린 말 사냥 도구 등을 갖춘 한 신사가 있었다. 그 신사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식탁 위에는 양고기보다는 쇠고기가 많이 올랐으며
대개 저녁에는 고기 샐러드로 마치고 목요일에는 고기 부스러기 금요일에는 콩
요리가 많은 일요일에는 작은 산비둘기 한 접시였는데 이것만으로도 소득의
4분의3은 사라져 버렸다. 나머지 4분의 1은 안식일에 입는 맞지 않는 비단
덧저고리와 벨벳 바지 구두 등의 호화스런 차림에 사용되었다.


  집에는 마흔이 넘은 가정부와 스물이 아직 못 되는 조카딸 농사 일을 하는
젊은 하인이 있었다. 노인인 신사는 오십이 가까웠으나 아직 독신이며 얼굴은
야위어 보이고 몸집은 말랐지만 극히 강건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사냥 가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 사나이였는데 이름은 아논소 키하아노라고 불렀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여가를 이용하여 중세 기사 소설을 탐독하여 가산을
관리하는 일도 돌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서적을 구입하기 위하여
선조의 토지까지도 팔아 없앴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기사나
마술사나 전쟁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착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도 무술 수업을 위하여 세계
각국을 누비며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여 약한 자를 도와 주고 강한 자를
다스려 그 무용을 천하에 떨치겠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정신이 이상해진 그는 곧 출발할 준비에 착수하였다. 헛간 구석에서
우선 선조가 사용했던 케케묵은 갑옷과 투구를 끄집어 내었으나 투구가 부서져
있었으므로 두터운 종이로 다시 만들었는데 아주 기묘한 모양이 되었다.
다음에는 말을 점검하였다. 가죽만 남은 말라빠진 둔마였지만 그의 눈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말에 못지 않는 수려한 준마로 보였다.


  그는 4일 간이나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그 말에 로시란테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기 자신은 8일 간 생각한 끝에 제멋대로 라 만차의 돈 키호테라고 정했다.
  갑옷도 투구도 말의 이름 짓기도 다 끝나고 자기도 훌륭한 기사가 되었으나
기사의 관습으로서 자기의 사랑을 바칠 절세의 미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애인을 위하여 천신만고를 격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며칠을 생각한
끝에 이웃 마을에 사는 이름도 있고 용모가 아름다운 시골 처녀가 생각이 나서
그를 고귀한 귀부인으로 여기고 토보소 마을의 애인이라는 의미로 둘씨네아 델
토보소라는 훌륭한 이름을 붙였다.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진 7월의 어느 날 집안 사람들 몰래 준비한 것으로
무장을 하고 그 늙은 몸을 실은 후 창을 높이 들고 용감하게 기사 수업의 길에
올랐다. 그에게는 한 가지 불안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직 기사의 칭호를 받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걸어가는 도중에는 기사를 만나게 될 것이니 그 때
직접 칭호 수여 의식을 올리겠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로시란테의 옆구리를 힘껏
찼다. 그의 괴상 망측한 모양을 본 마을 사람들은 미치광이라고 수근댔으나 그는
도리어 그 사람들을 마음 속으로 비웃으며 떳떳이 길을 떠났던 것이다.
  정해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로시란테의 머리가 향하는 대로 달렸는데
해가 저물 무렵 어떤 허름한 주막집 앞에 다다랐다. 자세히 보니 하녀인 듯한 두
여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기사의 눈에는 이 주막집이야말로 당당한 성주의
거대한 성으로 보였으며 그 하녀는 공주와 같이 보였으므로 곧 위엄을 갖추고
가까이 갔다. 그러자 그 여인들은 이 기괴한 풍채를 보고 무서웠든지 집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가 이것을 보고
  "안심하십시오. 부인들이여 저는 기사입니다. 고귀하신 부인들에게 어찌 무례한
짓을 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하녀들은 일제히 웃어 버렸다. 이 때 주인이
앞으로 나와 이 진귀한 가장을 하고 있는 꼴을 보고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아! 기사님이십니까. 마침 침구가 갖추어져 있는 방은 손님이 차 있습니다만
다른 것은 무엇이나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고 요령 있게 그를 거절할
눈치였으나
  "아니 성주님. 저는 무엇이든 족합니다. 무구는 나의 보배요 싸움만을 준비하는
나그네가 어찌 부족을 말하겠소" 하고 공손히 대답하였다.
  "그러시다면 딱딱한 돌방이에서 나마 하룻밤이라도 쉬어 가십시오" 하고 그의
갑옷에 손을 대자 아침부터의 허기에 쓸어질 듯이 말 위에서 내리며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명마이니 잘 부탁하오" 하고 로시란테를 주인에게
맡겼다. 돈 키호테는 하녀들의 손을 빌려 갑옷을 벗었으나 종이로 만든 투구는
파란 줄로 몇 번이나 묶였기 때문에 벗겨지지 않았다. 끈을 칼로 끊어 버리자고
하였으나 듣지 않고 속옷 바람에 투구는 그대로 쓰고 있었다. 식사도 그 투구
때문에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마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주인에게서 술을 대접받게 되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침 주인이
기지를 짜내어 갈대의 심을 뺀 것을 그의 입에 물리고 다른 한쪽 끝에서 그 술을
넣어 겨우 술을 먹여 주었다. 그런데 돈 키호테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예의 기사
칭호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곧 주인을 외양간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돌연 그의 발 밑에 엎드리며
  "성주님. 대단히 당돌한 청이라 황송하게 생각하오나 기사 칭호를 내려
주신다면 일생 동안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돈
키호테에게는 주인이 훌륭한 성주로 보였기 때문이다.
  주인도 그가 이상한 자라고 짐작했지만 이제 그 정체를 확실히 판단하게 되자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으나 그도 본래 익살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것쯤이야 어렵지 않습니다" 하고 쾌히 승낙을 한 후 자기도 젊었을 때에는
각국으로 기사 수업을 다니면서 대단히 고생을 겪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그런데 귀하는 돈을 가진 것이 있으신가요?" 하고 주인은 약삭빠르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돈 키호테는 태연스럽게 지금까지 기사 수업에 있어서 금전을
휴대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은 적이 없었으므로 한푼도 소지한 것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주인은 그 부주의함을 말하고 여행에는 반드시 여비가 필요하고
갈아입을 속옷도 가지고 다녀야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기사는 착실히 그의 충고를 듣고 들에서 무구를 든 채 적이 오는 것을
감시하게 되었다. 돈 키호테는 자기의 무구를 우물가의 물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고 방패와 긴 창을 들고 그 앞을 왔다갔다 하며 밤새도록 지켰다. 때마침
그 주막에 숙박하고 있었던 마부가 돌연히 나타나서 이러한 사정이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자기의 말에 물을 먹이려고 그 물통 위에 모셔 놓은 귀중한 무구에
손을 대었다. 수상한 자가 접근하자 돈키호테는 놀라서 고함을 치며
  "무슨 일로 나의 무구에 손을 대느냐?" 하고 애인 둘씨네아의 이름을 마음
속으로 부르며 마부의 머리를 향하여 일격을 가하자 그는 불의의 습격에
당황하며 그만 땅 위에 나동그라져 버렸다.


