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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누구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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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누구인가

 

 

간디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이자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위대한 영혼)이다. 포르반다르에서 중급 카스트인 상인 집안에서 1869년에 출생하였고 그의 부모는 힌두교도로서 유년 시절부터 종교적인 감화를 많이 받았다. 13살 때에 동갑인 카스투르바이와 결혼하고 1888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변호사 자격증을 얻어 귀국하였다. 1893년에는 어느 회사의 고문 변호사가 되어 남아프리카로 갔다. 그곳에서 인도인에 대한 차별 대우에 항의하면서 비폭력주의에 입각한 불살생, 무상해를 기본 사상으로 하는 이른바 간디주의(반영 항쟁에 내건 비복종, 비협력, 비폭력주의적 무저항주의)’가 싹텄다. 1915년에 귀국해서 노동 운동과 인도 독립 운동을 하였으며, 인도 국민회의파를 강화시켰다. 1919년에는 로울라트 법에 반대하여 최초의 반항 운동을 지도하고, 그 후 1930년에 소금전매법에의 반대를 위한 소금의 행진등을 지도하였으며, 가끔 투옥되기도 하였다. 인도의 독립 후에도 이슬람교도와 힌두교의 융화에 힘쓰다가 1948년 뉴델리에서 광신적인 힌두교도에게 암살되었다. 저서로는 자서전’, ‘비폭력으로부터 오는 힘등이 있다.

 

 

 간디의 명언

 

권리의 진정한 근원은 의무이다.

나는 살기 위해, 봉사하기 위해, 또 가끔 즐기기 위해 먹은 적은 있어도 향락을 위해서는 먹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애국심은 인류에와 동일하다. 나는 인간이요, 인간이기 때문에 애국자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자는 내 속에 있는 양심이다.

나는 인도의 한 시민으로서, 양심을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도를 위해 정의를 행하고자 한다. 이 신념 때문에 처벌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중죄인이 될 명예를 얻고자 할 뿐이다.

모든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온갖 눈물을 닦아내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전쟁은 절대악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가지 확실히 좋은 일을 한다. 그것은 공포를 몰아내고 표면상의 용기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인도의 독립과 진리를 같이 놓고 이를 맞바꾸라면 독립을 포기하더라도 진리를 택하겠다.

폭력은 결단코 버려야 한다. 폭력이 성취하는 듯 보이는 선은 오직 외적인 선일 뿐이요, 폭력이 가져오는 해로움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큰 일을 생각하지 않고 선한 일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적은 우리 자신. 즉 우리의 욕망이다.

이기주의 속에 모든 문제가 있다. 이기주의는 항상 우리를 걱정하게 만든다. 고난을 받고 있는 인류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으리라. 사실, 그렇게 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의 일에 아무 관심도 없이 오로지 피안의 세계에 잠겨 악기나 연주하면서 지내는 종교는 종교라는 이름을 가질만한 가치가 없다.

 

 

간디의 자서전 1.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가운데서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평등시하는 것은 자기 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정화가 없으면서 아힘사의 법칙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의 허망한 꿈일 뿐이다. 혼이 정결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 정화는 생활의 모든 행동의 정화를 뜻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정화란 지극히 옮아가기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정화는 필연적으로 자기의 환경 정화에까지 가고야 만다.

 

그러나 자기 정화의 길은 좁고 험하다. 완전한 정화에 이르려면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절대적으로 정욕을 버려야 한다. 사랑과 미움, 친밀과 소원(疏遠)의 대립으로 되는 세속의 흐름을 초월해야 한다. 나는 내가 끊임없이 쉬지 않고 노력은 하면서도 아직도 내 속에 그 세 겹의 정결히 되어 있지 못함을 안다. 세상의 칭찬이 내게 달갑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슴을 찌르는 때가 많다. 교활한 정욕을 정복하기란 내가 보기에는 무력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인도에 돌아온 후도 언제나 내 속에 보이지 않게 정욕이 잠재해 있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그것을 알게 될 때 낙심은 않지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경험과 실험은 나를 붙들어 버티게 해주고 기쁨을 준다. <중략> 어머니가 내 기억에 남기신 가장 강한 인상은 그 성자 같은 모습이었다.󰡓간디는 아버지에게서 고집스러움, 청렴결백한 태도, 실용적 감각을 물려받았고 어머니에게서는 신앙심, 헌신성, 금욕주의를 물려받았다. 그는 비슈누교와 자이나교의 영향 아래서 살았다. 두 종교 모두 모든 생명을 신의 창조물로 보고 신성시했다.

