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독해연습22 / 말단에서부터 학문의 깊이를 추구함(사변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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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 육경1)의 글은 모두 요()() 이하 여러 성인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그 조리는 정밀하고 그 뜻은 완비된 것이며, 그 내용은 깊고 그 취지는 심원2)하다. 대체로 그 정밀한 점을 논한다면 털끝만큼도 어지럽힐 수 없으며, 그 완비된 것을 말한다면 미세한 것도 빠진 것이 없다. 그 깊이를 재어 보려고 해도 그 밑바닥을 찾을 수 없으며, 그 심원함을 추구하려고 해도 그 끝간 데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본래 세간3)의 그릇된 선비라든가 변통4)없는 유자5)의 얕은 도량이나 고루한 식견으로써는 밝혀낼 수 없는 것이다.

 

[] 그러므로 위로 진()() 시대부터 아래로 수()() 시대에 이르기까지 분파(分派)를 이루어 서로 이리 자르고 저리 찢고 하다, 마침내 그 대체6)를 파괴하고 만 것이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이단7)에 빠진 자는 대부분이 근사한 것을 빌어 가지고서, 그의 간사하고 둔갑스러운 말을 꾸며내기도 하고, 그 옛날의 전적8)을 굳게 지키기만 하는 자는 융통성이 부족하고 편벽하여 전혀 평탄한 길에 어두웠던 것이다. 아아, 성현들이 부지런하고 간절하게 이 글을 만들고 이 말을 기록함으로써, 이 법을 밝히고 천하 후세에 기대를 건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 9)에 이르기를,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어둡고 꽉 막힌 사람을 일깨워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겠는가? 진실로 세간의 배우는 이가 여기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앞에 말한 먼 곳이란 곧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야 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깊은 것이란 것도 얕은 데서부터 들어가야 할 것이며, 정밀한 것도 거친 데서부터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진실로 거친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정밀한 것을 먼저 하고, 소략10)한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그 구비11)한 것을 일삼고, 얕은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그 깊은 것을 앞당겨 하고, 가까운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그 먼 것을 미리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 지금 육경을 연구하는 이는 모두가 그 얕고 가까운 것을 뛰어넘어 깊고 먼 것으로 달려가며 그 거칠고 소략한 것은 소홀히 하고서 정세12)하고 구비한 것만을 엿보고 있으니, 그들이 어둡고 어지러워지고 빠지고 넘어져서 아무런 소득도 없음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들은 다만 그 깊고 멀고 정세하고 구비한 것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얕고 가깝고 거칠고 소략한 것마저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아아, 슬프다. 그 또한 심히 미혹13)한 것이 아니겠는가.

 

[] 대체로 가까운 것은 미치기 쉽고, 얕은 것은 예측하기 쉽고, 소략한 것은 얻기 쉽고, 거친 것은 알기 쉬운 법이다. 그가 도달한 것을 근거로 해서 자꾸 멀리 간다면, 그 먼 곳을 다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예측하여 헤아린 것을 근거로 해서 자꾸 깊게 들어간다면, 그 깊은 데를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얻은 것을 근거로 해서 점점 더욱 구비하고, 그 아는 것을 근거로 해서 점점 정묘한 것을 더하여 정묘한 것은 더 정묘하게 하고 구비한 것은 더 구비하게 한다면, 그 구비함을 다하게 되고 그 정세함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찌 어둡고 어지럽고 빠지고 넘어지는 걱정이 있겠는가?

 

[] 귀머거리는 우레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장님은 해와 달의 빛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귀머거리와 장님의 병이지, 우레와 해와 달은 그냥 그대로인 것이다. 우레는 천지에 굴러다녀 진동하고 해와 달은 고금에 비추어 밝을 뿐, 언제나 귀머거리와 장님 때문에 소리와 빛이 흐려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때에 와서 정자주자14) 두 선생이 나와 곧 해와 달의 거울을 갈고 우레의 북을 두드리니 소리는 먼 곳까지 미치게 되고 빛은 넓은 데까지 비쳐지게 되었다. 이에 다시 육경의 뜻이 찬연히 세상에 밝혀졌다. 전날의 편벽한 것이 이미 사람의 생각을 고착시키고 뜻을 정체15)시킬 수 없으며, 그 비슷한 것도 다른 이름을 빌릴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간사하고 둔갑스러운 선동과 유혹이 드디어 끊어지고 평탄한 표준이 뚜렷해졌다.