  얼마 안 되어 또 한 사람의 마부가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져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그 우물 가까이 왔다. 그러자 돈 키호테는 이번에는 창을
휘두르며 그 마부의 머리를 서너 번이나 몹시 때렸다. 이러한 불상사가 연달아
일어나므로 주인은 그를 빨리 구슬러서 출발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곧 기사의 칭호를 수여하기로 하였다.


  식은 반드시 예배당이 아니고 들판이어도 좋다고 하면서 그는 부피가 두터운
통장을 중대한 것인 양 들고 예의 귀부인 즉 하녀와 촛대를 든 사내아이를
데리고 서서히 돈 키호테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걸어 갔다. 먼저 돈 키호테에게
꿇어 앉도록 명령하고 그럴 듯하게 통장을 읽은 다음 칼을 들어 기사의 어깨에
힘껏 일격을 가하여 이 자리에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사 임명식이
거행되었다.


  이에 만족한 돈 키호테는 로시란테에 뛰어 올라 성주와 귀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의기 충천하여 원정 길을 떠났다. 뒤에 숨어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구경꾼들의 폭소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순진한 돈 키호테는 성주의 충고에 따라 여행에 필요한 용돈과 갈아 입을
속옷을 준비하고 또한 종복도 한 사람 데리고 정식으로 다시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았을 때 오른쪽 숲속에서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어젯밤
기사의 칭호를 받았는데 오늘 아침부터 임무를 수행할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뜻밖의 다행이라고 숲 속 깊이 들어갔다.


  이 곳에서 안드레스라는 17, 8세 되어 보이는 게으름뱅이 목동이 염소를
잃었다고 주인에게 쫓기는 것을 본 돈 키호테는 주인을 용감히 칼로 위협을 하여
우선 그 소년을 구해 주었다. 그리고 더욱 의기 양양하여 다시 약2마일 쯤 갔을
때 한 무리의 행상들을 만났다.


  일행은 상인이 여섯 사람에 종이 네 사람인데 모두 다 말을 타고 그 뒤를
마부가 세 사람이나 따르고 있었다. 돈 키호테는 좋은 적수를 만났다는 듯이 길
한복판을 가로 막으며 말 위에서 당당한 위풍과 기세를 보이면서
  "야 거기 가는 기사들 이 세상에서 라만차의 여왕 둘씨네아보다 아름다운
미인이 없다고 맹세를 하지 않는다면 그대들에게는 이 길이 저승길이 되고 말
것이다" 하고 외치자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상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저것은 무엇일까? 기묘한 풍채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미친 모양이지" 하고
그냥 지나가려고 하였으나 그 중에 짖궂은 한 사나이가
  "그 부인을 보여 주신다면 기꺼이 맹세하지요. 초상이라도 보여 주신다면 애꾸
눈이라도 동의하지요..." 하고 놀리자 돈 키호테는 불같이 노하여 분연히 긴 창을
겨누고 공격해 왔으나 로시란테가 힘을 다하고 있는 주인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발이 걸려 넘어지자 그렇지 않아도 갑옷과 투구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돈
키호테는 마음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고약한 한 마부가 그의 창을
빼앗아 들고 닥치는 대로 쑤셔 놓고 가 버렸다.


