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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오딧세이 1 / 호메로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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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딧세이 1 / 호메로스

무수한 도시의 약탈자

 

오뒤세우스가 지휘하는 열두 척의 배가 검은 함대와 헤어진 직후 동남풍 덕분에 오뒤세우스의 배들은 트라카아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뒤세우스의 배들이 닿은 곳은 이스라모스라는 도시 근처였다. 이스라모스는 바닷가 산기슭에 있는 도시였다.

트리키아는 트로이아 전쟁중에 트로이아를 편들던 나라였다. 오뒤세우스의 부하들이 트라키아에 상륙한다는 것은 적의 나라에 상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뒤세우스의 부하들은 상륙하자마자 이스라모스 성을 차지하고 마을을 약탈했다. 그러나 거룩한 월계수 숲 속에 있는 마론의 집안은 털지 않았다. 마론은 아폴론 신의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었다. 오뒤세우스는 마론은 물론이고 마론의 처자식까지 보호해 주기로 마음먹고는 부하들에게 거룩한 숲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말라고 명령했다. 마론은 오뒤세우스의 이러한 특별 대우를 고맙게 여겼다.

굉장한 부자였던 그는 헤어질 때가 되자 오뒤세우스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금덩어리, 여러 가지 술을 섞는 데 쓰이는 큰 은그릇, 포도주가 가득가득 든 열두 개의 거대한 진흙 항아리가 바로 그 선물이었다. 포도주는 술을 섞는 그릇에 물을 열두 배나 부어서 섞어야 할 만큼 독했다.

약탈을 끝내고 약탈한 물건들을 옮긴 뒤에도 오뒤세우스의 부하들은 그 날 밤에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털어온 포도주도 넉넉하게 있었고, 가까이에는 살진 가축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닷가에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었다. 그럴 즈음, 마을 사람들 몇몇이 살며시 마을을 빠져 나와 가까운 다른 마을이나 외딴집을 찾아다니며 이스라모스가 깡그리 털린 사실을 알렸다. 사람들은 벽장에 숨겨두었던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는 어둠 속에서 소리없이 모여들었다. 새벽녘이 되자 그들은 해변에 있는 그리스 군을 공격했다.

그리스 병사들은 밤새 어찌나 먹고 마셨던지 정신을 가누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리스 병사들은 싸움보다는 배가 있는 쪽으로 도망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마침내 그들은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잃고 해변에 쓰러져 있는 동료가 70명이 넘었다. 그들은 전사자들을 남겨 놓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이 찬 배의 돛이 바람에 부풀었다. 무시무시한 폭풍이었다. 그들은 아흐레 밤과 아흐레 낮 동안이나 그 바람에 실려 향해하다가 열흘째 되는 날에야 피난처를 찾아내고는, 초록빛의 아름다운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닷가 모래밭에다 대었다. 폭풍은 어느 새 가라앉아 있었다. 그들은 그 섬에 상륙해, 고사리와 이끼 사이로 솟아오르는 샘물을 물통 가득히 채웠다. 오뒤세우스는 부하 셋을 보내어 혹시 섬에 사람이 사는지 둘러보게 했다. 섬사람들과 잘 사귀면 먹을 것은 물론 향해에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 부하들의 안부가 몹시 궁금했던 오뒤세우스는 부하 둘을 더 뽑아 창으로 무장을 시켜서 사라진 세 부하들을 찾으러 나섰다.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온순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일을 잊고 행복한 꿈에 잠긴 채 오직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그늘에서 현재만을 즐기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었다.

오뒤세우스는 마침내 세 부하를 찾아내었다. 그러나 섬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세 부하는 하나같이 뻥 뚫린 듯한 눈빛을 하고는 행복한 듯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 가고 싶다는 의욕은 잃은 지 오래였다. 오뒤세우스는 그제서야 그 섬이 어떤 섬인가를, 부하들도 연꽃의 열매를 먹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름을 불렀지만 소용 없었다.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 소용 없었다.

오뒤세우스는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이 흐느적거리는 해파리 같은 것들아!"

오뒤세우스는 데[리고 간 부하 둘과 함께 우격다짐으로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는 창자루로 두둘겨 간신히 배 있는 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오뒤세우스는 세[ 부하의 손과 발을 묶었다. 세 부하는 발버둥을 치기는커녕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오뒤세우스는 세 부하를 끌고 와 갑판에다 내굴리고는 닻을 올리라고 명령했다. 오뒤세오스 일행의 배는 다시 난바다로 나왔다.

