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개선문(Arc de Triomphe) / 레마르크

by 송화은율
반응형

개선문(Arc de Triomphe) / 레마르크

(전략)

여인은 라비크 쪽으로 비스듬히 다가오고 있었다. 빠른 걸음이었지만 이상스레 휘청거렸다. 그 여인이 곁에까지 왔을 때에야 그는 그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높은 광대뼈, 넓은 양미간, 그리고 창백한 얼굴이었다. 표정은 마치 가면이라도 쓴 듯 굳어 있었다. 여인의 눈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유리 같은 공허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여인은 몸을 스칠 정도로 그를 지나쳤다. 그는 여인의 팔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순간 여인은 비틀거렸다. 만약에 그가 붙들어 주지 않았다면 여인은 쓰러졌을 것이다.

 

그는 여인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

"어디로 가려는 거요?" 잠시 후 그가 물었다.

 

빤히 그를 쳐다보던 여인은 속삭이듯 말했다.

"놓아 주세요."

 

대답 없이 여인의 팔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놓으세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여인은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힘없이 말했다.

'이 여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구나' 하고 라비크는 생각했다. 여인의 시선은 그를 넘어 텅 빈 밤의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인에게, 그라는 남자는 다만 자기를 붙잡아 세운 무슨 물건으로만 보이는 모양으로, 물건을 향해 말하듯 다시

 

한 번 여인은 되풀이했다.

"이거 놓아 주세요!"

 

여인이 창녀가 아님을 그는 이내 알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여인의 잡았던 팔에서 힘을 약간 뺐다. 뿌리칠 생각만 있었다면 쉽게 뿌리칠 수도 있겠지만, 여인은 전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라비크는 잠시 기다렸다.

"정말 어디로 가려는 거요? 이 밤중에 혼자, 파리의 거리를, 더구나 이런 시간에."

 

그렇게 다시 한 번 나지막하게 말하고 라비크는 그녀의 팔을 슬며시 놓아 주었다.

여인은 잠자코 서 있었다. 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마치 한 번 붙잡히자 더 이상 못 가겠다는 듯이.

라비크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섰다. 축축하고 울퉁불퉁한 감각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혹시 저 속에 뛰어들겠다는 건 아니오?"

 

그는 고개를 젖히며 아래를 가리켰다. 그 아래에는 회색빛을 띤 세느 강이 뽕 드 랄마 다리 그늘 밑으로 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인은 아직 대답이 없었다.

"아직은 너무 일러요. 11월은 너무 이르고 너무 춥소." 하고 라비크는 말했다.

 

그는 담뱃갑을 꺼낸 다음 성냥을 찾았다. 성냥갑 속엔 두 개비밖에 없어,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불이 꺼질까 그는 조심스레 몸을 굽혀 두 손으로 불을 가렸다.

"저도 담배 하나만 주세요." 하고 여인은 억양 없이 말했다.

 

라비크는 굽혔던 몸을 펴고 담뱃갑을 내밀었다.

"알제리아 산(産)이오. 외인 부대용 검은 담배여서 당신한테는 너무 독할 테지만 가진 게 이런 것밖에는 없소."

여인은 상관없다는 듯이 머리를 가로 저으며 담배를 뽑아 들었다. 여인은 성급하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라비크는 성냥개비를 다리 난간 너머로 내던졌다. 그것은 조그만 별똥처럼 어둠을 뚫고 날아가다 수면에 닿아서야 꺼졌다.

택시가 한 대 서서히 다리 위로 굴러왔다.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는 그들을 바라보며 잠시 기다리다가, 이윽고 엔진 소리를 높여 비에 젖어 칠흑빛으로 반짝이는 조르쥬 5세 가(街)를 거슬러 올라가 버렸다.

 

라비크는 갑자기 피로를 느꼈다. 종일 일에 쫓겨 잠을 잘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술이나 한잔하려고 나온 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습기 차고 냉랭한 밤공기를 쐬자, 머리 위에 짐짝이라도 올려놓은 듯한 피로가 걷잡을 수 없이 엄습했다.