  늙은 기사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기사 수업에는
반드시 재난이 따르는 것이라고 단념하고 하는 수 없이 누운 채로 있었다. 마침
그 때 그 마을 농사꾼이 지나가다가 그 곳에 사람이 뻗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와서 흙투성이가 된 얼굴을 씻어 주고 보니 돈 키호테였다. 땅에서 겨우 그를
일으켜 자기의 나귀 위에 태우고 무구를 긁어 모아 가지고 마을로 돌아오니 돈
키호테의 집에서는 대소동 중이었다. 돈 키호테의 친구인 부목사와 그 마을에
사는 이발사가 와 있었다. 하인은 큰 소리로
  "이틀 전부터 그분의 말도 창도 갑옷도 보이지 않았어요. 주인님은 저 기사도
책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지신 모양이에요" 하고 호소하였다. 그의 조카도
  "아저씨는 2,3일 동안이나 기사 수행의 책을 읽고는 칼을 빼들고 벽을
찌르고는 이제 거인 4명을 무찔렀다고 자랑하시며 마술사에게 얻은 물이라고
하시며 병 속에 든 냉수를 마셨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 때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돈 키호테가 나귀에 태워져 돌아왔으므로 모두
달려가 조심스럽게 안아 내리려고 하였다. 돈 키호테는
  "물러 가거라! 나는 말의 부주의로 실수를 한 것이다. 현명한 프리스톤 거인을
불러 상처를 낫게 하여라" 하고 외치자 모두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사람들은
돈 키호테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므로
그냥 조용히 잠들게 하였다.


  돈 키호테가 잠들고 있는 사이에 부목사와 이발사가 그의 서고를 뒤졌는데
수백 군의 서적이 가득 들어 있었다. 모든 게 책 때문이라고 결론 짓고 모닥불을
피워 전부 재로 만들어 버렸다.


  돈 키호테가 잠이 깨어 자기의 자기의 사랑하고 아끼는 서고를 마술사가 와서
전부 태워버렸다고 얘기를 듣고 그는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납득하였다.
  돈 키호테는 그 후 15일 간 집에 있었는데 친구들의 충고도 듣지 않고 망상은
더 심해져 정직하고 어리석은 농사꾼 산초 판사를 꾀어 종복으로 삼기로
약속하였다. 이 불쌍한 농부는 처자식을 가난한 집에 남겨 둔 채 돈 키호테와
함께 출정하기로 결심하였다. 돈 키호테는 산초에게 당장에 섬나라에 손에 넣어
그 섬의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터무니 없는 약속을 하였지만 그는 그 말을
믿고 기뻐하며 그의 종복이 되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젠 여비도 조달되고 속옷도 준비되었으므로 산초에게는 헝겊으로 만든
자루와 가죽 포대를 휴대케 하고 출발할 날짜와 시각을 정하였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집안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어느 날 밤을 틈타 몰래 마을을 빠져
나가기로 하였다.


  산초는 키가 크고 말라 빠진 돈 키호테에 비하여 몸집이 뚱뚱하고 키가 작은
땅딸보였으며 성격도 아주 단순하고 융통성이 없는 둔한 사람이어서 이 두
사람은 우스꽝스러운 대조를 이루었다.


  노기사는 말라빠진 말 위에 올라 애인 토보소의 둘씨네아의 모습을 가슴 속에
그리면서 종복은 야윈 나귀 등에 올라 모험을 위해 출발하였다.
  "나리 어제 약속하신 섬나라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큰 섬나라도
훌륭히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고 종복이 다짐을 하니
  "그것에 관해서는 염려 말아라. 섬이든 나라든 손에 넣게 되면 부하를 그 곳의
총독으로 임명하는 것이 옛날부터 기사 수행도의 관습이다. 수일 후에는 속국이
서넛 있는 나라를 점령하게 될 것이니 너는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왕이 되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대답하자 산초는 눈동자를 빛내며
  "내가 왕이 되면 마누라와 자식들은 여왕과 왕자님인가!" 하고 두 사람은
희열에 들떴다. 그들은 정처없이 들판을 헤매다가 열 개의 풍차가 눈에 띄었다.
이것을 발견한 돈 키호테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참으로 이것은 하느님이 주신 행운이다. 적어도 30명은 더 되는 괴물
프리스톤이로구나 이것은 좋은 적수이니 나가서 정의롭게 싸우겠다" 하고 항상
애인에게 자기의 무용담을 들려 줄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마음 속으로 애인
둘씨네아의 이름을 외치면서 창을 휘두르며 로시란테가 거꾸러지지 않을까
염려될 만큼 힘차게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였다.
  "나리 잘 보십시오. 저것은 풍차입니다" 하고 산초가 말렸으나 이 말에 흔들릴
돈 키호테가 아니었다.


