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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 - 노을 작품론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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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비극의 각성과 수용

 金炳翼

 

 

 

1. 김원일(金源一)의 「노을」은 그 시점이 일인칭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구조가 29년의 시차(時差)를 두고 과거와 현재가 장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는 특징을 우선 보여준다. 일인칭 소설이 새삼스러울 것은 물론 없지만 김원일의 대부분의 창작이 삼인칭으로 서술되어 있음을 상기할 때, 더욱이 이 소설의 두 번째 특칭인 구조적 특이성과 결부시킬 때, 그것은 적어도 이 작가에게 매우 시사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일인칭 소설은 주지되다시피 주관적인 관점으로 진술되는 것이며, 따라서 내향적이고 자기 폐쇄적이며 심할 경우 자기 고백적이다. 그것은 삼인칭 소설이 객관적이며 자기 개방적이고 설혹 작가 자신을 소설 속으로 투입시킬 경우에라도 그 주체는 가능한 한 객체화되려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시점을 삼인칭으로 할 때 작가는 관찰하고 기록하며 재구성하는 데 대해 일인칭 소설에서는 반성하고 음미하며 진술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 작가가 하나의 소재를 소설로서 형상화할 때 시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그 주제는 따라서 내면화될 수도 있고 객관화될 수도 있으며, 작품으로 만들어야 할 경우가 있는 반면 재구성에의 의욕을 크게 가하지 않고서도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만드는 작품이란 작가가 객관적 소재에 상상력을 작용시켜 하나의 소설 구조로 형상화시킨다는 것을 뜻하며, 만들어지는 작품이란 잠재된 상상력에 의해 하나의 소재가 그 자체의 생명력을 얻어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삼인칭 소설은 주체까지도 관찰의 대상으로 분리시켜 객관의 세계에 투입시킴으로써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만들어 있은 것이며, 일인칭 소설은 외부 세계까지 주체의 내면 속으로 용해시켜 일인칭의 주관 안에서 부분화되어 가며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삼인칭 소설은 작가의 작의(作意)가 지나칠게 노출될 수 있으며 일인칭 소설은 작가의 자아가 강하게 들어날 수 있다.

 

  김원일 「노을」을 일인칭 시점으로 만들어지는 소설 쪽을 택했다는 것은 그에게 다음 두 가지 의미를 갖게 한다. 하나는 그가 그의 단편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만드는 작품으로서의 작위성이 거의 극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위성이 강하다는 것은 작품으로서의 완벽한 육화를 못 이루고 있다는 약점을 시사하고 있는데 사실 실존주의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이는 그의 첫 창작집 《어둠의 혼(魂)》속에 수록된 초기작들이나, 현실 폭로적인 의도가 다분한 그의 두 번째 창작집 《오늘 부는 바람》 속의 많은 작품들은 작가의 작의가 분명해지는 그만큼 소설적 허점을 많이 품고 있었다. 이 두 권의 창작집에서 가장 뛰어난 단편인 「어둠의 혼」이 일인칭의 시점을 갖고 성공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같은 소재를 확대한 「노을」에 해당되는 평가이기도 한다. 이 두 장단편은 똑같이 〈나〉의 체험을 진술하며 그 진술 속에 이미 내면화된 외부 세계까지를 내포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소설로서의 탁월한 형상화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김원일의 이러한 성취는 두 번째 의미, 즉 이 소설이 자기 고백이라는 심증을 굳혀 준다. 단편 「어둠의 혼」과 장편「노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사회적 지적 신분은 달라져 있지만 빨치산으로 폭동을 일으킨 아버지는 주고 그 엄청난 사건이 아들의 생애에 극적인 계기가 된다는 설정은 똑같이 취해지고 있다. 이 소설들이 자서전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작품의 평에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원일의 작품들, 특히 《어둠의 혼》의 초기작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적지 않는 구실을 할 것이다. 필자는 그의 초기작들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자살·고문·강간·정신병 등등 극적인 사건들이 이 작가가 살인지향적 동기를 갖고 있음을 주목한 바 있는데 이 동기가 이루어진 것은 물론 학살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일 것이다. 더욱이 「노을」과 같은 경우 한 작가의 개인적 체험은 결코 한 개인의 특수한 경험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대와 사회가 가령 식민지적 피폐라든가 6·25의 처참함에서처럼 개인의 역사와 내면에 깊은 충격을 가할 때 그 체험은 우리의 현대사적 체험으로 발전하며 그 개별성은 집단의 그것으로 확대된다. 「노을」이 보여주고 있는 김원일의 체험은 그와 비슷한 체험, 특히 부역자를 아버지로 둔 많은 사람들과 공통된 체험인 것이다.