그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왜 나는 이 여인을 붙잡았던가? 분명히 이 여자는 어딘가 이상하다. 그러나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좀 이상한 여자라면 지금까지 얼마든지 보아 왔다. 더욱이 한밤중의 파리 같은 곳에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두서너 시간 잠만 푹 잘 수 있다면 족했다.

"집으로 가시오. 이런 시간에 거리에서 뭘 하겠단 말이오? 성가신 일이나 생길 뿐이지."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외투 깃을 세우고 그만 가려고 돌아섰으나, 여인은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라비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집으로요?" 하고 여인이 반문했다.

 

라비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집이건, 하숙이건, 호텔이건, 여하튼 아무 데로든 가시오. 설마 경찰에 붙잡히고 싶진 않겠지요?"

"호텔로요? 맙소사!" 하고 여인이 말했다.

 

라비크는 멈칫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이 또 한 명 있군.' 그는 생각했다. '이 쯤되면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언제나 같은 수작이다. 이 여자들은 밤이 되면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면 남들이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는 것이다. 아침이 되면 갈 곳을 알게 된다. 밤과 더불어 왔다가 밤과 함께 사라지는, 흔하고 값싼 어둠의 절망이다.' 이런 것쯤이야 이제 그도 진저리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수작이 아닌가!

"갑시다, 어쨌든.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합시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술을 마신 후에 돈을 치러 주고 가면 그만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스스로 알고 있을 테지.'

 

여인은 휘청거리며 걷기 시작했으나 발을 헛디뎠다. 라비크는 그녀의 팔을 다시 잡았다.

"피곤하오?"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런가 봐요."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 오는 게 아니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소, 어쨌든 갑시다. 내가 부축해 주리다."

 

둘은 마르세이유 가(街)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여자가 자기에게 의지하려 하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쓰러지려 하다가 몸을 가누어야 하겠다는 듯 그에게 의지해 왔다.

 

그들은 피에르 드 푸로시엘 드 세르비 가(街)를 건넜다. 세요 가의 네거리 저쪽으로 길이 트이고 멀리 비를 머금은 하늘 아래 우뚝 솟은 거대한 개선문(凱旋門)의 시커먼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라비크는 불을 밝힌 비좁은 어느 지하실 입구를 가리켰다.

"여기요. 여기서는 아직도 뭘 팔고 있을 거요."

그 곳은 운전사들이 모이는 바였다. 택시 운전사 둘과 매춘부 둘이 앉아 있었다. 운전사들은 트럼프를 치고 있었고 매춘부들은 압생트 주(酒)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들은 새로 들어선 이 여인을 잽싸게 훑어보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나이 많은 매춘부는 큰 소리로 하품을 했다. 하나는 귀찮은 듯 아무렇게나 화장을 시작했고 안쪽에서는 게으른 쥐새끼 같이 생긴 웨이터 하나가 톱밥을 뿌리고 마룻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라비크는 여자와 출입구 가까운 테이블에 앉았다. 그 편이 좋았다. 쉽게 도망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외투도 벗지 않았다.

"뭘로 하겠소?"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아무 거나요."

"칼바도스 두 잔." 하고 라비크는 조끼를 입고 소매를 걷어붙인 웨이터에게 일렀다.(후략)

요점 정리

작가 : 레마르크(Remarque, Erich Maria, 1898∼1970)

갈래 : 장편 소설

성격 : 비판적, 비극적

구성 : 시간의 역전적 구성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의 프랑스 파리

제재 :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힌 망명자들의 삶

주제 : 전쟁의 암울한 비극과 주인공들의 비극적 사랑

줄거리 : 제2차 세계 대전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파리는 어수선하였다. 개선문의 검고 거대한 모습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이는 몽마르트의 싸구려 호텔 '앙테르나쇼날'에는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망명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망명자들 중 한 사람이 외과 의사인 라비크였다.

