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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자전(廣文者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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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자전(廣文者傳)

광문은 비렁뱅이다. 그는 예전부터 종루(鐘樓) 시장 바닥에 돌아다니며 밥을 빌었다. 길거리의 여러 비렁뱅이 아이들이 광문을 두목으로 추대하여, (자기들의 보금자리인) 구멍집을 지키게 하였다.

하루는 날씨가 춥고 진눈깨비가 흩날렸는데, 여러 아이들이 서로 이끌고 밥을 빌러 나갔다. 한 아이만 병에 걸려 따라가지 못하였다. 얼마 뒤에 그 아이가 더욱 추워하더니, 신음 소리마저 아주 구슬퍼졌다. 광문이 그를 매우 불쌍히 여겨, 직접 구걸하러 나가서 밥을 얻었다. 병든 아이에게 먹이려고 하였지만, 아이는 벌써 죽어 버렸다.

여러 아이들이 돌아와서는, '광문이 그 아이를 죽였다.'고 의심하였다. 그래서 서로 의논하여 광문을 두들기고는 내쫓았다. 광문이 밤중에 엉금엉금 기어서 동네 안으로 들어가, 그 집 개를 놀래 깨웠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 묶자, 광문이 이렇게 외쳤다.

"나는 원수를 피해서 온 놈이요. 도둑질할 뜻은 없어요. 영감님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아침나절 종루 시장 바다에서 밝혀드리겠어요."

그의 말씨가 순박하였으므로, 주인 영감도 마음속으로 광문이 도둑이 아닌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새벽에 풀어 주었다. 광문은 고맙다고 인사한 뒤에, 거적때기를 얻어 가지고 가 버렸다. 주인 영감이 끝내 그를 괴이하게 여겨, 그의 뒤를 밟았다. 마침 여러 거지 아이들이 한 시체를 끌어다가 수표교에 이르더니, 그 시체를 다리 아래에 던지는 것이 보였다. 광문이 다리 아래에 숨었다가 그 시체를 거적때기에 싸더니, 남몰래 지고 갔다. 서문 밖 무덤 사이에 묻고 나서는, 울면서 무슨 말인지 중얼거렸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고서 그 영문을 물었다. 광문이 그제야 앞서 있었던 일과 어제 한 일들을 다 말해 주었다. 주인 영감은 마음속으로 광문을 의롭게 여겨서,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광문에게 옷을 주고는 두텁게 대하였다. 그리고 광문을 약방 부자에게 추천하여, 고용살이를 시켰다.

오래 뒤에 부자가 문 밖으로 나섰다가 자꾸만 돌아왔다. 다시 방안에 들어와 자물쇠를 살펴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그의 얼굴빛은 자못 불쾌한 듯 하였다가 돌아와 깜짝 놀라더니, 광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얼굴빛이 바뀌더니 그만두었다.

광문은 그 이유를 정말 몰랐다. 날마다 잠자코 일했을 뿐이지, 감히 하직하고 떠나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부자의 처조카가 돈을 가지고 와서 부자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지난번 제가 아저씨께 돈을 꾸러 왔더니, 마침 아저씨가 계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방에 들어가 돈을 가지고 갔었지요, 아마 아저씨께서는 모르고 계셨겠지요."

그제야 부자는 광문에게 매우 부끄러워하면 사과하였다.

"나는 소인이야. 이 일 때문에 점잖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네 그려. 내 이제 자네를 볼 낯이 없네."

그리고는 자기의 모든 친구와 다른 부자나 큰 장사치들에게까지 '광문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두루 칭찬하였다. 그는 또 종실(宗室)의 손님들과 공경(公卿)의 문하에 다니는 이들에게 이르는 곳마다 광문을 칭찬하였다. 그래서 공경의 문하에 다니는 이들과 종실의 손님들이 모두 광문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밤마다 그들의 베갯머리에서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몇 달 사이에 사대부들이 광문의 이름을 모두 옛날 훌륭한 사람의 이름처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양 사람들이 모두들

"광문을 우대하던 중인영감이야말로 참으로 어질고도 사람을 잘 알아보는 분이지."

칭찬하였고, 더욱이

"약방 부자야말로 정말 점잖은 사람이야."

하고 칭찬하였다.

 

이때 돈놀이꾼들은 대체로 머리 장식품이나 구슬 비취옥 따위 또는 옷. 그릇. 집. 농장. 종 등의 문서를 전당 잡고서 밑천을 계산해서 빌려주었다. 그러나 광문은 남의 빚을 보증서면서도 전당 잡을 물건이 있는지를 묻지 않았다. 천 냥도 대번에 승낙하였다.

 

광문의 사람됨을 말한다면, 그의 모습은 아주 더러웠고, 그의 말씨도 남을 움직이지 못했다. 입이 넓어서 두 주먹이 한꺼번에 드나들었다. 그는 또 만석(曼碩) 중놀이를 잘하고, 철괴(鐵拐) 춤을 잘 추었다. 당시에 아이들이 서로 헐뜯는 말로써

"느네 형이야말로 달문(達文)이지."

