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해설
by 송화은율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해설
작가 : 김정한(1908 ~ )
(1) 호는 요산(樂山). 경남 동래 출생. 동래고보 졸업 후 동경 제일외국어학원에서 1년간 공부, 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제에 항거하다가 구금됨. 그 후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대학 문과 중퇴.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사하촌」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1945년 해방 이후 <민주신보> 논설위원. 부산대 교수 등 역임. 1940년 일제의 발악이 극에 달할 무렵 한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1966년 「모래톱 이야기」로 문단에 복귀. 1969년 중편 「수라도」로 제 6회 한국문학상 수상.
대표작으로는 「옥심이」(1936), 「항진기」(1937), 「제3병동」(1969), 「뒷기미 나루」(1969) 등이 있고, 김정한 소설집(1974) 등의 작품집이 있다.
(2) 김정한은 경남 동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한학을 배왔으며, 12 살 되던 해에 3.1운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동래고보를 졸업(1928)하고, 울산 대현보통학교의 교원으로 취임하게 된 김정한은 동아일보와 여러 문예지에 시를 투고하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평소 식민지 조국의 비극적 현실에 남다른 의분과 항일의식이 깊었던 관계로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삶을 살게 되는 김정한은 일제 치하에서의 교원 생활이라는 것에 모순과 한계를 느끼고, 이에 조선인 교원 동맹을 조직하고자 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가택 수색과 심문에 좌절되었습니다. 이 때 동래서에서 겪은 고문과정이 ‘어둠 속에서’의 소설적 배경이 됩니다. 이후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한 김정한은 조선인 유학생들이 발간하던 문예지 <학지광(學之光)> 편집에 참여하는 한편, 고국의 <조선시단(朝鮮詩壇)>, <문학건설>, 신계단(新階段)> 등에 시와 소설을 발표합니다. 이 때 당시 시인이던 이찬과 평론가인 안막, 이원조 등과 문우(文友)로 사귀게 됩니다. 고등 학원 재학 중 여름방학에 일시 귀국한 김정한은 양산 농민 봉기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를 그만두고, ‘남해’섬의 교원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 때 쓴 작품 ‘사하촌(寺下村)’(1936, 조선일보)이 그의 대표작이자 문단에 정식 데뷔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하촌’은 보광사라는 절의 중들이 소작농들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일제에 빌붙어 반민족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모습을 날카롭게 파헤지므로 해서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농촌의 실상을 잘 보여줍니다. ‘사하촌’에 이어 ‘항진기’, ‘기로’, ‘낙일흥’ 등의 작품을 발표하던 중, 일제의 조선어교육 금지령이 내려진 1940년 봄. 학교에서 우리말 교육이 불가능해지자 김정한은 교직을 그만두게 됩니다. 이어 폐간 직전이던 등아일보 동래지국을 인수하여 가족과 함께 동래로 이주하였으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되고 동아일보는 폐간됩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극에 달한 이 시기에 상당수의 유명작가들이 일제에 빌붙어 천황을 찬양하거나.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유혹하여 내몰고 있을 때, 김정한은 의연히 붓을 꺾음으로써 양심적 지식인의 산 증인이 되기도 하였지요.
