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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십이곡발(陶山十二曲跋)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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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십이곡발(陶山十二曲跋)

이 '도산십이곡'은 도산 노인(陶山老人)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 시조를 지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가곡은 대체로 음와(淫蛙)하여 족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저 '한림별곡'과 같은 류는 문인의 구기(口氣)에서 나왔지만 긍호(矜豪)와 방탕에다 설만(褻慢)과 희압(戱狎)을 겸하여 더욱이 군자로서 숭상할 바 못 되고, 다만 근세에 이별(李瞥)이 지은 '육가(六歌)'란 것이 있어서 세상에 많이들 전(傳)한다. 오히려 저것[육가]이 이것[한림별곡]보다 나을 듯하나, 역시 그 중에는 완세 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 돈후(溫柔敦厚)의 실(實)이 적은 것이 애석한 일이다.

노인이 본디 음률을 잘 모르기는 하나, 오히려 세속적인 음악을 듣기에는 싫어하였으므로, 한가한 곳에서 병을 수양하는 나머지에 무릇 느낀 바 있으면 문득 시로써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시는 옛날의 시와는 달라서 읊을 수는 있겠으나, 노래하기에는 어렵게 되었다. 이제 만일에 노래를 부른다면 반드시 이속(俚俗)의 말로써 지어야 할 것이니, 이는 대체로 우리 국속(國俗)의 음절이 그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일찍이 이별의 노래를 대략 모방하여 '도산육곡'을 지은 것이 둘이니, 기일(其日)에는 '지(志)'를 말하였고, '기이(其二)'에는 '학(學)'을 말하였다. 아이들로 하여금 조석(朝夕)으로 이를 연습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궤를 비겨 듣기도 하려니와,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한편 스스로 무도(舞蹈)를 한다면 거의 비린(鄙吝)을 씻고 감발(感發)하고 융통(融通)할 바 있어서, 가자(歌者)와 청자(廳者)가 서로 자익(資益)이 없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컨데, 나의 종적이 약간 이 세속과 맞지 않는 점이 있으므로 만일 이러한 한사(閑事)로 인하여 요단(鬧端)을 일으킬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또 이것이 능히 강조(腔調)와 음절에 알맞을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일 건(一件)을 써서 서협(書莢) 속에 간직하였다가, 때때로 내어 완상(玩賞)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또 다른 날 이를 읽는 자의 거취(去取)의 여하(如何)를 기다리기도 한다.

'도산십이곡'을 읽는 자의 거취의 여하를 기다리기로 함

요점 정리

작자 : 이황(李滉;1501∼1570) / 이가원 옮김

연대 : 선조(1565) 때

갈래 : 비평

성격 : 객관적,

특징 : 객관적인 입장, 간접 서술적 표현, 문학에 대한 효용론적 관점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도산십이곡을 지은 이유

도산십이곡이 국문인 까닭

도산십이곡의 내용과 가치

도산십이곡을 지은 감회

제재 : 도산십이곡

주제 : '도산십이곡'과 같은 우리말 노래를 지은 이유, '도산 십이곡'에 대한 자신의 의의와 감회

출전 :<퇴계집(退溪集)>

도산십이곡 내용과 구성

전반부

言志

언지로 자신이 세운 도산 서원 주변의 경관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읊음

1연 : 아름다운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리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노래

2연 :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살며 태평성대 속에 병으로 늙어 가는 작자의 모습을 노래

3연 : 순자의 성악설을 반대하고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 세상의 많은 영재들에게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강조

4연 : 벼슬자리를 떠나 자연을 벗하며 살아 도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노래

5연 : 자연을 멀리하는 현실 개탄

6연 :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의 모습을 노래

후반부

言學

언학으로 학문 수양에 임하는 심경을 노래

1연 : 독서 면학(勉學)의 즐거움과 그 여가에 산책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노래

2연 : 인간으로서 진리 터득의 중요성을 노래

3연 : 옛 성현들의 인륜지도(人倫之道)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우리도 그 길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고 노래