  그 때 마침 바람이 일어나 풍차가 세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놓칠 줄 아느냐. 비겁한 무리들아" 하고 그는 방패를 힘 있게 쥐고 창을
겨누어 풍차의 날개를 찔러댔다.
  그러나 창은 부숴지고 기사는 보기 좋게 말과 함께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더니
그의 몸이 밭 가운데로 떨어지고 말았다. 놀란 산초는 곧 달려가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인을 동정하며 일으켜 세운 뒤 겨우 말 위에 앉혔다.
  "하지 말라는 일을 하시더니만 큰일을 당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염려하자
  "허! 그렇게 낙심할 것 없다. 전쟁의 승패는 병가의 상사이지 못된 마술사가
거인 정복의 영예를 내게서 빼앗으려고 프리스톤을 풍차로 변화시킨 것이로구나.
그러나 내게는 아무 짓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라고 말하고 산초에게
이 정도로 낙심하는 것을 기사의 수치라고 하며 득의 만면하여 다시 전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건너편에서 베네지구트 파 승려 두 사람과 그 뒤로
귀부인이 탄 사륜 마차 한 대가 비스케이인 종들을 데리고 오고 있었다. 돈
키호테는 이것을 보고 기뻐 날뛰며 그들 승려야말로 여인을 유혹하고 다니는
극악 무도한 무리들이라고 판단하고
  "이 나쁜 놈들아. 너희들이 유혹해서 데리고 온 고귀한 공주를 즉시
인도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하고 외치자 놀란 것은
산초와 승려들이었다.
  "기사님, 우리들은 여행 중이며 이 마차의 부인은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하자
돈 키호테는 그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제일 앞에 선 중을
창으로 찔렀다.


  그 중은 놀란 나머지 나귀 위에서 떨어지고 다른 중 한 명은 나귀를 타고
도망쳐 버렸다. 산초가
  "이젠 되었다" 하고 떨어진 중 옆으로 가서 입은 옷을 벗기기 시작하자 종복
두 사람이 달려들어
  "이게 무슨 짓이요. 남의 옷을 벗기다니!" 하고 항의를 했다. 산초는
  "무엇이라고? 너희들은 기사도 책을 읽은 일도 없느냐 이것은 나리께서 싸움에
이기신 전리품이다" 하고 외쳤다.
  그러나 종복들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 줄은 모르나 산초를 넘어뜨리고 발로
차고 수염을 잡아당겼다. 그 사이에 남아 있던 중도 나귀를 타고 도망쳐 버렸다.
  돈 키호테는 마차 옆으로 가까이 가서 그 여인을 향하여
  "고통을 당하신다는 것을 알고 보시는 바와 같이 악인들을 퇴치하였습니다.
나는 토보소의 둘씨네아와 사랑으로 맺어진 기사 돈 키호테입니다. 사례 같은
것은 전혀 필요없으나 이제부터 토보소로 둘씨네아 공주를 찾아 가셔서 이
사건의 전말을 들려 주신다면 그 이상 기쁜 일은 없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말하자 종복들은 처음부터 길을 가로막힌 분노에 토보소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자 격분하여 돈 키호테에게 덤벼들었다. 서로 옥신각신한 끝에 종복들이 몹시
당하였으나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려는 판에 주인인 귀부인이 마차에서 내려와
반드시 종복들을 토보소의 둘씨네아 공주에게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여 겨우 일이
수습되었다.


  산초는 중의 종복에게 몹시 얻어맞았으나 즉시 일어나서 공손히 주인의 손을
잡으며
  "잘되었습니다. 좀 빠르긴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손에 넣으신 섬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좀더 기다려라. 산초야! 이것은 아직 섬의 전쟁이 아니다. 단지 좁은 길에서의
작은 다툼이다. 이제 반드시 대전쟁이 시작된다. 그 때는 반드시 너를 국왕이든
황제든 시켜 주겠다" 하고 달래자 산초는 감사의 뜻으로 주인의 손과 갑옷에 몇
번이고 키스를 하였다.


  다음 날 그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자 보기에도 부드러운 초원이 있었으므로 그
곳에서 쉬면서 말과 나귀에게 풀을 뜯게 하였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작은
말들에게 풀을 뜯기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이 때에 돌연 로시란테가 무례한
행동을 한다고 곤봉으로 때려 로시란테를 쓰러트렸다. 이것을 보고 분개한 돈
키호테와 산초는 칼을 빼들고 돌진했으나 20명에 가까운 마부들이 모두 곤봉을
들고 두 사람을 에워싸고 닥치는 대로 때렸기 때문에 돈 키호테는 여지없이
땅바닥에 뻗어 버렸다.


  산초가 먼저 정신을 차려 돈 키호테를 나귀에 올려 붙잡게 하고 로시란테를
일으켜 세워 고삐를 나귀 뒤에다 묶은 후 자기는 모든 아픔을 참아가며 큰 길을
향하여 걸어 나왔다.


  얼마 안 가서 주막집이 보였으므로 그들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주막집에서는
돈 키호테를 간호하기 위하여 천정 아래 방에다. 허름한 침대를 마련하고 그
위에 눕게 했다.


  그 집 여자와 딸은 돈 키호테의 머리부터 손톱 끝까지 고약을 붙여 주었으며
'산초'도 나머지의 고약을 얻어서 자기의 몸에 붙였다. 그런데 이 방에서 마부
한 사람과 지내게 되었는데 그는 이 날 밤 이 집 하녀와 밀회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돈 키호테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여러 가지 환상에 잠겨 있었는데 마침
그 하녀가 들어왔다. 그가 속옷 바람에 맨발로 남몰래 더듬거리며 마부를 찾자
이것을 보고 있던 노기사는 늑골의 아픔도 참아가며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미의
여신으로 생각되는 그 젊은 여자를 꽉 껴안고 나직하고 정다운 말소리로
  "사랑스럽고 고귀하신 여인이시여!" 하고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이것을
보고 있던 그녀의 정부인 마부가 흥분하여 돈 키호테의 옆으로 가까이 와서 야윈
턱을 힘껏 갈겼다. 돈 키호테의 입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의 가슴에 올라 앉아서 힘껏 누르는 바람에 침대가 그만 부서져
버렸다.


