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해설
by 송화은율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해설
< 해설 1 >
작가 : 이효석(李孝石, 1907 -1942)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일 고보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과 졸업. 1928년 단편 「도시와 유령」이 <조선지광>에 발표되면서 문단에 등단. 함북 경성농업학교,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함. 초기에는 유진오 등과 함께 경향적인 동반작가로 인정을 받았으나 1933년 「돈(豚)」을 발표하면서 경향성을 탈피하여,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서정적인 문체로 표현함. 그의 대표적인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 「화분」은 성 윤리(性倫理)를 표현한 것이며 그 외에 「산」(1936), 「황제」(1940),「들」(1937)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전술한 바와 같이 초기에는 동반 작가 시절로서 반도시적(反都市的)이고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후기에는 자연 문학과 심미주의 세계로 전향하고, 에로티시즘의 문학을 추구한다. 그의 문체는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조화와 시적 정서로 산문 세계의 예술성을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흔히 그를 가리켜 평자들이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 라는 평을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등장인물
허 생원 : 주인공. 장돌뱅이. 한국 토속 사회의 한 전형적인 인물
동이 : 장돌뱅이. 사기 없는 순박한 젊은이. 허 생원의 아들로 짐작됨.
조 선달 : 보조 인물. 허 생원의 친구이며 동업자
줄거리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 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온갖 피륙을 팔던 가게)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나꾸어 보았다.
드팀전의 허 생원과 조 선달이 장을 거두고 술집에 들렀을때 벌써 먼저 온 동업의 젊은 녀석 동이가 계집을 가로채고 농탕치고 있었다. 허 생원은 괜히 화가 나서 기어코 그를 야단쳐서 쫓아내고 말았다. 장돌뱅이의 망신을 시킨다고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얼마 후 되돌아와서 허 생원의 나귀가 발광을 하고 있다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허 생원은 어이가 없었다. 얽음뱅이요 왼손잡이인 허 생원은 계집과는 인연이 멀었다. 때문에 장돌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아직 홀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과 늘 함께 하는 나귀의 신세가 느꺼웠던 것이다.
밤이 들어 허 생원은 조 선달과 동이와 함께 나귀를 몰고 다음 장으로 발을 옮겼다. 봉평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달이 환히 밝았다. 달밤이면 으례, 허 생원은 젊었을 때 봉평에서 겪었던 옛일을 애기하는 것이었다.
개울가에 모밀꽃이 활짝 핀, 달 밝은 여름 밤이었다고 한다. 그는 멱을 감을 양으로 옷을 벗으러 방앗간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울고 있는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나서 어쩌다가 정을 맺었던 것이다. 그녀는 봉평서 제일 가는 일색이었다. 그는 오늘도 기이한 인연에 얽힌 이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동행을 하다가 허 생원은 이날 밤 동이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난 사생아임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의 고향은 봉평이라 했다. 허 생원에게는 맺히는 것이 있었다. 동이 어머니가 제천에서 홀로 산다는 말을 듣자 그는 놀라 개울에 빠지게 된다. 이튿날 그는 동이를 따라 제천으로 가 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득, 그는 나귀를 몰고 가는 동이의 채찍이 동이의 왼손에 잡혀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아둑시니같이 어둡던 그의 눈에도 이번만은 그것이 똑똑히 보이는 것이었다.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해설
이 작품은 인간 심리의 순수한 자연성을 허 생원과 나귀를 통해 표출하고 있는 낭만주의적인 소설이다. 강원도 땅 봉평에서 대하에 이르는 팔십 리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그 길을 가는 세 인물의 과거사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연적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늙고 초라한 장돌뱅이 허생원이 20여 년 전에 정을 통한 처녀의 아들 동이를 친자로 확인하는 과정이 푸른 달빛에 젖은 메밀꽃이 깨알깨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밤길 묘사에 젖어들어 시적인 정취가 짙게 풍겨나온다. 낭만성과 탐미주의 성향이 어우러진 이효석 문학의 대표작이다.
서정주의적 경향이 많으며 암시와 추리를 통해 주제를 간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대화 형식으로 플롯이 진행되며 반복되는 지명(地名)으로 의식과 감정을 고조시킨다.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많으나 파장 무렵의 시골 장터의 모습이나, 주인 허 생원을 닮은 나귀의 모습이나, 메밀꽃이 하얗게 핀 산길의 묘사같은 것은 뚜렷한 사실성을 가지고 서술되었다.
허 생원이 동이가 친자(親子)라는 것을 확인한 후의 모든 기쁨은 독자의 상상력에 유보되어 있다. 물론, 확인하는 과정의 중요한 단서가 된 ‘왼손잡이’가 과연 유전이냐 하는 의문은 걷어 치우고라도 허 생원과 친자로 예상되는 동이가 모두 장돌뱅이라는 사실은 부전자전(父傳子傳)의 동일성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티브는 김동리의 「역마」에도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김유정과 같은 고향인 봉평에서 오래 살았다는 황일부 노인에 의해 거의 모든 등장인물, 특히 허 생원과 충줏집이 실제 인물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주제) 장돌뱅이 생활의 애환을 통한 인간 본연의 속성으로서의 애정. 떠돌이의 삶을 통해 본 인간 본연의 애정
(성격) 낭만적. 서정적. 묘사적.
