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 칼릴 지브란
by 송화은율예언자 / 칼릴 지브란
지혜(智慧)는 그녀의 입을 열어 말했다.
"인간인 너는 세상을 신의 눈으로 보고자 하고, 미래의 비밀을 인간의 사고를 통해 파악하려 한다. 그런 것이 무지의 소산이다."
"들로 나가라, 그리고 벌들이 어떻게 향기로운 꽃들 위를 나르며 독수리가 그 먹이를 향해 어떻게 내리 덮치는 가 보라. 그녀의 옆집에 가서 어머니가 그녀의 일에 바쁜 동안 난로 불빛에 넋을 잃고 있는 천진한 아이를 보라. 벌처럼 되라, 그리하여 독수리가 하는 일을 보느라고 그대의 젊은 날을 허비하지 말라. 불빛에 취해 기뻐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로서 있게 하는 그 아이처럼 되라.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그대의 것이었고 또 계속 그대의 것이다."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책들과 낯선 인물들과 멋진 사상(思想)들은 그대보다 먼저 있었던 정신들의 망령(亡靈)이다. 그대의 입술이 말하는 말들은 그대의 동료들을 묶는 사슬의 고리들이다. 술픈 혹은 즐거운 결론들을 과거에 의해 그대 영혼 들에 뿌려진 시로서 미래에 의해 거둬들여질 것이다."
"그대의 욕망과 장난하는 젊은이는 빛이 들어오도록 그대의 마음과 문을 여는 사람이다. 인간과 그의 일들을 일찍이 위와 입을 크게 여는 땅은 우리의 영혼을 육체의 굴레로부터 구원하는 자이다."
"그대와 함께 움직이는 세계는 그대의 마음이며, 그 마음의 세계 자체이다. 그대가 아주 작고 무지(無知)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슬픔을 통해 기쁨을 배우고 무지를 통해 지식을 얻는 신의 사자(使者)이다."
이렇게 말한 지혜는, 내 뜨거운 이마 위에 손을 놓고 말했다.
" 계속 나아가라. 지체하지 말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완전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계속 전진하라, 그리고 삶의 길에 있는 가시나 뾰족한 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심화 자료
칼릴 지브란의 다른 작품들
사람들은 나에게 미쳤다고 말합니다.
내가 내 삶을 팔아 금을 사지 않는다 하여.
그러나 나는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나의 삶에 값을 매길 수 있다고 여기므로.
그들은 우리 앞에 온갖 금은 보화
상아와 흑단의 보물들을 펼쳐 놓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 앞에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펼쳐 놓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주인이고
우리들을 손님으로 여깁니다.
나는 꿈도 소망도 없는 위대한 인간보다
성취할 꿈과 소망을 가진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이고 싶습니다.
우리네 인간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신의 꿈을 팔아 금과 은을 사는 사람입니다. (p71)
모래, 물거품 (SAND AND FOAM)
[1]
나는 영원토록 이 해변을 거닐고 있습니다.
모래와 물거품 그 사이.
높은 파도에 나의 발자국은 지워져 버릴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물거품 또한 날려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다와 이 해안은
영원까지 남을 것입니다.
[2]
일곱 번 나는 내 영혼을 경멸하였습니다.
제일 처음
나의 영혼이 저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비굴해지는 것을 알았을 때입니다.
두 번째는 나의 영혼이 육신의 다리를 저는 사람들 앞에서
절룩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세 번째는 나의 영혼이 쉬운 것과 어려운 것 사이에서
쉬운 것을 선택하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네 번째는
나의 영혼이 잘못을 행하고서도
타인들도 잘못을 행하노라고
스스로 합리화하였을 때입니다.
다섯 번째는
유약함으로 몸을 사려 놓고는
그것이 용기에서 나온 인내인 양 짐짓 꾸밀 때입니다.
여섯 번째는
어떤 사람의 얼굴이 추하다고
마음 속으로 경멸했을 때입니다.
바로 그 얼굴이
내 마음 속의 가면들 중 하나라는 것은 모르는 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영혼이 아부의 노래를 부르고
그것을 덕이라 여길 때입니다.
[3]
내 안에 있는 生의 목소리는
그대 안에 있는 인생의 귀에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서로 외로워지지 않도록
이야기 나누며 살아갑시다.
[4]
타인의 실체는 그가 그대에게
보여주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그가 그대에게 보여줄 수 없는 부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대여,
타인을 진정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가 하는 말을 듣지 말고,
그가 하지 않는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5]
내가 하는 말의 반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무의미하지 않은 그 나머지 반을
그대에게 전하고자
의미롭지 못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여인의 사소한 잘못을 용서할 줄 모르는 남자는
그 여인이 갖고 있는 위대한 덕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대가 가진 가장 빛나는 옷은 타인의 솜씨로 지어진 것.
그대가 먹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타인의 식탁에서 먹는 음식.
그대가 누워 자는 가장 편안한 침대는
타인의 집에 놓인 것.
그러니 말씀해 보십시오.
과연 그대가 그대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는가를.
[8]
그대의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영원히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9]
그대가 베풀 때, 그대의 모습은 진정 자비롭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무언가를 베풀 때면
얼굴을 돌리십시오.
그대의 눈에 받는 이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비춰지지 않도록.
[10]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나의 식탁에 앉아
나의 빵을 먹고 내 술을 마시고는
나를 비웃으며 떠나갔습니다.
훗날 그가 빵과 술을 먹으러 다시 나를 찾아 왔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젠 천사들이 나를 비웃었습니다.
[11]
우리 모두는
우리 마음 속에 간직한 소망의 봉우리에
도달하고자 산을 오릅니다.
누군가 그대의 배낭과 지갑을 훔쳐
살이 찌고, 짐이 묵직해질 때,
그를 동정하십시오.
그는 두텁게 찐 살 때문에 오르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무거운 짐 또한 그의 등반을 더디게 할 것입니다.
만일 그의 살덩이가 헐떡거리며
산을 오르는 것을 본다면,
그대의 가벼운 몸으로 그를 도우십시오.
이 또한 그대의 등반을 빠르게 해줄 것입니다.
[12]
그대의 이성과 나의 감성은 결코
서로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대의 이성이 숫자 헤아리기를 멈추고
나의 감성이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을 멈출 때까지는.
[13]
그대는 자유롭습니다.
한낮의 태양 앞에, 깊은 밤별들 앞에.
또한 그대는 자유롭습니다.
태양도 달도 별도 모두 존재하지 않을 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있는 앞에서도 두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대는 진정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사랑하고 있는 이 앞에서
그대는 노예입니다.
그대가 바로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그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에.
[14]
그대가 물고기를 원했을 때
누군가 그대에게 뱀을 주었다면,
그들에게는 뱀밖에 줄 것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이런 때,
그들로서는 참으로 커다란 자비를 베푼 것입니다.
[15]
그대의 타고난 결점을 후천적인 미덕으로
새하얗게 씻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나는 기꺼이 그 결점들을 지니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결함들은
바로 나 자신과도 같은 까닭입니다.
(출처 : '모래, 물거품 (SAND AND FOAM)' 진선출판사, 정은하 옮김, 1989년 4월 초판 발행).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시1 :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1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우주는 너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네.
고요하라, 나의 마음아
슬픔과 탄식으로 무거워진 하늘은 너의 노래들을 견딜 수 없으리라.
고요하여라
밤의 환영들은
네 신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않고
어둠의 행렬은
네 꿈 앞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고요하라, 나의 맘이여
새벽녘까지 고요하여라.
끈기있게 아침을 기다리는 자
힘차게 아침을 맞을 것이요
빛을 사랑하는 자 빛의 사랑을 받으리니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아
나의 말을 들어보아라.
꿈 속에서 나는
사나운 화산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지빠귀 소릴 들었고
흰 눈 위로
고개를 내미는
나리꽃 한 송이를 보았다네.
묘비 사이에서 춤추고 있는 벌거벗은 천녀(天女)와
해골을 갖고 놀며 웃고 있는 아이를 보았네.
이 모든 걸 나는 꿈에서 보았다네.
잠에서 깨어 옆을 둘러보다가
사납게 폭발하는 화산을 보았네.
하지만 지빠귀의 노래소린 들을 수 없었지.
언덕과 골짜기에 흰 눈을 흩뿌리는 하늘은
그 흰 수의로 나리꽃을 고요히 감싸고 있었네.
또한 줄지어 서 있는 무덤을 보았지.
고요한 세월 앞에 서 있는 무덤
거기엔 춤추는 이도 기도하는 이도 하나 없었네.
그리고서 바람의 웃음소리만 들려오는
해골의 언덕을 보았네.
슬픔과 탄식밖에 보이지 않았지.
그러면 꿈의 즐거움은 어디로 떠나갔나?
우리 잠 속의 빛나는 광채는 어디로 숨었나?
그 빛의 이미지는 어떻게 사라졌나?
그 갈망의 그림자가 잠과 함께 돌아갈 때까지
영혼은 어떻게 참고 견뎌낼 수 있을까?
2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나의 말을 들어보아라.
나의 영혼이 오래고 강한 나무였던 건
바로 어제의 일이었지.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무한한 창공에 가지를 펼치며
봄에 꽃 피우고, 여름에는 열매를 맺었네.
가을이 되자
나는 은쟁반에 그 과일을 모아
네거리 갈림길에 놓아 두었네.
지나는 사람들이 열매를 집어먹고
제 갈 길을 가도록.
가을이 지나
가을의 노래는 흐느낌과 비가(悲歌)로 바뀌었고
나의 쟁반을 바라보니
단 한 개의 과일만이 남아 있었네.
맛을 보니, 그건 알로에처럼 썼고
덜 익은 포도처럼 시더군.
"슬프도다, 나는 사람들의 입술에 저주를 내렸고
그 마음에 증오를 채웠구나.
나의 영혼아
그렇다면 너는 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
네 뿌리가
대지의 가슴에서 빨아들인 달콤함과
네 큰 가지들이
태양의 빛에서 마신 향기로움을 가지고
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
그 자리에서
내 영혼의 오래고 튼튼한 나무를 뽑아버렸네.
