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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본문 일부 및 해설 / 김태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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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김태길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 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날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 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意思)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하략>


 작자 : 이양하(李敭河 1904-1963)
 형식 : 경수필
 성격 : 주지적. 논리적. 사색적. 경세적. 예찬적
 문체 : 우유체
 구성 :
   나무의 덕(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의 자족(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의 고독(나무는 고독하다. -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나무의 삶의 태도(나무는 친구끼리 -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나무의 또 하나의 소원(나무에 하나 더 원하는 것이 -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나무의 성품(나무는 훌륭한 - 안분지족의 현인이다.)
   나의 소망(불교의 소위 윤회설이 - 끝)
 제재 : 나무
 주제 : 나무가 지닌 덕(德)
 특징 : 나무를 의인화하여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이끌어냄. 나무의 생태와 모습을 인간의 삶의 자세와 연결시킴.
 출전 : <나무>(1964)

 

 

(전략)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말로[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강조할 때 쓰는 말] 바람장이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올 뿐 아니라, 어떤 때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가만히 있는 사람을 자꾸 꾀거나 추겨서 마음이 움직이게 하는 모양,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환심을 사려고 아첨을 떨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마구 때리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보기에 무지하고 포악하여 드세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손톱 따위로 할퀴어지거나 긁혀서 생긴 작은 상처]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가다가의 준말. 어떤 일을 계속하는 동안에 어쩌다가 이따금]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마음에 품은 불평을 늘어놓음]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 믿지 못할 친구인 바람과 새의 형태가 드러남

 

(하략)

 

 등성이 : 산의 등마루
 득박(得薄) : 얻은 것이나 주어진 것이 적음
 생채기 : 할퀴어 생긴 작은 상처.
 이심전심(以心傳心)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오 전달함. 심심상인, 불립문자, 염화미소 후대(厚待) : 후하게 대접함.
 묵도(默禱) : 묵묵히 기도함.
 전당(殿堂) : 크고 화려한 집. 여기서는 예배당·성당·사원 등과 같은 거룩한 곳
 천명(天命) : 타고난 목숨. 운명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 : 금욕(禁慾)·절제를 위주로 하는 사람
 철인(哲人) : 학식이 높고 사리에 밝은 사람. 철학가
 안분지족(安分知足) : 편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을 앎. 분수를 지키고 욕심을 부리지 않음
 현인(賢人) : 어질고 총명함 성인(聖人)의 다음 가는 사람
 나무는 - 고독을 안다 : 나무를 고독한 인격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표현이다. 덕을 지닌 고고함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 스스로 족하다. : 나무는 소나무이건 진달래이건 간에 다른 나무가 되었더라면 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나무는 - 친구로 대한다 : 나무를 현자나 군자에 비유하여 우애에 있어 편벽되지 않고 중용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 -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날 한밤 고독도 안다. : 눈 내리는 겨울 아침이나 숨막힐 듯한 더위에 사람의 거동이 모두 정지된 때의 질식할 듯한 고독, 그리고 매서운 추위 속에 별도 얼어 붙고, 돌도 얼어 터질 듯한 겨울밤의 고독도 안다.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날 한밤의 고독도 안다 : 몹시 추운 겨울 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나무에 하나 더 - 돌아가는 것이다 : 사람처럼 흙과 물로 돌아가는 나무의 한 살이의 마지막 부분을 설명한 부분

 

 이양하의 수필은 지성적이며 철학적 깊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글은 1964년에 나온 수필집 <나무>의 표제작으로, 나무가 지닌 속성을 인간에 비교한 교훈적 내용의 수필이다. 나무는 안분지족의 현인, 고독의 철인, 훌륭한 견인주의자로 비유되고 있으며, 지은이는 자신의 인생관을 나무의 덕에 비유하면서 나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대상에 대한 깊고 애정 어린 성찰을 담담하고 관조적인 어투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의 표현은 감정, 주장, 논리를 앞세우지 않고 구도자의 고백적 태도를 보여 주는 관조적인 글로, 소재를 의인화하고, 그 속성을 인간의 속성과 비교하면서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범속한 생활 주변의 소재에서 자연과 인생의 깊이를 통찰하려는 지은이의 의도가 전편에 배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글은 이양하의 문학관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그의 고독한 생활, 소박한 자세, 자연과 친구에 대한 사랑, 감사하는 마음들이 나무 위로 잘 겹쳐 있다.