 

  「노을」은 40년 중반의 출판사 중견 사원이 된 〈나〉의 현재와 그의 29년 전의 소년 시절의 교차로 진행된다. 1, 3, 5, 7장이 곧 현대 시제이고 나머지 2, 4, 6장이 과거인데 현대든 과거든 그 계절은 여름의 며칠간이다. 즉 숙부가 별세했다는 전보를 받고 귀향하여 장례를 마치고 상경하는 사흘간과, 정부가 수립될 즈음의 남로당 폭동이 준비되고 착수되었다가 실패한 나흘간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전부이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한 단면을 상관성을 가중시키면서 장에 따라 교차시키는 수법은 독창적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매우 흥미로운 것임은 틀림없으며, 더구나 이「노을」에 서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다음 두 개의 각도에서 설명될 수 있다. 29년이란 긴 시간을 차단시키고 과거의 며칠과 현재의 며칠을 관련시킨다는 것은 과거의 그 극적인 사건이 현재에도 깊은 상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과거의 현재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중산층의 사회적 신분을 획득한 나이로 소년 시절의 상처를 벌써 이겨냈어야 할 주인공이 실제로는 여전히, 혹은 잠재적이지만 더 깊이 과거의 사건에 구속되어 있고 그로부터 억압받아 왔다는 것을 이 소설은 그 구조 자체를 통해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아마 이런 설명은 김원일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사회적·문화적 혹은 정치적 상황은 30년 전의 상처를 씻어내지는 못한 채 오히려 더욱 덧나 버린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괴로워하고 있다. 「노을」의 주인공은 바로 그 덧나고 있는 상처의 응어리이다. 그는 아주 잊어 벼렸고 이미 떠나 있다고 생각해 온 그 상처가 여전히 자기의 현실과 내부에서 움직거리며 쑤셔대고 있음을 그의 삼촌의 죽음과 29년만의 귀향을 통해 새삼 발견한다. 그리하여 그 상처는 잊어버리거나 도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것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각성의 과정이 이 소설에서는 두 개의 평행선이 긋는 클라이맥스의 궤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으로 해서 매우 극적인 상승 효과를 유발한다. 1장과 2장의 현재와 과거의 도입부에서 침착하게 예비된 사건은 29년 전 진영이란 작은 도시의 남로당 폭동과 그것의 광적인 실패 끝에 얻어지는 소년의 이 세계에 대한 혼란에의 각성, 그리고 그 혼란을 자기 것으로 주체화하여 상처로부터 극복되는 현재의 각성으로 끝난다. 앞의 것은 상처를 입는 경악으로서의 각성이며, 뒤의 것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극복으로서의 각성이다. 아마 이 두 개의 각성은 한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지향하는 삶의 궤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차례의 충격일 것이다. 「노을」은 과거의 현대의 병행적인 진행 구조를 통해 이 각성의 효과를 중첩적의로 고양시킨다. 그것은 각성의 보편적인 두 단계가 한 소설의 평면에서 이원적인 차원의 접합으로 상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를 우리는 재(在) 오스트레일리아의 한국인 작가 김 동호 씨가 74년에 발표한 「암호(Password)」란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중앙아시아의 한 가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란에 한 중국 지식인이 뛰어들기 시작한 이후 사건들과, 그러기 전의 그의 과거가 장이 바뀜에 따라 번갈아 진행되다가 그의 피살되고 끝난다. 그 과정이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의 음악적 효과에 따라 전재, 종식되고 있다.〕

 