과거로부터 베어내고
천 번이나 되는 봄과 가을의 기억에서
지워버렸다네.
그리고 또 다른 곳을 택해
내 영혼의 나무를 심었다네.
시간의 길목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
나무를 세우고
내 눈물과 피를 뿌려주면서
그 옆에서 밤을 지새웠다네.
"피 속에는 향기가 있고
눈물에는 달콤함이 있지."
봄이 되자
내 영혼의 나무는 다시 꽃을 피웠고
여름이 다가오자 열매를 맺었다네.
가을이 되어서
다시 한번 익은 과일을 모아
사람들이 모이는 길목에 금쟁반에 담아 내두었네.
많은 이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집으려 하지 않았네.
하나 집어 먹어보니, 꿀처럼 달콤했지
과즙처럼 감미롭고
쟈스민의 향처럼 은근하며
바벨론의 포도주처럼 달았다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네.
"사람들은 입술에 머무는 행복이나
마음 속에 필요한 진실은 원치 않는구나.
행복은 눈물의 딸이고
진실은 고통의 아들이기에."
그리고서 시간의 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심겨진
내 영혼의 외로운 나무 그늘에 돌아와 앉았네.
3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새벽까지 고요하여라.
고요하여라
하늘은 죽은 것들의 내음으로 무거워졌고
네 살아있는 숨결을 들이쉬지 못한다네.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나의 말을 들어보라.
바로 어제, 나의 생각은 한 조각 배와도 같이
대양의 파도에 흔들리며
해변에서 해변으로 바람따라 다녔네.
내 생각의 배는 텅 비어 있었고
무지개 색의 물감으로 가득찬
일곱 개의 유리병이 있을 뿐이었지.
바다를 떠다니는 게 지루해지자, 난 말했네.
"내 생각의 빈 배와 함께
내가 태어난 항구로 돌아갈 것이다."
항해를 하면서
나는 일곱 색깔로 배의 옆면을 칠하기 시작했네.
지는 해처럼 황금 색으로
하늘같이 푸르게
진홍빛 아네모네처럼 붉게 빛났지.
더불어 내 배의 돛과 키에도
사람들의 눈을 끌 그림을 그렸다네.
그리고서 보니, 내 생각의 배는
바다와 하늘, 이 무한한 두 곳 사이를 떠도는
예언자의 모습이었네.
나의 배가 항구에 닿자
보라, 모든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와 있구나.
고함치고 즐거워하며 나를 환영하고
도시 안으로 맞아들였네
탬버린을 치면서 갈대피리를 불면서
이 모든 것은 내 배가 그들에게
매혹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네.
그러나 내 생각에 배에 올라온 이는 아무도 없었고
또 내 배가 빈 채로 항구로 돌아왔음을
아는 자도 없었다네.
나는 혼자 중얼거렸네.
"나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어.
일곱 색깔 유리병으로
그들의 눈과 마음 속의 눈, 모두를 속이고 있는 거야."
일 년이 지나고서 다시금
내 생각의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갔네.
동쪽 섬으로 배를 몰아서는
몰약과 유황, 백단향을
남쪽 섬으로 찾아가서는
황금과 비취, 에머랄드와 모든 보석을
복쪽 섬에서는
보기드문 비단과 벨벳, 온갖 자수품을
그리고 서쪽 섬으로 가서는
갑옷과 창, 검을 구했다네.
이렇게 내 생각의 배를
지상의 값 비싸고 진귀한 것으로 가득 채웠네.
내 도시의 항구로 돌아오며 마음 속으로 말했다네.
"이제야말로 나를
찬양받을 만한 사람으로 여겨주리라.
이제 사람들은 노래하고 피리부는 시장터로
나를 인도하리라."
그러나 보라, 항구로 돌아왔을 때
아무도 나를 환영해주거나 만나러 오지 않았다네.
도시의 거리를 홀로 들어갔으나
아무도 나을 돌아보지 않았지.
시장에 서서
내가 가져온 대지의 열매와 값진 물건에 대해
모두 말해주었지만
사람들은 비웃은 얼굴로 조롱하며
내게서 등을 돌렸다네.
낙심한 나는 항구로 돌아왔네.
내 배를 보자마자, 나는 깨달았네
값진 물건을 찾으며 항해하는 동안
내가 주의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음을.
그래서 나는 굴욕감으로 치를 떨며 소리쳤네.
"아------
바다의 파도가
내 배의 일곱 색채를 씻어버렸구나.
이제 해골처럼 남아있을 뿐
바람과 폭풍, 햇볕이 내 배의 돛에서
놀라움과 기쁨의 이미지를 지워버렸으니
빛 바래고 갈갈이 찢긴 모습 말고
이제 무엇이 더 보이겠는가.
바다 위를 떠도는 상자에
지상의 값 비싼 보물을 모아서
사람들에게 나 돌아왔건만
내게서 등을 돌리는구나
그들은 다만 밖으로 드러난 것밖에는
보지 못하는구나."
바로 그 순간, 내 생각의 배를 버리고
주검의 도시를 찾아갔네.
거기서 나는 무덤 한가운데 앉아서
그 무덤의 비밀을 깊이 생각해 보았네.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아.
여명이 밝아올 때가지 고요하여라.
고요하여라
폭풍우가 네 속의 속삭임을 조롱한다 해도.
고요하여라, 내 마음이여, 새벽녘까지
아침을 참을성있게 견디는 자
아침이 그를 부드럽게 안아주리니.
보아라, 나의 마음이여
새벽이 다가오는 것을.
말해보라, 너에게 아직 말할 힘이 남아 있다면.
보아라, 나의 마음아, 아침의 행렬을
아침을 맞는 네 속의 노래를
밤의 침묵이 휘저어 놓진 않았는가?
보아라, 골짜기 위를 나는 비둘기와 지빠귀를.
새들과 함께 날 그대의 날개는
밤의 두려움으로 더 강해지지 않았는가?
보아라, 목자가 우리에게서 양떼를 인도하는 것을.
푸른 풀밭으로 따라가려는 그대의 바램을
밤의 그림자가 재촉하지 않았는가?
보아라 포도밭으로 서둘러 가는 젊은 청년과 아가씨를.
일어나서 그들과 함께 가지 않으려는가?
일어나라, 나의 마음이여.
일어나서 새벽과 함께 움직여라.
밤이 지나가고 그 두려움은
검은 꿈과 함께 사라져버릴 것이기에.
일어나라, 나의 마음이여
노래에 그대의 목소리를 실어보라.
새벽과 함게 노래 부르지 않는 건
어둠의 자식 뿐이기에.
시2 : 명성
썰물의 바닷가 모래 위로 나는 걸었네.
구부리고 앉아 모래 위에 금을 긋고
그 금 속에 나의 생각과
내 영혼의 외침을 적어 놓았네.
그리고 밀물이 되어
나는 바로 그 자리에 돌아왔지만
내가 썼던 흔적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네.
눈 먼 듯이 걸어온
누군가의 지팡이 자국이 남아있을 뿐.
시3 : 지구
지구는 힘껏 지구로부터 튕겨져 나와
위엄있고 자랑스럽게 지구 위로 움직인다네.
지구로부터 지구는 왕들의 궁전을 세우고
모든 백성을 위하여
높은 탑과 훌륭한 사원을 세우며
신비한 신화, 엄격한 법률, 정교한 교리를 만드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지구는 일에 지치게 되고
빛과 어둠으로부터 잿빛 그늘을 만들어
포근한 잠의 환상과 황홀한 꿈에 잠기네.
지구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서
이윽고 그 깊고 고요한 잠 속에
모든 것이 갇혀버렸네.
그 때 지구는 지구를 불러내어 말하네
"보아라, 나는 자궁이고, 나는 무덤이다.
자궁과 무덤인 나는 영원하리니
아, 저 별들이 사라질 때까지
저 태양이 한 줌 죽음의 재가 될 때까지."
시4 : 밤의 노래
고요한 밤이 되어
꿈들은 침묵 속으로 숨는다네.
달이 떠오르고 있고 ---
그녀는 낮을 보는 눈을 지니고 있지.
오라, 들판의 딸이여
가자꾸나, 연인들이 만나는 포도밭으로.
그러면 아마도 사랑의 포도주로
우리의 갈증을 달랠 수 있으리.
귀 기울여보라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 골짜기로 흘러내리고
언덕은 푸른 박하향으로 가득 찼네.
두려워하지 마오, 사랑하는 이여
별들이 우리 만남의 비밀을 지켜주리라
부드러운 밤안개가 우리의 포옹을 가려주듯이.
두려워마오 ---
드진스(회교 신화에 나오는 천사보다 하위의 초자연적 존재로서 사람 또는 동굴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일에 마술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함)의 젊은 신부(新婦)는
천녀(天女 : 매우 아름답고 요염한 여자)의 눈도 미치지 않는 그녀의 매혹적인 동굴에
사랑에 취한 채 잠들어있네.
드진스의 왕이 지나간다 해도
사랑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리.
그는 나와 같은 애인이 아니기에
어찌 견딜 수 없는 자기 마음을 드러내리오?
시5 : 묵시록
밤이 깊어 대지도 가면을 내려놓고 잠이 들 무렵
나는 잠자리에서 나와 바다를 향하네.
"바다는 끝내 잠들지 않고
잠 못 이루는 영혼을 위로해주지."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엷은 안개가 산꼭대기에서 내려와
마치 처녀의 얼굴을 가린 베일처럼
온 세상을 덮고 있었네.
그곳에 서서, 파도를 바라보고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바다 저편에 있는 어떤 힘에 대하여 생각하였네.
그 힘이란 폭풍과 함께 떠돌고
화산과 함께 폭발하고
미소짓는 꽃들과 함께 웃고
속삭이는 시냇물과 함께 노래하는 것이었네.
문득 나는 뒤돌아서서
근처의 바위에 앉아있는 세 형상을 보았네.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 그들을.
알지 못할 어떤 힘에 이끌려
그들이 앉아있는 바위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네.