해방이 된 후에도 김정한은 한동안 신문의 논설이나 학술지에 논문 등을 발표하였을 뿐 창작 활동이 없었다가, 절필 후 20여 년이 지난 1966년에 ‘모래톱 이야기’로 문단에 복귀합니다. ‘모래톱 이야기’는 낙동강 하구의 조그마한 섬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데, 낙동강 하구 조그마한 섬 주민들의 삶의 애환과 고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당함과 비인간적인 것에 대해 준열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요산(樂山) 김정한은 ‘모래톱 이야기’라는 소설에서 알 수 있듯이 낙동강 하구를 중심으로 소외된 낙동강 사람들의 애환과 아픔을 지켜주는 진정한 낙동강의 파수꾼이 되었습니다.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의 지조를 지킨 집안의 며느리로서 일생을 보낸 한 여인의 기구한 일생을 통해 진정한 해방의 의미를 되묻고 있는 ‘수라도’(1969), 나환자(문둥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박해와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비인간화 되어가는 사회 현실과 이기적인 인간의 단면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인간단지’(1970) 등을 통해 비인간화된 사회와 현실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민중들의 삶에의 의지가 김정한 소설의 주된 테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하촌’의 농민들, ‘모래톱 이야기’의 건우 할아버지 ‘수라도’의 박 서방, ‘인간단지’의 우중신 노인 등. 김정한은 모든 사회적 비리와 냉대 속에서도, 결코 패배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건강한 문학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등장 인물
나 : 교사이자 작가. 이 이야기의 서술자
갈밭새 영감 : 주인공 조마이섬을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
건우 : 인식이 뚜렷하고 순박한 성격을 지닌 학생
윤춘삼 : 부당한 옥살이도 함. 저항적. 갈밭새 영감과 유사한 성격
줄거리
(1) 작문 시간에 건우가 쓴 ‘섬 얘기’에 관한 저주가 깔린 글을 본다. 건우의 집을 방문한 나는 건우 아버지는 고기잡이 가서 죽고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할아버지와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와 있음을 알고 군시절 만났던 윤춘삼을 만나서, 섬사람들도 모르게 섬의 주인이 일제에서 국회의원 유력 인사의 소유로 변한 사실과 문둥이를 싣고 와서 섬사람들을 몰아내려한 사실 등을 듣고 노인으로부터 이 섬에 대한 글을 한 번 써 보라는 말을 들는다.
수박 드시러 오라는 건우의 청을 듣고 가려던 날 폭풍우가 몰아쳐서 조마이섬은 홍수로 자며감 강 가운데로 떠내려가는 수박덩이를 보고 불길한 중, 시에서 눈가림으로 해놓은 둑을 섬사람들이 파헤쳐 물길을 터놓은 것을 듣는다.
둑을 터놓자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청년을 갈밭새 영감이 물속에 태질을 하고 섬이 구해지자 갈밭새 영감은 경찰에 연행에 서슴지 않고 응했다는 이야기를 윤춘삼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했고, 나는 보상받지도 못한 채 죽음을 무릅써야하는 섬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을 느낀다.
폭풍우가 끝나고 60이 넘은 갈밭새 영감은 기약없는 옥살이를 하고 있고 새학기가 되어도 건우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후 조마이 섬은 군대가 정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 이십 년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교원 노릇을 해 오던 탓으로 우련히 알게 된 한 소년과, 그의 젊은 홀어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이 살아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 <중략>
건우란 소년은 내가 직접 담임했던 제자다. 당시 나는 K라는 소위 일류 중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낙동강 하류의 조마이섬 사람들은 땅에 대한 한 (恨)을 지니고 있다. 자기네 땅을 가지고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외세의 압제와 제도의 불합리에 말미암아 오늘에 이르도록 토지 소유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일제 때는 동양척식회사의 땅으로, 그 후에는 문둥이 수용소로 소유자가 바뀌었다. 건우네 집도 마찬가지였다. 건우네는 아버지가 삼치잡이에 나가서 죽고 할아버지 갈밭새 영감, 어머니와 같이 지낸다. 살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렇게 살기가 힘든 어느 날 조마이섬에 장마가 닥치고, 강둑을 파헤치지 않고는 섬 주민들이 살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 된다. 이때 유력자의 앞잡이인 청년들이 나타나 이를 방해하고 엉터리로 둑을 막는다. 섬을 통째로 삼키려는 무리들의 소행에 화가 난 갈밭새 영감이 청년 하나를 탁류에 던진다. 이로 인해 영감은 구속되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건우는 행방 불명된다. 모래톱은 황폐해졌고, 새 학기가 되어도 건우는 나타나지 않고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하였다.
나는 조마이섬에 사는 윤춘삼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이방인처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새학기가 되어도 건우군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일기장에는 어떠한 글이 적힐는지 ?
