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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애 올라 보니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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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애 올라 보니

 

고향인 농암에 올라보니 낯익은 풍경이라 노안인데도 오히려 더 잘 보이는구나

인간 세상이 변한다고 자연조차 변하겠는가

바위 앞에 펼쳐진 자연들이 어제 본 것처럼 반갑구나

 

농암에 올라가 보니 늙은 눈이 오히려 밝아지는구나

사람의 일이 변한다 하지만, 산천은 변할 리가 있을까

바위 앞 물과 언덕이 어제 본 듯 선하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이현보

형식 : 평시조

성격 : 한정가, 자연귀의적

구성 :

초장 - 고향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반가움과 한가로움

중장 - 변함없는 자연과 변해 버린 인간사의 대비

종장 - 고향의 산천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반가움

표현 : 대구법, 직유법

제재 : 농암에서 바라보는 고향의 경치

주제 : 고향에서의 한정과 자연 귀의

특징 : 인간사의 유한함과 자연의 무한함을 대조적으로 나타냄

내용 연구

농암애 : 농암에, 이현보의 고향인 경상도 안동에 있는 바위 이름

올아 : 올라

노안 : 늙은이의 눈

유명이로다 : 오히려 밝도다 / 오히려 밝게 보인다

人事ㅣ: 인간 세상의 일이

산천이딴 : 산천이야

가샐가 : 변할까

某水某丘ㅣ : 어느 물 어느 언덕이

듯하예라 : 듯하도다

이해와 감상

 

작자는 문신(文臣)으로서 굳고 곧은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소주도병(燒酒陶甁)이라 불렸다. 그 곧은 성품으로 말미암아 귀양살이도 했고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본떠 시조 '효빈가'를 지을 만큼 전원의 꿈을 지닌 시인이었다.

번거로운 속세를 떠나 전원으로 돌아온 한가로운 심경을 읊은 한정가이다. 젊어서 고향을 떠나 오랜 벼슬살이 끝에 늙어서 고향에 돌아온 감회를 읊은 노래이고, 고향에 안긴 편안하고 포근한 심정이 은연 중에 나타나 있다. 초장의 '농암'은 작자 고향의 큰 바위를 가리킨다. 농암이라는 바위에 올라 보니 나이가 들었지만 노안이 오히려 밝아진다고 했다. 이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화자의 홀가분한 심리의 표출이다. 이제 그 눈은 세상사의 욕망에 사로 잡힌 눈이 아니라 자연을 볼 수 있는 욕망을 넘어서 눈이다. 그래서인지 자연은 변함이 없이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넉넉함을 가지고 있다. 중장에서는 변화무쌍한 인간 세상과 자연의 불변이 대조가 되어 있다. 종장에서는 젊은 시절 보았던 바위 앞 물과 언덕이 선명하게 와 닿고 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함 없는 고향 산천의 풍경을 접하게 되어 자연과 인생을 다시금 헤아려 보게 된다는 생각을 담고 있는 시조로 말년에 돌아온 기쁨을 노래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심화 자료

이현보(李賢輔)

 

1467(세조 13)∼1555(명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시조작가.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비중(菲仲),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靈翁). 예안 출신. 참찬 흠(欽)의 아들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되었으나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였다가 안동에 유배되었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되어 밀양부사·안동부사·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중종 18)에는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으며,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만년을 강호에 묻혀 시를 지으며 한거하였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후배인 이황 (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서로는 ≪농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전하여오던 〈어부가 漁父歌〉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 效嚬歌〉·〈농암가 聾巖歌〉·〈생일가 生日歌〉 등의 시조작품 8수가 전하고 있다. 1612년(광해군 4) 향현사(鄕賢祠)에 제향되었다가 1700년(숙종 26) 예안의 분강서원(汾江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효절(孝節)이다. ≪참고문헌≫ 聾巖集, 聾巖先生年譜, 聾巖의 詩歌觀(柳增善, 詩文學 4, 195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부사(漁父詞)

 

조선 중기에 이현보(李賢輔)가 지은 시가. 단가 5장과 장가 9장으로, ≪농암집 聾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가 그 당시에 얻은 ≪악장가사≫의 〈어부가〉 12장과 다른 〈어부가〉 10장이 말이 많고 순서적이지 못하고 혹 중첩이 있음(語多不倫或重疊)이 옮겨 쓰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전해진 것으로 판단하고, 전자는 3장을 제거하여 9장으로 장가(長歌)를 지어 읊을 수 있게 하였고, 후자는 축약하여 단가(短歌) 5결(价 : 곡을 이르는 말)로 짓고 엽(葉)을 하여 창(昌)으로 부를 수 있게 하였다.

전반적으로 ≪악장가사≫의 〈어부가〉 12장에서 보이는 많은 한글토를 생략하였고, ‘지곡총 지곡총 어嗜와 어嗜와’를 ‘지곡총 지곡총 어사와’로 축약하였다. 또한 일부 행들을 다른 시어로 바꾸기도 하고, 다른 장들의 시행을 다시 엮기도 하였다.

제1장 제4행의 ‘의선어부(倚船漁父)ㅣ 일견(一肩)이 고(高)로다’를 비롯한, 제3장의 제4행, 제4장의 제3행, 제6장의 제4행, 제7장의 제1·2·4행 등은 새로 바꾼 것들이다. 제2장의 제4행, 제4장의 제4행, 제6장의 제1·2·3행, 제7장의 제3행, 제8장의 제4행, 제9장의 제1·2·3·4행들은 ≪악장가사≫〈어부가〉의 다른 장의 행들을 각각 옮겨 놓고 있다.

≪악장가사≫〈어부가〉는 다른 〈어부가〉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개작 동기를 실현하여, 순서화와 중첩의 삭제에서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윤선도(尹善道)는 ‘소리가 서로 응하지 않고 말뜻이 잘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니, 대개 옛 글을 모으는 데에 얽매였던 관계로 옹색해지는 결함을 면하지 못했다’(音響不相應 意不甚備 盖拘集古 故不免於有局促之缺)고 평하였다.

 

≪참고문헌≫ 聾巖集, 孤山遺稿, 朝鮮詩歌史綱(趙潤濟, 을유문화사, 1937). 高麗末·李朝初의 漁父歌(李佑成, 論文集 9집, 성균관대학교, 1964), 漁父歌攷(崔東元, 人文論叢 24집, 부산대학교, 1983), 漁父歌의 表象性 硏究(呂基鉉,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漁父歌系 詩歌硏究(宋靜淑,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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