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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12곡 - 이런 달 어떠하며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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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들 어떠하며 - 도산 12곡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 산들(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안개와 노을의 멋진 자연 풍치로 집을 삼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벗으로 삼아서

어진 임금을 만난 좋은 시대에 (하는 일 없이 그저) 노병(老病)으로만 늙어가는구나.

이 중에 바라는 일은 사람의 허물이나 없었으면.

예로부터 내려오던 순박한 풍속이 다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말이로다.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어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없어졌다는 말로써) 이 세상의 수많은 영재들에게 이렇게 확실한 것을 어찌 속일 수가 있겠느냐.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피었으니자연의 그 냄새를 맡기가 좋구나.(또는 향기를 맡기 좋구나.)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의 경치가 보기 좋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 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산 앞에는 대(臺 : 낚시터)가 있고, 대 밑으로는 물이 흐르는구나.

떼지어 나는 갈매기들은 오락가락 하는데,

어찌하여 희고 깨끗한 말(어진 사람)은 멀리 뛰어갈 생각을 하는 것일까?(이 좋은 곳을 떠날 생각만 하는가?)

봄바람이 부니 꽃은 산에 가득 피어 있고, 가을밤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하니,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가 사람과 마찬가지로다.

더구나 고기는 물에서 뛰놀고, 소리개는 하늘을 날으니 흘러가는 구름은 그늘을 짓고, 밝은 태양이 빛나는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천운대를 돌아서 들어가니, 완락재가 산뜻하고 깨끗하게 서 있는데,

거기에서 많은 책에 묻혀 사는 즐거움이 무궁무진하구나.

이렇게 지내면서 때때로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새삼 말해서 무엇하리?

우레 소리가 산을 깨뜨릴 듯이 심하더라도 귀머거리는 듣지를 못하며,

밝은 해가 떠서 대낮같이 되어도 소경은 보지를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서, 귀머거리나 소경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옛 성현을 뵙지 못했지만 그 분들이 행했던 길은 가르침으로 남아 있네.

그 행하신 길이 앞에 있는데 아니 행하고 어찌할 것인가?

그 당시 학문 수양에 힘쓰던 길을 몇 해씩이나 내버려두고,

벼슬길을 헤매다가 이제야 돌아와 (예전에 걷던 그 길로) 돌아왔는가?

이제나마 돌아왔으니 이제는 딴 곳에 마음 두지 않으리라.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흐르는가.

(우리도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서) 저 물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어리석은 사람도 알고서 행하니 그것이 쉽지 아니한가?

성인도 다 행하지 못하니 그것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학문을 닦으며 늙는 줄을 모르도다.

 

(제1곡)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버리고는 살수 없는 마음을 고쳐 무엇하랴?(자연에 살고 싶은 마음)

 

(제2곡)

안개와 놀을 집으로 삼고 풍월을 친구로 삼아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가지만

이 중에 바라는 일은 사람의 허물이나 없었으면.

 

(제3곡)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풍습이 줄어 없어지고 사람의 성품이 악하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거짓이다.

인간의 성품은 본디부터 어질다고 하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착한 성품으로 순수한 풍습을 이룰 수 있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많은 슬기로운 사람(영재)을 속여서 말할 수 있을까?

 

(제4곡)

그윽한 난초가 골짜기에 피어 있으니 듣기 좋아

흰눈이 산에 가득하니 자연이 보기 좋아

이 중에 저 아름다운 한 사람을 더욱 잊지 못하네.

 

(제5곡)

산 앞에 높은 대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흐르는구나.

떼를 지어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거든

어찌하여 희고 깨끗한 말은 나로부터 멀리에 마음을 두는고.

 

(제6곡)

봄바람이 부니 산에 꽃이 만발하고 가을 밤에는 달빛이 대에 가득하다.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가 사람과 마찬가지로다.

하물며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날며 구름이 그늘을 짓고 태양이 빛나는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제7곡)

천운대를 돌아 들어간 곳에 있는 완락재는 깨끗한 곳이니,

거기에서 많은 책에 묻혀 사는 즐거움이 무궁하구나.