4연 : 젊을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가 수양의 정도(正道)를 버리고 벼슬을 지낸 자신을 후회하면서, 이제 깨달음을 가졌으니 늦지 않게 학문 수양에 힘쓰리라는 다짐에 노래

5연 : 청산과 유수라는 자연의 영원 불변성을 소재로 하여, 그러한 자연을 닮아 변치 않는 지조 인품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교훈적인 의미를 노래

6연 : 영원한 학문 수양의 길을 강조

 

 

 

내용 연구

 

이 '도산십이곡'은 도산 노인(陶山老人 : 이황, 작가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한 방편임.)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 시조를 지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가곡(시가 등을 가사로 한 성악곡)은 대체로 음와(淫蛙 : 음란함.)하여 족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저 '한림별곡'과 같은 류는 문인의 구기(口氣 : 말씨)에서 나왔지만 긍호(矜豪 : 교만하고 호탕함)와 방탕에다 설만(褻慢 : 무례하고 방자함)과 희압(戱狎 : 희롱하고 업신여김)을 겸하여 더욱이 군자로서 숭상할 바 못 되고[긍호(矜豪)와 방탕에다∼숭상할 바 못 되고 : (한림별곡과 같은 것은) 교만한 허세와 정신의 방탕함과 진지하지 못하고 장난치듯이 하는 점이 겹쳐 나타나므로 학문을 닦는 군자로서는 숭상할 것이 못되고.], 다만 근세에 이별(李瞥 : 박팽년의 외손. 그의 형 원이 무오사화 이후 김종직의 신원운동을 벌이다 귀양 가자 황해도 평산 옥계산에 은거했다함 )이 지은 '육가(六歌 :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세상을 떠나 은거(隱 居)하는 선비의 입장에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질타하는 풍자적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란 것이 있어서 세상에 많이들 전(傳)한다. 오히려 저것[육가]이 이것[한림별곡]보다 나을 듯하나, 역시 그 중에는 완세 불공(玩世不恭 :세상을 희롱하며 공손하지 못함)의 뜻이 있고 온유 돈후(溫柔敦厚 : 온화하고 유순하며 두터움. 마음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를 일컫는 말)의 실(實)이 적은 것이 애석한 일이다[완세 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애석한 일이다. : (이별의 '육가' 중에는) 세상을 경시하여 공손하지 못함이 들어 있으며, 따뜻하고 부드럽고 두터운 마음을 나타내는 내용이 적은 것이 아깝도다.]. -'한림별곡'이나 이별의 '육가'는 온유돈후의 실이 적음

노인이 본디 음률(아악의 오음(五音)과 육률(六律). 음악)을 잘 모르기는 하나, 오히려 세속적인 음악을 듣기에는 싫어하였으므로, 한가한 곳에서 병을 수양하는 나머지에 무릇 느낀 바 있으면 문득 시로써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시는 옛날의 시와는 달라서 읊을 수는 있겠으나, 노래하기에는 어렵게 되었다. 이제 만일에 노래를 부른다면 반드시 이속(俚俗 :상스럽고 속됨. 따라서, ‘이속의 말’이란 국어, 한글을 지칭한 것이다.)의 말로써 지어야 할 것이니, 이는 대체로 우리 국속(國俗 :우리 나라의 습속. 곧 우리 국어를 말함)의 음절이 그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한시는 노래 부를 수 없으므로, 노래로 부르기 위해서는 우리말로 지어야 함