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달문'이란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광문이 길에서 싸우는 이들을 만나면, 자기도 역시 옷을 벗어 젖히고 함께 싸웠다. 그러다가 무슨 말인가 지껄이면서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에 금을 그었다. 마치 그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듯했다. 그러는 꼴을 보고서 시장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싸우던 자들도 역시 웃다가 모두 흩어져 버리곤 하였다.

 

광문은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대로 총각 머리를 땋았다. 남들이 장가들기를 권하면 그는

"대체로 아름다운 얼굴을 모두 좋아하는 법이지. 그런데 사내만 그런 게 아니라 여인네들도 역시 그렇거든. 그러니 나처럼 못생긴 놈이 어떻게 장가를 들겠어? "

하였다. 남들이 살림을 차리라고 하면 이렇게 사양하였다.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 처자도 없으니, 무엇으로 살림을 차리겠소? 게다가 아침나절이면 노래 부르며 시장 바닥으로 들어갔다가 날이 저물면 부잣집 문턱 아래서 잠을 잔다오. 한양에 집이 팔만이나 되니, 날마다 잠자는 집을 옮겨 다녀도 내가 죽을 때까지 다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라오."

한양의 이름난 기생들이 모두 아리땁고 예쁘며 말쑥하였다. 그러나 광문이 칭찬해 주지 않으면 한푼 어치의 값도 나가지 못하였다. 지난번에 우림아(羽林兒)와 각전(各殿) 별감 또는 부마도위의 겸종들이 소매를 나란히 하여 운심을 찾았다. 운심은 이름난 기생이었다. 당(堂) 위에다 술자리를 벌이고 비파를 뜯으며, 운심의 춤을 즐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운심은 일부러 시간을 늦추면서 춤을 추려하지 않았다.

광문이 밤에 찾아가 당 아래에서 어정거리다가, 곧 들어가서 그들의 윗자리에 서슴지 않고 앉았다. 광문은 비록 옷이 다 떨어지고 그 행동이 창피하였지만, 그의 뜻은 몹시 자유로웠다. 눈구석이 진물러서 눈곱이 낀 채로 술 취한 듯 트림하여 양털처럼 생긴 그 머리로서 뒷꼭지에다 상투를 틀었다.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서로 눈짓해서 광문을 몰아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광문은 더 앞으로다가 앉아 무릎을 어루만지며 가락을 뽑아, 콧노래로 장단을 맞추었다.

운심이 그제야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광문을 위해서 칼춤을 추었다.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은 다시금 광문과 벗으로 사귀고 흩어졌다.

목판본 광문전(廣文傳)

광문(廣文)은 밥을 빌어먹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거지였다.

어느 날 구걸하기 위하여 종로거리로 나갔었다. 그런데 여러 거지 아이들은 광문을 모셔다 저희들 두목으로 추대하였으며 자기들이 살고 있는 굴(窟)이나 가만히 앉아서 지키도록 하였다.

 

하루는 눈비가 쏟아지는 몹시 추운 날인데 여러 거지 아이들은 모두 구걸하러 나갔다. 그런데 한 아이는 병으로 따라가지 못하였다. 그는 춥고 아파서 슬피 느껴 울었다. 광문은 퍽 불쌍히 여겨 밥을 얻어다가 그 아이에게 먹이려고 돌아와 보니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밥 빌러 나갔던 여러 거지 아이들은 마침내 집에 들어와 보니 광문이가 죽인 것으로 의심하였다. 그래서 광문을 마구 때려서 내쫓아 버렸다. 광문은 캄캄한 어두운 밤에 허둥지둥 기어서 마을인가를 찾아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그 집 개가 놀라서 덤비며 마구 짖는 것이었다. 집 주인은 광문을 붙잡았다. 광문은,

 

[나는 원수를 피하기 위함이지 도적은 아닙니다. 주인님께서 믿지 못하시면 내일 아침에 장거리에 가서 알아보시면 됩니다.]

하며 말하는 폼이 퍽 순박하여 보였다. 집주인은 속으로 광문이가 속으로 도적이 아님을 짐작하고 새벽에 놓아주었다. 광문은 사례를 하고 거적때기를 하나 얻어 가지고 가 버렸다. 집 주인은 괴상하게 여겨 그 뒤를 따라가 보았다.

여러 거지 아이들은 한 시체(屍體)를 끌어 수표교(水標僑)까지 오더니 그 다리 밑에다 시체를 버리는 것이었다. 광문은 다리 밑에 숨었다가 거적때기로 둘둘 싸서 등에다 걸머지고 서대문 밖 공동묘지에다 묻어 주었다. 그리고는 슬피 울면서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이것을 숨어서 보고 있던 집 주인은 달려들어 광문의 손을 잡았다. 광문은 이때에 전후 사정 이야기를 남김없이 다 했다.

