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연말 / 방정환
by 송화은율겨울과 年末[연말]
은행 잎사귀가 황금 비늘처럼 내리덮인 뜰에는 아침마다 찬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살얼음 잡힌 강물 위로 쌀쌀한 저녁 바람이 스쳐 지날 때마다 그윽
한 숲 속에서 까치가 구슬피 울부짖습니다. 잎 떨린 감나무 가지마다 새빨
간 감이 도롱도롱 매달리어 머지않은 운명을 슬퍼하는 듯하고 기러기 울고
지나는 쓸쓸한 달밤에 오동잎이 하나씩 둘씩 떨어집니다.
벌써 첫눈이 내렸습니다. 더 높은 국화꽃의 희미한 향내가 하늘 끝까지 사
뭇 찼습니다. 이리하여 겨울이 오고 금년이 또 저물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봄의 새싹과 같이 우쭐우쭐 커 가는 사람, 자라가는 사람이거니 살
을 에어 갈 듯이 추운 날에도 펄펄 내리는 눈 속에서라도 씩씩하게 뛰어 놀
며 춤추고 운동하는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요한 밤에는 새끼도 꼬고 신도 삼으며 공부도 하여야겠습니다.
겨울이라 하여 병신같이 들어앉았을 때가 아닙니다. 해 있을 동안은 반드시
밖에 나가서 추위와 싸워 견디는 힘과 대항하는 힘과 싸워 이기는 힘을 길
러야 하고 기나긴 밤에는 손이 부르트도록 부지런히 일하고 책상 머리에 앉
아 열심으로 공부하여 독서에 재미 붙여 속으로 겉으로 똑같은 힘을 지어
가야겠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모두 땅 속과 깃 속에 숨고 모든 식물은 죽은 모양으로 있
으되 우리 조선 소년은 다른 때보다도 겨울에 더 몸이 빙산같이 튼튼히 자
라나고 마음이 눈같이 깨끗이 커 나며 아는 것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하
여 한 해 두 해 겨울과 연말을 보낼 적마다 새 봄의 나라를 세울 일꾼으로
서의 있어야 할 것들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히 봄나라를 우리
의 것이 되게 하는 한 길이며 해마다 겨울과 연말을 맞이하는 우리로서의
반드시 깨달아야 할 깊이 느껴야 할 생각입니다.
〈《어린이》6권 7호, 1928년 12월 송년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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