이런 가운데 이따금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제8곡)

우레 소리가 산을 깨뜨릴 듯이 심하게 울어도 귀머거리는 못 듣네.

밝은 해가 하늘 높이 올라도 눈 먼 사람은 보지 못하네.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야 하리.

 

(제9곡)

옛 어른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 분들을 보지 못하네.

하지만 그 분들이 행하던 길은 지금도 가르침으로 남아 있네.

이렇듯 올바른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따르지 않고 어쩌겠는가?

 

(제10곡)

그 당시 학문 수양에 힘쓰던 길을 몇 해씩이나 버려 두고

벼슬길을 헤매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이제 돌아왔으니 다시는 딴 마음을 먹지 않으리.

 

(제11곡)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저 물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제12곡)

어리석은 자도 알아서 행하니 학문의 길이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성인도 다하지 못하는 법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는 줄을 모르겠다.

요점 정리

작자 : 이황

연대 : 명종20년

종류 : 연시조

성격 : 교훈적, 관조적, 회고적, 예찬적

표현 : 반복법, 설의법, 대구법, 연쇄법 등

명칭 : 도산십이곡

구성 : 총12수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눔.

전반부

言志

언지로 자신이 세운 도산 서원 주변의 경관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읊음

1연 : 아름다운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리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노래

2연 :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살며 태평성대 속에 병으로 늙어 가는 작자의 모습을 노래

3연 : 순자의 성악설을 반대하고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 세상의 많은 영재들에게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강조

4연 : 벼슬자리를 떠나 자연을 벗하며 살아 도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노래

5연 : 자연을 멀리하는 현실 개탄

6연 :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의 모습을 노래

후반부

言學

언학으로 학문 수양에 임하는 심경을 노래

1연 : 독서 면학(勉學)의 즐거움과 그 여가에 산책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노래

2연 : 인간으로서 진리 터득의 중요성을 노래

3연 : 옛 성현들의 인륜지도(人倫之道)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우리도 그 길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고 노래

4연 : 젊을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가 수양의 정도(正道)를 버리고 벼슬을 지낸 자신을 후회하면서, 이제 깨달음을 가졌으니 늦지 않게 학문 수양에 힘쓰리라는 다짐에 노래

5연 : 청산과 유수라는 자연의 영원 불변성을 소재로 하여, 그러한 자연을 닮아 변치 않는 지조 인품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교훈적인 의미를 노래

6연 : 영원한 학문 수양의 길을 강조

주제 : 자연 속에 묻혀 살고 싶은 소망과 학문의 길에 대한 변함 없는 의지

의의 : 한자어가 많아 생경한 감을 주지만, 강호가도의 대표적인 작품이고, 성리학의 대가가 시조를 즐겨 지었다는 것은 시조의 출발과 발전이 유가에 의해 이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기 : 작자는 창작 동기가 '우리 나라의 시가는 음란하여 말할 것이 못된다. 문인들이 즐겨 부르는 '한림별곡' 역시 방탕하고 상스럽다. 근래에는 이별의 '육가'가 돌아다니나 좋지 못하여 안타깝다. 나는 음률을 잘 모르나 여가가 있으면 시를 짓는데 백성들이 부르게 하기 위하여 도산곡을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자의 '무이점사'를 본떠 지었다고도 한다.

특징 : 학문에 대한 의지와 생경한 한자어가 많이 들어감

기타 : 아류작으로 광해군 때 장경세의 '강호연군가'12수가 있고,

내용 연구

 

(제1곡)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어떠하랴?(작자가 자신을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낮춰 나타내면서 그런 처지의 자신이 이렇게 산들 어떻겠느냐고 묻은 이 설의적 표현은, 안분지족의 자세를 나타낸 것이다.)