라비크는 반 나치스의 혐의 때문에 도망해 여권 없이 프랑스에 불법 입국해 파리의 유명한 의사를 도와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그는 개선문에 가까운 밤 깊은 센 강 위에서 여가수 조안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의 하숙을 구해주고 캬바레의 가수 자리를 찾아 준다. 이렇게 친절한 라비크를 향해 조안은 연정을 품기 시작했다.

라비크는 어느 날 아침 인부가 불의의 사고로 부상당한 것을 응급 처치를 취해 주다 불법 입국한 사실이 탄로난다. 그는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되지만 3개월 뒤에 다시금 파리에 잠입해 조안과 만난다. 어느 날 라비크는 독일에서 그를 고문하고, 애인 시빌을 자살케 한 게슈타포인 하케와 만나게 되고 그를 유도하여 교외에 있는 숲으로 유인해 그를 살해한다. 조안은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동거하다 그 사나이가 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히틀러의 군대가 폴란드에 침입하고 세계 대전이 터지자, 불법 입국자에 대한 검문이 시작되고 라비크는 체포되어 정부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트럭에 실려 가는 라비크는 담배를 찾아보았지만 한 개비도 없었다. 주위는 너무 어두워서 개선문조차 볼 수 없었다.

출전 : [개선문(凱旋門)](1946)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운(戰雲)이 감도는 파리의 하늘 아래서 거대한 개선문을 배경으로 한 채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쫓기는 인간상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망명자인 라비크와 혼혈 여인인 조앙 마두의 사랑이 아름답게 곁들여져 있다.

 

실력 있고 촉망받던 젊은 의사 라비크가 나치즘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애인을 잃고 남의 나라를 떠돌며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소설의 줄거리는 이 작품이 휴머니즘에 입각한 반전(反戰) 사상을 기본적인 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겉으로 냉정해 보이는 라비크의 이면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휴머니즘, 그리고 양심과 정의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전쟁을 배격하고 인간의 투쟁적인 삶을 경멸하는 주인공이 불행을 겪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전쟁의 파괴적인 속성과 무용(無用)함을 매우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심화 자료

작품의 아우트 라인

제2차 대전 전야의 파리에는, 여권을 가지지 않은 불법 입국자들이 모여 들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주인공 라비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나찌스의 강제 수용소를 탈출하여 불법 입국한 독일인 외과의(外科醫)이지만, 지금은 무능한 병원장에게 고용되어, 무면허 수술을 해 주면서 생계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가 사는 보람은, 그를 체포하여 고문하고, 그의 애인을 학살한 게쉬타포인하케에게 복수하는 것뿐이었다. 어는 날 밤에 그는, 세느 강에 몸을 던지려고 한 여우(女優) 죠안나를 구출 한다. 두 사람은 곧 사랑하게 되지만, 라비크는 사람 눈을 피해 사는 처지와, 과거에 입은 상처로 해서, 죠안나의 뜨거운 사랑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망이 없는 그러니 만큼 격렬한 사랑에 두 사람은 빠져든다. 어느날 , 인명을 구조하였기 때문에 불법 입국 이 탄로난 라비크는, 드디어 원수 하케를 찾을 기회를 가져, 그를 브로뉴의 숲으로 꼬여내 그를 살해하고 복수를 한다. 한편, 라비크의 부재중에, 고독에 못이겨 젊은 배우와 동서하고 있었던 죠안나는, 라비크의 일로 해서 그 사내의 질투를 사 권총으로 사살된다. 수술을 맡은 라비크는, 그녀가 살 수 없음을 알고 빈사의 그녀에게 진실한 사랑을 고백한다.

때마침 선전 포고의 소식이 돈다. 그날 라비크의 호텔에도 경찰의 손이 뻗쳐, 그는 다른 불법 입국자들과 함께 어디론지 끌려 간다.

