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토중래(捲土重來)의 유래
by 송화은율권토중래(捲土重來) // 한 번 패했다가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쳐들어옴.
《出典》杜牧의 詩 ‘題烏江亭’
이 말은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 : 803-852)의 詩 <제오강정(題烏江亭)>에 나오 는 마지막 구절이다.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으니
수치를 싸고 부끄럼을 참음이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 없네
勝敗兵家不可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豪傑 捲土重來未可知
오강(烏江 : 安徽省 內 所在)은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 : B.C 232-202)가 스스로 목을 쳐서 자결한 곳이다.
한왕(漢王) 유방(劉邦)과 해하(垓下 : 안휘성 내 소재)에서 펼친 ‘운명과 흥망을 건 한판 승부[乾坤一擲]’에서 패한 항우는 오강으로 도망가 정장(亭長)으로부터 “강동(江東)으로 돌아가 재기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항우는 “8년 전(B.C 209) 강동의 8,000여 자제와 함께 떠난 내가 지금 혼자 ‘무슨 면목으로 강을 건너 강동으로 돌아가[無面渡江東]’ 부형들을 대할 것인가?”라며 파란만장(波瀾萬丈)한 31년의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두목(杜牧)은 오강의 객사(客舍)에서 일세의 풍운아(風雲兒)―단순하고 격한 성격의 항우,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는 장사 항우,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 애인 우미인(虞美人)과 헤어질 때 보여준 인간적인 매력도 있는 항우―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강동의 부형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으면 강동은 준재가 많은 곳이므로 권토중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자결한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이 시를 읊었다. 이 시는 항우를 읊은 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참 조】선즉제인(先則制人), 건곤일척(乾坤一擲), 사면초가(四面楚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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