황폐한 모래톱 ---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감상의 길잡이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작품은 소외 계층이 겪어야 하는 삶의 애절함과 그 비극을 그린 소설이다. 즉, 한국전쟁으로 전사한 아버지와 가진 자의 앞잡이요 깡패를 물 속에 던지고 잡혀간 할아버지를 가진 소년의 이야기이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로 사회 현상의 모순과 대결해 나가는 인간의 처절한 삶을 묘사한 작품이다. 현실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두운 일면을 그린 소설로, 하층 계급의 삶에 대한 처절한 투쟁과 암담한 현실을 사실적 수법으로 그렸다. 이 작품에는 작자의 현실에 대한 저항 정신과 고발 정신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조마이섬이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비뚤어진 시대상에 항거하고, 서민의 고난을 증언한 작품이다. ‘모래톱‘을 휩쓴 홍수의 와중에서 그 섬을 구해 내기 위하여 유력자가 만든 엉터리 둑을 파괴한 행동, 이를 저지하려는 유력자의 앞잡이를 살해한 갈밭새 영감의 저항은 부당하게 수탈당하고 억울하게 짓눌린 삶을 되찾으려는 행위로서 ’자기 희생을 통한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내 땅을 부당하게 빼앗고 섬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는 유력자(有力者)에게 저항하는 한 농민의 처절한 투쟁을 통하여 비참한 농촌 현실을 증언하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모래톱 이야기」는 1966년 「문학」 6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낙동강 하류의 어느 외진 모래톱을 배경으로 전개하는 이야기이다. 소외 지대 인간의 비참한 생활과 갈밭새 영감의 삶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저항을 묘사하는 이 작품은 농촌의 현실을 조명하고 증언하고 있다.
김정한은 반제, 반봉건, 반독재, 반군정을 자기 문학의 주제로 제시하며, 「모래톱 이야기」를 발표함으로써 꾸준한 저항 정신과 민중 문학의 형상화를 이룬다. 「모래톱 이야기」의 발표를 기점으로 주목할 만한 문학 복귀를 실현할 작가 김정한은 「축생도」(‘68), 「수라도」(’69), 「뒷기미 나루」(‘69), 「인간 단지」(’70), 「산거족」(‘71), 「사밧재」(’71) 등의 작품을 발표한 5년 동안 한국 문학의 큰 줄기를 형성하여 낙동강 일대 민중의 소리를 생기 있는 문체로 소설화하였다. 역사 속에 흐르는 민중의 피맺힌 소리를 집단 사회의 실태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구원의 보편 타당한 문제로 들고 나옴으로써 민중 문학에 있어 하나의 정통(正統)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특징들이 잘 나타난「모래톱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교사인 ‘나’는 ‘건우’라는 학생의 가정을 방문하려고 처음으로 ‘조마이섬’을 찿아 간다. 깔끔한 집안 분위기와 예절바른 건우 어머니의 태도에서 범상한 집안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는다. 19살에 청상이 되어 33살이 된 지금까지 건우를 키우며 살아온 의지도 엿보인다. 나는 건우의 일기를 통해서 ‘조마이섬’에 얽힌 역사와 현재에 대해서 알게 된다.
주머니처럼 생긴 ‘조마이섬’은 오랜 풍상과 홍수를 겪어 오는 동안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국유지인데, 일제 때에는 동척이라는 이름 아래 일본인의 땅,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의 소유지였다가 어떤 유력자 앞으로 넘어가게 되어 조상대대로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조마이섬」의 원주민들은 땅이 없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외세의 압제와 제도의 불합리로 말미암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토지 소유의 혜택을 입어 본 일이 없어 조마이섬 주민들은 땅에 대한 사무친 한을 품고 있는 것이다.