외눈박이 거인

바다에서 이레를 더 보낸 뒤, 오뒤세우스 일행을 태운 배들은 험한 바위섬에 이르렀다. 바위섬 깊숙한 곳에는 바다로 터진, 후미진 해안이 있었다. 그 어귀에도 조그만 섬이 하나 떠 있었다. 산양의 발자국 이외의 어떤 동물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듯한 작고 아름다운 섬이었다. 일행은 배를 섬 쪽에다 붙여 정박시키고 술과 고기로 잔치를 벌였다. 술은 물론 아폴론 신의 제사를 도맡는 마론이 선사한 그 포도주였다. 후미진 해안이라 파도가 잔잔해서 밤을 지내기에 참 좋았다. 조그만 섬이 난바다의 파도를 막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오뒤세우스는 그 후미진 해안에 다른 배는 그대루 두고, 자기 배에다 만일을 경우에 대비해서 마론으로부터 선사받은 술 항아리 하나를 싣고는 가장 큰 섬으로 들어갔다. 오뒤세우스가 그 섬을 탐험하기로 한 것은 멀리 불빛도 보인 것 같고, 희미하기는 하지만 매애애, 하는 양 울음소리도 들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뒤세우스는, 연꽃 열매를 먹는 사람들의 섬에서처럼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위험한 사람들인지 아닌지 몸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뒤세우스는 재빨리 배를 후미진 바다를 건너 닻을 내리고는 열두 명의 부하를 선발해서 상륙했다. 산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동굴 하나가 나타났다.동굴의 높은 입구 입구 위에는 월계수 가지가 늘어뜨려져 있었다. 그리고 입구 주위에는 큰 돌을 쌓아 만든 가축 우리 같은 것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몇 개의 우리에는 새끼 양이나 새끼 염소가 가득가득 들어 있었다. 하지만 다 자란 가축이나 양치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뒤세우스 일행은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치즈가 가득 든 몇 개의 바구니, 우유가 넘칠 것 같은 들통, 치즈 만드는 과정에서 엉긴 우유를 걸러 내고 남은 물이 든 통이 보였다.

바깥 우리에서 새끼 양과 새끼 염소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을 뿐, 동굴 안에는 동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뱃사람들은 치즈를 퍼담고, 되도록 많은 새끼 염소르 몰고 배로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오뒤세우스는 동굴 주인의 모습을 본 뒤에야 동굴을 떠나고 싶어했다. 시장했던 그들은 치즈를 조금 먹고는 동울 후미진 데 숨어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해질녘이 되자 짐승들이 요란하게 우는 소리,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 왔다. 곧 시커먼 그리마가 동굴 입구를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여느 사람보다 엄청나게 큰, 괴물 같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마 한가운데에 둥글고 무시무시한 눈이 하나만 박힌 외눈박이였다. 그리스 병사들은 그제서야 저희들이 퀴클롭스(외눈박이)의 섬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들은 양을 치면서 동굴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았다. 외눈박이의 땅에는 밀이나 포도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눈박이 거인은 불을 피우려고 주워온 거대한 나뭇단을 내려놓았다. 나뭇단을 내려놓은 거인은, 숫양은 모두 바깥에 우리에다 남겨 놓고 새끼 염소, 암양, 암염소만 안으로 몰아 들이고는 동굴 입구를 크고 평평한 바위로 막았다. 말 스물도 필로 끌어도 끄떡도 하지 않을 듯한 바위였다. 그런 다음에는 암양과 암염소의 젖을 짠 뒤, 새끼들은 어미에게 붙여 각기 제 어미의 젖을 빨게 했다. 짠 젖은 마시거나 치즈를 만들기 위해 들통에도 채워 두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동안 그리스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채 동굴 후미진 곳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숨어 있었다. 하지만 어둠이 언제까지 그들을 지켜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외눈박이가 모닥불을 피우자 불길이 오르면서 비친 붉은 빛줄기에, 동굴의 후미진 곳에 숨어 있는 그들이 모습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을 본 외눈박이 거인이 소리쳤다. 흡사 파도에 쓸린 해변에서 돌들이 덜그덕덜그덕 마주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침입자로군! 이 넓고 넓은 바다에서 왜 하필이면 이 곳으로 숨어 들었어? 너희들, 장사꾼들이야? 다른 뱃사람들의 물건이나 터는 해적들이냐?"

오뒤세우스가 대답했다.

"우리는 그리스 사람이오. 오랫동안 트로이아를 공격한 아가멤논 장군 부대의 군사들이오. 트로이아는 함락되었소.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오. 그런데 바람과 물결이 우리를 낯선 바다로 데려다 놓고 말았소. 그래서 우리는,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신의 이름으로, 지친 나그네를 한 지붕 밑으로 맞아들이는 당신의 친절과 호의를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이 곳으로 온 것이오."

그러나 사실 오뒤세우스는 그런 데서 친절과 호의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거인이 말했다.

"너는 신들의 아버지 어쩌고 한다만, 우리 외눈박이 퀴클롭스들은 제우스는 물론이고, 포세이돈을 제외한 다른 신들 알기를 우습게 안다. 우리가 포세이돈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신 데다 가장 힘이 센 신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만 섬기면 뒬 뿐, 다른 신은 섬길 필요가 없다."

거인은 목젖이 떨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웅크리고 있던 뱃사람 둘을 집어 들고는 땅바닥에다 패대기 쳤다. 뱃사람들의 골수가 쏟아져 나왔다. 공포에 질린 오뒤세우스 일행의 눈앞에서 외눈박이 거인은 뱃사람들의 다리를 잡아 찢어 사자가 사냥감을 먹듯이 게걸스럽게 먹고는 양젖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런 다음에는 잠을 자려는지, 웅크리고 누운 양 떼 사이에 벌렁 드러누웠다.