 시점의 일인칭과 과거·현재의 병행이라는 구조는 이 소설에 접근하는 데 있어 두 개의 시선을 제공한다. 하나는 이 「노을」의 소재를 이루는 남로당 폭동이 역사적 혹은 이념적 사건으로 다루어지기보다 하나의 극적인 사건으로 이해되기를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수립 전후해서 빈발했던 공사주의자들의 폭동은 한두 해 후의 6·25와 그 사상적 측면에서 별로 다르지 않으며 아마도 연속된 사건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홍성원이 대작 「남과 북」에서 성공적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6·25와 그 전의 남로당 폭동을 한국 현대사를 지배하는 중심 동기로서 그 의미와 의의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원일은 그 같은 의미와 의의의 부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노을」의 폭동을 사상이나 이념, 정치와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소년의 관점을 통해 묘사하고 있고, 그 폭동에 해석을 가해 줄 수 있는 어른들도 무식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더욱이 29년 후 그 사건을 회상하는 중년의 주인공을 통해서도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시대적·정치적·이념적 설명을 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이런 태도는 뚜렷이 나타난다. 따라서 「노을」에서의 사상 폭동은 역사적인 혹은 지적인 해석으로부터 방치된 채 그 사건의 성격은 평면적으로 서술되고 전개된다. 따라서 「노을」에서 사상 분쟁이나 좌우익의 실력 충돌 혹은 6·25까지를 우리 현대사의 탐구 과제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로 끌어들이려 한다면 그 작업은 회의적인 결과로 낙착되고 말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런 측면에서는 기대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와 주제는 사상 폭동 또는 6·25의 역사성에 대한 해명에 있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노을」을 정확하게 읽어 나간다면 이 소설의 주제가 한 극적인 사건에서 인식될 수 있는 세계상의 혼란과 그에 대한 한 인간의 정서적 반응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굶주림과 야만스런 아버지로부터 받는 학대, 그러나 용기 있고 충직스러운 소년시절의 〈나〉와 넉넉하고 안정된 생활 기반 위에, 그러나 소심하고 안이해진 중년의 〈나〉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노을」은 그 엄청난 거리가, 이 소설에서는 공백 상태로 벌어져 있는 그 거리가 14세의 어린이가 목격하고 체험한 엄청난 극적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데, 그 극적 사건이 우리가 앞에서 지적한 두 개의 각성을 촉발한다. 따라서 아버지가 선봉이 된 빨치산의 폭동, 그리고 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에 연루된 현재 혹은 최근의 사건들이 그 각성의 계기를 이룩하는 내면의 뿌리가 된다. 이 소설은 객관적인 문체로 시종하고 있지만, 그래서 작가의 관점은 외부의 사건 진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은 이 소설의 축소판으로서 주관적 서술을 하고 있는 단편「어둠의 혼」과 동질의 것이다. 즉 빨치산 폭동이란 외적 사건은 그에 관련된 아버지의 활동과 죽음과 더불어 주인공의 성장 속에 내면화되었고 그의 과제는 성장기에 가졌던 이 역사적 사건의 충격과 상처로부터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렇다 해서 「노을」을 이 관점으로만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 편협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나〉 갑수가 체험한 서간은 갑수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어떤 형태로든 6·25또는 그와 유사한 난리를 겪은 모든 세대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소년기의 전란 체험이 오늘의 우리소설 문학에 빈번하게, 근래 더욱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에서 우리는 심상치 않는 징조를 느낀다. 홍성원의 「기찻길」, 이문구의 「관촌수필」,한승원의 「앞산도 첩첩하고」, 전상국의 「바람난 마을」들이 그렇다. 이들은 10대의 6·25체험과 그것은 전쟁·학살·보복·굶주림·이별 등등의 혼란의 목격을 회상함으로써 이 골육 상쟁의 이념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를 돌이켜 내보이고 있다. 한 세대가 공통적으로 현실의 처참한 충격을 동해 고통의 낙인을 찍히운다는 것, 그것은 6·25그 자체의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일 것이다. 더구나 더 비극적인 것은 「관촌수필」「바람난 마을」의 주인공들은 「노을」의 갑수처럼 부역자의 아들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래서 이중의 수난을 당하며 그 고통의 각인(刻印)은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 깊고 쓰라리게 박혀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중의 고통스러운 각인을 의식하며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따라서 중첩된 6·25콤플렉스에의 진통을 의미한다. 이들이 갈수록 덧나는 묵은 상처를 정당하게 치유할 수 있는가 어떤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정치적 문맥과 결부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곧 우리의 정신사적 지양이 가능한가 어떤가의 여부로 발전될 것이다. 「노을」의 내상(內相)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할 때 오늘의 우리의 6·25 콤플렉스란 정신적 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주인공 갑수의 비극이 현대사를 수난의식에서 수용하려는 우리 자신의 불구적인 정서를 대변해 주고 있음을 납득하게 된다. 그는 세계를 혼란 그 자체로 인식하는 우리의 위축된 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그의 각성은 따라서 우리의 각성으로 확산될 수 있는 그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2. 「노을」의 전주 소곡 이 될 단편「어둠의 혼」은 일본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사상 전향을 하여 해방 후 빨치산이 된 인텔리 아버지와 그의 조숙한 아들인 서년 갑해를 중심으로, 도망 다니는 남편을 전혀 이해 할 수 없이 호구에만 급급한 어머니와 백치인 누이, 알찬 여동생, 그리고 학자풍의 이모부와 식당을 경영하는 이모 등의 부수 인물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48년의 남로당의 폭동에 연관되어 아버지는 숨어 다니고 가족들은 굶주림에 지치다가 주인공 갑해가 체포되어 처형당한 아버지의 시체를 보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서 작가 김원일의 시선은 자상하고 유식한 아버지가 가족을 돌보지 않고 바람처럼 쫓겨다니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통해, 그리고 그의 무참한 죽음을 통해 이 세계의 부조리를 발견하는 내면의 격동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 소년 갑해에게 가장 싫은 색깔은 보라색이다.