그곳에는 나의 환상을 휘저으며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몇 발자국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보았네.
그 순간 세 형상 중 하나가 일어나
바다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음성으로 말하였네.
"사랑 없는 삶은
꽃이나 열매 없는 나무와 같다.
아름다움 없는 사랑은
향기 없는 꽃이나 씨 없는 열매와 같다.
삶과 사랑과 아름다움, 이 세 가지는 한 몸인데
바꿀 수도 나눌 수도 없는
무한하고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그때, 두 번째 형상이 일어나
물결이 밀려오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네.
"저항 없는 삶은
봄 없는 계절과 같다.
정의롭지 못한 저항은
불모의 사막 속의 봄과 같다.
삶과 저항과 정의, 이 세 가지는 한 몸인데
그들과 바꿀 수도 나눌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또, 세 번째 형상이 일어나
우레 같은 음성으로 말하였네.
"자유 없는 삶은
영혼이 깃들지 않은 육체와 같다.
사상 없는 자유는
혼란스러운 영혼과 같다.
삶과 자유와 사상, 이 세 가지는 영원한 한 몸인데
끝내 사라지거나 지나가버리지 않는 존재들이다."
마지막으로, 세 형상들이 일어나
장엄하고 두려운 음성으로 말하였네.
"사랑과 사랑이 낳은 모든 것
저항과 저항이 창조한 모든 것
자유와 자유가 가져온 모든 것
이 세 가지는 모두 신의 형상들이니···
그 신은
한정되 의식 세계에 살아있는 무한의 정신이다."
그리고나서, 보이지 않는 날개들의 떨림과
그 울림으로 가득한 침묵이 흘렀네.
나는 들려오던 음성의 메아리에 귀 기울이며
눈을 감았네.
내가 두 눈을 떴을 때
안개가 낮게 깔린 바다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네.
그 바위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지만
하늘 위로 떠오르는 향기로운 기둥, 그 이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네.
(출처 :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진선출판사 발행 나희덕 옮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1]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2]
나는 당신의 행복을
소중히 합니다.
그대가 나의 행복을
소중히 하듯.
나에게 평화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대가 없이는.
1923년 5월 27일 칼릴 지브란
[3]
내가 만약 어떤 이의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다면,
그에게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인생 그 자체는 하나의
실제일 뿐.
환희나 고통, 행복이나 불행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증오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敵)은 친구와 같습니다.
홀로 사는 삶을 사십시오.
바로 자신의 삶을.
그리하여 우리는 진정한
인류의 친구일 수 있습니다.
나는 나날이 거듭납니다.
내 나이 여든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변화의 모험을 계속할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행한 일은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일 따름입니다.
나에게는
껴안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삶의 한가운데.
1912년 12월 25일 칼릴 지브란
[4]
그대
어깨에 놓인
인생의 손이 무겁고
밤이 無味할 때,
바로
사랑과 믿음을 위한
시간입니다.
그대는 알고 계십니까?
얼마나 삶의 무게가 덜어지는지,
얼마나 우리의 밤이 즐거워지는지,
모든 것을 믿고
또
사랑할 때면,
1916년 12월 19일 칼릴 지브란
[5]
그대의 행복 안에
나,
지극히 행복합니다.
그대에게 행복은
일종의 자유,
내가 아는 모든 이들 중에서
그대는 가장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이 행복과 자유는
그대 스스로 얻어낸 것.
생이 그대에게 늘
감미롭고 친절하기만 했을 리 없거늘,
그대야말로
그대의 삶에
그토록 부드럽고 다정했던 까닭에.
1923년 1월 24일 칼릴 지브란
[6]
그대와 나의 관계는
내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떤 이의
삶을 통해 보아도
더 이상 아름다운 관계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1922년 9월 11일 칼릴 지브란
[7]
그 깊은 떨림
그 벅찬 깨달음.
그토록 익숙하고
그토록 가까운 느낌.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것 그날의 떨림은
생생합니다.
단지, 천 배나 더 깊고
천 배나 더 애틋해 졌을 뿐.
나는 그대를 영원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이 육신을 타고나 그대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그것을 알아 버렸습니다.
운명.
우리 둘은 이처럼 하나이며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 놓을 수는 없습니다.
1922년 3월 12일 칼릴 지브란
[8]
그대여,
무엇보다도 멋진 일은
그대와 나,
늘 손에 손을 잡고 거닐고 있다는 것.
他人들이 알지 못하는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세계 속을.
우리는 둘 다 손잡지 않은 다른 한 손을 뻗어
그 손을 통해 삶을 빨아들입니다.
- 삶은 이만큼이나 넉넉한 것입니다.
1912년 10월 22일 칼릴 지브란
[9]
어느 거대한 낯선 도시에
들어서게 되면,
나는 낯선 방에서의 잠,
낯선 곳에서의 식사를
사랑합니다.
이름 모를 거리를
거닐며
스쳐가는
모르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을 사랑합니다.
나는
즐거이
외로운 나그네이고자 합니다.
1911년 5월 16일 칼릴 지브란
[10]
사랑하는 이여,
우리들 모두는
어딘가 쉴 곳이
있어야만 합니다.
내 영혼이 쉴 자리는
아름다운 작은 숲 --
그대에 대한 나의
이해가 사는 그곳입니다.
1908년 11월 8일 칼릴 지브란
[11]
두 사람이 만날 때는
물가에 나란히 핀 백합과 같아야 합니다.
봉오리를 오무리지 않은 채,
금빛 수술을 온통 드러내 비추어내는
호수를, 나무를, 하늘을 비추어내는
두 송이의 백합처럼.
닫힌 마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다가갔을 때
우리는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대의 시간을
그토록 오래 차지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나는 당신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에게
드리는 것이 거짓 없는
'나 자신'이 아니면 결코 안됩니다.
1920년 9월 10일 메리 해스켈
[12]
당신께서 무엇이 되시건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되어야만,
혹은 무엇을 하여야만 한다는
편견 어린 욕심이 제겐 없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미리 헤아려 보고픈 바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 그대로의 모습을 발견할 뿐.
당신이 저를 실망시킬 리 없는 까닭입니다.
1912년 11월 23일 메리 해스켈
[13]
모든 이에게 있어
神에 대한 생각은
서로 같지 아니합니다.
아무도 他人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1920년 9월 14일 메리 해스켈
[14]
"그의 문체는 좋아하지만
그의 사상은 좋아하지 않아"
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무심코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맙니다.
문체와 사상은
하나인 것입니다.
1912년 6월 2일 메리 해스켈
[15]
모든 예술 작품은
거울에 비추기 위해
만든 물건과 같습니다.
더욱이
그 거울은
우리네 동료 인간입니다.
1912년 12월 14일 메리 해스켈
[16]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당신에 대해 가졌던
모든 근심은,
내 안에 살고 있는
치졸함과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1912년 6월 12일 메리 해스켈
(출처 :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진선출판사 발행, 정은하 엮음)
사랑은 자유하는 삶입니다
[1]
어느 누가
아름다운 그림자 없이
눈부신 빛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그림에 있어
밝음이란
아름다운 그늘로 하여
만들어지는
눈의 착각일 뿐입니다.
1911년 10월 20일 칼릴 지브란
[2]
사랑하는 이여,
우리 둘 사이에는
이름 모를 신(神)이 존재합니다.
그의 두 다리는 굳건하고
눈은 언제나 열려 있으며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대는 나의 이 말을
다시 듣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욱
태양에 가까워진 세상에서.
1912년 10월 9일 칼릴 지브란
[3]
그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도 하고, 침묵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우리에겐 없었습니다.
그대여,
그대와 더불어 침묵하기를
내가 더욱 사랑했던 까닭입니다.
1912년 11월 19일 칼릴 지브란
[4]
이 아름다운 봄날은
나를 가득 채웁니다.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을
향한 갈증으로.
들판으로 나아가
자라나는 꽃들과 더불어
자라나고 싶습니다.
1913년 4월 20일 칼릴 지브란
[5]
삶은
달콤하고 무한한 가능성과
그 가능성의 실현으로
가득 찬
꿈입니다.
1914년 4월 5일 칼릴 지브란
[6]
삶은 강하고
우리네 인간은
작습니다.
인간과 삶,
그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1914년 4월 5일 칼릴 지브란
[7]
사람들이 내 작품을
칭찬하는 것을 듣는 일은
내게 즐거움을 주곤 했었습니다.
--- 그러나 지금은 어쩐지 칭찬을 듣고 나서
슬픈 생각에 잠깁니다.
아마 이 칭찬으로 하여
아직 내가 이루어 내지 못한 일들이
떠오른 까닭인가 봅니다 ---
내가 아직 이루어 내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도
사랑받고 싶습니다.
1915년 1월 28일 칼릴 지브란
[8]
한겨울날 헐벗은 나무의
의식은 지난 여름을 향해 있지 않고
오히려 돌아오는 봄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의 기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날들이 아니라
다가올 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1915년 1월 28일 칼릴 지브란
[9]
모든 인간 간의 관계는
생각과 느낌, 그리고 실천의
세 가지 계절로 나뉘어집니다.
1915년 8월 6일 칼릴 지브란
[10]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마치 삶의 절대 같은 것.
---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침없이 자라나는
그대와 나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더욱 커다란 자아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이것은
이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기쁨입니다.
1915년 11월 21일 칼릴 지브란
(출처 : 사랑은 자유하는 삶입니다, 진선출판사)
참고 사항 :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의 후편
들리지 않는 가락이 고요 속에 있습니다
[1] 사랑의 순수함
목적 없이 줄 수 있는 우정은
그 영혼을 깊이 있게 해준다.
그 자체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 외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바로 그 앞에 드리워진 그물이니,
단지 무익한 것만이
거기에 걸릴 뿐이다.
[2] 더렵혀진 옷
당신의 옷에
자기의 더러운 손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옷을 주어 버리시오.
아마도 그는
또다시 그것이 필요할 것이니까 ;
그리고 분명히 당신에게는
그것이 필요 없을 것이니까
[3] 바람개비
바람개비가 바람에게 말했다.