이것을 듣고 감탄한 나머지 광문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주는 등 후대하였다. 마침내 광문을 어느 약장사하는 부잣집에 천거하여 주었다. 그 집에서 고용살이를 한 지 오래된 어느 날 그 집 주인은 문 밖으로 나가며 힐끔힐끔 되돌아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살피고 다시 나가면서도 무엇인가 마음에 못마땅한 눈치였다. 볼일을 다보고 돌아온 주인은 방안을 살펴보고 깜짝 놀라며 광문을 노려보고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얼굴빛을 고치고는 말이 없었다. 광문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다만 묵묵히 일할 뿐 주인 눈치가 불쾌하다고 해서 무단히 그 집을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 그 집 주인이 처조카 되는 사람이 돈을 가지고 와서 부자(주인)보고 하는 말이,

[저번에 아저씨한테 돈을 좀 취하고자 찾아왔었는데 마침 안 계셔서 방에 들어가서 돈을 가져갔는데 아마 아저씨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주인 부자는 크게 후회하며 광문에게 사과를 하였다.

[나는 옹졸한 사람이오. 공연히 그대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이제부터는 그대를 대할 면목조차 없습니다.]

하며 아는 사람이나 친구인 부자나 또는 큰 장사꾼 그리고 종실(宗室)과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에게까지 광문을 행실이 옳고 바른 사람으로 소개하고 칭찬하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으레 광문을 칭송하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어느덧 두서너달 사이에 사대부(士大夫)들까지도 광문을 옛날 어진 사람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이 때에 서울 장안에서는 모두들 광문을 후하게 대우하여 그를 천거해준 사람을 어진 사람으로 보고 또한 약장사하는 부자 역시 훌륭한 인물이라고 칭하였다. 돈놀이하는 사람이 전당포(典當鋪)를 하는 데 있어서 목걸이 옷 그릇 그림집 토지 및 종문서 등 물품을 담보로 영업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광문은 아무런 전당을 잡히지 않고도 천금을 대부받을 신임이 있었다. 그러나 광문은 지극히 얼굴이 못났었다. 말솜씨도 없어서 사람을 움직일 만한 능력이 없고 입은 커서 주먹 둘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아주 심한 장난꾸러기여서 별별 짓을 다 하였다. 그래서 이 어린애들은 상대방을 서로 헐어서 말하기를,

[네 형이 달문(達文)이지.]

하면 못난 것을 상징하므로 큰 욕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달문이 광문의 별명이었던 까닭이었다.

광문은 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웃통을 벗어 젖히고 덤벼들며 무엇을 입으로 중얼거리며 엎드려서 땅에다 금을 긋고 잘잘못을 가리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온 장터 사람들은 모두 웃고 싸우던 사람도 또한 웃으며 헤어져 버린다. 광문은 나이 사십이 넘도록 머리를 땋은 총각이었다. 사람들이 장가들기를 권하면,

 

[어여쁜 계집의 얼굴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법이요. 그러나 이것은 남자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지요. 여자도 또한 잘생긴 남자를 희망하거든요. 나는 이런 추한 얼굴을 하고서야 어찌 계집이 따르려고요.]

또 어떤 사람은 집을 장만하라고 권하면,

 

[나는 부모 형제 처자가 없는데 집을 장만해서 무엇하오. 아침에 일어나 노래 부르며 시내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고 해가 저물면 부잣집 문턱에서 잔대도 장안 호수가 팔만인데 날마다 그 장소를 옮겨도 내 생전에 다 끝나지 못할 것이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장안에 이름난 기생으로서 얼굴이 어여쁘고 노래와 춤을 잘해도 광문의 입에서 칭찬이 나오지 않으면 그 기생은 단 한푼 어치의 가치도 될 수 없었다. 어느 날 궁궐 안 별감(別監)들이며 부마(駙馬)들 또는 그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름난 기생 운심(雲心)을 찾아갔다. 술상을 차려 놓은 가운데 장고 거문고 등에 맞추어 춤추기를 부탁하며 애원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운심은 자꾸 미루면서 춤출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 광문은 이들이 노는 집 밑에 다다라 머뭇거리다가 방에 뛰어 들어가 상좌에 앉았다. 광문은 비록 다 떨어진 옷을 입었지만 아무 거리낌없이 당당한 태도였다. 눈가가 진물러 눈곱이 더덕더덕하고 술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상투는 풀어서 머리는 산발하고 있었다. 술좌석에 앉았던 사람들은 크게 놀라서 서로 눈짓을 하며 광문을 몰아내 쫓아 버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광문은 더욱 다가앉으면서 무릎을 치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장단을 맞추는 것이었다. 운심은 일어서더니 옷을 고쳐 입고 광문을 위하여 칼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좌석은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는 광문과 친구를 맺고 헤어졌다. (목판본)

 

 

 

 

지은이 : 박지원

시대 : 조선 후기

갈래 : 한문 소설, 단편 소설

성격 : 풍자적. 비판적, 사실주의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발단

광문이 거지 두목으로 추대되었으나 같이 살던 거지 아이들의 오해를 받아 도망치다가 우연히 어떤 집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도 오해를 받게 되지만 결국 결백함이 밝혀지게 되고 집주인의 도움을 받아 약방 점원이 된다.

전개

어느 날 약방에서 돈이 없어져 광문이 의심을 받게 되나, 며칠 뒤 그의 무고함이 밝혀지고 장안의 명사가 된다.

