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논술26 - 영웅과 대중
by 송화은율영웅과 대중
※ 아래 글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가) 토인비는 사회를 창조성을 지닌 소수자와 그렇지 못한 다수자의 집합으로 간주하였다. 창조적 소수자는 새로운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는 길을 제시함으로써 비창조적 다수자인 대중의 지지를 얻어 그들을 이끌지만, 창조적 소수자가 창조성을 잃게 되면 대중이 미메시스를 철회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대중은 창조적 소수자와 창조성을 잃고 힘으로 지배를 행사하고자 하는 지배적 소수자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또, 새로운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함으로써 사회를 이끄는 지위에 올라선 소수자가 일시적인 자아와 제도와 기술의 우상화라는 업보를 피해 자기의 창조성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사마천과 마르크스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마천은 제일 현명한 위정자는 백성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고 차선의 위정자는 이익을 미끼로 백성을 이끈다.고 하였으며, 형벌로 백성을 길들이거나 백성과 다투는 것을 제일 못난 정치라고 하였다. 이는 토인비가 말한 지배적 소수자의 통치 방식이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이해 관계를 인간 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동기로 해석하고 국가를 계급 지배의 도구로 파악하였다. 지배 계급이 자기의 물질적 이익에만 집착하여 다수 대중의 이익을 짓밟는 사회에서는 소수자와 대중 사이의 조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소수자와 민중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예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사회를 더 합리적이고 정의롭게 만들어 왔지만, 노예제 사회와 봉건제 사회는 물론이고 현대의 문명 국가 역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뿌리깊은 불평등과 불합리를 완전히 바로잡지 못했다. 그래서 소수자와 민중 사이의 조화는 역사상 가장 빛나는 번영과 안정을 누린 사회에서조차 제한적으로만 실현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문화 예술과 민주주의, 제정 로마 시대의 영광은 노예 제도라는 더없이 비인간적인 질서 위에서 꽃피웠다. 유럽에 산재한 중세기 궁전과 성의 화려함도 농노들의 고통을 감추지는 못한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엄청난 생산력 발전창조적 소수자영웅과 대중 - 인문․사회의 이면에는 18세기 이래 수백 년 동안 노동자들의 노동이 가로놓여 있다. 토인비의 창조적 소수자가 가장 창조적이었던 문명의 전성기도 대중에게는 단지 그런대로 참고 견딜 만한 정도의 세상이었을 뿐이었다.
역사적 진보의 도정에 그 이름과 업적을 수놓은 창조적 소수자들은 그 시대까지 인간이 이룩한 가장 높은 가치와 이념을 실현함으로써 민중의 더 나은 삶을 실현하려고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류 사회의 진보와 대중의 행복을 도모하려는 의지와 그에 상응하는 재능을 지녔기 때문에 한 시대의 창조적 소수자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비록 그가 실패한 경우에도 위인이라는 값진 칭호를 바친다. 그리고 민중은 그가 낡은 지배층의 일원이든 반역을 꿈꾸는 새로운 세력의 대표자이든 이러한 창조적 소수자를 알아보고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의미에서 소수자의 창조성의 원천은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다 민중과 사회 진보에 대한 지향성이다. 그리고 뛰어난 개인에게 창조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도 민중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천재일지라도 그가 제시한 방침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창조적 소수자가 될 수 없다. 사회를 이끄는 소수자가 창조적인가 아닌가는 그들의 방침을 대중이 승인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대중은 소수자의 창조성의 원천인 동시에 최종적인 심판인 것이다.
(나) 영웅의 행위를 중심으로 과거를 이해하려는 역사관은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역사관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 예컨대 전쟁, 혁명, 제국의 탄생과 몰락 등을 그 시대의 뛰어난 개인들의 사상과 행위의 소산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영국의 어떤 역사가는 ‘현대 유럽의 역사는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레닌의 생애를 소재로 쓸 수 있다. ’라고도 하였다.
(다) 춘추 전국 시대의 난세를 법으로 평정한 법가 사상가들은 이를테면 개발 독재의 숭배자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혼란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먹고사는 문제만큼 시급한 과제는 없었다. 당연히 그들은 인(仁)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기고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다른 어느 것보다 경제와 군사를 우선시하였다.
법가 사상가인 상앙은 공표된 법령은 반드시 지킨다는 국가의 신념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황제가 될 태자가 법을 어기자 그 스승에게 경(鯨)을 쳤고, 태자가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자 이번에는 그 스승의 코를 베어 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이는 법이 엄하면 감히 어길 엄두를 못 내게 되어 범죄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여긴 그의 생각을 잘 보여 준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상앙이 집권한 지 십 년이 안 되어 도적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땅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회가 안정되었다고 한다. 형벌이 형벌을 없앤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으며, 이 신념대로 상황이 이루어진 것이다.
상앙의 이러한 개혁은 한비자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그는 국가를 운영하는 세 가지 축으로 법(法)과 세(勢) 그리고 술(術)을 내세웠다. 그는 군주의 세를 호랑이와 표범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비유하였다. 세가 없는 왕은 이빨과 발톱을 잃어버린 호랑이처럼 무력하며, 세는 왕의 지위 때문에 생기는 권세, 권력을 뜻하므로 왕의 인격, 도덕성,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왕이라는 지위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법은 군주나 관리들이 국민을 통제하는 기준으로 법에 복종하는 자는 상을 주고, 법을 어기는 자에게는 엄한 벌을 내리는 것이며, 술은 군주가 관리를 통솔하는 방법으로 은밀하고 상황적인 판단과 관계가 된다.
엄격한 규율과 강력한 군주, 풍부한 물자와 호전적인 군대 등 상앙과 한비자에 의해 거듭난 진나라는 마침내 중국 대륙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는 채 20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이들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개발 독재의 한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백성들이 배고픔을 이기고 잘 살아 보자는 욕망이 크기 때문에 철권 통치로 국민을 하나로 묶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가 어느 정도 풍요를 이루게 되면 국민들은 인간다운 삶에 눈뜨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국가의 일방적인 강요, 검소와 내핍의 강조가 통하지 않는다. 개발 독재는 아무리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해도 독재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들의 거부감이 클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스스로의 모순 때문에 쇠락의 길을 걷고 만다. 상앙과 한비자의 나라인 진나라의 화려한 성장과 비참한 몰락은 우리에게 뼈아픈 가르침을 주고 있다.
* 경(鯨) :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
1> 글 (가)를 읽고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상적 사회상이 무엇인지 20자 내외로 쓰시오.
2> 글 (나)에서 말하는 역사관에 대해 설명하고 글 (가)의 관점에서 (나)의 역사관을 해석하시오.
3> 글 (가)의 관점에서 글 (다)에 제시된 ‘법가 사상’의 몰락을 설명하시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