"넌 정말 지루하고 단조롭구나. 내 얼굴 쪽 말고 다른 방향으로는 좀 불어 줄 수 없겠니? 너는 지금 신께 드리는 나의 성실함을 방해하고 있단 말이야."
그러나 바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허공 속에서 비웃고 있을 뿐이었다.
[4] 눈처럼 흰 종이가 말하길
눈처럼 흰 종이는 말했다.
"나는 깨끗하게 태어났으니 앞으로도 영원히 깨끗하게 지낼테야. 검은색이 내 위에 칠해지거나 불결한 것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참느니 차라리 불타서 하얀 재가 돼버리겠어."
[5] 신에 대해선 덜 얘기하자
나의 뱃사람과 친구들아.
이해하기 어려운 신(神)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신의 숨결이며 향기임을
그대들이 알기를.
잎사귀 속에, 꽃 속에 때로는
열매 속에 존재하는 신을.
(출처 : 들리지 않는 가락이 고요 속에 있습니다, 을지출판사 출판, 정희수가 엮음)
내 영혼 가장 가까이에 그대가 있습니다
[1] 1919년 6월 11일
멀리 있는 친구가 때로는 바로 옆에 있는 친구보다 더 가까이 있습니다.
산은 그 산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는 그 산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산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는 그 산을 지나가는 사람이 훨씬 더 분명하게 그 산을 볼 수 있는 법입니다.
[2] 1922년 5월 9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연기와 재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을 어지럽게 하고, 손가락을 데게 하기 때문에 불을 무서워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포함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정신을 쏟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본질을 무시합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슴 안에 무엇이 있나 알게 해주려고 자신의 가슴을 찢어 버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대여, 외로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슬픔입니다.
[3] 1923년 10월 5일
당신의 머리를 여기에, 내 어깨 위에 두고 잠드세요. 잠드세요, 나의 귀여운 이여, 잠드세요. 당신은 당신의 고향, 당신의 집에 있습니다.
반면에 나는 깨어 있을 것입니다. 나는 홀로 깨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침이 올 때까지 나의 천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침이 올 때까지 나의 천사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4] 1923년 12월 3일
나는 나의 귀여운 이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왜 그녀를 사랑하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알고 쉽지 않습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영혼으로,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슬프고, 외롭고, 고독할 때, 또는 내가 행복하고, 즐겁고,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을 때, 내 머리를 그녀의 어깨 위에 뉘어 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녀와 함께 나란히 걸으며 산꼭대기까지 오르고, 이따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은 나의 동반자입니다. 당신은 나의 동반자입니다."
[5] 1924년 2월 26일
나는 눈을 사랑합니다.
나는 그 하얀 것을 사랑합니다. 나는 눈이 내리는 것을, 그리고 그 깊은 침묵을 사랑합니다.
이름 없는 머나먼 계곡의 심장에 내리는 눈을 사랑합니다.
그 곳에서는 눈송이들이 햇빛 속에서 나풀거리며 반짝입니다. 그리고는 녹아서 그네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용히 흘러갑니다.
나는 눈과 불을 사랑합니다. 눈과 불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넓고 보다 고귀한 사랑을 위한 준비이었을 뿐입니다.
(출처 : 내 영혼 가장 가까이에 그대가 있습니다, 태명, 이태학 엮음)
참고 사항 :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제2부는 칼릴 지브란이 마이 지아다(May Ziadeh, 메이 지아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으로, 여기서 인용하는 글은 바로 제2부의 글들이다. 칼릴 지브란과 May Ziadeh는 평생 동안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숨을 거둘때까지 계속된 두 사람의 친분(사랑)은 깊기만 한 것이었다. 지브란과 May Ziadeh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12년 지브란이 [부러진 날개]를 출간한 이후부터이다. [부러진 날개]로 지브란이 아랍 세계에서 명성이 높아지자 May Ziadeh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이다. May Ziadeh는 금세기 아랍어 문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여성 작가 중의 하나이다. 1886년 팔레스틴의 나자렛 근처에서 태어났다. 일생의 대부분을 카이로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1941년 카이로에서 숨을 거두었다.
칼리 지브란과 May Ziadeh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브란과 May Ziadeh의 관계는 M.E.H와는 다른 것이다. 지브란은 M.E.H를 지식의 동반자이며 사랑스럽고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로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 감정이 격해질 때조차도 기본적인 느낌은 그녀가 그에게 베풀어 준 친절과 후원에 보답할 방도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브란과 May Ziadeh의 관계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영적이며 플라토닉한 요소를 포함하긴 했지만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결코 얼굴를 마주 대할 수 없는 운명의 지브란과 May는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 갔으며, '신적 자아', '푸른 불꽃', '변함없이 타오르면서 변화시켜가지만 변화되지는 않는 초월적 요소'를 향해 나아갔다.』
라고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두레)에 인용되어 있다.
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
뉴욕, 1914년 1월 2일
[친애하는 지아다 양에게](1)
당신에게서 아무런 소식이나 편지도 받지 못한 채 침묵 속에서 지내야 했던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당신이 '사악하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제 제게 자신의 영혼이 사악하다고 고백하십니다. 당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믿고 신뢰하는 저로서는, 당신의 그 고백이 옳고 적절하다고 믿어 드릴 수밖에 없겠지요. 물론 "저는 사악합니다"라는 당신의 고백 속에는 강한 자존심이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그 사악함이야말로 힘과 영향력 면에서 선함과 겨룰 만한 것이기에 당신의 그러한 자존심 또한 정당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사악함이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저의 사악함의 반밖에 되지 못하리란 것을 저 역시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야말로 지옥의 동굴 속에 거하는 요괴만큼이나 사악한 인물이니까요. 아니 검은 영혼을 지닌 지옥의 수문장처럼 사악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아마 당신도 제 말을 믿어 주시겠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당신이 왜 '사악함'을 저에 대한 '무기'로 사용할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당신이 보내 주신 편지에 일일이 답장해 왔으며, 당신이 제 귀에 속삭여 주신 모든 말의 의미를 계속해서 찬찬히 곱씹어 보고 있습니다. 혹여 제가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제게 벌을 가하는 힘을 보여 주기 위해 '죄'를 떠올려 말씀하신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그대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저는 당신의 '본질'(2)이 인도의 여신 칼리의 칼과 그리스인이 숭배하는 다이애나 여신의 화살을 한데 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제 서로 상대방의 영혼이 얼마나 사악한가와 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았으니, 이 년 전 시작했던 대화를 다시 시작해 볼까요.
일은 잘되어 가나요?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활기차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지난 여름에 다른 팔마저 골절이 되신 건 아닌지, 아니면 온전한 팔로 이집트로 돌아가게 하려고 어머니께서 승마를 완전히 금지하신 건 아닙니까? 제 얘길 하자면, 저의 건강 상태는 술 취한 사람의 갈지자걸음 마냥 왔다갔다합니다. 지난 여름과 가을에는 높은 산과 바닷가를 오가며 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야위고 파리한 모습으로 뉴욕에 돌아와 다시 꿈을 붙잡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그 이상한 꿈들은 저를 높은 산 정상에 올려놓았다가 깊고 깊은 계곡에 메다꽂곤 하지요.
《알-푸눈》(3)이 마음에 드신다니 기쁩니다. 아랍권에서 발행하는 간행물 중 《알-푸눈》이 단연 최고지요. 그 발행자는 성품이 좋은 젊은이로, 생각이 명료하여 문장도 명쾌한 사람입니다. 그는 '알리프'라는 필명으로 독창적인 시집을 출판한 적도 있습니다. 이 젊은이의 놀라운 점은, 유럽인들이 펴낸 글을 모두 읽을 뿐 아니라, 하나같이 잘 이해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친구 아민 리하니(4)로 말할 것 같으면 《알-푸눈》에 신작 장편 소설을 게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장을 제게 읽어 주고 있는데, 정말 아름답습니다. 《알-푸눈》의 발행인에게 제가 당신을 대신해서 글을 주겠다고 말했더니, 매우 기뻐하며 기대하는 것 같더군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저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습니다만, 인생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음악의 역사와 기원과 발전에 대한 지식을 쌓고, 음악의 기본 원칙과 구조를 배우는 데 열심이지요. 앞으로 오래 살 수 있다면, 아랍과 페르시아의 작곡에 관한 긴 에세이를 쓸 생각입니다. 저는 서양 음악과 동양 음악을 똑같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일 주일에 한 두 차례는 언제나 오페라를 관람하지요. 하지만 오페라보다는 심포니나 소나타, 칸타타를 더 좋아합니다. 오페라에는 예술적인 소박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저는 소박한 걸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걸 싫어하는 본성을 타고난 사람이니까요. 이제 당신이 가까이에 두고 있는 '아우드(오리엔탈 루트)'를 제가 얼마나 질투하는지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아우드로 '나하완드'(5)를 연주할 때는 꼭 찬사의 말과 함께 제 이름을 읊조려 주십시오. 제가 사랑하는 곡일 뿐 아니라, 카알라일(6)이 선지자 마호메트를 찬미했듯이 저도 그 곡을 찬미하니까요.
웅장한 스핑크스 앞에 설 때에도 저를 생각하는 친절을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전에 이집트에 갔을 때에는, 일 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가서 오랜 시간 금빛 모래 위에 앉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바라보곤 했지요.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그 거대한 예술품 앞에서, 거센 바람에 갈대가 휘날리듯, 떨리는 영혼으로 서 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스핑크스는 제게 미소를 지어 주고는, 가슴에 달콤한 아픔을 채워 주었지요.
당신처럼 저도 닥터 수마엘(7)의 찬미자랍니다. 그는 근동(近東) 지역에 새로운 르네상스를 가져올 수 있는, 레바논이 배출한 출중한 인물이지요. 저는 동방에 닥터 수마엘 같은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수피교도(이슬람교 신비주의자-옮긴이)들이 이집트와 시리아에 남긴 영향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카이랄라 에펜디 카이랄라(8)가 쓴 프랑스어 책을 읽어 보셨는지요? 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한 친구가 그 책에 당신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있고, 또 다른 장에서는 저에 대해 다루었다고 알려 주더군요. 그러니 혹시 여분이 있으시면, 제게 한 부 보내 주십시오. 그 보답은 신께서 해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자정입니다. 편안히 주무세요. 신께서 저 대신 그대를 지켜 주시기를.
