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비룡(洛城飛龍)
by 송화은율낙성비룡(洛城飛龍)
대명 정통년간에 북경 유화촌에 일위 현사(賢士) 있으니 성(姓)은 이(李)요, 명(名)은 주현이니, 인물이 아름답고 학문이 넓되, 명구단수하야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하고 세대(世代) 쇠미하야 가빈(家貧) 궁경(窮境)하되 적선(積善)을 널리 행하더라.
그 처 오씨는 사족의 아름다운 숙녀로 부덕이 미진함이 없으니 부부 사이 금슬(琴瑟)이 화합함이 조칠 같되, 오십에 이르도록 농장(弄璋)의 경사 없으니 주현이 본시 대대(代代)독자(獨子)라. 그 오대째 급제하야 한림학사로 일찍 죽고 그 후, 대대 유학으로 주현에 이르러서는 더욱 쇠미한 중, 다시 조종(祖宗)을 받들 수 없는지라, 주선이 오씨로 더불어 매양 탄(歎)하야 가로되,
"아등(我等)의 부부가 인세에 남으로부터 각별 적악(積惡)을 아니 하였더니, 영귀하기는 단순하거니와, 오직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으니, 속절없이 세월이 흘러 우리 사후에 조상신명을 의탁할 곳이 없으니, 천하 죄인으로 지하에 가면 하 면목을 뵈오리오."
오씨 역 탄대읍왈(曰),
"군자의 염려하심이 사정이 간절한 바라. 첩이 비박한 기질로 군자의 건기를 받든지 삼십여년에 죄악이 중하야 군의 집 혈육을 잇지 못하니 그윽한 기를 품어 간절한 회포 심극에 미쳤더니, 군자의 말씀을 들으매, 첩이 욕사무지라. 이미 나이 오순에 이르니, 다시 바람이 그쳤는지라. 청컨대, 소실을 구하야 생남하는 경새있으면 조정기피를 면할까 하나이다."
공이 척연왈,
"학생은 본대 궁사일처도 과분하거늘 또 어찌 첩을 구하며, 또 뉘 능히 내 소실이 되리오."
인하야 장탄오열함을 마지 아니 하더니, 차일 저녁 부부상요에 나아갔더니 문득 큰 벽력소래 나며 천문이 열렸는데 큰 별이 실중에 떨어져, 크기는 동해만 하고 광채 찬란하야 사벽에 포요하니 이목이 현황하더라.
이윽고 화하야 나는 황용이 되어 정중에 서렸더니, 벽력한 소래에 문득 두 날개를 벌려 하늘로 오르니 길이 천장이나 하고 금광이 포요하야 어리니, 공이 놀라 깨치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바야흐로 장몽을 이루거늘 깨옴은 어찌오."
공이 몽사를 이르되, 오씨 경왈,
"첩의 몽사 또 이러하니 아지 못게라. 무슨 길조(吉兆)인고."
부부 사로 이르고 행희함을 이기지 못하더니 과연 차삭부터 잉태하야 이향이 만실하고 서기 자로 어리니 공이 대희하야 생남함을 축원하더니 십팔삭만에 생자하니, 아회나며 울음이 웅장하고 기상이 비범하야 옥룡 같으니, 공의 부부 대열 과망하여 천지께 사례하고 인하여 아희명을 경작이라 하고 관명을 경뫼라 하고 자를 문성이라 하더라.
차후, 비록 가사에 구차함이 있으나 즐김이 춘풍같더라.
경작이 삼세되매 기상이 대인같으며 유아의 태없고 비범한 골격과 백옥같은 풍모 기이치 아닌 것이 없으니 보는 이 칭찬치 아닐 이 없더라.
불행하야 공의 부모 구몰하니 시에 경작의 년이 삼세라. 상수를 다스림이 어렵고 친전이 희소하니 다만 공자의 유모 열섬과 서녀 비복이 상의하야 전장과 가산을 팔아 의금관곽을 가추어 빙념하야 관을 붙들어 금주 묘하로 갈새, 일인도 호상할 이 없어, 다만 유모, 고앚를 업고 상구를 좇아 행하니 행로인이 다 척연감창하더라.
수삼삭만에 비로소 금주에 이르러 안장한 후에 시비 경섬과 차섬과 시노 유복이 목주를 뫼셔 경사로 향할새, 이 때 열섬은 아회를 업고, 원로에 구치하니 병이 발하야 능히 행보를 이룰 길이 없고, 공자 또한 바람에 상하야 중히 앓으니 여러날 치료하나 다시 행할 길이 묘연한지라 노복 등이 할 일이 없어 묘하 옛집을 수리하야 공자와 유모를 머무르고 목주를 실어 저희 먼저 돌아갈새, 임별에 사인이 붙들고 부르짖어 통곡하니 창천이 위하야 빛을 고치더라.
삼인이 유모에게 다시금 부탁 왈,
"노야와 부인이 기세하고 남은 골육이 소공자뿐이라. 조심하야 보호하야 장성함을 기다려 경사로 돌아오라. 우리 삼인은 촌촌이 빌어도 주인의 제사를 긋지 아니리니 그대는 모로미 천만 보중하라."
유모 통곡하야 가로되,
"유공자를 보중함은 그대 말을 기다리지 아니려니와 삼년 제사와 몇삼년 후 제자를 그대네 정성을 다하리니 내 염려치 아니 하노라."
삼인이 또한 문성공자를 안아 슬퍼 연연함을 이기지 못하니, 경작이 또한 아는 듯 화답하니, 제인이 더욱 슬퍼 울며 경사로 가니라.
유모 경작을 보호하야 오세되니, 영기 과인하고, 기골이 웅장하야 능히 글자를 해독하니, 유모 인가에 책을 빌어 가르치매, 통달하기 물같아야, 한자로 쫓아 백을 통하되, 경히 내지 아니 하야 남이 그 학문 있음을 알지 못하고 말씀을 드물게 하야 남이 그 언소를 듣지 못하니 유모 대희하야 애중하며 보호하야 받들음이 대주인 같더라.
문성이 유모를 모친으로 알더니 일일은 나가 놀다가 와 유모더러 묻되,
"아까 앞집의 낮익은 아희 내 동갑이라. 한 가지로 놀더니 그 아희는 아비 어미를 갖초 부르되 마치 모친뿐이라. 부친은 어데 갔느뇨?"
유모 이 말을 들으매, 마음이 써는 듯 하여 비로소 전일을 세세히 이르고 그 분묘를 가르친대, 경작이 눈물흘려 낯에 가득하더니 이르되,
"어이 부모를 보지 아녀시대 그 말을 들으매, 눈물이 나느뇨?"
유모 왈,
"천륜지정이라. 어이 금하리오."
쓰다듬어 체읍함을 마지 아니 하더라.
이러구러 경작의 나이 칠세되니, 글을 달통하야 모를 것이 없고 매양 그 분묘에 가 풀을 뽑고 티끌을 쓸며 부르짖어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유모 더욱 잔잉하야 하더라.
경작이 팔자 기험하야 문득 이 해 여름에 유모 죽으니, 경작이 신체를 붙들어 통곡하기를 마지 아니하야 식음을 제하니 주인이 권면하야 위로한대, 경작이 울며 왈,
"이제 어미 죽었으니 뉘 시신을 묻으며 내 장차 어찌 소신하리오."
설파에 유체하야 유모의 가슴에 엎디어 혼절하거늘, 마을 사람들이 경작의 거동을 보고 아니 울이 없어 유모 생시에 인리에게 인심이 있던지라 모두 와 관곽을 가추워 장하니, 경작이 무덤을 두드려 대곡왈,
"어미 나를 버리고 깊은데 들어, 날로써 어느 곳에 의탁할고."
종일토록 느껴 통곡하니, 곁마을 장우란 백성이 가장 요부하더니, 경작이 이같이 울음을 고고 참담히 여겨 다려다가 기르니 십일세 되매, 경작이 심히 게을러 잠자기를 좋이 여기고 밥을 많이 먹으니 장우의 처는 매양 꾸짖어 쓸데없는 것이라 하고 옷도 아니 하야 입히고 머리도 빗기지 아니 하니 남루한 거동이 걸인이 일웠더라.
장우는 매양 두호하되, 그 처 노씨 심히 꾸짖고 인하야, 소 막이기를 시키니 언덕에 올라 소를 매고 자니, 노씨 더욱 밉게 여겨 마구간과 뒷간을 치이고 뜰을 쓸리니 능히 다 하더라.
차설, 시임 승상 양자을은 대대명문의 자손이라. 일찍 입신하야 천자를 섬김에 충성이 과인하고 지식이 광대하며 재명물망이 만조에 미칠 이 없으니, 황에 예우하시고 동렬이 추앙하야 사해 다 현인으로 추존하더라.
승상의 원비 유씨 사십여세에 기세하니 슬하에 끼친 골육이 없은지라. 후취 한씨를 얻으니 자녀를 갖초두어 양자양녀를 연생하니 부모의 풍채를 이어 개개히 사가의 옥수같더라.
장자의 명은 명무요, 차자의 명은 명수요, 장녀는 나주요, 차녀는 경주라. 다 화월의 색이요, 성녀의 풍모 있는 중, 필녀 경주는 제자녀 중 솟아날 뿐 아니라 고금을 이르지 말려니와 당세에 빼여난 기질이라. 그 얼굴의 아름다움을 잠깐 이를진대, 풍염하고 찬란함이 침향전 북녘에 조태하야 뫼셨는양, 옥비 곧 아니면 하무제적 탁문군과 방불하고 향기 어리어 혼란한 자태 고대의 비길 서자와 선우의 한을 머금은 왕장으로 병구하며 작약한 염모와 경첩한 것이 은반을 가리와 바람 막는 비연 곧 아니면 한무제 반혼향구 하던 이부인같고 그 재용을 의논한 즉 직금 회문을 놓던 소혜의 가벼운 문장을 묘사하고 사두운의 임하풍채를 겸하야 만고 문장재사를 압두하고, 다시 침묵한 성푸과 빙청옥결 같은 청심이 세한의 총백 같고 통달하고 상쾌함이 영웅의 풍채요, 호걸의 기습이 있는지라, 부모의 사랑이 제자보다 지나더라.
제생이 이어 장성하매 승상이 널리 구하야 낭자로써 성취하니 총부 남씨와 차부 성씨 용모 아름답고 양순현덕하니 양공이 기리 회행하야 하더라.
이 때, 장소서의 년이 십삼이오, 차소저는 구세라, 장소저 또한 재용이 절세하야 비록 차소저의 하늘 기품, 수한 설부옥골과 단심혜질에 미치지 못하나 침어낙안지태와 여월수화지모가 있으니 공이 같은 쌍을 구할새, 예부시랑 설경채 중매로 구혼하니 월간친자가 아니라 어사 설년주의 자이오, 명은 인채니 오세에 부모 구몰하니 숙부 설시랑이 거두어 집에 두었더니 매파를 보내어 구혼하니 설낭의 아름다움을 알고 이에 장녀를 허하야 길례를 이룰새, 양소저의 묘묘단아한 기질과 설생의 늠늠헌아한 풍채 옥수경지같으니 관자 책책이 칭찬하야 치하 분분하고, 공의 부처 대열하더라.
신부의 예를 이루어 설가 사당에 폐백하기를 다하매, 다시 양부처계 예로뵈니 아름다운 기질은 화옥보다 더하고, 덕성은 삼모에 내리지 아니 하니 설공 부부대희 과망하야 옛집을 수소하고 어사집으로 보내어 제사를 받들게 하니 소저 정성과 효를 다하야 받들고 생을 인도하며 시랑 부처를 구고같이 섬기니 일가 크게 기특히 여겨 기리는 소래 원근에 훤전하더라.
시에 양공의 장자의 년이 십팔세요, 차자는 십칠이라 수려한 풍채와 빛난 문장이 이두 압두하니 인인이 축복하더니 금추에 형제 갑과에 뽑히니 상이 양공의 자의 재주와 용모를 아릅다이 여기사 양명무로 시어사를 하이시고 명수로 한림 탐화를 하이시니 물망이 장안을 경동하며 백배 공경하더라.
양공이 이자의 득의하야 이렇듯 번성함을 보매 스스로 복이 손할까 두려워 노병함을 창하고 치사함을 청하니 상과 제신이 굳이 허치 아니하시니 공이 심히 불열하더라.
다시 장안 주문의 공후자제를 보아 필녀의 동상에 솔향을 넘복코자 하되, 일인도 가합지 아닌지라 더욱 고향에 돌아가 천하명유를 갈해려 하야 절하에 나아가 표를 세 번 올린대 상이 그 뜻이 굳음을 보시고 능히 머므르지 못할 줄을 아연하야 제신을 돌아보아 가라사대,
"양승상은 당세의 성인군자라 내 매양 그 늙은 줄은 아끼더니 이제 노병을 일컫고 고향으로 가려하니 머므르고져 하나 그 뜻이 굳으니 능히 막지 못할지라. 국가에 불행함이 많도다."
제신이 주왈,
"자을은 나이 칠순이 가까왔으나 들어난 병이 없으니 수십년 더 머므르다가 물러감이 가소이다."
상이 가라사대,
"불연하다. 자을이 뜻을 정하였으니 어찌 강청하리오. 입신 오십년에 충성을 다하야 국가를 받들었거늘 이제 칠순에 물러감을 허치 아니하면 이는 그 아름다운 뜻을 저바림이니 기리 허하노라.
하시니 제신이 악연하고 상이 기꺼 아니 하시니 승상 유재두 왈,
"양자을의 뜻을 머르리지 못하오려니와 그 두 아들이 족히 그 아비를 대하리이다."
상이 탄 왈,
"양자 비록 문채와 문장이 아름다우나 그 부를 능히 당치 못하리라."
하시고, 인하야 치사함을 허하시니 양공이 대희하야 금주 옛집으로 살새 절하에 하직하니 상이 인견하시고 휘루하야 가라사대,
"경은 국가지공신이어늘 이제 물러감을 청하니 실로 침식이 편치 아니 하니라, 경의 나이 쇠하였기로 뜻을 막지 못하야 돌아감을 하하나니 모로미 양자를 도훈하야 경의 후를 잇게 하라."
공이 일어 사배 주 왈,
"미신이 국은을 이사완지 이제 오십년이라. 간담을 버려 충성을 다하고자 하오되, 신의 천한 나이 많사온고로 정신이 쇠로하와 성총을 가리우고 조정에 모첨하오매, 후록을 허비할 따름이라. 일호 유익함이 없사온고로 두 어린자식이 또 천은을 과히 입사오니 실로 두려움이 많사온지라. 그 족한 줄을 알아 물러가옵나니 금일 천안을 이별하나이다."
상이 가연이 하후하시니, 공이 또한 눈물을 흘리더라.
상이 이에 호부에 전지 깁 일천필과 황금 십근 백오천량을 주어 노비하라 하시니, 공이 사양하야 받지 아니하시니, 상이 청렴을 칭찬하시고 옥배에 향은을 부어주사 이별하시고 옥배를 주어 가라사대,
"경이 일로써 짐을 잊지 말라."
공이 받자와 천은을 숙사하고 물러나 가속을 거느리고 금주로 갈새, 백관이 백리령에 와 전송하니 별장이 무수하더라.
공이 양자를 중앙으로 경계하고 양부를 머무르고 경주소저를 더불어 행하야 금주에 이르러 간수보존하 택을 수소하고 안거하야 포의 갈건으로 혹죽림에 배회하며 거문고를 놀아 연명의 문수설이 상관을 효측하고 혹 깊은 내에 낚시를 희롱하야 반기어 강자아를 벗하며 친히 쟁기를 이끌어 밭갈고 김매기 삼년에 미치니 일대 농부된지라. 자릉의 고의와 노중년에 희계 부끄릴러라.
차설, 경주 소저 방년 십이세에 이르매 풍용기골이 날로 새로운지라. 공이 여아와 방불한 가서를 일방에 당문할 이 능히 얻지 못하니 장안 구름같은 제 상문의 옥면재랑이 하나도 공의 눈에 찬 이 없거늘 하물며 편협한 금주 일읍에 어찌 만고 영웅이 있으리오.
공이 시름하야 택서할 마음이 더욱 급하니 금주사태위 양공의 덕망과 소저의 현풍을 흠앙하야 구름같은 매파 능여한 언담으로 혹 이씨의 가랑이 진정지색과 이두의 문장을 겸하였다 하며, 혹 장씨의 신랑이 반악의 얼굴과 동파의 문장과 송왕의 필법을 받았다 하여 부분여류하니 공이 소 왈,
"나의 소원이 풍류재랑을 유심함이 아니라 현성대기를 구하노니 만고 영웅의 기질로 문무를 겸전하야 국가 동량지신으로 나면 와룡 한신의 장수요 더러는 송공 필공의 재상이 되야 진선진미할, 개세군자를 구하노니 소소한 문재와 녹녹한 재랑을 어찌 이르리오."
하니 제매파 감히 다시 말을 못하고 흐터지니 인인이 앙앙할 이 많으나 감히 다투지 못하더라.
광음이 신속하야 해 진하고 명년 춘을 당하니 경색이 가한지라, 공이 막대를 짚고 한가히 풍경을 보더니 서녘 언덕에 화류 빼어나거늘 스스로 유완코자 하야 언덕에 이르러 두루 구경하야 걸어 한곳에 다달아 보니 한 아희 수풀에 누워 잠을 깊이 들었으되, 소 둘을 각각 혁대에 매야 길게 느리어 제 발목에 매고 자거늘, 승상이 보매 의상이 남루하야 더러운 베옷이 허릿살을 가리우지 못하고 어지러운 머리털이 낯을 덮었으니, 면목을 능히 모를러라.
공이 걸인인가 여겨 수연 탄식코 깨기를 기다리더니 그 아희 문득 기지개를 켜고 입으로 잠결에 읊어 가로되,
"서녘 언덕에 풀이 깊었으니 두 소를 이끌어 봄 잠이 깊도다. 아지 못게라. 뉘 눈이 있어 태산을 알리오. 출추적녕척을 금세에 효측하나, 어느 제후 예빙할고."
읊기를 마치매, 문득 도로 누워 자거늘 공이 음성을 들으니 학녀청원이 웅위장원하야 육률이 조화한 듯 한지라 공 대경하야 가까이 나아가 자세히 보니 남루한 의복과 허튼 머리 사이 버범한 기상이 비취니 심히 경복하야 이에 허튼 머리를 쓸고 다시 보니 그을러 검은 낯은 옥이 진토에 묻힌 듯, 아니면 명월이 흑운에 싸였는 듯 하고 초췌한 의형이나 골격이 수려 웅장하야 창해의 유용같고 가는 눈은 단봉을 습하였고 긴 눈썹이 와잠같아 엄숙한 규격이 일신에 어리었으니 양미는 강산의 영기를 거두어 금수의 문장을 품었는 듯 넓은 이마는 달이 보름을 당한 듯 큰 입과 높은 코는 짐짓 영웅의 모양이오, 호걸의 체격이라. 승상이 대경대희하야 어루만져 깨기를 기다리며 그의 형을 살피더니 참담하야 앙천 탄식 왈,
"영웅 호걸이 예부터 천한 이 많거니와 어찌 금일 차아 같으리오."
인하야 소를 끌러 친히 나무에 매고 식경이나 앉았으되, 깨지 아니하고 점점잠을 깊이 들거늘, 공이 흔들어 이르되,
"소년은 수이 깨라, 두 소 놓였으니 빨리 잡으라."
두어번 이르니 문득 일어나 발목에 소 없은 줄을 보고 눈을 빛쓰고 두루 살피다가 소가 오동나무에 매였으니 고삐를 잡고 또 조는지라. 공이 나아가 여러번 깨오대 그 아희 답지 아니하고 머리를 긁거늘, 공이 다시 깨오니 그아희 가로되,
"뉘라서 자는 것을 깨오는고."
하며 도로 자거늘 공이 보니 머리와 낯에 주린 이 무수하니 공이 손수 수십개를 주워버리고 또 깨오니 그제야 채 깨어 소를 긴 줄에 놓아 그늘에 매고 도로 와 앉거늘 공이 나아가 묻되,
"너는 어떤 아해관대 이리 뜨거운 볕에서 그리 오래 자는다?"
그 애 답 왈,
"오는 잠을 볕이라고 그 아니 잘까. 뉘 이리 괴로이 굴어 든잠을 깨오니 심증난다."
"나는 이 앞 노옹이러니 너를 보니 가장 속있는 아희라 내 너의 모든 잠을 깨웠으니, 성을랑 내지 말고 너의 성명과 거주를 이르라."
답 왈,
"자는 것 깨워서 성명을 물어 무엇하려 하는고?"
공 왈,
"노중에서 서로 만나 성명을 물음이 어이 고이하리오, 쾌히 물음을 청하노라."
그 아희 가로되,
"알고저 하니 내 성은 이요, 이름은 경작이니, 이 앞 마을에 있는 장우의 집 소먹이는 드아리라. 알아 무엇하려하느뇨?"