더구나 자연을 버리고는 살수 없는 마음(자연 속에 묻혀 살겠다고 말하는 이 부분은, 표면적으로는 체념적인 자세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은연중에 자랑하고 있는 표현이다. 천석고황은, 연하고질이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깊이 사랑하여 그 속에 살고자 하는 깊은 소망을 고질병에 비유하여 나타낸 것이다.)을 고쳐 무엇하랴? - 자연에 살고 싶은 마음

 

(제2곡)

안개와 놀을 집으로 삼고 풍월을 친구로 삼아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가지만

이 중에 바라는 일은 사람의 허물이나 없었으면. - 허물없는 삶의 추구

 

(제3곡)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풍습이 줄어 없어지고 사람의 성품이 악하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거짓이다.

인간의 성품은 본디부터 어질다고[성선설] 하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착한 성품으로 순수한 풍습을 이룰 수 있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많은 슬기로운 사람(영재)을 속여서 말할 수 있을까? -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

 

(제4곡)

그윽한 난초가 골짜기에 피어 있으니 듣기 좋아['후각'을 '청각'으로 전이시킨 공감각적 표현이다. 후각의 청각화로 난초의 향기를 듣기 좋다고 표현]

흰눈이 산에 가득하니 자연이 보기 좋아

이 중에 저 아름다운 미인 한 사람[임금]을 더욱 잊지 못하네.- 연군

 

(제5곡)

산 앞에 높은 대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흐르는구나.[대구 표현]

떼를 지어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거든[갈매기는 평화로운 자연을 상징]

어찌하여 (현인이나 성자가 타는 )희고 깨끗한 말[망아지 駒 / 갈매기 鷗가 아님 ]은[어진 사람] 나로부터 멀리에 마음을 두는고. - 자연을 등지고 있는 현실 개탄

 

(제6곡)

봄바람이 부니 산에 꽃이 만발하고 가을 밤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하다.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가 사람과 마찬가지로다.

하물며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날며[시경 대아 '한록편'에서 따온 말로 고기와 하늘을 나는 솔개처럼 뛰어난 인재들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구름이 그늘을 짓고 태양이 빛나는[만물이 천성을 얻어 조화를 이룬 상태]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 영원한 아름다운 자연

 

(제7곡)

천운대를 돌아 들어간 곳에 있는 완락재는 기운이 맑고 깨끗한 곳이니,

거기에서 많은 책에 묻혀 사는 즐거움일이 무궁하구나.[학문의 즐거움]

이런 가운데 오고가는 풍류[이따금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 학문하는 즐거움

 

(제8곡)

우레 소리가 산을 깨뜨릴 듯이 심하게 울어도 귀머거리[진리를 터득하지 못하고 인간의 도리를 망각한 어리석은 이들]는 못 듣네.

밝은 해가 하늘 높이 올라도 눈 먼 사람은 보지 못하네.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진리를 터득한 사람]가 되어야 하리. - 독서의 즐거움

 

(제9곡)

옛 어른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 분들을 보지 못하네.[대구법]

하지만 그 분들이 행하던 길[학문 수양의 길]은 지금도 가르침으로 남아 있네.

이렇듯 올바른 길[책을 통해 성현의 가르침을 본받을 수 있음]이 우리 앞에 있는데 따르지 않고 어쩌겠는가?(옛성현들이 가던 길, 즉 자기 수양과 학문 도야의 길이 앞에 있으니 그 길을 열심히 따라가겠다는 표현이다. 이는 퇴계 자신의 다짐인 동시에 그보다 더 후학들에 대한 충고와 훈계의 말이라 할 수 있겠다.) - 옛 어른의 행적을 따름 / 학문 수양에의 다짐

 

(제10곡)

그 당시 학문 수양에 힘쓰던 길을 몇 해씩이나 버려 두고(지난 날에 가던 길을 몇 해 동안이나 버려두었는가 하는 이 탄식 어린 표현은, 오랜 벼슬길을 물러나면서 느끼는 작가의 감회를 나타낸 것이다. 즉, '당시'라는 것은 벼슬길에 오르기 전, 자기 수양과 학문 도야에 힘쓰던 시절을 의미하며, 그 길을 버려 둔 '몃 하'나 되는 지 모를 긴 시간은 벼슬길에서 바쁘게 살아온 시절을 의미한다.)

