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나를 만들어가는 독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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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들어가는 독서 / 신달자(명지전문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서령고등학교 학생들이 순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앉아 ‘순수하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중 필리핀의 한 농부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농부는 열심히 일했지만 겨우 먹을거리를 장만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 저는 몇 해를 열심히 일해도 돈을 손에 쥐어본 적이 없습니다¸ 500페스 정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봉투에 적힌 ‘하나님’이란 주소에 의아하게 여긴 우체국 직원들은 그 편지를 뜯어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모급을 해 250페스를 농부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 농부의 편지가 왔습니다.

“하나님¸ 우체국 직원들은 하나같이 못된 인간들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500페스에서 반만 저에게 전해줬으니 하나님께서 그 반을 찾아주십시오.”

이 농부 같은 사람을 ‘소박하다’¸ 혹은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만큼 순수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 봅시다. 그 순수의 농도를 따지면 너무 순수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순수를 잃어도 안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가장 인간답게 순수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 균형적인 순수를 누리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처방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란 시에서 이땅에 살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즐거운 소풍이라 하겠다 합니다. 물론 우리네 삶이 과연 즐거운 소풍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천상병 시인은 비록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욕심 없이 살았기에 삶을 즐거운 소풍과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상병 시인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삶은 아닙니다. 순수와 욕망과 개인적인 꿈 같은 것이 함께 있어야 할 때 그 중간기둥을 무엇으로 삼을까요. 나는 독서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경영학에 ‘전파론’이란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인간을 네 종류로 나누고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인간형은 평탄한 걸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쪽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약 75%가 이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느 정도 이에 해당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밖에 못사는 인생인데 내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남에게 휩쓸리지 않고 비록 작은 삶이더라도 내 꿈대로 사는 방법이 바로 독서 안에 있습니다.

미국의 한 재벌은 260억원으로 일주일간 지구여행을 다녀온 후 “너무 아름다웠다. 난 이제 생을 마감해도 좋다. 260억 원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적은 돈으로 인간의 내적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독서이지요. 독서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확장시키고 부족한 점을 보양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이 ‘말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단순하고 사무적인 대화는 독서와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교환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독서는 말하기와 관계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일단 생각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생각을 교환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면 비로써 독서가 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문학 속에는 희망¸ 꿈¸ 가치관¸ 공포¸ 고통 등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참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희망과 꿈과 가치관을 높여줍니다. 저는 윤동주의 ‘자화상’을 힘들거나 욕심이 생길 때 외우곤 합니다. 윤동주는 겉으로는 훌륭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갈등하는 시를 썼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것입니다. 이 시와 같이 독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오한 대화는 언어로 말할 수 없는 부분까지 소통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하게 하는 내적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또한 독서입니다. 이런 것이 없다면 책은 우리에게 그냥 종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필요한 인물이 된다면 빵은 저절로 생깁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이지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뭔가 아는 사람이 되어 있고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 있다면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므로 책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 내용 있는 알찬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3만 권의 책을 읽은 학생이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 아이는 어떤 폭풍이 불어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아이라고 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인생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의지대로 우뚝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 정신만 있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몇 권의 책을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으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을 읽진 마십시오. 자연스럽게 끌려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토론하는 가운데 상향되는 세계를 내 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과 대화하는 상대방에게 훌륭한 지적 상대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보면 한 알만 먹으면 일주일간 목마르지 않아 534분을 절약할 수 있는 알약을 파는 약장사에게 어린 왕자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에게 만약 53분이 주어진다면 나는 샘을 향해 걸어갈텐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샘을 행해 걸어가는 행위¸ 이는 어떤 의미에서 정신적 독서행위와 같습니다. 책 속에는 아무 것도 없고 인내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읽으면 정신의 무장이 됩니다. ‘인간’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독서가 주는 선물입니다. 인생을 살다 힘든 일을 만날 때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책을 읽지 않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이 그것을 견뎌 걸어나가겠습니까. 창고에 아무리 보물이 많이 쌓여 있어도 우리의 정신이 비어 있다면 평생 목마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독서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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