"네 드아리라 하니 뉘집 자식인다? 네 거동이 하천인이 아니니, 나를 속이지 말라."
경작이 대소왈,
"그 옹 재 모르는다. 상집 종이라 하여든 무슨 가문이 있으리오."
공이 가로되,
"네 아까 읊던 글이 큰 뜻이 있으니 모로미 나를 기치 말라."
경작 가로되,
"감결에 읊는 것이 무슨 뜻이 있으리오. 말하기 싫으니, 가노라."
하고 소를 이끌고 나려가거늘, 승상이 급히 잡아 앉히고 가로되,
"네 비록 소애나 예모를 모르는도다. 나는 늙은 사람이오. 너는 황구소애라, 그리 버릇없이 구느뇨?
그 아희 답왈,
"목동이 무슨 예를 알리오."
공 왈,
"네 내 얼굴을 자세히 보라."
경작이 머리를 헤쓸고 보니, 한 백의 장재 머리에 갈건을 쓰고 우수에는 파리채를 잡고 좌수에는 청려장 짚었으니, 흰 날옷이 가슴에 치이고 골격이 맑아 표표히 신선같으니, 경작이 마음에 생각하되, '내 사람을 많이 보았으되 이러한 이 없더니 차인은 가장 모르는 늙은이로다.'
하고 인하야 가로되,
"소자 대인의 기상을 보오니 화봉전상의 홀 받들 기질요, 천문구중의 보필지신으로 치국안민할 재덕이 있거늘, 하고로 갈건야복으로 림하에 분주하시니이까."
공이 소 왈,
"네 말이 가소이어니와, 불시에 공경함은 어찌오."
인하야 묻되,
"네 승상 양자을을 아는다?"
대왈,
"가장 어진 재상이라 하더니 지척에 만나과이다."
"네 이미 알아보았으면 체면을 잊는다."
대 왈,
"아까 그 말씀에 깨닫과이다."
공이 이르되,
"내 안력이 없으니 평생에 사람을 유의하야보더니 너를 보매 필연 하천의 사람이 아니오, 지은 글이 벅벅이 뜻이 있으니 너는 모로미 기치 말라."
경작이 답 왈,
"물으심이 이같으시니 심사를 베푸리이다."
인하야 삼세에 부모를 잃고 유모에게 의탁하였다가 칠세에 유모 죽으니, 의지할 데 없어 장우의 고공이 된 연유를 이르고, 동녘 뫼를 가르쳐 왈,
"저 분묘 내 부모의 분묘로소이다."
말로 좇아 눈물이 행류하니 공이 청파에 추연 탄식왈,
"옛부터 영웅 호걸이 곤할 이 많으나 어찌 이렇듯한 이 있으리오. 묻노니, 네 나이 얼마나 한다?"
대 왈,
"속절없이 열네 봄을 지내었나이다."
공이 가로되,
"내 네게 청할 말이 있으니 가히 용납하랴."
경작이 대답하되,
"들을 말인 즉 듣고 못들을 말씀이면 못들을지라. 미리 정하리잇고."
공이 가로되,
"다른 일이 아니라 내 양자양녀를 두었더니 위로 셋은 취가하였으되, 필녀 나이 이칠이라. 하주의 아름다움이 있으나 현인 군자를 만나지 못하였더니 이제 널로써 여아의 쌍을 이루고자 하노니 가히 허하랴."
경작이 앙천 대소 왈,
"노야의 여아는 상국의 천금 소저로 돈귀 극하고 소동은 상집종이라. 노야의 말이 실지 아닌가 의심할지언정 짐짓 숙녀일진대 어이 사양하리잇고."
공이 대희 왈,
"네 말이 이렇듯 하니, 마땅히 금백을 장우의 집에 보내어 속량하고 길례를 수이 이룰 것이니 명일에 매파를 장우에게 보내여 구혼하리라."
경작이 각별 사양치 아니하고 허락하니 공이 기꺼 서로 언약하고 각각 돌아오더라.
공이 집에 돌아오매, 희기 위에 통하니, 부인이 맞아 묻되,
"무슨 기쁨이 있관대 희기 이러하시니있고."
승상이 이르되,
"내 여서를 헤기로 병이 일웠더니 금일 영웅을 얻어 동상을 허하였으니 여아의 재덕을 저바리지 아님이라. 어찌 기쁘지 아니리오."
부인이 역희 왈,
"영웅을 가리었다 하시니 아지 못게라. 뉘집 자녀며 문미 어떠하니잇가?"
공이 가로되,
"인품을 볼지니 어이 문미를 이르리오."
하고 인하야 경작의 일을 이르니, 부인이 안색이 여토하야 돈족 대경 왈,
"다시 이르지 마르소서. 경주는 이계궁의 모란이오, 금분의 아황이라 마땅히 저와같은 쌍을 얻어 재상 문미의 옥경선랑을 구하야 동방에 깃들임을 볼것이어늘 저집동의 배필을 삼고자 하시니, 말자 비복도 아니리니 상공은 열 번 생각하사 다시 이르지 마르소서."
공이 웃고 왈,
"사람을 이르매 어찌 족히 부귀한 후 이르며, 사람이 어질지 못할까 근심하지 어이 어질고 부귀치 못할까 근심하리오. 내 뜻 이미 결하였으니 부인은 편협한 말을 다시말라. 이 아희 아직 이러하나 타일 명만천하하고 성현 영웅이오, 차인에게 미칠 이 없을지라."
인하야 소저를 나오혀 애련 왈,
"내 아해 이같이 아름다워 속절없이 노부의 심력을 허비하더니 이제 쾌서를 갈해니 구원의 가나한이 없으니로다."
부인이 돌돌 불열 왈,
"한 자식은 상공이 망치려 하는도다."
양공이 소왈,
"한 자식은 영귀케 하노라. 양자와 설생이 비록 재조 풍채 아름다우나 불과 산금야수의 귀어니와 차인은 용호의 기상이오 금봉의 재질이라. 연작이 어찌 홍곡의 먼 뜻을 알리오."
부인 왈,
"어데가 귀형을 보고 와 선인같은 자서를 당치 못하리라 하시느뇨?"
공 왈,
"선인같은 자서 등이 귀형을 탄 아희에게 비치 못하리니 후일에 내 말이 옳은 줄을 깨달으리라. 이 아희 비록 그으러 검고 고역에 달리어 형용이 초췌하고 의장이 남루하나 비범한 골격과 웅장 수려한 풍채 당대는, 커니와 고금에 비길 이 없으리니, 그 속에는 일월의 정기와 사해를 깊이 감추었으나 나타냄이 없고 얼굴이 검고 초췌하나 불과 수월 후이면 옥 같은 군자 될 것이니 그대는 의심치 말라."
하고 이하야 매파를 보내어 장우의 집에 가 구혼하니 장우 천만 의외라 황공하야 감히 당치 못하야 하거늘, 공이 재삼 청하니 장우 가로되,
"소인의 종이라 이리 구하시니 황공하고 스스로 손복할까 두려울지언정 어이 명을 좇지 아니 하리잇고."
공이 은자 삼백냥을 보내어 속신함을 청하니 장우 죽기로 사양 왈,
"어이 감히 값을 받으리이까."
공이 재삼주어 바야흐로 받거늘, 드디어 길일을 택하고 경사 양자에게 혼사 지냄을 기별하니 양인이 사년을 이친하였다가 매자의 혼사지냄을 듣고 이에 사오삭 말미를 받아 처자를 다리고 금주로 돌아올새 설생의 처는 그 동구의 제사 지내기로 못가니 서찰을 붙이더라.
어사 형제 행하여 금주에 이르러 부모께 보매, 서로 반기며 슬픔이 소집하니 도리혀 비절하더라.
어사 묻자와 가로되,
"매자의 혼사를 정하야 길사 가까완다 하오니 아지 못거이다. 뉘집 자제며 조상이 어떠하며 그 대인이 무슨 벼슬 지낸 사람이니까?"
공이 소 왈,
"사람을 이르매 어찌 족히 영귀함을 이르리오."
하고 경작의 족보와 외형을 이르고 왈,
"내 칠순에 이르도록 사람을 보았으되 오직 차인같은 이는 없으니 천인풍 대인이 많음을 깨닫과라."
이재, 경동 안색하고 이르되,
"인품을 이르매, 마땅히 귀천이 없거니와 우리집은 더욱 대대 명문이오. 대인에 이르러는 물망과 현덕이 사해에 진동하야 인인이 추존치 아닐 이 없으니 우리 가문과 같은 이는 비록 얻지 못하나 명가의 가랑을 얻어 약매의 방신을 저바리지 아님이 옳거늘 어찌 도리어 걸인을 얻어 우리집 명풍에 소매에게 떨어버리이까. 결연히 행치 못하리니 대인은 세 번 생각 하소서."
공이 웃고 왈,
"너희는 매양 사람을 영귀하면 기특한 양으로 알거니와 솔이 대현이시되, 처음에 심히 근하야 역산에 밭갈으시고 뇌택에 고기잡으시고 하빈의 질 것 구으시다가 내종에 천하를 맡으시매, 태평히 다스려 성현이 되샤 빛난 이름이 후세에 전하시고 한 고조가 사성 정장이로되, 사백년 창업을 열었으니. 가난코 천하다 하고 천해버림이 없으니 사람을 어찌 부귀 빈천으로 의논하리오. 차아는 실로 범골과 다르니 내 뜻이 이미 결하였는지라, 어찌 빈천함으로써 영웅을 버리리오. 고조 한신을 쓰고 성탕과 문왕이 위수신야에 예빙하시니 그런 작가 차아의 당대한 공명이 노부의 위에 있으리니 너희 명풍을 떨어치리리라, 이르나 반드시 양씨를 홍귀하리니, 이 아희로써 네 아비, 지인지감이 밝은 줄을 알것이니, 오아등은 모로미 후일에나, 사람아는 한쌍 눈이 밝음을 깨치리라."
이재, 불열묵묵하야 다시 대답지 아니하더라. 돌하야 이자더러 이르며 공을 무수히 원망하니 이자 대 왈,
"들으매, 불관하나 대인의 지인하심이 밝으니 그릇 보지 아니하야 계실 것이오. 이미 뜻을 철석같이 정하야 계시니 모친이 애달파 하심이 무익하도소이다.
부인 왈,
"비록 장래는 영귀하리라 이르나 이제 내 항아같은 옥녀로써 목동의 필우를 삼음이 애닲음이 병이 될 듯 하니 비록 사위를 삼으나 내 생전은 증세되리라."
이재 미소 부답하더라.
이러구려 길일 다다르니 납빙하고 혼례를 이룰새 공이 위의를 성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더니 경작이 헌 베옷을 벗고 길복을 정히하야 금안백마에 추종이 수풀같아야 상부에 이르러 기러기를 전하고 풍계에 서니 불의에 쓰다듬아 빛난 의복을 정히하야 금안백마에 추종이 수풀같아야 상부에 이르러 기러기를 전하고 풍계에 서니 불의에 쓰다듬아 빛난 의복을 입었으나 그은 얼굴과 향암된 거동이 족히 보암즉치 아니 하나 어사 형제와 설생의 시체로운 거동과 청청 표묘한 기질이며 옥면단순에 비기매 어찌 내도치 아니리오.
이제 한번 보매, 다시보지 아니하고 부인이 발안해서 보고 애닲음이 충천하니 말을 못하고 분기 막힐 듯 하더니, 공이 외실로 좇아 들어와 저의 섰음을 보고 두긋기고 기꺼하는 거동이 안면에 넘치니 부인이 세언으로 공을 꾸짖더라.
공이 경작을 대하야 가로되,
"이미 전안을 하였으나 사당이 아니 계시고 분묘 멀지 아니 하니 신부례를 분묘에 함이 어떠하뇨?"
대하야 가로되,
"마땅하이다."
공이 화초를 놓아 신부로써 예를 이루게 할새, 소저 웅장성식이 광채를 빛내고 향조하기를 마치매, 공이 신랑을 명하야 정문을 잡으라 하고 분묘에 포진을 성히 하여 양인을 거느리고 묘하에 가 천지께 배례를 마치메, 소저 폐백을 받들어 구고 묘하에 배항하니 빛난 풍채와 향기로운 기질이 와묘하 같은 듯 하야 능히 바로 보지 못할러라.
폐백을 마치매, 부부 어깨를 갈와, 헌작하니 십여년 쇠잔한 묘에 이렇듯 부성하니 인인이 다 놀라고 칭찬하니, 양공이 의기 있음을 혹 일컫고 혹 어리다고 하더라.
예를 파하매, 상부로 돌아올새, 생의 흐르는 눈물이 다만 귀밑에 연락하야 한삼을 적시니 소저 또한 긋같은 태도 변하야 애원이 슬픈 빛이 추파에 어리니 보는 이 감탄 찬양하더라.
공이 생의 길복을 벗기고 새옷을 입혀 손을 이끌어 우슬하에 앉히고 소저를 명하야 좌슬하에 앉히고 쌍수로 양인을 어루만져 두긋김과 기꺼함이 비할데 없으나 부인은 한점 화기 없더라.
공이 경작더러 이르되,
"네 안해 어떠하야 뵈느뇨?"
생 왈,
"아직 보지 아니 하였나이다."
공 왈,
"좌선이 가까우니 네 모로미 다시 보라."
경작이 추파를 들어보니, 소저 다만 부끄럼을 띄어 수미를 수겼으니 일천가지 고운 빛과 일만가지 기이한 거동이 포요 찬란하야 이목이 찬란하나, 마음에 생각하되, 부인은 색이 부질없으니라 하고 다시 보니 단숙한 기질미여 온량효순한 덕택과 씩씩 정녕한 풍도가 안모에 나타나니 마음에 놀라고 기꺼하나 각별 사색지 아니하야 의연 단좌하였으니 공이 처음은 여아를 보고 일정 놀라리라 하였더니, 기색이 태연하야 조금도 다름이 없거늘 공이 더욱 칭찬하야 소이 문왈,
"너의 안해 어떠하뇨?"
대 왈,
"슬한 부인이로소이다."
우문 왈,
"색은 어떻다 하느뇨?"
대 왈,
"불관히 여기나이다."
공이 등을 어루만져 더욱 사랑하야 가로되,
"너의 부부 각각 재배하야 현서는 숙녀 얻음을 회사하고 여아는 현인군자 만남을 사례하라."
생이 즉시 일어, 재배하되, 소저는 부끄려 옥면에 홍광이 취하이니 더욱 아름답더라.
공이 재촉하야 시키매 강잉하야 일어 재배하고 고개를 숙이시니 승상이 부인을 돌아보아 웃고 이르되,
"만래에 이런 귀서를 얻었으니 서로 칭하를 하리라."
하고 잔을 날려 반취함에 이르러는 금외 떨어지고 옥퇴 재림하니 공이 친히 생을 이끌어 동방에 이르니 벌인 것이 정결할 뿐이오, 각별 현황함이 없으니 가만히 공의 현덕을 찬양하더라.
경작이 스스로 생각하야 자기 정희 내도함을 괴이히 여기고 양공의 기이한 기상이 능히 자기를 알음을 기특히 여기더니 밤이 깊으매, 옥촉을 밝히고 쌍쌍한 시녀 소절르 옹위하야 나오니 색태 더욱 현란하야 분벽에 휘황하더라.
생이 원간 빗가스리고 나니, 곤뇌하기 무궁한지라, 각별 소저를 본체 아니하고 상에 올라 자더니, 효계창성하매 소저 일어 내실로 들어오니 날이 늦도록 생이 일어나지 아니하니 조반을 차리고 부인이 깨우려 한 대, 승상이 말라하고 일어나기를 기다리더니 날이 늦은 후에 바야흐로 깨거늘 즉시 잔상을 드리니 진찬과 향괴 좌우 상에 가득하였으니 매양 차지 못하게 먹다가 많은 음식을 당하매 양을 여러 상이 비게 먹으니, 어사 형제 대경왈,
"그대 식량이 가장 장하다."
경작이 이르되,
"많이 주시는 것을 남김이 부질 없도다."
인하야 상을 물리니 부인과 가중이 다 놀라되, 공은 희동안색하야 기꺼함이 무궁하나, 부인 더욱 기꺼 아니하야 언어에 선생을 칭찬하니 공이 부인의 넓지 못함을 마음에 탄식하더라.
(중략)
"기운이 불안하야 하저를 잊과이다."
잔상을 파하고 석반을 드리니 찬품이 내도하기 처음 상같으니 삼부인이 더욱 무안하야 저의 기색을 살피니, 다만 나빠할 따름이오, 눈을 일호도 살핌이 없으니 짐짓 대인군자러라.
사인이 외실로 나가니 설부인이 모친께 가로되,
"금일의 연차의 식반을 보니 한심 무안함이 구하니 잔치 보살핀 시녀를 중책하사이다."
부인 왈,
"마땅히 상공께 층등 없이 할 것이어늘, 이 설군의 상은 희한히 하였으되, 이랑의 상에는 공연한 시노의 상이라, 중치하야 고치게 하사이다."
답 왈,
"어이 두 번 전하기를 그릇하리오. 너는 비위 좋은 사람이로다. 차경을 당하야 태연하기 춘풍같으니, 짐짓 이랑의 쌍이로다."
소저 소이 부답이러라.
설부인이 시녀 중치함을 여러번 고간하니 부인이 날호야 왈,
"네 말이 비록 옳으나 이랑이 밉기 심하야 먹이고 싶지 안하기로 저 미혹한 시녀 어이 알리오. 내 마음을 접어 치치 못하리라."
설부인이 모친 뜻이 변하였음을 보고 기리 탄식하고 개구치 아니하더라.
명일 발행할새, 추관 부부 부인과 하직하고 제형제로 이별하매, 소저로 더불어 손을 이어 옥루경경하니 능히 걷우지 못하더라.
설부인 소저더러 왈,
"내 가중 경색을 보니 두 거거의 뜻이 크게 변하고 가중비복이 이랑 대접하기를 견마같이 하니 석일, 야야 생시를 생각하매 어찌 슬프지 아니리오. 모로미 현제는 경부하는 예를 잃지 말라."
소저 대 왈,
"인정이 그러하니 족히 탄치 아니하거니와, 지어 소매는 소천의 큼이시니, 사생에 어이 불공함이 있으리오."
양인이 재삼 연연하다가 이별하니라.
설생이 도임하야 백성을 상명히 다스리고, 한 부인께 보내는 것이 심히 많으니 부인이 대열하야 이생을 더욱 증을 내더라.
이로부터 조석 밥이 그릇에 차지 못하고 대접이 참혹하니 저 광대한 속에 어이 반이나 차리오.
차후 잠자기를 일삼고 한번 책을 펴보지 아니하니 가중에 꾸짖는 소리, 새로이 더하니 소저 민망하야 하더니 일일은 저의 밥먹고 때를 타 문득 말을 하고자 하되 항녀의 의를 이룬지 육년에 이르되 수작하기를 잘 아니 하니 이르기 부끄러워 묵묵 함언이러니, 양구후 문득 고쳐 일어 앉아 가로되,
"첩이 구에게 말을 아뢰고자 하나니 군자 능히 당돌함을 용서하시리이까."
생이 소이 대왈,
"제 무슨 일이 있어 복에게 이르고자 하시느뇨? 빨리 이름이 무방하도다."
소저 염임 정금 왈,
"첩이 다른 말이 아니라 군자 일찍 책을 펴보지 아니하시고 잠자기를 과히 하시니 첩이 헤아리건대, 구가에 다른 동생이 없고 혈맥이 군자 일인 뿐이라. 군이 이제 나이 십구이니 하마 공명에 뜻을 두실 듯 하되 일향 모르는 듯 하시니 첩이 그 뜻을 탁양치 못하야 당돌함을 잊고 소희를 아뢰노니 밝히 일어 의혹함을 알게 하소서."
생이 희연히 소매를 들어 사 왈,
"그대 말이 정히 복의 스승이로다. 복이 또 어찌 생각이 없으리오. 다만 품은 회포 없으되, 능히 책잡기 싫으니, 다른 연고 아니라 그대 집에서 조석 밥이 심히 적으니 복의 광복에 간 곳이 없으니 기무하기 심하야 갱기를 못하니 가뜩한 잠이 더욱 심하니 그대의 의혹함이 어찌 고이 하리오."
소저 청파에 참연히 말이 없어 묵묵 반향에 일어 천연히 협실로 들어가 자기 장렴의 진주탄 일쌍과 황금줄쇠를 벗어 시녀로 매매하야 조석 식수를 보태어 넓은 배를 차게 하니 이따금 책을 펴보대 한번 소리하야 읽음이 없더라.
이러구러 수년이 지나며 추관이 보내는 것이 자꾸 많으니 부인과 비복이 설생만 사위로 알고, 이생은 하천인으로 능멸함이 참혹하되, 오직 소저의 경대함은 오랄수록 새롭고 남성 이부인이 수렴하야 대접하더라.