벼슬길을 헤매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부분이 연상되며, 나중의 후학 정약용의 한시 타맥행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이제 돌아왔으니 다시는 딴 마음을 먹지 않으리(이황은 23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대제학까지 지낸 후 69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은퇴했고, 그 긴 시간을 벼슬 자리로 보내고 이제야 돌아왔으니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 벼슬길이든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수양과 학문 도야, 후학 양성에만 힘쓰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 벼슬을 버리고 학문에 정진함

 

(제11곡)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초장과 중장은 대구]

우리도 저 물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초장에서는 영원히 푸르름을 간직하는 청산을 예찬했고, 중장에서는 이와 대구를 이루어 밤낮 쉴 새 없이 흐르는 유수의 영원성을 예찬했다. 그리고 청산과 같이 변함없이 유수와 같이 그침없이 학문 수양에 힘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학문 수양의 의지

 

(제12곡)

어리석은 자도 알아서 행하니 학문의 길이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성인도 다하지 못하는 법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초장과 중장은 학문 완성의 어려움을 말함]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는 줄을 모르겠다. - 영원한 학문 수행의 길

 

초야우생(草野愚生) :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

천석고황(泉石膏 ) :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싶은 마음의 절실함. '泉石'은 자연을 이르고 '膏 '은 불치의 병을 이름, 강호지병, 연하고질(煙霞痼疾)과 동의어로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性癖)으로 지은이의 자연애를 말함.

연하(煙霞) : 안개와 놀

풍월 : 바람과 달

병 : 천석고황, 연하고질

늘거가뇌 : 늙어가네

허믈 : 잘못. 실수, 과실

순풍(淳風) :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

올흔 : 옳은

허다영재(許多英才) : 수많은 슬기로운 사람

소겨 : 속여

유란(幽蘭) : 그윽한 향기를 내는 난초. 난초의 별칭

재곡(在谷) : 골짜기에 있음

듣디 : 듣기. 맡기. 한문에서는 냄새 맡는 것을 '聞(들을 문)'자를 사용하는 데서 유래됨

듣디 됴희 : 냄새를 맡기가 좋구나.

보디 됴해 : 보기가 좋구나.

피미일인(彼美一人) : 저 한 사람의 고운 분. 여기서는 임금을 가리킴

산전 : 산 앞

유대(有臺)하고 : 높은 대(臺)가 있고

대하(臺下) : 대(臺) 아래

떼 만흔 : 무리지어 나는

오명가명 하거든 : 오락가락하는데

엇더타 : 어찌하여

교교백구(皎皎白駒) : 현인이나 성자가 타는 희고 깨끗한 망아지. '어진 사람'을 뜻함

멀리 마음 하는고 : 멀리 떠날 마음만 갖는가

화만산(花滿山) : 산에 꽃이 만발함

월만대(月滿臺)라 : 달이 대(臺)에 가득하다

사시가흥(四時佳興) :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

어약연비(魚躍鳶飛) :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날아다님

운영천광(雲影天光) : 구름이 그림자를 짓고 태양이 찬란히 빛남

천운대(天雲臺) : 높은 대(臺)의 이름

완락재(玩樂齋) : 서재의 이름

소쇄(瀟灑) : 산뜻하고 깨끗함

만권 생애(萬卷 生涯) : 많은 책에 묻혀 사는 삶

낙사(樂事)ㅣ : 즐거운 일이

왕래 풍류(往來 風流) : 때때로 바깥을 거니는 즐거움

뇌정(雷霆) : 우레 소리

파산(破山) : 산을 깨뜨림

농자(聾者) : 귀머거리

백일(白日) : 밝은 해

고자( 者) : 눈 먼 사람

농고(聾 ) : 귀머거리와 장님

고인(古人) : 옛 어른

녀던 길 : 행하던 길. 학문 수양에 힘쓰던 길

알  : 앞에

만고상청(萬古常靑) : 영원히 변함없이 푸름

우부(愚夫) : 어리석은 사람

쉽거나 어렵거나 : 쉬우나 어려우나

두 작품(강호사시가, 도산12곡)에서 공통으로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던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탐색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강호(江湖)'라는 것이 자연을 대유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본문의 학습 과정에서 미리 설명해 주어야 한다.