그러기에 내가 일찍이 이별의 노래를 대략 모방하여 '도산육곡'을 지은 것이 둘이니(도산 육곡은 전체 12수인데, 전 육곡과 후 육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일(其日)에는 '지(志)'를 말하였고, '기이(其二)'에는 '학(學)'을 말하였다(처음에는 '뜻'대해서 말했고, 두 번째는 '학문'에 대해서 말했다.). 아이들로 하여금 조석(朝夕 : 아침 저녁, 평소)으로 이를 연습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궤(궤짝. 책상.)를 비겨(기대어) 듣기도 하려니와,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한편 스스로 무도(舞蹈 :춤을 춤)를 한다면 거의 비린(鄙吝 : 비루하고 인색함)을 씻고 감발(感發 : 감동하여 분발함)하고 융통(融通 : 지체없이 통용함)할 바 있어서, 가자(歌者)와 청자(廳者)가 서로 자익(資益 : 자양분과 이익)이 없지 않을 것이다.[또한 아이들로 하여금∼자익이 없지 않을 것이다. : 아이들로 하여금 이 도산십이곡을 스스로 부르면서 춤추게 한다면, 더럽고 인색한 마음을 씻어 내고 감화된 마음이 잘 융통하게 되어서, 노래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이익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황의 문학관을 알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도산십이곡'을 지으니 가자나 청자 모두 자익이 있을 것임

돌이켜 생각컨데, 나의 종적이 약간 이 세속과 맞지 않는 점이 있으므로 만일 이러한 한사(閑事 : 한가로운 일)로 인하여 요단(鬧端 : 시끄러운 일)을 일으킬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이러한 한사로 ~ 알 수 없거니와 : 이런 한가로운 일을 인해서 혹시 시끄러운 일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거니와], 또 이것이 능히 강조(腔調)와 음절에 알맞을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일 건(一件)을 써서 서협(書莢 : 책을 넣는 상자) 속에 간직하였다가, 때때로 내어 완상(玩賞 : 즐겨 구경함)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또 다른 날 이를 읽는 자의 거취(去取 : 버리고 취함)의 여하(如何 : 그 형편이나 정도가 어떠한가의 뜻을 나타내는 말.)를 기다리기도 한다[다른 날 이를 ~ 기다리기로 한다 : 다른 날이 ‘도산십이곡’을 읽는 사람의 반응이 어떤지를 기다리기로 한다.]. 가정(嘉靖) 44년(1565) 을축년 3월 16일 도산 노인은 쓴다. - '도산십이곡'을 읽는 자의 거취의 여하를 기다리기로 하고, 도산 십이곡에 대한 감회

이해와 감상

'발(跋)'이란 어떤 글의 본문 끝에 내용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혀 놓은 글을 말한다. 글의 앞에 쓰는 '서(序)'와 함께 한문의 문장 양식의 하나이다. 이 글은 퇴계 이황이 왜 '도산십이곡'과 같은 우리말 노래를 지어 부르게 되었는지를 잘 알려 준다.

그는 시(한시)를 더 높이 평가하였으나, 한시는 노래로 불리어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노래로 불리어질 수 있는 시조가 한시보다 요긴한 것일 수 있다고 하였다. 곧, 시조를 통해 노래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하면, 감정을 유발하여 서로 통하게 하는 효과가 더 크며, 노래 부르는 사람과 이를 듣는 사람이 서로 유익하게 되는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문학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감동적 효과를 깊이 통찰한 데서 나온 것이다. 문학의 올바른 경지는 마음을 토론하는 이의 '온유 돈후'의 경지라 하였다. 이황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마음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인 ‘사무사(思無邪)’, 즉 ‘온유 돈후’의 태도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글은 효용론적인 문학관을 토대로, 국문시가 문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이황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깊이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이해와 감상1

 