이에 이르러 가중 의논이 분분하야 이생 내치기를 의논하니, 이생이 어이 기색을 모르리오마는 청이불청하야 조금도 알은 채 아니 하나 소저 참연하야 슬퍼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남성 이부인이 존고와 각각 소저의 하는 일이니 감히 개구치 못하나 각각 허허 탄식하더라.
홀연, 한부인이 병이 극중하니 자녀 모두 구호하더니 부인이 여아더러 왈,
"이는 실로 너로 말미암아 난 병이라 살리 어렵도다."
소저 차언을 들으매, 경아함을 마지 아니나, 안색을 화히 하고 이르되,
"소녀 아득하야 생각지 못하나이다."
부인이 탄 왈,
"다른 병이 아니라 이랑이 내집에 온지 팔년에 한번 글 읽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능증하고 밉기 날로 심하니 이는 너의 일생을 종시 망치는지라. 어미 마음에 생각함을 인하야 심화 일어 장차 사지에 이르니, 이생 밉기 더욱 심하야 그의 형이 보기 싫으니 이랑을 가중에 없이 하고야 내 생도를 얻을까 싶으니 네 나를 살리려 하거든 수이 내어보내라."
소저 이성 화기로 대 왈,
"제 실로 일신이 아득하야 의탁할 곳이 없으니 차마 인정에 나가란 마을 못하였더니 모친 뜻이 이같으시니 수이 내어보내올지라. 바라건대 관후하소서."
어사 왈,
"실로 박정하나 모친의 환후 중심이 여차하시니, 이랑을 유함이 난처토다."
소저 심사 아득하야 아무리 할 줄 모르다가 일어 대인각에 이르니 생이 광수로 낯을 덮고 누웠거늘, 소저 멀리 앉았더니, 생이 잠깐 소저의 기색을 보니 참연한 안색에 황란한 기색이 있거늘, 어인 일인고 하야 가만히 보니 낯빛이 변하기를 자로 하는지라, 벌써 기색을 스치고 소매를 앗고 일어앉아 문 왈,
"악모 병후 어떠하시뇨?"
대 왈,
"그대 기색을 보니 말을 하고자 하되 아니함은 어찌오."
소저 더욱 참연 수괴하야 말을 못하고 유유함을 오래 하야 단순에 향언이 비치다가 그치기를 자로 하니 생이 어이 짐작치 못하리오. 개연히 깨다르매, 저의 어려이 여김을 보고 자기 즐긴 채 능히 당치 못할 줄 아나 화기안연하야 문 왈,
"자기 하면 하는 일을 복이 이미 아노니 주인이 있기를 허치 아니하면 손이 어이 즐긴 체를 매양 하리오."
생 왈,
"무슨 부끄러움이 있어 저렇 듯 하느뇨?"
소저 왈,
"인정이 아닌 말로 군자께 전하니 낯이 닳오이고 마음이 어리니 고개들기 어려이 여기나이다."
생이 소 왈,
"가희 넓지 못하다 이르리로다. 형세 양난하면 가는 사람인들 무슨 수괴함이 있으리오."
소저 우 왈,
"우리집이 존군께 박정함이 아니라 선인이 기세하시고 두 형이 수습지 못하니, 가계 옛과 같지 아니하야 낯붉은 인정을 행하니 첩은 차마 면목을 들어 사람을 보지 못할 죄인이라."
생 왈,
"내 비록 미혹하나 그대 뜻이 아닌 줄을 알 것이오, 형세 이러하니 무슨 다른 말이 있으리오. 빨리 행코자 하되, 양식이 없으니 복의 넓은 배 능히 얻어먹고 가지 못하리니 일로써 난처하여라."
소저 왈,
"비록 궁박하나 행냥은 첩이 준비하려니와, 아지 못게라, 존군이 금일로부터 어디로 향하려 하시나이까?"
생이 추연 탄 왈,
"복의 팔자 무상하야 친척도 없으니 일신이 고고하야 추풍낙엽 같은지라. 어느 곳으로 지향할 줄 알리오."
인하야 이르되,
"내 한 말을 부치고자 하노니 능히 용납하랴."
소저 공경하야 대 왈,
"이르시는 말씀이 힘이 미치면 어이 듣지 아니 하리잇까?"
생이 이 때를 당하여는 달같은 이마 처연하야 추파에 슬픈 빛이 동하니, 소저 결발 팔년에 저의 비색을 보지 아니하였다가 이를 대하매, 차석함을 이기지 못하더니 생이 강잉하야 왈,
"다른 말이 아니라, 복이 무상하야 부모가묘 아무 곳에 계신 줄 알지 못하고 조석에 바라고 위로할 바는 저분묘라. 복이 이제 가매, 의심컨대 십년간은 서로 음신이 단절하리니 생각건대 임자 없는 분묘 외로우심을 염하니 비록 석목이나 어이 참으리오. 연이나 그대 현덕을 복이 본대 항복하나니 복이 가간 후, 사시향화를 이음을 바라나니 능히 할까 싶으거는 하고, 또한 구차함이 있을진대 말려니와 소생의 정사를 생각하야 만일 할까 싶으거든 정성으로 하고 기차는 유모의 무덤을 생각하라."
언파에 봉안에 누수이 어리어 귀밑에 종희하니 소저 또한 누수 바방하야 왈,
"군자의 이르시는 바는 곧 첩의 바라고 위로하는 바라, 어찌 일시 한헐하리이고. 가르치심을 간폐에 새겨시리이다."
설파에 일어 협실로 들어가 행냥기구를 치릴새, 자기 혼자 적한 진주 나삼과 옥연차 하나와 순금줄쇠 한쌍과 백옥지환, 명주를 내어 시전에 팔아, 은자 삼백냥을 받았는지라, 행냥을 차려 명일로 발행하려하니, 소저 들어가, 저의 가려함을 이르고 한필 말을 구하니, 부인이 허치 아니 하거늘, 스스로 탁신하고 나와 생을 대하여 왈,
"말이 비록 많으나 허하지 아니하시니, 그 은자를 내어 말을 사 행하심이 어떠하니이까?"
생 왈,
"내 말을 구하지 아니 하였거늘 어찌 달라 하뇨? 이 은자는 오히려 부족한 게 하였으니 여러 곳에 쓰지 못할지라. 내 두 다리 성하니 어이 남의 걸음을 빌리리오."
소저 우기지 못하고 두어벌 의복을 일울새, 등잔을 대하야 마르기를 마치매, 바늘을 잡아지으며 가만히 등잔을 대하야 암축 왈,
"창천이 사람을 이렇듯 궁박히 하시니 타일에 다시 회복함을 허하소서."
하더니, 생이 자는 체하고 누위 소저의 거동을 보니 화협녹빙에 흐르는눈물이 하해 같으나 생이 알까 저허, 자로 나삼을 들어 씻으니 수미에 일만 시름이 맺혔으니 벽천낭월이 부운을 허치는 듯 연화 일지광풍을 만나는 듯 함한한 아미는 서자의 배 앓을적 같고 맑은 눈물은 추파에 솟아나니 첩여의 단선을 싫어하는 듯 직녀 금사를 놓는 듯,백가지 아름다운 태도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싀고 뼈녹을지라, 생시의 비록 침정하나 원별을 당하야 저의 용화를 보매, 차석애련함을 이기지 못하야 문득 이르되,
"밤이 깊었으니 잠이 가하다."
한 대, 소저 저의 소리를 듣고 즉시 눈무을 걷우고 왈,
"일이 바쁘니 자지 못하나이다."
생이 강청하지 아니하고 자더니, 또 깨어보니, 의복을 일워 홰 위에 걸고 찬품을 다스리매, 겨울밤이 괴로이 긴지라 다 하기를 기다리더니, 찬품 다스리기를 마치매, 스스로 세상에 머물음을 한하고 의상을 끄르지 아니하고 벼개에 의지하야 능히 잠을 이루지 못하거늘, 생이 여자의 정을 가련히 여겨 가만히 탄식하고 그 섬수를 잡아 재삼 위로 하니, 소저 그 집수함을 수괴만 하더라.
미명에 일어, 행장을 다시 타점할새, 생이 일어 관세하고 푸개를 수습하야 은자를 넣어놓고 소저를 향하야 이르되,
"복이 한번 가매 십년사이 소식이 없으리니, 모로미 염려를 그쳐 상회치 말라. 이후 혹 몸이 남았다가 만날 대 있으리라."
소저 함루 대 왈,
"비록 몸이 사람이나 첩은 실로 죄인이라. 군자의 자취를 어찌 다시 바라리오. 오직 구고 분묘를 받들어 몸이 마친 후, 묘하에 묻힘을 원하나이다."
소저 왈,
"하직함이 무방하니이다."
생이 들어가 부인께 하직할저, 부인이 조금도 전령함이 없고, 어사 형제로 이별하매 보중함을 이를 뿐이오. 거처를 묻지 아니 하더라.
생이 남성이 부인께 하직하고 초초한 푸개를 메고 초리를 신어 표연히 걸어 문을 나가매, 생이 부모 묘하에 가 통곡하야 하직하고 승상 묘하에 가 통곡배별하니 세설이 뿌리고 일색이 참담하야 사람의 심사를 더욱 동하더라.
소저 난간을 비겨 저의 행색을 바라매, 표표한 신당에 푸개를 메고 초리를 들메어 문을 나되, 한 사람도 연연하야 보내는 것이 없고 한번 떠나면 올 기약이 없으니 약질이 어찌 참으리오.
실중에 돌아와는 버린 것이 의구하였으니 벼개에 비겨 결발 팔년에 부친사로 한 때 편히 받들지 못하던 일과 조석밥이 양에 차지 못하던 일을 세세히 생각하고 구박하야 내치기에 이르니 어찌 참석함을 견디리오. 주루 만면하야 소리 남을 깨닫지 못하니, 남성이 부인이 이르러 화한 말씀으로 위로할 따름이라.
이날부터 부인이 향차하니 가중이 크게 이꺼 가만히 서로 회행하니 소저 더욱 슬퍼하더라.
어시에 생이 행하연지 삼일에 이르러는 대설이 나리고 일색이 늠렬하니 눈을 무릅써 촌촌이 행하더니 문득 큰 언덕을 넘어 가며 생각하되,
'내 이리 나왔으나 진실로 의지할 곳이 없으니, 어이할꼬.'
다시 생각하되,
'사람이 나매, 하늘이 살곳을 주시니 날따라 어이 그렇지 아니리오.'
마음 두고 생각하고, 점점 행하니, 눈이 더욱 많이 오는지라, 옷이 다 젖고 거동이 추례하니 심중에 헤아려 보되,
'내 거동이 이러하니 주인이 일정 붙이지 아니리니 장차 석식을 어디가 얻어 먹으리오.'
정히 생각하더니, 문득 사람의 울음소리 의의히 들리거늘, 자세히 들으니 곡성이 비절하야 일만가지 설움과 일천가지 한이 소리에 맺혀 촌촌이 그처지니, 생이 희허 탄 왈,
"하늘이 사람을 내시매 마땅히 희락을 같이 하실 것이어늘, 차인의 곡성이 이러하니 일정 무궁한 비회 있는가 싶으니 천도 공번되지 아님이 이렇듯 하도다."
하고 연하야 행하더니, 곡성이 점점 가까워 오며 반백 노인이 몸에 상복을 입고 보를 쓰고 가며 올거늘 생이 나아가 손을 들어 읍하고 문 왈,
"노옹은 어데 사람이며 무슨 일로 통곡하야 행인의 마음을 참담케 하느뇨?"
그 옹이 울기를 그치고 답례하야 가로되,
"나는 절강 사람이러니 나이 육십이라. 구십 노모를 다리고 있으되, 집이 가난하야 농업도 하지 못하고 노버 금년 하간에 죽거늘, 관가 빚을 내어 초상과 영장에 썻더니 빚받을 기한이 넘으매 독촉하기 성화같아 노모를 관가에서 갇우어 빚을 갚아야 놓으리라 하는고로 경향에 아니 빈데 없으되, 푼전을 얻지 못하니 늙은 어미 일정 죽을지라. 고향으로 향하매 울음을 참지 못하더니 존사의 물으심이 있을새, 정사를 고하노라."
생이 청파에 앙천 탄 왈,
"존옹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비히는 듯 하여라. 연이나 얼마나 하면 능히 갚을고?"
그 옹 왈,
"은자 이백냥을 내어 썼더니, 이제 삼백금만 하면 갚으리라."
생이 즉시 메었던 푸개를 벗어 수째 주며 왈,
"이것이 비록 적으나 존옹의 빚을 갚을까 하나이다. 가져가 화를 면하라."
노옹이 황망히 펴보니 은자 삼백냥이 들었더라.
옹이 우연히 한 말에 많은 은자를 얻으니 천만 몽매라. 기쁨이 하늘에 오를 듯 하야 통곡함을 마지 아니하니 생이 문 왈.
"이것이 비록 미하나 그대의 환을 덜까 하였더니 도리어 통곡하니 아지 못게라. 또 무슨 소횡있느뇨?"
노인이 울음을 그치고 사례하야 가로되,
"천만 의외에 생불을 만나 이것을 얻으니 족히 화를 덜고 노모를 살리울지라, 기쁨이 하늘에 오르는 듯 하고 은혜 살을 버히며, 뼈를 빻아도 능히 갚지 못할 바라. 존사의 어진 뜻을 감동하매 자연 통곡하기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생이 손사왈,
"미한 것을 주고 큰 말을 들으니 참괴하여하노라. 다만 공의 행색이 바쁘니 수이 행할지어다."
노옹이 합장 백배하야 사례하고, 성명을 물으니, 답 왈,
"피차 행색이 심히 총총하니, 성명을 이르지 못하나니, 빨리 행하라."
노인이 축수하고 가며 생각하되,
'하늘이 오늘날 성인을 만나게 하시니, 이는 삼생지은이라. 성명을 물어 타일 저집 종이 되려하니, 고집이 이르지 아니하니 짐짓 대현군자로다.'
축수하기를 수십번이나 하니라.
생이 원간 재물 귀한 줄을 모르는지라. 저의 이렇듯 함을 보고 도리어 불안히 여기더라.
생이 푸개를 없이 행하니 행보 더욱 날라 표연히 행하더니, 날이 점점 어둡고 천산만봉이 옥을 무은 듯 하고 인가없으니 춥고 주림을 이기지 못하야 주인을 얻고자 할새, 또 두어봉을 넘어가니 큰 마을이 있으되, 집마다 벌써 불을 혔더라.
생이 촌에 들어가 문을 두드리니, 아무도 동할 이 없고, 묻는 이 없으니, 여러 집이 다 같은지라, 배 고프기 더욱 심하나 하릴 없어 도로 나오되, 조금도 푸개 없음을 개념치 아니 하더니, 문득 멀리 바라보니 동녘 마을에 큰 집이 있으니 화광이 포요하야 재상가 같거늘, 생이 헤오되,
'이 집이나 용납할까'
하고 나아가 문은 두드리니, 한청에 동자묻되,
"밤이 깊고 인적이 그쳤거늘, 어떤 귀객이 이르러 계시뇨?"
생이 답왈,
"나는 행인이러니, 길을 잃고 귀한 땅에 이르르매, 밤이 깊어 주인을 찾지 못하니, 바라건대 그대는 노야께 아뢰어 하로 밤을 지새게 하라."
동자 들어가더니 즉시 나와 이르되,
"노야께서 들어오라 하시나이다."
생이 기꺼, 한가지로 들어가니, 서당에 촉영이 휘황하고 누각이 기이하야 세상같지 아니 하더라.
한 백의노인이 당상에 단좌하였으니, 맑고 기이하여 상예인이 아니더라.
생이 나아가 중계에서 예한대, 공이 줄을 들어 읍하야 가로되,
"노인이 정신이 쇠모하야 귀객을 내려 맞지 못하니 허물을 용서하고 빨리 오르라."
생이 즉시 올라 앉되, 노당이 가로되,
"존객이 석심을 못하였을 것이니, 한그릇 밥을 나옴이 어떠하뇨?"
생이 사례 왈,
"궁한 선비 길을 그릇 들어 귀댁에 이르렀더니, 대접하심을 이렇 듯 과히 하시니 황공 불감하여이다."
노인이 소 왈,
"대인은 적은 인사를 안 일으는다 하니 그대 어찌 적은 말을 하느뇨?"
인하야 동자를 불러 가로되,
"존객의 양이 가장 넓어 뵈니 밥을 한 말만 짓고 찬품을 갖초아 오대, 빨리 하라."
생이 생각하되 처음으로 보며 내 냥 너른줄을 능히 아니
'슬거운 어른이로다'
하고 가만이 일컫더니, 이윽고 동자 식반을 가져오니 과연 말밥이 장하고 산채 정결하야 또한 많더라.
생이 저물도록 주렸다가 밥술을 크게 떠 먹거늘, 노인이 가로되,
"양에 차지 못할진대 더 가져오라 함이 어떠하뇨?"
생이 사양 왈,
"주신 밥이 과하야 소생의 광복을 채웠으니 그만 하사이다."
노옹 왈,
"그대는 양이 적도다. 노인은 소시에 이 둘을 더 먹더니라."
인하여 묻되,
"그대 오늘 큰 적선을 하였으니 노부 기리 감격하노라."
생이 노장의 이렇듯 신기함을 보고 범인이 아닌가 경아함을 마지 아니하야 왈,
"존옹의 물으심이 무슨 일이니꼬? 궁생이 적선할 일이 없소이다."
노옹 왈,
"대인은 사람 속이기를 아니 하나니라."
우 왈,
"그대 저리 먹는 식량에 양식 없이 어이 행하려 하느뇨?"
생이 답 왈,
"이처럼 얻어 먹으면 아니 살리이까?"
노인이 소 왈,
"젊은 사람의 말이 오활하도다. 내 마침 그대 식량을 알아 대접하였거니와, 뉘 그대 성품을 알리오. 나는 그대의 성명을 알거니와 그대는 나의 성명 알아 부질없으매 이르지 아니 하거니와 다만 그대 이리가매 마땅히 안거하야 학문을 넓힐 것이어늘 도로여 유리함이 무익하니 낙양 땅, 청운사에 안정하고 그 절 중이 가장의 여러 궁사를 많이 대접하노니, 그대 그리로 가 안신하야 공부를 착실히 하라. 행냥이 없어서 노부 초초하니 하나 차려 주리라."
하고 문득 벼개밑으로서 돈 네 꺼엄을 내어주며 왈,
"길에는 족히 먹으리니, 청운사로 간즉 좋은 일이 많으리라."
생이 사례한대 노옹이 소 왈,
"삼백여냥 은자는 푸개째 주고도 사례함을 기꺼아니하더니 도리어 사냥 전문을 사례하느뇨?"
우 왈,
"행역이 곤할 것이오, 본대 잠이 짙으니 수이자고 명일에 행하대 다시 나를 찾지 말고 부어놓은 차를 마시라."
생이 악연 왈,
"존사의 말씀이 어이 성실치 아니 하시니이까?"
노옹 왈,
"내 말이 그르지 아니 할 것이니 모로미 의심치 말고 수이 가라."
생이 의혹하나 여러날 신고하야 잠이 더욱 겨운지라, 누워 자매, 동방이 밝는 줄을 깨닫지 못하더니 이제 일어나보니 다만 돈이 곁에 있고 한 종 차와 글쓴 종이 한 장이 있을 따름이오. 그런 장한 누각이 없어지고 편한 바위에 물 소리 뿐이오, 노옹의 거처 없으니 그 선인이런가 의심하야 자탄함을 마지 아니하고 글쓴 종이를 보니 하였으되,
'악장 양공은 애서 이랑에게 부치노니, 노부 세상을 버리매 덧덧이 내 몸이 괴롭도다. 표연히 행매 한낱 푸개어늘 사람을 적선하고 야심토록 주인을 얻지 못하야 너를 배고프되 일호 생각함이 없으니 마음이 크고 덕이 너르도다. 사람이 위하야 감동하니 창천이 어이 감동치 아니리오. 내 너를 위하야 상계에 하루 말매를 얻어 급한 것을 구하여 놓으니 가르친 말을 어그릇지 말고 차를 마시고 빨리 하라.'
하였더라. 생이 간필에 대경하고 또한 감창하야 눈물을 흘리고 차를 마시니 정신이 상쾌하더라.
차종을 걷우고 돈을 허리에 차고 옛일을 생각하며 작야를 기억하매 슬픔을 금치 못하야 석상에 어린 듯이 앉았더니 일진청풍에 종이와 차종이 간데없고 다만 공중에서 수이 가라 하더라.
생이 공중을 향하야 재배하고 행할새, 그 돈으로써 양식을 하야 가더니 팔일만에 낙양에 이르니 주점이 많고 인품이 헌앙 심히 번화하거늘 생이 행하야 물어 왈,
"예서 청운사 몇리나 하며 어디로 가느뇨?"