풀이 : 자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연시조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으로, 춘하추동 계절별로 한 수씩 모두 4수로 이루어졌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흥취와 함께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작품이다. 모두 12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 전 육곡의 ‘언지(言志)’와 후 육곡의 ‘언학(言學)’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즐거움과 함께 후학(後學)들에게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1. 본문에 수록된 '강호사시가'의 두 수에서 각각 읊고 있는 계절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강호사시가'의 형식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과서에 인용된 두 수가 모두 '강호에 ∼이 드니'로 시작하여 '역군은이샷다'로 끝난다는 점에 유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풀이 : 가을과 겨울

2. '도산십이곡'의 [언지 1]에 드러난 화자(話者)의 삶의 태도를 정리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에 형상화된 작가의 삶의 태도를 파악해 봄으로써 문학의 가치 지향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특히 '초야 우생', '천석 고황'이 의미하는 바를 중심으로 삶의 태도를 정리해 보도록 지도한다.

풀이 : 번잡한 속세의 명리(名利)를 떠나 자연을 벗삼아 사는 삶

도우미

- 초야 우생 :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

- 천석 고황 : 자연 속에 살고 싶은 절실한 마음

- 탐구 / 시조의 시대적 가치

시조는 고려 시대에 유교적 이념을 신봉하던 신흥 사대부들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유교적 가치관은 물론, 남녀간의 사랑, 자연의 아름다움, 소박한 생활의 여유와 멋 등의 다양한 가치관을 다룬 작품들이 지어짐으로써 양반과 평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학 갈래로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 시조의 내용과 형식의 시대별 변천

시대

작가계층

내용

형식

고려시대

신흥사대부

유교적 이념

평시조

조선전기

양반사대부

유교적 이념, 강호한정

평시조

조선후기,

평민, 여류

남녀간의 사랑, 소박 생활의 여유와 멋

엇시조, 사설시조

현대

다양함

다양한 주제의식

다양한 형식

지도 방법 : 물론 무수히 많은 시조들을 항목화하여 개괄적으로 소개한다는 것 자체에 무리가 따르기는 하지만 반드시 각 시대별로 시조의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이러한 개략적 고찰은 시조가 비록 짧은 형식의 노래이지만, 우리 민족의 가치관을 담아 내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사랑받아 온 갈래였다는 점을 확인해 보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강호사시가'와 '도산십이곡'이 조선 전기 양반 사대부들의 가치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점도 확인해 보도록 유도한다.

3. '강호사시가'에 드러난 유교적 가치관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에 형상화된 가치관을 파악함으로써 문학의 가치 지향적 성격을 확인해 보는 활동이다. '삿갓'과 '누역'으로 표현된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지도하고, '역군은(亦君恩)'에 담겨 있는 가치관에 주목해 보도록 유도한다.

풀이 : 안빈낙도, 군신(君臣)간의 의리

4. '도산십이곡'의 [언학 3]에서 오늘날에도 본받을 만한 가치로 어떤 것이 표현되어 있는지 찾아보자.

지도 방법 : 역시 앞의 활동과 같이 작품 속에 형상화된 가치관을 확인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언학 3'에서 화자는 '고인(古人)이 녀던 길'을 걷고자 한다. 여기서 '고인이 녀던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도록 지도한다.

풀이 : 학문에 정진하려는 자세

이해와 감상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의

제1곡은 서곡(序曲)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세상의 명리(名利)를 떠나 자연에 묻혀 한가로이 사는 생활을 그린 것이다. 이미 세속사(名利)를 떠나 자연에 묻혔으니, 아무렇게나 산들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草野愚生(초야우생)'은 자연에 묻혀 사는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고 '泉石膏황(천석 고황)'은 자연을 사랑하는 자신의 병은 이미 고칠 수 없음을 강조하여 지극한 자연애(自然愛)의 사상을 나타내었다.