위기, 절정

광문이 성실한 행동으로 위기를 넘기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얻음

결말

광문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그를 좋아하게 된다.

주제 :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 양반들과 당시 세태 비판, 권모 술수가 판을 치던 당시 양반 사회의 풍자. 신의(信義) 있는 생활 자세와 허욕(虛慾)을 부리지 않는 삶의 태도 칭송

표현 : 당시 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함

줄거리 : 광문은 종루(鐘樓)를 떠돌아다니는 비렁뱅이다. 어느 날 많은 걸인들이 그를 두목으로 추대하여 소굴을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어느 겨울밤 걸인 하나가 병이 들게 되자, 이를 광문이 죽인 것으로 의심하여 쫓아낸다. 그는 마을에 들어가 숨으려 하지만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둑으로 몰렸지만 풀려난다. 그는 주인에게 거적 하나를 얻어 수표교에다 다른 걸인들이 버린 걸인의 시체를 거적으로 잘 싸서 서문 밖에 장사를 지내 준다. 그런데 그를 숨어서 지켜보던 주인이 광문의 덕행을 지켜보고, 이를 가상히 여겨 그를 약방에 추천하여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약방에서 돈이 없어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광문은 또 다시 의심받게 된다. 며칠 뒤 진범이 알려지고 광문의 무고함이 밝혀진다. 주인이 광문의 사람됨을 널리 알려 장안 사람 모두가 광문을 존경했다. 광문은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보증을 서 줄 정도로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않았다. 한편 서울에는 운심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그는 춤을 추지 않았다. 그러나 광문이 콧노래로 장단을 맞추자 운심은 비로소 춤을 추었다. 이에 모두 사람들이 광문과 친구가 되기를 청하였다.

인물 : 이 작품에 등장한 인물은 다채로워 서민과 양반계층이 함께 나타난다.

광문(廣文) : 종로에서 밥을 빌러 다는 거지. 거지 두목이었을 때 살인 누명을 쓰고 집단에서 쫓겨났을 때도 죽은 거지 아이를 공동 묘지에 묻어 주는 모습에서 광문이 인정 많은 성품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고, 취직한 약방 주인에게 절도 혐의를 받았을 때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떳떳하게 처신하여 결백이 입증되는 과정을 통해 그가 정직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해(利害)가 얽힌 각박한 불신 사회에서 남을 위해 선뜻 보증을 서 주고, 자신의 분수를 알고 결혼 및 치산(治産)에 연연해하지 않는 인물이다.

기타 : 걸인들, 주인영감, 생약포 부인의 처조카, 생약포 부인, 별감 등 복잡한 인물구성을 농민과 양반이 서로 어울려 등장하는 것이 특색이다.

내용 연구

광문[고대 소설의 전형적인 인물인 재자가인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은 비렁뱅이[거지의 속어]다. 그는 예전부터 종루(鐘樓 : 지금의 서울 종로) 시장 바닥[광문의 처지로 앞 문장을 구체화시킴]에 돌아다니며 밥을 빌었다. 길거리의 여러 비렁뱅이 아이들이 광문을 두목으로 추대[패두 : 우두머리, 두목 ]하여, (거지들의 보금자리인) 구멍집을 지키게 하였다.[거지 아이들이 광문이를 두목으로 삼고, 그에게는 밥을 얻으러 다니는 대신 구멍집을 지키고 있게 하였다는 뜻으로 구멍집은 거지들의 움막집을 말함. 나중에 사건의 복선 구실을 함]

하루는 날씨가 춥고 진눈깨비가 흩날렸는데[사건의 비극성 암시, 아이가 죽게 되는 사건과 관련되는 배경], 여러 아이들이 서로 이끌고 밥을 빌러 나갔다. 한 아이만 병에 걸려 따라가지 못하였다. 얼마 뒤에 그 아이가 더욱 추워하더니, 신음 소리마저 아주 구슬퍼졌다. 광문이 그를 매우 불쌍히 여겨[다른 사람들이 밥을 너무 늦게 구해오므로], 직접 구걸하러 나가서 밥을 얻었다.[동료들이 밥을 얻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광문이 병든 아이를 먹이기 위하여 직접 나가서 밥을 얻어 돌아와 보니, 그 아이는 이미 죽어 있다는 뜻으로 광문의 따뜻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다.] 병든 아이에게 먹이려고 하였지만, 아이는 벌써 죽어 버렸다.[아이의 죽음]

여러 아이들이 돌아와서는, '광문이 그 아이를 죽였다.'고 의심하였다[광문이 뒤집어 쓴 누명]. 그래서 서로 의논하여 광문을 두들기고는 내쫓았다. 광문이 밤중에 엉금엉금 기어서 동네 안으로 들어가, 그 집 개를 놀래 깨웠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 묶자, 광문이 이렇게 외쳤다.