선비 가문의 후손임에도 건운네는 자기 땅이 없다. 아버지는 한국전쟁(6.25)때 군에 간 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정부로부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삼촌은 원양 어선을 타고 삼치잡이를 나갔다가 태풍에 휩쓸려 죽었다. 어부인 할아버지인 갈밭새 영감을 만나 극진한 술 대접을 받고서 조마이섬 주민들의 삶을 자세히 알게 된다. 그 해 처서 무렵 홍수가 나자 조마이섬은 위기에 처한다. 둑을 허물지 않으면 섬전체가 위험하여 갈밭새 영감의 주동 아래 조마이섬 주민들은 둑을 파헤친다. 이때 엉터리로 둑을 쌓아 섬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던 유력자가 하수인들을 시켜 방해를 하자 화가 난 갈밭새 영감은 그들 중 한 명을 탁류 속으로 집어 던지고 만다. 결국 노인은 살인죄라는 명목으로 투옥된다. 2학기가 시작되었으나 건우의 행방은 묘연하고, 황폐한 모래톱 조마이섬은 군대가 정지를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역사 속에 흐르는 민중의 한맺힌 부르짖음을 형상화하여 리얼리즘 소설의 정공법으로 비교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작가는 민중의 외침을 외면하는 위정자들을 비판하고 당시의 문학 풍조에 심각한 반성을 추구하며, 모순 투성이 현실에서 삶을 긍정하며 부조리에 저항하는 하나의 생존 양식을 제시하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3 >
이 소설은 1966년 『문학(文學)』이라는 잡지에 발표되었습니다. 작가의 나이 쉰아홉 살 때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극심했던 1040년경에 절필을 한 후, 이십여 년도 훨씬 지나고 나서의 작품인지라 문단의 관심을 많이 끌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오늘날까지 그 문학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김정한 문학의 특징인 비극적 현실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모래톱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생각과 작품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나는 일류 K중학의 교사이다. 연례적인 가정 방문을 위해 학생들에게 자신과 가족에 대한 소개의 글을 쓰게 하였는데, 비만 오면 지각을 하는 건우라는 학생의 ‘섬 얘기’라는 작문에서 심각한 충격을 받게 된다. ‘섬 얘기’는 건우라는 학생이 사는 조마이섬의 내력을 적은 것인데 그 내력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자기가 사는 고장이나 생활에 대한 표현에서 볼 수 있는 미화된 묘사가 아니라, 어린 소년에게서 느끼기 어려운 저주와 증오의 감정이 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 내력을 요약하자면, 조마이섬은 오랜 세월 갖은 풍상과 홍수를 겪어오는 동안에 모래가 밀려서 된 나라 땅인데 일제 때에는 억울하게도 일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있다가 해방 후부터는 어떤 국회의원의 명의로 둔갑이 되었는가 하면, 그 뒤는 또 조마이섬 앞강의 매립 허가를 얻은 어떤 다른 유력자의 앞으로 넘어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섬에서 오랜 세월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이 섬의 주민들과는 무관한 변화가 이러한 증오의 감정을 갖게 한 것이다.
건우는 6.25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건우 할아버지는 ‘갈밭새’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다소 큰 키에 검고 우악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건우의 가정 방문길에 우연히 만나 술자리를 하게 된다. 술자리 속에서 듣게 되는 조마이섬의 내력은 이미 건우의 작문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정부의 무책임한 문둥이 이주 정책 과정에서 갈밭새 노인이 이 섬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최근의 다시 권력의 힘을 등에 업은 어느 유력자가 섬사람들이 그간 애써 만들어 놓은 강둑을 파헤쳐 다리를 건설한다는 것에 분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태풍이 밀어닥치고, 섬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불어난 강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갈밭새 영감은 섬을 지키기 위해 섬둑의 일부분을 일시 무너뜨리자 유력자의 하수인들이 이를 방해한다. 부랑배 같은 유력자의 하수인과 갈밭새 노인이 서로 다투다 그만 하수인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이어 경찰에 잡혀간 노인은 기약 없는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 소설은 김정한의 이후의 소설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비인간화된 사회,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힘 없고 가난하지만 언제나 억척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짓누르는 권력과 그 하수인들에 대항해 소중한 삶의 의미와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김정한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갈밭새 노인의 행동과 ‘축생도’의 수의사, ‘수라도’의 박 서방, ‘인간단지’의 우중신 노인의 삶은 김정한 문학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뿐만 아니라, 진실되고 정의로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 감상의 길잡이 4 >
김정한 소설의 주인공들은 황폐하고 참담한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캄캄한 절망에 갇혀 있지는 않다. 출구를 찾아 끊임없이 고투해 나가는 점이 그렇지 않은 동시대 작가들과 구별되는 요소이다.
그러나 고발과 저항의 정신에 바탕한 김정한의 그같은 작품세계는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가능해졌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을 선전하는 작품들을 써서 친일의 욕된 대열에 합류하는가 하면 일본어로 소설을 쓴 작가들조차 생겨났다. 이런 일반적 추세를 등지고 김정한은 단호히 절필(絶筆)한다.