  이 소리에 놀라 잠을 깬 주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달려왔다.
하녀는 놀라서 그 옆에서 자고 있던 산초의 잠자리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산초도 이 소동에 잠을 깨어보니 머리 위에 이상한 것이 있어 주먹으로 마구
쳤다. 하녀는 너무나 아프고 화가 나서 같이 때렸다.


  이것을 본 마부가 사랑하는 하녀의 편을 들어 산초에게 덤벼들었으므로 이
네 사람 사이에 일대 격투가 벌어졌다. 그 때 마침 그 곳에 순찰 와서 숙박하고
있던 경찰이 이 괴상한 소리를 듣고 방 앞에 와서 호령을 하자 모든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도망쳐 달아나 버렸다.


  이 때까지 기절해 있던 돈 키호테는 겨우 정신을 차려 상처를 치료할 향유를
만들기 위해 기름 포도주 소금 향료를 얻어 올 것을 산초에게 명령하였다. 돈
키호테는 이것을 한꺼번에 끓여 여섯 컵 반이나 되는 것을 한꺼번에 마셨다.
그러나 약효를 기대했던 이 향유는 위를 통과하자마자 곧 심한 구토와 경련을
일으켰다.


  두 시간 이상이나 의식을 잃고 잠들었던 돈 키호테가 잠에서 깨었을 때에는
이상하게도 상처의 아픔도 가시고 상쾌하게 나은 듯하였다. 기적과 같은 주인의
회복을 본 산초는 아직 남아 있는 향유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다.
  산초는 성심 성의를 다하여 주인에 못지 않게 많이 마셨다. 그러나 가련하게도
산초의 위는 주인의 것보다는 못하였던지 떠나기 전에 격렬한 복통을 일으켰다.
식은 땀이 흐르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이것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라도
각오할 정도였다.


  돈 키호테는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이 음료는 기사가 아닌 사람에겐 약효가 전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므로
산초는
  "그것을 아시면서 왜 마시게 내버려 두셨습니까?" 하고 괴로운 숨을 내쉬며
원망하였다. 드디어 가련한 충복 산초는 위 아래로 배설을 시작하여 깔고 있던
것이나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더럽히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그럭저럭 두 시간
동안이나 고통을 받았으므로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지고 말았다.
  돈 키호테는 자기는 완전히 회복하였으므로 한시라도 빨리 또 다른 모험을
위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손으로 로시란테의 등 위에 안장을 깔고
산초를 부축하여 옷을 갈아 입힌 후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들이 주막집을 막 나서려고 할 때 주인이 그를 불러 세우고 숙박료를
청구하였다. 그런데 돈 키호테가 태연 자약하게 대답하는 것이 걸작이었다.
  "주막집이라 하니까 돈을 전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나는 기사
수업하는 자가 단 한 푼이라도 음식값이나 숙박료를 냈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일이 없으니까 말이야" 하고 거부하였다.


  주인이 기사의 아야기 따위는 상관없으나 돈만 내라고 재촉하자 돈 키호테는
몹시 화를 내며 용감하게 말을 몰아 창을 공중으로 휘두르면서 주막집을 빠져
나가 버렸다.


  돈 키호테가 지불도 하지 않고 도망쳐 버리자 주인은 산초를 붙잡았다. 산초도
주인이 지불하지 않은 것을 자기가 지불할 의무가 없는 거라며 버티자 그 곳에
숙박하고 있던 8, 9인의 여행객들이 산초를 이불에 싸서 팔매질을 시작하였다. 그
가련한 사나이의 울음 소리가 주인의 귀에까지 들려와 돈 키호테가 그쪽을
돌아다 보았다. 이불에 싸인 산초의 몸이 담 위로부터 우스꽝스럽게 공중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보였으므로 돈 키호테는 웃음이 터지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그 고초를 겪은 산초는 나귀에 올라탈 수도 없을 만큼 기진맥진하였다. 이
가련한 충복은 견디다 못해서 기사 수업이 이렇게 고생스럽고 시끄럽고 말썽만
일어난다면 자기는 차라리 처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짓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돈 키호테는
  "그게 무슨 말이냐? 아직도 기사도의 참뜻을 깨닫지 못한 탓이니 그저 가만히
참고 있어라" 하고 나무라며 기사의 명예와 희망을 자세히 타일렀다. 돈
키호테는 다시 그를 데리고 정처 없는 길을 떠났다.
  어느 날 그들은 몰려가는 양 떼를 발견했는데 희뿌연 먼지가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퍼져 오고 있었다. 돈 키호테는 이것을 보고
  "산초! 저것은 북쪽으로 진군하는 연합군의 군대이다. 군마의 울음소리와
북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라고 말하였다. 돈 키호테는 이와 같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가 읽은 기사도 소설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생각하였으므로 기상
천외한 그의 언행도 그로서는 정연한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약한자를 도와 주는 것은 나의 힘으로 충분할 것이다. 나의 용맹과 무기의
위력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로시란테에게 채찍질을 하며 창을 들고
번개처럼 언덕을 내려갔다.