거인이 잠들자마자 오뒤세우스는 칼을 뽑아 들고 거인에게 다가섰다. 그는 칼끝을 거인의 갈비뼈 사이에다 겨누었다. 갈비뼈 사이를 찌르면 칼끝은 거인의 간을 꿰뚫어 버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오뒤세우스는 거인이 죽어 버리면 그 동굴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행의 힘으로는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를 치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칼을 칼집에도 꽂고 일행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 앉자 일생은 왜 죽이지 않느냐고 묻는 듯한 얼굴을 했다.

아침이 오자 거인은 뱃사람 둘을 더 먹어 치운 다음 양젖과 염소젖을 짜고는, 어미들은 밖으로 내몰고 새끼들은 다시 입구의 우리에도 몰아 넣었다. 그리고는 그 거대한 바위를 들어 화살통 뚜껑이라도 닫는 듯이 가볍게 입구를 막고는 양떼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스 병사들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오뒤세우스의 머리속에는 한 가지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 계획대로만 되면 적어도 몇 명은 살아나갈 수 있을 터였다.

동굴 속에는 거인이 남기고 간 지팡이가 있었다. 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푸른 기가 도는 올리브 나무 둥치로 만든 지팡이로, 흡사 배의 돛대 간아 보였다. 오뒤세우스는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이 거대한 지팡이를 사람의 키만한 높이로 자른 다음, 부하들에게 껍질 부분을 깎아서 창자루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게 했다. 오뒤세우스는 모닥불을 지펴 훨훨 타오르게 했다. 그리고는 손수 올리브 나무 지팡이를 받아 한쪽 끝을 뾰족하게 깎고는 불 속에다 집어넣어 끝부분이 딱딱해질 때까지 구웠다. 지팡이 끝이 어느 정도 딱딱해지자 끄집어 내서, 동굴 벽 앞에 있는 양의 똥무더기 밑에다 감추었다. 어뒤세우스는 섬에 상륙할 때 들고 올라온 마론의 독한 포도주 한 항아리를 외눈박이 거인의 옻나무 그릇에 가득 부어 두었다. 물 한 방울 타지 않은 독하디 독한 포도주였다.

해질녘이 되자 거인이 돌아왔다. 전날 밤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다른 것이 있다면 거인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동굴 속이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어미, 새끼할 것 없이 짐승을 모두 동굴속으로 데리고 들어온 점이었다.

거인이 무시무시한 저녁 식사를 끝마치자 오뒤세우스가 노예처럼 공손하게 말했다.

"사람의 살을 드신 뒤에 입가심으로는 양젖보다 이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거인은 포도주를 받아 마시고는 맛이 있었던지 입맛을 다시고는 한 그릇 더 달라고 했다. 세 그릇을 마셨는데도 그는 더 달라고 졸랐다. 매우 기분이 좋아진 그는 그처럼 맛있는 술을 받아 마신 만큼 자기도 선물 한 가지를 주고 싶다면서 오뒤세우스에게 물었다.

"먼저 너의 이름을 가르쳐 다오. 내가 친절하게 굴자면 이름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내 이름은 <우티카>라고 합니다."

말장난을 잘 하는 오뒤세우스였다. <우티카>라는 말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외눈박이 거인이 껄껄걸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네 동료들을 모두 먹고 난 다음에 <우티카>너를 먹겠다. 맨 나중에 먹어 주는 것, 이것이 너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다."

외눈박이는 여전히 웃으면서, 머리카락이 그을리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모닥불 가까이 다가가 벌렁 나자빠지더니 그대로 코를 골았다.

오뒤세우스는 깍아서 감추어 두었던 거인의 지팡이를 꺼내어 뾰족한 끝을 모닥불의 불길 속에 다 넣었다. 나머지 병사들(남은 병사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은 모닥불을 둘러싼 채 기다렸다. 이윽고 거인의 지팡이 끝이 빨갛게 되자 그들은 여럿이서 이것을 들고는 있는 힘을 다해 거인의 외눈에다 찔러 넣었다. 오뒤세우스는 송곳으로 나무에 구멍이라도 뚫듯이 지팡이를 잡아 돌렸다. 거대한 눈앞에서 소리가 났다. 흡사 새빨갛게 달아오른 쇠붙이를 담금질하느라고 찬물에다 집어넣었을 때 나는 것과 비슷한 소리였다. 거인은 외마다 소리를 내지르며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피가 펑펑 쏟아지는 눈알에서, 그때까지도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지팡이를 뽑아낸 거인은 소리를 질러 근처의 동굴에 사는 동료 외눈박이 거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거인들이 몰려 나왔다. 그들은 바위가 여전히 동굴을 막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폴뤼페모스, 누가 너를 해친다는 것이냐? 대체 누가 해치길래 이렇게 소리를 질러 우리들의 단잠을 깨우는 것이냐?"

그러자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가 외쳤다.

"우티카가 나를 해치고 있다. 우티카가 속임수를 써서 나를 죽이고 있다.!"

<우티카>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 말에서 <우티카가 나를 해치고 있다>고 하면<아무도 나를 해치고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외눈박이 거인은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다, 아무도 속임수를 써서 나를 죽이고 있지 않다>고 대답한 셈이다.

바깥에 있던 거인 중 하나가 소리쳤다.