주인공 하이라이트

라비크는 40살을 넘은 유능한 독일인 외과 의사이지만, 게쉬타포에 대한 복수를 유일한 목표로 삼고, 낮에는 무면허 수술이며 창녀의 검진을 하고, 밤에는 주점에서 칼바도스를 퍼 마시면서 희망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그를 무의식적으로나마, 시니컬한 찰라주의자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죠안나를 사랑하면서도,겉으로는 항상 차갑게 그녀를 대하고 그녀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한다. 죠안나는 그러한 그에게 더욱 마음이 끌려, 미치도록 그를 사랑하고 쫒아 다닌다. 사랑과 복수에 불타는 행동의 사나이 라비크에게는, 여성의 마음을 움켜 쥐고 놓아 주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작자의 생애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독일의 작가, 1898년에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고, 제 1차대전에 자원 학도 출진하였다가 부상으로 귀환하였다. 전후, 몇가지 직업에 전전하다가 스포츠 기자가 되었다. 29년에 발표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1년반 사이에 25개 국어로 번역되고, 350만부를 넘는 공전의 베스트 셀러가 되어 그를 일약 세계의 인기 작가로 만들었다. 32년에 나치가 정권을 잡자 그는 반전주의자(反戰主義者)로서 탄압을 받았고, 38년에는 국적이 박탈되고, 그의 여동생은 강제 수용소에서 학살되었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그는 39년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47년에는 미국시민권을 얻었다.

제 2차 대전 후, 미국에서 발표한 제5작 『개선문』은 다시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상기 외에 『귀로(歸路)』『이웃을 사랑하라』『생명의 불꽃』『사랑할 때와 죽을 때』『검은 보벨리스크』『리스본의 밤』등이 있다. 1970년에 세상을 떠났다

명문구 낙수

「나는 복수를 하였고 사랑을 하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인간으로써 이 이상은 바랄 수 없는 일이다.」(『개선문』31장에서)

심화 자료

이것은 최악의 역경 속에서 힘껏 살았고, 마침내 마음의 동요가 가라앉고, 무엇인가가 제대로 정돈 되었다고 느꼈을 때의 주인공 라비크(=작자)의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온 감회일 것이다.

『개선문』은 200만부 이상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주인공 라비크와 죠안나가 즐겨 마시던 칼바도스(사과로 만든 부란디)도 세계적으로 유행하였다. 샤르르 바이에와 잉글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도 호평을 받았다.-출처 : 세계문학의 명작과 주인공 총해설에서 - 소봉파편- (일신사간)

레마르크의 작품 세계 - 20세기의 절망적 분위기를 그린 걸작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는 1898년 6월 22일,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튁 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제본업자였으며, 그 조상은 프랑스 혁명 때 독일로 이주해 온 집안이다. 1916년, 뮌스터 대학 재학 중이던 그는 18세의 나이로 제 1 차 세계대전의 전장에 끌려 나갔다. 다섯 번이나 부상을 입고도 살아남아서, 전쟁 후에 귀환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의 국민학교 교사, 회사원, 장사 등을 해 오다가 베를린으로 나와서 <스포츠 화보>의 편집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1918년 이후, <미(美)>, <스포츠 화보> 등 하찮은 잡지에 사회 소설, 스포츠 소설, 콩트 등을 썼으나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전쟁 후의 전형적인 저널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10년 동안 이런 저널리스트 생활을 보낸 후, 1929년에 《서부전선 이상 없다》(Im Westen nichts Neues)를 발표하여,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소설은 발표 즉시 25개 국어로 번역되고, 1년 반 사이에 350만 부가 팔렸으며, 이 소설의 반향은 이윽고 정치적인 논쟁으로까지 발전하여, 작품의 상연, 상영을 둘러싸고 갖가지 소동이 벌어졌다. 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병사 파울 보이머와 그 전우들의 삶과 죽음을 그린 이 전쟁 소설은, 비할 데 없는 진실의 기록 문학이라고 격찬을 받는가 하면, 혹은 전쟁으로 침식당한 세대의 증오감을 일면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부정당하기도 했다. 이 소설 자체는 전쟁을 정면적으로 고발한 것은 아니지만, 19세의 병사 보이머와 그 전우들은 죽음이라는 엄숙한 문제를 군대어와 속어로 서로 이야기하며, 전쟁의 비참상에 대한 소박하고도 단순한 항의를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흔히 이 소설을 반전 소설이라고 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물론 반전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레마르크가 이 소설을 쓴 시기에는 사상적으로 반전 작가였다고 볼 수는 없다. 레마르크의 참다운 의도는 나찌의 비인간적인 잔학성에 대한 정신적인 혐오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그 후의 작품에 명료하고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레마르크의 작품에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마지막 작품인 《그늘진 낙원》까지를 일관해서 읽으면, 제 1 차 세계대전에서 제 2 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까지의 유럽의 정치, 사상, 전쟁을 통한 인간의 역사가 훌륭하게 부각되어 있다.