  "나리님! 당신의 상대는 바로 염소 떼입니다" 하고 산초가 외치는 소리도 듣지
않고 몰려드는 양 떼의 한복판으로 돌진하였다.
  그러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양치는 사람들은 불의의 침입자에 놀라서
돌멩이를 집어 들고 돈 키호테를 향하여 일제히 돌팔매질을 했다. 불행히도 큰
돌이 그에게 명중하여 마침내 천하의 용사가 거꾸러 넘어지고 말았다. 돈 키호테
자신도 자기가 확실히 죽었던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였다. 목동들도
그가 확실히 죽은 줄 알고 양을 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산초는 언덕 위에서 주인이 싸우는 모양을 보고 있다가 그가 쓰러지고
목동들이 사라져 버린 후에야 그의 옆으로 달려가서 슬픈 듯이 말하였다.
  "주인님, 그만 돌아오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들은 양이지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지 않았어요" 하자 돈 키호테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의 적인 저 마술사의 도적놈들이 양으로 변했다
없어졌다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상처는 염려할 것이 없다" 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다시 전진하였으나 그 날은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가 저물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딱한 것은 그들은 배가 고파서 곧 스러질 정도였는데
가까스로 어느 조용하고 넓은 계곡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바위의
꼭대기에서 사람을 경악스럽게 할 정도의 괴상한 소리가 마치 폭포수처럼
요란하고 무섭게 들려 왔다. 더구나 그 날 저녁은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었으며 쉬쉬하는 나뭇잎 소리가 공포감을 더해 주었다.
  산초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몸이 떨리며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돈 키호테는 창과 방패를 들고
  "산초야, 이 위대한 모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3, 4일만
여기서 기다리다가 만약 돌아오지 않거든 고향으로 돌아가서 둘씨네아 공주에게
그녀의 기사는 명예를 위해 괴물과 싸우다 명예롭게 전사했다고 전하여라" 하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산초는 아무래도 그 날 밤의 모험에 주인을 보내는게
불안하여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내어 몰래 말의 다리를 끈으로 묶은 뒤에 돈
키호테에게 밤이 새는 것을 기다려 보자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돈 키호테는
기여이 출발하려고 말 위에 올랐는데 말이 뛰기만 하고 걷지를 못하자 단념하게
되어 그 날 밤은 공포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아침이 되어 돈 키호테는 괴물과
싸우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려가 보았다.


  그 곳에는 대여섯 채의 움막이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는 그 안에서 들려 오는
것이었다. 하룻밤 동안 그들을 괴롭힌 공포의 원인을 알아 보려고
로시란테까지도 온몸을 긴장하였다. 그러나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놀랍게도 표백 기계의 망치 소리였다. 즉 옷감을 튼튼히 하고 표백하는데
쓰는 수차였다. 돈 키호테는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창으로 그에게 일격을
가하면서
  "나는 진실로 대모험을 각오하고 온 것이다. 첫째로 표백 기계라는 것을
몰랐었다. 그러나 이 일은 앞으로 두 번 다시 말하지 말아라. 사물의 실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현인은 별로 많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다시 여행을 계속하였는데 맞은편에서 12명 가량의 죄수가 쇠고리에
채워져 강제 노역에 끌려가는 것이 보였다. 돈 키호테는 그 모양이 가련하여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그중 한 사람에게 연유를 물어 보았다. 얘기를 들은 이
순진한 이상가의 분노는 또다시 폭발하였다.