당신의 신실한,
지브란 칼릴 지브란(9)
(1) 서신 왕래를 통해 더 친숙해지기 전, 지브란은 아랍의 전통적인 섬세한 문장으로 편지를 시작하곤 했는데, 그 부분은 사실상 영어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들면, 그는 마이를 'Hadrat al-adibah al-fadila(출중하고 미덕 높은 작가)'라고 부르곤 한다. 여기에서는 이런 구문을 대신해 '친애하는 지아다 양에게'라는 문구를 넣고 괄호를 쳐서 따로 표시했다.
(2) 지브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신학적인 어휘를 '성스러운 선동' 혹은 마이의 특별한 '신성한 법'을 의미하는 데 사용한다.
(3) 《알-푸눈》은 1931년 뉴욕에서 나십 아리다(1887-1946)가 창간한 아랍어 저널이다. 아리다는 뉴욕의 '알-라비타 알-콸라미아'의 설립자 중 한 사람으로, 시 모음집인 『어리석은 영혼』, 소설집 『딕 알-진 흠신』 등을 출판했다.
(4) 아민 [알]-리하니(1876-1940)는 레바논 출신 저술가로 레바논 북부 지역인 프라이케에서 태어나 뉴욕으로 이민했다. 그는 아랍어와 영어로 글을 썼으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물루크 알아랍』, 『콸브 알-트라크』, 『칼브 루브난』 등이 있다. 아민은 마이와 지브란, 두 사람의 친구였다.
(5) 아랍 악곡
(6) 토머스 카알라일(1795-1881)는 철학자 겸 역사학자로, 케임브리지에서 아랍어를 공부한 적은 없지만, '영웅들, 영웅 숭배와 역사상 영웅시'란 강연에서 선지자 마호메트의 영웅주의를 찬미한다.
(7) 닥터 슈빌 수마엘(1860-1917)은 레바논 출신 의사 겸 저술가다. 옛 의학 서적에 대한 주석과 설명서를 냈다. 그는 마이의 친구이자, 그녀의 문학을 숭배하던 인물이었다.
(8) 카이랄라 카이랄라(1822-1930)는 레바논 출신 저술가로, 프랑스 신문 《르 탕》의 동양 지역 국장으로 일했다. 『시리아』라는 제목의 프랑스어 책을 집필했다.
(9) 지브란의 아랍 이름은 지브란 칼릴 지브란(Gibran Khalil Gibran)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는 아랍의 관례에 따라, 그도 가운데 이름을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지브란은 아랍어 작품에는 언제나 이 이름으로 서명을 했는데, 그것은 마이 지아다에게 보낸 편지들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영어로 된 작품에서는, 그가 1895년부터 1897년까지 다녔던 보스턴 학교의 영어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앞의 '지브란'을 빼고, '칼릴'의 스펠링도 'Khalil'에서 'Kahlil'로 바꾸었다.
뉴욕, 1919년 5월 10일
나의 친애하는 마이 양에게,
『알-마와킵(프로세션)』(1)이 출판되었기에 초판본을 동봉합니다. 이 작품은 형식상 반은 안개이고 반은 현실인, 말하자면 꿈이라는 것을 당신도 금방 알아채시겠지요. 혹시 당신이 이 작품을 조금이라도 맘에 들어한다면, 그대의 칭찬이 은혜로운 현실로 변할 것입니다. 하지만 혹 그렇지 않다면, 이 작품은 안개 속으로 되돌아가겠지요.
그대의 선한 자아에 한없는 인사와 경배를 드리며, 신께서 당신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당신의 충실한,
지브란 칼릴 지브란
(1) 『알-마와킵(프로세션)』은 지브란이 운율에 맞춰 쓴 시집 중 하나다. 그는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상징적으로 그린 그림으로 시집을 꾸몄다. 이 책은 1919년에 출판되었고, 마이 지아다는 이집트 잡지 《알-힐알》에 이 시집의 비평문을 게재했다.
뉴욕, 1921년 5월 30일 월요일 아침
나의 벗 마이, 마리
이상한 꿈을 꾸다가 방금 깨어났습니다. 꿈속에서 당신은 나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무척 엄격하고 냉정한 어조였지요. 하지만 꿈에서 제 마음을 괴롭힌 것은 --- 지금도 너무나 맘에 걸립니다 --- 그대의 이마에 작은 상채기가 있었는데 거기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우리가 꾸는 꿈보다 더 생각할 가치가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꿈을 많이 꾸는 사내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꿈이 아니면 꿈의 내용을 잊어버리기 일쑤지요. 이 꿈보다 더 선명한 꿈을 꾼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이 아침, 마음이 혼란스럽고 걱정스럽습니다. 당신이 그처럼 엄격하고 냉정한 어조로 말한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당신 이마의 상처는 무슨 의미일까요? 저의 우울함과 슬픔 뒤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얘기해 줄 사람이 누구 없을까요?
온종일 마음으로 기도하며 보내야겠습니다. 마음의 침묵 속에서 그대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하렵니다.
신께서 그대를 축복하시고 지켜 주시길.
지브란
보스턴, 1923년 11월 3일
1923년 11월 3일자 소인이 찍힌 봉투에는 이런 내용이 담긴 미켈란제로 조각상 그림 엽서가 들어 있다.
보세요, 마리(1). 미켈란젤로가 얼마나 위대한지. 대리석으로 대단한 거작들을 창조해 낸 이사람은 극도로 부드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진정한 힘은 부드러움의 딸임을, 유연성은 진정한 단호함의 자녀라는 인생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어여쁜 얼굴이여, 잘 자요.(2)
지브란
(1) 마이의 본명은 마리였으나, '마이'가 시적이라며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110p). 그리고 미리암은 지브란이 지어 부른 마이의 별칭이다(147p).
(2) 애정을 나타내는 아랍식 어구로 번역해 옮기기 힘든 문구이다.
뉴욕, 1929년 12월 10일
마리, 나의 사랑하는 벗이여,
오늘 당신 아버님께서 황금빛 지편선 너머로 떠나셨음을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 그곳을 향해 순례를 떠나게 되겠지요.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좋을까요? 마리, 그대는 생각이든 말이든 한없이 숭고한 위로를 듣고 싶어하는 분이지요. 하지만 제 마음은 그대 앞에 서서 조용히 그대 손을 잡고, 그대의 영혼이 깃든 모든 것을 느껴 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대 곁에 있지만 아직도 이방인인 이 사내는 그대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답니다.
신께서 마리 그대를 축복하시기를. 그리고 그대의 매일 밤과 매일 낮을 지켜 주시기를. 그대의 벗을 대신해 신께서 그대를 감싸 주시길.
지브란
(출처 : 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 공경희 옮김 명진출판)
- 편지는 총 37편으로서 1914년 1월 2일부터 1930년 12월 17일까지의 것이다. 이 편지를 통해 그동안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브란의 새로운 면을 엿볼수 있어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다. 원래 이 편지들은 아랍어로 쓴 것이지만, 엮은이가 영어로 번역했고, 또다시 공경희가 번역하면서 영역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보통 칼릴 지브란과 관련된 여인을 떠올리면 M.E.H가 먼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May Ziadeh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이들의 관계는 연인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문학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잠언 소개 - 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
나는 이슬 방울을 명상하여 바다의 비밀을 알아냈다.
선물이 늘어나면 친구는 줄어든다.
습성과 충동이 아니라 이성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대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인간을 부유함의 자로 재개고 하는 자들과 인연을 맺지 말라.
나는 꿈과 소망이 없는 자들 사이에서 군주가 되기 보다는, 실현시킬 포부를 지닌 가장 미천한 자들 사이에서 꿈을 꾸는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하리라.
인생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선물인 아름다움과 진실 가운데, 나는 첫번째 것을 사랑하는 마음 속에서 그리고 두번째 것은 일하는 사람의 손에서 찾아내었다.
사람들은 흑사병을 얘기할 때는 두려움과 전율을 느끼지만,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처럼 파괴하는 자를 애기할 때는 열광적인 흠모를 드러낸다.
검약함이란 인색한 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움을 뜻한다.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누군인지를 나는 알았다.
자신의 꿈을 황금과 은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몰락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고집이 센 수다장이에게 누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대화는 병든 마음에 위안을 주고 치유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러자 그는 입을 다물고는 의사가 되겠다고 한다.
그의 얼굴에댜 내가 키스를 하면 내 뺨을 때리고, 내가 그의 뺨을 때리면 내 발에다 키스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사랑을 요구하는데 욕정을 받게 되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힘들까!
신에게 더 가까이 가는 길은 사람들과 더 가까와지는 것이다.
결혼이란 죽음이나 삶 둘 중에 하나이고, 그 중간 단계는 존재할 수가 없다.
"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밝혀주는 촛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되, 사람들의 빛을 따라 길을 찾아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더 가까이 오게 하여라.
이성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이성이 육신의 한 부분이 되기 전에는 노예 생활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내가 눈을 감으면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윙크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비단같은 얼굴들은 야한 헝겊으로 테를 둘렀다.
내가 제시하는 증거가 무지한 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현명한 사람이 제시하는 증거가 나에게 확신을 심어준다. 그러나 지혜와 무지 중간쯤 가는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나는 그를 납득시킬 수가 없고 그 사람도 나는 납득시킬 수가 없다.
