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 황병기
by 송화은율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 황병기
음악이라는 단어는 19세기 후반부터 서양의 뮤직(music)이라는 말을 번역하여 새로 지어진 것으로서, 전통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던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나 [수서(隋書)] 같은 중국의 옛 문헌에 음악이라는 말이 나오는 예가 없지는 않지만, 켤코 일반화된 명칭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음악에 가장 가까운 뜻을 지닌 전통적인 어휘는 악(樂)이었다. 본래 악이라는 한자는 음악이라는 뜻 이외에도 ‘낙원(樂園)’에서처럼 ‘락’으로도 발음하면 ‘즐겁다’는 뜻을, ‘요산요수(樂山樂水)’에서처럼 ‘요’로 발음하면 ‘좋아한다’는 뜻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음악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고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니, 악이라는 하나의 글자가 이처럼 세 가지 뜻을 지녔음은 그 의미가 심장하다고 하겠다.
‘악’자 위에 풀 초(草)자를 덧붙이면 약(藥)자가 된다. 이처럼 악과 약은 그 발음에서 뿐만 아니라 글자 형태에 있어서도 바로 사촌 관계에 있다. 본래 악은 하늘과 땅의 조화로써 인간의 심성을 드높여 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세종실록]을 보면 “악이라고 하는 것은 聖人이 성정(性情)을 기르고 신과 인간을 화합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순하게 하고 음과 양을 고르는 道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확실히 음악은 병들고 어긋난 인간의 본성을 올바르게 고쳐 주는 힘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병든 육체와 더 나아가서는 정신까지도 고쳐주기 위한 약은 바로 음악, 즉 악과 통하는데, 고대에 동양의 대부분이 약이 풀에서 얻어졌기 때문에 ‘풀에서 나온 음악’이라는 뜻으로 풀 초 밑에 음악이라는 악을 합하여 藥자를 만들었던 것 같다. 서양의 메디신(medicine)이라는 단어가 라틴어 ‘메디쿠스(medicus)’에서 유래된 것으로 병을 치료해 준다는 단순한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 데 비해, 동양의 약은 음악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으니 참으로 심원하고 아취있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