 

 뿐만 아니라 나무에는 그가 인간에 대해 소망하는 인간성의 모든 조건들이 드러난다. 나무가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욕망에 사로잡혀 허덕이는 인간의 본성과 대비되는 것이요, 나무가 고독하다는 것은 인간 또한 나무처럼 의젓하게 그것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달과 바람과 새가 나무의 친구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두루 너그러워지리라는 경구(警句)인 것이다.

 

 나무가 지닌 속성을 인간에 비교한 교훈적 내용의 수필이다. 나무는 안분지족의 현인, 고독의 철인, 훌륭한 견인주의자로 비유되고 있으며, 지은이는 자신의 인생관을 나무의 덕에 비유하면서 나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대상에 대한 깊고 애정 어린 성찰을 담담하고 관조적인 어투로 형상화시킨, 이양하 수필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수필은 나무를 의인화하여 그 성격을 예찬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독자는 나무를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생각하게 된다. 지은이는 나무를 대상(對象)으로 바라보기보다 인격화하여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세우고 있다. 이러한 자연 친화 사상은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정서에 핵을 이루고 있다.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에서는 자연을 이상적인 친구의 유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무'의 특징

① 작품 세계는 사색에서 얻어진 예지를 기초로 하며 쓴 교훈성이 강한 수필이다.
② 나무와 같은 평범한 소재에 인격을 부여하여 인생의 진실을 말하는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③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여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④ 문장은 열거법, 대조법 등을 사용한 장문이 많다.

 

 

  "나무"에 나오는 고독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 : 앞뒤를 분간할 수 없고 내일을 전망할 없으므로 느끼는 고독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 : 지난 하루의 삶이 우울하고, 내일의 전망이 불투명하므로 느끼는 고독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 : 황혼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비치는 그러한 고독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 : 이웃과 아무 대화도 있을 수 없을 때 느끼는 고독
파리 옴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 : 한여름의 대낮, 아무 시원스런 일이 보이지 않을 때 느끼는 고독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 : 춥기만 한 한밤, 잠마저 들 수 없을 때 느끼는 고독

 

 

 이양하

 수필가. 영문학자. 평남 강서(江西) 출생. 일본 도쿄[東京]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 서울대학 문리과대 교수 역임하였다. 그의 수필은 대개 자연이나 생활 자체에서 그 소재를 구한다. 자연 예찬적 성격의 글이거나 혹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세심한 관찰을 통해 포착하여 낸다. 대표작으로 "나무", "신록예찬", "나무의 위의" 등의 수필이 있다.

 

 

 윤회설

산스크리트의 삼사라(sa涵s型ra)를 번역한 말로, 전생(轉生)·재생(再生)·유전(流轉)이라고도 한다. BC 600년경 《우파니샤드[優波尼沙土]》의 문헌에서 비롯되어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천상(天上)의 육도(六道:六趣)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현재 우리들 앞에 있는 축생, 예를 들어 파리나 모기 등도 전생에는 인간이었던 것이 바뀌어 태어났는지도 모르며, 또 장차 우리들이 저승에서 파리·모기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도 중 어느 세계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와의 총체인 업(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하며, 또한 이 업은 이승에 있는 우리들의 상식을 초월하여 판정되어, 선업(善業)에 의하여 선의 세계에, 악업에 따라 악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한다.