(출처 : 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 안정효 옮김. 소담출판사 출판)
전기 -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지브란
서문
머리말 - 캐슬린 레인
나는 레바논에 한 번밖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48시간도 채 머물지 못했다. 부쉬루이 교수는 1983년 칼릴 지브란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전시회 겸 회의에서 블레이크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나를 초청했다. [예언자]는 우리 어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책이었으므로 나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내가 탄 비행기가 베이루트 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회의가 내란으로 취소되어 버렸다. 지브란의 글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던 방은 미국을 비롯하여 외국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들이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밤을 부쉬루이 교수 댁에서 보냈다. 지중해 소나무의 향기와 바다 내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 고도의 문명과 번영을 자랑하던 이곳은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베이루트를 굽어보는 산맥 쪽으로부터 공항을 향해 폭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차로 시내를 지나다 보니 최근 파괴된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보였다. 이제 막 수염이 나기 시작한 소년들이 철모를 쓰고 소총을 자랑스럽게 휘두르며 가끔 차를 세우고는 검문을 했다. 이들이 누구 편인지도 알 수 없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유태인 수용소가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에서 온 평화유지군 대원들을 실은 장갑차가 허세를 떨며 지나갔다. 아까 공항에서는 한 편이 다른 한 편에게 "저들은 사탄의 자식들이다!"라고 외치를 소리를 들었다. 어느 편이 어느 편에다 대고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레바논의 산들을 배경으로 벌어지고 있어 더욱 극적이었다. 이런 나라는 처음 와 본다.
부쉬루이 교수의 집은 두 번 습격 당했도 매번 서재가 파괴되었으나 교수는 계속 어메리컨 유니버시티의 강단에 섰다. 1년 후 더 이상 캠퍼스로 갈 수 없을 때까지, 교수는 그때서야 사랑하는 조국을 떠났다. 나는 교수 덕분에 이 시대의 수많은 분쟁 중 하나를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 예이츠가 자기 조국 에이레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난다. "증오는 넘치고 (마음의) 여유는 없다."
태어나기 한 세대 전에 이미 내분으로 얼룩진 레바논에서 칼릴 지브란은 아랍 동포들을 위해, 그리고 12세 때 어머니, 여동생들, 형과 함게 이민을 간 서양 세계를 위해 예언자의 역할을 떠맡았다. 마론파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난 지브란은 예수를 역사 속에 화석화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 생생히 살아 있는, 블레이크의 표현대로 '신적 인간성'을 지닌 존재로 재조명했다.
자연과학에 기초한 합리적 유물론은 19세기 말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서양과 서양화된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시기에 유물론적 문명(마르크스주의든 자본주의든)이 완성 단계에 들어갈 무렵에도 이에 반대하는 억센 조류가 흐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어떤 영성적 힘이 집단에게 작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조류를 만들어 냈다.
인도에서는 고대 전성기만큼이나 많은 현자들이 등장했다. 라마크리쉬나, 나마나 마하르시, 스리 아우로빈도 등이 그런 사람들이며,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마하트마 간디도 있었다. 예이츠의 친구인 AE가 주창한 '시대의 정치학'은 '영원의 정치학'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유뮬주의를 철저히 거부했던 예이츠는 상상력의 힘을 믿었고 이를 찾기 위해 동시대의 정신 세계를 두루 찾아보았다. 상상력을 통해 지혜와 시가 소생한다고 믿은 까닭이다.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에 비추어 그리스도교를 재조명한 지브란은 이러한 선각자의 대열에 끼어 있다.
이들은 모두 이런저런 방법으로 박해당했다. 간디는 여러 번 투옥되었다. 예이츠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시인이었음에도 동시대인들로부터 조롱당했다. 예이츠에게 지혜를 준 문명의 주된 흐름을 이들이 몰랐던 탓이다. 지브란은 이들과는 반대의 이유, 그러니까 영혼의 양식ㅇ 굶주린 서양 세계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있다고 믿은 반면 이들 예언자들은 '신의 세계'가 영혼의 양식임을 드러내 보였다. 이는 마치 하나의 존재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빌어 얘기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 목소리 중 가장 유창하고 아름다웠던 것은 레바논 출신 아랍 그리스도교인 칼릴 지브란의 외로운 음성이었다.
부쉬루이 교수는 동서양에서 지브란에 대한 책을 이미 출판했으며, 지브란이 아랍 시와 영어권 세계에 기여한 바를 교수만큼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 권이 있는 전기를 쓰는 과정에서 교수는 새로운 세대의 지브란 연구가들을 대표하는 조 젠킨스와 협력했고, 이들의 협력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작가를 그린 새로운 전기를 탄생시켰다.
(출처 :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은 도서출판 두레, 이창희 교수(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옮김)
참고 사항 : 미디어 리뷰
수난이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목소리
고통 속에서 파멸 또는 자멸하는 사람은 세상을 저주하다 미치거나 죽는다. 하지만 고통을 승화시킨 사람은 다른 고통 속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한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고통의 깊이에 비례한 정신의 높이를 성취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피에 적신 책이다. 상처받은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절규와 같은 책이다. 큰 고통은 그 희생자를 밟아 뭉갤 수 있다. 고통은 고통을 겪는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브란의 영혼과 마주칠 때, 그것은 생산적인 힘이 된다”
레바논 출신 시인·화가인 칼릴 지브란(1883~1931)의 대표작 ‘예언자’에 대한 사르와트 오카샤 전 이집트 문화부장관의 ‘서평’이다. 이 서평에서 ‘지브란’이란 말만 빼면 마치 온갖 박해와 수난 속에서 엮어진 ‘성서’에 대한 촌평을 연상케 한다.
‘예언자’는 한국독자들에게도 고밀도의 감동과 전율을 던진 책이다. 여기에 보태 미 메릴랜드대 수헤일 부쉬루이 교수 등이 지브란의 삶을 입체복원한 평전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이창희 옮김, 두레)을 읽으면 그 떨림은 증폭된다. 지브란이 ‘예언자’를 16살 때 처음 썼으면서도 완성도를 위해 20년간 묵혀두면서 갈고 다듬고 섬광 같은 영감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도 놀랍다.
지브란의 고향 레바논은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서도 종교적 분쟁으로 인한 내란 등으로 지금도 총소리가 그치지 않는 비극의 땅. 지브란 생전의 레바논은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는 데다가 영국과 프랑스 등이 호시탐탐 식민야욕을 불태우던 땅이었다. 그런 땅에서 “타고르의 ‘기탄잘리’ 이래 동양에서 나온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대개 고통이 중첩된 땅에서 중첩된 고통을 치유하는 사유와 문장이 나왔던 것이다.
한국도 세계 1급의 수난·고통의 나라. 그런데도 세계 학문·문학계를 뒤집어놓은 작품이 거의 없다. 이미 그런 작품(특히 시)들이 수두룩한데 우리가 번역을 제대로 하지 못해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동양에서 나온 아름다운 목소리들인 ‘기탄잘리’와 ‘예언자’ 등은 저자들이 직접 영어로 쓴 작품이라는 점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 경향신문 책속의 책 00/8/31 김중식 기자
神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신의 빛으로 세상을 본 예언자’ 시인이며 철학자이자 화가였던 칼릴 지브란(1883∼1931)은 그의 대표작 ‘예언자’로 우리에게 친숙 하다.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예언자’는 서양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있는 책.‘지브란 숭배자’는 미국에서만 50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예언자’의 주인공 알무스타파처럼 그는 하나의 신화요 전설이 됐다.그렇기에 오히려 지브란의 생애와 작품을 종합적으로 바라본 책은 찾아보기 힘든 지도 모른다.
미국 메릴랜드대 칼릴 지브란 연구소장인 수헤일 부쉬루이와 지브란 연구가 조 젠킨스가 함께 쓴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 ’(이창희 옮김,두레 펴냄)은 ‘인간’ 지브란에 주목한 최초의 지브란 평전이다.
지브란은 아름다운 삼나무 숲이 향기를 내뿜는 ‘예언자의 땅’ 레바논의 비샤리에서 태어났다.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비샤리의 전원풍경은 그에게 꿈과 환상의 날개를 달아줬다.하지만 12세때 지브란은 레바논을 떠나야했다.세무서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부패사건에 연루되면서 미국 보스톤으로 이민을 간 것이다.지브란은 동부 런던의 악명높은 슬럼에 비교되는 ‘철길 건너’라는 이민자들의 군락에서 살았다. 가난과 이민자에 대한 편견,인종차별 등으로 얼룩진 지브란의 보스톤 시절은 그의 표현대로 ‘비참했다’.영어로 쓴 첫 작품 ‘광인’에는 그 때의 혼란스러웠던 삶의 정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평전은 지브란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영성적(靈性的) 태도와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지나온 정신적 순례의 과정을 살핀다.마론파 그리스도 가정에서 태어난 지브란은 “가슴의 반쪽에는 예수를,다른 반쪽에는 마호메트를 품고 있다”고 스스로 말했을 만큼 종교적으로 열린 자세를 취했다.그는 작품을 통해 이슬람의 수피(신비주의 교파)전통과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적 유산을 결합하고자 했다.결국 ‘예언자’에서 알무스타파라는 인물을 그려내 자신의 꿈을 이뤘다. 알무스타파는 그리스도와 마호메트가 하나로 된 인물이며 수피에 나오는 ‘완전한 인간’의 화신이다.‘계곡의 님프’‘반항하는 영혼’등 지브란의 젊은 시절 작품들은 권력과 돈에 집착하는 교회와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불의와 극단주의,제도화된 폭력을 비판한다.‘반항하는 영혼’은 마침내 금서가 돼 베이루트 광장에서 불태워졌다. 그는 자신의 조국 레바논을 침략한 오토만 투르크의 압제에 맞서 싸운 ‘ 반항하는 정신’이었다.
지브란에게 누구보다 깊고 오랜 영향을 끼친 사람은 파리 유학시절 만난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다.블레이크의 서정적 독창성에 매료 된 지브란은 블레이크를 “내 영혼과 형제간인 영혼”이라고 불렀다. 지브란이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았던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자못 흥미를 끈다.이루지못한 젊은 시절의 사랑 할라,‘수호천사’ 메리 하스켈,영적으로 하나였던 아랍 여인 마이 지아다,지브란의 모델이 됐던 미셸린….이 중에서도 특히 지브란을 위대한 시인으로 만든 메리 하스켈과의 사랑은 아름다운 지적 동반자 관계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 책은 단순히 전기적 사실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초기작 ‘반항하는 영혼’에서부터 마지막 작품 ‘방랑자’에 이르기까지, 지브란의 대표작들을 그의 생애와 연관지어 다룸으로써 지브란에 대한 총제적인 이해를 돕는다.책에 실린 24쪽의 화보는 화가로서의 지브란의 면모를 짐작케 한다.
