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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열차는 타자기(打字機)처럼 / 김경린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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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열차는 타자기(打字機)처럼 / 김경린

 

 

 

 

< 감상의 길잡이 1 >

 

김경린은 1949년 박인환,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함께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펴냄으로써 후기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시킨 시인이다. 그는 이미 일본에서 모더니즘 동인회 바우(VOU)’등에 동인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귀국해서는 조선일보에 <차창(車窓)>등을 발표하여 김기림의 직계 제자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또한 청록파로 대표되는 전통적 서정 세계에 반발하여 1950 후반기 동인회를 결성하고 도시적 감수성, 현대 의식, 전위적 기법 추구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전쟁 직후의 혼란상을 노래하면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1960년대 말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0년부터 재개한 그는 한국적인 전통에서 세계적인 전통으로 우리 시가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정열적인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시는 일찍이 그가 「모더니즘 선언서」에서 밝힌 바 있는 모더니즘의 세계성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국제 사회 속에서 겪는 지식인 화자의 절망과 좌절을 현대 문명의 한 표상인 타자기로 포착하여 현대인들의 정신 풍토를 그리고 있다. 발표 당시 국제열차타자기 같은 시어는 대단히 생경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시인은 이 광물성 이미지의 시어들을 통하여 현대 도시 문명이 지닌 메카니즘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마치 성난 타자기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질주하는 국제열차처럼 빠르게 변화해 가는 국제 사회에 동승하지 못하고, ‘조상들이 / 뿌리고 간 설화가 / 아직도 남은 전통적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우수와 병리를 진단한다. 그것은 바로 625의 비극적 체험과 상처로 인한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 가치의 전도와 혼란, 도시화에 따른 비인간화 현상의 심화 등,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젊은 지식인들의 불안 공포이며, ‘예절로 대표되는 전통 문화가 파괴되는 현실을 무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빠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지만, 세계적 기류에 편승하여 언젠가 투명한 아침을 가져올’ ‘앞날을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는 시각적 심상이 두드러진 시이다. 성난 타자기와 같은 열차, 보라빛 애정, 빗발처럼 내리는 어둠 등의 시적 표현은 시각적 심상의 효과에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경린은 1950년대에 모더니즘 시 운동을 기치로 내건 <후반기> 동인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 시에는 1950년대 모더니즘 경향시의 한 양상을 잘 드러나 있다. 현대인의 복합적인 정서를 시각적인 효과에 의지하여 전대(前代)의 서정시인들과 구분되는 실험적인 기교를 보이고 있다.

1연에서 `성난 타자기처럼 / 질주하는 국제열차'는 현대문명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열차에 실려 젊음의 시간이 실려가고 있다는 화자의 진술은 기계문명의 메카니즘의 뒤안길에 놓인 자아의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은 3연에서 보듯 개인적인 삶의 여건보다는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리마다 넘치는 것은 거품처럼 부풀어진 불안과 공포감 그리고 사회적 의미를 상실한 `예절' 때문이다. 젊은이다운 꽃과 태양을 등지고 내려오는 빛발 같은 어둠을 맞는다는 표현은 암담한 심경의 일단을 드러내고있다.

암담한 그에게도 다소의 희망은 남아있다. 그리운 대상과 더불어 찾아올 아침의 투명함이 그것이다. 이것은 기계문명의 삭막함, 암울한 사회분위기에 대응할만한 희망의 빛은 아니다. 그를 자극하는 애정은 `먼 앞날에 추락할지도 모르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아침이 의미하는 희망 또한 피상적인 자기위안에 그치는 것이다.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전후의 불안과 암담함을 표출하려고 하였던 시인의 정신은 분명 새로운 것이었으나 현실에 대한 인식이 피상적인 것에 그침에 따라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설: 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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