 

  대추나무 뒤편 하늘은 벌써 짙은 보라색이다. 나는 보라색을 싫어한다. 손톱에 들이는 봉숭아물도, 닭벼슬 같은 맨드라미꽃도, 코스모스의 보라색 꽃도 다 싫다. 어머니의 젖꼭지 색깔까지도 싫다. 보라색은 어쩐지 아버지의 하는 일을 떠올리게 해 주고 어머니의 피멍든 얼굴을 생각나게 한다. 보라색은 또 말라붙은 피와 같고 깜깜해질 징조를 보이는 색깔이다. 옅은 보라색에서 짙은 보라로, 그래서 야금야금 어둠이 모든 것을 잡아먹다가 끝내 깜깜한 밤이 온다는 것은 참으로 무섭다. 이 세상에 밤이 없는 곳이 있다면 나는 늘 그곳에서 살고 싶다. 나는 빛 속에 함께 끼어 놀고 싶고, 또 빛 속에서 자고 싶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총살당할 것이다. (어둠의 혼)

 

  끝내 아버지의 총살로까지 이어가게 만드는 보라색은 김원일에게 아마 원초적인 색깔일 듯하다. 그리고 이 색깔이 주는 연상은 심리적인 동기의 순서로 보아 〈아버지의 하는 일〉과 〈어머니의 피멍든 얼굴〉에서 시작하여 보라색의 꽃을 싫어하는 것과 어둠 및 죽음에의 공포로 번져 간다. 이 보라색은 그리하여 어른이 된 주인공에게 과거의 사건과 그 상처를 회상·확인시켜 주는 근원색이 된다.

 

  ……관악산은 이미 그늘져 침침한 회청색을 띠고 있었다. 그 뒤로 아직도 끓고 있는 더위와 어울려 자줏빛을 노을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자 그 마른 핏빛 노을이 가물가물 먼 기억의 실마리를 집어내어, 잊으려 지우고 지워 온 깊은 상처를 새로이 긁었다. 어느 사이 런닝샤쓰를 적신 땀은 식은땀으로 차갑게 살에 닿았다. 등줄기를 찌르는 그 찬 기운 때문만도 아닌데 나는 한 차례 어깨를 떨었다. 비로소 통증이 뒷골을 쳤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왔다. (「노을」제 1장)

 

  보라색이 가지고 온 통증은 소년 시절 그가 노을에 걸고 간절하게 품어 온 소망의 좌절에 대한 절망의 회상일 것이다.

  ……서산마루를 가득 채우며 노을은 붉게 번졌고, 수백 마리의 갈가마귀떼가 어지럽게 원을 그리며 노을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대장간의 불에 달군 시우쇠처럼 붉게 피어난 노을을 보자 엄마를 만나 가슴 뛰던 기쁨도 어느덧 사그라지고, 나는 그만 노을에 몸을 던져 한줌 재로 사위어 버리고 싶을 만큼 못견디게 울적했다. 죽고 싶었다. 죽음이 두렵기는커녕 죽는 순간이 지극히 평안할 것만 같았다. 나는 타박타박 걸으며 혼잣말로 외쳐 보았다.    

