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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회(共進會)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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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회(共進會)

 

 

서문

총독부에서 새로운 정치를 시행한 지 다섯 해 된 기념으로 공진회를 개최하니, 공진회는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을 벌여놓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구경하게 하는 것이어니와. 이 책은 소설 <공진회>라. 여러 가지 기기묘묘한 사실을 책 속에 기록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한 것이니. 총독부에서는 물산(物産)공진회를 광화문 안 경복궁 속에 개설하였고, 나는 소설<공진회>를 언문으로 이 책 속에 진술하였도다. 물산 공진회는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요. 소설<공진회>는 앉아서나 드러누워 보는 것이라. 물산 공진회를 구경하고 돌아와서 여관 한등(寒燈) 적적한 밤과 기차 타고 심심할 적과 집에 가서 한가할 때에, 이 책을 펼쳐들고 한 대문 내려보면 피곤·근심 간 데 없고 재미가 진진하여 두 대문 세 대문을 책 놓을 수 없을 만치 아무쪼록 재미있게 성대한 공진회의 여홍을 돕고자 붓을 들어 기록하니, 이때는 대정(大正) 사년 초파월이라.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 주는 글

사람들은 울지 말지어다. 슬픈 후에는 기꺼움이 있나니라. 사람들은 웃지 말지어다. 기꺼운 후에는 슬픔이 생기나니라. 기꺼운 일을 보고 웃으며 슬픈 일을 보고 우는 것은 인정의 상 글태라 하지마는, 사람을 국량(局量)은 좁으나, 넓은 체하지 말지어다. 사람의 지식은 적으니라, 많은 체하지 말지어다. 하늘은 크고 큰 공중이라 누가 그 넓음을 측략하리오. 지구에서 태양을 가려면 몇백만 리가 되는데, 태양에서 또 저편 별까지 가려면 몇억천만 리가 되고, 그 별에서 또 저편 별까지 가려면 몇억천만 리가 되어, 이렇게 한량없이 갈수록 막히는 곳이 없으니 그 넒음이 얼마나 되느요? 세상은 가늘고 가는 이치 속이라, 누가 능히 그 아득함을 발명하리요. 사람마다 생각하라.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낳으셨으며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으니,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혼인이 되었으므로 아버지를 낳으셨으나, 그때에 만일 할머니와 혼인이 아니 되고 다른 부인과 혼인이 되었다면 그래도 내가 이 모양으로 이 세상에 생겨났을지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증조부·고조부·오대조, 육대조, 시조까지 올라가며 여러 십대, 여러 백대 중에서 어느 대에서든지 한 번만 혼인이 빗되었으면 오늘 이 모양의 나는 이 세상에서 생기기 되었을지는 알지 못할지니, 세상 사람이 생기어난 것부터 이렇게 요행이요, 우연한 인연이라. 그 아득함이 어떠한가? 하늘은 큰 공중이라 넓고 넓어 한량이 없고, 세상은 가늘고 가는 이치 속이라 아들하고 아득하여 알지 못할지니, 사람의 국량이 아무리 넓을지라도 공중에 비할 수 없고, 사람의 지식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조화주는 따르지 못할지라.

 

 