"아무도 너를 해치고 있지 않다면 너를 도와 줄 필요도 없겠구나. 어디가 아프거든 우리 아버지 포세이돈께 기도해라. 그러면 도와 주실 게다."

외눈박이 거인들의 투덜대는 소리가 동굴 입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장님이 되어 버린 외눈박이 거인은 고통으로 울부짖으면서,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동굴 입구로 다가가 바위 문을 한쪽으로 치웠다. 상처가 너무 아팠던 나머지 시원한 밤바람이라도 좀 쐬면 나을까 해서였다. 그는 동굴 입구에 주저앉아 두 팔을 벌려 동굴 입구를 막았다. 오뒤세우스 일행이 동굴에서 도망이라도 치다가 그 팔에 걸리면 다시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뒤세우스에게는 그럴 경우에 대비해서 새워둔 계획이 있었다. 동굴의 가장 후미진 곳에서 그는 가장 큰 숫양들을 골라냈다. 그는 외눈박이 거인의 침대에서 축 늘어져 있는 실버들 가지를 끊어내 숫양을 세 마리씩 붙잡아 매고는 맨 가운데 양의 배에다 뱃사람을 하나씩 동여매었다. 그는 숫양 중에서도 가장 크고 힘센 숫양을 골라 이번에는 자신이 그 배에 딱 붙어 부얼부얼한 양털을 두 손으로 힘있게 움켜잡았다.

새벽이 희붐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양 떼와 염소 떼는 일제히, 외눈박이 거인이 두 팔을 벌려 막고 서 있는 입구 달려나갔다. 거인은 양과 염소가 나갈 때마다 한 마리씩 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오뒤세우스 일행이 양의 배 밑에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오뒤세우스를 배에다 매단, 무리 중에서도 가장 크고 힘센 양이 지나가자 거인은 그 양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하소연했다.

"내 사랑하는 집승아, 무리 중에서도 가장 늠름한고 아름다운 녀석아, 여느 때는 맨 먼저 나오더니 왜 오늘은 왜 맨 마지막으로 나오느냐? 너의 주인은 <우티카>라는 놈의 손에 장님이 되어 더 이상 너의 그 늠름한 자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 이주인의 불행이 너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바람에 이렇게 늦게 나오는 것이야?"

오뒤세우스 일행이 마침내 동굴 밖으로 나왔다. 양우리를 지나 편편한 풀밭에 이르자 오뒤세우스는 양의 배 밑에 묶여 있던 부하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일행은 양 떼를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배 쪽으로 몰았다.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는 소리를 지르면서 두 팔을 내저었다.

배에 남아 있던 선원들은 일행이 풀려난 것을 보고는 좋아했지만 곧 여섯 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거인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뒤세우스는 몰고 온 양 떼를 모두 배에다 싣게 하고는, 다른 배들을 기다리고 있는 작은 섬을 향하여 닻을 올리라고 명령했다. 오뒤세우스는 절벽 위에서 비틀거리며 서 있는 외눈박이 거인을 놀려 주려고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입가에다 대고는 양 울음소리를 흉내내었다. 그것은 오뒤세우스의 실수였다.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머리 끝가지 난 거인은 절벽 위의 바위를 들어 배가 있는 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바위 중 하나가 배 바로 앞에 떨어졌다. 거대한 파도가 일면서 배가 섬 쪽으로 뒷걸음질쳤다. 오뒤세우스는 긴 삿대로 바위를 떠밀었고 부하들은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어 배를 다시 난바다 쪽으로 나아가게 했다. 오뒤세우스는 동굴에서 당한 일이 뼈에 사무쳐 외눈박이 거인을 향해 이렇게 소리 쳤다.

"누가 너를 장님으로 만들었느냐고 묻거든 오뒤세우스가 그랬다고 전하라. 라에르테스의 아들인 이타카의 왕 오뒤세우스, 무수한 도시의 약탈자 오뒤세우스가 그랬다고 전하라!"

그러자 외눈박이 거인은 두 팔을 벌리고, 분노와 고통을 참지 못해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했다.

"들으소서, 머리카락이 푸른 포세이돈 신이시여. 여기에 있는 제가 정말 아버지 포세이돈 신의 아들이거든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무수한 도시의 약탈자 오뒤세우스가 제 고향 에 닿더라도 마지막에, 그것도 홀로 닫게 하소서. 그 자가 남의 나라 배에서 고향땅에 내리 는 날, 모진 고초가 그를 기다리고 있게 하소서."

기도를 마친 거인은 조금 전 보다 훨씬 큰 바위를 들어 오뒤세우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겨냥하고 힘껏 던졌다. 하지만 바위는 배 있는 곳에 미치지 못했다. 바위가 떨어지면서 일으킨 파도가 배를 휠씬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게 했을 뿐이었다. 배는 다른 배들이 기다리는 작은 섬 쪽으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바람의 신

 

오뒤세우스 일행이 다음으로 상륙한 곳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섬이었다.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높이 솟은 바위산 꼭대기의 우뚝 선 눈부신 청동 궁전에서 씩씩한 아들 여섯 형제, 아름다운 딸 여섯 자매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올로스의 아들딸들은 남매끼리 혼인하는 이집트 왕실의 풍습에 따라 다섯 쌍의 부부가 되어 살고 있었다.