 

     "아, 노을이 곱다. 아부지는 밉다. 아부지가 노을색이라면 엄마가 하늘색일까. 그러면 두 가지 색을 보태면 보라색이 되겠지. 그런데 엄마나 아부지는 왜 합쳐지기를 싫어하노. 노을은 주고 싶도록 저렇게 아름다운데 말이다."(「노을」제 4장)

 

  아름다운 보라색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싫고 무서운 것은 보라색이 하늘색을 연상시키기보다 죽음의 핏빛, 공포의 어둠을 생각 키우기 때문이다. 작품「노을」은 과연 이 핏빛과 어둠 빛으로 뒤덮인 광란과 살육의 세계를 과거로 갖고 있다. 백정인 아버지는 먹기 싫은 소의 생피를 마시게 했고, 그것을 만류하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 핏빛 멍이 들었으며, 그 아버지는 폭동의 선봉장, 삼촌과 외삼촌은 거기에 말려들어간 〈빨갱이〉였고, 시뻘겋게 열이 오른 아버지는 도수장에서 〈반동〉들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다. 갑수는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모의를 엿듣다가 정신을 잃도록 구타당했으며, 한밤중의 총 소리와 방화(放火)와 비명들을 듣고 보았으며, 또 비 오는 한밤중에 아버지에게 끌려 빨치산의 산속으로 들어간다. 「노을」의 시대야말로 추서방이 탄식하는 것처럼〈시상이 어수선한 기 우째 해방 전보다 더 숭숭한〉(2장) 시절이었고, 중년의 갑수가 회상하는 것처럼 〈세상에 온통 미쳐〉(5장)버린 때였으며, 또출이할머니가 〈피묻은 대빗자루〉(2장) 꿈으로 전조를 주는 살육의 시대였던 것이다.

 

  「어둠의 혼」에서의 지식인인 아버지는 「노을」에서 일자무식의 백정이 되었고 장남 갑수는 머리에 부스럼을 인 열등생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학대에 못 이겨 폐병 환자인 딸과 부산으로 도망쳤고, 여름 방학을 앞둔 갑수·갑득 형제에게는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개씹조〉란 별명을 듣는, 잔인하고 흉포한 아버지는 어느 사이 빨갱이가 되어(그가 어떻게 해서 빨갱이가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노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이것은 이 소설의 작은 약점이 되고 있다), 대지주의 장남 배도수, 국민학교   교사 장태문, 고추대장의 별명을 가진 이중달, 수리조합 허서기 등과 함께 남로당의 모의에 참여한다. 배도수의 동생 결혼식 잔치에 포식을 하고, 숨어들어온 어머니를 외가에서 만나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날 밤 갑수는 밀고자의 혐의를 입고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매질을 당하고 졸도했다가 깨어나면서 드디어 폭동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절뚝거리는 몸으로 일일천하의 빨갱이의 세계와 그것의 광분을 보며 그는 아버지를 그들 세계로부터 빼내려고 갖은 애를 쓴다. 졸음과 육체의 아픔이 뒤섞인 몽환 상태에서 지서와 학교의 인민 재판과 도살장에서의 아버지의 광적인 고문 모습을 천천히 놀라며 목격하고, 그 장면들을 가슴 깊이 기록하는 인상적인 배회(이 부분은 필자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白痴)」에서 므이쉬킨 공작이 간질 발작을 예감하며 거리를 배회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 끝에 경찰의 반격으로 빨갱이들의 덧없는 패주를 그는 목격한다. 빨치산이 되어 식량을 구하러 온 아버지에 끌려 갑수는 장태문의 애인 주신례와 함께 산으로 들어갔으나 진압군에 견디지 못한 빨치산들의 분열로 그는 하산 배도수 소개로 부산으로 떠난다. 배도수 자신은 서울을 거쳐 일본으로 밀항했고 장태문은 월북했으며 이중달은 여전히 빨치산으로 숨었고 갑수의 아버지는 경찰에게 체포되기 직전 자살했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해서 폭동은 진압되고 빨갱이는 패멸했으며 갑수는 30년의 세월동안 〈잊으려고 지우고 지워〉왔으며 〈근면과 검소함과 학구열〉로 어엿한 직장을 얻고 자기 집을 마련하기까지 한 안락한 중산층이 되었다. 그러나 삼촌의 죽음, 그리고 그보다 2년 전에 있었던 진필제 사건은 그 자신이 여전히 30년 전의 그 〈깊은 상처〉를 짊어지고 있음을 그는 깨닫는다.