기인이 답 왈,
"서녘으로 가면 십리나 하되, 경개절승하고 빼어난 뫼가 있으되, 이것이 청운사이오. 거기서는 삼리만 가면 큰 절이 있나니라."
생이 사례하고 가르친대로 십리를 가니 과연 한 뫼 있으되 눈이 녹지 아니 하였고, 새 얼음이 머믈렀으니, 경개와 정기 진실로 비할데 없더라.
이 때, 행인이 드믈고 홍일이 서녘에 기울었거늘, 생이 점점 올라가더니 의의히 먼 북소리 들리거늘, 빨리 행하야 삼, 사리는 가니, 뫼때 둘러 큰 절이 있으니 누각이 영롱하야 구름에 솟았고 절 문을 반만 열었거늘, 생이 들어가니 제승이 저녁 재를 파하고 법어를 외우며 북을 울리는데, 한 노승이 법당에 단좌하였으니 복색과 체글이 크게 도를 일웠더라.
생이 나아가 노승을 향하야 예한대, 장노 전도히 내려 맞아 왈,
"귀객이 어디로 좇아 오시뇨? 빈승이 거야에 일몽을 얻으니, 황룡이 서녘으로 좆아나려, 법당에 들거늘, 놀라 깨치매 오
늘 일정 귀객이 오리라 하야 종일토록 문에서 기다리되, 종적이 없으니 아까 갓들어 왔더니 존객이 오시매 그 골격에 체모 비상하시니 빈승의 꿈이 맞나이다.
생이 손사 왈,
"장몽을 일워 궁사를 증험하니, 관사하여라. 묻노니 이 절 이름은 무엇이라 하며, 가희 양식 없는 손을 용납할소냐?"
장노 합장 대 왈,
"이 절 이름은 청운사요, 빈승이 비록 불민하나 궁수재를 많이 겪었으니, 하물며 귀객을 대접지 아니리이까? 원컨대 존명을 듣고자 하나이다."
생이 답 왈,
"내 성은 이요, 명은 경모요, 자는 문성이니라. 장노의 성명을 알고자 하노라."
노승 왈,
"빈승이 성명을 감추어 온지 오래니이다만, 일컫기를 현불장노라 하나이다."
인하야 방중에 들어가 제자를 분부하야 이르되,
이 이상공 체골을 보니 일정 식량이 광대한 선비라, 재식을 많이 하고 정결히 하야 오라."
행자 청령하고 가더니, 즉시 재를 하야 드릴새, 음식이 큰 그릇에 장하고 산채 정결하더라.
생이 밥먹기를 마치매,
"생이 의탁할 데 없는 사람이라. 한낱 돈이 몸을 좇은 것이 없으니, 정히 근심하더니 하늘의 도우심을 입어 장노를 만나 관대함을 입으니이다. 행함을 이기지 못하여라."
장노 합장 대 왈,
"상공은 대인 기상이라, 타일 복록이 금세에 미칠 이 없으리니, 진실로 이른바 유복한 연인이라. 비록 귀경코자 하나 어려우리니 어찌 정성을 다하지 아니하리이까 마는 빈승의 절이 호부치이 못하니, 뜻과 같지 못할까 근심하나니 사례하심을 입사오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할소이다."
인하야 이르되,
"뒤에 초당이 있어 가장 좋고 고요하니, 독서하기 좋은지라. 상공잉 이곳에 처하소서. 의식은 빈승이 염려치 아니시게 하리이다."
하고 행자 하나를 불러 이르되,
"이 중의 이름은 청아이니 인물이 진실로 영오 민첩하니 상공 좌우에 두어 수고로움을 나누소서."
생이 흠신 사례하고 초당으로 갈새, 장노 청아와 한가지로 위하야 초당에 이르러 보니, 고요하고 유벽한 중 정결, 표연하야 심히 기특하더라.
방중에 들어가 보니, 한 간에는 만권서를 쌓았고 문방사우의 것이 갖지 아닌 것이 없더라.
생이 문방의 가짐을 가장 이꺼 장노로 더불어 야심토록 말씀할새, 용상부박한 태없으니 생이 항복하고, 장노도 생의 풍신이 기이하고 언어 음성이 속인이 아니라, 본 바 처음이니 크게 기꺼 가장 공경하더라.
장노 제승을 경계 왈,
"이 상공이 크게 비상하니 타일 이 절에 큰 은덕이 있으리니 너희는 경망히 대접지 말라."
하더라.
생이 몸이 심히 편한지라, 삼일을 쉬어 비로소 목을 열어 글읽기를 시작하니 주야 일시를 쉬지 아녀, 아침으로부터 저녁에 이르고 저녁으로부터 낮에 이르기, 그침이 없으니 성음이 부절이라. 웅위웅장하고 청아쇄락하야 구우의 항녀성과 선인 소사의 쌍봉옥저를 완롱하는 듯 하니 뒷뫼의 잔나비와 앞산의 금수 날라와 춤추는지라, 모든 중이 서로 즐겨 일할 줄을 잊고 어린 듯이 듣더라.
이러구러 세월을 보내니, 장노 생의 인물이 너르고 굵은 줄을 더욱 사랑하고 공경하야 대접이 새롭고, 제승이 다 공경하며, 청아 한 때를 떠나지 아니하야, 응대 그림자 얼굴을 좇음같으니 생이 백사 편안하야 장차 오년에 글 읽기를 부지런히 하니 문리의 넓음이 예사롭지 아니하여 창해를 쏟으며 팔두를 거후르니 구경을 통하야 복중에 수장하고, 시부의 신이함이 귀신을 놀래고 필법의 빼어남이 오앙ㄱ을 동하고 주옥 금수를 놓는지라 당금을 의논치 말고 예로부터 둘이 없고 육도삼략과 천서지리를 달통하니 문무의 전재며 성현명인이 일워 기이한 일과 비상함이 변화무궁하니 제승이 다 공구하더라.
<낙성비룡권지이>
시절이 정히 납월 중순을 당하야 한 월이 장천에 빛을 돕고 매림 설경 소쇄절승하니, 생이 청아를 다리고 산문에 나와 두루 유완하며 한 가희 풍월을 읊더니 청운산 청운동에 두 재사 있으니 일인은 성은 임이요 명은 강수요, 일인은 성은 유요 명은 백문이니 양인이 얼굴이 아름답고 재주 빼어나되, 조상부모하고 각각 실가로써 의탁하였으니, 이인이 지척에 있어 연기같고 학문과 용모 서로 나림이 없으니 절친봉우되어 조석 상종하야 양인이 삼춘가절과 월백 배림에 손을 이끌어 꽃다운 그림자를 찾더니 차시를 당하야 설경 한뫼와 교교월백이 족히 문인의 흥을 돕는지라. 야인이 손을 이끌어 매화 아래 배회하며 높은 데 올라 원근경개를 살피더니, 문득 글 읊는 소리 들리거늘, 귀기우려 들으니 성음이 쇄락 웅장하야 반공에 어리고, 문장의 빛남이 자기 양인이 스스로 상좌할러라.
이인이 경아 왈,
"벅벅이 이태백이 적강하였도다. 그 성음과 문장이 금세에 듣지 못하던 자라. 한번 구경함이 어찌 기쁘지 아니리오. 바삐 걸어 산, 물 넘어 문 앞에 이르러 바라보니 한 소년 장자 갈건, 혁대를 정히 하고 백포 광삼을 붙여 배회하니, 상거 겨우 삼삼보는 한지라, 양인이 그 얼굴을 보매 빼어난 골격이 웅장 기이하고 광풍폐월지상이오, 수파백년지용이라 이인이 놀라고 기이함을 마지 아니하야 어린 듯 첨망하기를 반향이나 하더니 빨리 나아가 생을 향하야 팔을 들어 절하야 가로되,
"소제 양인은 청운산 남녘 청운동에 있는 선비려니, 한 월백설과 천봉 향기를 한번 구경하염직 할새, 우연히 배회하다가 현형의 읊는 글을 들으니 성음, 문장이 태백과 상여에 나리지 아니하니 경복함을 이기지 못하야 이에 이르과이다."
생이 흡흡히 손을 들어 답사 왈,
"소제는 원방 사람이라. 우연히 이 땅에 유락하야 가절을 당하야 허송함이 아까운 고로 이곳에 배회하야 스스로 적막함을 한하더니, 천한 자최를 이형이 찾으시니, 다사하여이다."
이생 왈,
"아등 양인은 죽마붕우이니 조석 상종하야 회포를 붙이는 손이라. 인형은 소년 청춘과 재학덕망이 범인과 같지 아니하니 일정 오륜이 갖초리라."
생이 문득 탄하야 가로되,
"소제는 인간 박복한 사람이라. 강보에 부모를 잃고, 또 형제 없으며, 공명을 이루지 못하였고, 겸하야 부모없으니 비록 실가 있으나 어찌 인형의 빛남을 당하오리."
이 쟝생이 장탄 왈,
"형의 회포를 들으니, 소제배 자연 척감하여라. 묻노니 노형의 귀향이 어디이며 존성과 대명 들음을 원하노라."
생이 답 왈,
"소제는 금주인이니, 성은 이요, 이름은 겨오라. 일신이 표박하야 이 땅에 이르른지 벌써 오년이어니와, 청컨대 이형의 존후를 듣고자 하노라."
이인이 성명을 이르고 왈,
"소제 이인이 회포 인형과 일반이라. 경경한 일신이 외로와 붕우에게 의지하였더니 청천이 도우심을 입어 월하에 인형을 만나니 미한 재질을 혐의로의 여기지 아니실진대, 석일 삼걸의 의를 효칙하야 채잡기를 허하시리이까?"
생이 사례 왈,
"이형 소제를 버리지 아니실진대, 붕우지신을 지키어 일생을 즐거이 마치기를 바라노라."
이인이 대희하야 연치를 물으니 이생이 또한 동년이라. 삼인이 더욱 다행하야 왈,
"이는 하늘이 우리 삼인을 위의하시도다. 인하야 야심토록 매수하에서 담화하며 글을 지어 창화하니 이생의 문장도락과 언어 체격이 창해고산 같은지라, 이인이 사랑하고 공경함을 마지 아니하고 저 양인의 풍모 아름답고 무장이 이 두같으니 공경, 사랑하야 늦게야 만남을 한 하더라."
밤이 깊으매, 찬서리 깁옷을 적시고 외로운 기러기 장천에 그쳐지니, 각각 손을 나놔 명일에 봄을 기약하고 돌아갈새, 이생이 청아를 다리고 절에 돌아오니, 장노 문 왈,
"밤이 깊고 한기 괴롭거늘 어이 그리 아니 오시더이꼬?"
생이 임, 유 이인을 월하에 만나 서로 사귄 말을 이르니 장노 왈,
"이인이 재사이어니와, 상공이 보매, 어떻더니이까?"
생 왈,
"가장 현사라. 더디 만난 줄을 한할러라."
장노 또한 칭찬하더라.
생이 명일 관세도 아니하고 글을 읽더니, 청아 연망히 들어와, 고 왈,
"임, 유 이상공이 옥호와 진찬을 들고 오시나이다."
생이 즉시 맞아 이르되,
"이형은 짐짓 사사로다."
임생 왈,
"월하에 형을 만나매, 그 큰 기상을 알지니 어이 심신함이 있으리오."
유생 왈,
"주찬을 가져왔으니 인형이 오래 시간에 머물러 주육을 그쳤을 것으니 금일 해소함이 어떠하뇨?"
생이 손사하고, 삼인이 잔을 날려 창음하더니, 날이 기을으매 흩어지다.
차후, 서로 모아 하루도 아니 볼 적이 없으니 서로 정이 동기에 지나더라.
벌써 명년 춘에 이르러, 청운산 봄빛이 명미하야 선간 같으니 삼인이 소매를 이끌어 청운산에 오르매, 만화쟁개하야 봄을 위하야 웃고 양유청청하야 일만 줄실을 드리워 춘풍이 움직이며, 맑은 시내 화림에 자잔히 흐르니 경개 절승한지라, 삼인이 승승하야 시를 지어 화답하고 옥배를 날려 즐김이 무궁하되, 모직 인생은 글지을 적이나, 말할 적이나 심히 침중하고 임, 유 양인은 민첩 표일하더라.
일일은 임, 유 양인이 청운사에 이르러 이생을 대하여 왈,
"들으니 경사에서 걸파하야 인재를 뻬신다 하야 우리 두 사람이 발행코자 하나니, 인형은 더욱 고산대해의 문장이라. 한번 가매 당당히 빛난 이름이 구천에 오르리니 한가지로 감이 어떠하뇨?
생이 왈,
"비록 마땅하나 소제의 문재 오히려 미거하야 이형에게 능히 미치지 못하리니 수고로이 행함이 부질업ㅂㅅ는지라. 이제 십년 후에야 과거를 보려 정하였으니 어이 미리 행하리오. 이형은 옥당 미재라, 한번 가매 계희 머리에 빛날 것이니 소제는 그때 하객이 되려 하노라."
양인이 소 왈,
"형언이 유러하나 또한 그렇지 아니하다. 형의 문장 대재를 감추고 아등의 반대 같은 재주를 권장하니 능히 부끄럽기를 면하랴. 형의 뜻이 이 같을진대, 우리 마땅히 행하려니와, 떠나기 가장 의의하도다."
이생 왈,
"만나며 흩어짐이 떳떳한지라, 어이 잠깐 이별함을 유유하리오."
삼인이 흩어지더라.
몇 수월이 지나매 임, 유 이인이 행리를 수습하야 발행하려 할새, 이생이 십리정에 가 보내니, 삼인이 서로 의의하야 강개함을 마지 아니하고, 각각 별장을 지어 떠나니 삭풍은 금빛을 띄워 늠늠하고 낙엽이 분분하니, 인생이 더욱 심사 울울하야 서녁으로 머리를 두르고 서향의 부모 묘하에 향하여 신세를 슬허 유림하야 서서 기리니, 문리 늘 것이 없으나 스스로 선배 업을 힘씀이러라.
시에, 금주 양소저 이생을 이별한지 이미 육년이로되, 어안이 서신을 전함이 없으니 봄제비 주렴에 춤추고 가을 기러기 한천에 홀로 울제, 사창을 의지하야 홍안녹발에 근심이 맺혀 단장회한이 날로 깊으나 다만 주야로 침선의 값을 받아 구고제사를 극진히 하더니 정히 팔월 망일에 제전으로 차려 친히 구고 묘하에 올라 향을 꽂고 제하기를 마치매, 버거 유모에게 친히 잔을 부으며 슬피 통곡하니 좌우 다 읍 하더라.
날이 저물매 돌아오니 물색이 처량하야 비회를 돕는지라 감창함을 이기지 못하야 벼개를 비껴 진진히 느끼더니 기운이 쇠약하야 눈을 감으니 일진 기향이 코에 지나거늘, 소저 한쌍 명목을 들으니, 한 청의 여동이 앞을 향 하였으니 빙정뇨라 하야 인세 사람이 아니어늘, 소저 묻고저 하되 기운이 진하야 능히 묻지 못하더니,
시녀 고 왈,
"우리 노야와 부인이 소저를 청하시더이다."
소저 왈,
"노야 부인이 뉘시며, 어디 계시느뇨?"
대 왈,
"가까이 계시니 가시면 자세히 알으시리이다."
소저 왈,
"비록 가고자 하나 거마를 조비치 아녔으니, 어찌 가리오."
시녀 왈,
"밖에 거마 이르렀으니 빨리 가사이다."
소저 소두를 헤쓸고 시녀를 좇아 수레에 오르니, 경각에 한 집에 다달아 보니 문에 금자로 새겼으되 '기공선지개'라 하였고 붉은 기둥과 옥난간이 운무를 조롱하니 눈에 현황하더라.
시녀 인도하야 무에 이르러 수레 당전에 다다르매 시녀 가르쳐 이르되,
"저 당상에 노야와 부인이 계시니 예를 행하소서."
소저 당을 바라고 중계에서 바새한대, 당상에서 명하야 오르라 하니, 소저 올라보니, 한 재상과 부인이 당상에 단좌하였으니 풍신이 늠늠하고 위의 단정하되 이인이 다 술을 반만 취하고 좌우 시녀 수풀같으니 위의 엄하더라.
그 재상이 이르되,
"그대 나를 알소냐?"
소저 염용 대 왈,
"첩은 인간 잔미한 속인이라, 어이 감히 존안을 알음이 있으리이까?"
공이 소 왈,
"나는 곳 현부의 존구요, 저 부인은 현부의 존고이니, 가운이 불행하야 돈아 삼세에 우리 부처를 여의고 칠세에 유모를 죽여 인신이 고독하야 상집에 종이 되기를 면치 못하였거늘, 그대 대인이 거두심을 힘입어 그대 같은 숙덕현부를 얻으니 우리 비록 혼백이나 즐김이 무궁하더니 돈아 이곳을 떠난 후로 현부의 정성이 더욱 간절하니 우리 그윽히 감격하야 하더니 아까 정성된 제를 먹으며 오히려 주기 있는지라, 묘하에서 우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동하야 슬픔이 많으니, 위하야 타루함을 현부 어찌 알리오. 연이나 돈아 나감으로 현부 슬퍼함이 과도하야 약질이 상키에 이르렀으니, 오늘 청하야 슬픈 회포를 펴고저 하나니, 사람이 세에 나매 부귀빈천과 복리애락이 막비 천명이라. 과도히 상희 할바 아니니 이제 돈아 비록 낙엽같이 표박하나 후일에 마땅히 영화로이 돌아오리니, 총혜한 현부일망정 알 것이어늘 어찌 속절없이 화용을 상하오리오. 차후 관심하야 재삼 보중하라."
소저 구고를 처음으로 보니 반갑고 슬픔이 교집하나 능히 심사를 베풀지 못하더니 말씀이 이에 미치매 듣기를 마치고 일어 두번 절하고 다시 업디어 왈,
"천첩이 불능누질로 성문에 몸을 의탁한지 이에 십일년이라. 덕이 박하고 인사 미하와 제사를 정성으로 받들지 못하옵고 지아비를 섬기지 못하옵다가 한번 나가매 하마 육년에 이르도록 소식이 묘연하니, 명교의 죄인이요, 규중에 버리인 인생이라. 일신이 고고하고 회포 비절하야 아까 소리남을 깨닫지 못하야 존구 들으시게 하오니 죄 만사무석이로소이다."
공이 왈,
"우리 부부 인간에서 심히 빈곤하더니 이에 이르러는 외람한 작논을 받아 이리 화려히 안거하니 사람이 사납지 아닐지언정 어이 부귀치 못할까 근심하리오."
부인이 소저의 손을 잡고 머리를 어루만져 유체하니, 공이 말려 왈,
"현부 예상하니 부인은 그치라."
소저 고쳐 업디어 왈,
"첩이 이문에 의탁하였음이 벌써 십여년이로되 구고 존안을 몽중에도 뵈온 일이 없삽더니, 금일 존안을 뵈와 하교를 듣자오니 첩의 하정을 아뢰올지라. 원컨대 첩의 혼백을 인도하사 구도 좌하에 뫼옴을 바라나이다."
공이 답 왈,
"수요장단과 공명 부귀함이 다 때 잇나니 현부는 이런 말을 경히 말라. 비록 일시 괴로우나 장래 복록이 무궁하리니 어찌 우리 자취를 따르리오."
소저 감상함을 마지 아니 하더니, 부인이 탄 왈,
"가련하다 나의 현부, 어찌 회포 이같이 슬프뇨?"
공이 청의 시녀를 돌아봐 왈,
"현부 온지 오래니 차를 먹이라."
시녀 즉시 옥종에 차를 내오니, 소저받아 마시매, 혼혼한 정신이 상쾌하더라.
공이 명하야 왈,
"현부 온지 오래니 수이 돌아가라."
소저 울며 일어 하직하되, 공이 재삼 위로하고 부인이 연애하야 손을 잡고 유유하니, 소저 배별하고 전상에 나리고 저 하나 옥계 심히 높으니, 내리려하다가 놀라 깨치니 침변일몽이라.
소저 황홀하야 벼개를 밀치고 몽사를 생각하니, 슬픔이 새롭더라.
이 때 곁 마을 김후성이란 사람이 나이 젊고 인품이 후하나 실가를 못얻었더니 양소저의 선자같은 얼굴과 삼모의 덕행을 겸하야 규리의 단장함을 듣고, 문득 동상을 맺고저 하야 뜻을 통하니 한 부인이 천금 여아의 일생을 맡고 중심에 슬퍼하더니 차언을 들으매 도리어 여아의 빙청옥결같은 마음을 생각지 아니하고 귀를 기울여 허락하고 이부를 불러 개유하라 하니 이부 가치 아님을 고하되, 부인이 정색코 듣지 아니하니 양인이 탄식코 대인각에 이르니, 이 때 삼춘을 당하야 만화향기를 토하고 유수의 연엽이 성하야 이향이 습인하니, 소저 경물을 대하야 난간에 비겨 탄식하더니, 이 부인이 이르니 급히 나려 맞은대 이인 왈,
"봄 경이 정히 아름답거늘, 현매의 유미에 시름이 떠날 적이 없도다."