지브란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저자는 지브란의 메시지에는 영적인 ‘치유의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대한매일신문 00/8/29 김종면 기자
생태주의자, 평등주의자, 반항정신의 상징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예언자'를 쓴 칼릴 지브란. 그의 전기가 최초로 국내에 소개된다.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은 지브란 연구의 권위자 수헤일 부쉬루이가 10년 간의 연구 끝에 탄생시킨 결과물.
예언자 지브란에 대한 평가는 늘 양분된다. 신비주의자로 신격화 하거나 인기에 편승한 시인으로 폄하하는 것.
지브란의 문학 작품을 삶과 결부시켜 분석하는 이 책의 시도는 특히 인상적. 초기작 '반항하는 영혼'부터 '사람의 아들 예수'에 이르기까지 작품 배경을 상세히 소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지브란은 권력 지향의 교회를 비판하던 '반항 정신'의 상징이자 남녀 간의 불평등에 맞서 싸운 인물. 또 살아있는 지구의 성스러움을 시에 담던 생태주의자이기도 했다. 지브란은 "물방울 하나에 끝없는 대양의 모든 비밀이 담겨있다"고 노래하고 저자는 "지브란의 메시지에는 치유의 힘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자연의 신비를 노래하고 언제나 약한 자의 편에 섰던 그의 삶은, 환경파괴와 과잉경쟁의 이 시대에 경종이 될 만하다.
--- 파이낸셜뉴스 00/8/29
예수와 마호메트 함께 품은 가장 급진적인 예언가
칼릴 지브란이란 이름은 묘한 울림을 남긴다. 꿈꾸는 듯 물기 촉촉한 큼직한 눈, 영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그 남자 얼굴이 표지를 장식했던 <예언자>는 헤세의 <데미안>이나 카뮈의 <이방인>처럼 모든 것에 회의를 품었던 젊은 한 시절을 불러오는 주문같은 책이다. 성경을 제쳐놓는다면 20세기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꼽히는 <예언자>의 작가, `이상한 작은 책'을 쓴 이 아웃사이더를 말하는 전기 <칼릴 지브란>(수헤일 부쉬루이·조 젠킨스 지음)은 그 매혹적인 얼굴과 잠언처럼 폐부를 찌르는 문구들에 사로잡혔던 독자들을 다시한번 그때로 데려간다.
칼릴 지브란(1883~1931)은 레바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죽은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화가이다. “가슴의 반쪽에는 예수를, 다른 반쪽에는 마호메트를 품고” 있었던 그는 이슬람의 수피와 그리스도교의 유산을 `인간 영혼의 신비함'이란 공통점으로 묶으려 했던 인물이었다. 지브란은 물질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사위어가며, 그 딴딴한 세계를 의미있게 만들고 그것에 품위를 부여하는 영적 생활을 전 인류가 누렸으면 하는 열망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동양과 서양의 영적 전통을 문학적이고도 철학적으로 결합하려던 그의 야심은 <예언자>에서 낭만적인 열매를 맺었다.
“나의 작품이 쉴 수 있는 이상적인 자리는 예수의 인격이다. 그의 생애는 인본주의의 상징이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항상 신비로움, 열정, 사랑, 상상력, 비극, 아름다움, 로맨스, 진실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지브란이 예수를 `폭풍'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인간의 자유를 질식시키려는 모든 굴레로부터 인간 본능을 해방해 영혼의 건강을 회복시켜준 그 건강한 시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닮은 이 `동방의 블레이크'는 인간이 걸어갈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이고도 아름다운 길을 일찌감치 내다본 예언자였다.
--- 한겨레신문 00/8/28 정재숙 기자
'예언자' 지브란의 인간과 삶 조명
‘신의 빛으로 세상을 본 예언자’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시인이며 철학자이고 화가였던 칼릴 지브란(1883∼1931)에겐 최고의 헌사가 붙여졌다. 대표작 ‘예언자’의 주인공 알무스타파처럼 그는 전설이었다. 지브란이 신화화됐던 만큼 그의 작품과 생애를 종합적으로 바라본 저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브란 권위자들이 10여년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이 책은 ‘인간’ 지브란에 천착한 최초의 평전이란 점에 의미가 깊다.
책은 ‘예언자의 땅’ 레바논에서 보낸 유년시절, 미국 보스턴 빈민가의 이민생활, 파리에서의 그림 수업, 뉴욕에서 만개한 문학적 열정 등 시기별로 겪은 정신적 순례의 과정을 소상히 되짚고 있다.
전기적 기술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의 인생을 초기작 ‘반항하는 영혼’부터 마지막 작품 ‘방랑자’에게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작품과 결합시켜 풀이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예언자’의 탄생부에서는 “16세때 초고를 썼지만 35세때 발표하라는 어머니의 조언으로 20년이나 다듬었다”는 내용의 고백이 실렸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부터 받은 충격, 파리 유학시절 만난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로 받은 심대한 영향도 엿볼 수 있다.
또 ‘아름다운 청년’을 사랑했던 몇 명의 여인의 일화도 눈에 띤다. 그중 미국의 한 여학교 교장인 메리 하스켈과의 사랑은 아름다운 지적 동반자의 관계의 모범으로 그려지고 있다. 저자는 그녀를 ‘한 아랍인 이민자를 위대한 시인으로 만든 결정적인 후원자’로 평가하고 있다.
--- 동아일보 00/8/26 윤정훈 기자
영혼의 치유자` 칼릴 지브란의 생애
인생은 위로가 아니라 각성이다. 각성을 바탕으로 삶은 더욱 깊어지고 두터워질테니. 하지만 끊임없이 각성만 계속되는 삶이란 또 얼마나 피곤하고 쓸쓸한가. 칼릴 지브란은 그 고단한 육체, 각성된 영혼에게 주는 한 줄기 위로다.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수헤일 부쉬루이, 조 젠킨스 지음ㆍ이창희 옮김ㆍ두레)은 그 영혼 치유자, 지브란에 대한 평전이다. “성경을 제외하고는 20세기에 가장 많이 팔려나간 책”이라는 작품 ‘예언자’로 대중에게 너무나 친숙하지만, 지브란의 생애와 문학을 깊이있게 탐구한 책은 드물었던 게 현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칼릴 지브란 연구소장인 부쉬루이 교수와 한 세대 아래 젊은 학자인 조 젠킨스가 시인이며 철학자, 그리고 화가였던 칼릴 지브란 (1883~1931)을 입체적으로 정리했다.
지브란은 오토만 투르크 치하의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고향 비샤리는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전원 풍경”으로 어린 지브란의 영적 감수성을 살찌웠지만, 그는 12살 때 레바논을 떠나야 했다. 세리였던 아버지가 부패사건에 연루되어 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이민을 간 것. 고달픈 이민자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보스톤은 당시 새로운 문화의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철길 건너’로 대표되는 이민자들의 열악한 군락에서 성장해야 했지만, ‘빛나는 영혼’은 곧 그 무덤같은 마을에서 송곳처럼 뚫고 나왔고, 1896년 지브란의 그림이 미술 선생의 눈에 띄면서 그의 천재성은 소문나기 시작했다.
1908년부터 1910년까지는 파리에서 공부한다. 취하지 않은 디오니소스, 니체에게 매혹당하고, 시와 예술의 스승이며 동반자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그 때부터 낡은 사고방식과 도덕적 편견을 날려버리고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글쓰기를 선보이게 된다. “가슴의 반쪽에는 예수를, 다른 반쪽에는 마호메트를 품고 있다”고 스스로 말했을 만큼 종교적으로도 열려있었다.
첫 영어작품인 ‘광인’을 필두로 ‘사람의 아들 예수’, ‘반항하는 영혼’ 등은 모든 형태의 불의와 극단주의, 제도화된 폭력을 비판하는 지브란 정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또 ‘예언자’는 뉴욕타임즈로부터 “히브리 예언자의 최고봉”이라는 격찬을 들으며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48세라는 젊은 나이로 죽은 지브란의 가장 사적인 부분,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이루지 못한 젊은시절 사랑 할라, 미모의 여류시인이었던 J.P 피바디, 영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던 아랍여성 마이 지아다, 그리고 지적 동반자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던 사랑 메리 하스켈…. 숨막힐 것 같은 경건함에서 빠져나와 작은 미소와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를 신격화하는 ‘지브란 신도’들과, 단순히 인기에 편승하는 시인쯤으로 폄하하는 평론가 사이의 거리는 신과 인간이 자리한 곳 만큼이나 멀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그 중간에서 서로의 거리를 좁혀보려고 했던 한 매력적인 영혼을 새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 조선일보 00/8/26 어수웅 기자 (출처 : http://www.yes24.com/)
심화 자료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1883.12.6~1931.4.10]
철학자·화가·소설가·시인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레바논의 대표작가.
레바논 북부의 베챠리에서 2남 2녀의 막내로 출생했다. 그의 출생지는 산세가 매우 험한 곳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와 인접한 곳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 지역 주민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험한 산세 덕분에 터키 지배하에서도 자치구역으로 남아 있었다.