 

  ……이데롤로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시대와는 달리 그런 쪽과는 담을 쌓고 살려는 나에게까지 남북의 극단적인 대치 상황이 그렇게 가깝게 영향력을 미칠 줄이야 미처 몰랐던 것이다. 서로 책상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설왕설래를 하는 정전 회담의 장면을 텔레비젼이나 신문에서 더러 볼 때는 남의 일같이만 여겨졌던 분단의 아픔이, 현실로서의 나의 와해된 의식을 새로이 휘저을 줄 나 역시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노을」제3장)

 

 이것은 갑수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살아 남은 그 모두가 〈그때〉에 찍힌 낙인을 지우지 못하며 그 그물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는 백정의 신세를 면한 추노인은 부산의 아들집에서 살기를 거절하고 여전히 고향에 살면서도 과거의 이야기는 되떠올리지 않으려 하고, 이중달의 미망인은 유복자인 치모의 극성스런 요구에 남편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으며, 장태문의 어머니 물금댁은 월북한 아들이 돌아올 통일을 보기 위해 죽을 수 없는 〈통일 할머니〉가 되었다. 누구보다도, 폭동의 주모자였던 배도수는 일본에서 민단으로 전향, 귀국해서 〈죄인이 된〉심정으로 은거하고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러나, 그들에게 일생의 십자가로 안겨 준 폭동의 이념인 공산주의에 대해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희생자들은 거의 순진무구 했다는 점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공산주의는커녕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에 전혀 백치 상태였다. 〈혁명의 영웅〉이 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폭동자 중 한 사람은 〈난도 잘 몰라. 높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해쌓응께 나도 흰소리 해보능 기지〉라고 어이없는 대답을 하며, 읍을 일단 장악하자 아버지는 〈읍장 집이 내 집 되고 저 들판에 곡식이 내꺼 한가지다. 얼씨구 조오타〉(6장)고 환성을 올리며, 삼촌은 추서방의 지적대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이 핀도 될라카다가 저 핀도 될라카다…… 지가 무신 광대 출신이라고〉(6장) 갈팡질팡한다. 이들은 그러므로 사상사가 아니라 사상의 희생물일 뿐이다. 희극이면서 동시에 비극인 것은 배도수 안락한 말년에 대조되는 것처럼 그 사상 폭동의 제물이 엉뚱한 상대로 바뀌어 있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외삼촌이나 아버지는 28년 전에 주고, 그 무리들의 이론적인 지도자였던 배도수씨는 지금 펄펄 살아 대한민국 땅을 딛고 내 앞에 앉아 있다는 이 현실을 다 제가끔 타고난 팔자소관으로 미루어 버리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글은 기 성명만 알면 족하다느니,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니라, 하며 껑충거렸던 아버지와 외삼촌이 거창한 사상 문제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비극 중의 희극이요, 희극이라기엔 너무나 비극적인 종말이었다.(「노을」제 7장)

 

  중년의 갑수가 깨끗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배도수를 보며 느끼는 이러한 감회는 6·25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새삼스레 받아들여질 사상전(思想戰)의 아이러니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보다 절실한 것은 이 아이러니가 가능하게 된 시대의 광기일 것이다.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민 재판을 보면서 소년 갑수가 일제 말기, 전쟁 체제에 광분하고 있던 〈그 시절과 지금이 무언가 비슷하게 느끼〉(6장)게 한 그 광기 말이다. 「노을」에서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중 유일하게 온건한 중용의 입장을 취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갖춘 추노인이 갑수에게 그의 아버지를 가리켜 한, 〈너거 애비는 미친갱이다. 미쳐도 보통 미친 기 아니다. [……] 그 꼬라지를 보면 아무리 친아부지라카지마는 니가 두 번 다시 니 애비를 안 볼라 칼 끼다. 니 애비는 지금 짐승만도 못한 개잡놈이다.〉(6장)라는 외침은 아마 그 시대의 무대에 대고 한 증언일 것이다.