 그러나 사람은 일정한 국량이 있고 보통의 지식이 있는 고로 기뻐하며 노여어 하며, 슬퍼하며 즐겨하며, 사랑하며 미워하며, 욕심내며 겁내는 인정이 있으니, 사람은 이 여덟 가지 정이 있는 고로 사람은 아무리 하여도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량은 아무리 하여도 그 국량이요, 지식은 아무리 하여도 그 지식이라. 술 취하여 미인의 무릎을 베개하고 술을 깨어 천하의 권세를 주무르며, 한 번 호령하면 천지가 진동하고, 한 번 나서면 만민이 경외하는 고금의 영웅들이 장하고 크다마는 역시 한때 장난에 지나지 못하고, 물리(物理)를 연구하여 화륜선, 화륜차, 전보, 비행기 등속을 발명하여 예전에 없던 일을 지금 있게 하는 이학박사여, 용하고도 가상하다마는 세상 이치의 일부분을 깨달음에 지나지 아니하도다. 영웅이 끼친 역사(歷史)는 슬픔과 기꺼움의 종자요, 박사의 발명한 물건은 욕심과 희망의 자취라. 그러한즉 사람은 욕심과 희망으로 살고 슬픔과 기꺼움으로 소견하는 것인가? 사람이 아들을 낳기를 바라다가 아들은 하으면 기꺼워하고 그 아들이 죽으면 슬퍼하리니, 아들 낳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며 희망이요, 낳을 때에 기꺼워하고 죽을 때에 슬퍼함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 는 역사를 지음이요, 사람이 부자되기를 원하다가 재물을 얻으면 기꺼워하고 그 재물을 잃으면  슬퍼하리니, 부자가 되기를 원함은 욕심이며 희망이요, 얻을 때에 기꺼워하고 잃을때에 슬퍼함은 또한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역사를 만듦이라, 크고 넓은 천지에서 내가 지금 다른 곳에 있지 아니하고 이곳에 있으며, 가늘고 아득한 이치 속에서 내가 이왕에 나

 

(중략)

 

 무겁게 들고 꺼내어다가 김서방 앞에 놓으며 하는 말이,

 "이것을 세어 보니까 모두 사천 삼백 원이니 당오풀이로 이십일만 오천 냥입데다."

 

김서방이 깜짝 놀라며,

 "웬 돈이 이렇게 많이 모였나?"

 

그 아내는 온순한 태도로 조용히 말하되,

 "오늘은 내 죄를 용서하여 주시오. 내가 남편에게 죄를 많이 지었소. 당초에 당신이 인력거를 끌고 나가서 지전 뭉치를 얻어 가지고 들어오셔서. 그 이튿날 벌이할 생각은 아니하고 그 전날 밤에 약조한 말과 맹세한 말은 모두 잊어버리고 술 자시기를 시작하시기에, 하릴없이 당신을 속이고 당신 술취한 것을 이용하여 꿈으로 돌려보내고 그 지전 뭉치를 경찰서로 가지고 가서 모든 사정을 말을 하고 임자를 찾아 주라 하였더니, 경찰서에서 광고를 붙이고 지전 잃은 사람을 사면으로 찾으나 돈 임자가 나서지 아니하는 고로, 수일 전에 나를 부르기에 내가 경찰서에 갔더니 경찰서장이 그 지전 뭉치를 내어주며, 이 돈은 삼 년이 지내어도 임자가 나서지 아니한즉 네게로 내어노니, 그것 가지고 잘 살아라 하옵기 대단히 놀랍고 고마워서 가지고 나왔으나, 그 동안 삼 년이나 당신을 속인 일이 여편네된 도리에 대단히 죄송하오니 용서하시오. 경찰서에서 내어주신 돈이 사천삼십이 원 오십 전이요, 그 나머지는 그 동안 우리가 모은 돈이오."

 

 김서방은 그 아내의 말만 듣고 잠잠히 앉았더니 별안간 하는 말이,

  "아니여, 이것이 또 꿈이로군. 내가 또 지금 꿈을 꾸는 것이야."

 

그 아내는 김서방의 하는 말이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김서방이 돈 많은 것을 보고 도로 예전 마음이 생기어 술이나 먹고 게을러질까 염려하여 엄연한 태도로 말을 한다.

 

(하략)

 

 

 요점 정리

 연대 : 1915년
 작자 : 안국선
 형식 : 신소설, 단편 소설집, 연작 소설
 성격 : 체제 순응적
 구성 : 액자 구성
 줄거리 :

'기생'의 주인공 향운개는 진주에 사는 열다섯 살 된 기생이다. 그녀의 이름은 '춘향전'의 정절의 상징인 춘향의 '향'자와 '구운몽'의 만판 재주를 다 부려 양소유를 가지고 노는 가춘운의 '운'자, 그리고 일본 장수를 껴안고 물 속으로 뛰어든 충심의 상징인 논개의 '개'자를 뽑아 지은 것으로, 이 세 여인을 존경하고 따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인 퇴기 추월은 딸의 미모와 재주를 이용하여 부잣집 사람들의 재산을 긁어 모으려고 벼른다.