1931년에 발표된 제2작 《귀로》도 24개 국어로 번역되고, 크게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젊은 병사들이 패전으로 고향에 귀환하여, 실의와 좌절의 나날 속에서 전쟁으로 인한 심신의 깊은 상처를 안고서도 어떻게든지 살아나가려고 하는 노력을 르포르타지의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데모, 폭동, 사회적인 불안, 암거래의 성행, 출정중인 아내의 부정, 불황, 살인 등의 황폐한 풍토 속에서 어떤 자는 목숨을 잃고, 어떤 자는 절망하고, 어떤 자는 희미하나마 한 가닥의 광명을 찾아낸다는 줄거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레마르크의 새로운 삶에 대한 절실한 소망은 헛된 꿈이 되고 만다. 1933년 1월에 나찌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모든 반대파와 유태인에 대한 무서운 탄압이 시작되고, 독일은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레마르크는 나찌가 정권을 잡기 직전의 혼란한 독일을 피하여, 1932년에 이미 스위스에 이주해 있었다. 문학에 대한 나찌의 탄압은 1933년에 제 1 차 분서로 시작되었다. 레마르크의 작품도 물론 분서의 대상이 되었다. 레마르크에 대한 탄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1938년에는 그의 국적을 박탈당했다. 신변의 위협을느낀 레마르크는 다음해 1939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로 인하여 제3작 《세 전우》(Drei Kameraden)는 1937년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이것은 전후의 실업과 혼란과 공황이 난무하는 베를린에서 공동으로 자동차 수리공장을 경영하는 세 전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우정과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이다. 전우의 한 사람은 길거리에서 원한을 사고 있던 어느 건달에게 살해당하고, 주인공의 애인은 페병으로 외롭게 죽는다. 절망적이고 허무적인 작품이다. 역시 1인칭 소설이지만 작가와 주인공의 거리가 좀 멀어져 있고, 이후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외국 작가의 영향, 특히 헤밍웨이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상의 세 작품들은 모두가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의 불안하고 혼란한 사회에서 방황하는 귀환병들의 초조와 좌절을 그리고 있으나, 제4작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에서는 히틀러 정권에서 쫓겨나온 망명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게쉬타포의 추적을 피하기 위하여,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여권도 없이 부평초처럼 방황하는 독일 피난민들의 비극과 그 이웃들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다음 작품인 《개선문》의 전편을 이루고 있으며, 레마르크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그리고 서스펜스 넘치는 작품이다. 강제 수용소나 가스실의 공포에서 탈출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국에 남겨 놓은 채 국경을 넘어서 국외로 도망한 사람들이 어디로 가든 불법입국 죄로 곧 체포되어 투옥당하고, 사정없이 국외로 추방당한다. 국경까지 관헌의 호송을 받는 그들은, 인접 국가의 국경 경비대에 사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야음을 틈타서 국경에서 국경으로 이리저리 국제적인 방황을 계속한다. 그리하여 차차 파리로, 파리의 허술한 여인숙으로 몰려든다. 호소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국제적인 방황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져 갔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러나 어떠한 불안이나 절망도 인간의 영혼을 말살시키지는 못한다. 허위와 냉혹의 세계로 버림받은 고독한 사람들은, 고독과 불안으로 인해 서로 굳은 동지애로 결합된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젊은 케른과 루트는 청순하고 열려한 사랑으로 결합되어, 서로의 생명을 감싸면서 정처없는 방황을 견뎌 나간다. 나이가 많은 망명자들은 자신들의 불행을 잊고,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이 두사람의 사랑을 감싼다. 냉혹, 무정, 위선, 이러한 모든 인간악의 사회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동정이나 성실은 실로 구슬처럼 아름답다. 레마르크는 이 불행한 방황자들이 비극을 리얼하게 그려 내면서 그 속에 이러한 구슬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1946년에 제4작으로 발표된 《개선문》(Arc de Triomphe)은 레마르크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의 후편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은 나찌의 강제 수용소를 탈출하여 파리에 불법입국한 40대의 외과 의사 라빅이다. 라빅이란, 옛날에 베를린의 유명한 종합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루드비히 프레젠부르크의 가명이다. 지금은 한 개인 병원에 고용되어, 마취된 환자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나타나서 수술을 하고는, 환자가 깨기 전에 사라지는 유령 외과 의사이며, 고급 유곽의 창녀들을 검진하는 일도 대신 맡고 있다.

