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본문 일부 및 해설 / 박완서
by 송화은율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신나는 일 좀 있었으면
가끔 별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말이다. 마음속 깊이 잠재한 환호(歡呼)에의 갈망 같은 게 이런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샌 좀처럼 이런 갈망을 풀 기회가 없다. 환호가 아니라도 좋으니 속이 후련하게 박장 대소라도 할 기회나마 거의 없다.
의례적인 미소 아니면 조소·냉소·고소가 고작이다. 이러다가 얼굴 모양까지 얄궂게 일그러질 것 같아 겁이 난다.
환호하고픈 갈망을 가장 속 시원하게 풀 수 있는 기회는 뭐니뭐니 해도 잘 싸우는 운동 경기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국제 경기에서 우리편이 이기는 걸 텔레비전을 통해서나마 볼 때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일로 신이 나서 마음껏 환성을 지를 수 있었던 기억이 아득하다. 아마 박신자(朴信子) 선수가 한창 스타 플레이어였을 적, 여자 농구를 보면 그렇게 신이 났고, 그렇게 즐거웠고, 다 보고 나선 그렇게 속이 후련했던 것 같다.
요즈음은 내가 그 방면에 무관심해져서 모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처럼 우리를 흥분시키고 자랑스럽게 해 주는 국제 경기도 없는 것 같다.
지는 것까지는 또 좋은데 지고 나서 구정물 같은 후문(後聞)에 귀를 적셔야 하는 고역까지 겪다 보면 운동 경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마저 식게 된다.
이렇게 점점 파인 플레이가 귀해지는 건 비단 운동 경기 분야뿐일까. 사람이 살면서 부딪치는 타인과의 각종 경쟁, 심지어는 의견의 차이에서 오는 사소한 언쟁에서까지 그 다툼의 당당함, 깨끗함, 아름다움이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무리 눈에 불을 밝히고 찾아도 내부에 가둔 환호와 갈채(喝采)에의 충동을 발산할 고장을 못 찾는지도 모르겠다.
<하략>
지은이 : 박완서(朴婉緖: 1931- )
갈래 : 경수필
성격 : 사색적, 교훈적, 서정적
제재 : 마라톤의 후속 주자
주제 : 인생의 고통과 고독을 견뎌 내는 의지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선두 주자가 드디어 결승점 전방 십 미터, 오 미터, 사 미터, 삼 미터, 골인! 하는 아나운서의 숨막히는 소리가 들리고 군중의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들렸다.
비로소 일 등을 한 마라토너는 이미 이 삼거리를 지난 지가 오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삼거리에서 골인 지점까지는 몇 킬로미터나 되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상당한 거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통행이 금지된 걸 보면 후속 주자들이 남은 모양이다. 꼴찌에 가까운 주자들이.
그러자 나는 그만 맥이 빠졌다. 나는 영광의 승리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비참한 꼴찌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기대감에서 실망감으로 바뀐 심정을 직접적으로 진술함)
또 차들이 부르릉대며 들먹이기 시작했다. 차들도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현대인들의 조급함) 다시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저만치서 푸른 유니폼을 입은 마라토너가 나타났다.
삼거리를 지켜보고 있던 여남은 구경꾼조차 라디오방으로 몰려 우승자의 골인 광경, 세운 기록 등에 귀를 기울이느라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도 무감동하게 푸른 유니폼이 가까이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몇 등쯤일까, 이십 등? 삼십 등? ---- 저 사람이 세운 기록도 누가 자세히 기록이나 해 줄까? 대강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십 등, 아니면 삼십 등의 선수가 조금쯤 우습고, 조금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푸른 마라토너는 점점 더 나와 가까워 졌다. 드디어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꼴찌 주자(走者)의 위대성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태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꼴찌에게 관심을 갖게 된 반전의 계기)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고통을 인내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한 감동). 그는 이십 등, 삼십 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좀 전에 그 이십 등, 삼십 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도 자기의 이십 등, 삼십 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엣다 모르겠다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내가 그걸 보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마라토너와의 연대감을 느끼게 됨)
어떡하든 그가 그의 이십 등, 삼십 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끼지 말아야지 느끼기만 하면 그는 당장 주저앉게 돼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마라토너의 고난의 여정에 대한 격려와 연대감의 표현)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보면 안 되었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 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마라톤과 인생을 비유적으로 표현으로 주제 제시 :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적 화자의 심정과 유사)
내 고독한 환호에 딴 사람들도 합세를 해 주었다. 푸른 마라토너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주자는 잇따랐다. 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올라 있었다.(뜨거운 연대감의 결과적 표현)
글쓴이는 일상적 무료함에 젖은 생활에서 새로운 마라톤 경기 관전이라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 체험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고독과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꼴찌에게서 부귀(富貴)와 명예(名譽) 없이도 꿋꿋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깊은 예찬과 격려를 담아 내고 있다.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숙명여고 졸업.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로 학업 중단.
1970년 마흔살의 나이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국의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빛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한국문학작가상(1980)「그 가을의 사흘 동안」), 이상문학상(1981 「엄마의 말뚝」),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1997년에 대산문학상 등 수상.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6), 『창 밖은 봄』(1977), 『배반의 여름』(1978), 『도둑맞은 가난』(1981), 『엄마의 말뚝』(1982), 『서울 사람들』(1984), 『꽃을 찾아서』(1986), 『저문 날의 삽화』(1991), 『나의 아름다운 이웃』(1991), 『한 말씀만 하소서』(1994) 『너무도 쓸쓸한 당신』(창작과비평사 1998)등.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1977), 『도시의 흉년』(1979), 『목마른 계절』(1978), 『욕망의 응달』(1979),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오만과 몽상』(1982), 『서 있는 여자』(1985),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미망(未忘)』(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2) 등.
동화집 『마지막 임금님』(1979).
장편동화 『부숭이의 땅힘』(1994) 등.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1980), 『혼자 부르는 합창』(1977), 『살아있는 날의 소망』(1982),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1990) 『어른노릇 사람노릇』(1998) 등과 기행문 『모독(冒瀆)』간행.(출처 : 창작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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