아이올로스는 오뒤세우스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만 한달 동안이나 궁전에 머물게 해 주었다. 오뒤세우스는 아이올로스에게 트로이아 성을 포위하고 있을 당시의 이야기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그 때까지 겪은 모험담을 들려 주었다. 이윽고 오뒤세우스는 일행이 다시 바다로 나갈 날이 오자 아이올로스는 항해에 필요한 생활 필수품을 모두 마련해 주었다. 그는 특별히 오뒤세우스에게는 황소 한 마리의 통가죽으로 만든 가죽 하나를 주었다. 오뒤세우스 일행을 무사히 고향으로 실어가 줄 서풍만 빼고, 세상의 바람이라는 바람은 다 잡아 가둔 가죽 부대였다. 서풍을 잡아 가두지 않은 것은 그 바람이 있어야 오뒤세우스 일행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오뒤세우스는 은으로 꼰 실로 가죽 부대의 주둥이를 꼭 잡아 묶고는 노잡이들이 앉는 긴 걸상 밑에다 숨겨 두었다. 아이올로스는 오뒤세우스에게, 고향의 항구에 다다르기 전에는 절대로 그 가죽 부대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다짐을 주었다.

오뒤세우스 일행을 태운 배는 아흐레 밤 아흐레 낮을 항해했지만 노는 한 번도 저을 필요가 없었다. 서풍이 부드럽게 돛을 부풀려 주었기 때문이다. 항해가 계속될 동안 오뒤세우스는 손수 방향타를 잡고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였다. 그는 방향타 잡은 자리를 어떤 부하에게도 양보하지 않았다. 열흘째 되는 날, 드디어 일행의 눈에 고향 이타카 섬이 보였다.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오뒤세우스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눈에 익은 고향의 산을 바라보는 순간 그 동안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드디어 항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그를 곯아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오뒤세우스가 잠들어 있는 동안, 항해하면서 내내 황소 통가죽 부대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 하던 뱃사람들이 저희들끼리 말을 주고받았다.

"우리 선장이 아이올레스로부터 받은 선물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꽁꽁 숨겨 둔 거지."

"선장이 그렇게 꽁꽁 숨기고 밤낮 감시하는 걸 보면 틀림없이 금과 은이 가득 들어 있을 거야. 그게 금과 은이라면 우리도 한몫 나누어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도 선장과 함께 항해해 왔고, 고생도 선장 못지 않게 했으니까."

이런 말이 오고 갈 즈음 배는 고향 해변에 거의 다 다가와 있었다. 해변의 바위 사이에서 사람들이 피우고 있는 모닥불이 보일 정도의 거리였다.

뱃사람들은 노잡이들이 앉는 긴 걸상 밑에서 통가죽 부대를 꺼내어 은줄을 풀었다. 그러자 쉭쉭거리는 소리, 우르르 쾅쾅거리는 소리, 배폭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통가죽 부대 속에 갇혀 있던 세상의 바람이라는 바람은 모두 일제히 부대에서 빠져 나왔다. 바람은 바다와 하늘 사이의 공간을가득 채우고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열두 척의 배 위로 솟아올랐다. 그 바람은 고향에 거의 다 도착한 열두 척의 배를 산산히 흩어지게 하여 낯선 바다로 보내 버렸다.

오뒤세우스는 뱃사람들의 비명 소리, 무서운 바람소리에 잠을 깨고 나서야 일이 그렇게 된것을 알았다. 절망에 빠진 오뒤세우스는 뱃전에서 폭풍의 바다로 뛰어내려 험하디 험한 삶과 방황의 뱃길을 거기에서 끝마치고 싶어질 지경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그가 돌보아 주어야 할 뱃사람들이 있었다. 오뒤세우스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뱃사람들을 지휘해서 폭풍에 부서진 배를 몰았다.

지옥 같은 물보라 속을 여러 날 항해한 끝에 그들은 가시 아이올로스 섬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도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돌아온 것을 보면 신들이 그대들을 미워하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신들의 미움을 산 자들에게 내 집을 빌려 줄 수 없고 내 친절을 베풀 수 없다. 떠나라, 떠나되 다시는 뱃길로 내 해변에 이를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아이올로스는 그들을 쫓았다.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섬에서 쫓겨난 뒤로는 돛폭을 부풀려 줄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배는 노를 젓지 않으면 한 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느린 속도로 항해하자니 다른 육지 섬을 찾을 수도 없었다. 따라서 밤이 되어도 오를 만한 섬이 없었다. 그들은 낮이고 밤이고 교대로 노를 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레째 되는 날에야 섬이 눈에 띄었다. 오뒤세우스 일행은 그 섬으로 배를 몰아갔다. 입구 양쪽이 절벽으로 가려진 아주 안전한 항구가 나타났다. 오뒤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배를 항구 안으로 몰고 들어가 안전한 곳에다 닻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지휘하던 배만은 난 바다에 그냥 남아 있게 했다. 그가 지휘하던 배의 뱃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바람부대 연 뱃사람들이었다. 그는 그 부하들이 또 무슨 말썽을 저지를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자기가 지휘하던 있던 배를 항구 어귀의 높은 바위 기둥에 단단히 묶어 두게 했다. 그리고는 그 배의 뱃사람들을 지휘하면서 항구 밖에 머물렀다.

