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달걀 만한 씨앗 / 톨스토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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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만한 씨앗 / 톨스토이



어느 날 골짜기에서 어린애들이 달걀 만큼 큰 어떤 물건을 발견했다. 그 물건은 가운데에 줄이 든, 씨앗 같은 모양이었다. 마침 거기를 지나가던 사람이 어린애들이 가지고 있는 그 물건을 보고 5코페이카에 사서 서울로 가지고 와 귀한 물건이라며 황제에게 예물로 바쳤다.

황제는 학자들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보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달걀인지 혹은 무슨 씨앗인지 알아내라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리저리 연구하고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 물건은 창문 위에 놓여 있었는데 암탉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그것을 쪼기 시작해 마침내 구멍을 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씨앗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자들은 궁궐에 들어가 황제에게 아뢰었다.

"이것은 라이보리 씨앗인 것 같습니다."

황제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다시 학자들에게 이 씨앗이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 알아보라고 명령했다. 학자들은 다시 이러저리 연구하고 온갖 책을 다 뒤져봤지만 역시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들은 황제에게 나아와 아뢰었다.

"저희는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할 수 없습니다. 소신들이 가진 책에는 이것에 관해서 전혀 씌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농부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늙은이들 가운데서 혹시 누가, 언제, 어디에, 이런 씨앗을 뿌렸는지 보거나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황제는 신하들을 보내어 늙은 농부를 한 사람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아주 나이 많은 늙은 농부를 찾아내 황제에게 데려왔다. 그 농부는 벌써 이도 다 빠지고, 얼굴에도 검버섯이 앉은, 다 쪼그라진 늙은이였다. 그는 지팡이 둘을 짚고 간신히 궁궐로 들어섰다. 황제는 그에게 씨앗을 보였다. 그러나 늙은이는 벌써 눈이 어두워 절반은 눈으로 살펴보고 나머지 절반은 손으로 더듬었다.

황제는 그에게 물었다.

"영감, 이 씨앗이 어디서 생겼는지 그대는 모르겠느냐? 그대 밭에 이런 곡식을 심은 적은 없었는가? 또는 농사를 짓던 시절에 어디서 이런 씨앗을 산 적이 없는가?"

늙은이는 귀도 어두워 간신히 황제의 말을 알아듣고 겨우겨우 이해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입을 벌려 대답했다.

"소인은 밭에 이런 곡식을 심은 일도 없고, 거두어들이거나 산 일도 없습니다. 소인네가 곡식을 사던 시절에도 씨앗들은 모두 이보다 낱알이 더 잘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말입니다요. 그런데 저어… 소인의 아버지에게 한번 물어보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희 아버지는 어디서 이런 씨앗이 생겼는지 들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황제는 이 영감의 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에게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늙은이의 아버지도 찾아내어 어전으로 데려왔다. 이 늙어빠진 늙은이는 지팡이 하나를 짚고 궁궐로 왔다.

황제는 그에게 씨앗을 보였다. 그래도 이 늙은이는 아직 시력이 남아 있어서 무슨 물건인지 잘 알아보았다. 황제는 그에게 물었다.

"늙은이, 이런 씨앗이 어디서 생겼는지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그대의 밭에 이런 곡식을 심은 일이 없는가? 그렇잖으면 그대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 어디서 이런 씨앗을 산 일이 없는가?"

늙은이는 귀가 다소 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 아들보다는 더 말을 잘 알아들었다.

"네" 그는 대답했다.

"소인은 밭에다 이런 씨앗을 뿌린 일도 없고 거두어들이거나 산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인이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아직 돈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농사를 지어 그 곡식을 먹고살았습니다. 그리고 양식이 모자라면 서로 나누어 먹었지요. 소인은 어디서 이런 씨앗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소인이 농사짓던 시절에는 씨앗이 요새 것보다 더 굵고 소출이 더 많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이런 물건은 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이건 소인이 아버지한테 들은 얘기입니다만, 소인의 아버지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소인이 농사짓던 시절에 비해 곡식이 훨씬 더 좋았다고 합니다. 소출도 더 많고 씨알도 한결 더 굵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인의 아버지에게 이것에 대해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다시 이 늙은이의 아버지를 데리러 신하들을 보냈다. 맨 처음 궁궐에 온 늙은이의 할아버지인 그 노인도 곧 찾아내서 궁궐로 데려왔다. 신하들은 그 늙은이를 황제의 앞으로 데려왔다. 노인은 지팡이도 짚지 않고 어전으로 걸어나갔다. 걸음걸이도 가볍고, 눈도 밝고 귀도 잘 들리며 말도 훨씬 또렷했다. 황제는 이 노인에게 다시 그 씨앗을 보여 주었다. 노인은 그것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이렇게 뜯어보고 저렇게 뜯어보았다.

"소인은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오래 된 곡식을 보지 못해서…"

노인은 이제 씨앗을 물어 뜯어서 입에 넣고 자근자근 깨물었다.

"이게, 그것입니다. 옛날 저희들이 심던 그 씨앗입니다."

늙은이는 말했다.

"그럼 노인이여, 어디 한번 말해 보라. 어디서 이런 씨앗이 생겼는가? 그대는 이런 곡식을 그대 밭에 심은 일이 있는가? 또 그대가 농사짓던 시절에 어떤 사람들에게서 그런 씨앗을 샀는가?"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소인이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어디서나 이런 곡식을 심고 거두었습니다. 소인 역시 평생 이런 곡식을 먹으며 살아 왔고 또 다른 사람들도 먹여 살렸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다시 물었다.

"그럼 어디 말해 보라. 그대는 어디서 이런 씨앗을 샀는가? 그대 자신이 그대 밭에 직접 뿌리기도 했단 말이냐?"

노인이 히죽 웃었다.

"소인이 농사짓던 시절에는 곡식을 사고팔고 하는 그런 죄악을 궁리해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또 돈이라는 것도 몰랐구요. 누구에게나 곡식은 조금씩이라도 있었습니다. 소인은 이런 곡식을 직접 심기도 하고 거두어들이기도 하고 타작하기도 했습니다."

황제는 다시 한번 물었다.

"어디 그럼 말해 보라. 그대는 어디에 이런 곡식을 심었고 또 그대의 밭은 어디 있었는가?"

노인이 말했다.

"소인의 밭은 소인의 땅이었을 뿐입니다. 쟁기질을 한 거기가 바로 저의 밭이었습니다. 땅은 자유였습니다. 제 땅이란 걸 몰랐습니다. 제 것으로 불렸던 건 제 노동일 뿐이었습니다."

"그럼, 두 가지만 더 말해 보라. 한 가지는 어째서 옛날에는 이런 씨앗이 많았는데, 지금은 생기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대의 손자는 두 개의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그대의 아들도 지팡이를 하나 짚고 왔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홀로 그렇게 가뿐하게 걸을 수 있는가? 게다가 눈도 밝고, 이도 실하고 말도 또렷하고 겉으로 보이는 성격도 훨씬 상냥하니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이유가 무엇이냐? 말해 보라, 이 두 가지의 까닭은 무엇인가?"

그러자 노인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말씀하신 두 가지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제 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일해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지 않고, 남의 것을 넘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것을 가질 뿐이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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