소저 희허 탄 왈,
"춘경이 보암직하나 소제의 시르은 더욱 깊도소이다."
인하야 서로 한탄할새, 이인이 차마 말을 발치 못하다가 장구에야 존고의 뜻을 이르니, 소저 청파에 안색이 여토하야 오래 말을 못하다가 정색코 왈,
"이 형의 현숙하심이 타인에 지나므로 소매의 심정을 기이는 바 없고 모친 버금으로 하더니 어찌 이런 말을 구외에 내어 젊은 인생으로 하여금 슬픈 혼백이 되게 하고 하시나이까."
이인이 휘루 장탄하고 그 존고의 명을 어기오지 못함인 줄 이르니, 소저 오열하야 겨우 대 왈,
"다른 일은 수화라도 모명을 거역지 못하려니와 이는 소매의 잔명을 마칠 따름이라."
인하야 전일을 이르고 또 저를 구박하야 내어보내던 일을 생각하매 기운이 막혀 쓸어질 듯 하니, 이인이 잔잉함을 이기지 못하야 위로하고 왈,
"그대와 설부인이 존구 생시의 한쌍 명주이러니, 이제 이르러 설부인은 영귀하대, 현매의 재덕 용광으로써 이렇듯 비절참담하니 어찌 존고의 심사 차악지 아니시리오. 우리 볼 적마다 무심 아니하니 차후란 존고 앞에서 수색을 뵈지 말라 어떠하뇨."
소저 기리 탄 왈,
"봄 꽃이 떨어지매, 혹 날아 비단 자리에도 지며, 혹 날아 구렁에도 떨어지나니, 인생이 어이 낙화와 다르리오. 마땅히 저의 가르치신대로 하사이다."
이인이 일어 정당으로 들어가니 소저 슬픔이 흉금에 막혀 기운을 수습지 못하더라.
이인이 부인께 소저의 말을 사뢰고 눈물을 드리우니, 우인이 듣고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여 오열 유체 왈,
"내 제 뜻을 어이 모르리오마는 설움이 골수에 박혀 비할데 없으니, 박한 마음을 일으켜 그리 하였더니 제 뜻을 그리 정하였으면 다시 강박하리오. 저의 수용을 볼적마다 내 가슴을 써는 듯 하니 어니 참으리오."
인하야 탄식 왈,
"아까는 필녀를 참혹히고 마친지고."
슬허함을 마지 아니하거늘 이부 온화한 말씀으로 위로하더니, 차일 저녁 문안에 소저 안색이 전일과 같지 아니하여 은화 자약하니, 부인이 기색을 알고 잔잉함을 이기지 못하며 마음을 잠깐 진정하더라.
이적에, 설추관이 남주 도임한지 육년에 백성이 칭송하니, 옮겨 강주 태수를 하이니, 한부인이 대열하며 일가 기꺼함이 측량없더라.
제설, 이생이 청운사에서 독서한지 칠년이러니 이적에 유, 임 이생이 급제하야 유생은 호부시랑을 하고 임생은 한림학사를 하였는지라.
이생이 이우의 득의함을 듣고 기꺼하더니 일일을 생이 장노더러 이르되,
"내 예서 독서하기를 칠년을 하야 만권서 이미 복중에 장하였으니 한번 유산하야 천하 명승지를 거둠이 어찌 쾌치 아니 하리오. 사년을 기약하야 만물지기를 살피고자 하나니 장노는 나를 위하야 한가지로 감이 어떠하뇨?"
장노 또한 기꺼 허락하고 행리를 수습하야 소선을 사 생으로 더불어 배를 띄워 갈새, 여러날을 행하야 남월지계에 이르러서는 산수 절승하야 짐짓 문인의 한번 놀음직한 곳이라.
생이 장노를 향하야 왈,
"우리 천하지형을 다 볼 것이니, 먼저 명산을 구경하고, 버거 대해를 봄이 옳도다."
장노 왈,
"차언이 마땅하니 우리 올제 사년을 기약하였으니 이년을 명상에 유람하고, 이년은 대해에 풍류하명 거의 마음이 훤출하리이다.
하고 이인이 배에 나려 언덕에 올라 두루 구경하며 점점 들어가니 천산만수 기이치 아닌 곳이 없은지라, 이러구러 해 진 하고 명년 춘을 당하니 생과 장노는 높은 흥이 더욱 표연하야 아니 가는 곳이 없더라.
차설 임강수, 유백문이 급제한지 이년이되, 득의하야 서로 즐김이 비무하나 이생을 생각하고 화전 월하에 초창함을 마지 아니하더니 이에 이르러 이인이 가속 대려오랴 하야 한달 말매를 얻고 위의를 다 떨치고 낙양을 향하야 오더니, 여러날만에 낙양에 이르르니, 생을 생각하고 먼저 청운사에 이르니 큰 절이 적적하야 젊은 중이 저녁재를 먹거늘, 이생이 나아가니, 모든 중이 예하야 치하하거늘 이인이 급히 문 왈,
"치하는 나회고 이생과 장노 어데 있느뇨?"
청아 왈,
"상과 스승이 유산하려 사년을 기약코 지난해에 편주를 타고 가시나이다."
하고, 인하야 한봉 서찰을 드려 왈,
"이상공이 임행에 이 서간을 소승을 맡기시며 이상공께 전하라 하시니, 왕래인을 얻지 못하야 이제야 아뢰나이다."
이인이 청파에 악연하야 받아보니 가라사대,
'영제 경모는 돈수하고, 임, 유 이형 족하에 올리나리, 소제 우연히 선인을 만나니 월하에 교도를 맺어 사귐이 옅으되, 정이 깊고 만남이 쉬오대 마음이 굳어 동창세재에 시서를 음영하야 손을 이끌어 아니 논 데 없으니 의의한 정이 철석같더니, 문득 원별을 당하야 멀리 분수하매 구구일념이 능히 버릴 곳이 없더니 홀연 형의 희보 이르니 몸이 청운에 빛난지라, 영행함이 꿈속을 좇아남 같으나 님하궁제의 사렴지심이 더 하는도다. 아지 못게라. 하늘이 만남을 우연히 아니하시고 떠남을 쉽게 하니 소제 궁림에서 초창함이 그 몇날인동 알리오. 이제 행리를 수습하야 천하에 오유하랴 하나니, 이형의 종적이 더욱 먼지라, 의연히 꿈속을 좇아 옛일을 염할 따름이로다. 소제 이제 향하며, 두리건대 삼, 사년이 될지니 기한에 돌아온즉 족히 이형으로 더불어 사렴지회를 베풀지라. 종이를 임하니 더욱 간절함을 이기지 못하니, 붓을 들어 능히 이르지 못하노라'
하였더라.
이인이 간필에 여취여치하야 오래 어린 듯 하더니 탄하야 왈,
"이생이 어이 이해까지나 머므르지 못한고."
또 이르되,
"가감에 글을 머물러 우리를 물으니 가장 신의의 친구로다."
칭찬하고 초창하다가 각각 집으로 돌아가 권솔하야 경사로 돌아가니 상이 이인의 벼슬을 돋우어 임강수로 경주 총마어사를 하이시고, 유백문으로 예부시중으로 하이시니, 일생이 즉시 경주에 이르러 공사를 상명히 하니 백성이 일컫기를 마지 아니 하더라.
기한이 넘으매, 벌써 삼년에 이르렀는지라, 배를 타고 경사로 향할새, 길이 서호를 지나는지라, 호상풍경을 구경코자하야 강변에 배를 띄워 가더니, 때 삼월 망간이라.
밤을 당하니 봄하늘이 유아하고 밤물결이 고요한데, 비단돛을 높이 달아 채선을 띄우니 백랑창파에 흥이 더욱 발하야 임생이 선창에 앉아 노래부름을 깨닫지 못하더니 멀리서 퉁소소리 나거늘 어사 노래를 그치고 들으니 맑은 소리와 유화한 곡조 구소에 어리니 난봉이 나려와 춤추는 듯 하더라.
어사 사공을 돌아보아 왈,
"퉁소 소리 기이하니 인속곡조 아니로다."다시 듣더니 멀리서 삿대 두르는 소리 나며 퉁소소리 점점 가깝거늘 임생이 황홀하야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일척 소선이 춘풍을 좇아 백랑에 풍유하야 나려 오며 퉁소소리 더욱 기특하니 어사 손뼉쳐 칭찬함을 마지 아니 하더니, 배 점점 가까운지라., 자시 보니 선중에 두 사람이 앉았으니 하나는 승이요, 하나는 선비라 휜옷과 기이한 풍채 표연하니, 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청운산 현불 장노와 이경작이니, 이인이 유람한지 사년이라. 처하에 두루 놀아 명산대천을 아니 본 데 없으니, 다시 볼 곳이 없어 서호에 배를 띄워 정희 운산을 향하더니 이곳에서 임어사를 만나니 서로 반기고 맞는 정이 무궁하나 하늘로 좇아 나리는 듯 하야 삼인이 별회를 일러 날이 새는 줄 깨닫지 못하더라.
어사 이생을 위하야 선중에 오일을 머물러 비로소 서로 손을 나눌새, 이별하는 회포 간절하야 삼인이 각각 글을 지어 위로하니 이생이 사년 산수에 한자 글을 허비치 아니하였다가 금일 별회를 일우니, 웅장표일한 문장과 청신준매한 글 재 사람을 경동하니 임어사 대경하야 칭찬 왈,
"형의 문장이 출중하나 이렇듯 웅장을 이룸은 소제 아니 못하였다가 형이 이런 문장을 품었으니 한번 뿜으매, 용문이 비동하리니 경사 설과 금년 팔월초삼일이라. 형이 모로미 범연히 듣지 말고 과거에 나아감이 어떠하뇨?"
생 왈,
"만일 대과 있을진대, 보기 방해롭지 아니하니 형이 올라 간후 소제 당당히 뒤를 좇으리라."
차시, 장노와 이생이 또한 운산에 이르러는 조석에 글을 일우니, 너른 문장과 맑은 시법이 더욱 새로운지라, 장노 심히 상득하야 공경하더라.
이러구러 여름이 진하고 첫가을이 된지라, 생이 행리를 수습하야 경사로 향할새, 장노와 세승이 떠남을 슾러하여 반정에 가 휘루하야 이별하거늘, 생이 또한 처연히 이별하고 장노를 향하야 십년 양육한 은혜를 재삼 사례하니, 장노 합장 왈,
"상공은 하늘 사람이라, 우연히 폐사에 이르러 계시거늘, 궁한 절이 의식이 유여치 못하야 괴로이 머므시다가 금일 돌아가시니, 빈승의 한한 바 깊어 해 오래나 능히 풀리지 못할까 하나이다. 상공이 이번 가시매 당당히 용문에 고등하리니 후일에 빈승의 절에 들러 노회를 위로하소서."
생이 재삼 치사하고 이별하니, 장노 말 하나와 아동하나를 주어 원행을 도운대, 생이 굳이 사양하야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걸어, 오일을 행하야 경사에 이르니, 벌써 칠월이 진하고 팔월 초 길이라.
과장이 촉박하였으니 임 유 이인을 능히 찾지 못하고 겨우 주인을 정하야 시구를 차려 과장에 나아가, 글제를 보매 문득 복중에 바다가 움직여 쓰기를 마치매, 필법이 비동하야 구룡이서리고, 만학이 춤추는 듯 넓은 문장은 광천을 흔들고 맑은 귀법은 음양의 정기를 모았으니, 진실로 천추 만고 일일이라.
글바치기를 마치매, 점심을 먹고 밤 행담을 베고 잠을 깊이 들었더니 천제 용두천에 어파하사 제신으로 더불어 모든 시권을 보실새, 삼백여장을 읽다가 평평하야 뛰어난 재주 없은지라 천제 불안하야 하시더니 한 초라한 정최 시권중에 있거늘 상이 친히 펴보시니 필법이 기이하야 사람을 놀랍게 하니 용안이 대열하사 밑글을 보시매 연하야 무릎을 쳐 경아하심을 마지 아니하시고 제신을 주어 가라사대,
"짐이 보위에 있은지 당초 이십년이라. 인재를 많이 얻었으되, 이렇 듯 한 문장 필법을 구경치 못하였더니, 아지 못게라. 어떤 사람이 이렇듯 웅장한 재조를 품었는고."
제신이 보기를 마치매, 실색 칭찬하야 가로되,
"이글이 너르고 웅장하며 맑고 그윽하야 천고에 드믄 문장이니 이 글 지운 선비 필연 영웅호걸이라. 빨리 불러 그 의표를 보사이다."
제 연타 하시니, 제신이 비봉을 떠히매, 이 금주 이경모 연이 삼십이라 하였더라.
제신이 일시에 소리하야 장원을 부를새, 이 때 경작이 점심 그릇을 베고 잠이 깊었더니, 부르는 소리 심히 급하되, 응할 이 없으니 모든 사람이 경작을 흔들어 깨온대, 생이 잠을 이기지 못하야 겨우 일어 앉으매 크게 웨어 가로대,
"갑과 장원은 금주인 이경모의 년이 삼십이라."
외기 두어번에 이른대, 경작이 잠이 몽롱하야 대답지 못하더니, 연하야 불러 사오번에 미쳐는 자기 갑과에 빠인줄 알고, 또 부르는 소리 급한지라, 생이 의연히 일어 단지 앞에 나아간대, 제 보시매 희동안색하샤 이에 금포어화와 쌍개천동을 사급하시고 즉시 어사라 하이시며, 노복과 가재를 배배히 주시니 경작이 천은을 숙사하고 궐문에 나니 모든 하리 구름같아야, 백마금안에 추종이 옹위하니 아름다운 풍채는 금풍에 더욱 빛나고 명을 일워 이름을 빛내나, 기쁨을 잊고 부모를 생각하매, 심사 새로이 창감한지라. 하리를 분부하야 친히 부친집을 찾을새, 오래 주인이 없으니 능히 알 이 없은지라. 생이 심신이 아득하야 부친 이르을 T 집을 찾으니, 최후에야일인이 가리키거늘, 장원이 집에 이르러 문정에 들어가니 두 늙은 계집과 한 노인이 앉아서 서로 탄식하다가 생을 보니, 이는 원간 경열 차섬 이비 노자 유복이라. 금주가 잃은 공자인줄 몽매엔들 어이 뜻하였으리오.
생이 바로 내당에 들어가니 집이 퇴락하고 실중이 적적하야 심히 참절소조하더라.
생이 한번 보매, 슬픈 마음이 더욱 간절하야 누수 방방하거늘, 경열, 차섬이 하리에게 물어 비로소 금주서 잃은 공자인 줄 알고 기쁨이 하늘로 좇아 나린 듯 하야 뛰놀아 들어가 생을 인도하야 가묘에 이르니 풀이 오목히 길었고 티끌이 석자나 하였더라.
생이 가묘에 배알할새, 다만 망극함이 천지 아득하고 종천지통이 울음을 좇아 나니 가묘를 붙들고 두어 식경이나 통곡하더니, 소리 그쳐지고 기운이 진하여 두어되 피를 토하고 자리에 거꾸러지니, 모두 대경하야 구호하매, 정신을 차려 다시 통곡함을 마지 아니 하거늘, 하리 붙들아 나오니 생이 밤중에 이르러 부모 계시던 곳을 보매, 더욱 망극하여하는 중, 벽상에 그 부친의 글씨 두어장이 붙이었으니, 반갑고 슬픔이 더하야 필적을 우러러 모시며 곡통하기를 종일토록 그치지 아니하고 촉사의 비회 교극하니, 능히 정치 못하야 당중에 나와 노복 경열, 차섬 등을 불러 나아오라 하니 삼인이 어사를 홍포 기슭을 잡고 오래 통곡한대, 장원이 더욱 창감하야 다시 통곡하니 석목이 다 슬퍼하는 듯 하다.
경열 등이 석식을 차려 장원을 먹이고 기쁨이 극하니, 도리어 어린 듯 하더라.
이윽고 하리 총총히 들어와 보되, 임어사 노야와 유시중 노야 와 계시이다.
장원이 즉시 남아 잘새, 삼인이 반김을 측량치 못하야 서로 손을 잡고 분분히 치하하되, 오직 장원은 화기 소연하니 이인이 문 왈,
"형이 삼십에 등과하매, 문득 장원을 하고 문장 풍채를 공경치 아닐이 없거늘, 도리어 기꺼 아니함은 어찌오."
장원이 장탄 왈,
"미한 몸이 천은을 과몽하니 스스로 당치못함을 두려워할지인정, 어이 기쁜 줄을 모르리오마는 부모를 상하고 공명을 일워 옛집에 돌아와 가묘에 배알하매, 종일 통곡하되 한소리 응하심이 없으니 종천의 설움이 흉격에 막히니, 오래 이형을 떠났다가 만난대, 능히 정을 펴지 못하노라."
인하야 추연하야 봉안에 쌍루 연락하니, 이 인이 감창함을 이기지 못하야 능히 실내를 보채여 유희치 못하더라.
장원이 머믈어 삼일 유가를 한 후, 어사 하신 집에 이르러 천여간 주궁대궐이 구름에 솟았는데, 옥단금계와 붉은 박공이 공후의 집 같더라.
장원이 심리에 과분이 여겨 즐겨 아니하더니, 내당에 들어가 노복을 점고하니 무수한 노복이 수천에 이르고 고중에 금백과 채단이 구산 같아여 전답이 무궁하니 장원이 기리 천은을 생각하매 외람함이 극하나 예사 주시는 것이라 사양치 못하고 사당을 수소한 후, 부모 조종가묘를 모시고 제전을 갖추어 제문 지어 슬피 통국하고 제하니라.
장원이 인하야 이곳에 머무니 임, 유 이인이 조석으로 왕래하야 구정을 이르며 친함이 골육형에제 지내더라.
천제 이어사를 크게 총애하시고 백뇨 공경치 아닐이 없으니 명망이 일시를 진동하더라.
장원이 차시를 당하야는 그 부인 양씨를 생각하고 한때 바쁜지라, 궐실함을 아뢰고 한달 말매를 얻어 수삼일간 발행하려 하더라.
차시에 번왕 남곽이 병을 몰아 크게 강서를 침범하야 위엄이 진동하니, 강서 태수 설인수 세 급함을 상표 하였거늘, 상이 제신을 모으시고 크게 근심하신대, 중관이 다 양승상을 생각하야 서로 일컫고 눈물을 뿌리더니, 이부상서 출반 주 왈,
"남곽이 강서를 침범하야 화적지 아닌지라, 마땅히 덕량이 과인한 이를 보내어 진무하리니, 금방 장원 이경모의 글을 보오니 문법이 비상하야 하늘의 크고 높은 것과 바다의 흐르고 깊음과 뫼의 맑고 좋은 것을 홀로 아사, 역량 재덕이 조신중 빼어나니, 그 사람의 무인을 족히 알지라 차인을 보냄이 가 하다 소이다."
용안이 대열하야 가라사대,
"경의 말이 옳도다."
하신대 예부시랑 석육이 주 하야 가로되,
"이경모의 글과 무인을 보오니 너르고 높을 따름이오, 지모없이 심히 소활한 선비라. 마땅히 지용이 갖춘 자를 택수하야 보내실 것이니, 이경모는 가하지 아닐까 하나이다."
상이 가라사대,
"옛부터 영웅이 출줄한즉 꾀 없으니, 이러므로 범이 산중 백수의 으뜸이로되, 꾀없어 적은 짐승에게 속고, 용이 해중 수족의 으뜸이로되, 꾀 없으니, 이경모는 인중 용호라, 위엄을 겸하였으니 그 영용을 어이 좀 꾀 있는 소인에 비길 바이리오."
하시고 즉시 명초하사 어사를 인견하라 하시니 어사 승명하야 들어와 단지에서 숙배하고 반열에 뫼셨더니, 제 가라사대,
"남곽이 이제 병을 인하야 강서를 침노하니 당당히 병을 이끌어 막을 것이로되, 오직 나라에 사람이 없음을 탄하더니, 조석이 경을 천거하니 진실로 마땅한지라. 경이 병을 인하야 감이 어떠하뇨?"
어사 주 왈,
"반적의 흉계 측량치 못하올지라, 빨리 막음직하오니, 신이 국은을 중히 입사와 호발도 갚지 못하였는지라. 원컨대 간담을 버려 만일에 하나이나 폐하 은혜를 갚으리이다."