제2곡에서는 자연 속에 묻혀 늙어가는 도학자의 자세를 그리고 있고,

제3곡에서는 미풍 양속이 사라졌다고 탄식하거나,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순박한 풍습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성선설의 입장을 주장한다.

제4곡에서는 자연에 몰입해 있으면서도 완전히 자연에 귀의하지 못하고, 나라에 대한 걱정과 임금님을 생각하는 연군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벼슬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늘 연군(戀君)의 정이 떠나지 않음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에 몰입하면서도 완전한 자연 귀의(自然歸意)를 이루지 못하는 유학자적인 충의 사상(忠義思想)을 엿볼 수 있다. 초장의 '듯디 죠희'는 한시(漢詩)의 표현법을 빌어 온 것으로 우리 시의 기법(技法)으로 본다면 '후각'을 '청각'으로 전이(轉移)시킨 일종의 공감각적(共感覺的) 표현이라 할 만하다. 한시에서는 '향기를 맡는다'를 흔히 '聞香(문향)'이라고 표현한다. 蘭生空谷 其香遠聞(난생공곡 기향원문; 난초가 빈골에 자라니, 멀리서도 그 향기를 맡는다.)

제5곡에서는 자연에 귀의하지 못하고 달아날 생각만 하는 자신을 안타까워한다.

제6곡에서는 사계절의 변화를 사람에 견주어서, 계절의 순환도 마치 사람의 흥취와 같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 현상도 끝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제7곡에서는 자연을 산책하며 느끼는 흥겨움과 학문 수양의 즐거움을 밝힌다.

제8곡에서는 미세한 사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변화하는 자연 현상에 눈을 떠서, 일취 월장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제9곡에서는 예 성현과의 교감을 오직 서적 탐독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고, 그 길은 학문에의 정진으로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제10곡에서는 젊었을 때 뜻을 세우고 힘쓰던 학문과 수양의 길을 저버리고 벼슬길에 올랐던 자신을 탓하면 이제라도 학문 수양에 전념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내용이다. 퇴계(退溪)는 23세에 태학(太學)에 들어가 진사로 출발하여 대제학(大提學)까지 지내고, 귀향(歸鄕)한 것은 69세 때였다. 젊었을 때 품었던 학문에 대한 뜻을 소홀히 하고 벼슬길에 올랐다가 이제서야 돌아오게 됨을 안타까워하면서 스스로 학문에 전념할 것을 다짐한다.

제11곡에서는 변함없는 의지와 학문 수행으로 덕을 닦으려는 결의가 나타나 있다.'萬古常靑'하겠다는 의지와 결의를 보인 내용으로, 청산(靑山)은 만고(萬古)에 푸르러 영원하며, 유수(流水)도 주야로 그치지 않아 영원한데, 우리 인간은 왜 순간자(瞬間者)에 지나지 않은가? 우리도 저 청산같이 저 유수같이 언제나 푸르러 그치지 않겠다고 노래했고, 만고상청(萬古常淸)이란 끊임없는 학문 수양으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 사는 것이요, 옛 성현과 같이 후세에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것이다.

 

제12곡에서는 도산십이곡의 결사(結詞)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끝없는 학문의 길만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임을 알고, 학자다운 태도로 연구 활동에 깊게 몰입하는 자세를 보여 준다. 즉, 지은이의 학문에 대한 자세를 보인 내용이다. '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는 학문은 뜻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고자 하는 것이요,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 동시에 '聖人도 못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온가?'는 그러나, 그 세계는 아직 아무도 다하지 못한 무한히 심오한 것임을 말하고, 쉽거나 어렵거나 간에 학문을 닦는 이 길만이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길임을 암시하고 있다. 학문은 결코 다른 것 즉 명리(名利)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자세를 밝힌 글이다.