  "도대체 이렇게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있는 권리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하며
불쌍한 죄수들이야말로 자기가 나서서 구출해야 한다고 결심하며 칼을 빼들고
호위병들 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사이에 산초는 죄수들의 포승을 풀어 주고
그들과 합류하여 호위병들을 완전히 쫓아버렸다. 돈 키호테는 곧 죄수들을 모아
놓고
  "너희들을 곧 토보소의 둘씨네아 공주에게로 가서 이 사실을 말하고
오너라" 하고 명령하였으나 죄수들은 도저히 도시로는 나갈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으므로 명령을 거절했다.
  그러자 돈 키호테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분노하며
  "너희들이 싫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너희를 보내고야 말겠다" 하면서
죄수 한 사람을 후려쳤다. 이 때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죄수들은 일제히 자갈과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 불의의 공격으로 돈 키호테가 말에서 떨어지자
죄수들은 재빨리 은인인 두 사람의 소지품과 옷을 벗겨 가지고 숲 속으로 제각기
숨어 버렸다. 몹시 불쾌해진 기사는
  "산초야, 천한 놈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일이로구나" 하고
한탄하자
  "오, 주인님. 제발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는 주의하여 주십시오" 하고
산초도 분노하며 대답하였다.
  두 사람은 아픔을 참아가며 겨우 말 위에 올라 불쾌한 이 장소에서 조용히
말을 돌렸다. 잠시 걸어가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 때 한 사나이가 나귀를
타고 황금같이 빛나는 것을 머리에 쓰고 나타났다. 돈 키호테는 이 모습을
보고는 잘 생긴 준마를 타고 황금 투구를 쓴 기사라고 생각하였다.
  "저것이 바로 마부리노의 투구이다. 저 황금의 투구를 얼마나 빨리 내 손에
넣는가를 보여 주겠다" 하고 돈 키호테는 자신 만만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돈 키호테가 기사라고 본 사나이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 당시의
이발사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옮겨 다니며 수염과 머리를 깍았으므로 놋쇠로
만든 대야를 휴대하고 다녔다. 이 사나이는 시골의 이발사였는데 마침 비가 와서
자기의 새 모자를 버리지 않기 위하여 머리 위에 그 놋대야를 뒤집어 쓴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돈 키호테는 창을 겨누고 그 사나이에게로 달려갔다. 혼비
백산한 이발사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나귀 위에서 굴러 떨어진 채 위기
일발로 창끝을 피하여 놋대야도 내던진 채 어디로인지 달아나 버렸다. 돈
키호테는 손쉽게 그 황금 투구를 수중에 넣었다는 사실에 만족하여 그것을
자기의 머리에 쓰고 의기 양양하여
  "이 훌륭한 투구를 만들게 한 기사는 확실히 큰 머리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섭섭하게도 반쪽이 없어졌구나!" 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앞서 일어난 죄수의 일로 인하여 두 사람은 관청의 눈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들은 몸을 숨기려고 얼마 동안 험한 산 속을 깊이 헤매다녔다.
옛날부터 많은 성인들이 도를 닦는다는 모래나 산 속에서 돈 키호테는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수호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마을에 내려가서 한
여인을 강제로 데려와 명예스러운 기사의 수호신으로 정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사자와의 격투, 마선에 의한 봉변 등 많은 모험을 겪었고
전리품도 상당히 많이 얻었다.


  이 전리품들이 모두 산초의 것이 되었으므로 일단 산초는 토보소의 둘씨네아
공주에게 돈 키호테의 무용담을 들려 주기 위해 귀향하게 되었는데 돈 키호테가
쓴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거룩하고 고귀하신 공주님, 나의 충실한 종 산초는 당신을 위해 나의 고난을
상세히 알려 드릴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당신의
종인... 우수에 젖은 얼굴의 기사로부터"
  '우수에 젖은 얼굴의 기사'란 이름은 돈 키호테가 주막집에서 마부들에게 얻어
맞았을 때 이가 빠져서 종일 굶는 바람에 핼쑥해진 얼굴을 보고 산초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리고 조카딸에게는
  "내가 없는 동안 너에게 맡겨 둔 나귀새끼 다섯 필 중 세 필을 나의 시종
산초를 통해 보내 달라"고 썼다. 이것은 산초가 산중에서 노숙할 때 나귀를
도둑맞았기 때문이었다. 산초는 기뻐하며 로시란테에 뛰어올라 고향으로
향하였다.


  그 이튿날 이전에 이불 찜질을 당했던 주막집 앞에 도착하였을 때 우연히도 두
사나이가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정신 이상이 된 돈 키호테를
고향으로부터 사방으로 찾아 헤매고 다니던 부목사와 이발사였다. 산초는
그들에게 토보소의 둘씨네아 공주와 돈 키호테의 조카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중요한 문제의 편지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나귀에 대한 지시도 있었기
때문에 얼굴빛이 창백해진 산초가 당황하여 온 몸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산초는 너무 놀라서 자기 수염을 쥐어뜯고 주먹으로 얼굴을 치기도 하여
피투성이가 되는 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서 둘씨네아 공주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을 잠시 생각한
끝에
  "거룩하고 귀하신 공주님. 상처를 입고 수면 부족으로 창에 찔린 자가 당신의
손에 키스합니다. 인정도 없고 차마 쳐다볼 수도 없는 추한 어여쁘신 공주이라고
쓰여져 있었고 그 외에 건강인지 병인지를 그 여인에게 보낸다는 것과 맨 끝에는
죽을 때까지 당신의 것인 우수에 찬 얼굴의 기사로부터라고 씌어 있었지요" 하며
총명한 기억력을 자랑하듯이 말하였다. 그리고 만약 둘씨네아 공주로부터 좋은
회답을 가지고 가면 주인은 적어도 황제나 왕이 되고 자기는 예쁜 시녀를 신부로
맞이하기로 둘 사이에 굳은 약속이 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부목사와 이발사는 돈 키호테의 광기로 인해 이처럼 가련한 사나이까지도 변해
버린 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에 젖어 꿈을 꾸고 있는 산초의 몽상을 깨뜨리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었지만 돈 키호테를 무모한 고행에서 구출하는 일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여러 가지로 머리를 짜내어 묘안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그 묘안이란 이발사를 어느 나라의 공주로 변장시키고 부목사는 그 시종으로
분장하여 공주가 어떤 공작의 아들인 몹쓸 기사에게 대단한 괴로움과 모욕을
받은 것 같이 꾸미고 돈 키호테가 복수를 해 주면 그 공주를 아내로 삼고 거인이
침범하는 이웃 나라의 어려움을 다스리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돈 키호테도
공주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면서라도 도와 주겠다며 반드시 공주를 따라 올
것이니 그렇게 되면 그의 고향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새로운 대책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 주막집의 안주인의 손을 빌려 공주의 차림과 시종의 분장이
갖추어졌다.