상이 대열하사 즉시 이부에 칙지하서 어사로 병부상서 대원수를 하이시고 택하야 출사할새, 친히 십리정에 가 보내시니 상께 사은하고 도성 군마를 점고하야 발행하니 제 백모황월과 상방 검인을 더으사 원수의 위풍르 더하시고 옥윤거 하나를 승급하시니 수레 바퀴를 밀어 보내시며 천뢰 장군이라 하시니 원수 병을 거느려 강서로 나아가니 제 백관으로 더불어 잔을 들어 전송하야 보내시고 단에 올라 보시니, 장군의 가는 거동이 웅장 정제하야 정기 달빛을 깨쳐 물밀듯 행하니, 제 백관으로 더불어 칭찬하심을 마지 아니시고 드디어 환궁하시더라. 장군이 행하야 강서지방에 이르러 진을 치고 안병 부동한대, 남곽이 청전하기를 두어번 하거늘 원수 병을 내와 세번 싸워 다 이기고 병장 사로잡은 바 오십여인이니 번왕이 대경하야 싸움을 그치고 높은 데 올라 이원수의 진을 굽어 보니 군용이 엄숙하고 정기 하늘에 닿았는데 원수 홀로 장검을 짚고 학의 당건으로 진밖에서 사면을 살피니 화기 만면하야 봄달이 화한 바람을 당함 같고 엄위한 기상과 웅장한 골격이 사람이 사람을 경동케 하는지라, 번왕이 멀리 바라보고 대경하야 왈,
"차인이 이렇 듯 비상하니 능히 싸움을 당치 못하리니 견벽불출하야 저의 곤함을 기다려 치라."
제신이 또한 살을 떨며 마땅함을 고하니, 번왕이 크게 근심하야 제신더러 묻되,
"중국대장 이경모 재덕이 출중하고 용병이 여신하니 세번 싸우매, 다 이기고 덕을 베푸니 백성이 귀항할 이 많으니 이를 장차 어찌 하리오."
재신이 이르되,
"차인은 만고 영웅이오, 천하 호걸이라, 능히 당치 못하리니, 가만히 자객을 보내어 경모를 해하면 그 남은 이는 치기 쉬울 것이니 손에 침 뱉고 중국을 얻으리이다."
번왕이 대희하야 금을 내어 자객을 심방하더니, 자객요방은 가장 날라 높은 데 넘고 오르기를 자취없이 하고 날래기 당할 이 없으니 번왕이 만금을 주고 이원수 하수하기를 꾀한대, 요방이 크게 기꺼, 차야 삼격에 이원수 진으로 오다. 이날, 원수 진중에 하령하야 진을 단단히 지키라 하니, 제장이 청령하고 모든 진을 엄히 지키더라.
원수 홀로 당중에 앉아 촉을 밝히고 당건학으로 서안에 지어 병서를 보더니 밤이 깊기에 이르러는 문득 찬 바람이 골격을 거슬러 불며 공중으로 좇아 한 사람이 나려 상머리 대원수 눈을 들어 본체 아니하더니, 기인이 문득 가까이 왔다가 놀라 도로 물러가기를 여러번 하거늘, 원수 눈을 들어 보니 한 남자 허리에 서리 같은 비검을 차고 자기를 해코저 하는지라, 원수 들었던 책을 놓고 완완히 물어 왈,
"너는 어떤 사람이관대, 깊은 밤에 진중에 이르렀는뇨."
요방이 원수를 보고 만면화기 위에 염작한대, 웅장함이 동하이니, 감히 나아가지 못하다가 원수의 물음을 보고 크게 놀라 꿇어 왈,
"소인은 자객 요방이러니, 번왕의 령을 받아 원수를 해하려 하나이다."
원수 소 왈,
"가장 충의의 남자로다. 야심 진중에 분명히 들킬 줄 알되, 두려움을 잊고 임금을 위하야 죽을 줄을 돌아보지 아니하니 가히 충의지사로다. 연이나, 이제 국왕의 뜻을 받아왔다가 그저 돌아간즉, 무류한 것이니 내 일명으로써 허하나니 빨리 버허가 국왕께 드리고 중상을 얻으라. 내 기리 네 충의에 감동하노라."
하고 인하야 긴 목을 느리현대, 요방이 즉시 칼을 버리고 어디여 죽기를 청하거늘, 원수 왈,
"네 나를 해하려 왔는고로 내 그 충성된 뜻을 감격하야 일명을 허하였거늘, 도리어 죽기를 청함은 어찌오."
요방이 복지 왈,
"소인이 국왕의 달램을 입어 이에 이르렀더니, 노야께 득죄하였으니 마땅히 삼족을 멸할 것이어늘, 노야의 이렇듯 하심을 입사오니 빨리 죽어 죄를 완전히 하여지이다."
원수 잠소 왈,
"너의 말을 들으니 불악의 유 아니라 내 너를 속임이 아녀, 정심으로 죽기를 허하거늘, 네 종시 기렇듯 하니 가희 남지남아로다."
인하야 안색을 정숙히 하고 화한 소리로 이르되,
"사람의 명은 만물 중에 큰 것이라. 비명 중에 죽는 자는 일정 복이 없을 것이오. 덕이 부족한 것이니, 이제 네 얼굴, 거동이 살생하염즉지 아니하니, 어찌 임하에 돌아가 전답을 수습하야 어진 백성이 되지 아니 하고 스스로 비검을 잡아 주야에 부주하니 그 신세 가희 괴롭지 아니며 또한 그 마음이 살생하기를 차마 하야 손복함을 취하리오. 묻노니 무슨 뜻으로 이 구소를 감심하느뇨?"
요방이 백배하고 업디어 사뢰러,
"소인은 본대 농민이라, 이런 일을 아니 하더니, 칠년 흉황을 당하니 향담에 삼일을 주리면 아니 날 마음이 없다 하니 여러 해 주리매 능히 현심이 발치 못하고, 자객이 값이 많은지라 이 노릇을 면치 못하옵더니, 오늘날 눈이 있어도 태산을 몰라 보아 죄를 범하니 추회하오니 믿지 못하리로소이다."
원수 청파에 희허 탄식 왈,
"어찌 한갖 너의 죄리오."
하고, 인하야 위로하야 가로되,
"네 이리 다니매 가련한 인생을 몇이나 해하뇨?"
요방 왈,
"수십을 해하나이다."
원수 측연하기를 오래하다가, 낯빛을 고치고 다시 앉아 이르되,
"내 한 말을 네게 부치고자 하노라."
요방이 복지 왈,
"사죄를 무릅쓴 죄인이라, 어이 감히 평안히 있어 노야의 조령을 당하리이까?"
원수 가로되,
"사람이 비록 처음에 어질지 못하나 나중에 어질면 그 성인도 귀히 여기신다 하니 네 이 거조를 버리고 흥이 하고 밭갈아 이를 대하면 일신이 편하리니 네 만일 흥정밑ㅌ천이 없을진대 내 마땅히 서로 도우리라."
하고 인하야 상자 가운데로서 일봉 은을 주어 왈,
"이것이 많지 아니하여 겨우 백금은 하나 가져가 농업을 힘쓰고 이 노릇을 버리라."
요방이 머리를 서안에 두드려 죽기를 청하니, 도리어 원수의 공풍폐월지상에 누그러운 말씀이 이에 이르니, 감격하고 또한 감동하야 눈물을 흘리고 백백하야 다시 꿇어 아뢰되,
"소인이 하늘께 죄를 얻어 장차 죽기를 당하야 악심을 뉘우치고 현심을 수습하나 일명이 마친 부 부질없을까 하더니, 도리어 노야 이렇듯 죄를 사하시고, 은혜로움이 이 같으시니, 감동하는 마음이 흔득이니 눈물 흐름을 깨닫지 못할소이다. 노야 관흥 대덕으로 목숨을 용서하시니 몸이 마치도록 조명을 닞지 아니 하리이다."
보매, 위하야 기꺼하고 어질이 여겨 화성으로 간곡히 위로하고 이르되,
"날이 밝으면 군중이 일정 너를 용사치 아닐 것이니 빨리 돌아 갈 것이어다."
요방이 다시 일어나 비검을 쌓어 다섯 조각을 내고, 원수를 향하야 백배 칭사하고 다시 진을 넘어가니, 원수 촉하에 득좌하야 저 흉인의 깨침을 다행히 여기되, 이튿날 제장 더러 이름이 없으니 군중은 아득히 모르더라.
요방이 급히 달려 번진에 이르니, 번왕이 중신을 모으고 즉시 부르거늘, 요방이 절하고 땅에서 머뭇거리니, 왕이 문 왈,
"경모의 머리 어디 있느뇨?"
요방이 한봉 은자를 내어 왕께 드리고, 원수의 목느리어 칼을 받으려 하던 일고 그 문답하던 바 설화를 일일이 이른대,
왕이 듣기를 마치매, 앙천 탄식왈,
"하늘이 이 같은 영웅을 중국에 내어 계시니 능히 내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가희 한 없도다."
인하야 제신을 돌아 보아 가로되,
"차공은 만고 일인이라. 비록 천장 만명을 두었으나 능히 미치지 못하리니 빨리 항복하야 왕운을 잃지 아니함이 상책일까 하노라."
제신이 다 옳음을 간하더니, 일인이 주 왈,
"군병이 약하야 빌어 투항하면 제 일정 용사치 아니할까 하나이다."
왕 왈,
"불연하나 제 이렇듯 크고 너르니 필연 용사하리라."
하고 요방을 놓아 보내니, 방이 원수의 명언에 크게 깨친 바 되어 자객 노릇을 버리고 은자로써 흥정하고, 밭갈아 어진 백성이 되니 원수 은혜를 잊지 못하야 기리 화상을 그려 좋은 당에 걸고 조석으로 공양하야 성덕을 칭송하니 사라이 너르고 순할지언정 복종치 아닐 것이 없더라.
번왕이 이튿날, 성 위에 항기를 꽃고 항표를 올리니 원수 받아 보매 죄를 일컫고 사기 심히 공순한 지라, 마음이 기꺼하더니, 문득 번왕이 서로 봄을 청하거늘, 원수 용복을 입지 아니하고 홍포를 입고 머리에 용관을 쓰고 옥륜거를 밀어 가니 제장이 가로되,
"차적의 뜻이 측량키 어려우니 용복을 하심이 가하나이다."
원수 소 왈,
"관계치 아니하다."
하고 제장을 거느리고 번진에 이르니, 번왕이 십리에 나와 맞아 읍양 공경하기를 과도히 하야 한가지로 본진에 이르러 왕이 원수를 대하야 죄를 만난히 일컫고 가로되,
"내 불통하야 그럿 상국을 범하야 죄를 얻었으나 이미 뉘우침이 극한 고로 다시 표를 올려 명을 청하노니 만일 대죄를 사하시면 남은 인성이 연연 조공을 부지런히 하리이다."
원수 안색을 정히 하고 대답이 혼연 씩씩 하니 왕이 두리고 항복하야 극진히 대접하야 잔상을 드리고 절염 창기 수십인이 청가와 묘무를 주하니 아리따운 소리 귀를 놀래더라.
종일토록 진환하고 원수 본진으로 돌아올새, 왕이 십리외에 와 보내더라.
원수 본진 중에 이르니 날이 이미 저물었고 술이 반취하야 기운이 피곤한지라 상상에 비겨 제장을 더불어 담론하더니, 이 때 각도 수령들이 날마다 원수를 시립하야 저믄 후 각각 하처로 돌아가니 태수 설인수 매양 가차이 모셨으니 원수는 설인수인 줄 자시 아나 인수는 천만 몽매라도 어찌 경작이 원수되었음을 뜻하였으리오.
원수 매양 통명코자 하되, 군중이 분답하여 사정을 펴지 못하였더니, 이에 이르러는 이미 지방을 평정하고 군중이 고요하니, 날이 어둡기를 인하여 다른 수령들이 다 물러감을 청하대, 홀로 설인수 뫼셨더니, 원수 저의 물러가지 아니하였음을 보고 시동을 불러 설태수를 당상으로 청한대, 태수 사양하여 오르지 아니하거늘, 원수 친히 하당하야 태수를 이끌어 올리고 가로되,
"인수형이 능히 경모를 모르느냐."
태수 돈수 왈,
"소관이 정신이 밝지 못하고 일찍 면분이 없으니 생각지 못하올소이다."
원수 잠소 왈,
"형이 과연 눈이 무디다 하리로다. 옛날 양승상 차서 목동 이경작을 모르느뇨?"
태수 천만 몽매라, 깨닫지 못하야 가로되,
"차인은 소관의 동서러니 금주를 떠난지 벌써 십일년이니이다."
원수 다시 웃고 왈,
"십일년 못보던 경작은 곧 소제니 형은 모로미 의아치 말라."
설태수 어린듯 취한 듯 하여 오래 말을 못하더니, 이에 머리를 들어 자세히 보니 완연한 경작이라, 놀라고 반김을 이기지 못하야 존비를 잊고 그 손을 잡아 창황이 이르되,
"문경 형아, 이 꿈이냐, 이 생시냐."
원수 소 왈,
"형은 창황치 말라."
하고, 인하야 서로 잔을 들어 창음하며 정을 펼새, 태수 매양 원수의 대덕과 너른 양이며, 기이한 풍도를 흠앙하더니, 차일 좌를 갈아 잔을 날리며 별회를 베푸니 심하의 일변 세사를 가희 탁양키 어려움을 탄하야 자로 어린듯 하더니, 원수 문 왈,
"외방에 있은지 벌써 십일년이라, 존구 무양하시뇨?"
설태수 답소 왈,
"소제는 비록 약한 남자나 조강지처를 무단히 버리지 아니하니 몸이 편하야 자녀를 갖추두었거니와, 형은 선연 약처를 무단히 버리고 십일년에 이르도록 한번 봉서를 부치는 일 없다가 이제야 몸이 육경이 으뜸으로 부귀영화가 비길 데 없고, 어진 덕과 너른 양을 추앙치 아닐 이 없으되, 오직 공국 약처를 사념치 아니 하니 박덕함이 심하야 장차 약처로 하여금 몸을 보존치 못하게 되었으니, 가장 오활 무심한 장부라. 소제는 비록 벼슬이 잔미하야 형에게 시립함을 면치 못하ㅕ쓰나 처자를 편히 거느리니 가희 형에게서 낫다 이르리로다."
하고 인하야 대소한대, 원수 또한 웃고 왈,
"형이 어찌 그러한 말로써 소제를 조롱하느뇨. 가장 가소롭도다. 수연이나 금주 합가 무양하시뇨?"
태수 왈,
"가중이 비록 무양하나 형의 부인이 병이 위중하야 속수하고 조석으로 빈다 하니, 형이 비록 몸이 영귀하나 무엇이 즐거우리오."
원수 청파에 악연 참색하고,
"과연 형의 말이 옳으뇨?"
태수 왈,
"비록 희해나 어이 큰 말에 허언을 하리오."
원수 탄 왈,
"수요장단과 부귀빈천이 막비천명이라, 어이 인력으로 하리오."
태수 왈,
"형이 불구에 경사로 가리니, 길이 금주로 지날 것이니, 들려 감이 어떠하뇨?"
원수 왈,
"부모 분묘 계시니 들리지 아니리오."
태수 왈,
"어느 때에 경사로 향할까?"
원수 대 왈,
"형의 백성이 어지러웠으니 수삼삭만 더 머물러 진무하고 가려 하노라."
태수 왈,
"내 관중이 비록 적으나 수일후 형을 전송하리니, 존함으로써 겸양치 말고 정을 위로하라."
원수 소왈,
"본대, 음식 즐기는 손이라, 어이 주는 것을 사양할리 있으리오. 식량을 알아 큼직히 장만하라 내 당당히 가리라."
태수 소 왈,
"벼슬이 높은 후이나 그 숱한 잠과 투미히 많이 먹는 식량은 잠깐 주림이 좋을까 하노라."
원수 대소 왈
"급제한 후는 더 많이 먹히더라."
태수 소 왈,
"소관이 십분 양 박하야 풍성치 못하니, 형의 양에 차게 하려 하면 필연 작죄를 면치 못하리니, 올적 총으로 창자를 조리고 오라."
원수 왈,
"즌대 추겨 더 느리고 가리라."
태수 왈,
"국법이 본대, 날 같은 사람을 각도에서 지영하고 잔치하야 공경하고 관대하라 하였으니 적게 못하리라."
이인이 대소하고, 설태수 본도에 돌아와 부인을 대하야 원수의 전후사유를 일일이 전하고 기특히 여김을 마지 아니며, 그 악장 지인지감이 과인함을 못내 항복하더라.
이때, 설부인이 그주 소식을 들으니 이생이 나간지 이미 십일년에 소식이 없음을 알고 소저의 선연 약질의 공규단장하는 병이 고황에 침범할 줄 생각하며, 매양 오열 탄식함을 마지 아니하더니, 의외에 차언을 듣고 기쁨이 어린듯 하야 양구히 말을 못하다가 이윽하야 가로되,
"사람의 일은 탁양키 어렵도다. 능히 이렇듯 함을 어이 몽리에나 뜻하리오."
인하여, 탄 왈,
"매제는 이렇듯 함을 모르고 몸을 보전치 못하게 되었으니 한이 더욱 깊으리로다."
태수 왈,
"이는 그대 집에서 그릇하야 박정한 노릇을 하였으나, 상서 위인이 심히 소탈하고 너르니 개의치 아니 하려니와 그대 집에서는 가장 부끄려 하리로다.
부인 묵연 이러나 다시 가로되,
"이상서를 가히 청치 못하리이까?"
태수 왈,
"모레 오리니 잔치하야 대접하려 하노라."
부인이 기꺼 왈,
"가장 좋으이다."
하고 주찬을 성비하더니, 날이 바뀌어 기약에 미치는 태수 체면을 잃지 못하야 친히 자청하야 수레를 한가지를 하야 바로 아중으로 들어갈새, 양부인이 맞아 서로 예를 마치며, 한훤을 베푸니, 부인 낭연한 말씀으로 치하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또한 행함을 일컬어 능히 금치 못하니, 상서 흠신 공경하야 대답이 유수 같더라.
부인이 다시 묻자오되,
"숙숙이 몸이 저렇듯 영귀하사 강서를 평정하시니 위엄과 덕량이 사해를 경동하고 덕택이 만민에 이름이 수풀 같으니, 옛일을 생각하매, 의연히 몽중 같은 지라. 영행한 가운데 매제의 병이 극히 위중하니, 이번 가시매 한번 수고로움을 잊으시고 옛일을 개념치 마르사 소매의 병후를 위로하고 가심이 큰 덕일까 하나이다."
상서 왈,
"금주는 소생 부모의 분묘 계신 곳이니, 올제 체총하여 들리지 못하였삽더니, 갈 적은 당당히 들리고저 하나이다."
부인이 환희하야 재삼 칭사하고 잔상을 들어 서로 정을 이르더니, 태수 소 왈,
"총으로 창자를 조리고 오라 하였더니, 어이 저리 많이 먹느뇨?"
상서 웃고 가로되,
"더 널리고 오지 못한 줄 뉘우치노라."
하고 양을 열어 그런 장한 음식을 비게 먹으니 양부인이 당년에 자기 이리 올적 연차 경상을 생각하고 참괴함을 이기지 못하야 생각하되, 진찬이 입에 그칠적이 없으되, 저리 장히 먹는데 전에 그 주린 일을 생각하매 새로이 참괴하야 하더라.
날이 어두우매, 원수 진중으로 돌아와, 삼각산을 머물러 백성을 안무하니, 어시에 원수의 덕과 위엄이 천하에 진동하니 삼척동자가 다 일컫지 아닐 이 없더라.
원수 강서를 평정하고 백성이 안락하는지라, 삼군이 휘동하야 수레바퀴를 돌리어 경사로 향할새, 번왕이 반정에 와 송행하고 제도 수령이 다 십리에 이르러 배행하더라.
상서 표를 올려 강서를 평정하고 올라감을 아뢰고, 발행하니 모든 백성이 백리에 와 보내며 다 원수의 수레바퀴를 잡고 눈물을 흘려 유아 자모를 떠남 같으니, 상서 위하야 수레를 머르르고 재삼 윤거를 두루 헤매어 백성들의 슬퍼함을 보고 또한 추연히 연연하다가 돌아가더라.
원수 행하야 철령에 이르러는, 천자 상서의 강서를 평정하고 백성을 진무하고 올라오는 표를 보시고 용안이 대열하시니, 만조 치하하더라.
제, 특지로 경모를 대승상 문연각 태후사로 부르시니, 조서 철령에 맞아 이르는지라, 원수향안을 배설하야 조서를 받잡고 관복을 고친 후, 북향 사배하고 다시 행하니 대원수의 승전하야 돌아오는 위풍이 늠름한대, 또 대승상 위의를 더하니, 그 거룩함이 예 없는 일일러라.
승상이 십여일을 행하야 비로소 금주 지방에 이르렀더라.