 

  무엇을 때려부수는 지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도수장 안으로 나는 쑥 들어서다. 밝은 데 d있다 갑자기 들어갔기 때문에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나는 우선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전에 확 끼얹어 오는 이상한 냄새에 코를 벌름했다. 숨을 들이쉴 수 없을 만큼 느끼하고 역겨운 피냄새였다. 그러자 컴컴하던 도수장 안이 조금 밝아지며, 우선 내 눈에 들어찬 것은 추서방의 말처럼 내가 실신하기에 족할 만한 끔찍한 광경이었다. ……죽창이 목을 차고 나갔는지 복숭아 뼈에서는 아직도 끈쩍한 피가 줄을 잇고 있었고, 늘어진 두 팔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피와 합쳐 땅바닥은 온통 피바다였다. (「노을」제 6 장)

 

  광기로 빚어진 이 〈온통 피바다〉의 세계에서 갑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와 같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만나 화합하기를 바라는 소만, 빨갱이로부터 아버지를 빼내고 혹은 〈죽거나 감옥에 들어가거나 사라져 버릴〉 상태를 만류해 보려는 열망은 모두 산산히 부서져 버릴 뿐이었다. 그러나 이 광기와 혼란의 세계에서 소년 갑수가 얻어낸 것이 있었다. 추서방이 예언한 것처럼 〈평생 대갈통 속에 남아 있을 그 언선시럽은 시체〉(6장)의 모습이 그 하나며, 〈지금은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6잔)해주자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 전율스런 〈시체〉는 이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 의 눈이 되면서 줄기차게 그의 의식의 구석에서 그를 뒤쫓아오는 것이 되며, 소년으로서는 조숙한 아버지에의 〈용서〉는 성인에로의 각성의 동기가 되면서 작가가 끈질기게 찾아다니는 화해의 심리를 이룬다. 「노을」의 과거 부분이 이 〈언선시럽은 시체〉를 발견하는 안티테제라면 현재 부분은 용서해 줄 아버지를 찾는 진테제가 될 것이다.

 

 3.「노을」의 무대인 진영읍이 30년 동안에 상당한 변화를 겪는 것처럼 그 주인공들도 많이 변모하고 있다. 갑수가 소년 시절의 고향을 둘러보며 확인한 것은 거리의 모습만이 아니다. 주민들의 얼굴이 바뀐 것처럼 그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제각각의 삶을 찾아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의 가장 핵심적인 점은 그들 모두가 공간적인 고향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향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 갑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동생 갑득, 추노인의 아들, 배도수의 동생이 모두 진영을 떠나 대구·부산·마산에서 각각의 생활을 확장하고 있고 갑수의 사촌들도 고향을 뜰 궁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나아가 자신들이 백정의 자식이라는 것을 남과 자식에게 알리지도 않으며 그 스스로들 자신의 출신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백정이라는 천민의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중산층으로 굳어진 자신들의 현재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이유도 매우 클 것이다. 여하튼 대지주의 아들인 노년의 배 도수가 백정의 아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정중하게 대접할 정도까지 되었다. 이처럼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특히 갑수에게 단순한 세월의 변화에 떠 흘렀기 때문이 아니다. 〈내 스스로 고향을 버리기로 작정한 지 오래〉인 그는 그것이 자기 과거로부터의 탈출, 따라서 옛날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 고향 시절과 부딪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외면하려 」하는 것 같다는 치모의 비판에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상처니깐 아마도 자가 처방이란 명목으로 쉽게 치료한 후 이제 나를 임상실험해 보겠다는 투가 아냐? 더욱  나는 자네와는 신분이 다른 백정의 자식이네. 신분을 안 따지는 세상이 됐다? 자네들이야 안 따질는지 모르지만 난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컸어. 그걸 병이라 부를 수 있다면. 고향에만 오면 그 후유증이 재발한다네."(「노을」제 5 장)

 

  이런 고향 탈출 의지에 반항하여 오히려 고향에 뛰어든 사람이 고추대장의 유복자 치모이다. 소설의 어느 주인공보다 건강한 인격으로 묘사되고 있는 그는 진영의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1년 쉰 다음 서울공대에 너끈히 합격하여 다니다가 데모에 뛰어들어 제적당했다. 그는 서울에서의 취직 알선과 보다 장래성 있는 장사에의 권유를 뿌리치고 시골에서 자전거를 끌며 생선 장사를 한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물론 장사에 있지 않다. 무식하고 억울한 농민들의 대변자가 되어 일을 대리해 주고 또 상태를 개선시키는 데 힘을 다한다. 그의 신조는 〈내 눈으로 세상 물정이나 분별 있게 파악하고, 옳고 참된 일이라면 만인이 모른 체 넘어가도 내 혼자 부딪쳐 조금씩 밝은 사회로 개선해 나가는 데 보탬이 돼야〉(5장)한다는 것이다. 그 것은 전통 있는 출판사의 책임 있는 자리를 맡고 있는 갑수와 대조적인 삶의 태도이다. 이 두 사람에게 있어 가장 대립적인 점은 갑수가 고향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데 대해 치모는 더욱 고향의 뿌리를 붙잡으려는 데에 있다. 그는 어머니와 주변 사람, 혹은 갑수에게까지 그 비극적인 사건, 그 사건에서 상기할수록 불리해질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캐묻는다. 그는 그 사건과 자기 아버지가 비극이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극히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치모는 도피하려는 갑수에게 말한다.