그에게는 인간이란 메스 아래 누워 있는 하나의 육체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찰나적이고 시니컬한 인생관의 밑바닥에는, 20여 년 전에 전쟁에서 입은 영혼의 상처가 어두운 동공처럼 얼어붙어 있다. 이 허무적인 동공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게쉬타포의 지하실에서 그를 고문하고, 애인 시빌을 참혹하게 다루어 죽게 만든 하아케에 대한 복수심이다.

미국 국적을 가진, 부유하고 아름답고 총명한 케이트 헤그슈트룀은 라빅을 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그를 피렌체의 자기 어머니 집으로 함께 가자고 하고, 암흑 세계인 유럽을 피해서 미국으로 함께 가자고도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케이트의 육체에는 그녀의 생명을 좀먹고 있는 불치의 병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라빅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늦은 밤, 다리 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조앙 마두는 훌훌 단신의 의지할 데 없는 고독한 배우이다. 순정적인 정열로 라빅을 사랑하면서도, 엄습해 오는 불안을 견뎌낼 수가 없어서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관능의 방황을 계속한다. 라빅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방황하는 그녀의 영혼에서 안식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눈사태처럼 무너져 가고, 의지할 곳도, 버티고 설 발판도 하나하나 사라져 간다. 불빛은 꺼지고, 어둡고 끝없는 공포와 절망이 파리를, 프랑스를, 전유럽의 지평선을 내리덮는다. 신대륙으로 도망가는 20세기의 방주 노르망디 호는 죽음을 안고 있는 케이트를 태우고 유럽의 해안을 떠난다.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마지막 밧줄은 끊어지고, 유럽은 고립된 커다란 감옥이 되어 버린다.

조앙도 죽었다. 선전포고가 발포되었다. 유럽에서 피난민의 마지막 피난처였던 프랑스도, 전쟁이 일어난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더 도망쳐 다녀보아야 소용이없다. 라빅은 마지막 한때를 공원에서 보내고, 친구 모로소프에게, "전쟁이 끝나면 푸케에서 다시 만나자."고 작별 인사를 한 다음, 오텔 앵떼르나쇼날에서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프랑스 경찰의 트럭을 타고 끌려간다. 에뜨와르 광장에는 어둠만 깔려 있고, 불빛은 하나도 없다. 거대한 개선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멀리 강제 수용소의 철문이 닫히는 소리를 암시하며, 이 아름답고도 애절한 이야기는 끝난다.

1952년에 발표한 제6작 《생명의 불꽃》과 1954년에 발표한 제7작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전유럽이 시체로 뒤덮이고, 전화로 폐허가 된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나찌 독일의 파국을 그린 자매편이다. 《생명의 불꽃》은 이 역사적인 파국을 독일의 강제 수용소라는 압축된 무대에다 설정하고, 멀리 지평선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연합군의 포성을 배경으로, 수용소 내의 처절한 사투를 그리고 있다.