양소저 소천을 이별한지 장차 십일년에 이르렀는지라. 처음생으로 더불어 십년을 기약하였더니, 벌써 십일년이 지났으되 어안이 망망하니 단장희한이 실로 깊더니, 일일은 붕니께 문안하고 인하여 가로되,
"양인이 나간지 하마 십일년이라, 당초 소녀 손을 나눌 때에 십년을 기약하였더니, 이제 십일년에 이르히 소식이 돈절하니 생각컨대 그 몸을 보전치 못하였는지라, 양인이 본대 친척이 없고, 의탁한 바 우리 집이 어늘 이제 이르히 돌아옴이 없으니 불행함이 있을진대, 그 해골을 찾을 이 없을지라. 이 일을 생각하매 심장이 촌단하니, 한번 남북으로써 저를 찾아 만일 불행하였을진대, 해골을 걷우어 구고 묘하에 장할지니, 모친은 손 일실을 죽은 줄로 알으샤 행하기를 허하소서."
말을 마치매, 처루 쌍쌍하야 홍험을 적시니, 부인이 노 왈,
"이생이 나간지 십년이 넘었으되, 소식도 없거늘 심규 아녀자 남복을 개착하고 어데 가 낙엽과 부평같은 인생을 얻을 것이라 천하에 유리하려 하느뇨? 결단하야 보내지 못하리니, 내 죽은 후 아무리나 마음대로 하라."
소저 두어번 애걸하되, 부인이 한결같이 듣지 아니하니 능히 뜻을 이루지 못할 줄 알고 일로 쫓아 병이 중하야 장차 사삭이라 종종 위질이 고황에 침노하야 백최 무효한지라, 가중이 속수하고 다만 하늘만 바라보더라.
이 때 이원수 거룩한 위의에 승상을 더하야 개가를 불리고 금주로 지날새, 금주 일군이 진동하니 모든 부녀 집잡아 굿보더니 양부에서 한부인이 또한 이 자부남성 이부인을 다리고 종각에서 승상의 지남을 보려 하더니, 문득 서편으로서 붉은 양산이 우직이며 병마 기치 정정제제하야 정기 폐일하고 금괴 제명하며 백모황월과 상방 검극 인이 앞을 인도하야 정기 어지러이 나부끼고 승전곡을 어우러 위엄이 늠렬하더라.
점점 나아오니 문득 양산 아래 큰 기둥하며 금자로 크게 썻으되, '병부상서 대원수령 대승상 문연각 태학사 이경모'라 하였더라.
양산이 움직이는 곳에 일륜 옥륜거를 밀어 오니 수례 사면의 주렴을 걷고 일위 소년대장이 단좌하였으니 몸에다 자금의를 입고 머리에 구룡천관을 썼으며 허리에 백옥 띠를 띠고 우수에 아흘을 쥐었으며, 이마에 일곱줄 면류를 드리우고 좌수에 태양선을 들었으니, 관옥같은 풍채 수려하야 구름 가운데 흰 용이 닫는 듯 하고 웅장한 기상이 지짓 만고 영웅이라.
구름같은 귀 밑이 일색을 가리우니 보는 이 아니 놀랄이 없더라.
한 부인이 칭찬 왈,
"기특하며 기특하다 저의 어진 소리 사해에 퍼졌더니 그 풍도를 보매 헛되지 아니토다. 어떤 사람이 능히 저런 아들을 두었으며 또 어떤 사람이 저런 서랑을 얻었는고, 만고 일인이로다."
칭찬함을 이에 그치지 아니하니, 남부인이 성씨를 돌아보아 왈,
"제 어찌 풍골기상이 이생과 흡사한 것이 많으뇨?"
성씨 역시 이르고 괴이히 여기더니, 부인이 이르되,
"이랑은 천고에 투미한 남자요, 이 사람은 만고 영웅 호걸이라. 어찌 비할 바이리오."
인하야 행차 지나매 이부를 다리고 택중에 이르러 이자로 더불어 칭찬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남성 이 부인이 소저의 방에 이르니, 소저 기운이 잠깐 수습하거늘, 이부인이 승상 병마의 거룩함을 이르고 인하야 탄식 왈,
"풍도 기상이 얼프시 이숙숙 같으니 문득 반갑고 척감하더라."
소저 차언을 들으매, 하늘을 우러러 기리 탄식하며 한숨지고 벽을 향하야 눕거늘, 이인이 위로하더니 두어시녀 총망히 들어와 보하되,
"아까 지나시던 승상이 이상공 분묘에 배알하시며 통곡하시나이다."
어사 왈,
"일정 친족일도다."
한림 왈,
"본디 친척이 없고 한미함이 여타하니 어이 그런 영웅이 나시리오. 일정 친한 사람이랏다."
이윽고 시녀 또 총총히 들어와 급히 아뢰되,
"승상이 우리 노야 분묘에 슬피 울며 배알하시나이다."
어사 아무란 줄 몰라 이르되,
"대인이 생시에 이경모라 한 이를 사괴심이 없더니 알지 못게라, 어떤 자인고."
침음하야 생각하더니, 문득 문정이 여루하고 벽제 소리 일촌을 진동하더니, 또 시녀 보하되,
"대승상 행차 문정에 이르샤 이 노야를 청하시나이다."
이인이 연고를 몰라하니 이미 집에 이르렀다 하는지라 재상께 뵈는 의복을 정히하고 연망히 외실로 나아가니 옥륜거 벌써 정전에 이르렀더라.
이인이 줄을 짓고 당하에 섰더니, 승상이 완완히 나려, 정전에 이르매, 이인이 공수 재배하거늘, 승상이 답례하고 한가지로 청중에 이르니, 승상이 말을 펴 가로되,
"별내 십일세에 가중이 다 무사하시니이까?"
이인이 오래 유유하다가 왈,
"후생은 임하 침폐한 사람이라, 일찍 상국으로 더불어 면분이 없으니 알지 못거이다. 무엇으로써 가르치시리이까?"
승상이 잠소 하고 왈,
"이 형이 어찌 소제를 이렇듯 과이 우대하시느뇨? 형이 능히 소제를 몰라보는도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형의 집에 들어온 경작이니, 모로미 의아치 말지어다."
이인이 믿지 아니하여 익히 보거늘, 승상이 재삼 밝히 이른대 바야흐로 이경작인 줄 깨치매 실로 몽매라 어린 듯하야 오래 말을 못하더니, 이윽고 왈,
"그대 어찌하야 몸이 이에 이르렀느뇨?"
승상이 전후 곡절을 약간 베풀고,
"존당과 가중이 편안하시니이까?"
답 왈,
"자친은 무양하시나 소매 병이 위독하니라."
승상이 가로되,
"내 왔음을 악모 일정 알지 못하시리니 전함이 어떠하리오."
어사 형제 저의 진덕함을 알매 이르러는 옛일을 생각하매 참괴 만면 하나, 일변 반가운지라 그 손을 잡아 재삼 치하하야 가로되,
"전일 우리 형제에 보채임이 많더니, 바라거니, 개의치 말라."
승상이 혼연히 우 왈,
"소제는 인물이 본대 소탈하야 아침에 지난 일을 낮에 능히 깨치지 못하리니 저 십년 전 일을 어이 몽리엔들 생각하리오."
이인이 저의 통달함이 이렇듯함을 보매, 조금도 옛일을 기억지 아니 하였는지라 기꺼함이 무궁하고 심리에 또한 칭찬하고 또한 부끄러워하더라.
이때에 시녀 분분히 전하야 한부인께 아뢴대, 대부인이 또한 놀라 흙으로 맨든 사람 같이 앉았더니, 이자 승상을 이끌어 청중에 이르러는 승상이 부인을 향하여 공수 재배 하거늘, 부인이 불각에 답례하며 어린 듯하야 인사를 차리지 못하는지라, 이자 경작인 줄을 아뢴대, 부인이 황홀하야 참회함이 교집하니 석일 저를 박대하야 행하던 일과 금일 경색을 생각하매, 가지록 참괴하고 역시 다행하야 반김이 하늘로조차 나린 듯한지라 승상의 금포 기슭을 잡고 체루 반향후 비로소 가로되,
"노신이 눈이 있어도 태산을 알아 보지 못하고 용호를 살피지 못하야 소천이 기세하시고 현서의 기질이 공언으로 사랑합지 아니하야 박대 태심하고 구박하야 보내되, 한푼 도운 것이 없으니 편협한 마음에 이리한 후, 약녀의 일생을 생각하매 밤에 잠이 없고 낮에 마음이 편치 아니하더니, 이제 몸이 이렇듯 영귀하야 국가의 대공을 이루고 영화 극한대, 석일을 개념치 아니하야 노신을 찾아보니 신의의 군자라 노신이 옛일을 생각하고 지감이 없은 줄을 기리 참괴하고, 낯갗이 두꺼움을 이기지 못하여 하노니 바라건대 현서는 옛허물을 용서하라."
승상이 흠신 공경하야 대답이 화평하니, 조금도 옛일을 개념치 아니하는지라, 부인이 더욱 기특히 여기고 영험함을 못내 일컬어 옛일 다시 뉘우쳐 자책하더라.
부인이 왈,
"현서 나감으로부터 약녀 상심함이 날로 깊어 이에 이르러는 사병이 고황에 침면하였으니 비록 편작이 있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는지라, 현서는 빨리 가보라."
승상이 대인각에 이르니 수회 적적하고 금병이 의의하야 남경과 옥경대에 티끌이 삼척이나 쌓였으니 비록 장부지심이나 자연 처절함을 이기지 못하야 기리 초창하고 장을 걷우매, 어사 형제로 더불어 들어가니, 이 때 소저 승상이 곧 자기 양인이라 함을 듣고 꿈인가 의심하야 전신이 놀라오니 병이 요동하야 더욱 중하더니 승상이 들어옴을 당하니 비록 혼모한 마음이니 혹 그름이 있는가 하야 시녀를 돌아보아 가로되,
" 이군이 처음 떠날 적에 빗을 꺾어 서로 나누어 가짐이 있더니, 내어다가 전하라."
시녀 즉시 빗 반을 전한대, 승상이 또한 나무 가운데로 좇아 반소를 내어 맞추니마치 같은지라, 어사 왈,
"소매 고집하야 분명한 일을 의심하나 빗을 마추매 의심이 없으니 바삐 이불을 열라."
소저 기운을 수습지 못하야 앙금을 열지 못하니, 승상이 친히 나아가 그 덮은 취금을 열어 보니 문득 옛날 화용이 변하야 한 촉루 되었으니, 옥골 설부 소삭하야 운환이 어지러워 선연 약질이 더욱 애원처초하니, 승상이 십여년을 상리하였다가 금일 만나매 이렇듯 환형하였음을 보고 마음에 창가함을 이기지 못하야, 그 손을 잡고 익히 보다가 눈물 떨어짐을 깨닫지 못하대, 눈을 뜨지 아니하거나 승상이 두어번 소리하야 물으니, 소저 겨우 정신을 차려 눈을 들어 승상을 보다가 옥성으로 느끼기를 두어번이나 하다가 문득 기력을 수습하야 일어나고자 하다가 벼개가에 혼절하니, 어사 형제 참척됙, 승상이 또한 치악하야, 이미 밤이 깊도록 깨지 아니하는지라, 승상이 창황하야 군중에 다녀온 명의 수십이나 하더니, 그중에 가장 술업이 높은 자를 청하야 약물을 치고 구호하니 삼경 후 비로소 정신을 정하거늘, 승상이 어사 형제와 의원을 내어보내고 스스로 구호할새, 원로 행역에 구치하야 몸이 피로함을 잊고 종야토록 구호하야 사경에 이르러는 바야흐로 정신을 차리고 기운이 가장 맑은 듯하더니, 이러구러 삼일에 미처는 병세 차헐하니, 원래 이 병이 다른 증후 아니라 소천을 찾지 못할까 일념이 한 병이 되었다가 이제 승상이 영귀하야 돌아와 자기를 구호하매 묵환이 수이 차복하니 합가 기꺼하고 승상이 환희하더라.
소저 비로소 의상을 수습하고 부부 상대하매, 만행함이 비할 곳에 없으니, 소저는 다만 두줄 청루옥협에 종행하야 비희를 능히 정치 못하니, 승상이 재삼 위로하되 부인이 옛일을 생각하고 못내 슬퍼하며 가지록 부끄러워함이 무궁하더라.
차시 양승상 부중 노복이 승상을 멸시함이 계견같이 여기다가, 이 때를 당하야는 죄를 면치 못할까하야 스스로 다 청죄하거늘, 승상이대소하고 가로되,
"너희 내게 작죄함이 없으니 청죄함은 어찌오."
모든 비복이 황공 돈수하고 물러나더라.
승상이 오일을 더 머물러 경사로 향할새, 한부인이 대접이 과도하야 전일 설생에게서 오름이 많더라.
돌아가기를 임하야 승상이 한부인께 금백채단 수 수레를 드리고 금백을 흩어 인인을 나누어주고, 또 금백 한 수레로써 장우를 주어 전일 거두어친 은혜를 사례하고 수레를 도로혀 뱅하야 낙양 청운사에 드니, 장노와 모든 중이 반기고 치하함이 비길 데 없더라.
승상이 이 밤을 청운사에서 자고 장노께 금백 채단을 무수히 주고 절을 중수 하거늘 극진히 차려주니라.
승상이 장노를 이별하고 행하여 성의에 이르러는, 천자 백관을 거느려 십리에 나와 맞으니, 위풍이 더욱 기특한지라, 상이 칭선하심을 마지 아니하시더니, 승상이 다 달아 수레에 내려 사배해야 뵈온대, 제 반기시고 기꺼하심이 비길 에 없어 위로하야 가로되,
"강서 위태함이 조석이 급하거늘 경이 한번 감에 한살을 허비치 아니하여서 문득 도덕을 평정하고 만민을 진무하고 돌아와 짐의 마음을 기쁘게 하니 이는국가의 공신이라, 공이 옛도 이에서 넘을이 없으니 짐이 무엇으로써 갚으리오."
승상이 돈수 재배하고 주 왈,
"신이 미한 몸으로 천은을 과히 입사와 벼슬이 육적을 정함은 이 다 폐하의 흥복을 말이암음이라. 신의 몸에 무슨 공이 있으리이까?"
상이 재삼 탄상하시고 금백으로 상사하시면 승상이 받지 아니할 줄 알으시고 이원에 설연하야 삼일을 즐기시다 승상이 권실하기 하루 바쁜지라 상소하야 두달 말매를 청한대, 상이 허하시고 인견하실새, 승상이 옥계 아래 꿇었더니 상이 가라사대,
"경이 뉘 사위대었느뇨?"
승상이 주 왈,
"선조 승상 양자을의 차서로소이다."
상이 가라사대,
"양승상은 어진 재상이라, 경이 또 양공의 서랑이라 하니 가히 기특하다 하리로다."
하시고, 인하야 승상 이인으로써 우현비를 봉하사 직접을 주시고 이부에 칙지 하사 승상부친을 추증하야 승상 임원군을 봉하시고, 그 모친 오씨로써 일품 정경부인을 추증하라 하시고 그 사조를 다 승상을 추존하시니, 승상이 천은을 숙사하고 택일하야 가묘에 증직함을 고한 후, 발행하야 금주로 갈새, 궐하에 나아가 하직하온대, 상이 인견하사 수이 돌아옴을 재삼 당부하시더라.
승상이 날호여 주 왈,
"신이 한 말씀을 폐하께 주달코다 하나이다."
제 가라사대,
"이르는 바를 듣고자 하노라."
승상이 재배하고 여짜오되,
"전시 어사 양명무와 한림학사 양명수는 선조의 총애하시던 신하이라, 재주와 학문이 사람에게 드므니 마땅히 나라에서 거두심즉 하오되, 임하에 침폐하완지 벌써 이십년에 이르렀삽고, 강서 태수 설인수는 가장 아름다운 군자이어늘 외방 벼슬에 오래 있음이 심히 가까운지라, 청컨대 거두어 쓰시면 국가의 유익함이 많으리이다."
상이 들으시고 춘몽이 깬 듯 하샤 칭사하야 가라사대,
"양명무 형제는 선조 총애하시던 바라 경의 말이 가장 마땅하다."
하시고 어사 형제를 각각 옛벼슬로 부르실새, 조서 승상 행도와 한가지에 금주에 이르러 조서 나리심을 먼저 고하니, 어사 형제 향안을 배설하고 맞아드기를 마치매, 북향 사배하고 합가 다 영행하야 하더라.
차시, 승상이 또한 이르러 그 부모와 양승상 묘하게 석물을 장히 하고 제문 지어 제하매, 그 유모의 무덤에 크게 비를 세우고 소저로 더불어 경사로 향할새, 양부인이 봉비직첩을 받들어 일품 명부의 복색을 갖추고 행하야 강변에 이르러는 체선과 금범이 라람에 비끼고 생소고락이 훤철하야 옥녀 금정을 옹위하였으니 위의 거룩함이 비할 데 없더라.
이미 경도에 이르러는 양 어사 형제 벌써 모친을 뫼셔 옛집에 안거하고 양부인은 바로 승상 부중에 이르러 처음으로 부부 사당에 예하기를 마치매, 각각 감창하야 눈물을 흘리더라.
부인이 배알하기를 마치매, 정당에 이르니, 모든 비복이 다 와 차례로 문안하고 소임을 취품하니 부인이 어진 덕과 정제한 위엄으로 치가함이 법도에 맞고 승상 섬김이 규구에 합하니 택중에 화기 봄이 이르렀더라.
이 때 설태수 이르러 옛집을 수소하고 벼슬에 나아가니 형제와 자매 서로 모아 모친을 뫼셔 즐기니라.
차시에 임강수는 호부시랑을 하였고, 유백문은 이부시중을 하였더라.
양인이 조회에 갔다가 승상 부중에 모여 시주로 종일하더라.
여러 해 지나매, 승상은 돌아와 청광후를 봉하시니 사람이 일컫기를 이청후라 하더라.
승상이 경사에 이르러 오년을 지내매 연년에 자손을 낳아 삼자이녀를 두었으니, 다 기특한지라, 만사 쾌활하더라.
승상이 일일은 조회를 파하고 옥륜거에 육마를 매워 정히 집으로 향할새, 입시하였을 때에 사, 오배 어주를 먹었는지라, 옥면에 주기 점점하야 풍도 더욱 수려하더라.
대로 좇아 큰 청루 오,륙 곳을 지나매, 모든 미인들이 눈썹을 다스리고 허리를 지어 주렴을 반만 걷고 행각을 살피다가, 승상의 풍채 동인함을 보고 경혹함을 이기지 못하야 동정, 금귤을 다투어던져, 수레에 가득하되 공이 알은 체 아니하고 옥륜거를 밀어 오더니, 길에서 유공을 만나니 유공이 문 왈,
"형의 거상에 금귤이 어이 저리 많으뇨?"
공이 희희 웃어 왈,
"대로를 지나매 귤이 내 수레를 메우니 가희 내 풍도 많다 하리로다.
유공이 소 왈,
"형은 당당히 두목지로다. 연이나 어이 박정하기 심하뇨?"
공이 문 왈,
"박정하다 함은 어찌오?"
유공이 가로되,
"청루 미인은 아리따운 경으로써 귤을 전하였거늘 돌아보지 아니하니 이 박정치 아니뇨?"
승상이 소 왈,
"주는 것을 사양치 않았거니와 무슨 유의함이 있으리오."
이인이 대소하고 한가지로 집에 이르러는 승상이 가인을 분부하야,
"주과를 갖추라."
하고 즉시 명첩을 써 시동을 분부하야 임시랑을 청하니, 이윽고 시랑이 이르렀더라.
승상이 가로되,
"수일을 인형을 보지 못하니, 사모하는 마음이 깊은고로 아까 명첩을 보내서 청하였더니, 수이 이르렀으니 소제의 마음을 위로하리로다."
시랑이 가로되,
"소제 두어달 몸이 불평하기로 잘깐 조리하노라 인형을 찾지 못하였더니라."
또 시중을 향하여 가로되,
"형은 무슨 연고로 소제를 갈와보지 아니텨뇨."
유공이 답 왈,
"관사에 얽매여 몸을 겨루지 못하니, 날마다 찾기 쉬우랴."
승상이 웃고 가로되,
"한담을 날리고 후원에 가 술을 먹음이 어떠하뇨?"
이공 왈,
"가장 좋다."
하고 인하야 삼인이 후원에 이르러 화정 앞에 주과를 벌리고 앵무배를 나리며 한가히 말씀하야 장차 나이 저물매, 한 가지로 죽헌에 돌아와 자니라.
일일은 천체 금란전에 잔치를 배설하야 조신으로 더불어 즐기실새, 백과이 다 취하야 물러오고 이승상은 각별히 취하야 집에 돌아와는 인사는 모르고 외당에서 자더니, 이튿날이 되되 오히려 술이 깨지 못하니 날이 늦도록 일지 못하는지라, 부인이 조회 늦어감을 민망하야 동자로 하여금 한 그릇 차를 먼저 보내고 친히 관복을 받드러 외당에 이르러 창밖에 대후하야 깨기를 기다리되, 공이 일지 아니하디, 부인이 동자로 기침하기를 사뢰라 하고 난간 밖에 섰더니 동자 소리를 열어 왈,
"날이 이미 늦었고 조회를 하마 파하게 되었나이다."