  그런데 다행한 일은 산중에서 남장한 아름다운 도로데아라는 소녀와 그의
애인을 만나 서로 이야기를 한 끝에 그 소녀가 스스로 비탄에 잠긴 공주의
역할을 맡겠다고 하였다. 세 사람은 대단히 기뻐하며 곧 준비해 온 물품을
꺼내었다. 신분이 높은 귀부인 차림의 어여쁜 공주와 긴 수염을 기른 이발사인
시종이 즉석에서 꾸며졌다.


  산에서 많은 고초를 겪은 뒤에야 겨우 공주와 시종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돈 키호테를 발견하였다. 여인은 곧 말 위에서 내려 돈 키호테 앞에 무릎을
꿇으며
  "오! 용맹하신 기사님, 당신의 명성을 듣고 산과 바다로 수천 리 떨어진
이국땅에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이 곳까지 찾아 왔습니다" 하고 말하자 옆에
있던 산초도
  "주인님, 꼭 이분의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이분이야말로 이디오피아의
미코미콘 왕국의 미코미코나 공주이십니다" 하고 말했다. 돈 키호테는 엄숙한
태도로
  "소인이 지키는 기사도에 맹세하고 구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공주는 기쁜 얼굴로
  "그렇게 해 주신다면 이제부터 제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왕국을 가로챈 반역가들을 물리쳐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자 돈 키호테는 최상의 예의를 갖추며 정중하게 공주를 일으켜 세우고
포옹하였다
  돈 키호테는 공주의 간청이야말로 기사 수업의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즉시 행동할 것을 승낙했던 것이다.
  돈 키호테는 곧 로시란테에 올라타며
  "공주를 구해 드리기 위하여 신의 이름을 걸고 출발하자"라고 말하였다.
  이젠 공주가 된 도로데아는 도중에 흥미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 주면서
돈 키호테를 인도하였다. 돈 키호테가 그 동안 획득하였던 전리품도 전부 잃고
고향 근처의 어느 마을에 왔을 때 또 큰 사건이 일어났다.
  그 해는 가뭄이 심하여 비가 조금도 내리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기도하는 무리 고행하는 무리 같은 것을 조직하여 신의 자비에 의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날도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신성한 도장으로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돈 키호테는 이것을 보고 이 괴상한 무리들을 무찌르는 것이 기사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로시란테를 채찍질하였다. 주위에서 그를 말릴 틈도 없었다. 산초만
  "기사님 어디로 가십니까? 무슨 마귀에 홀렸기에 신에게 반역한단 말입니까?"
하고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돈 키호테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 중에서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녀를 유괴 당한 귀부인으로 생각하고 칼을 빼들고
돌진하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를 폭행자로 여기고 곤봉을 휘둘러 돈 키호테의 양
어깨를 심하게 구타하였으므로 불쌍하게도 그는 땅바닥에 뻗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알았다. 산초가 눈물을 흘리며
  "오오 기사도의 꽃! 이렇게 쉽게 생애를 마치다니 무정하고 야속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통곡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울음 소리가 돈 키호테의 정신을 들게
하였다.


  "산초야, 나를 부축해서 마술의 수레에 태워다오. 나는 로시란테를 탈 수 없을
것 같다" 하고 돈 키호테가 힘없이 말하자 기회만 엿보고 있던 일행은 돈
키호테를 재빨리 붙들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창살로 만든 우리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 우리를 마차에 싣고 두 남녀와 작별한 다음 부목사와 이발사 산초는
돈 키호테를 데리고 6일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렇게 그는 완전히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되었는데 하인들과 조카딸은 돈
키호테가 아주 야위고 창백한 얼굴로 짐승같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기사도 책을 저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산초의 부인은 돈 키호테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이렇게 고마울데가 돈을 많이 벌어 오셨지요? 내게 줄 옷감은 어디 있습니까?
아이들 것은?" 하고 반겼으나 산초는
  "다음에 또 한 번만 여행을 떠나면 나는 틀림없이 백작이나 총독이 되어서
돌아올 텐데!" 하고 큰소리만 치고 있었다.


  돈 키호테의 기사 수업은 그가 우리 속에 갇히는 것으로 막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동안의 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기사 수업의 길을
떠났다.


  돈 키호테는 세 번째 집을 나서서 사라고사로 갔는데 그 읍내의 유명한 경연
대회에 참가하여 그의 용기와 지략에 걸맞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의 뒷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것이 전혀 없으며 단지 한 의사가 전해 준
납으로 된 상자가 있었다. 그것은 낡은 성당을 개축할 때 깨어진 바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 상자 속에서 나온 것은 스페인어로 된 시가 고딕체로
쓰여진 양피지였고 거기에는 돈 키호테의 기상 천외한 모험과 둘씨네아의 미모
로시란테의 생김새 산초의 충직함과 돈 키호테의 무덤에 대한 내용이 찬양시와
함께 들어 있었다. 납 상자에서 발견된 양피지에 적혀 있는 내용의 첫 부분에는
라 만차의 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용감한 돈 키호테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동정과
애도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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