 

한편 진주 성중에는 옷 한 벌 제대로 입지 않고 화초첩 한 번 두지 않으며 검소하게 대대로 물려오는 재산을 지키고 있는 김부자가 있었다. 그런 그가 촉석루에서 논개의 제사를 지내던 향운개를 한 번 보고는 가슴이 떨리어 잠을 못 이룬다. 김부자는 사람을 시켜 재물을 그녀의 집으로 보내고 자기도 비단옷을 꾸며 입는 등 갖은 회유책을 다 써서 향운개를 소실로 데려온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해 김부자에게 오긴 했으나 향운개는 꾀를 내어 그곳을 빠져 나간다. 아편전쟁 때에 간호원으로 지원한 그녀는 많은 부상자 가운데서 '최유만'이라는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향운개가 어렸을 때 장난으로 같이 자고 나서 남편으로 섬길 것을 마음먹은 장본인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가연을 맺게 되고, 물산 공진회에 구경을 하러 온다.

 

'인력거꾼'의 주인공 김서방은 양반의 후예지만 게으르고 술을 좋아하여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간곡한 권고로, 앞으로 삼 년간 술을 끊고 인력거를 끌어 남부럽지 않게 살기로 한다. 그런데 인력거꾼이 된 김서방은 첫날 길에서 이만 냥이라는 큰 돈을 주웠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이 돈을 믿고 술을 마시자, 남편을 속여 그 일이 꿈에서 일어난 것인양 꾸미고는 돈을 경찰서에 갖다 준다. 그 후 김서방은 삼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뜻밖에 경찰서에서 주인이 안 나타나니 돈을 찾아가라 하여 아내는 모든 것을 고백하고 경찰서에서 찾아온 돈을 내놓는다. 이에 김서방은 아내의 현명함에 감사하고 더욱 열심히 인력거를 끈다.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공진회'는 1915년에 안국선이 발표한 단편 소설집으로, '기생', '인력거꾼','시골노인이야기', '탐정순사', '외국인의 화(話)' 등 다섯 편이었으나, 당시 경무부의 검열에서 뒤의 두편이 삭제되고 앞의 세 편만 실렸다. 여기서는 '기생'과 '인력거꾼'의 일부만 소개한다. 이 작품은 작가 안국선이 남긴 다른 작품 '금수회의록'이 사회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과는 달리, 친일적이고 체제순응적이어서 매우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공진회'는 소설 속에 다시 사건이 이어지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서문'이나 '이 책 보는 사람에게 주는 글' 같은 것을 앞에 제시하여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과, 세 편의 소설을 연작 형식으로 쓴 것이 특색이다. 또한 일상어에 의한 표현이 주가 된 점에서 개화기 소설의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화 자료

 

 공진회

 

 안국선 ( 安國善 )의 단편소설집. 1915년 8월 작가에 의하여 자택에서 출판되었다. 이 작품집 속에는 〈 기생 妓生 〉 · 〈 인력거군 人力車軍 〉 · 〈 시골노인이야기 地方老人談話 〉 등 세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 말미에 붙인 글에서, 〈 탐정순사 探偵巡査 〉 와 〈 외국인의 화(話) 〉 라는 두 편의 작품이 경무총장의 명령으로 삭제되었음을 밝히고 있어, 처음에는 다섯 편의 작품을 싣게 계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 기생 〉 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을 배경으로, 진주 · 서울 및 중국 칭다오(靑島), 일본 동경 ( 東京 ) 등의 무대에서 한 기생이 온갖 유혹과 환난을 물리치고 어렸을 때의 친구인 유만이와 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애정소설이다.

