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국어 능력으로서의 글쓰기 능력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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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능력으로서의 글쓰기 능력 / 권 영 민(서울대학교 교수)

 

 

 

1. 머리말

 

글쓰기는 사물에 대한 이해와 판단과 느낌을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행위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을 통해 표현한다. 생각이나 느낌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 그러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이 그대로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서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대체로 서로 얽히고 뒤섞여서 질서가 없다. 어떤 사물에 대한 느낌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가 금세 새로운 느낌이 일어나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러한 잡다한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고 판단하는 고도의 인지 과정과 사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생각과 느낌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훌륭한 글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에는 여러 가지 체험을 바탕으로 모든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사려 깊게 분별할 수 있는 힘이 함께 작용한다. 누구나 글을 쓸 때에는 생각을 가지런히 하고 느낌을 정리하여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 글쓰기의 과정을 통해 어떤 내용을 말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며, 누가 자신의 글을 읽고 어떻게 그 내용을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글쓰기는 복잡한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이해력과 조직적 표현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글쓰기는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판단과 사고의 능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고 따져 본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 과정은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내용과 형태를 이루지 못한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느낌과 생각은 글로 표현될 때에 비로소 그 의미가 구체화되며, 명백한 논리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글은 그 내재적인 규칙과 질서를 통해 인간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조직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모두 글로써 구체화되고 조직화되기 때문에, 글쓰기는 인간의 창조적 사고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쓴다는 기능적 언어 수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날 인간 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으므로, 인간 생활에서 지식과 정보의 효용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여 이를 활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여 이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폭넓은 정보 능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 능력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조직하고 상대방에게 자기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정보화 사회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글에서는 글쓰기의 상황을 소통의 이론에 근거하여 검토하면서 개념의 생성과 텍스트의 생성이라는 글쓰기의 두 가지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과정에 필요한 사고 능력과 언어 능력을 통해 글쓰기 능력의 실체를 밝히면서, 글쓰기 능력의 함양을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2. 글쓰기의 상황과 소통 이론

 

글쓰기는 국어 능력에서 가장 주목되는 영역이다. 소통 이론에서 볼 때, 글쓰기 능력은 국어를 통해 다양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텍스트를 생성해 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글을 쓰는 이는 발신자의 입장에 서며, 글을 읽는 이는 수신자의 입장에 선다. 그리고 언어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글은 메시지에 해당한다. 소통의 과정에 개입하는 이 세 가지의 요소들은 각각 독자적인 상황(context) 속에서 작용한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생성 과정에 속하는 글쓰기의 과정에는 글을 쓰고 읽는 텍스트 외적인 상황과 글 자체의 텍스트 내적인 조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글쓰기에서 텍스트 외적 상황에 대한 판단이란 텍스트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가 등을 정하는 일이다. 텍스트의 목적과 대상을 제대로 확정하지 않고서는 당초에 목표한 텍스트를 생성하기 어려우며, 텍스트를 통한 온전한 소통을 이루기도 힘들다. 텍스트 내적 조건으로는 텍스트의 언어적 구조가 중시된다. 문장이나 단락의 구조에서 텍스트 전체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형태로 텍스트를 생성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판단도 중요하다. 텍스트를 통해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그 표현 내용들을 서로 어떻게 연관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에 관련된다. 글쓰기 능력에는 이러한 글쓰기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의 능력이 긴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글쓰기의 지침서들은 전통적인 수사학(rhetorics)의 관점에 따른 표현론에 근거하여 글쓰기를 설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태준의 <문장 강화>는 본격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국어 문장 작법에 해당한다. 이 책은 넓은 의미의 수사론적 관점에서 문장을 논하고 있으며, 언어 표현의 문제를 중심으로 문장 작법에 접근한다. 그러므로 글 자체에 그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서 어휘와 문장, 문장의 유형, 문체와 수사적 표현을 중심으로 하는 문장론을 전개한다. 이 경우에 글쓰기에서 언어의 표현이나 기법에 근거하는 개성적 문체의 발견을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글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논의를 글쓰기 과정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와 연관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텍스트를 구성하는 언어적 요소들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도 부족하다.