 

"……그러나 피맺힌 상처라 해도 인자 와서 그걸 우짜겠읍니껴. 그 상처를 자가 처방으로 치료할 수 없고 나아가서는 그 비극을 사랑하도록 노력해 야 되잖겠읍니껴? (「노을」제 5 장)

 

  이 극적이고 긍정적인 운명(運命), 비극의 주체화를 통한 자기 구제는 홍성원의 6·25대하소설「남과 북」(제5권)의 두 남녀 주인공의 다음 대화를 연상시킨다.

 

   "이걸 절대로 전쟁 탓이 아닙니다."

   "물론이에요, 전 전쟁을 차츰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 건, 이 땅이 전쟁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맞아요! 아무리 비참해두 우린 이 전쟁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해야 해요."

   "도망쳐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전쟁의 주인은 우리니까요."

 

  한국 전쟁을 남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으로 사랑할 때 이 전쟁의 비극은 진실로 극복될 수 있다는 이 대화는 「노을」의 치모에게 그대로 재현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식상의 변모다. 진정한 비극은 자기에게 닥쳐온 고통 그것이라기보다 그것을 자기의 책임과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우리 자신의 태도에 있다. 비극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 운명은 자기의 것이 되리라는 니체적인 사상이 6.25의 콤플렉스에 짓눌려 스스로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한국인의 사유 속에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치모는 자시의 상처를 되찾으면서 과거의 애수로부터 탈출함으로써 그 상처의 현재적 치유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극히 희망찬 존재이다. 갑수는 이런 치모의 태도에 도움을 받으며, 도망치려 했지만 사실은 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간절히 지녀온 자신의 실상을 깨닫는다.

 

  고향을 떠나 산 스물 여덟 해 동안 나는 하루라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치모의 말처럼 고향을 잊으려고 노력해 온 만큼 이곳은 나로 하여금 더욱 잊지 못하게 하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좌익 폭동의 상처라고 해도 좋고 굶주림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떠나서라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태가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노을」제7장)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의 뿌리를 발견하고 그 뿌리가 굳게 대지에 박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커다란 감동을 안겨 준다. 이러한 주제는 전상국(全商國)의 단편 맥(脈)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갖고 나타난다. 여기에는 어떤 논리적 설득이나 집요한 사유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뿌리의 발견과 확인은 그 자체가 상징하는 생명력처럼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향상실자--오늘의 우리 인구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뿌리뽑혀 떠돌아 다니는--의 근원적인 지향이다. 고향에 근거를 갖는다는 것은 그래서 갑득이 말처럼 <어데든지 제 농토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든든한> <큰 위로>를 갖게 한다.

 

  「노을」의 주인공 갑수는 29년 동안 도피하려 했던 고향에 돌아와서 그 삼촌의 장례를 치르는 가운데 그가 <용서>하고 사랑할 <아버지>를 도로 찾았다. 아버지를 다시 찾았다는 것--고향을 고향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과거의 비극과 치욕, 굶주림과 학대, 고향이 자기를 떠밀었던 그 모둔 허물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갑수의 두 번째 각성이며 이 혼란과 야만의 세계에 대한 능동적인 화해의 진테제이다. 이제 우리는 이 불행한 땅에 사랑과 미래에의 기대로 우리 자신을 뿌리박을 계기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때 노을은 죽음과 공포, 어두움과 핏멍을 연상시키는 색깔이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즐겁고 행복한 꿈이 날고 새 빛이 밝게 빛나리라는 전조의 색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원일의 「노을」이 마지막으로 보여 주고 있는 노을은 물론 6.25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우리의 노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분명 어둠을 맞는 핏빛 노을이 아니라 내일 아침을 기다리는 오색 찬란한 무지갯빛이리라.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차장 밖을 내다보고 있는 현수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고향도 반드시 어둠을 기다리는 그런 상처 깊은 고향이기보다는 내일 아침을 예비하는, 다시 오고 싶은 고향일 수도 있으리라. (「노을」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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