오뒤세우스로서는 참으로 잘 한 일이었다.

그 섬에는 밤이 어찌나 짧은지 마지막 햇살이 서쪽 하늘로 사라지자마자 벌써 먼동이 터 올랐다. 해가 뜨기 직전에 오뒤세우스는 항구 어귀에 있던 배의 뱃사람 셋을 보내어 그 섬이 어떤 섬인지 엿보게 했다.

뭍으로 오른 세 염탐꾼의 눈에 오래지 않아 마을 입구가 보였다. 동구 밖에는 나무 그늘에 가려진 샘이 있었다. 그 샘에는 머리카락이 길고 어깨가 넓은 처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세 염탐꾼은 그 처녀에게, 그 섬나라 왕은 누구이며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처녀는 웃으면서 농담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여러분이 찾는 분은 우리 아버지예요. 나를 따라 오세요. 금방 아버지 계신 곳으로 안내할테니까."

세 염탐꾼은 처녀의 뒤를 따라갔다. 마을 한가운데엔 멋대가리 없이 큰 궁전이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섬나라 왕이 세 염탐꾼에게 베푼 친절은, 저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가 한 대접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섬나라 왕은 세 염탐꾼은 보자마자 그 중의 하나를 붙잡아 궁전 기둥에다 패대기를 쳤다. 뱃사람은 머리가 부서지면서 곧 숨을 거두었다. 왕은 그 뱃사람의 시체를 저녁거리로 삼겠다고 말했다. 나머지 두 뱃사람은 가까스로 궁전을 빠져 나와 배가 있는 곳으로 죽어라고 내달았다.

섬나라의 괴물 왕은 큰 소리로 부하들을 불렀다. 곧 부하들이 달려왔다. 여느 사람들이라기보다 거인들에 가까웠다. 왕의 명령에 따라 절벽 위에 이른 거인들은 좁은 항구 어귀에 정박에 있는 향하여 커다란 바웟덩어리를 던지기 시작했다.

왕의 궁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온 두 선원은 절벽 위에서 뛰어내려, 항구 어귀에 정박해 있는 배로 헤엄쳐 오고 있었다. 배에 오르는 부하들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던 오뒤세우스는 그제서야 자기네 함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그의 귀에는 부하들의 외마디 비명 소리, 떨어져 내리는 바웟덩어리에 배가 부서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다. 그로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는 칼을 뽑아, 기둥에다 배를 묶어 두고 있는 밧줄을 자르면서 다른 배에 탄 부하들에게 그렇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고함을 질렀다.

"노를 저어라. 모든 신들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노를 저어라. 살고 싶으면 노를 저어라!"

머리 위에 죽음의 위험이 도시리고 있다는 것을 모를 노잡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된 양, 힘을 합하여 노를 저었다. 그러자 배는 가죽끈에서 풀려난 사냥개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는항구를 뒤로 하고 난바다로 미끄러져 나갔다. 노를 저으면서 그들은 죽음의 항구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 것을 기뻐할 시이도 없이, 그 항구에서 죽음을 당한 동료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오뒤세우스는 저 푸른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바다위 신 포세이돈이, 장님이 되어 버린 아들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의 기도를 들어준 것이 분명하다고 것을 알았다. 열두 척의 배 중에서 이제 남은 것은 오뒤세우스 자신이 타고 있는 배, 단 한 척뿐이었다.

마녀 키르케의 섬

 

오뒤세우스 일행은 항해를 계속하여 또 한 섬에 이르렀다. 오뒤세우스는 여기에서도, 파도가 덜 밀려드는 조용한 해변에다 배를 대게 했다. 이틀 밤낮 동안 오뒤세우스와 뱃사람들은 하는 일없이 가까운 해변에서 쉬었다. 무서운 모험과 험한 뱃길에 지친 나머지 도무지 다른 일을 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오뒤세우스는 칼과 창을 챙겨들고 혼자 산을 올랐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섬 전체는 숲으로 덮여 있었다. 섬을 덮고 있는 무수한 나무가 흡사 검은 양털 같았다. 바다는 사방에서, 섬을 둘러싸고 있는 해변을 핥고 있었다. 논밭이나 사람이 살 만한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섬의 한가운데, 숲이 가장 짙은 곳에서 실오라기 같은 붉은 연기 한 자락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오뒤세우스는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그 연기의 정체를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섬에서 겪어온 무서운 일들이 생각나서 선뜻 그렇게 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무래도 배로 돌아가 뱃사람들을 잘 먹인 뒤에 정찰대를 뽑아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오뒤세우스는 온 길을 되짚어 갔다. 해변에 이르렀을 때였다. 붉은 사슴 한 마리가 덩굴 밑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사슴 한 마리면, 오랫동안 고생을 참아온 뱃사람들을 잘 먹일 수 있을 터였다. 그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는 사슴을 향해 창을 던졌다. 명중이었다. 그는 사슴의 네 다리를 덩굴로 묶어 어깨 위에 둘러메고는 창을 지팡이 삼아 짚으면서 배로 돌아왔다. 오뒤세우스가 돌아왔을 때까지도 뱃사람들은 배 주위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었다. 여전히 피로가 풀리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그는 사슴을 부하들 있는 쪽으로 던지면서 외쳤다.