"나는 원수[비렁뱅이 아이들]를 피해서 온 놈이요. 도둑질할 뜻은 없어요. 영감님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아침나절 종루 시장 바다에서 밝혀드리겠어요."[선처를 바라는 듯 애원하는 어조로 말하는 순진무구(純眞無垢)이 있음]

그의 말씨가 순박하였으므로, 주인 영감도 마음속으로 광문이 도둑이 아닌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새벽에 풀어 주었다.[주인 영감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광문은 고맙다고 인사한 뒤에, 거적때기[가마니]를 얻어 가지고 가 버렸다. 주인 영감이 끝내 그를 괴이하게 여겨, 그의 뒤를 밟았다. 마침 여러 거지 아이들이 한 시체를 끌어다가 수표교[옛날 청계천에 있던 다리 이름]에 이르더니, 그 시체[죽은 아이]를 다리 아래에 던지는 것이 보였다[광문의 이후 행위와 대조됨]. 광문이 다리 아래에 숨었다가 그 시체를 거적때기에 싸더니, 남몰래 지고 갔다. 서문 밖 무덤 사이에 묻고 나서는, 울면서 무슨 말인지 중얼거렸다.[애도의 표현 / 아이가 죽어 버린 데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드러남]

집주인이 광문을 잡고서 그 영문을 물었다. 광문이 그제야 앞서 있었던 일[버려진 시체를 묻어 주고 슬퍼한 일]과 어제 한 일[오해를 받아 쫓겨난 일]들을 다 말해 주었다. 주인 영감은 마음속으로 광문을 의롭게 여겨서,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광문에게 옷을 주고는 두텁게 대하였다[광문의 인간미와 순수함에 감동해서]. 그리고 광문을 약방 부자에게 추천하여, 고용살이[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하는 것]를 시켰다.[주인 영감은 광문에게서 앞서 있었던 일과 어제 있었던 일을 듣고 그를 의롭게 여겼다. 광문에 대한 주인 영감의 신망]

오래 뒤에 부자가 문 밖으로 나섰다가 자꾸만 돌아왔다. 다시 방안에 들어와 자물쇠를 살펴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주인은 돈을 방 안에다 두고 외출하면서 광문이 그것을 훔쳐가지 않을까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약방 주인이 광문을 아직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 그의 얼굴빛은 자못 불쾌한 듯 하였다가 돌아와 깜짝 놀라더니, 광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광문을 의심함] 무엇인가 말하려다가(자네가 혹시 돈을 훔쳐가지 않았는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얼굴빛이 바뀌더니 그만두었다.[광문을 의심하고 있음을 표정 묘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말을 하지는 않고 있다. 약방 주인의 신중한 성격이 드러남]

광문은 그 이유를 정말 몰랐다[광문은 의심받는 이유를 모르고 있음]. 날마다 잠자코 일했을 뿐이지, 감히 하직하고 떠나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부자의 처조카가 돈을 가지고 와서 부자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지난번 제가 아저씨께 돈을 꾸러 왔더니[광문에 대한 부자의 의심이 풀리는 계기가 됨], 마침 아저씨가 계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방에 들어가 돈을 가지고 갔었지요, 아마 아저씨께서는 모르고 계셨겠지요."

그제야 부자는 광문에게 매우 부끄러워하면 사과하였다. [광문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으로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가는 사필귀정 (事必歸正)에 해당하는 것으로 동의어에 사불범정(邪不犯正 :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것이 바른 것을 건드리지 못함. 곧 정의가 반드시 이김을 이르는 말이다.)이 있음 ]

"나는 소인[소인 : 간사하고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군자와 반대어 ]이야. 이 일 때문에 점잖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네 그려. 내 이제 자네를 볼 낯이 없네."

그리고는 자기의 모든 친구와 다른 부자나 큰 장사치들에게까지 '광문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두루 칭찬하였다[늘 입으로 칭찬하여 말하는 것으로 칭도라고도 함,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 추낭(錐囊). 추처낭중. 영탈.)]. 그는 또 종실(宗室 : 동성동본의 일가붙이)의 손님들과 공경(公卿 : 삼정승과 높은 벼슬아치들)의 문하[문객이 드나드는 권세 있는 집]에 다니는 이들에게 이르는 곳마다 광문을 칭찬하였다. 그래서 공경의 문하에 다니는 이들과 종실의 손님들이 모두 광문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밤마다 그들의 베갯머리에서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몇 달 사이에 사대부들이 광문의 이름을 모두 옛날 훌륭한 사람의 이름처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양 사람들이 모두들

"광문을 우대하던 중인영감이야말로 참으로 어질고도 사람을 잘 알아보는 분이지."

칭찬하였고, 더욱이

"약방 부자야말로 정말 점잖은 사람이야."

하고 칭찬하였다.