공이 깨어보니 동자 차를 드리며 아뢰되,
"부인이 차를 보내시고 창의에 대후하신지 벌써 오라시이다."
공 왈,
"부인이 어이 들어오시지 아니하시뇨?"
동자 왈,
"노야 기침을 아냐 계시므로 민망하야 나와 계시나 시동이 있기로 들어오지 못하시나이다."
공이 모든 동자를 물리치고 부인을 청한대, 부인이 쌍수로 관복을 받들고 들어가니, 공이 오히려 상상에 누워 몽롱하기 심하거늘, 부인이 상가에 나아가 가로되,
"날이 늦어 조참을 거의 파할 때니 상공이 어찌 일지 아니 하시나이까?"
공이 기지개 혜며 왈,
"날이 아니 일렀나니이까?"
부인 왈,
"벌써 낮이로소이다."
공 왈,
"그럴진대 나를 일으혀라."
부인이 정색 왈,
"군이 비록 천성이 완완하나, 이제 국가의 대신으로 항렬의 으뜸이니 백관이 다 군의 뒤를 좇아 조현하나니 날이 이미 늦어 백관이 다 궐문에서 기다리거늘, 완완함이 이같으니 국사에 부지런하지 아님을 족히 알리로다."
공이 즉시 일어나며 왈,
"어질다, 부인 말이 나의 추몽을 깨게 하는도다."
하고 소세를 마치매, 부인이 관복을 들어 입히기를 정히 한 후, 재촉하야 수레에 오르매 바야흐로 내당으로 들어오더라.
공이 궐하에 이르니 과연 백관이 문 외에 모여 공을 기다리고 조회에 들지 아녔거늘, 공이 즉시 한가지로 들어갈새, 유, 임 양공이 꾸짖어 가로되,
"형이 국가 으뜸 정승이라, 형이 온 후, 아등이 한가지로 조회 할 것이어늘, 이제 상이 전에 나신지 오라시고 모든 각료와 백관이 다 못하시되 공이 오지 아녔으므로 지금 입조치 못하였나니, 형 한사람으로 하야 죄 우리에게 미치리로다."
공이 소 왈,
"작일 연차에 크게 취함이라, 형은 노하지 말라. 죄는 내 홀로 당하리라."
인하야 한가지로 조회할새, 상이 물으시되,
"금일 조회 어이 이리 늦어 군신의 체면을 잃느뇨?"
제신이 유유하더니, 이공이 출반 주 왈,
"신이 작일 연차에 과취하야 늦게야 깬 연고로소이다. 삼가 죄를 청하나이다."
상이 웃으시고 가라사대,
"원간 경의 연고랐다. 연이나 짐이 술을 너무 권함이니ㅣ 짐의 죄 아니뇨?"
하시고 상이 인하야 조신으로 더불어 조용히 고금을 강론하샤, 날이 늦은 후 파조하시니, 제신이 흩어지매 공이 집에 이르니, 부인이 공의 옴을 듣고 공의 식상을 친히 보아 다스리더니, 공이 옥패를 울리고 당중에 이르러는 부인이 맞아 가로되,
"금일 능히 조론을 면하시니이까?"
공 왈,
"겨우 면하이다."
부인 왈,
"성은이 융성하사 상공의 몸에 이렇 듯 중후하시니, 상공이 명분을 돌아보아 동동축축하여 나라를 태평히 다스려 성은의 만일을 갚으실지니 금일 면죄함을 기꺼 말으소서."
공이 사례 왈,
"부인의 어진 말씀이 실로 복으로 하야금 부끄럽게 하는도나. 수연이나 내 어찌 이를 모르리오."
하더라.
수일이 지난 후, 공이 외당에 앉았더니 홀연 경주 부윤이 미창 십인을 보내엇는지라, 청후 절대 창기 오인은 가축하고 오인도로 보내되, 오창은 머믈어두다.
승상이 오창으로 더불어 일야를 지낸 후, 이튿날 술 크게 취하고 상에 누워 능히 기거를 못하고 오녀를 돌아보아 가로되,
"너희를 두었음을 부인이 아지 못하니 금일 현신하라."
또 가로되,
"내 만취하야 능히 걷지 못하니 너희 이 상째 들어 내실로 들어가라."
오녀 수명하야 상을 겨우 받들고 내실에 이르니, 부인이 공의 과취하야 들어옴을 보고 갱을 재촉하야 상을 맞으매, 문득 절대 가인 다섯이 부인을 향하야 계하에서 사배하거늘, 부인이 보매 경영모태요 옥골화협이라, 공의 유전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공을 향하야 왈,
"차 오인은 어떤 미인이니이까?"
공이 소 왈,
"경주 부윤이 열 미인을 실어보내였거늘 다 도로 보내기 장부의 풍월아니므로 오녀를 솔축하였나니, 부인 마음에 어떠하니이까?"
부인이 가로되,
"집안에 적요하더니 가장 마땅하도소이다."
공이 소 왈,
"가중에 홍장시녀 가장 많으나 내 별로 다섯 종을 얻어 부인께 드리나니 범사를 시녀같이 부리고, 순종치 아닐진대 내게 이르고 다스리라."
하고 인하야 오창하게 하령하야 가로되,
"부인의 시키는 대로 일을 조심하야 받들고, 만일 순종치 아닐이 있을진대 내 비록 정을 머물었으나 쾌히 다스리리니 모로미 죄를 얻지 말라."
오녀 청명하고 차후 소임을 잃지 아니하야행세 심히 양혜한지라, 부인이 우애하기를 극진히 하고 비록 창기이나 마음이 온양하니 부인이 심히 사랑하나 가까이 하는 일이 없으니 가중이 화평하더라.
승상이 차후 일삭에 오일은 오창을 찾고 십오일은 내당에 머믈고 십일은 외당에 처하야 세월을 보내더니, 일일은 호광어사 미녀 십오인을 실어 보내었거늘 공이 이미 오창을 두었는지라, 십오 창녀를 다 도로 보내고 내당에 들여와 부인을 대하야 미녀 돌아보낸 연유를 말한대, 부인이 내심에 기꺼 답 왈,
"전일 십 미인 도로 보내기, 장부의 풍이 아니매, 두었노라 하시더니 더욱 십오 미인을 당하야 도로 보내시니 족히 장부의 풍이라 하리이까."
공이 소 왈,
"부인은 여중 장부로다. 연이나 오희 족히 장부의 풍이니 더 둠이 부질 없을새, 도로 보내었노라."
하더라
이때 자녀 모친 한부인께 수연할새, 이청후 돕기를 풍후히 하고 연차에 부부 참예하니, 각각 잔을 들어 헌작하고, 차례 이후께 미쳐는 관복을 정히 하고 부인으로 더불어 헌작하기를 마치고 각각 좌를 정하매 부인이 눈으로써 좌우를 살피니 이자 양부와 설태후 부부 다 이품 복색이로되, 홀로 청후 구룡관에 일곱줄 면류와 자금포에 다섯줄 옥패 공후의 복색이오, 부인은 머리에 구봉 칠보관을 썼으며, 몸에 적의를 입고 허리에 주파 띠를 매고 일곱줄 면류를 드리우고 다섯줄 명월패를 찼으니 위의 정숙하고 복색이 기이한대, 좌우에 금동 옥녀 나열하매, 개개히 사가옥수 췌가에 조옥같으니 부인이 옛닐을 이르고 영행하을 이기지 못하야 가로되,
"석일로 보건대, 금일이 있을 줄을 어이 염하였으리오 마는, 이제 이르러는 필녀의 부부, 이자와 장녀에 비기면 여러 층 위에 되니 세사를 가희 측량키 어렵도다."
하더라.
삼일 진환한 후, 이에 각각 헤어져 양부인이 승상부로 물러오더라.
이러구러하여 여러해 되니 승상이 악모 한부인 양하기를 극진히 하더니 한부인이 수 팔십에 기세하니 자녀의 애통함이 예에 넘더라.
광음이 훌훌하야 삼년이 지난지라, 청후와 부인이 새로이 슬퍼하니 이는 전일을 생각하야 용심함을 십분 애통하더라.
차시에 이르러 양어사의 벼슬이 이부시랑이요,양한림은 태상 정경이요, 설태후는 예부상서더라.
이후에 천자 유백문으로 공부태후를 하이시고, 임강수는 이부상서를 하얏으니 청후로 더불어 장원이 격한 집을 사 조참 여가에 삼인이 매양 대하야 탄금 위좌하야 시주로 날을 보내니, 신이 일컬어 '삼위 선인'이라 하더라.
청후 부인께 십자 삼녀를 낳고 오창에게 오자 이녀를 낳으니 십오자 다섯녀아 개개히 백옥같더라.
청후 입신하연지 삼십여년에 미쳐는 천자 섬김에 더욱 충성을 다하고 국사에 부지런함이 제신 중 뛰어나니 몸을 수고치 아니하고 하욤이 없으되, 천하태평하고 만인이 안락하야 밤에 도적이 없고 길에 걸인이 없으니 천하 신민이 그 너른 덕과 어위한 양이며 맑은 정체를 가지록 추앙하야 노상 삼척지동이라도 다 대인을 일컬으니제 기리 기특히 여기사, 은총이 날로 더 하시되, 재복적 부터 감히 재보부치를 사급치 못하시니, 이는 공의 청덕이 굳기 옥 같음을 말미암음일러라.
이러므로 상이 주시기를 생각지 못하시고 매일 향은 한 병씩 사급하실 따름이요, 각도 수령들이 감히 재산부치를 진봉하기를 의논치 못하니 공의 청고한 덕이 이렇듯 하더라.
상이 매양 그 충의를 칭찬하사 공으로써 평원왕을 봉하신대, 공이 여러번 상소하야 불가함으로써 굳이 사양하거늘 상이 환수하시고 더욱 탄복하시더라.
청후 거가하매, 단정히 앉아 사람을 대접하니 관후함이 타인에게 지나니 벼슬이 내각의 일품이요, 작위 공후로되 문연각 공사에 좌기하야 하권을 상접할제라도 의관을 수렴하고 상시 집에 있으나 빈한한 사람을 대한 즉 공순하기 더욱 극진하고 또한 회해를 좋이 여겨 친한 사람인즉 대하야 화열한 말씀으로 종일토록 회해하고 비록 아희라도 반드시 다리라고 희롱하기를 심히 하니, 사람이 처음 보매 그 기상 엄숙하고 거지헌앙하야 화기춘풍같으니 말붙이기 엄엄하되, 말을 시작한 즉 화한 바람이 바다물결을 동함같으니 시절 사람이 일컬어 인중에 헌헌 군자요 만고에 활달한 영걸이라 하더라.
일일은 승상이 의창부공사를 참예하고 집에 돌아와 죽헌에 한가히 비겨 가장 심심한지라, 아자를 희롱하더니 시자 총망히 들어와 보하되,
"공부상서 유노야와 이부상서 임노야가 와 계시이다."
공이 홀로이서 정히 이인을 생각하더니, 반김을 이기지 못하야 급히 맞을새, 청후 문득 이르되,
"소제 아까 이형을 찾을 상부로서 바로 가니 이 형이 다 없거늘 돌아왔더니, 이에 만나니 가장 다행하도다."
이인이 소 왈,
"전일 왕가로 먼저 와 보되, 회사를 지금 못하였더니, 아까 조참 후 회사하고 갓 오거니와 왕가로 형을 자로 와보니 형이 일찍 회사한다기 이인이 심히 거오하야 즉시 회사치 아니면 극히 미온하야 한다 하매 우리 양인이 갔더니라."
공이 답 왈,
"소제 회사는 하였거니와, 형이 그 인품을 어이 아는다?"
임공 왈,
"전일 설인수 자시 이르므로 시러곰 들었노라."
하고 인하야 차를 내와 삼인이 한가지로 먹고 서로 희희하야 웃음소리 그치지 아니하더니, 임공 왈,
"형이 술을 즐기므로 소제 이화주를 갓 빚어 바야흐로 익었으매 두어병을 가져왔으니 형이 먹을다?"
이공 왈,
"만일 좋은 술을 가져왔을진대, 당당히 형의 정을 받아 쾌히 먹으리라."
언필에 두 청의동자 각각 유리병 하나씩 메여오거늘, 청후 왈,
"술이 오나 안주 어이 없느뇨?"
유공 왈,
"안주는 소제 집에 있으니 가져오리라?"
하고 동자를 명하야 생복 한 쟁반을 가져오니 청후 왈,
"형이 저런 좋은 것을 어데 가 많이 얻으뇨."
오늘 아침에 해주 부윤이 한 그럿을 보내었거늘, 이 형으로 더불어 한 가지로 먹으려하야 일개를 없이지 아녔더니라."
청후 소 왈,
"가장 좋은 안주로다."
하고 삼인이 앵부밸ㄹ 나와 먹더니 임, 유 이 공이 자을 자로 나려 이공을 심히 권하니, 공이 순순 받아 거훌러 이미 다 먹었는지라, 술이 반취하매 주기 점점하야 풍신을 도왔더라.
임공 왈,
"우리 주홍을 타 바둑을 둠이 가하다."
하고 판을 내여 버릴새, 원간 삼인의 바둑 수단이 통달명리하야 당대에 제일품이로되, 양인이 이공에게 한번도 이길 적이 없는지라, 매양 한하다가, 이날 술을 가져다가 무수히 권하고, 때를 타 승부를 다투려 하였더니, 공이 반취하매 흥이 더욱 일어나니 수단이 전에서 비한지라, 다만 손이 닿는곳에 청풍이 일어나니, 임공이 수단이 더 상하야 능히 이기지 못하고 판을 밀치며 대소 왈,
"우리의 바둑 수단이 서로 같으되, 매양 형에게 미치지 못하므로 금일은 술을 권하야 취중에나 이기려 하였더니 술이 형의 수단을 더욱 도우니 도리혀 뉘웃노라."
이공이 대소 왈,
"내 원간 술을 가져와 먹임을 괴이히 여겼더니, 원래 바둑을 지으랴 하야 가져왔구나."
유굥이 소 왈,
"신내지 말라. 내 당당히 이기리라."
하고 판을 나와 다시 두더니, 유공이 지탱치 못하야 또 지거늘, 임공을 돌아보아 꾸짖어 가로되,
"전에는 매양 바랏이 지더니, 금일은 형이 좋은 술을 많이 먹여 그 신을 돋와 더욱 지탱치 못하야 배를 지어이다. 형의 탓이로다. 이번은 술 곧 아니러면 일정 이길러니다."
임공이 누우치기를 마지 아니한대, 이공이 대소하야 가로되,
"형이 매양 앙앙하야 하니 내 스스로 지고자 하되 두손이 인정이 없어 매양 이기니 실로 내 뜻이 아니라. 이형이 만일 이기고자 하거든 나의 두 손에 인정을 많이 쓰고 부디 이겨 달라 간절히 빌면 혹 이길 법이 있으려니와 나는 마음대로 못하나니 이형은 소제를 한하지 말라."
이인이 박장대소 왈,
"가뜩 애달은데 능중한 소리나 말라."
하고 모두 대소하더니, 문득 동자 아뢰되,
"이부석랑중 노야 오시나이다."
삼인이 총망히 일어 맞아 한훤을 마치고 차를 파한후 한다하더니, 석랑중이 본대 바둑 잘 두기를 자허하는지라, 유리판에 홍백 옥바둑이 어지러이 버렸음을 보고 삼인의 두던 것인줄 짐작하매 그 수단을 보고자 하되, 감히 발하지 못하더니, 임공이 판으로써 청후에게 밀며 이르되,
"아까 형에게 허랑이 졌으니 다시 두리라."
하고 나아가 앉거늘 청후 소 왈,
"아까는 허랑이 졌거니와 이번은 대작이 지려 하는도다."
하고 다시 시작하거늘 낭중이 눈으로써 저 양인의 재주를 보니, 손 쓰는 법이 발월하야 다만 판 위에 청풍이 슬슬하니 눈이 감기고 정신이 황홀하더니, 이윽고 청후 판을 밀고 왈,
"형이 아까는 허랑이 졌더니 이번은 대작이 지거다."
임공이 웃고 가로되,
"오늘 두판을 연하야 졌으니 후일 당당히 쾌승하야 갚으리라."
하고 서로 대하야 웃으니, 석랑중이 황홀하야 하더니, 경각간에 승부 과연 공의 말같이 결하니 랑중이 기이히 여김을 마지 아니하고 바둑 재죄 십분의 일도 당하지 못할지라, 경아하야 하직코 돌아가 보인즉 그 삼인의 수단을 일컬어 침이 마르니 인하야 삼인의 바둑수단이 장안의 으뜸이라 이르더라.
임, 유 양공이 야심토록 담소하다가 흩어지니라.
매양 조참한 여가면 서로 모여 바둑과 호해로 소일하야 인세에 즐김을 삼더라.
이공이 검박을 숭상하야 상시 의복 사치히 아니하야 관복 밖은 몸에 가까이 아니하고 여름이면 맥반이요, 겨울이면 잡곡밥을 먹으니 부인 양씨 이를 또한 본받아 깁을 짜며 상일을 친히 하니 시절 사람이 일컬어 그 덕을 법하더라.
제 청후의 덕과 충현을 기리 감동하사, 장안 대로중에 큰 집을 세우시고 옥비를 새겨 그 충의청덕을 기록하시고 금을 메우고 그 아래 또 새기되, '치국평천하지공'이라 하였더라.
공의 부부 백세 해로 하고 십오자와 오녀 다 현달하여 영화 더욱 성하니, 부부 소년에 사람에 있지 아닌 경계를 지내나 몸이 현달한 후, 다시 모여 인간 칠십을 영화로이 누리매 자손이 만당하고 덕양 충의를 천하 추앙치 아닐 이 없어 복록이 구전함이 이렇듯함은 다시 없는 일이니 하늘이 어진 사람을 복을 주신다함이 진실로 허언이 아니로다.
이곽후에 복에 넘을새, 사적이 기특하매 잠깐 기록하야 아름다움을 천고에 전하노라.
(정리 : 김동성)
이해와 감상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 落星飛龍(낙성비룡) ’ 이라고 쓴 이본도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장서각도서에 있다. 박순호(朴順浩) 소장의 〈 곽성비룡전 〉 · 〈 니경작젼 〉 도 이본이다.
한편, 정병욱 ( 鄭炳昱 ) 소장본 〈 낙성전 落星傳 〉 을 〈 낙성비룡 〉 의 이본으로 기록하고 있는 문헌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양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개의 고전소설이다.
장서각도서의 〈 낙성비룡 〉 은 표지에 ‘ 洛城飛龍(낙성비룡) ’ 이라 적혀 있다. 전 2책 129장(권1 63장, 권2 66장)의 필사본이다. 한편, 고려대학교본 〈 성룡전 星龍傳 〉 건(乾) · 곤(坤) 2책(초권 56장, 종권 46장)은 내제(內題)가 ‘ 낙셩비룡 ’ 으로 되어 있으며, 필사연대가 ‘ 계묘년 ’ 으로 되어 있다. 종권 말미에 있는 기록으로 미루어 〈 이문성취록 〉 15권으로 이어지는 가계소설(家系小說)임을 알 수 있다.
이 양본을 비교하면, 장서각본에는 한문 장회명(章回名)이 있는 데 비해, 고려대학교본에는 한문 장회명이 없이 줄글로 계속되어 있다. 또 전자가 한문 직역체 문장임에 비해 후자는 평이하고 말끔한 세속 문장으로 다듬어져 있다. 그러나 내용상 근본적인 차이는 보이지 않으며,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나라 정통연간(正統年間) 북경 유화촌에 이주현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의 부인 오씨가 어느 날 큰 별이 방안에 떨어졌다가 황룡이 되어 승천하는 꿈을 꾸고 잉태한 뒤, 18개월 만에 아들을 낳아 경모(아명 경작)라고 이름을 지었다.
경모는 어려서 부모를 잃은 뒤 남의 집에 머슴살이를 하며 떠돌아다니다가 퇴임재상 양승상의 눈에 띄어 의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승상이 죽자 심한 박대를 견디지 못한 그는 청운사로 들어가 학업을 닦아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마침 번왕이 모반하여 쳐들어오자 그는 원수가 되어 이를 평정하고 평원왕에 봉해져서 양승상의 딸과 해로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줄거리는 또 다른 고전소설 〈 소대성전 〉 과 거의 일치한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을 ‘ 잠꾸러기 ’ · ‘ 먹보 ’ 로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삽화까지 합치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이 두 작품은 별개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이본에 가까운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낙성비룡 〉 은 번역투의 문장 및 한문 장회명으로 보아 중국소설의 번역일 가능성이 짙으나 원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참고문헌 ≫ 인봉소 · 낙성비룡(경희출판사, 영인본, 1968), 낙성비룡과 蘇大成傳의 比較考察(曺喜雄, 冠嶽語文 3, 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 1979.3.).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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