 

그는 매일 농작물을 해치는 야생 동물도 죽이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자랐다. 온갖 종파의 성자와 현자가 그의 집을 찾았다. 간디는 이렇게 썼다.󰡒자이나교 수도승들 역시 아버지를 자주 찾아와 자이나교도가 아닌 우리에게서 먹을 것을 받아가기도 했다. 그들은 아버지와 종교적인 일이나 세속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또 카람찬드에게는 이슬람교도와 파시교도(이슬람의 박해로 8세기에 인도로 피신한 조로아스터교도의 자손)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신앙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했으며, 카람찬드는 그들의 이야기에 정중하게 귀를 기울였다. 초등학생 모한다스는 아버지의 간호사로서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종교를 잠깐 엿볼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 많은 것들이 합쳐져서 나는 모든 신앙에 관용을 가지게 되었다.”

 

 

간디의 자서전 2. 간디의 삶, 그리고 인도 사랑소개

 

인도 독립이 나아갈 방향을 밝힌 간디의 삶과 사상, 업적이 태어남과 그 집안부터󰡐안녕히까지 다섯 개 장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간디는 책에서 자서전을 쓰려는 게 아니라 수많은 진리실험 이야기를 해 보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비폭력, 금욕, 자치, 무소유, 공동체 등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런 모습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간디의 신화화한 모습보다는 인간적 측면에 비중을 두고 있다.

 

영화 간디

 

인도 독립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금세기 마지막 성자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생애를 엮은 영화.

 

감 독 : 리처드 아텐보로(Richard Attenborough)

각 본 : 존 브릴리

배 우 : 벤 킹슬리(Ben Kingsley)

캔디스 버겐(Candice Bergen)

상영시간 : 187

제작사 : 미국 콜럼비아픽처스

 

1893,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딴 간디(벤 킹슬리)는 소송 사건 때문에 남아프리카로 간다. 그 곳에서 인종 차별을 경험하고, 남아프리카의 인도 거류민을 위한 탄원서와 기고문을 쓰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또한 노동하는 삶은 지고의 선이라는 평소의 철학대로, ‘피닉스에 땅을 사서 자급자족하는 농장을 건설한다.

 

1915, 인도로 돌아온 간디는 독립을 위해 비폭력주의 불복종 운동으로 영국에 맞선다. 19478, 마침내 인도는 독립을 하지만 종교적 대립으로 인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된다. 분리 뒤에도 종교 분쟁은 끊이지 않고, 이를 위해 노력하던 간디는 1948130일 기도회에서 과격파 힌두교도의 총탄에 쓰러진다.

 

인간에게는 폭력보다 더 강한 힘이 있으니, 간디는 이것을 사랑이라 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극도의 고난 상태에서도 사랑을 유지해야 하며, 그것으로 개인의 욕망 또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행위는 비폭력이지만 결코 나약하거나 소극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류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과 그것을 지키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는 간디의 이런 정신이 전체에 진하게 배어 있다.

 

198355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비롯하여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의 8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간디의 생활 철학을 보여주는 예화 자료

 

18971218, 남아프리카에서 백인들에게 천대와 박해를 받고 있는 인도인을 구해 주기 위해 간디가 더반 항에 도착했을 때, 백인들은 간디는 남아프리카에 있어서는 불청객이다. 인도로 쫓아 보내라.”라며 그의 상륙을 반대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간디가 상륙하자 백인들은 그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였다. 이 사건은 이튿날 신문에 크게 실렸으며, 영국 본국에서도 깜짝 놀랐다. 식민 장관인 쳄벌린씨는 현지 정부에 간디를 습격한 자를 처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말을 들은 간디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내 개인의 일로는 그들을 고소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습격한 자를 처벌한다고 하여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보다는 나는 습격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뉘우쳐 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간디 학습 자료 http://user.chollian.net/~mypc21/f8.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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