이때 돈놀이꾼[사채업자]들은 대체로 머리 장식품[수식품 : 머리 장식품으로 여기서는 비녀]이나 구슬 비취옥[비취와 옥으로 모두 보석의 일종] 따위 또는 옷[의건 : 옷가지 ]. 그릇[기물 : 살림살이에 쓰는 온갖 그릇붙이 ]. 집. 농장. 종[농장비복 : 농지와 노비] 등의 문서를 전당 잡고서 밑천을 계산해서 빌려주었다. 그러나 광문은 남의 빚을 보증서면서도 전당 잡을 물건이 있는지를 묻지 않았다. 천 냥도 대번에 승낙하였다.[광문의 따뜻한 인간상을 의미하는 말로 담보 잡힌 물건보다는 사람을 더 믿었음을 말함]

광문의 사람됨을 말한다면, 그의 모습은 아주 더러웠고, 그의 말씨도 남을 움직이지 못했다.[광문이의 외양 묘사 - 볼품없음] 입이 넓어서 두 주먹이 한꺼번에 드나들었다. 그는 또 만석(曼碩) 중놀이[당시 유행하던 우희의 일종으로 음력 4월 8일에 개성 지방에서 연희되던 무언 인형극 놀이]를 잘하고, 철괴(鐵拐) 춤을 잘 추었다. 당시에 아이들이 서로 헐뜯는 말로써

 

"느네 형이야말로 달문(達文 : 원래 뜻은 익숙한 솜씨로 잘 지은 글)이지." [못생긴 얼굴을 놀리는 말]

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달문'이란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광문이 길에서 싸우는 이들을 만나면, 자기도 역시 옷을 벗어 젖히고 함께 싸웠다. 그러다가 무슨 말인가 지껄이면서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에 금을 그었다. 마치 그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듯했다. 그러는 꼴을 보고서 시장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싸우던 자들도 역시 웃다가 모두 흩어져 버리곤 하였다.[익살스러운 방법을 통해서 남의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장면으로 광문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의 또 다른 단면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광문은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대로 총각 머리를 땋았다[광문이가 늦도록 장가를 가지 않았음. 옛날에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상투도 틀 수가 없었음]. 남들이 장가들기를 권하면 그는

 

"대체로 아름다운 얼굴을 모두 좋아하는 법이지. 그런데 사내만 그런 게 아니라 여인네들도 역시 그렇거든. 그러니 나처럼 못생긴 놈이 어떻게 장가를 들겠어?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광문이가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려는 태도가 드러나 보이며, 남녀가 한 인간으로 대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광문의 입을 빌린 연암 박지원의 남녀 평등에 대한 선각자적 인식이 돋보임]

하였다. 남들이 살림을 차리라고 하면 이렇게 사양하였다.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 처자도 없으니[혈혈단신(孑孑單身)], 무엇으로 살림을 차리겠소? 게다가 아침나절이면 노래 부르며 시장 바닥으로 들어갔다가 날이 저물면 부잣집 문턱 아래서 잠을 잔다오. 한양에 집이 팔만이나 되니, 날마다 잠자는 집을 옮겨 다녀도 내가 죽을 때까지 다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라오."[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 동쪽 집에서 밥 먹고 서쪽 집에서 잠잔다는 뜻으로,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냄을 이르는 말. 광문의 자유분방하고 욕심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읽을 수 있음]

한양의 이름난 기생들이 모두 아리땁고 예쁘며 말쑥하였다. 그러나 광문이 칭찬해 주지 않으면 한푼 어치의 값도 나가지 못하였다.[광문이 어느 기생이 예쁘다고 칭찬하지 않으면, 아무리 예쁘고 말쑥한 기생이라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광문이 사심(私心)이 없고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번에 우림아(羽林兒 : 우림아 : 궁궐 호위와 의장의 임무를 맡은 근위병 )와 각전(各殿 : 왕이나 왕비 등이 거처하는 건물 ) 별감 또는 부마도위[임금의 사위]의 겸종들이 소매를 나란히 하여 운심을 찾았다[조선 후기 당시의 부패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구절로 평민들의 처참한 생활상과 대비되어 독자가 더욱 뼈저리게 당시 사회 현실을 인식하게 함]. 운심은 이름난 기생[노류장화(路柳墻花) : 길 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은 누구든지 쉽게 만지고 꺾을 수 있다. 기생(妓生)을 의미한다.]이었다. 당(堂) 위에다 술자리를 벌이고 비파를 뜯으며, 운심의 춤을 즐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운심은 일부러 시간을 늦추면서 춤을 추려하지 않았다. [권문세가(權門勢家)에 대한 비판 의식, 자존심이 강함을 보여줌]

광문이 밤에 찾아가 당 아래에서 어정거리다가[바장이다가 : 부질없이 짧은 거리를 왔다갔다 하다가 ], 곧 들어가서 그들의 윗자리에 서슴지 않고 앉았다. 광문은 비록 옷이 다 떨어지고 그 행동이 창피하였지만, 그의 뜻은 몹시 자유로웠다[인물을 깎아 내린 다음 추켜 세우는 억양법에 의해 인물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켜 서술하고 있다]. 눈구석이 진물러서[진물러서 : 거죽이 상하여 문드러져서 ] 눈곱[기름 여기서는 눈꼽]이 낀 채로 술 취한 듯 트림하여 양털처럼 생긴 그 머리로서 뒷꼭지에다 상투를 틀었다.[운심을 달래서 춤을 추게 하기 위한 광문의 기괴한 행동]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서로 눈짓해서 광문을 몰아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광문은 더 앞으로다가 앉아 무릎을 어루만지며 가락을 뽑아, 콧노래로 장단을 맞추었다. [허식에 구애됨이 없이 보다 진솔하게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형상화됨]