발(跋)이란 어떤 글의 끝에 본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작가의 견해를 밝혀 놓은 한문의 한 양식을 가리킨다. 이 글은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본, 우리 시가와 문학에 관한 태도가 잘 나타나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한시를 최고로 여기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왜 우리말로 시조를 지었고, 또 그 속에 어떤 내용을 담기를 원했으며, 문학의 역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이황은 우선 우리나라의 과거 시가 문학에 대해 비판한다. '한림별곡'과 같은 것은 음탕하고 교만에 차서 군자가 숭상할 바가 못 된다고 하였으며, 이별의 육가는 '한림별곡'에 비해 나으나 세상을 희롱하려는 뜻이 있고 온유(溫柔)돈후(敦厚)한 뜻이 부족하여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까닭에, 자신이 음률을 잘 모르지만 굳이 도산십이곡과 같은 작품을 지으려 했다고 말한다. 또한, 심성을 길러 주기엔 한시(漢詩)가 적절하겠으나 그것은 노래로 부를 수 없다는 점, 시는 노래로 부를 때 비로소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말로 시조를 지어야 하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견해는 문학은 도학(道學)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시조야말로 문학이 추구해야 할 '온유돈후'의 성격을 십분 발휘하기 적절한 형식이라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의 경지에 이르는 데 시조가 효과적임을 밝힌 것이라 하겠다.(출처 : 김병국 외 4인공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심화 자료

퇴계집(退溪集)

 

조선 전기의 대유(大儒) 퇴계 이황(李滉)의 문집. 목판본. 원집(原集) 49권, 별집(別集) 1권, 외집(外集) 1권, 속집(續集) 8권, 연보(年譜) 3권, 언행록(言行錄) 6권. 1598년(선조 31) 간행. 내용은 시(詩)교(敎)소(疏)차(箚) 및 제문(祭文)과 행장(行狀) 등의 27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가운데 <도산십이곡발(陶山十二曲跋)>이라는 발문(跋文)이 있는데, 이는 자신이 《도산십이곡》을 짓게 된 연유와 조선의 가요를 평한 글로, 퇴계의 문학관(文學觀)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이별(李鼈)의 '六歌'

 

이별은 이제현(李齊賢)의 후손 이자 박팽년(朴彭年)의 외손이다. '육가'는 본래 6수로 된 시 조로, 4수만 한역(漢譯)되어 전한다. 그 내용은,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세상을 떠나 은거(隱 居)하는 선비의 입장에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질타하는 풍자적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세 후기의 비평

 

국문학에서 비평의 발생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시에 대한 시에 대한 비평적 관심이 비롯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문헌상으로는 이인로의 ‘파한집’이 시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보여준 첫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이규보의 ‘백운(白雲)소설’, 최자의 ‘보한집’, 이제현의 ‘역옹패설’을 거쳐 조선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들은 일종의 패관문학으로서 수필집에 해당되는 것들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비평적 성격의 글들이 실려 있다. 이들 비평 문학은 그 문학관의 측면에서 살필 때, 관도론(貫道論)이라기 보다는 ‘재도론(載道論)’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재도’란 ‘도를 싣는다’는 뜻으로서, 문학을 인간의 성정(性情)을 교화하는 계몽적 성격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고려에서 출발한 비평 문학은 중세 후기까지는 그 연장선상에 놓인 모습을 보인다. 서거정의 ‘동문선’, ‘동인시화’, 성현의 ‘용재총화’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들을 통해 나타나는 문학관 역시 재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도전의 문학론

 

일월(日月)성신(星辰)은 하늘이 드러난 것[千之文]이고, 산천초목(山川草木)은 땅이 드러난 것이며, 시서(詩書)예악(禮樂)은 사람이 드러난 것이다. 하늘은 기(氣)로써 이루어지고, 땅은 형(形)으로써 이루어지며, 사람은 도로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문은 ‘도를 싣는 그릇(載道之器)’이라고 하니, 그것은 인문(人文)을 말하는 것이다. 그 도만 얻게 되면, 시서예악의 가르침이 천하에 밝아서, 삼광(三光)이 순조롭게 행하고 만물이 골고루 다스려지므로, 문(文)의 극치는 여기에 이르러야 이룩되는 것이다.