 

<문장 강화>와 같은 유형의 문장 작법이 지니는 한계는 1970년대 중반 이후에야 비로소 인식되기 시작한다. 문장론의 전문성이 강조되고 언어학적 요소에 대한 이해가 덧붙여지면서 작문의 절차와 방법에 대한 논의가 문장 작법의 중심 영역을 이루게 된 것이다. 글쓰기의 영역을 글쓰는 이와 글 자체에서부터 글의 상황과 조건, 그리고 글을 읽는 사람에게로 확대하는 관점은 소통 이론(communication theory)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점이 최근에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 과정의 작문 영역에까지 적용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글쓰기라는 것이 단순한 문장 기법이 아니라 종합적인 언어 수행 능력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 같은 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글쓰기는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부터 글을 읽을 사람의 입장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폭넓은 사회적인 활동이다. 그러므로 글쓰기 능력은 글의 상황과 조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종합적 사고 능력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글쓰기의 상황

 

글쓰기의 능력은 글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이해와 판단에서 시작된다. 글을 쓰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동기와 배경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아무 까닭 없이 글을 쓰는 경우는 없다. 글을 쓰는 이유와 동기가 분명해야만 글의 내용과 성격을 쉽게 결정할 수 있다. 자신이 쓰는 글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윤곽을 미리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어떠한 성격의 글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글인지, 어떤 사실을 자세히 풀이하여 주는 글인지, 또는 어떤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글의 성격과 연관 지어 자신의 글쓰기의 상황을 판단한다. 신문 기사와 같은 글은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에 목표가 있기 때문에, 사실에 대한 확인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 같은 글쓰기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글쓰기의 출발점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글 읽기의 상황

 

글 쓰는 사람은 대개 자신이 쓰는 글이 누구에게 읽힐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쓰는 주체로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글을 읽을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가 누구인지 예상해 보고, 독자의 지식 수준이나 관심 등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글의 내용이 독자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든지, 글의 주제가 독자들의 관심과 거리가 있다든지 하면 글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인 독자들을 상대로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할 경우는, 글 쓰는 입장이 중립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글 쓰는 이의 어조가 강하게 드러나면, 글의 객관성을 해치기 쉽다. 글 쓰는 이가 그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해야만 객관성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독자를 상대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독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글이나, 청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을 위한 글에서는 글 쓰는 이의 입장이 강조된다. 이처럼 글쓰기는 글을 읽는 이의 입장을 예상하고 글읽기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글쓰기의 성패는 글의 의도나 글의 표현만이 아니라 글을 읽는 이가 그 내용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글 자체의 상황

 

글의 상황과 조건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글 자체다. 글은 글쓰기의 목표이면서 동시에 그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글을 쓰는 목적과 글을 쓰게 된 동기도 글 속에 나타난다. 글의 내용은 그 동기와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 글쓰기는 실제 생활상의 필요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람은 꼭 어떤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솟아오르는 감흥, 재미있는 상상 같은 것을 글로 쓰기도 하고, 어떤 사실을 밝히고 사물의 이치를 따지는 글을 쓰기도 한다. 이 같은 글쓰기의 목적에 따라 글의 성격이 결정된다.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서술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목적에 부합되는 서술 방법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글의 성과를 거둘 수가 없다. 글의 서술 방식은 글을 쓰는 의도와 목적에 따라, 글의 변화 있는 표현과 효과를 위해 적절하게 구사되어야 한다. 어느 하나의 서술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좋은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3. 개념의 생성과 텍스트의 생성

 

글쓰기에서 글의 상황과 조건에 대해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중요한 준비 과정에 해당한다. 실제의 글쓰기 과정에서는 그 절차와 방법을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글쓰기는 인지론적 관점에서 보면 개념의 생성(idea production)과 텍스트의 생성(text production)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절차를 거친다. 이 두 가지의 과정은 상호 의존적이다. 그러므로 개념 생성이 충분히 되지 못하면 텍스트 생성도 온전히 되지 못한다.