「모래톱 이야기」는 절필 26년만에 나온 문단 복귀 작품으로 절필 이전의 전 작품세계를 일관하는 고발과 저항의 정신이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작품은 중학교 교사인 화자가 낙동강 하류의 작은 섬인 조마이섬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낙동강의 흐름이 만들어낸 섬, 그렇기에 이 섬의 진정한 주인은 당연하게도 섬 주민들이다. 그러나 소유권은 언제나 주민들의 것이 아니었다. 일제때 동양척식회사 그리고 동적(東拓)으로부터 헐값에 불하받은 일본인 이주자들이, 해방 뒤에는 국회의원과 같은 권력과 유착한 실력자들이 이 섬의 소유권을 독점했다. 국가 권력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이들과의 맞싸움은 패배가 명확하게 예정되어 있는 성격의 것일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계속해서 패배해 왔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싸움을 계속한다는 것, 갈밭새 영감의 어기찬 투쟁의 한평생에 담긴 이같은 ‘굴강(屈强)의 정신'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이다. 이같은 주제의 안쪽에는 또 다른 하나의 주제, 속 주제가 숨어 있는데 바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법칙이다.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농민이 그 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정신인 것이다.
주인공인 같밭새 영감의 계속된 패배적 삶이 작품 구성의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패배를 통해 모순에 가득찬 현실을 증언하는 방식인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화자가 마치 르포처럼 실제 현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작가는 다른 글에서 이 작품의 내용이 실제가 아닌 가공의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실제 현실이라고 믿게끔 만들려는 의도의 소산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각종 현실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뜻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조마이 섬은 낙동강 하류의 어느 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 한국 현실의 핵심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공간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때로는 참담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증언하는 데서 오는 비장함과 때로는 절망적 현실을 뚫고 나아가려는 분노와 의지에서 생겨난 단호함을 담고 있는 김정한 특유의 간결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모래톱 이야기」는 현실의 부정적 뒷면을 밝혀 드러내고 비판하는 소설 전통이 크게 약화되었던 1960년대 중반 우리 소설계를 크게 충격, 자기 반성의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매우 큰 작품이다. 국가 권력의 폭력성이라든지, 땅의 진정한 소유자는 누구여야 하는가 등,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다루기 어렵고 그렇거 때문에 거의 다루지 않는 문제들을 정면에서 제기함으로써 우리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는 점도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굴강(屈强) 의 정신과 경자유전(耕者有田) 의 법칙 , - 정호응 (문학평론가. 홍익대 교수)
모래톱 이야기에 드러나는 문체의 특성
작품을 분석하여 보면 갈밭새 영감은 김정한 자신의 울분을 대신 토로해 주며, 가난하고 약한 자의 억울함을 대변해 주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갈밭새 영감의 성격적 특성은 바로 김정한의 문체적 특성 그것이 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갈밭새 영감의 입장에서 한 이야기들은 작가의 고발 의식과 작가적 정의와 울분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갈밭새 영감이 투옥되는 사실은 힘없고 가난한 자를 암시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시민의 절규와 반항은 처음부터 작품의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무뚝뚝하리만치 고집세고 묵묵하게 현실을 이겨 나가다가 그 이상 더 갈 수 없는 극한적인 억눌림으로 팽배해 올 때는 드디어 그 불칼 같은 저항의 힘으로 표면화하는 것이 특색이다.
즉, 필연적인 한계 상황에서 드디어 그 저항의 깃발을 나부끼고 일어서는 민중의 봉기가, 김정한 문체의 고발적 특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김정한 문체의 꾸밈없고 지리할 정도의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되는 요인인 것이다.
핵심 정리
(주제) 소외된 곳의 인간의 비참한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
(갈래) 단편 소설, 참여 소설, 농촌 소설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성격) 저항적, 현실 고발적
(배경) 시간적 배경은 일제 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이며, 공간적 배경은 낙동강 하류의 ‘조마이섬’이라는 외진 모래톱으로 제한된 공간이다.
(표현) ① 농촌의 삶의 실상을 사실적(事實的)으로 묘사함. ②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려는 작가 정신을 발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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