 

운심이 그제야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광문을 위해서 칼춤을 추었다.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은 다시금 광문과 벗으로 사귀고 흩어졌다.[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광문이는 계층에 상관 없이 하나의 귀감이 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해와 감상

조선 후기의 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작품으로 일종의 한문풍자소설이다. 광문(廣文)은 청계천변에 움막을 짓고 사는 거지의 우두머리로, 어느 날 동료들이 모두 걸식을 나간 사이에 병들어 누워 있는 거지아이를 혼자서 간호하다가 그 아이가 죽어버리자 동료들의 오해를 사게 되어 거기서 도망친다. 그러나 그는 다음 날 거지들이 버린 아이의 시체를 몰래 거두어 산에다 묻어 준다. 이것을 목격한 어떤 부자가 이를 가상히 여겨 그를 어느 약종상(藥種商)에 소개한다. 점원이 된 그는 그 곳에서 정직함과 허욕이 없는 원만한 인간성으로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게 된다. 나이가 차서 결혼할 때가 되었으나 그는 자신의 추한 몰골을 생각하고 아예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 광문자전 〉 을 쓰게 된 동기에 관하여 작자는 그 서문에서 “ 광문은 궁한 걸인으로서 그 명성이 실상보다 훨씬 더 컸다. 즉, 실제 모습(실상)은 더럽고 추하여 보잘것없었지만, 그의 성품과 행적으로 나타난 모습(명성)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래 세상에서 명성 얻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형벌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물며 도둑질로 명성을 훔치고, 돈으로 산 가짜 명성을 가지고 다툴 일인가. ” 라 하여, 당시 양반을 사고 판 어지러운 세태를 꾸짖었으며,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항인(閭巷人)의 기이한 일을 끌어 와서 풍교(風敎)에 쓰려고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인정 있고 정직하고 소탈한 새로운 인간상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는데, 작가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장안에서도 가장 이름난 은심이란 기생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방에 있던 귀인들이 그의 남루한 복장과 추한 얼굴에 낯을 찡그리고 상대하지 않았으나 그는 끝내 의젓한 기품을 잃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은심이 그의 높은 인격에 감동하여 흔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위해 춤을 추었다.

이 소설은 비천한 거지인 광문의 순진성과 거짓 없는 인격을 그려 양반이나 서민이나 인간은 똑같다는 것을 강조하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던 당시의 양반사회를 은근히 풍자한 작품이다.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의 주인공 광문은 우리가 고전 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고귀한 혈통을 갖고 태어나거나 비범한 능력을 소유하지도 않은 인물이다. 광문은 비렁뱅이면서도 마음이 착해 항상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러한 인물형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는 신분이나 지위보다는 성실하고, 신의 있고, 인간의 가치를 통찰하며, 남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암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에 관하여 작가는 그 서문에서 "광문은 궁한 걸인으로서 그 명성이 실상보다 훨씬 더 컸다. 즉, 실제 모습은 더럽고 추하여 보잘것없었지만, 그의 성품과 행적으로 나타난 모습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래 세상에서 명성 얻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마침내 형벌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물며 도둑질로 명성을 훔치고, 돈으로 산 가짜 명성을 가지고 다툴 일인가."라 하여, 당시 양반을 사고 판 어지러운 세태를 꾸짖었다.

심화 자료

새로운 인간상 제시

신분제 사회

재자가인형 주인공 선호

 

광문자전

비천하고 평범한 주인공

새로운 인간상 제시

'광문자전'에 반영된 작가 의식

연암의 상당수 소설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새롭게 떠오르는 시정(市井) 사람들을 주인공(主人公)으로 삼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못생긴 거지인 '광문'이다. 당대 소설에는 재자가인(才子佳人)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는데, 이 작품은 거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일반적 경향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을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 '광문'은 못생긴 외모를 지녔으며, 그 출신은 거지라는 최하층이다. 그러나 그는 착하고 신의가 있으며, 남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으며,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다.

또한 남의 싸움을 익살스럽게 중재하는 재치가 있고, 남녀평등(男女平等)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으며, 분수를 지키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이를 통해 연암이 새로운 시대는 가문, 권력, 지위, 부, 미모 등에 의해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信義),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 정직(正直) 등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광문자전'에서는 거지 출신인 '광문'의 일화가 삽화 형식으로 전개되면서 연암의 실학 사상의 일단이 드러나가는 하면 타락한 양반 세계에 대한 풍자도 드러난다.

 

광문

외적 조건

광문 < 양반

양반들의 위선 비판

내적 품성

광문 > 양반

 

일화를 통한 성격 제시

따뜻한 인간애

아픈 아이를 위해 먹을 것을 구걸해 줌, 죽은 걸인 아이의 시신을 매장해 줌

정직하며 물욕이 없음

다른 사람의 재물을 탐하지 않고, 담보 없이도 다른 사람의 보증을 잘 서 줌.