 

개념의 생성

 

글쓰기의 단계에서 개념의 생성이라는 것은 글의 내용과 내적 연관성이 있는 하나의 아이디어의 집합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디어는 글의 주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개념을 말한다. 이것은 텍스트의 생성에 돌입하기 전에 해야 할 작업이다. 아이디어의 집합 과정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의 논리적인 긴밀성이나 상관성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다양한 개념을 포착하고 이를 다시 정리하여 자신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그 개념을 집약하는 능력은 필요하다.

글쓰기의 기초적인 단계에 해당하는 개념의 생성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개념의 선택(capturing ideas)이다. 개념의 선택은 글의 주제와 관련되는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글을 쓰고자 할 때는 누구나 먼저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무엇에 대해 쓰겠다든지, ‘이런 것을 쓰겠다는 뜻이 글의 대상과 과제에 해당하는 개념의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개념의 선택을 통하여 글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범위와 성격을 결정한다. 글의 대상과 과제를 정한 후에 주의해야 할 것은 글을 쓰는 동기와 글의 목적이 대상과 과제에 부합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글을 쓸 때, 개인적인 표현 욕구에서 글을 쓰는 것인지, 어떤 실용적인 요구에서 쓰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글을 쓰는 목적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기 위한 것인지도 구분해야 한다.

 

개념의 선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가 글의 중심 내용에 해당하는 주제를 결정하는 일이다. 글의 대상과 과제는 대체로 그 범위가 넓고 막연하며 일반적인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이를 정리하여 분명한 주제를 창안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주제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왔거나, 잘 알고 있는 일을 다루어야 한다. 자신의 주변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일을 주제로 설정하되, 작고 쉽고 흥미 있는 것을 택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글을 읽고 관심을 표하며,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좋다. 글을 읽을 사람들의 반응을 고려하여, 가급적이면 모든 사람들에게 연관될 수 있는 문제를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쓰는 목적에 맞는 주제를 택해야 한다. 어떤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한 글이라면,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주제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글쓰기에서 개념의 생성 과정은 선택된 개념의 조직을 통해 구체화된다. 글의 주제를 설정하고 적절한 소재를 수집하여 정리하는 개념의 선택 과정을 거친 후에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얽어 놓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이때 소재를 정리하고 내용을 구상하는 과정이 바로 개념의 조직(manipulating ideas) 과정이다. 글쓰기에서 개념의 조직은 글의 전체적인 균형을 바로잡고, 내용에 통일적인 맥락이 서도록 조절하는 일이다. , 쓰고 싶은 소재를 어떻게 배열하고 어떤 방향으로 글을 이끌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짧고 간단한 글은 머릿속에 그 내용을 얽어 두고 써 나갈 수도 있지만, 내용을 신중하게 담아야 하는 글이나 긴 문장에서는 구상을 통해 줄거리를 미리 짜 놓고 써 나가는 것이 안전하다.

 

개념의 조직에서 주의해야 할 일은 글의 내용을 바르게 구성하기 위해 통일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글의 핵심적인 주제와 그 주제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재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만 내용의 통일성을 이룰 수 있다. 글의 내용을 조직하는 데에서 논리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글의 내용의 통일성이란 여러 가지 제재들이 주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지만, 논리적 일관성이란 주로 여러 가지 제재를 조직하고 배열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글의 내용을 조직하는 데에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 내용에 대한 강조이다. 글의 내용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재들을 효과적으로 배열하는 일이 필요하다. 글의 전체적인 구성만이 아니라, 개개의 문단을 구성하는 경우에도 이 같은 방식이 적용된다.

 

텍스트의 생성

 

글쓰기에서 텍스트의 생성 과정은 실제의 텍스트 집필 과정에 해당한다. 텍스트의 생성 과정은 그것이 단어의 층위에 있든지, 문장의 층위에 있든지, 단락의 층위에 있든지 간에, 어떤 문법적인 규칙을 만족시키는 하나의 일관된 구조를 생성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글쓰기의 과정에서 개념(생각)이 떠오르기 전에는 텍스트의 생성 단계로 돌입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에서 선택된 개념을 조직하여 하나의 텍스트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층위를 고려한다. 어휘, 문장, 단락, 텍스트 전체의 층위를 각각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과정에는 어법에 맞게 문장을 조직하고 생성하는 문법적 지식(grammatical knowledge)과 함께 상황에 맞게 언어를 활용하는 화용적 지식(pragmatic knowledge)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러한 텍스트 생성 과정에서 언어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경우,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인 텍스트를 생성하지 못하게 됨은 물론이다.