 

〈 인력거군 〉 은 1910년대 서울 거리에서 날품팔이하는 인력거꾼을 주인공으로 하여 서민층의 생활단면을 그리고, 그의 과도한 음주를 징계하기 위하여 그의 아내가 짜낸 지혜와 근면, 절약하는 삶의 자세를 부각한 작품이다.

 

〈 시골노인이야기 〉 는 동학운동 직후의 강원도 철원과 서울을 무대로 하여, 의병 봉기 및 진압 등 난리를 겪는 우여곡절 속에서 지난날에 혼인 약정이 되어 있는 남녀 주인공의 애정 성취를 그린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단편소설 양식으로서의 액자구조(額子構造 :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가진 구조)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한편, 작자는 이 작품집 서문에서 제목의 연유를 당시 열렸던 물산 공진회에 비유하여 설명함으로써 소설의 오락성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 독자에게 주는 글 ’ 에서도 소설의 교훈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 소설관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대체로 〈 인력거군 〉 을 제외하고는 신소설이나 고대소설과 흡사한 내용을 길이만 짧게 축약한 단편이라는 점에서 근대적인 단편소설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그러나 〈 시골노인이야기 〉 에서 보이는 액자구조나 〈 인력거군 〉 에서 드러나는 사실적 묘사와 단편적 양식 등은 이들이 장편 신소설과 1920년대 이후 근대적인 단편소설의 교량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집이 최초의 근대적인 단편소설집이라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 참고문헌 ≫ 韓國開化期小說硏究(李在銑, 一潮閣, 1972), 新小說硏究(全光鏞, 새문社, 1986), 安國善硏究(尹明求, 현대문학연구 8, 서울大學校大學院, 1974), 安國善의 생애와 작품세계(權寧珉, 冠岳語文硏究 2, 서울大學校國語國文學科, 1977).

 

 

 안국선(安國善)  

 

  1878(고종 15)∼1926. 신소설가. 호는 천강(天江). 경기도 고삼(古三) 출생. 일본 유학을 한 개화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1895년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에서 정치학을 수학하였다. 귀국 후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국민계몽운동에 헌신하다가 1898년 독립협회 해산과 함께 체포, 투옥되어 참형의 선고를 받았다가 진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907년부터 강단에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한 그는 교재로 ≪외교통의 外交通義≫·≪정치원론 政治原論≫ 등을 저술하였으며, ≪연설법방 演說法方≫은 당시 유행하던 사회계몽 수단인 연설 토론의 교본으로 저술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야뢰 夜雷≫·≪대한협회보 大韓協會報≫·≪기호흥학회월보 畿湖興學會月報≫ 등에 정치·경제·시사 등의 시사적인 논설도 발표하였으며, 대한협회의 평의원도 역임하였다.

그가 관계에 몸을 담게 된 것은 1908년 탁지부 ( 度支部 ) 서기관에 임명되면서부터이다. 1911년부터 약 2년간 청도 군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형무소에 수감 중 기독교에 귀의하였고 계명구락부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금광·개간·미두·주권 등에 손을 대었으나 실패하고 일시 낙향하여 생활하였으나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다시 상경하였다.

 

그의 소설로는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공진회 共進會〉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필사본으로 〈발섭기 跋涉記〉 상·하 2권과 〈됴염전〉이 있다 하나 전하여지지 않고 있다. 그의 소설과 저술물의 기저를 이루는 사상으로 유교적 윤리와 기독교적 윤리사상을 들 수 있다.

 

이는 당대의 혼란한 국가와 사회를 바로잡고자 한 그의 현실관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정신개조를 통한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이루려는 그의 태도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 우리의 전통적인 제도와 사상, 즉 동도(東道)는 지키면서 근대 서양의 과학기술, 즉 서기(西器)는 받아들이자는 이론.)의 개화파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開化期小說의 理解(尹明求, 仁荷大學校出版部, 1986), 韓國小說發達史 下(全光鏞, 韓國文化史大系 Ⅴ,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67), 安國善硏究(尹明求, 서울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4), 安國善의 生涯와 作品世界(權寧珉, 冠嶽語文硏究 2,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77).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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