"죽음이 러시아에서는 아프리카와는 다른 냄새를 풍긴다"로 시작되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붕괴 직전의 러시아 전선과, 연합군 비행기의 폭격으로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가 된 독일의 도시를 무대로 하여, 그 역사적인 비극을 예술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전쟁과 게쉬타포의 공포와 폐허가 된 죽음의 거리에서, 주인공 그레버와 엘리자베트의 과거도 미래도 생각할 수 없는 찰나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생명의 불꽃》에서 주목되는 것은, 레마르크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적극적인 행동의 인간상을 창조하였다는 점이다. 사멸한 암흑의 세계 같은 강제 수용소에서 풍전등화처럼 무력한 <해골>의 수인들은 굶주림과 공포와 폭력 앞에서 하나씩하나씩 쓰러져 가면서도, 사력을 다하여 다가올 최후의 투쟁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발표한 전작품의 저류가 되어 있던 최후의 투쟁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발표한 전작품의 저류가 되어 있던 회의와 냉소의 그늘을 여기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주인공 509호의 복수도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고, 모든 수인의 투쟁의 일환이 되어 있다. <해골>들의 산송장에 다시 생명의 불꽃을 지핀 것은 생명에의 의지이다. 《생명의 불꽃》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무서운 죽음의 위협 아래에서의 동지적 결합이며, 포악에 대한 조직적인 투쟁이며, 해방을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여기에 묘사된 적극적인 행동의 인간상은, 아직은 완전하고 승리적인 인간상이 아니다. 나찌의 죽음의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는 주된 힘은 수인 자신이 아니라, 미군이기 때문이다. 509호는 쓰러지고, 미군에 의해 해방된 수용소의 언덕에서 하나 둘 떠나는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이 적적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의 앞길이 너무나 황량하고, 나찌 시대 이전의 극히 평범하면서도 행복하던 인간생활을 다시 되찾기가 참으로 험난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생명의 불꽃》의 2년 후에 발표된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는 레마르크가 훨씬 후퇴하여, 상당히 회의적인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단 하나의 희망이었더 폴만은 게쉬타포에에 체포된다. 주인공 그레버도 그가 풀어 준 포로의 총에 맞아, 실로 허망하게 죽어 간다. 여기에서는 《생명의 불꽃》에서 볼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의 인간상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이 작품을 쓸 당시의, 분할 점령 치하에 있는 절망적인 독일의 현실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1956년에 발표된 제8작 《검은 오벨리스크》는 인플레가 극심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혼란한 사회와, 나찌 정권이 수립되어 정치적인 학살이 감행되던 무렵이 배경이 되고 있으며, 주인공인 묘비석 상인 루드비히의 회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그 정치체제가 군주정치에서 의회정치로 변하기는 하였으나, 경제적으로는 극도의 혼란을 면할 수 없어서, 1922년에는 역사상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인플레가 절정에 다다라 있었다. 레마르크는 이러한 독일의 경제 위기를 시민생활을 통해 날카롭게 파헤치고, 그 배후의 정치적인 움직임까지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나찌의 등장에 단편적인 역할을 한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 부패하지 않고 살아 나가는 일군의 지식인들의 무력함을 묘사하고, 정신병원을 무대로 하여 부조리의 세계를 신비적인 문체로 파헤치고 있다. 주인공인 묘비석 상인 루드비히와 게로르크 크롬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지나칠 정도로 독일, 특히 프로이센의 정신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묘비석상에 상징처럼 서 있는 검은 오벨리스크는, 원래 그리스도교가 아닌 이교도의 묘비로서, 어떤 새로운 인간상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은 레마르크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인간의 문제, 종교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검은 오벨리스크》에 이어, 갚은 해에 제9작 《종착역》이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베를린을 무대로 하여 나찌 정권의 붕괴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레마르크는 나찌 정권의 폭행,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의 불안과 비참상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다시 한번 인간성과 정의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다.

