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슬픈 반생기 / 한하운(韓河雲)
by 송화은율나의 슬픈 반생기 / 한하운(韓河雲)
태평양 전쟁의 전세는 일본 본토에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내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을 느꼈다. 결절이 콩알같이 스물스물 몸의 이곳저곳에 울뚝울뚝 나타나는 것이었다. 검은 눈썹은 자고 나면 자꾸만 없어진다. 코가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쉬비 못하고, 말은 코먹은 소리다.
거울을 보니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문둥이 그 화상이다. 기절할 노릇이다. 결절은 팔, 다리, 얼굴 할 것 없이 나날이 기하급수로 단말마의 발악처럼 퍼지는 것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쑥덕쑥덕한다.
하루는 상사가 부른다. “문둥병이 아닌가?”라고 묻는다. 빨리 치료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만이다. ‘세상아, 잘 있거라!’ 하면서 나는 창황히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 땅 함흥에 돌아왔으나 이 꼴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더욱이 동리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도저히 밝은 자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진종일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람이 안 다니는 들에서 종일 굶으며 기다려야 했다. 이제는 정말로 문둥이가 된 설움이 가슴을 찢는다. 문둥이 생활로 入學(입학)하는 분함과 서러움에 하루 종일 잔디에서 울었다. 내가 나를 생각해 보아도 내 값이 정말로 한 푼 어치도 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인간 폐업령이 내려졌다. 나는 원한의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다. 몇백 번 고쳐 죽어도 자욱자국 피맺힌 서러움과 뉘우침이 가득 찬 문둥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밤이 어두워진다. 모든 것을 검게 가리어 주는 밤이 온다. 나는 여기서 인간의 자유와 이상과 동경을 상징하는 노래로 ‘파랑새’라는 시를 읊으며 인간의 행복을 빌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어둠을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서는 모두들 깜짝 놀란다. 어머니께서 밥상을 차려 오셨다. 하루 종이 굶었으나 밥이 먹고 싶지 않았다. 밥은 먹었노라고 이야기하고 드러누워 버렸다.
도대체 오늘 내가 겪은 일을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 있을 건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 일이지! 나를 먹어 가는 결절은 아마 나를 썩혀 버리자는 심술인지, 분화산같이 터지고 궤양이 고름이 되어 온몸에 흐르는 것이었다. 감당 못할 고름과 악취는 지옥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사람의 육체 세포는 고름으로 조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허둥거리게 했다.
점점 악화되어 기거조차 할 수 없고, 열은 사십 도 가까이 올랐다. 의식조차 잃고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며칠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의식을 조금 회복하였다. 그러나 그 의식은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서 가끔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찾아오는 그러한 의식이다.
최후를 알리는 마지막 순간, 나는 고름투성이인 내 손을 잡고 있는 ‘이’를 볼 수가 있었다.
“하운 씨, 저늘 압니까? 저 ‘이’예요. 하운 씨가 사랑하던 ‘이’ 말이에요. 당신의 아내예요. 제발 정신을 차려 주세요. 그리고 굳세게 살아갑시다.”
‘이’의 흐느끼는 울음이 저 보이지 않는 영원의 나라에서 말하는 것같이 내 귀를, 내 죽어 가는 신경을 흔드는 것이었다.
“고맙소.”
나는 그녀에게 이 말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녀에게 말하였다기보다도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나의 마음을 진심으로 말하였다.
내가 병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란 집안 식구 몇몇뿐이다. 말하자면, 아버지와 어머니, 나의 아내, 또 골육의 동생들, 식모, 이렇게 일곱 사람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는 것이 정말로 싫었다. 사람만 온다치면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벽장 속에 가만히 들어가 징역살이를 해야만 했다. 손님이 가기 전까지는 컴컴한 벽장 속에서 하루 종일이고 이틀이고 박혀 있어야 했다.
이럴 때 대소변 보는 일, 숨을 죽이려고 하다가 기침이 나오는 일, 배고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 생리의 자연적 욕구가 있을 때에는 정말로 못 배길 일이었다. 이런 고통을 당할 때마다 벽장 속에 숨어 있어야 하는 내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비참해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컴컴한 벽장 속에서 생리적 배설을 참으면서 짐승같이 혼자서 흐느껴 울기도 하였다. 이 비감(悲感)은 누구한테 창피해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다만, 나만 알고 하늘이나 땅이나 알 일이었다.
이렇게 컴컴한 벽장 속에서 울다가 잠이 들면, 손님이 간 후에 어머니는 손님이 갔다고 벽장문을 열어 나를 부르셨다. 내가 대답이 없으면 쭈그리고 자는 나를 깨우고는 어머니도 울고 나도 울곤 하였다.
간혹 내가 집안 식구와 대화를 할 때에, 아는 사람이나 또는 친척이 찾아와서 내 음성을 듣고 나의 소리가 난다고 하며 나에게 관하여 물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집안 식구들은 곤란과 무색을 당하면서 ‘아니’든가 ‘없다’든가 하는 부정으로 간신히 그 자리를 얼버무려 넘긴다. 그러나 그 수작이란 정말로 거짓말이 뻔하게 보이는 서투른 것이었다. 언제 사람들에게 나의 병(病)이 탄로 날지 몰랐기 때문에 나의 생활이란 살얼음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나에게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문학이었다. 나는 문학을 통해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들고, 인간의 꿈을 이 땅위에 행복하게 구현시키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소망은 내 마음 속에 한 줄기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 마음 속에 활활 타오르는 문학에 대한 열정은 한 줄기 피어나는 꽃과도 같았다. 이 꽃을 보고 나는 내가 살아 있는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살아야 할 생명이 삶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환희의 불이었다. 구름이 떠 가며 흩어지는 것, 한 마리의 새가 우짖는 것, 몇만 년을 유구히 흘러가는 것, 그리고 남녀가 빚어 내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모두 꽃같이 애절한 기쁨이었다.
비가 그친다. 몇 달이나 계속해서 내리던 장마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갠다. 얼마나 기쁜 일이냐! 무슨 중병을 다 치르고 난 듯 경쾌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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