 

텍스트의 생성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 어휘의 층위이다. 어휘는 말과 글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의미를 가진 가장 작은 단위인 단어의 무리를 말한다. 단어는 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 독립된 개념과 기능을 갖고 있다. 텍스트의 생성에서는 기본적으로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단어의 의미는 문장 속의 쓰임에 따라 달라지는 때가 있다. 그러므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의미 관계를 명확하게 알아 두어야 한다. 글을 쓸 때는 여러 단어들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단어들의 관계를 정확하게 맺어 주는 일이 중요하다.

 

텍스트의 기본 단위는 문장이다. 문장은 단어가 모여서 만들어지는데, 거기에는 하나의 통일된 완결성이 필요하다.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문장 성분이라 하는데, 글을 쓸 때에는 필요한 문장 성분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꼭 필요한 문장 성분이 빠지면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혼란을 주거나 어색한 문장이 되기 쉽다. 문장의 주술 관계나 수식, 피수식 관계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해야만 문장 구조의 애매성이나 의미의 모호성을 피할 수 있다. 문장은 한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것도 있지만, 여러 개의 단어들이 복잡하게 결합된 긴 것도 있다. 문장의 길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직결되어 있다. 글의 내용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문장을 짤막하게 쓰는 것이 좋다. 그러나 복잡한 개념이나 생각을 간추려서 통일하려면, 짧은 문장으로는 불가능하다. 여러 개의 문장을 합쳐 하나의 문장으로 길게 늘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 문장의 길이가 길어지고 그 구조가 복잡해지지만, 생각을 하나로 집약하는 효과가 있다. 문장은 여러 성분들이 서로 결합하여 이루어진다. 문장 성분을 제대로 배열하여 서로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문장은 통일되고 완결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문장 성분들이 서로 호응하지 못하면, 분명하고 정확한 문장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문장 성분들이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연결을 이루면서 서로 호응해야 한다. 특히,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호응이 제대로 되도록 유의해야 한다.

 

하나의 텍스트에서 한 덩어리의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내용상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장들이 모인 글의 단위를 문단이라고 한다. 한 문단을 이루는 몇 개의 문장들은 일정한 의미나 내용을 중심으로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여기서 한 덩어리의 생각이란 글 전체의 주제를 형성하는 작은 주제이며, 한 문단은 이 소주제를 중심으로 통일성과 완결성을 갖는다. 텍스트에서 문단을 구분하는 것은 한 단위의 생각을 매듭지음으로써 다른 단위의 생각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적인 글의 짜임 관계가 뚜렷이 드러나고, 의미도 분명하게 표현된다. 하나의 글은 한 개 이상의 문단으로 이루어진다. 문단과 문단이 서로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글 전체의 논지를 살려 주는 것이다. 문단의 연결 방식은 대개 주요 문단을 중심으로 그 앞이나 뒤에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문단들이 연결된다. 이러한 연결 관계는 문단의 형식적인 연결만이 아니라 글 전체의 의미상의 내부적 연결을 드러내어 준다. 글을 쓸 때는, 이러한 문단의 연결 관계를 고려하여 논지의 일관성과 문장의 변화를 살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문단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면, 글 전체의 균형이 깨어지고 의미의 혼란을 초래하기 쉽다.

 

4. 글쓰기 능력의 문제

 

현대 사회가 정보 지식 사회로 변화하면서 지식과 정보를 생성하는 가장 중요한 언어 능력으로서 글쓰기 능력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조사에 의하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의 언어 기능을 바탕으로 하는 국어 능력 가운데 글쓰기 능력이 현격하게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이 경우 글쓰기 능력은 기능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사고 과정에서 나타나는 총체적인 언어 수행 능력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국어에 대한 고도의 지식과 그 창조적 수행 능력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 능력에는 글쓰기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소통 이론에 대한 이해와 함께 고도의 사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어 자체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어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어법에 맞는 문장과 담화를 조직하는 언어 능력이 글쓰기 능력의 기초가 된다.