 

[] 이렇게 된 이유를 따져보면 또한 말단적인 것을 토대로 하여 근본적인 것을 탐구하고 흐름을 따라 근원을 거슬러 감으로써 얻은 것이었다. 이는 자사16)가 말한 취지에 참으로 깊이 합하고 묘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그러나 경서(經書)에서 한 말이 그 계통은 비록 하나이지만, 그 실마리는 천 갈래 만 갈래이다. 이것이 이른바 하나의 목표에 생각은 백이나 되고, 귀착점은 같은데 길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뛰어난 지식과 깊은 조예로써도 오히려 그 취지를 다 터득하여 미세한 부분까지 잃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많은 장점을 널리 모으고 작은 선()도 버리지 아니하여야만, 거칠고 소략한 것도 빠뜨리지 않고 얕고 가까운 것도 누락시키지 아니하여, 깊고 멀고 정세하고 완비된 체제가 비로소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 이 때문에 참람17)한 짓임을 잊고 좁은 소견으로 얻은 바를 대강 기술하여 이를 모아 책을 이룩하고, 그 이름을 <사변록(思辨錄)>이라 하였다. 혹시 선유18)들이 세상을 인도하고 백성을 도와주는 뜻에 티끌만한 도움이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이는 다른 이론을 내세우기를 좋아하여 하나의 학설을 수립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경솔하고 망령되게도 소략하고 짧은 것을 헤아리지 못한 죄는 회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뒷날에 이 글을 보는 이가 혹시 그 뜻이 다른 데 있지 않음을 살펴서 특별히 용서한다면 이 또한 다행인 줄 안다.

 

박세당, <사변록(思辨錄)> 중에서


각 단락의 소주제문

 

[] : 육경은 정밀한 조리와 완비된 뜻, 깊은 내용, 심원한 취지를 갖고 있어 도량이 얕은 자는 결코 그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 : 이같은 탓에 육경의 대체(大體)가 파괴되고 왜곡되어 왔으니 이는 육경이 만들어진 뜻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 : 얕은 것, 소략한 것, 거친 것에서부터 깊은 것, 구비한 것, 정밀한 것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올바른 학문 탐구의 자세이다.

[] : 오늘날 육경을 연구하는 이들은 얕은 것, 소략한 것, 거친 것을 건너뜀으로써 육경의 올바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 : 얕은 것은 쉽게 익힐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하여 깊은 것까지 깨달을 수 있다.

[] : 정자와 주자는 육경을 쉽게 익히는 법을 연구함으로써 분명한 기준을 마련했다.

[] : 얕은 것을 토대로 깊이 있는 학문을 탐구하고 작은 것을 모두 수렴해야만 완비된 체제가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

[] : 이같은 생각들을 기록하여 사변록을 지으니 후세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글에 대하여

사변록(思辨錄)은 조선 시대의 학자인 박세당(朴世堂 16291703)에 의해 지어졌다. 그는 사변록을 저술하여 주자학(朱子學)의 관념론적 학풍을 비판하고 귀납적 방법론을 강조한 독자적 견해를 발표했다. 이로 인해 반주자(反朱子)의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하여 관직을 박탈당하고 유배 도중 옥과(玉果)에서 죽었다. 우리가 학문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동서의 고전을 널리 읽어야 한다. 이 글은 학문 추구를 위한 성현의 글을 올바로 이해할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 밝히고 있다. 글쓴이에 따르면 성현이 지은 육경은 조리가 정밀하고 뜻이 완비되고, 내용이 깊고 취지가 심원하여,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후대의 학자들은 육경의 뜻을 훼손하고 대체를 파괴하여 수많은 이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모두 아무리 어려운 글이라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한 데서 나온 것이다. 학문 추구를 위한 성현의 글읽기에 대해 밝히면서, 동시에 당시의 잘못된 학문 추구의 태도에 대하여 반성적인 문제 의식을 던지고 있다.