1961년의 제10작 《하늘은 총아를 모른다》에 이어 1963년에 만년의 대표작인 제11작 《리스본의 밤》이 발표되었다. 이것은 1933년에서 1942년에 이르는 9년 동안에 걸친 망명객의 수난사이다. 무대는 독일의 오스나브뤽에서 오스트리아, 스의스의 쮜리히, 프랑스의 빠리와 마르세이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이어진다. 9년에 걸친 주인공 슈바르츠의 망명 생활, 아내 헬렌과의 애정 문제, 몇번이나 사선(死線)을 넘는 국적인 탈출 등이 담담한 이야기체로 전개된다. 독일의 강제 수용소에서 파리로 탈출해 온 슈바르츠는 위조 여권을 입수하지만, 친위대 대장인 처남의 밀고로 다시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다. 이곳에서 탈출한 그는 계속 처남의 추격을 받으면서도 아내를 구출하기 위하여 다시 독일에 잠입한다. 아내와 함께 탈출에 성공한 그는 파리를 거쳐 리스본으로 망명한다. 인간의 사랑이 강조되고 있다.

레마르크가 사망한 9개월 후인 1970년 6월에 그의 유작 《그늘진 낙원》이 발견되어,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1971년 7월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레마르크가 미국에 망명한 1939년 이후의 체험을 1인칭 수기 형식으로 담담하게 그린 것이다. 유럽에서 겪었던 소름끼치는 과거의 그림자, 도저히 가시지 않는 그 악몽의 그림자를 안고, 소위 약속의 땅 미국에서 주인공 로버어트 로스와 망명객들이 엮어내는 사랑과 희망, 갈등과 좌절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레마르크는 1929년에 처녀작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표한 후 40여년의 작가 생활 중에 12편의 소설을 남겼다. 레마르크처럼 널리 알려진 작가로서 이렇게 작품이 적은 경우도 드물다. 그리고 많지 않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우처럼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나라에서 많이 읽히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그의 작품이 그렇게 광범위한 국제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데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그의 작품의 테마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그려내는 그의 문학적 표현양식이다. "레마르크는 물론 소설가로서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는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우연적인 작가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문학적 표현의 양식보다는, 오히려 테마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정곡을 찌른 말이라 할 수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나 신변 소설적인 사건은 그의 소설의 테마가 되지 못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전후한 혼란, 나찌의 전체주의적 독재, 즉 게쉬타포의 공포, 그 결과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 등이 그의 소설의 테마가 되어 있다.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의 공포 정치는 세계사가 크게 전환하는 분기점에 서 있는 20세기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데, 레마르크는 이 두 가지의 공포 아래에서 고뇌하는 수많은 무명인의 운명을 한 시대의 역사적 비극으로 설정하고, 이것을 역사적인 넓은 시야에 서서 개개인의 운명을 감상하지 않고, 세계사적 테마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레마르크는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그것을 간단 명료하고 직설적인 형태로 환원해 버린다. 그리고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아주 교묘한 소설적 구성과 사실적인 묘사에 넘쳐흐르는 서정적 감상을 섞어서 평이하고 이해하기 쉬운 명쾌한 문체로 그려 나간다. 이 두 가지 요인이 레마르크로 하여금 세계적인 작가의 위치를 얻게 한 것이다.

레마르크는 독일서 태어나서 독일에서 자랐지만 그를 독일의 작가라고 부르기엔 좀 어색한 점이 있다. 나찌에 쫓겨 미국에 귀화했지만, 만년에는 스위스에서 살았다. 이와 같이 그의 경우 국적 따위는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에게는 국경이나 국적은 19세기 유물이며, 20세기의 본질은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이다. 이것은 이전에는 일부 지식인의 사변적 관념이었으나, 지금은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세계고(世界苦)>이다. 레마르크는 이 20세기의 <세계고>의 작가이다.(출처 :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