 

글쓰기는 국어에 대한 지식과 이해만이 아니라 국어를 통한 정보의 이해와 활용이라는 언어 수행의 면이 중시된다. 그리고 국어를 통한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전달이라는 소통의 면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의 조건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조건과 상황에 맞추어 글쓰기의 절차와 방법을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언어 지식과 언어 능력, 정보의 이해와 소통 능력이 없이는 실제 생활에서 요구되는 글쓰기를 제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글쓰기 이론의 개발

 

우리가 널리 읽고 있는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수사학적 차원의 문장론이 대부분이다. 이 책들은 글이 사람이다라는 명제를 강조해 온 전통적인 문장에 대한 관념을 그대로 이어 오고 있다. 글쓰기에서 수사적 표현을 강조하고, 개성적 표현의 특성을 문체라는 이름으로 주목한다. 언어 표현 능력의 개인별 차이도 두드러지게 인정한다. 그러므로 글쓰기가 특수한 글재주를 지닌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교육 과정을 마친 뒤에는 대체로 글쓰기를 거의 포기한 상태로 생활하며,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문장 작법의 문제성이 있는데도, 국어의 언어적 속성에 근거한 적절한 작문 이론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글쓰기가 정보의 이해와 활용, 생산과 전달이라는 언어적 수행이라고 본다면, 글쓰기의 이론 역시 이 같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소통 이론이나 인지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글쓰기를 과거의 문장 작법의 단계를 뛰어넘는 일이 필요하다.

 

국어 지식의 보편적 확충

 

재단법인 한국언어문화연구원이 지난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어 능력 인증 시험의 내부 분석 자료를 보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영역 가운데 쓰기 영역의 성적이 가장 낮게 나타나 있다. 쓰기 문제에 대한 정답률이 평균 68%를 나타내고 있으며, 쓰기 영역의 기초가 되는 각종 어문 규정에 관한 문제는 정답률이 6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분포는 다른 영역의 문제에 대한 정답률이 평균적으로 75%를 상회하고 있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글쓰기에 적용되는 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어 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언어 지식을 확충하는 일이 필요하다. 각종 어문 규범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국어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언어 능력의 하나인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이루기 어렵다.

 

새로운 글쓰기 제도의 확립

 

현재 영국,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는 직능별 글쓰기 능력에 대한 국가 인증 시험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이러한 글쓰기 제도의 확립은 자연스럽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면서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도모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일부 대학의 입학 시험에서 논술고사를 치르고, 일부 기업의 입사 시험에서 소논문을 작성하는 입사 시험을 치른다. 그러나 이러한 글쓰기 제도는 글쓰기의 상황과 접근 방법에 대한 분석이 없이 운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언어 사용의 환경에 적응하는 실제적인 글쓰기 능력의 함양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단계별 글쓰기 제도 또는 직능별 글쓰기 제도를 확립하여 사회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일이 필요하다.

 

국어 문장 상담소의 운영

 

서울대학교는 금년부터 대학 안에서 학술 문장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은 서구의 명문 대학들이 운영하고 있는 학술 문장 센터(Academic Writing Center)를 모델로 한 것이지만, 아직 그 규모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그러나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 활동의 하나인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그 제도적인 확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장 상담소의 운영 문제는 그동안 국립국어연구원에서도 수차례 강조해 온 것이므로 앞으로 그 실천적인 운영을 꾀하여 한다.

 

 

 

참고 문헌

 

권영민(1997), 우리 문장 강의, 신구문화사.

서정수(1993), 문장력 향상의 길잡이, 한강문화사.

송기중 외(1985), 현대 국어 문장의 실태 분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익섭(1998), 국어사랑은 나라사랑, 문학사상사.

국립국어연구원(1999), 새국어생활, 9권 제4.

C. Brooks & R. P. Warren(1970), Modern Rhetorics, New York : Harcourt, Brace & World.

Jim Pinnells(1988), Writing : Process and Structure, New York : Harper & Row.

L. W. Gregg & E. R. Steinberg(ed)(1980), Cognitive Process in Writing, New Jersey : LEA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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