1869년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생업이던 대상(caravan)을 통한 동서교역이 타격받고 주민들은 가난과 터키의 폭정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자 예수회 교육의 영향으로 자유의식이 싹튼 지식인들은 아프리카,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으로 이민을 떠났다. 칼릴 지브란의 가족도 이러한 이민자들의 무리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1895년 12세 때 아버지만 레바논에 남고 전가족이 미국의 보스턴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2년간 영어를 공부하고,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와 5년간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수학했다. 그후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고, 1902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인생체험을 쌓았다. 1908년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할 때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을 만나 3년간 미술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이민온 어머니와 누나, 형이 결핵으로 죽고 누나와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보스턴의 한 출판업자의 도움으로 북디자이너로 일했다. 이때부터 화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했으며, 당시 문단에서 활약하는 젊은 작가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면서 작품활동을 하게 되었다.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아랍어로 씌어진 산문시들과 희곡작품들이다. 희곡은 모든 아랍권에 널리 알려져 지즈라니즘(Gibranism)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였다. 20세를 전후하여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923년, 20년간의 구상을 거쳐 완성한 원고를 출판하기로 결심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영어로 기록한 산문시 《예언자 The Prophet》이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깨닫게 하여 현대의 성서라고 불리는 《예언자》는 아랍어로 쓴 소설 《부러진 날개 The Broken Wings》(1912)와 함께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후에도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미국의 시리아계 신문에도 기고했으나, 《예언자》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저작들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삽화로 실린 경우가 많다. 초상화를 비롯한 그의 그림은 철학을 느끼게 하는 독창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띠는 것으로서 웅장하고도 경이로운 레오나르도적 특질을 보여준다는 평을 얻었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 최초의 전시회를 가진 이래 뉴욕, 보스턴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아메리카의 보헤미아라고 불리는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독신으로 지내며 예술활동에만 전념하면서 늘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주장하고, 레바논의 종교적 단합을 호소했다. 평소 타국살이의 외로움을 알코올로 달래다가 건강을 해쳐 뉴욕의 성 빈센트병원에서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독특한 종교적·역사적 배경에서 성장하여 일생을 아랍과 비아랍, 이슬람과 기독교, 레바논과 뉴욕 등 이질적인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특유의 이중적 세계관으로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현대인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았다.
한국에는 1975년 처음 번역되어 국내 독서계에 칼릴 지브란의 붐을 일으켰던 산문시집 《예언자》를 비롯하여 첫사랑을 주제로 다룬 소설 《부러진 날개》, 잠언집 《모래 ·물거품 Sand and Foam》(1926), 우화집 《방랑자》(1932)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Prose Poems》《세월 Time and Tide》《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등 많은 작품이 소개되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칼릴 지브란의 저서들
Nymphs of the Valley (1906) : 계곡의 요정(님프)
칼릴 지브란이 1906년을 전후로 쓴 '마르타, 미친 유한나, 천년의 먼지와 영원한 불'을 일컫는다. 1948년에 한 데 묶어 출판하었다. '마르타'는 중동 지역의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 자연과 도시의 대조, 시골과 도시의 대조를 그리고 있다. '미친 유한나'에서는 중동의 부패, 착취, 위선을 고발했다. '천년의 먼지와 영원한 불'은 윤회와 예정된 사랑을 다루고 있다.
Spirits Rebellious (1908) : 반항하는 영혼 (=반항하는 정신)
'반항하는 영혼'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앞선 '계곡의 님프'(1906년 전후)처럼 레바논의 억압적 사회 체제를 중심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같은 주제를 더욱 직접적이고도 자신만만한 톤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권력의 부당한 남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그친 '계곡의 님프'와는 달리 긍정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단자 칼릴, 무덤들의 외침, 와르데 알 하니, 신부의 꽃가마' 등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아랍어로 쓴 작품이다.
The Broken Wings (1912) : 부러진 날개
1912. 1월 아랍어 단편 '부러진 날개'가 출간되었다. 그는 아랍어로 된 헌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책에 쓴 뒤 M.E.H 에게 보냈다. 이 책으로 아랍 세계에서 그는 유명해졌으며, May Ziadeh 라는 비평가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와는 나중에 특이하고도 깊은 친분을 갖는다.
'부러진 날개'는 그의 몇 권 밖에 되지 않는 소설 가운데 가장 긴 작품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언자'가 영어로 쓴 걸작이라면 '부러진 날개'는 아랍어로 쓴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2년 유세프 말루프 감독에 의해 1시간 30분 길이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A Tear and A Smile (1914) : 눈물과 미소
아랍어 작품인 '눈물과 미소'에서는 이민 초기 지브란이 느꼈던 소외감을 반영하고 있으며, 여기서 '미소'는 그의 상상 속에서 레바논이 형이상학적인 고향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의 희열을 그린 것이다.
The Madman (1918) : 광인
1918년, 36세가 된 칼릴 지브란은 영어로 쓴 첫번째 작품 '광인(The Madman)'을 발표했다(니체식의 아이러니 동원). '광인'에 나오는 각 우화는 교훈을 담고 있으며, 지브란이 후기 작품에서 다루게 될 주제를 암시하는 것도 있다. 악의, 위선, 불의, 순응, 야망, 맹목성, 청교도주의 등이 신랄하게 풍자되어 있으며, 비록 서정적으로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냉소적인 어조가 지배적이다.
일부 번역서 중에 그의 연보를 실으면서 '아씨(Madam)'가 영어로 쓴 최초의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The Procession (1919) : 행렬 (=영가)
1919년 아랍어로 출판된 '행렬(The Procession)'은 자유와 기쁨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젊은이와 세상의 무익함을 한탄하는 현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쒸어졌다. 현자는 '노인'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적절했을지 모르는데, 지브란의 세상에 대한 권태감, 세상의 패러독스와 비참함, 그리고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행렬'의 아랍어 원본은 200행이나 되며, 4행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각각의 4행시에는 운율이 있다. 4행시 다음에는 젊은이가 노래하는 후렴구 형태의 2행시가 이어진다. 젊은이가 말하는 부분의 운율은 활기 차고 밝은 반면 현자의 운율은 좀 더 무겁고 설교조와 웅변조이다.
국내 번역서의 경우 '행렬(행진)' 대신에 '영가'라는 표제어를 사용하고 있다.
The Tempest (1920) : 폭풍우 (=대폭풍우)
1920년 여름 칼릴 지브란은 '폭풍우'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는 니체의 독설적 시각에 영향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집에서 받는 일반적인 인상은 비록 '눈물과 미소'에서 보여 준 더 낙천적인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또다시 절망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끼게 한다.
The Forerunner (1920) : 선구자
1920년 9월 칼릴 지브란의 두번째 영어 작품 '선구자 - 그의 우화와 시'가 출판되었다. 이 모음집의 중요 주제는 각성의 필요성으로서 이 시대에 대한 지브란 자신의 열망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The Prophet (1923) : 예언자
칼릴 지브란의 대표작이다. 1923년 9월 말에 산뜻하면서도 검은 표지의 2달러 25센트짜리 작은 책이 복잡한 뉴욕 서점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2만 단어밖에 안되는 철학적이며 신비주의적인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달만에 초판 1,300부가 모두 팔렸고, 1937년까지 129,233부가 팔렸으며 지금 현재까지도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20세기에 가장 널리 배포된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Sand and Foam (1926) : 모래, 물거품 (=모래와 물거품)
1926년 영어로 쓴 이 작품은 블레이크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대부분 '예언자'에서 지브란이 탐색했던 것들로서 시인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반영하는 것들도 포함하고 있다.
Jesus, the Son of Man (1928) : 사람의 아들 예수
지브란은 1926년 11월에 '사람의 아들 예수'를 쓰기 시작했으며, 대부분을 정신적 압박이 심한 뉴욕을 피하여 보스턴에서 썼다. 1928년 10월 출간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복음서를 통해 잘 알려진 여러 인물들의 시각에서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The Earth Gods (1931) : 지신(地神)들 (=대지의 신들)
'대지의 신들'에서는 첫 번째 신과 두 번째 신의 토론, 세 번째 신의 중재형식으로 되어 있다. 비록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의 힘에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두운 편이다.
The Wanderer (1932) : 방랑자
'방랑자'는 지브란이 생의 마지막 3주 동안 쓴 글이다.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우화집으로서 주로 동물이나 식물을 의인화해 처세에 관한 교훈을 암시한 '이솝우화'나 퐁텐의 '우화집'과는 전혀 다른 주제의식과 표현의식을 선보였다. 한 비평가는 이를 '시적인 우화'라 불렀다.
The Garden of the Prophet (1933) : 예언자의 동산(=예언자의 정원)
지브란은 원래 '예언자'를 3부작 중의 첫 권(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논함)으로 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다룬 '예언자의 동산'을 다음 권으로, 그리고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다룬 '예언자의 죽음'을 마지막 권으로 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예언자의 동산'의 원고를 썼고 사후에 바바라 영에 의해 완성되어 출간되었으나, 그의 야망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작품 연보 작성시 참고한 자료 목록
-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 / S.부쉬루이 / 두레 / 2000
- 방랑자 / 이종욱 옮김 / 한길사 / 1999
- 부러진 날개 / 이종욱 옮김 / 한길사 / 1999
-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 정은하 엮음 / 진선출판사 / 1988
- 예언자.영가 / 유제하, 윤삼하 옮김 / 범우사 / 1982
(출처 : http://www.ixia.pe.kr/ixia_home.html)
읽기 자료
예언자 / 푸쉬킨
영혼의 목마름에 지쳐 버린 내가,
어두운 황야에서 헤매고 있을 때,
여섯 날개 천사 세라핌이
갈림길에 선 내게 나타나,
꿈처럼 가벼운 손길로
내 눈을 만진다:
놀란 독수리의 눈처럼
예언의 눈이 열린다.
그가 내 귀를 만질 때,
귀는 소음과 울림으로 가득찼다:
내가 들은 것은 하늘의 떨림,
천사들이 비상하는 소리,
바다 파충류가 물 밑을 기어가는 소리,
계곡의 넝쿨들이 자라는 소리.
그는 내 입술로 몸 구부려,
교활하고 헛소리해 대는,
죄 많은 내 혀를 뽑아 버리고,
굳어버린 내 입 속에,
지혜로운 뱀의 혀를
피묻은 오른손으로 넣었다.
그는 칼로 내 가슴을 잘라,
떨리는 심장을 도려내고
벌어진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석탄을 집어 넣었다.
내가 시체처럼 황야에 누워 있을 때,
신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예언자여, 일어나서, 보고, 들어라,
내 의지로 가슴을 채워라,
바다와 대지를 돌아다니며
말씀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불태워라.
번역: 유리 로뜨만/조주관 편역, <시의 이해와 분석>, (열린책들,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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