"힘을 내자.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 옆에 먹을 것 마실 것이 있는데 굶어 죽는다 는게 말이나 되느냐?"

오뒤세우스의 부하들은 불을 피웠다. 그 날 저녁 그들은 사슴 고기로 배를 채우고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오뒤세우스는 일행을 두 편으로 갈라 한 편은 자신이 지휘하고 다른 한 편의 지휘권은 먼 친척인 에우륄로코스에게 맡겼다. 그리고는 나무 조각 두 개 중 하나에다 표를 한 다음 투구 속에 넣고 흔들었다가 제비를 뽑았다. 연기의 정체를 밝히러 나갈 정찰대를 뽑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에우륄로코스 편이 정찰대로 뽑혔다. 에우륄로코스는 스물 두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오뒤세우스 일행은 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에우륄로코스는 저물녘에야 돌아왔다. 뜻밖에도 혼자 돌아온 것이었다. 혼자 돌아온 에우륄로코스는 부들부들 떨면서 훌쩍훌쩍 울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당한 무서운 일이 자꾸만 생각나서 그랬던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그는 마음의 고요를 되찾고 그 동안 정찰대가 당한 일을 얘기했다.

"숲 한가운데에는 아름다운 돌집이 있었습니다. 길이 잘 든 이리와 사자가 고삐 풀린 채 집 주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이리와 사자 무리는 사냥개처럼 재롱을 피 우는가 하면 우리 어깨 위로 오르면서 얼굴을 핥기도 했습니다. 한 여자가 집 앞 베란다에 놓인 베틀 앞에 앉아 있더군요. 여자는 아주 가는 실로 베를 짜면서 부드럽고 달콤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하나가 그 여자를 불렀습니다. 여자는 베틀에서 일 어 났습니다. 짙은 색깔 옷을 입은, 키가 크고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머리와 팔뚝에는 금 으로 만든 장식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여자는 대문을 열고 우리에게 들어오라 고 하더군요. 모두 들어갔습니다. 저는 혹시 함정이 아닐까 해서 바깥에 숨은 채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고 있으려니까, 여자와 하녀들이 우리 뱃사람들을 긴 걸상에 나란히 앉히고는 포도 주를 꺼내어 아주 친절하게 따라 주더군요. 그런데 우리 뱃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시자, 여자 는 구부정한 나무 막대기를 하나 꺼내더니 우리 뱃사람들 머리에다 차례로 대는 것입니다. 여자가 막대기를 머리에다 대는 순간, 뱃사람들 몸에서 뻣뻣한 털이 돋고 주둥이가 툭 튀어 나오지 뭡니까. 그뿐인 줄 아십니까? 앉아 있던 뱃사람들이 두 팔과 두 발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리더군요. 더 이상은 사람이 아니었지요. 돼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돼지가 되어 버 린 뱃사람들은 여자를 둘러싸고 꿀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는 웃으면서 돼지들을 바깥으로 몰아냅디다. 돼지들은 숨어 있는 제 옆을 지나 돼지우 리로 들어갔고요. 여자는, '너희들이 있어야 할 곳은 돼지 우리다.'하더군요. 더러운 돼지 우리에서 저의 동료 뱃사람들은 사람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고요."

이야기를 다 들은 오뒤세우스는 칼이 매달린 가죽 허리띠를 차고 활을 들고는 에우륄로코스에게 마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했다. 그러나 에우륄로코스는 무릎을 꿇고 다시 울음을 터뜨리면서 애원했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장군. 저는 그 곳으로 다시 갈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도 가지 마십시오. 이제 그들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뒤세우스는 에우륄로코스를 다른 부하들 있는 곳에 남겨 두고 혼자 숲을 찾아 들어갔다.

숲 속에서 그는 신들의 심부름꾼인 헤르메스 신을 만났다. 잘생긴 청년 모습을 한, 신들의 심부름꾼인 헤르메스 신은 오뒤세우스의 팔을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녀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돼지로 둔갑한 부하들을 구하러 혼자 숲으로 들어온 모양이군.

하지만 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그대 역시 돼지가 되고 말아….” 그는 발치에 있던 풀 한 포기를 뽑아 오뒤세우스에게 건네 주었다. 꽃은 우유처럼 희고 뿌리는 밤의 어둠처럼 새까만 풀이었다. 인간의 눈에는 띄지도 않고, 따라서 인간은 도저희 뽑을수 없는 풀이었다. 헤르메스 신은 그 풀을 오뒤세우스에게 주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이 약초를 받아 가지고 가거라. 그러면 마녀 키르케가 만들어 주는 마법의 포도주도 그대의 모습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키르케가 가지고 있는 마법의 막대기도 그대를 해코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에 키르케가 마법의 막대기로 그대를 건드리거든 칼을 뽑아들고 달려들어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위협하라. 그러면 키르케는 겁을 먹고 그대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키르케가 겁을 먹고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지금까지 자기 마법에 걸리지 않은 인간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키르케는 그대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빌 것이다. 그대는 키르케가 원하는 것을 베풀어 주라. 하지만 그 전에 다짐을 받아야 한다. 먼저 돼지가 되어버린 부하들의 모습을 사람으로 되돌리고 그대와 그대의 동료들에게 다시는 그같이 못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헤르메스 신은 이 말을 남기고는 환하게 빛나는 길을 따라 신들의 궁전이 있는 올림포스로 날아가 버렸다. 오뒤세우스는 옷의 앞섶을 열어 그 안에 풀을 넣고는 옷깃을 여몄다. 풀의 싸늘한 감촉이 살갗에 느껴졌다.