이해하기

 

1. 이 글에서 작자가 심성을 올바르게 기르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을 설명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이 글의 후반부, 즉 '아이들로 하여금~'에서 작자가 제시한 바가 심성 수양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파악하여 발표하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글 후반부에는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한편 스스로 무도(舞蹈)를 한다면 거의 비린(鄙吝)을 씻고 감발(感發)하고 융통(融通)할 바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자신이 쓴 '도산십이곡'과 같은, 정도(正道)의 노래를 자주 부르면 그릇된 마음을 씻고 바른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은 공자가 시를 백 번 읽으면 '사무사(思無邪)'하게 된다 한 바와 통한다. 따라서 작자는 올바른 방향을 취한 노래를 자주 부르게 되면 심성을 올바르게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2. 이 글에서 작가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을 찾아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작가의 문학관에 대해서 말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이 글의 전반부에는 고래(古來)의 문학 작품에 대한 평가가 서술되어 있다. 다른 작품에 대한 평가는 곧 자신의 문학관을 은연중 전제하는 것이므로 이 부분을 이해하여 작가의 문학관을 재구성, 발표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작가는, '한림별곡'은 군자가 숭상할 바가 못 된다고 혹평하였다. 또한 이별의 육가도 완세 불공의 뜻이 있어 한계가 있다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온유돈후'한 특성이 있어야 좋은 가곡이라 할 수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 '온유돈후'는 마음에 어긋남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성리학적 관점에서의 본연의 심성(心性)을 드러내는 것이 정당한 문학이라는 관점을 보여 주었다.

3. 시조를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이 시조는 이황 자신이 직접 지은'도산십이곡'의 하나다. 언학(言學)의 하나인 이 작품의 주제를, 비유로 활용된 자연물의 의미를 고려하면서 추리하도록 지도한다.

(1) 이 시조의 주제를 조선 전기 문학의 특징과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이 작품은 이상적 질서를 함축하고 있는 자연을 본받아 면학의 길에 정진할 것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유교적 관념은 조선전기 문학의 담당층이 사대부들의 의식세계를 반영한 것이다. 청산(靑山)과 유수(流水)의 미덕을 본받아 한문 정진을 그치지 말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역시 이러한 관념도 조선 전기 문학을 담당했던 사대부들의 의식을 고스란히 보여준 예이다.

(2) 이 시조의 주제에 비추어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는 글을 써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학생의 본분은 배우고 또 배우는 데 있는데, 장차 내가 무엇이 되려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요즈음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친구들은 분주히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한데, 나만 혼자 길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마을을 다잡고 새로운 자세로 공부에 전념하고, 더 이상 정신적 방황은 하지 말아야겠다.

확장하기

 

이 글에 나오는 '오늘의 시는 옛날의 시와 달라서 읊을 수 있겠으나, 노래하기에는 어렵게 되었다.'라는 구절과 다음의 시조를 연결지어서, 말과 노래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

작품해제 :

이 작품에서 '시름'과 '노래'는 서로 대조되고 있다. 시름은 일상적인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키고, 노래는 음악성을 겸비한 시를 가리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시가 시름과는 달리 마음 속 깊이 맺힌 것을 푸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시름과 노래를 통한 '한의 맺힘'과 '한의 풀림'을 내면적인 구조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어 풀이

노래를 처음으로 만든 이는 시름도 많기도 많았겠구나.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해 노래를 불러 풀었단 말인가.

진실로 이렇게 하여 풀릴 것이라면 나도 불러 보리라.

작가 소개

- 신흠(申欽,1566~1628) :

조선 명종~인조 때의 학자, 호는 상총(象忖). 선조의 유교칠신(儒敎七臣)의 한 사람이다. 인조 때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고 노서(老西)의 중신으로 정주학의 대가요, 조선 중기 한문학의 태두(泰斗)로 일컬어진다. <상촌집>등 많은 저서가 있다.

교수 학습 방법 :

이황이 말한 것의 의미와 신흠의 시조에 나오는 '노래'의 의미에 대해 서로 비교하면서, 우리의 삶에서 말과 노래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황과 신흠의 작품에서 강조하는 것은 마음의 그림자를 없애고 본디의 마음의 시름을 풀고 흥을 돋우며 춤을 추는 데 반주가 될 수 있으므로, 그런 행동 속에서 마음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말보다는 노래가 심성 도야에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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