 

한편 부분적이기는 하나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 중에도 이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말한 이가 상당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니체의 영겁회귀(永劫回歸)사상 등은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금욕주의<asceticism>(禁欲主義)

인간의 정신적·육체적인 욕구나 욕망을 이성(理性)이나 의지로 억제하고 금함으로써 도덕이나 종교상의 이상을 성취시키려는 사상이나 태도. 금욕을 뜻하는 금제(禁制)가 따르는 연습·수련을 말하는데, 이에서 유래되는 금욕주의에는 2가지 경우가 있다. ① 어떤 궁극적인 목적을 위하여 몸을 단련시킨다는 본래의 뜻과, ② 육체에 대한 불신(不信)에서 몸을 파괴하거나 그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금욕주의의 역사에는 이 두 가지 전혀 다른 견해가 섞여 있다. 원래 금욕주의는 의지가 생활 앞에 내세우는 이성의 명령과, 생활 속에 있는 자연적인 여러 가지 욕구와의 모순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모순은 당연히 고통이나 불쾌감을 수반하게 되므로,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육체를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단련시키거나, 영혼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보아 이를 제거하려고 한다.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이원론(二元論)은 인생을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의 싸움터로 보고 후자의 소멸에 의한 전자의 승리를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태도와 결부된 금욕주의가 이원론적 금욕주의이다. 여기서는 이성만이 선(善)의 근원이며, 감성(感性:충동·욕망)은 악의 인연(因緣)으로 보고, 후자의 억압이 도덕생활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감성 그 자체를 악으로 볼 때에는 금욕의 정도가 극단적으로 기울어 마침내 고행(苦行)을 적극적인 선(善)으로 생각하는 입장이 된다.

 

피타고라스파(派), 퀴닉파, 스토아파, 중세의 수도원 생활, 쇼펜하우어의 윤리설, 간디의 순결사상 등은 모두 이런 뜻의 금욕주의 계통에 속한다. 한편, I.칸트는 수도사의 금욕은 덕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광신적 속죄(狂信的贖罪)를 꾀하는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하여 본원적인 도덕적 금욕이 있다는 것을, 스토아파의 “인생의 우연한 화악(禍惡)에 견디고 쓸데없는 오락이 없어도 지낼 수 있도록 길들여라”라는 격언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도덕적 금욕은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양생법(養生法)으로서, 자연충동에 대한 투쟁과 그 지배가 인간을 건전하게 만들고 재차 획득한 자유의식이 사람을 기쁘게 해준다고 강조하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 일부 사람만이 영원한 구원으로 선택된다는 J.칼뱅 등 예정설(豫定說)과 결부시켜, 자기가 선택되었다는 확증을 일상생활에서 구하고 있다. 인간은 신의 은총에 의하여 주어진 재화(財貨)의 관리자, 영리추구의 기계로서의 의무를 지게 되며, 금욕은 목적으로서의 부(富)의 추구를 악(惡)이라고 배척하면서도 부의 추구를 직업노동의 성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팽창되어가고 있는 시민사회의 윤리로서 반권위적 성격을 가지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절대주의적 봉건사회에 항의하는 역할을 하였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나무와 민간신앙

 한국인의 신화적 발상법과 자연신앙의 두 영역에 걸쳐서 원형으로서 문제될 수 있는 나무로는 신단수 ( 神壇樹 )와 소도 ( 蘇塗 )를 들 수 있다.

 

앞의 것은 자연수이고 뒤의 것은 인공으로 다듬은 대 〔 竿 〕 이지만, 각기 ‘ 신나무 ’ · ‘ 신대 ’ 라고 이름지어질 수 있는 공통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신나무인 신단수는 서낭나무의 원형으로, 소도는 후대의 신대(서낭대) 및 솟대의 원형으로 생각될 수 있다.