이윽고 오뒤세우스는 키르케의 집 앞에 이르러, 베틀 앞에 앉아 부르는 키르케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가 현관 앞으로 접근하면서 키르케를 불렀다. 길이 잘 든 이리와 사자 무리가 다가와 그의 뺨을 핥기 시작했다. 키르케가 나오더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가 들어가자 키르케는 은으로 장식된, 발 받침대가 있는 의자를 권하고는 포도주에다 치즈와 보릿가루와 꿀을 타고는, 손바닥으로 감추고 있던 유리병에서 뭔가를 꺼내 포도주에다 떨어뜨렸다.

"드세요.제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오뒤세우스는 옷섶에 감춘, 꽃이 하얀 풀을 믿고는 그 마실 거리를 단숨에 마시고 잔을 내려 놓았다. 그러자 키르케는 예의 그 가느다란 막대기를 꺼내어 오뒤세우스의 머리를 건드리고 나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도 어서, 바깥에 있는 돼지 우리로 가거라."

그러나 오뒤세우스는 돼지가 되어 돼지 우리로 가기는커녕 칼을 빼들고 키르케에게 달려들었다. 키르케는 비명을 지르면서 칼날을 피해 오뒤세우스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는 소리쳤다.

"내 마법이 듣지 않다니, 당신은 누구신가요? 오뒤세우스가 분명하지요. 언젠가 헤르메스신께서는 오뒤세우스라는 사람이 트로이아에서 뱃길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섬에 들를 거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빕니다. 서로 마음을 열어, 서로 믿고 친구가 될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오뒤세우스는 여전히 칼을 움켜진 채로 키르케를 내려다보면서 명령했다.

"먼저 나와 내 부하들에게 해코지하는 않겠다고 신들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다. 오뒤세우스는 그제서야 칼을 칼집에 꽃아 넣었다.

키르케의 네 하녀가 나왔다. 봄과 나무의 여신의 딸인 네 하녀는 은식탁 앞 의자에다 보라색깔개를 깔고 은식탁 위에 음식을 차린 다음 은술잔에 포도주를 가득가득 따랐다. 그런 다음에는 물을 데워 오뒤세우스 몸을 씻겼다. 오뒤세우는 따뜻한 물에 머리와 어깨를 담근 채 쌓이고 쌓인 피로를 풀었다. 목욕이 끝나자 하녀들은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는 식탁 앞으로 안내하여 우선 먹고 마실 것을 권했다. 그러나 오뒤세우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이제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까요."

오뒤세우스가 키르케의 말을 받았다.

"내 부하들은 어쩌고요? 그개 때문에 내 부하들은 돼지가 되어 돼지 우리에 잡혀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서 먹고 마실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키르케가 바깥의 돼지 우리로 나갔다. 키르케는 돼지 우리 문을 열고 들어가 돼지들을 앞으로 불러모으고는 그 가느다란 막대기로 돼지의 머리를 하나씩 차례로 건드렸다. 그러자 돼지는, 돼지로 변하기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으로 되돌아왔다. 사람의 모습을 되찾은 뱃사람들은 선장인 오뒤세우스 장군에게 몰려와 어깨동무를 한 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오뒤세우스는 키르케의 양해를 얻어 배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안전한 해변가에 배를 끌어다 붙이고 무기는 모두 모아 가까운 동굴에 숨기기로 했다. 그의 부하들에게는 얼마간의 휴식이 필요했다. 다시 뱃길로 나서자면 보급품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당분간 키르케의 섬에 머물기로 하고는 부하들을 데리고 배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 남아 있는 나머지 부하들에게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한동안 잘 먹고 잘 자면서 휴식을 취하라고 하더라는 키르케의 말을 전했다.

에우륄코스를 제외한 다른 부하들은 모두 키르케의 제안을 반가워하면서 금방이라도 배를 해변으로 끌어다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에우륄로코스는 여전히 악몽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키르케의 집으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한시바삐 난바다로 배를 내몰아 마녀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자고 애원했다.

오뒤세우스는 금방이라도 에우륄로코스를 베어 버릴 듯이 칼을 뽑아들었다. 비록 가까운 친구, 먼 친척이라고는 하나 그대로 두면 에우뤼로코스의 공포가 다른 뱃사람들에게까지 퍼져 나갈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뱃사람들은 에우뤼로코스만 남겨 두어,자기네들이 키르케의 집에서 배불리 먹을 동안 배를 지키게 하자고 졸랐다. 오뒤세우스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일행이 에우륄로코스를 남겨 두고 키르케의 집을 향해 한참 걸었을 때 뜻밖에도 에우륄로코스가 따라왔다. 동료들과 함께 마녀의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혼자 남아 배를 지키는 것이 훨씬 무섭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일행이 모두 함께 키르케의 집으로 갔다. 잔치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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