(갈래) 단편 소설, 본격 소설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 해설 2 >
모밀꽃 필 무렵 은 1936년10월 조광 지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한국현대단편의 한 빼어난 봉우리로써 이효석의 문학 세계가 가장 잘 응축되어진 작품으로 그 독자적 위상을 영원히 빛나게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그의 낙엽기와 같은 수필의 연장에서 벗어나 서정시의 영역으로 이끌어 갔으며, 이를 성취하기 위하여 은유적 문장이나 시적인 서정묘사, 유추를 중심으로 한 사건 등을 구사하였다. 또한, 한국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느껴지는 시골 정경이 나타나며, 지식인 계층의 관념어가 배제되고 생활에 밀착된 토착어를 자연스럽게 살려 시골의 유랑적인 장돌뱅이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1920년대 강원도 봉평에서 대화까지 80리 길에 걸쳐 모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달밤의 산길을 설정하여 부자 상봉(심부형=아버지 찾기)모티프(motif,화소)를 한 폭의 수채화 속에 구현하였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자신의 과거에 연결시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장돌뱅이의 애환을 통하여 인간 본연의 애정으로까지 미의식을 승화시키고 있다.
이 소설은 ‘허생원’이라는 과거의 추억에서 살아가는 노인과 함께 서로 입장이 같은 장돌뱅이인 ‘조선달’, ‘동이’ 등 세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은 봉평장에서 하루의 전을 거두고 나서, 다음 날 대화장으로 달 밤에 길을 걸어가게 된다. 여기 세 사람은 모두가 안착할 가정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외톨이 들이다.모두가 외롭고 쓸쓸하며 내일을 모르고 지내는 삶을 살아간다.
주인공 허생원은 얼금뱅이요,왼손잡이며,가족도 친척도 없이 평생을 떠돌이로 사는 장돌뱅이다.그가 대화장을 찾아 밤길을 걸어가던 중 젊은 장돌뱅이 동이가 이십 년 전 우연한 인연으로 갖게 된 아들임을 깨닫게 된다.
봉평장의 파장 무렵,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장사가 시원치 않아 속이 상한다. 그는 동료 조선달에 의해 충추집과 눙지거리를 하고 있는 동이를 보고 따귀를 갈긴다.그 날 밤,길가에 메밀꽃이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밤길을 가면서 허생원은 동이와 조선달에게 예전에 인연을 맺었던 성씨 처녀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가 젊었을 때 제천에서 꼭 한번 모밀꽃이 핀 여름밤 추억을 남긴 처녀가 있었다. 그는 토방이무더워 목물을 하러 물레방아간으로 갔다. 그곳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하룻밤 관계를 맺은 후 지금까지 영영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 끝에 편모와 살고 있는 동이도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 준다. 제천 출신인 어머니는 달도 차지 않은 자신을 낳고 집에서 쫒겨났다고 한다. 그러는 도중 허생원이 나귀 등에서 떨어져 물에 빠진다. 그때 동이가 부축해서 업어준다. 그리고 어두움 속에서도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임을 눈여겨 본다.
이 작품은 경제적으로 짜임새있게 3단계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도입 부분은 봉평 여름 장날의 파장을 시작으로 허생원을 비롯한 등장 인물의 소개와충주집을 중심으로 허생원과 동이의 갈등이 시작된다. 중간 부분은 장돌뱅이 생활 이십 년인 허생원이 봉평장을 빼놓지 않고 들른다는 점과, 젊은 날 그가 겪었던 ‘괴이한 인연’을 자연스럽게 들려 준다. 마지막으로 산길을 벗어나 큰 길로 접어드는 장면이데, 이 부분이 허생원과 동이가 부자간임을 시사하는 대단원이다.
어떤 작품이든 그 나름의 미학적 감동을 독특하게 지니는데 모밀꽃 필 무렵은 심미적 서정의 이미지로써 깊은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그것은 시적, 서정적 경지로 승화된 자연과의 일체감이라든지, 달밤의 가을 정경에 감동되는 회고적 분위기가 외로운 주인공의 삶과 융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연주의 사상을 통해서 인간과 짐승(당나귀)을 동일시 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 주었다. 여기에 자연적 배경을 극대화하여 ‘달밤, 달빛을 받고 소금을 뿌린 듯 피어있는 메밀꽃, 달의 숨소리’ 등 자연에 동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밝은 달밤은 충일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또한,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래의 풍속이 있다.허생원과 성처녀의 결합이 있었던 것도 달밤이었다. 이와 같이 달밤은 생명의 탄생이 자연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즉 생명의 원천이 자연이라는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허생원이 왼손잡이 동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동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이 자연적 배경과 함께 은은하게 그려져 있다. 비록 과학적으로 왼손잡이가 유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토속적이고 신비적인 분위기가 그런 옛 인연의 해후를 암시한 것이다.
작품 요약
주제 : 장돌뱅이의 삶을 통해 본 인간 본연의 애정.
인물 : 허생원-얼금뱅이요 왼손잡이며 가족도 친척도 없이 평생을 떠돌이로 사는 장돌뱅이.성씨 처녀와의 인연으로 맺어졌던 과거에 집착하여 잊지 못하여 왼손잡이인 동이가 아들임을 암시함.
동이-젊은 장돌뱅이며 허생원의 아들인 것으로 암시되는 외로운 인물.
조선달-허생원의 동업자이며 장돌뱅이 생활을 그만 두고 정착하려는 정적 인물.
배경 : 1920년대 강원도 봉평에서 대화에 이르는 밤길.
(공간적 배경은 봉평에서 대화로 가는 길의 달빛과 모밀꽃의 조화에서 오는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을 이미하는 낭만적 공간으로 직접 작품 주제와 관련되며,시간적 배경은 현재의 시간에 허생원과 동이의 과거가 삽입되고 거기에 이들의 미래를 암시하는 일상적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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