지혜로움

우스갯짓으로 다른 사람의 싸움을 화해시킴

남녀 평등 의식

주위에서 장가들기를 권하나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자신의 추함을 들어 거절함

 

광문자전(廣文者傳)

 

조선 후기에 박지원 ( 朴趾源 )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속편이라 할 수 있는 〈 서광문전후 書廣文傳後 〉 와 함께 박지원의 ≪ 연암집 燕巖集 ≫ 방경각외전(放 揭 閣外傳)에 실려 있다. 저작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1754년(영조 30)경 18세 무렵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서문에서 그가 18세 때 병을 얻어 밤이면 문하의 옛 청지기들을 불러 여염의 기이한 일들을 즐겨 듣곤 하였는데, 대개 광문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 광문자전 〉 을 쓰게 된 동기에 관하여 작자는 그 서문에서 “ 광문은 궁한 걸인으로서 그 명성이 실상보다 훨씬 더 컸다. 즉, 실제 모습(실상)은 더럽고 추하여 보잘것없었지만, 그의 성품과 행적으로 나타난 모습(명성)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래 세상에서 명성 얻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형벌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물며 도둑질로 명성을 훔치고, 돈으로 산 가짜 명성을 가지고 다툴 일인가. ” 라 하여, 당시 양반을 사고 판 어지러운 세태를 꾸짖었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문은 종로 네거리를 다니며 구걸하는 걸인이었다. 여러 걸인들이 그를 추대하여 두목으로 삼아 소굴을 지키게 하였다. 어느 겨울밤 걸인 하나가 병이 들어 앓다가 갑자기 죽게 된다. 그러자 이를 광문이 죽인 것으로 의심하여 쫓아낸다. 그는 마을에 들어가 숨으려 하지만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둑으로 몰렸다.

 

그러나 그의 말이 너무나 순박하여 풀려난다. 그는 주인에게 거적 한닢을 얻어 수표교 ( 水標橋 ) 밑으로 가서 숨어 있다가, 걸인들이 버리는 동료걸인의 시체를 가지고 있던 거적으로 잘 싸서 서문 밖에 장사지내 준다.

전에 숨으러 들어갔던 집주인이 계속 그를 미행하고 있었다. 그는 광문으로부터 그동안의 내력을 듣고는 가상히 여겨 광문을 어떤 약방에 추천하여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어느날 약방에서 돈이 없어져 광문이 또 다시 의심받게 된다. 며칠 뒤에 약방 주인의 처이질이 가져간 사실이 드러나 광문의 무고함이 밝혀진다.

 

주인은 광문이 의심을 받고도 별로 변명함이 없음을 가상히 여겨 크게 사과한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에게 널리 광문의 사람됨을 퍼뜨려 장안사람 모두가 광문과 그 주인을 칭송하게 된다.

광문은 남의 보증서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보증하면 전당하는 물건이 없어도 많은 돈을 빌 수 있게 된다. 광문은 얼굴이 추하고 말은 남을 잘 감동시키지 못하였다. 입은 크고 망석중이놀이를 잘 하였으며, 철괴춤을 곧잘 추었다. 아이들이 서로 상대방을 놀릴 때는 “ 네 형이 광문이지. ” 라고 할 정도였다.

길을 가다 남이 싸움하는 것을 보고 그도 웃옷을 벗고 덤벼들어 벙어리 흉내를 내면서 땅에 금을 그어 시비를 가리는 것같이 하면, 싸우던 사람도 그만 웃고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광문은 마흔이 되어서도 머리를 땋고 있었다. 사람들이 장가들기를 권하면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하는 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므로 얼굴이 추해서 장가들 수 없다고 말하였다. 집을 지으라 권하면 부모처자도 없는데 집은 지어 무엇하느냐고 하였다.

장안의 명기들도 광문이 기리지 않으면 값이 없었다. 전일 장안의 명기 운심(雲心)이가 우림아(羽林兒) · 별감 · 부마도위 ( 駙馬都尉 )의 겸인들이 모여 술상을 벌인 자리에서 가무(歌舞)하라는 영을 듣지 않다가, 광문이 자리에 들어와 우스운 짓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자 운심이도 따라 칼춤을 추게 되었다. 이를 보고 모인 사람들이 모두 즐기며 광문과 벗을 맺고 헤어졌다.

〈 광문자전 〉 에서 박지원 여항인(閭巷人)의 기이한 일을 끌어와서 풍교(風敎)에 쓰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인정 있고 정직하고 소탈한 새로운 인간상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작가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 광문자전 〉 의 소원관계(遡源關係)는 허균의 〈 장생전 蔣生傳 〉 과 어느 면에서 상통한다. 판소리계 소설인 〈 무숙이타령 〉 , 일명 ‘ 왈짜타령 ’ 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한편, 이유원(李裕元)의 ≪ 춘명일사 春明逸事 ≫ 에 나오는 〈 장도령전 〉 과도 통하여 당시 이런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참고문헌 ≫ 燕巖集, 燕巖小說硏究(李家源, 乙酉文化社, 1965).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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