이해와 감상1

작자가 향리(鄕里) 안동(安東)에 물러가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며 자신의 심경을 읊은 12수의 연시조. 전 6곡은 '언지(言志)' 후 6곡은 '언학(言學)'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이 작품은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와 짝을 이루는데, 이이(李珥) 역시 뛰어난 성리학자였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노래는 지은이가 명종 20년에 도산서원에서 후진을 가르치던 때에, 지은이의 뜻을 말한 언지(言志-때를 만나고 사물에 접하여 일어나는 심정과 감흥을 읊음) 전 6곡과, 학문과 수련의 실제를 시화(詩化)한 언학(言學) 후 6곡 등 12수로 된 연시조이다.

인간 속세를 떠나 자연에 흠뻑 취해 사는 자연 귀의 생활과 후진 양성을 위한 강학(講學)과 사색에 침잠(沈潛)하는 학문 생활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 작품의 끝에 붙인 발문(跋文)에 지은이 자신이 이 노래를 짓게 된 연유와 우리 나라 가요를 평하는 말 가운데, 그의 문학관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 가곡이 무릇 음란한 노래가 많아서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되며 이별(李鼈)이 '육가(六歌)'를 본떠 이 노래를 짓는다고 밝히고 있고, 또한 이를 아이들로 하여금 익혀 부르게 하여 나쁜 마음을 씻어 버리고 서로 마음이 통하게 하고자 한다는, 퇴계의 문학관을 밝히고 있다.

'도산육곡(陶山六曲)', '도산전후육곡(陶山前後六曲)'이라고도 부른다.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조선 명종(明宗) 때 이황(李滉)이 지은 연시조(連時調)로서, 작자가 만년에 안동(安東)에 도산 서원을 세우고 학문에 열중하면서 사물을 대할 때 일어나는 감흥과 수양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모두 12곡으로 이루어졌으며, 작자 자신이 전6곡(前六曲)을 언지(言志), 후6곡(後六曲)을 언학(言學)이라 하였다. 전6곡은 자연에 동화된 생활을 하면서 사물에 접하는 감흥을 노래한 것이고, 후6곡은 학문 수양에 임하는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중국 문학을 차용한 것이 많고, 생경한 한자어가 너무 많이 사용되어 문학적으로 볼 때에는 높이 평가할 수 없으나, 인간 속세를 떠나 자연에 흠뻑 취해 사는 자연 귀의(歸依) 생활과 후진 양성을 위한 강학(講學)과 사색에 침잠(沈潛)하는 학문 생활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해 놓은 점이 훌륭하다. 이 작품의 끝에 붙인 발문(跋文)에 작자 자신이 이 노래를 짓게 된 연유와 우리나라 가요를 평한 말 가운데, 그의 문학관이 잘 나타나 있다. 성리학의 대가의 작품이라는 데서 시조의 출발이 유가(儒家)의 손에 있었고 그 성장 발전 역시 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작품이다.(김윤식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도산십이곡(陶山十理曲)'에 대한 작가 자신의 평(評)

 

지금의 시가 옛적의 시와는 달라서 음영하기에는 좋아도 놀로 부르기에 적합하지 못하여, 이를 노래로 부르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우리말로써 지어야 되니, 이는 아무래도 이 나라 백성들이 부를 음절이므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바다. 그러므로 일찍이 대충 이가(李歌, 이별육가(李鼈六歌))를 본으로 삼고 도산육곡을 만든 것이 둘이니 그 첫째는 (언지(言志 : 立志를 말함)이요, 그 둘째는 (언학(言學 : )이다. 이것을 아이들로 하여금 아침저녁으로 익혀 부르게 하며 의자에 기대어 듣고자 하여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하며 이에 맞추어 춤추게 하려 함이다.