 

신단수는 첫째 산 위에 솟아 있는 나무이다. 둘째 하늘신이 그 아래로 내려선 나무, 곧 신내림의 나무이다. 셋째 그것을 중심으로 하거나, 혹은 그것을 에워서 신시 ( 神市 )가 열린 나무이다. 이들 신단수가 지닌 세 가지 속성은, 그것이 지닌 우주성(세계성)과 종교성 그리고 공동체성에 대하여 각기 말해주고 있다.

 

물론, 이 세 가지 특성은 따로따로 떼어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셋이 하나로 어울려서 신단수의 상징성을 결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성(세계성)이란 신단수가 ‘ 세계수 ’ 또는 ‘ 우주나무 ’ 임을 의미한다.

 

세계의 한가운데 솟아서 세계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기둥 구실을 하는 나무가 세계수이다. 세계수인 신단수가 솟아 있는 태백산은 세계산이라는 이름으로 호칭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성이란 그것을 타고 하늘의 신이 하늘과 땅 사이를 내왕하는 나무, 곧 신내림나무임을 의미한다. 이 신내림나무라는 관념은 신이 그곳에 내리기만 한 나무가 아니고, 내려서 깃들인 나무이기도 하다는 뜻의 신지핌나무라는 관념을 파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신령 그 자체로 믿어진 나무, 곧 신령나무라는 관념도 낳을 수 있다.

 

오늘날의 서낭나무신앙에는, 이같이 신내림나무 · 신지핌나무 · 신령나무 등의 관념이 공존해 있다고 생각된다. 서낭나무에 근접하는 일은 동티를 타게 될 부정으로 간주되며, 서낭나무를 훼손하는 일은 신체 ( 神體 )의 훼손과 마찬가지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낭나무 그 자체가 마을의 신주 ( 神主 )로 간주되기도 하는 것이다.

 

신단수의 공동체성이란 그것이 특정한 공동체의 중심임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공간적 중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중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동체 구성의 공간적 · 정신적 구심력으로서 신단수가 기능을 다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신단수의 공동체성이 부분적으로 세계성과 겹치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세계성(우주성)은 자연과 관련된 것임에 비하여, 공동체성은 정치적 · 사회적 공동체 성립과 관련된 만큼, 강한 문화적 징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계성 · 종교성 · 공동체성 등 세 가지 징표로 신단수의 신화적 속성 또는 자연신앙적 속성이 결정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민족이 나무에 부쳐서 형성한 신화적 · 자연신앙적인 원형이기도 한 것이다.

 

이같은 신단수의 원형성은 장헌 고구려고분벽화에 그려진 나무와 신라왕관에 ‘ 출(出) ’ 자로 도형화되어 있는 나무, 그리고 후세의 서낭나무 등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신단수가 지닌 세 가지 속성에다가 다시 번영과 영생까지를 더하여 생각하게 되면, 한국인들이 나무에 부쳐서 형성하고 또 전승하여 온 신화와 자연신앙 양쪽에 걸친 복합적인 상징성이 잡혀지게 될 것이다.

 

한편, 소도에서 서낭대와 솟대에 이르는 신대의 상징성에도 세계성과 종교성, 그리고 공동체성을 겹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신대의 원형성은 신단수의 원형성과 크게 달라질 수 없다. 가령, 이 소도나 서낭대에도 세계기둥 및 우주기둥의 관념을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도에서 공동체 중심의 상징성을 보아내는 일은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신대의 경우는 신내림대라는 상징성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되면서, 한국인의 접신체험(接神體驗)을 위한 핵심적 매개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점에서 우리들은 신대가 서낭나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특징적 개성을 지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참고문헌 ≫ 東國輿地勝覽, 芝峰類說, 韓國植物圖鑑(鄭台鉉, 新志社, 1956), 韓國神話와 巫俗硏究(金烈圭, 一潮閣, 1977), An Introduction to Plant Biology(Weier,T.E., et al., John Wiley & Sons, 1982), 造林學的으로 본 溫度因子(任慶彬 · 李壽煜, 韓國林學會誌 25,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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