 

어휘풀이

 

1) 육경(六經) 공자가 편찬 또는 저술한 유가(儒家)의 대표적 경서 시()()()()()춘추(春秋)

2) 심원(深遠) 생각이나 사상뜻 따위가 매우 깊음

3) 세간(世間)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세상. 불교에서, 중생이 서로 의탁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이르는 말

4) 변통(變通)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융통성있게 일을 처리함

5) 유자(儒者) 유도(儒道)를 닦는 선비

6) 대체(大體) 사물의 전체에서 요점만 딴 줄거리

7) 이단(異端) 유교 이외의 도()()법가(法家) 및 불교(佛敎) 등을 가리킨다. 8) 전적(典籍) 서적(書籍)

9) () 본디 전()은 성인이 쓴 경()을 현인이 해석한 글을 말한다. 이 말은 <중용(中庸)>에 보인다.

10) 소략(疏略) 꼼꼼하지 못하고 엉성함

11) 구비(具備) 빠짐없이 갖춤. 두루 갖춤

12) 정세(精細) 자세하고 빈틈이 없음. 정밀하고 상세함.

13) 미혹(迷惑) 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림

14) 정자(程子)주자(朱子) 송나라 시대 성리학을 완성시킨 학자들

15) 정체(停滯) 사물의 흐름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 곳에 머물러 막힘

16) 자사(子思) 노나라의 유학자. 공자의 손자로 <중용(中庸)>을 지었음

17) 참람(僭濫) 분수에 맞지 아니하게 지나친 데가 있음

18) 선유(先儒) 선대의 유학자

 

생각해보기

 

1. ()귀머거리’, ‘장님우레 소리’, ‘해와 달의 비유적 의미를 쓰라.

2. 이 글에서 지은이가 밝힌 육경 연구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 그렇구나

 

주장과 논거

이 글의 논의의 출발이 되고 있는 전제는 현재의 육경 연구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왜 현재의 육경 연구가 이처럼 올바르게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고 있다. , 기초부터 차근차근 연구하는 자세가 부족한 까닭에 육경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학문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기초에서부터 확실하게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종합적인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 글에서 눈에 띄는 논리적인 문제점은 전제에 대한 논리적 검증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데 있다. ‘현재의 육경 연구가 올바르지 않다는 필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입증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필자의 주관적인 단정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제 자체의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은 글은 논지의 설득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기초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부분은 상세하고 쉽게 설명되어 있어 필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구성

7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글을 굳이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분한다면 ()()를 서론으로, ()~()를 본론으로 그리고 ()를 결론으로 나눌 수 있다. 서론에서는 육경 이해의 어려움과 현재의 육경 연구의 문제점을, 본론에서는 현재의 육경 연구가 왜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원인()~(), 그리고 이를 토대로 기초의 완벽한 이해가 깊이 있는 학문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는 필자의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결론에는 필자가 사변록을 쓰게 된 계기가 나타나 있다.

 

표현

이 글은 사변록의 서문이다. 일반적으로 서문은 그 글(또는 책)을 쓰게 된 이유나 글의 전체적인 내용 등을 간략하게 밝혀, 독자로 하여금 그 글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쓰여진다. 따라서 서문은 깊고 어려운 내용보다는 쉽게 풀이된 내용이 제시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 글도 마찬가지여서, 사변록을 쓰게 된 이유를 쉽게 풀어 쓰고 있다. ‘귀머거리, 장님우레소리’, ‘해와 달등의 비유적 표현을 통해()글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는 것도 특색이다.

 

생각해보기

1. 지시적 의미 : 신체적인 장애를 지닌 사람 비유적 의미 : 육경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편협되고 왜곡된 학문 추구의 자세를 지닌 사람.

지시적 의미 : 자연의 현상 비유적 의미 : 육경의 본뜻, 성현의 말씀

2. 가깝고 얕은 곳, 쉬운 것에서 출발하여 깊이 연구함으로써 육경의 뜻을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함.

 

-도서출판 늘 푸름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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