도산십이곡 발(陶山十二曲跋)

이 '도산십이곡'은 도산 노인(陶山老人)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 시조를 지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가곡은 대체로 음와(淫 )하여 족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저 '한림별곡' 과 같은 류는 문인의 구기(口氣)에서 나왔지만 긍호(矜豪)와 방탕에다 설만(褻慢)과 희압(戱狎)을 겸하여 더욱이 군자로서 숭상할 바 못 되고, 다만 근세에 이별(李鼈)이 지은 '육가(六歌)'란 것이 있어서 세상에 많이들 전한다. 오히려 저것[육가]이 이것[한림별곡]보다 나을 듯하나, 역시 그 중에는 완세 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 돈후(溫柔敦厚)의 실(實)이 적은 것이 애석한 일이다.

노인이 본디 음률을 잘 모르기는 하나, 오히려 세속적인 음악을 듣기에는 싫어하였으므로, 한가한 곳에서 병을 수양하는 나머지에 무릇 느낀 바 있으면 문득 시로써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시는 옛날의 시와는 달라서 읊을 수 있겠으나, 노래하기에는 어렵게 되었다. 이제 만일에 노래를 부른다면 반드시 이속(俚俗)의 말로써 지어야 할 것이니, 이는 대체로 우리 국속(國俗)의 음절이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일찍이 이별의 노래를 대략 모방하여 '도산 육곡'을 지은 것이 둘이니, 기 일(其一)에는 '지(志)'를 말하였고, 기 이(其二)에는 '학(學)'을 말하였다. 아이들로 하여금 조석(朝夕)으로 이를 연습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궤( )를 비겨 듣기도 하려니와,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한편 스스로 무도(舞蹈)를 한다면 거의 비린(鄙吝)을 씻고 감발(感發)하고 융통(融通)할 바 있어서, 가자(歌者)와 청자(聽者)가 서로 자익(資益)이 없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컨대, 나의 종적이 약간 이 세속과 맞지 않는 점이 있으므로 만일 이러한 한사(閑事)로 인하여 요단(鬧端)을 일으킬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또 이것이 능히 강조(腔調)와 음절에 알맞을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일 건(一件)을 써서 서협(書 ) 속에 간직하였다가, 때때로 내어 완상(琓賞)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또 다른 날 이를 읽는 자의 거취(去取)의 여하(如何)를 기다리기로 한다.

가정(嘉靖) 44년(1565) 을축년 3월 16일 도산 노인은 쓴다.(이가원 옮김)

강호가도

 

시가문학에서는 자연을 예찬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생활하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사대부들이 창작하였다.

이러한 특징적인 현상을 조윤제(趙潤濟)는 강호가도로 규정하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삶의 방식에서 그 형성 원인을 찾았다. 사화와 당쟁의 와중에서 벼슬길로 나서 자칫 거기에 휩쓸려 일신과 가문을 위기로 몰고 가기보다는 고향의 자연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들에게는 사유지가 이미 확보되어 있었고, 향리에서도 토지나 명망을 기초로 한 독점적 지위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을 예찬하는 강호가도의 구현은 도학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문학관 ·세계관과도 합치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영남출신의 문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현보(李賢輔)를 꼽을 수 있다. 이현보는 영남사림으로서는 비교적 일찍 환로에 나서서 경상감사 ·형조참판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줄곧 자연으로 귀의할 것을 꿈꾸다가 마침내 귀향하여 그 기쁨을 《농암가(聾巖歌)》와 같은 시조로 노래하였다.

그 후 이황(李滉)이 여러 편의 시조를 통하여 이현보가 표명한 자연에의 귀의를 이어갔고, 나아가 도학적인 이념과 교화 의도까지 노래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권호문(權好文)을 비롯한 퇴계 문하의 제자들에게 이어져 영남가단을 형성하였다. 그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벼슬을 사직한 치사한객(致仕閑客)이 그 유유자적한 심정을 자연에 담아 노래한 작품들도 강호가도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가 대표적인데, 이 작품은 강호자연마저도 군주의 통치가 행해지는 공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와의 단절이 아닌 화합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현보의 《농암가》와는 차이가 있다.(출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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